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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 다도면 향토사 (2018)
◈ 제19장 6.25전쟁 다도양민희생자 위령비
전남 나주시 다도면은 6·25전쟁 당시 좌우 이념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주민 374명(행방불명자 포함)이 희생된 곳이다. 유족들은 가해자와 희생자 모두 역사의 피해자라며 손을 맞잡고 위령비를 세웠다. 유족회원들이 23일 주민센터 한쪽에 세워진 위령비를 바라보며 화해와 용서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1. 판촌리
김귀례, 김봉진, 〈김준채, 처〉, 김호열, 〈김복구, 처, 아들〉, 김두기, 김천석, 김동진, 김갑선, 〈김덕모, 문서순, 아들〉, 〈김영복, 처, 아들〉, 김세진, 김춘정, 김상희, 김상석, 김상선, 김호걸, 김현두, 김진수, 김봉주, 김희만, 〈김복실, 김귀정, 김일례, 김이례, 김동례, 김임자, 임기순〉, 〈김봉선, 처, 김상필〉, 〈김점조, 모친, 처, 아들, 김몽실〉, 〈김상복, 홍덕복, 김용원〉, 김천석, 김상우, 김귀순, 김귀남, 김상윤, 김종순, 김봉술, 김춘자, 김옹골례, 김시만, 김상운, 김판길, 김정수, 문단순, 박영준, 박세진, 박정순, 〈박억봉, 딸〉, 〈박야순, 임세례, 임은순〉, 박문갑, 신언수, 심매실, 양봉동, 윤기환, 〈이성례, 김이진, 김복용〉, 정석수, 채기병, 최복덕, 형시찬, 형윤옥, 〈홍의회, 홍기철, 홍기대, 김묘숙〉, 홍상필
 
2. 송학리
김귀봉, 〈김복암, 홍일순, 김이기, 김백기, 김경례, 김교순, 김경임, 〈김화복, 임대요, 임사례〉, 노모출, 노홍석, 박상석, 박종임, 〈박영현, 처, 아들, 자부〉, 박종길, 박종필, 박종규, 박태순, 박수복례, 박종진, 박주희, 〈이난임의 아들〉, 정정호, 조도남, 최수철, 최성룡, 최수봉, 〈최목보, 조도임, 최한동, 최교임, 최선교〉, 〈최병기의 부친, 모친, 여동생〉, 최복남, 최한종, 〈홍수만, 이길임, 홍기문, 홍기평, 홍기보, 홍기안〉, 〈김화선, 최병애, 최○○〉
 
3. 풍산리
김돈세, 나승재, 임대순, 임정순, 임헌재, 최종환, 최종근, 최일락, 최종기, 최종곤, 최병일, 최상락, 홍복희, 홍기만, 홍기양, 홍정희, 홍인희, 홍차식, 홍희식, 홍준희, 홍석순, 〈홍상희, 홍강희〉, 〈홍건식, 임복례, 홍오남〉, 홍기운, 홍장석, 홍방식, 홍태식, 홍성식, 홍영복, 홍기준, 홍남희, 홍기인
 
4. 덕동리
김명수, 박대규, 박양규, 박칠만, 박요육, 양정석, 〈양종태, 처〉, 양성태, 이종호, 이봉섭, 이정희, 최병수, 최병남, 〈하동복, 윤모례, 홍숙희, 홍문희, 홍방희, 홍제희, 홍권희, 홍영미, 홍주희〉, 〈홍민희, 정우현〉, 홍삼식, 홍광식, 〈홍삼희, 홍찬희〉
 
5. 궁원리
박방순, 박장원, 박장덕, 나봉운, 윤홍, 이봉화, 주근복, 최영문, 황금용, 김귀용, 김상선,
 
6. 신동리
강종필, 강원섭, 김생길, 김삼차, 김종철, 김순곤, 김용태, 김용해, 김형곤, 김혁곤, 김대술, 김용동, 김현두, 김몽실, 김종학, 김종필, 박막동, 박관순, 〈신만순, 딸〉, 이진범, 최일봉, 한고실, 김재수
 
