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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자 료 실
문서 개요
2018년 07월

황금산이라 불리는 알타이 산, 어머니 산이라 불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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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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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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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3년간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회복돼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은 창씨 개명 두 번 당했다"

2018년 04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이게 그 유명한 '오리지널' 마카다미아구나

1m 넘는 대왕조개가 내 발밑에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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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판에 이런 심오한 뜻이 숨어 있다니

이름이 '반창고 산악회'? 뜻 물어보니

전남교육감 예비후보 고석규... 단계별 고교무상교육 실시할 것

2018년 03월

'도무지'에 이런 끔찍한 뜻이 있었다니

임실 덕치면, 한국전쟁 당시 불이 안 난 마을이 없었다

왜 이 호랑이는 활짝 웃고 있을까

이부영 전 의원 "다음 세대에 전쟁 아닌 평화 물려줘야

최내우가 쓴 26권 일기를 집대성한 〈창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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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배경이 된 이웅재 고가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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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인 은빛순례단 "한반도 전쟁 다시는 안돼"

'가짜 조선통신사 문서'로 조선-일본 모두 속인 대마도 번주

2018년 02월

3.1운동때 '조선인 귀무덤' 철거될 뻔했었다

김문길 교수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구"

항일독립운동에 일생 바친 조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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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 다시는 전쟁이 나서는 안 돼

2018년 01월

6월항쟁 조직국장 이병철의 회한 "하늘이 준 기회 놓쳤다"

내 삶을 뒤돌아보게 한 이환희 여사

about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2018.03.30. 20:17 (2018.03.30. 20:17)

임실 덕치면, 한국전쟁 당시 불이 안 난 마을이 없었다

부흥리 폐광에서는 집단학살 당하기도
▲ 왼쪽에 덕치파촐소가 보이고 조종래씨 오른쪽에 보루대가 보인다. ⓒ 오문수
 
한국전쟁을 전후해 빨치산과 국군토벌대에 의해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은 전라북도 임실을 방문했다. 임실은 지리적 취약점이 많은 지역으로 지리산과 연계된 회문산, 백련산, 성수산이 많은 빨치산들의 은신처가 되었다.
 
따라서 지역민들 가운데 빨치산뿐만 아니라 경찰과 국군의 소탕작전에 희생된 이들이 많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임실군에서 677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또한 2008년 전북대학교에서 조사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관련 자료조사에 의하면 969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임실문화원 최성미 원장은 "두 기관에서 밝힌 희생자를 합치면 1646명이지만 중복된 숫자가 상당수 있어 약 1200명 정도 희생됐다"고 밝혔다.
 
특히 빨치산 전북도당 사령부가 있었던 회문산과 가까운 임실 덕치면의 경우는 집단학살지가 제일 많고 마을마다 불이 안 난 마을이 없었다고 한다. 마을을 방문한 김에 당시 초등학교 3학년으로 현장을 생생히 기억하고 증언해줄 조종래(83세)씨를 만나 자세한 전말을 들었다. 조종래씨는 임실군에서 면장을 하다 퇴직했다.
 
"아버님도 6.25때 회문산에 끌려가 학살당했어요. 농사짓고 계셨지만 함안 조씨들이 지역유지라는 핑계였죠. 여순사건 당시 2/3는 군인들이었고 1/3은 사상이 불순한 자들이 입산했죠. 회문산은 명산으로 골이 깊고 물이 안 떨어졌어요. 빨치산들이 회문산에 가까운 성미산에서 명감나무로 밥해 먹고 있었는데 다래끼봉에 주둔했던 군인들한테 들켰나 봐요.
 
군인들이 포위해서 죽은 놈 목을 잘라가지고 오기도 하고 부상당한 사람은 부축해오기도 했어요. 심지어 말하지 않으려고 혀를 잘라버린 사람까지 데리고 오더라고요. 끌려오던 사람 중에 국군이 '야들 오늘 저녁에 다 죽이겠다'는 소리를 듣고 밤에 높은 데서 뛰어내려 물속에 숨었다 살아난 사람이 6.25가 터지고 인민군이 들어오니까 인민위원장 감투를 썼어요. 호주기가 정찰을 하고 3일간 폭격한 후 드럼통에 휘발유를 채워 산을 태웠는데 산이 일주일 정도 불탔어요.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을 걸로 생각했는데 살아남은 사람들이 북치고, 장구치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 저멀리 회문산이 보인다. 5대 명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선말기엔 동학군, 일제강점기엔 항일의병, 한국전쟁 전후에는 빨치산 전라북도당이 있던 곳으로 아픈 역사가 서린 산이다. ⓒ 오문수
 
군인들의 소탕작전이 끝난 후 한 사람도 없을 줄 알았던 빨치산들이 밤이면 출몰해 지서와 동네를 습격하자 대한청년단과 경찰은 보루대를 세워 마을을 보호했다.
 
