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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임실문화원의 지식창고 강명자의 성수산이야기
저작물 (목치)
【소설】 강명자의 성수산이야기
◈ 2. 토굴을 찾아
경칩이 지나고 봄이라지만 냇가에는 아직도 살얼음이 마른풀에 매달려 있고 음지에는 듬성듬성 서릿발을 세우고 공격 자세의 창날 같았다. 살얼음 밑으로 물은 흐르고 개 버들가지마다 봄눈을 그득하게 달고 있었다. 버들강아지가 뿌옇게 피어나 봄소식을 전할 날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 토굴을 찾아가다.
 
 
경칩이 지나고 봄이라지만 냇가에는 아직도 살얼음이 마른풀에 매달려 있고 음지에는 듬성듬성 서릿발을 세우고 공격 자세의 창날 같았다. 살얼음 밑으로 물은 흐르고 개 버들가지마다 봄눈을 그득하게 달고 있었다. 버들강아지가 뿌옇게 피어나 봄소식을 전할 날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잘 아는 상이암 주지스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성수산 구백 오 고지 능선아래에 이상한 바위가 있는데 마치 어떤 형상을 닮았다는 것이다. 그 바위에 글씨 비슷한 것 같은 형태가 있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연락을 드린 것이니 언제라도 날 풀리면 한 번 다녀가라는 말씀이었다. 소승이 견식이 짧아 잘못 볼 수도 있는 것이니 너무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좋은 정보를 주셔서 고맙다며 조만간 시간 내어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혹시 암각서나 암각화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있다면 그 바위에 누가 어떤 글자를 어떤 연유로 새겼는지 궁금증이 발동하여 생각이 시시때때로 일어났다. 번뇌 망상이라더니 전화를 받고부터 궁금증이 잡초의 뿌리처럼 일어나 조급증을 부추겼다.
 
겨울 몽골오지기행 기획으로 정초에 지인들과 열흘간 몽골 차탕족 취재를 다녀왔었다. 몽골에서도 북쪽 해발 삼천이백미터 고지에서 순록을 기르며 거주하는 차탕 족 은 영하45도의 혹한 속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이었다. 러시아 최북단 쪽의 북극 유라시아민족과 몽골민족이 섞여 함께 살고 있어서 어느 나라 혈통이라고 말 할 수도 없는 그런 소수부족이었다. 영하 40-45도에서 열흘간이란 상상을 초월한 추위였지만 혹한에 아무나 쉽게 갈 수 없는 그런 세계를 접하고 온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독하면 그 혹한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인가 스스로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탕 족의 삶을 취재하여 한동안 두문불출하고 원고에 몰두하느라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있었다. 바로 초안을 잡아놓지 않으면 선명한 기억이 흐려지면 생생하게 쓸 수가 없어 바삐 서둘러 작성을 하고 있었다.
 
연일 우울증 환자처럼 고루지 못한 날씨가 며칠간 발동을 하더니 차츰차츰 봄바람이 잦아들었다. 뜰 안에 잡초들이 땅을 밀고 올라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먼 들판에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울도 담도 없는 집 근처에 텃새들이 서로 좋은 터를 찾느라 연일 불협화음으로 쫑알거렸다. 철쭉나무 정원은 온통 텃새들의 집합체로 그들의 낙원이 되어버렸다. 때로는 이곳이 안전한 곳이라고 판단했는지 따뜻한 오월이면 우체통 안에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를 때도 있었다.
 
도반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지스님이 말씀하신 바위는 아직 이렇다 할 전 후 사정을 모르지만 어차피 다녀올 것 같으면 전문가와 동행하여 여러 면모를 살피며 조언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평소 뜻이 잘 맞는 도반에게 스님과 나눈 전화 내용을 전하며 일단은 답사차원으로 가는 것이니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등산 한 셈 치고 한번 다녀오자고 제안을 했다. 도반은 기다렸다는 듯이 흥미 거리를 찾는 중이라며 무조건으로 동행하겠다고 주저 없이 대답을 했다. 도반은 금석문에 견문이 넓고 지식이 해박한 역사학자로 지역에서는 금석문 전문가로 알려져 있었다.
 
