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산중대화 2
주지스님은 평소 일에 쫒기지 않고 그 일 자체를 삶의 여백으로 즐기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중노릇이 쉬운 줄 알고 찾아온 청년들이 많습니다. 중노릇 팔자는 물론 타고난 성품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욕만으로 중이 되겠다고 달려드는 청년들이 더 많습니다. 하루 이틀, 아니 십년, 이십년 공부했다고 성불하는 게 아니지요. 평생 법 공부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또한 불법입니다. 평생 중생으로 걸망하나 메고 떠돌이 하는 중이 많습니다.”
상이암은 동효스님의 수행 처이기도 했다. 암자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직접 경운기를 운영하여 산에서 땔감을 주워와 군불을 지피고 해우소 한번 가려 해도 마당 건너 돌문을 벗어나야 하는 번거로움도 수행이라 여겼다. 동효스님은 큰절의 주지 자리까지 내려놓고 이곳에서의 수행을 자처했다. 이곳에 들어 올 때에는 초목처럼 살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공부를 하려고 왔다고 했다. 스님들은 서로 깨달음을 얻은 경지에서 수행방법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대승기신론에 따른다면 만법귀일은 일심一心 즉 마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일심이 만법, 만물의 발원지이다. 일심에서 존재, 비존재가 탄생한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 일체유심조라고 했다. 만법 즉 이 현상세계는 모두 우리의 의식, 인식 세계의 작품인 것이다. 결국 일귀하처의 귀결 처도 마음, 즉 일심一心일 수밖에 없다. 진공은 공이 아니고 유有라고 하는 진공묘유의 이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일체는 마음으로 귀착하고 그 마음으로부터 모든 현상들이 일어나고, 만물, 삼라만상이 생성한다.만법귀일은 어떤 식으로든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 같은데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은 일귀하처였다.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 것일까? 물론 그에 대한 답은 아직도 모른다. 하나는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알려고 덤벼들지 않는다. 영원한 주제로 문제의식 속에서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만법은 모든 것, 모든 존재를 가리킨다. 만萬이란 꼭 일 만 개라는 숫자를 뜻하는 것은 아니고, 많다는 의미로 모든 것을 가리킨다. 만수무강, 만사형통도 만세를 살라는 말이라기보다는 죽지 말고 오래 무한하게 살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삼라만상의 만상도 그런 뜻이다. 만법 속에는 유형무형의 모든 것, 모든 존재가 다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귀일은 귀결 처, 종착점이다.
모든 존재는 결국 하나로 돌아간다는 것은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평소 철학적 사색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던 주제일 것이다. 인간, 모든 존재는 결국 어디로 돌아가는 것일까. 존재의 귀착 처. 그것은 곧 존재에 대한 탐구인 동시에 모든 철학의 주제이며 시작이다. 선禪도 사실은 존재, 실존에 대한 탐구이다. 그 주제가 바로 만법귀일, 일귀하처이다. 선은 무심, 무념이다.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는 뜻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도 모든 존재를 관찰한 끝에 제행무상이라고 했다. 제행무상은 부처님이 발견한 존재론인데, 이 제행무상의 진리처럼 형체를 가진 존재는 영원하지 않다. 어린 아이가 칠십년 흐르면 백발이 되고 그 백발은 무無로 변하고 공空으로 변한다. 일체는 모두 공이다.” 스님의 깊은 법문에 세속의 범부는 이해 불가하여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절간이란 무릇 종교는 달라도 산길에서 만나면 기웃거리고 쉬어 가고 싶은 느낌을 갖게 하는 그런 산중의 쉼터와도 같은 곳이다. 초목들은 버리고 돌아갈 때를 잘 아는 자연주의들이다.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으면 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귀근, 화려했던 한여름의 영광을 발밑에 내려놓은 나무들이 긴 겨울 동안거에 들어가고 있었다.