7. 방산리
강보례, 김정남, 김준천, 김창모, 김성임, 김근식, 김근성, 김현옥, 김화선, 김만호, 김윤석, 〈김선경, 김부걸, 손계화〉, 김근의, 박귀임, 윤병호, 임광덕, 최봉록, 최병해, 최○○, 황정자, 황정용, ○성원
 
8. 마산리
〈김길중, 이정순〉, 김정근, 김순덕, 김동기, 김옥순, 김명근, 김한성, 김기철, 김한복, 서재만, 서옥순, 서재희, 서향열, 서상규, 서옥임, 서숙해, 서재경, 신일증, 염도섭, 이범식, 이옥내, 임락선, 임락춘, 정귀남, 최병남
 
9. 암정리
강대천, 김영순, 박동근, 박야문, 〈배순풍, 아들〉, 배순기, 서두천, 서일천, 서치우, 서치연, 오점순, 이아임, 이종원, 이희덕, 이용섭, 이화연, 〈정승용, 처, 정경록, 정경선, 아들〉, 정미봉, 최덕용, 최흥복, 최두경
 
10. 덕림리
강상기, 김동식, 김동태, 김근수, 김일천, 구야문, 문광오, 문우식, 〈윤갑손, 윤영선〉, 이상영
 
11. 도동리
강영찬, 강길원, 강철원, 강철주, 강성찬, 강성진, 고재일, 고재순, 고광복, 고막동, 금천택, 김진성, 김종선, 김맹원, 김종섭, 박태주, 〈손동환, 처〉, 손채공, 손치도, 양재윤, 양재순, 오춘섭, 오재정, 오재중, 오재풍, 오삼수, 홍병식
 
12. 대초리
김호열, 김서현, 서걸수, 서재경, 서홍균, 〈서상우, 서진열, 이귀예, 서재국, 서재숙, 서모양〉, 이을수, 이춘자, 이영자, 최기룡
 
13. 금천면
배재동
 
14. 완도군
〈박정남, 박인수, 이봉덕〉, 〈정영임, 최선자, 최세진, 최안숙, 최안, 최안자〉
 
[6·25 60주년]“좌-우 모두 피해자” 60년만의 포옹
 
빨치산-군경 ‘피의 보복’ 수십 년간 등돌렸던 이웃들
“이제와 좌우가 무슨 소용” 유족회 만들고 합동위령제
내달엔 위령비 제막식 열려
 
전남 나주시 다도면은 6·25전쟁 당시 좌우 이념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주민 374명(행방불명자 포함)이 희생된 곳이다. 유족들은 가해자와 희생자 모두 역사의 피해자라며 손을 맞잡고 위령비를 세웠다. 유족회원들이 23일 주민센터 한쪽에 세워진 위령비를 바라보며 화해와 용서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위령비 공식 제막식은 내달 하순에 열린다.
 
나주=박영철 기자
 
23일 오후 전남 나주시 다도면 주민센터. 널따란 공터 한쪽에 세워진 ‘육이오 동란 다도양민 희생자 위령비’ 앞에 60, 70대 노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바쁜 농사일을 제쳐두고 나온 이들은 다도양민희생자 유족회원들. “오메 우리 아부지 하고 성님 이름이 여기 있네.” 위령비 뒷면을 살펴보던 박길전 씨(70)가 손가락으로 이름을 가리켰다. 위령비에는 주민들이 6·25전쟁 당시 빨치산과 군경(軍警)에게 희생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면민 374명의 이름이 깨알처럼 새겨져 있었다. 박 씨는 “다음 달 제막식에 앞서 미리 살펴보러 나왔다”며 “희생자 이름 하나하나를 새겨 넣는 데 꼭 60년이 걸렸다”며 비를 어루만졌다.
 
○ 이념 대립 속에 희생된 양민들
 
6·25전쟁은 좌익과 우익이 대결한 이념전쟁이었다.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들은 이념 대립의 틈바구니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했다. 당시 1만5000여 명이 살고 있던 다도면은 지리적 여건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피해가 컸다. 산으로 둘러싸인 다도면은 인민군이 퇴각하면서 빨치산들의 거점이 됐다. 빨치산은 우익인사 가족을 죽창으로 찌르고 돌로 때려 죽였다. 토벌작전에 나선 군경은 무고한 주민을 빨치산 부역자로 몰아 집단 사살했다. 서로 보복이 반복되면서 마을마다 피비린내가 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됐다.
 
