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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기사환국(己巳換局)
기사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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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환국 (己巳換局)
1689년(숙종 15)에 소생의 아들 윤(昀)을 왕세자로 삼으려는 숙종에 반대한 송시열 등 서인이 이를 지지한 남인에게 패배하고, 정권이 서인에서 남인으로 바뀐 일이다. 일명 기사사화라고도 한다.
▣ 지식지도
◈ 요약정보
기사환국 (己巳換局) 1689년(숙종 15)에 소의(昭儀) 장씨 소생의 아들 윤(昀)을 왕세자로 삼으려는 숙종에 반대한 송시열서인 이를 지지한 남인에게 패배하고, 정권이 서인에서 남인으로 바뀐 일이다. 일명 기사사화라고도 한다. 이후 갑술옥사 때까지 남인이 정권을 잡았다. 남인, 장희빈 서인, 인현왕후
◈ 지식지도
기사환국 (己巳換局) 남인 서인 환국 기호 학파 노론 동·서 분당 동인 문묘 북인 사색 당파 소론 예송 논쟁 사화 1689년 1727년 1694년 1680년 김수항 송시열 인현 왕후 희빈 장씨 조선 경종 권상하 김상헌 김석주 김자점 김장생 김집 김창업 김창협 김창흡 조선 숙종 류성룡 유형원 윤선도 윤증 윤휴 이덕형 이원익 이이 이익 이황 정경세 정약용 정철 정호 조식 조지겸 최명길 허목 효종 박순 민유중 윤선거 김창집 정탁 허적 윤두수 한태동 민진후 민진원 장희재 송자대전 인현 왕후전 갑술환국 인조 반정 경신환국 정미환국 조선 효종의 북벌 계획 명릉 화양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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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보전 朴泰輔傳 근/현대 소설 차상찬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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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과사전
1689년(숙종 15)에 소의(昭儀) 장씨 소생의 아들 윤(昀)을 왕세자로 삼으려는 숙종에 반대한 송시열서인이 이를 지지한 남인에게 패배하고, 정권이 서인에서 남인으로 바뀐 일이다. 일명 기사사화라고도 한다.
 
숙종은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는데 소의 장씨가 왕자 윤(昀)을 낳았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원자로 삼고 소의 장씨를 희빈으로 책봉하려 하였으나 서인들이 반대하므로 남인들의 도움을 얻어 왕자를 원자로 세우려 하니 서인들은 노·소론(老少論)을 막론하고 왕비 민씨(閔氏)(인현왕후)가 아직 젊으니 후일까지 기다리자고 주장했다.
 
숙종은 1689년(숙종 15)에 서인의 요청을 묵살하고 원자의 명호(名號)를 정하고 소의 장씨를 희빈으로 책봉하였다. 송시열은 상소를 하여 송나라의 신종(神宗)이 28세에 철종(哲宗)을 낳았으나 후궁(後宮)의 아들이라 하여 번왕(藩王)에 책봉하였다가 적자(嫡子)가 없이 죽음에 태자로 책봉되어 신종의 뒤를 계승하였던 예를 들어 원자 책봉의 시기가 아님을 주장하였다.
 
이 사건 후 남인 권대운(權大運) 등이 등용되었다. 이후 갑술옥사 때까지 남인이 정권을 잡았다.
 
소의장씨(昭儀張氏) 소생의 원자를 정호(定號)했을 때에 찬성하여 발생된 했던 민씨 폐출(廢黜)이다. 즉, 숙종은 이미 원자의 명호가 결정되었는데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잘못이라 하여 분하게 여기던 차, 남인 이현기(李玄紀)·남치훈(南致薰)·윤빈(尹彬)·이익수(李益壽) 등이 송시열의 상소를 반박하여 왕의 의견을 좇으니 송시열을 파직시키고 제주도에 유배시킨 후 사사(賜死)하였다. 이 밖에 송시열의 의견을 따랐던 서인 김수흥(金壽興)·김수항(金壽恒) 등 수명이 파직 유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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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