사찰마다 한경은 조금씩 다르지만 절 입구에 일주문이 없는 암자도 많다. 일주문은 세속에서 벗어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오는 관문이다. 큰 절에 가면 일주문에 들어가기 전에 모두 자동차에서 내려 걸어야 한다. 그래서 일주문은 누구나 차에서 내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일주문은 속세와 극락세계를 가르는 역할도 하지만 불전에 들어오면서 마음을 비우고 들어오라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그 말뜻을 찬찬히 살펴보면 짊어지고 다니는 번뇌와 망상, 편견조차도 함께 내려놓고 들어오라는 의미였다.
절 마당 앞 향로봉 바위 사이에 몇 그루의 낙락장송이 있다. 수많은 역사를 같이한 나무들이 말을 한다면 두 왕조의 이야기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나무도 수행하는 승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묵언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숲에서 나무들이 잎을 버릴 때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른 동체가 어엿한 빛을 발한다. 청신한 기운이 느껴진다. 추운 겨울이 된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안다고 했다. 수행공간으로 탐·진·치의 삼독에 빠진 중생들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아미타삼존불을 받치고 있는 수미단은 각 면마다 걸 작품이다. 소박한 돌계단, 세월의 무게를 끌어안은 독경소리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성찰의 시간이었다.
동효스님은 말씀하셨다.
“절간 도량은 자비를 베풀고 법음을 전하는 장소이어야 합니다. 중생들이 모두 함께 깨달음의 세계로 가기를 서원하는 수행공간이어야 합니다.”
불법에 쉽게 접근하면서 공부가 되도록 하기 위해 스님은 많은 예를 들어 설법을 하셨다.
“스님 제가 불구사물의 뜻을 제대로 잘 알지 못합니다.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처마 끝이나 적당한 곳에 매달아 놓은 것쯤으로 알고 있던 불구사물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셨다. 큰 사찰처럼 규격을 갖춘 크기는 아니지만 작은 암자에 어
울리는 사물이었다.
“응 긍께 말이요. 북소리는 세간에 널리 울려서 불법의 진리로 짐승을 비롯한 지상에서 살아가는 중생을 깨우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법고입니다, 범종은 모든 중생이 종소리를 듣고 순간 번뇌가 없어지고 지혜가 생겨서 약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즉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울리는 종이지요. 아침예불 때에는 스물여덟 번, 저녁 예불 때에는 서른세 번을 칩니다. 목어는 물에서 사는 중생을 계도하고 운판은 판의 모양이 구름 같다 하여 운판이라고 했지요. 법고·범종·목어·운판을 사물이라 하는데 울림은 우리 인간들과 어울려 사는 세상 일체 만물이 함께 깨어 불법을 따라 부처가 되자는 의미를 가졌지요.”
청정한 독경소리는 세속번뇌를 사라지게 하고 스님은 스스로 부처가 된다고 했다. 풍경의 속은 비어있었다. 몸을 흔들어 내는 영혼의 소리도 묵언정진 중이었다.
이른 봄에 답사 왔을 때 따뜻한 차를 대접받았던 객승에 대해 여쭈었다.
“스님, 그때 객승은 어디로 가셨습니까? 보이지 않습니다.”
괜한 질문을 한 것은 아닌가 싶어 말을 하고도 스님의 눈치를 살폈다.
“절간은 문을 열어놓기 때문에 많은 중생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곳입니다. 천차만별의 중생들이 다녀갑니다. 어찌 그걸 말로 하겠습니까.”
한참 생각에 잠기다가 말문을 열었다.
객승은 절 생활을 하긴 했지만 속된말로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이 먼저 간 그런 행자였지요. 불법 공부보다는 요행과 눈치에 빨랐다. 대처를 떠나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떠돌이 행자를 받아 들였다. 이곳에 왔으면 옛 생활은 버리고 이곳 생활에 적응하고 공부를 하라고 일렀다.
동효는 객승에게 큰 사찰 송광사에서 행자시절 이야기를 했다.
행자란 스님이 되기 위하여 출가하지만 아직 계를 받지 못한 예비수행자를 말한다. 행자시절은 출가자에게 중요한 시절이다. ‘중노릇 행자 때 다 한다.’는 말처럼 스승을 모시면서 배우고 익혔던 그 모두가 수행의 근간이 되는 시절이었다. 어느 날 물가 수채에 버려진 쌀 세 톨과 감자껍질을 보고 주워서는 동효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공양에 이것으로 죽을 끓여 내 밥상에 놓아라."