 
방송국 일기예보는 세상에 어지러운 뉴스로 좀 더 일찍 봄을 끌어당기지 못했다. 산란한 눈보라로 사방을 한바탕 휘감아 내팽개치더니 잠잠해졌다. 봄 산에 눈 녹듯 한다더니 햇빛에 눈이 녹아내리고 음지에만 잔설이 남아 있었다. 음지토끼, 양지토끼 이야기가 떠올랐다. 양지쪽에 사는 토끼는 음지만 바라보니 굶어죽고 음지쪽에 사는 토끼는 양지를 바라보니 눈이 녹아있어 굴속에서 튀어나와 먹이를 찾아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다. 그냥 우스게 소리로 한 말 같지만 산짐승들의 생존 법칙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늘 성수산에 가자고 도반에게 연락을 했다. 나는 일찍이 성수산 아래에 터를 잡고 산지 40년이 넘었다. 도반은 거주지가 인근 도시에 있어서 만나기까지는 한 시간쯤 걸렸다. 금석문에 문외한인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필요할 것 같은 여러 도구를 챙겨 배낭에 넣고 약속 장소에서 도반을 기다렸다. 도반도 성수산을 익히 잘 알고 있어 길을 찾아오는 데는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 소재지에서 성수산 주차장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20분 쯤 걸려 주차장에 도착을 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초입부터 얼음이 곳곳에 남아 있어 더 이상 자동차를 끌고 갈 수가 없었다.
 
주중이라 그런지 주차장에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며칠 전 미친 듯이 날린 진눈개비로 온 산이 눈으로 덮여 설경을 이루고 있었다. 봄눈이라 오래가지 못하고 봄눈 녹듯 녹아내리고 있지만 곳곳이 얼어있었다. 평소에도 겨울 등산객들이 많이 오는 편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다닌 흔적은 없고 간간이 산 짐승의 발자국만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도반은 미리 산 형편을 잘 알고 온 것처럼 산행준비가 완벽해서 산길을 걷는 데는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별 무리가 없어보였다. 산 아래 마을에 있을 때와는 달리 상당히 추웠다. 냉기를 머금은 찬바람이 골짜기를 휘몰아치고 있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이리저리 골짜기 바람을 피하며 걷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고 날씨가 거칠었지만 산행하기에는 적당했다. 암자까지는 주차장에서 한 시간 이상 걸어야 하는데 곳곳이 얼어 있어서 조심스러웠었다. 주차장 뒤쪽은 햇볕이 드는 양지였다. 햇빛이 강 금 바위에 부딪쳐 빛나고 있었다. 강 금바위는 실제로 금이 묻어 있었다고 한다. 강 금 바위는 눈이 녹아내리면서 바위면 전체가 젖어 있었다. 예전에 노거수 조사 하러 왔을 때 이 지역에서 평생 잔뼈가 굵어진 어른들이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해 준적이 있었다. 들은 대로 도반에게 설명을 했다.
 
“그때 이 생암산 강 금 바우에 금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졌제.”
 
"일제 때구먼, 바우에 누런색깔이 묻어 있응게 왜놈들이 조사를 혔지, 그런데 금 성분이 있다는 거여,”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동원해서 바우를 긁었제, 일당 준다고 헝게 서로 헐라고 야단이었제, 그런데 얼마 못가서 폐쇄 되고 말았어,”
 
“왜요.”
 
“금가루를 긁었는디 금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고 금 성분도 좋지 않아 얼마 못가서 작업을 그만 두었제,”
 
“그리고 생암산에 왕뱅이, 원증이로 너와독도 많아서 너와 독도 떠서 팔았제, 구들방에 방독을 놓을 때 너와독이 필요했거든,”
 
“지금도 그때 떴던 너와독 채취장이 그대로 남아있어,”
 
왜놈들이 금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들었다며 씁쓰레한 웃음으로 대신했다.
 
궁금증이 발동하여 생암산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물었다.
 
“ 그런데 성수산을 왜 생암산이라고 하고 상이 암을 왜 생암이라고 했어요.”
 
“우리도 어른들에게 들었제,”
 
고려전에 왕건이 도선국사를 따라 생암산에서 백일기도하는데 관음보살이 현신하여 와이 되라고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더구먼.”
 
그리고 그 유명한 이성계도 무학대사를 따라와 생암산에서 백일기도하여 왕이 되라는 소리를 듣고 가서 조선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언제 적 이야기인지 몰라, 우리 윗대, 그 윗대들이 전해줘서 우리도 알고 있는 거제.”
 
