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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역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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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길에서 무엇을 볼까? 말바위 ~ 창의문
2015년 5월 16일
2015년 5월 12일
about 문화재·역사·전
내서재
추천 : 0
(2019.11.21. 19:07) 
◈ 한양도성길에서 무엇을 볼까? 말바위 ~ 창의문
지난 주말 다녀 온 한양도성에 대해 포스팅합니다. 서울에 50년 이상 살면 서울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 깊이 알지 못하며, 특히 한양도성에 대하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작가와 함께 하는 한양도성을 배우며 알고 걷기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농한기에 축조한 한양도성은 남한산성과 달리 외적과 큰 전투를 치른 적이 없었고 한양의 안전과 출입을 통제하려 했던 것입니다. 2회에 걸쳐 힌양도성 탐방길중 1회로, 정독도서관에서 숭례문까지 걸었지만 오늘 포스팅은 정독도서관에서 창의문까지입니다.
지난 주말 다녀 온 한양도성에 대해 포스팅합니다. 서울에 50년 이상 살면 서울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 깊이 알지 못하며, 특히 한양도성에 대하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작가와 함께 하는 한양도성을 배우며 알고 걷기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농한기에 축조한 한양도성은 남한산성과 달리 외적과 큰 전투를 치른 적이 없었고 한양의 안전과 출입을 통제하려 했던 것입니다. 2회에 걸쳐 힌양도성 탐방길중 1회로, 정독도서관에서 숭례문까지 걸었지만 오늘 포스팅은 정독도서관에서 창의문까지입니다.
 
● 탐방 개요
 
▶일시 : 2015. 5.16(토)
▶내용 : 정독도서관 서울 성곽 순성 강의 및 현장 답사와 해설 들으며 걷고 배우기
▶누구와 : 권기봉 작가와 참가자 및 도서관 관계자
▶걸은 구간 : 정독도서관 →총리공관앞 → 칠보사 앞 → 삼청공원 → 말바위 → 도성안내소 → 숙정문 → 청운대 → 총알맞은 소나무(1.21사태) → 백악산 → 창의문 → 윤동주 시비 → 인왕산 정상대신 차도로 이동 → 호랑이 동상 → 권율 도원수 집터 → 딜쿠샤집 → 성곽 훼손 현장 (집 축대) → 홍난파집 → 경교장 → 돈의문 터 → 정동 이화백주년 기념관 → 중명전 → 정동교회 → 배재학당 사잇길 → 중앙일보사옥 옆길 → 대한상공회의소 옆 → 숭례문
▶소요시간 : 강의 90분, 현장 답사 5시간
▶도서관에서 받은 것 : 샌드위치와 물, 면가방
▶한양도성길은 처음이 아니지만 찾기 어려웠던 딜쿠샤집과 권율 도원수 집터를 확인했고 무지와 무관심으로 많은 구간이 없어지고 훼손되어 안타까웠고, 고증을 거친 문화재 복원을 제대로 해야만 합니다. 왜냐면 성수대교에서 보듯이 빨리한다고, 예산이 부족하다고, 나와 관계없다고 무관심하여 제대로 복원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사적 10호의 한양도성
1392년 태조 이성계는 개경 수창궁에서 조선을 세웠지만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여 경복궁을 짓고 1396년 한양 성곽도 쌓았습니다. 성곽은 내사산(內四山)이라 부르는 북쪽의 백악산(북악산)을 주산(主山)으로 서쪽의 인왕산 , 남쪽의 목멱산(현재 남산), 그리고 제일 낮은 동쪽의 낙산을 연결하고 그 사이에 4대문. 4대문 사이에 4소문을 설치하였습니다.
 
▶ 성곽을 연결하는 내사산(內四山)은?
☞ 동쪽은 낙산(駱山), 서쪽은 인왕산(仁王山), 남쪽은 목멱산(木覓山) 그리고 북쪽의 백악산(白岳山)을 말합니다. ※ 외사산(外四山)은 아차산(동.용마산 포함), 행주산성의 덕양산(서), 관악산(남) 그리고 삼각산(북,북한산)입니다.
 
▶ 내사산을 연결하는 4대문(四大門)과 방위(方位)은?
☞ 4대문은 동쪽의 흥인지문(동대문) , 남쪽의 숭례문(남대문), 서쪽의 돈의문 터(현재 없으며 삼성 강북병원과 경향신문 사이), 북쪽은 숙정문이며 이는 5상으로 인의예지신을 나타냅니다. 인(仁)은 흥인지문, 의(義)는 돈의문, 예(禮)는 숭례문, 지(智)는 지대신 정(靖)을 넣은 숙정문, 그리고 신(信)은 보신각을 나타냅니다.
 
▶ 4대문을 연결하는 4소문(四小門)은?
☞ 4소문은 혜화문(원래는 홍화문,북동방향), 광희문(동남방향), 소의문(원래는 소덕문.남서방향), 창의문(북서방향)으로 4대문 사이에 있고 김정호의 수선전도에 표시되어있습니다.
 