하셨다. 농사도 짓지 않고 중생들에게 얻어먹는 주제에 어찌 공양물을 함부로 다루냐며 호통을 쳤다. 감자 껍질이 두껍게 깎여 나간 것이었다. 부처님 앞에 가서 삼천 배를 하라고 벌을 내렸다. 스스로 참회를 하면서 염불 독송을 했다. 마지막 삼천 배를 마치고 일어설 수 없어 엎드린 채 있었더니 큰 스님이 어깨를 잡고 일으키면서 쌀 세 톨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다른 곳에 두고 있으니 공양물이 물 따라 나간 줄도 모른 거라며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 후로 오직 스님 말씀처럼 ‘정신일도 하사불성’ 정신을 한곳으로 모으면 어떤 일을 이루지 못할까. 불법 공부에 정진 하여 오늘까지 온 것이다. 불법은 누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삼천 배를 안 하고 절간을 나와 버렸으면 지금도 세상 속에서 헤매고 있을 거라고 했다. 은사스님 밑에서 물건을 허투루 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디 검소한 생활뿐이었겠는가. 무엇보다 스님이 내리신 법문 속에서 나는 인간사를 관통하는 인과법을 깨우쳤고 무상의 도리에 눈을 떴으니 행자시절을 잘 보낼 수 있었다. 수행자는 열심히 불법을 공부하여 청정도량을 만드는 게 일이라고 했다. 도량에 아무것도 쓸어낼 것이 없어도 나가서 쓸고 또 쓸었다. 반복하는 일도 수행이다. 쓸어낸 마당 위로 내리는 적요와 청정함! 스님은 무언으로 그 무욕의 청정함을 보게 했던 것이다. 스님은 또 대중과 함께 공양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대중공양 참석은 그 시절 행자 때 모두 배운 귀한 가르침이었다.
처음 출가를 하게 되면 능히 승려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를 점검하고 그 의지를 시험하는 행자가 되어야 한다. 이 행자들은 밥 짓고 청소하는 등의 절 생활 가운데 가장 밑바닥에 해당하는 일들을 익히게 되며 이때 상당히 고된 수련을 쌓게 된다. 소지품을 간소화하여 세 벌의 옷, 손칼, 이쑤시개만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생활을 흔히 삼의일발(三衣一鉢)의 생활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의 일과는 경전의 독송·탁발·명상·염불·참선을 목적으로 정진하고 수행을 해야 된다고 했다.
동효는 은사님의 가르침을 따라 동복 하복 옷 두 벌로 사계절을 지내고 털신 한 켤레가 떨어질 때까지 사계절을 신고 다녔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정신으로 수행을 하고 있다. 요즘 흔한 핸드폰도 없이 자유로운 영혼이다. 수행에 방해가 되어 아예 몸에 정보망을 지니지 않는다. 중생들이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깨우치게 하는 방법이었다. 이 모든 것이 평생 몸에 배여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데 때로는 오히려 과분함 때문에 불편하다고 한다. 행자가 수행이 힘들어서 떠돈다면 이미 승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객승은 대꾸를 했다.
“스님 지금은 시대가 변했습니다. 스님처럼 고행을 하면서 정진하라면 그 누구도 따르지 않을 겁니다. 불교도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 흐름에 적당히 맞춰나가야지 석가처럼 그렇게 행하라면 요즘은 누구라도 중노릇 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변화무쌍하게 바뀌고 있는데 옛 방식만 고집하면 앞으로 불교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객승의 목에 힘줄이 올랐다. 화를 참지 못해 저도 모르게 붉은 심줄이 올라온 것이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동안 참고 견디느라 힘들었는데 스님 말씀은 잔소리로 들렸다. 객승은 자기방식대로 사는 것도 수행이라고 설득을 시키려 했다.