“우리 어려서도 생암산 생암으로 알고 살았는데 성수산이라고 하더구먼, 우리는 지금도 생암산 생암이라고 혀야 알아들어, ......”
 
마을 어른들은 하나같이 생불이 나온 절이라고 지금도 생암산 생암이라고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지역 사람들이 성수산을 생암산이라고 말했다. 상이 암을 생암 절이라고 했었고 생암산 절에 모셔진 부처는 생불이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부처가 있었단 말인가. 생암, 생불은 수백 년 전에 두 왕조에게 관음보살이 현신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살아있는 전설로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지금도 강 금 바위 표면에 누런 빛깔의 가루가 묻어 있는 것처럼 보여 아는 사람들은 한 번쯤 의심을 품어 볼 수 있는 그런 바위였다. 도반은 아직도 금가루가 바위에서 생성되어 나온다면 누가 그냥 두었겠냐며 헛소리 말라며 웃었다.
 
 
오색단풍 길로 접어들자 산과 산이 밑동으로 겹쳐져 있고 봄이라 하지만 겹친 그늘이 냉습해서 얼음이 더디 녹고 있었다. 계곡 건너 쪽에 생강나무가 몇 그루 듬성듬성 있었다. 저렇게 많은 꽃망울을 올망졸망하게 달고 있어 꽃이 피면 이 산이 꽃등처럼 환해질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았다. 고드름을 방패 창처럼 달고 있는 나무들이 뾰족한 잎눈을 밀어 올리고 온통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숲은 생동감이 느껴졌다. 간간이 산길에서 낙엽이 부스럭 거렸다. 작은 산짐승이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산 중턱 절벽에서 크고 작은 돌덩이가 굴러 떨어졌다. 누가 떠미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굴러 내렸다. 산길은 겨울보다 봄이 더 위험했다. 해동이 되면서 얼음에 지탱하던 돌무더기와 흙덩이가 굴러 내렸다.
 
 
사근리 한 모퉁이에 한줌의 햇살이 들이치는 양지바른 곳은 일찍이 앉은뱅이 양지꽃이 피어있고 별싸라기 꽃이 피어 봄을 알리고 있었다. 조릿대가 울타리처럼 길게 이어진 계곡에는 투명한 얼음장 위로 산죽 잎에 하늘도 베일 것 같은 푸른 서슬이 배여 있었다. 숲이 비워둔 자리에는 겨울이 차지하고 쪽 동백은 노란꽃물을 머금고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수산은 대처보다 봄이 늦다. 산길 중간 중간 사이 양지쪽에 마른 나뭇잎 사이로 복수초가 듬성듬성 피어있었다. 속세에 개나리,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고 지고 나뭇가지에서 잎눈이 터질 무렵쯤에야 진달래가 피기 시작한다. 성수산은 협곡으로 산이 첩첩하여 양지보다는 음지가 많은 산이다. 하루 종일 햇빛이 들지 않는 응달에는 잔설이 오랫동안 남아있어 대처보다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아홉 개의 산문이 서서히 깨어나는 첩첩산중이다. 사근리는 상이암 절이 가깝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흙보다 바위가 더 많은 산이지만 오래전에는 흙을 더 많이 가진 육산이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풍마우세로 흙더미가 모두 아래로 밀려나가 산 아래는 평지가 되고 산에는 바위와 돌덩이만 남아 암산으로 변했을 것이다. 길 옆으로 군데군데 바위와 나무 밑 둥에 습한 이끼가 얼음을 덮고 있었다. 나뭇잎이 덮여 쌓인 구덩이의 흙을 살펴보았다. 파헤쳐진 채로 죽은 채로 이끼가 나무 밑 둥의 흠집을 덮고 새 생명을 키우고 있었다. 이끼 속에는 다람쥐들이 가을 내 물어다 숨겨둔 상수리 열매가 오골 오골 쌓여있었다. 다람쥐들은 부지런한 근성이 있어 무조건 많이 물어다 여러 곳에 묻어두기 때문에 때로는 식량창고를 찾지 못할 때가 있다. 다람쥐들이 이곳을 찾지 못하면 상수리들은 새순을 올리고 성장하여 이 산이 울울창창하게 숲을 이룰 것이다. 길 건너편 꽃 밭쟁이에 햇빛 한 줌이 모여 있었다. 앞산 봉우리가 낮아 이 산에서 가장 햇빛이 오래 머문 곳이다. 못에서 희뿌연 낮달이라도 떠오를 것 같았다.
 