호주기는 미군기를 잘못알고 부른 말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태어난 필자의 어린 시절에도 하늘에 하얀 궤적을 그리며 지나가는 전투기를 보면 "야! 호주기 간다"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것은 시쳇말로 웃픈 이야기다. 한국인들은 소음이 큰 이 비행기를 '쌕쌕이'라고 불렀다. 개중에는 '호주기'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것은 슬프고도 우스꽝스러운 추측이었다. 이승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의 국적이 '오스트리아'인데, 그것을 '오스트레일리아'와 구별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통령 처갓집이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즉 호주에서 비행기를 보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근대문화유산 덕치 보루대...근대사의 아픈 현장
 
▲ 1948년 4월, 군인들이 물러나고 빨치산들이 습격하자 마을과 지서를 보호하기 위해 대한청년단원과 경찰들이 합동으로 보초를 섰던 보루대 뒤로 덕치파출소가 보인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으로 목격담을 증언해준 조종래씨가 포즈를 취했다. ⓒ 오문수
 
조종래씨가 덕치파출소 앞에 있는 보루대에 관해 설명해줬다. 1948년 임실에서 일어난 2.26사건에 이어 제주 4.3사건이 일어났고 연이어 여순사건이 일어났다. 그 후 6.25전쟁과 더불어 만들어졌던 보루대는 현재 임실군에 두곳만 남아 있다. 보루대는 해방과 동시에 치안이 절박한 상황에서 자체적인 지역방위 차원에서 설치했다.
 
덕치파출소 앞에 있는 보루대는 1948년 4월에 8개 마을에서 모금운동을 통해 설치했다. 당초에는 높이 5.6m, 둘레 14.9m로 1층에는 총과 탄환 기타 장비를 보관했다. 2층은 숙직실로 이용했고 3층은 기관총과 다른 장비를 이용해 사격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으며 경찰과 대원들이 교대로 주야간 근무를 했다.
 
폐금광에 숨었던 주민 300~500명 집단학살 당해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부흥리에 있는 부흥광산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빨치산 토벌작전에 나섰던 군인과 경찰이 부흥광산에 숨었던 주민들을 집단학살했기 때문이다. 부흥광산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 4월부터 1943년 말까지 11년간 채굴했던 금·은 광산이다.
 
매장량은 1만8000톤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광산에서 생산된 금은 총 254톤으로 번창할 때는 하루에 광부 200명씩 투입되던 중요한 광산이었다. 광산은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으로 문을 닫았다.
 
▲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부흥리에 있는 부흥광산 모습. 폐광이었던 이 금광은 빨치산과 군경토벌대간의 전쟁으로 인해 숨을 곳을 찾았던 주민 300명~500명 정도가 집단학살당한 곳이다. 굴입구에 달랑 간판 하나만 서있다. ⓒ 오문수
 
이념 갈등의 비극은 이 지역까지 닥쳐왔다. 낮에는 군경, 밤에는 빨치산으로부터 피해를 당해 불안해진 근방 주민(300~500명)들이 폐광으로 피난을 갔다. 이 사실을 안 군경토벌대는 고추대를 태워 굴 안으로 던졌다. 고추대 연기가 매워 밖으로 나오면 군경이 죽이고 안에 있던 있던 사람들은 질식해 죽었다.
 
조그만 굴 입구에는 '부흥광산'이라는 간판 하나만 달랑 붙어있었다. 매운 연기에 울부짖다 밖으로 나오면 총 맞아 죽고 안에 있어도 질식해 죽었을 사람들. 굴 속에는 민주주의가 뭔지,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선량한 백성들이 묻혀 있었다. 굴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또 다시 이 땅에 전쟁이라는 미친 광풍이 몰아닥치면 안 된다.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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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