동효스님은 객승을 곁에 두고 보는 것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혼자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고 만행을 핑계로 다른 절에서 도반들과 모여 공부를 하곤 했었다. 여느 때처럼 만행을 마치고 절간에 돌아왔는데 절 안이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차 한 대 주차할만한 공간에 있던 객승의 자동차가 보이지 않았다. 승방 댓돌에 운동화 신발이 없었다. 이미 며칠 전에 객승이 절간을 비웠는지 나뭇잎이 어수선하게 마당에 널려 있었다. 객승이 머물던 승방을 열어보니 방안이 정리가 된 상태였다. 갇혀있던 냉기가 방안을 돌면서 밖으로 빠져나갔다. 방문 턱 아래에 쪽지하나가 접혀져 있었다.
“스님, 그간 거두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불초소생 스님을 뵙지 못하고 이렇게 떠나는 무례함을 용서 하십시오. 저를 찾지 마십시오. 애초에 대처에서 살다가 산속 절간생활은 제게 맞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산속생활은 견디기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짧게 한 줄 남겼다. 객승은 스스로 암자를 떠나버렸다. 그 후로 아무 소식 없었다.
“잘 키워볼라고 했는데 소식이 끊겼습니다. 부처하나 키운다는 생각으로 같이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 받아들였지요. 중 하나 키워낸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요. 업장소멸이 그리 쉬우면 아무나 부처되지요. 객승은 속가 나이로 지천명인데 절간에서는 중늙은이로 어른노릇 할 나이이지요. 그런데도 그 나이까지 헤매고 있는 것이지요. 절에서는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마라고 했습니다.”
“내가 왜 이 세상에 왔는가?”
하는 물음으로 집을 나와서 세상을 떠돌다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느 날 화두가 머리를 치면 그때서야 자아를 발견하고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차를 몇 잔 더 마시고 씁쓰레한 웃음을 보였다.
하늘은 담묵을 먹인 화선지였다. 빈 하늘에 산은 메마른 갈필로 끊어지듯 목 메이며 스쳐 간 비백의 능선을 긋고 있었다. 이 능선너머 어스름한 곳으로 드리워진 하늘 끝자락은 수묵의 연지에 닿아 있어 저절로 그림자 누이며 번져왔다. 절 마당에서 인사를 하고 스님과 헤어졌다.
향로봉은 울퉁불퉁한 봉우리가 마치 용두처럼 생겼다. 그 옹색한 바위벽 틈새에서 암기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소나무의 몸체가 심하게 뒤틀려 있다. 그러면서도 성성한 기운을 가진 나무다. 나무도 지층에 뿌리를 내려 살다가 태어난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나무는 죽음 후에도 자신의 해탈을 놓치지 않는다. 나무의 몸속에선 억겁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편안한 시간이란 쉬 오지 않는 법이다.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정신은 빳빳해지는 법이다. 좌선을 하거나 독경하는 시간보다 훨씬 생생한 정신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골짜기 바람소리가 물살같이 지나갔다. 모든 무생물 그러나 내게는 생명 있는 존재처럼 보였던 바위나 바람이나 여름날의 천둥과 번개 같은 것들이 바람에 스치는 게 아니라 바람을 맘대로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풍경은 바람을 먹고 산다. 잘 때도 눈을 뜨고 자듯이 수행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물고기형상을 만들어 처마 끝에 달아놓았다. 바람으로 살아가는 풍경이다.
바람이 없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 소리를 낼 수 없으면 쇠 붕어는 죽은 물고기라 절간에서는 쓸모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풍경소리가 골짜기로 퍼져나갔다. 가라앉은 것들을 흔들어 깨우는 것 같기도 하고 뒤숭숭한 것들을 어루만져 쓰다듬는 것 같은 이 종소리는 차고 단단하고 날카로운 쇠붙이로 만든 것이지만 그 쇠가 어찌 속세의 속됨을 쓸어주는 소리가 될 수 있는지 아무래도 그 뜻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 해 겨울 여러 곳에서 탁본한 글씨와 삼청동글씨를 예정한 날짜에 탁본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효과가 좋아서인지 글씨들은 그 옛날 지조 높은 선조들의 모습처럼 글씨가 곧으면서도 힘이 들어있고 단아했다. 음영의 불빛이 글씨를 한층 더 품위를 높여주었다. 암자에서 탁본한 삼청동 글씨는 바위 면이 투박했지만 힘이 있어 보였다. 모두 달필들이었다. 삼청동 글씨를 보여드리기 위해 도반은 특별히 주지스님을 초청 했다. 그런데 연락도 닿지 않고 행사가 끝나도록 스님이 보이지 않았다.