 
석문동 골짜기가 방향을 틀어 달아나듯이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다. 골짜기에 박혀있는 바위들은 맥을 이루지 못하고 꼭대기나 산허리 난간에 간신히 붙어 있어 굴러 떨어질듯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박혀있어 산을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를수록 골짜기는 퍼져나가지 못하고 좁혀들었다. 돌아선 골짜기마다 칼로 쳐내듯이 바위가 드러났다. 제 멋대로 박혀 기기묘묘한 풍경으로 인간의 시선을 퉁겨 냈다. 거기에 냉기 진물이 흘러서 햇빛을 받을 때 오히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산과 산이 겹치는 언저리가 차고 축축했다. 물길은 수계를 가늠할 수 없이 난잡하고 산을 조여 오듯이 바짝 달려들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생멸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따사로운 봄볕이 아낌없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대지의 깊은 곳에 뿌리를 숨기고 있는 초목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피어나 산하를 푸르게 할 것이다. 생과 멸이 순환하면서 생명을 다시 창조하듯 텅 빈 숲에 또 다른 생명이 움트고 자라고 있어 숲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충만감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 만물들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며 인내하고 있는 것이다. 산기슭 골짜기에는 동안거에 들지 못한 소나무 숲이 시린 하늘을 머리에 두른 채 이미 선정에 든 고승처럼 미동이 없었다.
 
이 산길은 오래전에 오가던 불자 수행자들이 고행을 하면서 번뇌 망상과 싸우면서 수없이 송곳으로 번뇌의 마음 밭을 후벼 파냈을 것이다. 번뇌를 끊고 열반의 깨달음을 얻어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 길을 지금도 많은 범부중생들이 부처가 되기를 갈망하고 악업이 정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길을 평생 걸으며 고뇌하고 있는 그런 길이다.
 
가파른 산허리를 돌고 돌아 산문 근처에 들어섰다. 그 머나먼 구름 재와 연화 봉 정상 가는 길로 두개의 길이 나누어졌다. 상이 암은 연화 봉 가는 길 쪽으로 안내표시가 되어 있었다. 사백 미터를 앞두고 급경사가 시작 되었다.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더 힘들고 지친 길이었다. 두 번 경사 고비를 넘겼는데 위에서 두 갈래 길이 다시 나타났다. 한쪽은 돌계단이고 한쪽은 시멘트로 포장한 콘크리트였다. 어느 길로 가더라도 절 마당에서 만나는 길이었다. 오를 때 옛길을 선택했다. 돌계단은 천 년 전에도 그 자리에 있었던 돌 덩이었다. 돌계단을 오를 때마다 항상 옛 사람들이 그리웠다. 천 년 전에 왕 건도 이 돌덩이에 발을 디디고 걸었고 육백년 전에 이성계도 이 길을 걸었고 또 수많은 수행자와 명사들도 걸었을 것이다. 그 중에 지금 내가 이 길을 걷고 있어 나도 그들 속에 한 축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 당시 쉽고 편하게 올수 있는 암자라면 누구라도 와서 득도하지 않았겠는가. 오르면서 번뇌를 모두 내려놓지 않고는 무거워서 오를 수가 없는 곳이었다.
 
 
절 앞에 다다르자 입구에 일주문처럼 바위가 대신하고 화백나무가 사천왕처럼 버티고 있었다. 암자는 화려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은 겨울나무처럼 단아했다. 절 안까지 도착하는데 한 시간 이상 시간이 소요되었다. 암자는 인기척이 없고 풍경소리가 객을 반겨주었다. 풍경소리가 중생의 업보를 쓸고 있었다. 풍경소리 말고는 절 안이 고요했다. 승방 굴뚝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바람이 한바탕 쓸고 간 뒤여서인지 나무 타는 냄새가 절 마당에 낮게 깔리고 있었다. 화백나무 아래 평상에서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화백나무의 수형이나 흉고의 형태를 보면 수 백 년쯤은 되어 보였다. 털신 한 켤레가 승방 앞에 건조하게 놓여 있었다. 한참동안 평상에 앉아 승방의 기척을 기다렸지만 굴뚝엔 연기만 솟아오를 뿐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이따금 쇠망치와 돌이 부딪치는 금석성 소리가 차가게 들렸다. 금석과 암석이 서로 부딪치는 단 발마 소리가 골짜기로 스미면서 사라졌다. 안에서 기척이 없어 소리를 따라 가만가만 발길을 옮겼다. 법당과 거리가 떨어진 해우소 뒤쪽에서 스님이 티셔츠 바람으로 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바위 사이에 철근으로 기둥을 세우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가시철망을 치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마치 삼매경에 든 고승처럼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우리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 후에 인기척에 놀랐는지 스님은 고개를 들어 하던 일을 멈추고 합장으로 인사를 했다. 이 추운 날에 얼굴에는 땀이 흠뻑 젖어 있었다. 손님이 왔는데 계속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하던 일손을 멈추었다.
 