박 씨와 홍기축 다도양민희생자유족회장(62) 가족도 희생양이었다. 박 씨 아버지와 형은 인민군으로 위장한 경찰에게 ‘동무’라고 잘못 말했다가 현장에서 사살됐다. 홍 회장의 숙부는 반공단체 회장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와 함께 좌익 청년들에게 끌려가 야산에서 살해된 뒤 암매장됐다.
 
강미례 씨(80·여)는 군경 합동작전을 피해 산으로 올라가다가 5개월 된 아들과 시아주버니, 시누이 등 3명을 한꺼번에 잃었다. 다리와 어깨 등에 총탄 12발을 맞고 기적처럼 살아난 강 씨는 전쟁 소리만 들으면 넌더리가 난다고 했다. 그는 “업고 있던 핏덩이 때문에 내가 살았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후손들이 손잡았으니 영혼들도 화해할 것”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과 2009년 두 차례 다도면에서 진상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1950년 10월부터 이듬해 5월 사이에 104명이 좌익 인사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176명이 군과 경찰에 희생된 것으로 밝혀졌다. 유족회는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확인한 280명에 행방불명된 94명까지 포함해 위령비에 374명의 이름을 새겼다.
 
○ 용서와 화해
 
좌우익에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은 50년이 넘도록 공개적으로 거론된 적이 없었다. 그들의 억울한 죽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면서도 금기(禁忌)였다. 군경에 희생당한 유족들은 아예 입을 닫고 살았다. ‘빨갱이 가족’이란 말을 듣지나 않을까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유족들 사이에 갈등의 골도 깊었다. 6·25 참전용사인 박종백 씨(85)는 “제대하고 돌아와 보니 누가 밀고자이니 본때를 보여야 한다거나 누구 집안과는 절대 혼인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며 “이 꼴 저 꼴 보기 싫다며 고향을 등진 사람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용서와 화해의 물꼬는 5년 전 지역 유지들이 텄다. 이들은 “이제 와서 좌우가 무슨 소용이냐”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털고 가자고 유족들을 설득했다. 비극의 씨앗이 좌우익 대립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기록해 역사적인 교훈으로 삼자며 유족들과 함께 ‘양민학살 진상조사 추진위원회’를 꾸렸다.
 
이를 계기로 좌우를 아우르는 유족회가 만들어졌다. 2006년 처음으로 합동위령제를 지낼 수 있었다. 당숙 일가족 9명이 빨치산에게 희생당한 홍정희 씨(77)는 “가해자도 희생자도 역사 앞에서는 모두 피해자라는 생각에 손을 맞잡았다”며 “후손들이 서로를 용서했으니 죽은 영혼도 이제 화해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유족회는 위령비 건립을 위해 회원들에게 1000만 원을 걷고 나주시로부터 3000만 원을 지원받아 다음 달 하순 제막식을 갖는다. 홍 회장은 위령비를 제작하면서 업체에 특별한 주문을 했다. 제단 앞쪽에 계수나무 잎과 두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을 새겨 달라고 부탁했다. “계수나무 잎과 두 손은 평화를 염원하고 좌우 구분 없이 희생자 모두를 기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홍 회장은 “이념 대립으로 찢긴 마을공동체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10-06-25
 
 
 
군·경에 죽었든 빨치산에 죽었든…“서로 용서합니다”
한겨레신문 등록 :2009-11-13 19:4
 
‘한국전쟁 다도양민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열린 전남 나주시 다도면 복지회관에서 유가족들이 희생자 명단이 적힌 제단에 꽃을 바치고 있다.
 
[현장] 한국전쟁 다도양민 희생자 합동위령제
 
“군·경에 죽었든, 좌익한테 당했든 다 억울한 희생자들입니다. 동병상련하던 유족들이 희생자들의 원혼을 합동으로 달래고 화해에 앞장서기로 했어요.” 13일 오전 11시 전남 나주시 다도면 신동리 다도복지회관. 희생자 300여명의 명단을 촘촘하게 써넣은 검은 신위 앞에서 ‘한국전쟁 다도양민 희생자 합동 위령제’가 열렸다.
 