▶수선전도(首善全圖)란?
☞ 1825년(순조 25)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것으로 전하는 서울지도로, 수선(首善)은 수도를 의미하며 세로×가로가 99×70 cm 크기입니다.
 
 
 
▶한양도성 총 길이는 얼마인지요?
☞ 지금 총 18.6 km이며 구간별 거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 한양도성을 왜 만들었을까?
☞ 한양도성은 한양을 침공하는 외적, 반란 등을 방어할 목적과 백성들의 안전과 통제를 목적으로 고려때 남경(지금의 청와대)을 중심으로 축조했습니다.
▶ 한양도성의 축조 과정 및 변천사는?
☞조선 태조는 한양 천도를 위하여 일차적으로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다음, 1395년(태조 4) 9월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정도전(鄭道傳)에게 명하여 성터를 측정, 조사하게 하였고 백악(白岳)을 비롯하여 인왕(仁王), 목멱(木覓), 낙산(駱山)에 올라 실측하여 내사산(內四山)을 연결하는 5만 9500척의 성터를 결정하였습니다.
②총안 : 총을 쏠 수 있게 만든 구멍으로, 멀리있는 적을 향한 구멍(원총안,遠銃眼)이 2개, 가까운 적을 향한 구멍(근총안,近銃眼)이 1개
③옥개석 : 집의 지붕처럼 여장을 보호하는 지붕돌
 
 
 
● 한양 주변의 성은 몽촌토성, 풍납토성, 아차산성, 양천고성지, 북한산성, 남한산성, 행주산성 등이 있어 한양도성을 겉에서 미리 막아 보완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한양 성곽길. 종로 정독도서관에서 출발
 
▼참가자 부착 스티커와 지급한 책크기 면가방
 
 
 
 
 
 
 
 
 
 
\na-;▼말바위 등산로 입구
 
 
 
 
▶말바위 안내소 ~ 창의문 구간은 신분증 지참해야 입장 가능합니다.
 
 
▣ 창의문에서 말바위 구간(백악 구간) 중 어느 쪽에서 출발하는 게 좋을까요?
☞ 창의문에서 말바위로 가는 코스는 처음부터 급경사로 권장하지 않습니다.
 
▣ 백악구간의 개방시간, 퇴장시간, 휴관일, 안내소 연락처와 교통편은?
☞ 개방시간 : 3월 ~10월은 9시~ 16시까지 입장가능하고 동절기는 10시~ 15시까지 입장가능
☞ 퇴장시간 : 3월 ~10월은 18시이고, 동절기는 17시까지
☞ 휴관일 :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이면 화요일)
☞ 3곳 안내소
①창의문 안내소:02-730-9924.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7212.1020.7022 버스 윤동주 문학관 하차
②숙정문 안내소:02-747-2152, 4호선 한성대 입구역 6번 출구,1111,2112 버스 종점하차
③말바위 안내소:02-765-0297,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종로 02번 버스 성균관대 후문 하차 또는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 종로 08버스 종점하차후 와룡공원 통해 접근
 
▣ 필요한 신분증 종류는?
☞ 내국인은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공무원증, 국가 유공자증이며 외국인은 여권, 외국인 등록증입니다.
 
▣ 해설을 들으면서 걸으려면 ?
☞말바위 안내소와 창의문 안내소에서 각각 출발하며 3월~10월은 10시, 14시와 11월은 10시 30분, 14시 출발입니다.
 
▣ 탐방시 주의사항은?
☞불필요품(인화물질 등)의 소지 및 사용금지와 금연, 금주, 취사금지 및 사진 촬영은 지정된 장소
 
▼탐방 안내도
 
 
\na-;▼성곽 밖의 성북동 모습
 
 
\na-;▼서울 시내 남산 방향 전경으로 하늘이 좀 더 깨끗하면 좋았을텐데.......
 
 
\na-;▼요리집으로 남북 접촉의 현장이었으나 현재 호텔과 식당으로 운영중인 삼청각
 
 
서울 성곽 출입 신청서를 작성합니다.(신분증 지참은 필수)
 
한양도성 스탬프 투어 북쪽 숙정문원안에 찍는 도장이 사슴이네요. 현무(사신도의 북쪽)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고구려 사신도(四神圖)의 동쪽은 청룡, 사쪽은 백호, 남쪽은 주작, 그리고 북쪽이 현무입니다.
 
 
\na-;▼여장과 총안 그리고 옥개석(屋蓋石,지붕돌)
한양도성은 방어시설로서 여장(女墻)과 총안(銃眼)을 갖추고 있는데 여장은 성곽 위에 담장처럼 설치된 것이고 총안은 총을 쏠 수 있게 만든 구멍으로 멀리있는 적을 향한 구멍(遠銃眼,원총안)이 2개, 가까운 적을 향한 구멍(近銃眼,근총안)이 1개입니다.
 