도반이 물었다.
 
“지금 뭐 하십니까.”
 
울도 담도 없는 절간에 철망을 치냐고 그 이유를 물었다.
 
스님은 목에 감고 있던 수건을 풀어 땀을 닦으며 철조망을 치는 일에 대해 일에 성과를 보고라도 하듯이 설명을 했다.
 
“이 산에 염소가 참 많습니다. 마당까지 들어와 배설을 하고 난리를 칩니다. 그래서 못 들어오게 하려고 염소가 잘 다니는 이곳에 철조망을 치고 있습니다.”
 
“이 절에서 염소를 키웁니까.”
 
“아뇨, 산 넘어 염소목장에서 울타리를 빠져나온 염소들이 이 산에 아주 많습니다. 산이 워낙 방대하여 주인도 어떻게 잡을 수가 없어 그냥 방치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절 마당으로 들어와 난리를 칩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내려와 석조에서 흐르는 물에 손을 씻으며 말을 이어갔다.
 
석조 옆으로 마모되어가는 글씨가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자연석을 쪼아 파내어 만든 석조는 ‘황태윤이 시주함’이라고 쓰여 있었다. 연대가 이백년이 넘은 석조였다.
 
“혹 산신각이나 칠성각 문이 바람에 열리기라도 하면 큰일 나지요. 한 번은 염소들이 과일냄새를 맡고 열려있는 칠성각에 들어가 촛불을 넘겨서 바닥에 깔아놓은 카팻에 불이 붙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화학물질이 타는 냄새가 나더군요. 제가 이렇게 생겼어도 예민합니다. 불길한 생각이 들어 법당 문을 열어보고 이상이 없어 다시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았더니 칠성각에서 염소들이 튀어 나오는 거예요. 양동이에 물을 채워 달려갔지요. 불자들이 올려놓은 과일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카펫에 불이 붙어 타고 있었어요. 제가 빨리 발견하여 화재로 번질 번한 불을 잡았지요.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불자들이 나오면서 문을 잠그면 되는데 모두 잊고 그냥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바람이 불면 문이 저절로 열리지요. 종교시설이라 불자들이 수시로 드나들기 때문에 계속 잔소리 할 수도 없고 그렇습니다.”
 
스님은 철망을 치는 이유를 조리 있게 설명을 잘 했다.
 
스님은 우리를 보고 어떤 일로 여기에 왔는지 물었다.
 
절간이라 중생들이 수없이 다녀 갈 테지만 우리의 행색을 보고 불자가 아니라는 것을 감지했는지 여기까지 온 연유를 물었다. 나는 스님이 궁금해 하는 표정을 보고 주지스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중이 절에 있지 어디 가겠습니까. 아무 때라도 오시오. 하셔서 주지스님의 말씀을 듣고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왔습니다.”
 
이곳에 온 이유를 이해 할 수 있도록 알아듣게 말했다.
 
“혹시 주지스님 계십니까?”
 
“예, 주지스님은 만행 가셨습니다. 자주 나가십니다. 언제 오실지는 저도 모릅니다. 주지스님은 그 흔한 핸드폰도 없어서 연락 할 길도 없습니다. 아날로그시대를 살고 계십니다. 만행을 가시는 날 오시는 날은 스님 맘입니다. 한 번 가시면 일주일 또는
 
열흘 만에도 오십니다. 암자는 주로 제가 기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대로 나오겠지만 스님은 절 생활에 길들여지지 않은 투박한 말투였다. 이 절에 익숙하지 않은 객승처럼 보였다. 목으로 올라오는 힘줄이 뚜렷하게 도드라져 있고 얼굴에는 아직도 절간에서 불필요한 근육과 지방질이 많이 붙어 있었다. 절 생활이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이 몸에서 저절로 풍겨졌다. 젊은 스님은 처음 인상과는 달리 싹싹하고 친절했다. 어눌해 보였지만 말솜씨가 있어 보였다.
 