58년 전 토벌대와 빨치산의 손에 가족을 잃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었던 주민 200여명이 제단에 줄지어 하얀 국화 송이를 바쳤다. 정면의 신위에는 10여개 마을마다 20~30명씩 희생자의 명단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10여가구에 이르는 일가족의 이름이 보였고, 너무 어리거나 신원을 찾지 못한 듯 ‘이안님의 아들’ ‘홍씨’ ‘김ㅇㅇ’ 같은 미완성 신위도 들어있어서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날 행사는 전국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면 단위 좌·우 합동 위령제란 점에서 특히 눈길을 모았다. 유족들은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당시 희생자가 280명에 이른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자 이념과 가해자를 가리지 않고 합동으로 위령제를 열기로 했다.
 
안병욱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다도면에서는 군·경이 젖먹이를 업은 부녀자를 사살하기도 했고, 빨치산이 우익인사들의 가족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도 했다”며 “60년이 다된 시점에서 참상을 입에 올리는 것이 유족들한테 송구하고 부끄럽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강희락 경찰청장도 대독한 추도사에서 “비록 전쟁 시기였으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참상을 빚은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홍기축 유족회장은 “이제는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희생자의 뜻”이라고 말했다. 총탄 12발을 맞고도 기적처럼 살아난 김미례(79·나주시 다도면 송학리)씨는 “토벌대의 기관총에 핏덩이 아들을 비롯해 시아제·시누이 등 3명을 한꺼번에 잃었다”며 “이 땅에 나같은 불행한 사람이 없도록 전쟁만은 막아야만 한다”고 당부했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다도면 일대에서는 1950년 10월~1951년 5월 사이에 176명이 군·경에 의해 희생됐고, 104명이 좌익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겨레 신문 나주/안관옥 기자
 
 
한국전쟁 나주시 다도양민 희생자 위령비 374명 명단
 
한국전쟁 나주시 다도양민 희생자 위령비 374명 제막(2010년 6월)
 
한국전쟁 다도양민 희생자 65주기 합동위령제(2016.10.21.)
 
 
 
 
 
 
나주군 다도면 일대 소탕전 지도
 
11사단 20연대 3대대는 1950년 12월 22일에는 나주군 다도면 판촌리 고마․동판마을에서 토벌작전을 벌이며 주민들을 향해 마구 총질을 하였다. 나주에서도 많은 민간인 학살 사건이 있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1951년 1월 20일 20연대 2대대의 세지면 동창교 학살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60년 5월 24일자 <전남일보>의 보도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신문기사는 “1951년 1월 20일 낮, 영산포 쪽에서 국군 화랑부대(11사단) 1개 중대가 입성하여 약 200명의 남녀노소를 동창교 밑 만봉천 개천가에 모아놓고 군경가족을 제외한 뒤 청장년 138명을 골라내 사살하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함평 학살 사건에서 악명을 떨친 권준옥 대위가 지휘한 20연대 2대대 5중대였다.
 
1951년 3월 19일에는 나주군 다도면 도동리 척동마을과 신기마을 주민들이 군의 빨치산 토벌과정에서 죄 없이 학살되었다. 그밖에도 여러 곳에서 경찰에 의해 토벌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 <미군폭격 피해>
 
나주지역에서는 국군이 빨치산 토벌작전을 벌이던 시기에 미공군의 폭격에 의한 주민 피해도 있었다. 1951년 1월 20일 나주 다도면 덕림리, 도동리, 방산리 주민들이 국군 11사단 20연대와 합동작전을 펴던 미 5공군 18전폭전대 소속 전투기 4대에 의해 폭격을 당했다. 당시 전투기는 마을 주택과 주민을 목표로 정확히 폭격했다. 이로 인해 10여 명의 주민이 피해를 입은 사실이 확인되었을 뿐 더 이상 조사되지 않았다.
 
(나주지역에서 경찰·군인·미군에 피해를 당한 나주 양민은 다음과 같다.)
 
【향토】 다도면 향토사 (2018)
• 제18장 국립나주박물관
• 제19장 6.25전쟁 다도양민희생자 위령비
• 참고문헌
(2018.07.11.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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