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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2018.02.28. 19:46 (2018.02.28. 19:46)

3.1운동때 '조선인 귀무덤' 철거될 뻔했었다

교토 소재... 독립운동 잔인하게 진압한 일본 치안국장 반대로 실패
▲ 일본 교토 히가시야마구 차야마치에 있는 조선인 귀무덤으로 임진, 정유의 두 왜란 당시 죽은 조선인 12만 6천여명분의 귀와 코가 묻힌 무덤이다. 원래는 코무덤이라 불렸지만 야만적이라 하여 귀무덤으로 개명했다. 무덤 위에는 '고린토'라 불리는 석탑이 세워져 있고 높이 약 7.2m, 높이 약 9m, 폭 49m이다. ⓒ 김문길
 
일본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차야마치에 가면 조선인 12만 6천여 명분의 귀와 코무덤이 있다. 이 무덤은 16세기말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륙 진출의 야심을 품고 일으킨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1592~1598년) 당시 희생된 조선인 귀와 코무덤이다.
 
조선정벌에 나선 히데요시는 "조선인들의 귀·코·머리를 잘라 바치라"고 명령했다. 휘하의 무장들은 예로부터 전공의 표식이었던 적군의 목 대신에 조선 군민 남녀의 코나 귀를 베어 소금에 절여서 일본에 가지고 돌아왔다. 원래는 코무덤이었으나 야만적이라는 의견이 나와 귀무덤으로 개명했다.
 
3.1운동 당시 교토 귀무덤 본 주한 미국공사가 '철거요청'
 
한일관계사를 연구하고 있는 김문길 교수가 3.1절을 맞아 귀무덤에 관한 자료를 제보했다. 부산외국어대학 명예교수인 김문길 교수는 일본 국립교토대학과 고베대학원에서 한일관계사를 전공한 후 20여 년간 일본에서 자료를 수집 연구하고 있다. 김 교수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다.
 
사이토 마코도는 이토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에게 살해당한 후 총독으로 부임한 인물이다. 사이토가 부임 후 1919년 3월 1일 전국에서 독립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당시 조선에 왔던 외교관들 중에는 일본의 탄압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재한미국공사 '위리암 구로지야'가 있었다. 그는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 일본교토를 방문했다. 그는 교토에서도 명성가(중심가)에 조선인 귀 코무덤이 화려하게 조성되어 있는 것에 화가 났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통치하면서 잔인한 역사를 자랑삼아 화려하게 조성한 것은 인본주의 정신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조선으로 돌아온 그는 사이토총독을 만나 호통을 쳤다.
 
▲ 조선인들의 귀를 절이는 모습. 임진 정유의 두 왜란 중 도요토미는 "조선인들의 귀, 코, 머리를 잘라 바쳐라"고 명령했다. 김문길 교수 설명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시절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일본교과서에 수록한 내용이라고 한다 ⓒ 김문길
 
▲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낸 코영수증. "코를 9상자에 넣어 히데요시께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 김문길
 
"일본 교토란 곳에 가니 임진왜란 당시 조선인을 죽인 전리품으로 귀·코를 잘라 무덤을 화려하게 만들어놓고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것은 양국간의 수치이고 조선인의 반감이 쌓여 독립운동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하루 빨리 잔인하고 치욕적인 교토 조선인의 귀무덤을 사람이 드문 곳으로 옮기든지 철거하라."
 
그의 부인 '구로지야' 여사도 사이토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이전에 남편과 교토에 들렀을 때 시를 선전하는 간판과 그림엽서홍보물을 보았다. 그림 속에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인을 죽이고 승리했다는 귀·코무덤이 있다. 이런 홍보물은 국제사회의 수치거리다. 어떻게 그런 잔인한 것을 만들어 놓았나?"
 
독립운동이 더욱 확산되어가는 시국에 두 사람의 항의를 들은 사이토는 교토지사에게 귀무덤을 철거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아래가 문서 내용이다.
 
 
▲ 사이토총독이 재한미국공사의 부탁을 받고 교토지사에게 보낸 편지다. 편지에는 "대소동이 일어나지 않게 귀무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옮기든지 철거하라"고 적혀있다 ⓒ 김문길
 
"교토시 대불경내 귀무덤에 관해 지인인 미국 육군소장 구로지야 부인으로부터 편지가 있었다. 몇 번이나 번역 편지를 받았다. 내용에 대해 마부치 전 지사 밑에서 일하는 후지끼 히로가즈께한테 줬다. 어쨌든 대소동이 더 일어나지 않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옮기든지 철거하도록 하라. 장래 문제가 대두되지 않도록 부탁하니 현명하게 처리바람. 정세가 편안하도록 하고 발급된 귀무덤의 홍보물 엽서를 발급하지 마라."
 
사이토 총독은 1920년 11월 21일 '위리암 구로지야' 부인으로부터 철거의견서를 받고 바로 교토지사 마부치겐타로한테 보냈다. 마부치는 교토 귀무덤 선전 포스터 그림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고 귀무덤 철거는 후임 와카바야시 한테 인수인계 했으나 실행되지 못했다.
 
3.1운동을 진압하고 조선인을 많이 죽인 미즈노 렌타로가 진급해 일본 치안국장(경찰청장)이 되어 귀무덤 철거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귀무덤 환국운동을 했던 김문길 교수의 얘기다.
 
▲ 부산외국어대학 명예교수인 김문길 교수. 일본 국립교토대학과 고베대학원에서 한일관계사를 전공한 후 20여년간 한일관계자료를 수집 연구하고 있다 ⓒ 오문수
 
"3.1운동의 트라우마 때문에 일본총독부가 교토 귀무덤을 철거하기로 했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교토 귀무덤은 오늘날까지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세계인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현장입니다"
 
2000년도에 교토 귀무덤을 한국으로 이전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자비사 주지 박삼중 스님과 오카야마 코무덤을 연구 발견한 김문길 교수가 힘을 합쳐 교토 귀무덤 환국을 서둘렀지만 교토시청의 답은 "교토문화재로 지정되어 환국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선인 귀무덤은 1898년 히데요시 사망 300년 때 대규모 개수가 이루어졌다. 일본 제국주의화의 분위기 속에 히데요시를 국가의 위신을 신장한 인물로 재평가함으로써 조선인 귀무덤은 일본 국위 위신의 증표로 여겨졌다. 3.1운동 100주년을 1년 앞둔 지금 귀무덤 환국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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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