절에서 수행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절간 도량을 깨끗이 정화하는 잡일을 업으로 하는 수행도 있고 공양 간에서 평생 음식을 다루기도 하고 절 살림 제정을 맡는 일도, 탁발수행도, 참선수행도 그밖에 다른 방법으로 수행하는 길은 많다고 했다. 각자 행자시절에 절간 생활을 모두 배우고 익혀 본인에게 맞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법명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 저는 객승입니다. 떠돌이 중이지요.”
 
“아!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이 암자 근처 어딘가에 기이한 바위가 있고 글씨가 있다는데 아십니까?
 
“아! 예, 뭐라더라, 산 정상에 있다는 그 바위말씀인가요?”
 
“네, 성수산 어딘가에 기이한 바위에 글씨가 있다하여 답사하러 왔습니다.”
 
객승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계곡을 타고 한 시간 정도 가야 한답니다. 저는 지난 가을에 이 절에 와서 아직 이 산의 속속들이 내용을 잘 모릅니다. 사실 저는 바위 말만 들었지 가 보진 않았습니다. 주지 스님께서 말씀 나누다가 이야기 하셔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아마 구부 능선쯤에 있다고 하셨고 길이 험하다고 하시던데요. 몇 년 전 태풍으로 산사태가 크게 나서 바위가 굴러 내려 길의 흔적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혹시 그 바위에 가서 무슨 기운이라도 받으려고 오신 겁니까? 그 바위가 영험하다고 가끔 무속 인들이 찾아간다고 하던데요.”
 
객승은 앉아서 천리를 보는 것처럼 암자 뒤로 계곡을 가리키며 마치 그곳을 실제 다녀온 것처럼 실타래 풀리듯이 이야기를 실감나게 잘 했다. 스님이 아무리 쉽게 설명을 해도 그곳의 풍경이 그려지지 않았다. 객승의 말만 듣고 바위를 찾는다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객승이 위치를 모른다고 미리 심지를 박아서 동행을 요청 할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승이 거짓말을 할 거라고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객승은 뜨내기별처럼 떠돌다가 지난겨울에 이 암자에 들어오게 되었다며 아직은 암자 주변을 잘 모른다고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바람이 불면서 승방 문이 열렸다 다시 닫혔다. 객승은 날이 차니 안으로 들어가서 차 한 잔 마시자는 말을 건네고 먼저 승방으로 들어갔다. 몽골 취재 때 영하 45도에서 열흘간 지내면서 냉병이 들었는지 등에서 식은땀이 자주 올라왔다. 그렇잖아도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들었는데 차 한 잔 마시자는 제안이 싫지 않았다. 승방으로 안내한 객승은 다기를 챙기며 전기주전자에 물을 붓고 스위치를 눌렀다. 차가 들어있는 봉지를 들어 보이면서 아껴 마시는 좋은 차라고 설명을 했다. 억양이 저쪽 큰 산 너머 말투이며 안면이 강한 이미지였다. 차를 준비하는 동안 침묵으로 조용했다. 나는 막간을 이용하여 객승에게 질문을 던졌다.
 
“스님, 언제부터 산문에 들어오셨습니까,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 절간생활은 견디기 어렵지 않으십니까. 온갖 번뇌 망상으로 힘들 때 구도자의 길 때로는 포기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수행 자체가 삶의 고행이 아닐까요. 아직 속가 나이 춘추인 것 같은데 절해고도 같은 산속 암자에서 공부하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까?”
 
객승은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중으로 삽니다. 또 언제 이 암자를 떠날지 저도 모릅니다. 떠돌다 떠돌다가 언젠가는 깨달음이 오면 그때는 열반공부를 하겠지요. 평생 깨닫지 못하고 떠돌다가 갈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방랑기를 스스로 제어 할 수 없다면 평생 중생을 면치 못할 거라는 말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사이 주전자 물이 조릿대를 쓸고 간 바람소리를 내며 끓어올랐다. 객승에게 더 이상 말을 거는 것은 그에게 눌려진 망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 말을 아꼈다. 따뜻한 차를 대접받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면서 엉뚱한 말로 불편을 준 것 같아 얼른 말을 돌렸다.
 