전시 중에도 한 번 다녀가시라고 여러 번 연락을 했지만 소식이 없었다. 만행을 나가 아직 부재중인가 생각하고 또 며칠을 기다렸지만 소식이 닿지 않았다. 도반은 스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궁금하다며 찾아뵙자고 하여 직접 암자를 찾아갔다. 타오르던 낙엽들은 절정의 시기를 덧없이 보내 빛이 바래고 맥을 잃어가고 있었다. 바람이 제법 세어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칼날처럼 매웠다. 바람이 불때마다 나뭇잎들이 정신없이 떨어지고 이리저리 흩날렸다. 절 마당이 낙엽이 정처 없이 구르는 것만큼이나 스산했다. 승방 앞에 운동화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평소 주지스님 신발은 털신이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문을 두드렸다.
“스님계십니까.”
분명히 목소리가 전해졌을 텐데 방안에서는 답이 없었다.
한 참 후에 젊은 스님 얼굴 하나가 밖으로 나타났다.
“누굴 찾으십니까.”
젊은 스님은 한낮의 햇빛이 눈이 부신 듯 낯을 찡그리면서 나왔다.
“저 주지스님을 만나 뵈러 왔는데요. 계시면 만나 뵐까 해서 왔습니다.”
“예, 전에 계시던 스님을 찾으십니까.”
“네,”
“제가 새로 온 주지입니다.”
“그럼 전에 계시던 동효스님은 안계십니까.”
“그 스님은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첩첩산중이었다. 나는 맥이 풀린 소리로 물었다.
“어디로 가셨습니까.”
“멀리 가셨습니다.”
“그곳이 어딥니까.”
“선운사 본사로 가셨습니다.”
“아, 예”......
“산중의 납자를 만나고 싶으시면 언제라도 오십시오,”
마지막으로 뵙고 헤어질 때 나누었던 인사말이었다. 내 머리 속에 부르다만 노래 몇 마디의 후렴처럼 오래 남아 있었다.
“중은 오고가는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주지스님은 곧 이곳을 떠날 것을 알고도 내색을 하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가셨다는 그 한마디에 마음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새로 부임한 스님에게 합장을 하고 인사를 드렸다.
“주지스님은 본 사찰로 들어가시고 본 사찰의 부 주지였던 본 승이 이곳으로 발령받아 오신지 며칠 되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스님도 대처 큰 사찰에 있다가 산중으로 들어와 암자 분위기에 적응하는 중이라고 했다. 스님은 안으로 들어가서 차 나누자고 제안을 했다. 차를 마시며 법문을 들을 수 있도록 승방을 차방으로 꾸며놓았다. 내가 암자를 찾아온 이유를 말하고 이름을 밝혔다. 스님은 익숙한 다례 솜씨로 차를 따랐다.
“강 선생님, 극락을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요. 피안의 언덕이 따로 있을까요. 이곳이 극락이고 피안의 언덕입니다. 누구라도 이곳에 들어오면 저절로 성불이 될 것 같습니다.”
“가끔 암자에 와서 주지스님 법문을 들었습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지 모른다고 법문을 접하면서 한창 재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가셨군요.”
“강 선생님 스님만 바뀌었을 뿐이지 암자는 그대로입니다. 예전처럼 그렇게 자주 오십시오. 소승이 공부한 불법을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나는 대답을 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탁본 전시를 하는데 이곳 삼청동 글씨를 탁본했습니다. 스님 언제 시간되시면 한 번 들러주세요.”
“그러지요.”
마지막 찻잔을 비우고 차 공양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절 문을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