“큰스님이 스님을 신뢰하니까 암자를 맡기고 만행을 가신 것 아닐까요?”
 
객승은 말 대신 미소로 대답을 했다. 객승은 철망 치는 작업을 마쳐야 한다며 잘 다녀오라는 말을 하고 헤어졌다. 객승이 알려준 대로 바위를 찾아 나섰다.
 
 
초행길이라 시작부터 터덕거렸다. 객승이 손가락 끝을 이리저리 저으며 알려준 길로 접어들었다. 초입에서는 마른풀과 넝쿨들이 땅에 드러누워 있고 낙엽은 조금씩 남아있는 얼음덩이를 덮고 있어 자칫하면 미끄러워 넘어질 수도 있었다. 겨우 내 얼어있던 이끼들이 해동이 되면서 물을 머금고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숲은 막 태어난 가축새끼처럼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길들이 지워지고 산 짐승들이 다닌 길만 나 있었다. 숲에서 부엽토 냄새가 진동했다. 봄물이 나목들에게 퍼져 붉은 멍 빛이 들었다. 이파리가 떨어진 칡덩굴들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사슬처럼 묶어서 마치 짐승을 잡는 올가미를 걸어놓은 것처럼 사방에서 조여들어 뚫고 들어가는 것조차 난감했다.
 
 
칡덩굴은 걸을 때마다 위 아래로 복병처럼 발목을 휘어 감았고 햇빛이 들어앉지 못한 계곡의 바위는 몇 겹의 이끼가 거적처럼 덮여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발을 다칠 수도 있었다. 얼기설기 걸쳐진 덩굴을 걷어내며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한 무리의 검은 짐승들이 몸을 숨기며 부스럭거렸다. 등골이 서늘했다. 검은색 털을 가진 염소 떼였다. 염소 떼는 저만치 물러서서 경계 태세였고 마치 전쟁터에서 군사들을 작전에 배치하듯 사방으로 움직였다. 한참동안 서로 견제하면서 주시를 했다. 우리가 저희들을 헤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는지 오던 길을 되돌아 어디론가 흩어졌다. 도반은 연배가 있어서인지 산중에서 짐승을 만났는데도 당황하지 않았다. 나는 폴더 폰처럼 키를 반으로 줄였다. 키가 작아도 굽히지 않으면 덩굴에 목이 감겼다. 산속에서 시간은 대처보다 더 빨랐다. 산그늘이 빠르게 그늘장막을 치고 들어와 이대로 더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객기부리다가 길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허공은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해가 들지 않은 산속이라 어둠이 빨리 찾아들었다. 덩굴들이 올가미처럼 느껴졌고 불쑥불쑥 나타나는 바위들은 덩치 큰 짐승들처럼 보였다. 객승이 알려준 방향을 따라 길을 더듬어 나갔으나 중간쯤에서 갑자기 계곡이 세 갈래로 나눠지면서 종잡을 수가 없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은 수도 없이 많이 있지만 기이한 바위는 찾을 수가 없었다. 본격적인 조사도 아니고 일단 장소를 찾는 예비답사쯤으로 나서기는 했지만 우리는 초행길이었고 안내자가 없다보니 난감했다.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분간할 수가 없었다. 도반은 이곳 사정을 잘 아는 안내자와 다시 한 번 더 와야 될 것 같다고 제안을 했다. 더 진행을 한다면 산에서 길을 잃을 것 같은 상황을 감지하고 하산하여 절 마당으로 들어왔는데 아직 오후 해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산속에서는 해가 지고 있었다. 아직도 세상을 헤매며 믿음이 부족하여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속에 초행길의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어 조바심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오던 길을 되돌아오는데도 방금 지나왔던 길이 아닌 듯 낯설었다. 숲을 벗어나면서 조금씩 빛이 밝게 드러났다. 부도 전 앞에 당도 했을 때 그제서야 안도감이 일어 다리에 힘이 빠졌다. 말은 안했지만 불안했다. 굶주린 산짐승이라도 만나면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더 두려웠을 것이다. 무량수전 추녀 끝 풍경이 뎅그렁거렸다. 밖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절 마당을 나올 때까지 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봄은 참으로 열정적이다. 해동이 되면서 흙속을 뚫고 꽃대를 밀어올린 복수초가 아직은 날선 서릿발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나무 끝으로 바람이 지나가고 구멍이 숭숭 뚫린 숲속에는 물안개가 멈칫멈칫 길을 잃고 허둥거렸다. 땅속 깊은 곳의 수맥을 더듬으며 몇 세기를 돌고 돌아 지상으로 오르는 물처럼 봄은 그렇게 오고 있었다.
 
 
봄바람이 알싸하니 코끝에 머무는데 그 속에 산죽냄새가 섞여있었다. 산에서는 새들이 지저귀지 않으면 적막강산이다. 새소리는 살아있는 생명이었다. 겨울동안 어디에서 추위를 피하고 왔는지 절 주변에 텃새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가장 안전한 곳에 둥지를 틀기위해 이곳저곳을 살피며 부지런히 넘나들고 있었다. 가장 흔한 텃새 직박구리는 울타리나 키 작은 나무아래를 터전으로 모여 살아가는 예민한 종류의 새다. 무리지어 살면서 먹이를 찾고 위험하면 울음소리로 동료를 부르고 한꺼번에 날아서 몸을 숨긴다. 우리 곁에서 새소리가 사라져버린다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팍팍하고 건조할 것인가. 새소리는 단순한 자연의 소리가 아니라 생명이 살아서 약동하는 아름다운 음악이다. 봄이 태동하는 숲에서 초목들의 풋풋한 냄새가 풍겼다. 숲에서는 번거로운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은 홀로 있도록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홀로 있을 때 무심을 익히면서 풀 향기 같은 잔잔한 기쁨을 누릴 때가 있는 것이다. 해가 뜨기 전 미명 속에서 그리고 해가 기운 뒤에 고요를 즐길 때 마음이 한적하고 편할 때가 있는 것이다.
 
 
생암산 자료가 필요해서 암자에 올라갔는데 절 마당에는 사람들이 여럿이 있었다. 스님에게 눈인사만 전하고 한쪽에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 중 몇 사람이 여의주 봉(향로봉?)으로 올라갔다. 바위에 걸터앉아 말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은 잠깐사이에 절 마당으로 내려와 스님과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비가 그친 뒤라 마당 평상이 젖어있었다. 승방으로 들어가서 차를 마셨다. 스님은 손님들 이야기를 했다.
 
“이곳은 왕들의 기도처로 잘 알려져 있어서 상이암 소문 듣고 가끔 정계에서 와요. 야망을 가진 자들이 꿈을 이뤄보려고 살짝 다녀가는 거지요. 삼청동 글씨가 새겨진 비를 보려고 많이 다녀갑니다. 서울에서 많이 옵니다. 방금 다녀간 분 혹시 아시니까. 그분은 다음대권에 출마할 꿈을 갖고 있는 분입니다. 긍게, 장관, 국회의원, 시장 출마할 의양이 있는 분들이 오지요. 각자 그 꿈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뤄지기를 바래야지요. 그게 중들이 할 일 아닙니까. 허 허 허......”
 
“두 왕조의 기도처가 흔하지 않지요. 이만한 기도처는 기도하는 당사자가 하심일 때 관음이 보여 지고 진심이 하늘에 닿을 때 비로소 뜻이 이뤄지는 거지요.
 
그냥 절 문안에 발만 들여놓았다하여 뭔가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불전에 보시를 많이 했다고 소원 들어주는 게 아니지요. 왕건과 이성계 왕이 삼업을 깨끗이 하고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릴 때 보여주는 것이지요.”
 
나는 상이암 사적기를 한 번 보려고 왔다고 말을 했다. 의심도 없이 보여주겠다면서 상자하나를 벽장에서 꺼냈다.
 
“긍께, 임진왜란, 동학혁명, 항일의병,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때 등 여러 번 재화를 입어 본 사적기는 소실되고 다시 쓴 겁니다.”
 
왕건이 궁예를 피해 잠깐 은둔했던 행적을 찾았다. 두 왕조는 피하지 않으면 안 될 필연적인 상황에서 생암을 찾아온 이야기가 것이 확인되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산을 내려왔다.
【소설】 강명자의 성수산이야기
• 1. 왕의숲 지명찾아
• 2. 토굴을 찾아
• 3. 탁본
(2023.12.2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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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