 
\na-;▼한양도성 쌓기 공사에 실명제(實名制)
 
 
▶숙정문
1395년(태조 4)에 숙청문(肅淸門)이 건립되었으나 1413년(태종 13)에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이 왕에게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두 문을 막을 것을 청하여 이를 계기로 마침내 창의문(彰義門, 일명 紫霞門)과 함께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하였습니다.
 
원래 이 문은 높은 산 중턱에 있어 길이 매우 험하며 문을 나서면 북한산이 앞을 가로 막아 동쪽으로 성북동 골짜기로 내려와 동소문(東小門) 밖 경원가도로 나오는 길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는데 서울에 들어오는 데에는 동소문을 거치는 것이 더욱 빠르고 편리하므로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을 폐쇄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영구히 닫아 두었지만 한재(旱災: 가뭄으로 인한 재해)가 심할 때에 이 문을 열고 숭례문(崇禮門: 南大門)을 닫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것은 북은 음(陰)이며 남은 양(陽)인 까닭에 한재 때 양을 억제하고 음을 부양하는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에서 나온 것으로 1416년(태종 16)에 처음 시작하였습니다.
 
숙청문을 열어 놓으면 장안의 여자가 음란해지므로 항상 문을 닫았다는 속설(俗說)도 전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문이 음방(陰方: 여자의 방위)에 있는 까닭에 이런 말이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문은 1504년(연산군 10)에 조금 동쪽으로 옮겨 세웠는데 이 때 석문(石門)만 세우고 문루(門樓)는 건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1976년 박대통령의 특명으로 서울시에서 백악산 일대의 성곽을 복원할 때 태조 창건 당시의 제도에 의해 문루를 건축하고 ‘肅靖門(숙정문)’이라는 편액을 걸었습니다.
 
어느 때부터 무슨 이유로 숙정문으로 개칭했는지 알 수 없으나 1523년(중종 18) 『중종실록』 이후 역대 각 실록에 모두 숙정문으로 기록되고 있어 숙정문이라 호칭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1531년(중종 26) 북정문(北靖門), 1587년(선조 20) 숙정문(肅靜門)으로도 표기된 것을 볼 때, ‘정숙하고 고요한 기운을 일으킨다’는 의미에서 ‘숙정문(肅靖門)’으로 명명하지 않았나 추측되며 다락 없는 암문(暗門)인 것이 특색이고 항상 닫혀 있었기 때문에 창의문을 이에 대신해 흔히 북문이라고 하였습니다.
 
 
 
\na-;▼숙정문 밖
 
 
\na-;▼1976년 복원했기에 현판이 좌에서 우로 숙정문이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습니다.
 
 
\na-;▼숙정문 안
 
 
 
 
 
 
 
 
\na-;▼성벽 축조 시대별 차이
 
 
\na-;▼우측에 백악산, 멀리 관악산까지 보입니다.
 
 
 
▶청운대
청운대는 백악산의 전면 개방을 기념하는 뜻에서 서울의 진산(鎭山)의 북쪽 최정상인 백운대(836m)를 본떠 청운대(293m)라는 상징성을 부여했습니다. 이곳은 백악산에서 경복궁을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입니다. 궁궐의 구성을 위에서 살펴보기란 쉽지 않은데 마치 경복궁의 조감도를 보는듯합니다. 광화문 대로를 지나 시청까지 도심의 풍경도 비교적 또렷합니다.
 
 
 
▶1.21사태때 총맞은 소나무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 김신조외 30명은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남한으로 침투를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창의문부근에서 검-경 합동 검문에 발각이 되어 대부분이 사살되었고 김신조(현재 목사)는 생포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최규식 경무관( 당시 종로 경찰서장)과 정종수 경사가 순직하였고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을 당하였습니다. 1960년대 남북관계는 매우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으며 우리의 안보의식이 다시 한번 재점검되는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백악산 한양도성 전면 개방에 맞춰 베일에 쌓여 있던 1.21사태 소나무는 2007년 전면 개방에 따라 민간인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백악산
백악산은 한양도성의 주산으로 일명 북악, 면악산, 공극산이라고 불렀습니다. 높이는 342미터로 내사산(남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이곳을 백악 마루라고 부르는데 '마루'는 정상꼭대기를 의미하는 순우리말입니다. '白岳山 342m' 라는 정상 표지석이 있는데 표지석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북악산이 통제되던 시기에는 대공포 진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처음의 모습으로 복원해 두었습니다.
 
 
 
\na-;▼아카시아 꽃향기 좋아요!
 
 
\na-;▼백악산에서 창의문 내리막길은 급경사로 주의!
 
 
 
\na-;▼자북정도(자하문 북쪽으로 난 바른 길)
 
 
\na-;▼겸재 정선의 창의문
 
 
▶창의문
한양도성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四大門), 그 사이에 4소문(四小門)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北小門)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창의문은 북소문으로 불린 적은 없었고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려 자하문(紫霞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왔습니다.
 
창의문의 형태는 전형적인 성곽 문루의 모습으로, 서울의 4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수백 년간 사람의 발길에 길들여진 박석이 윤기를 발하고 있으며 특히 빗물이 잘 흘러내리도록 문루 바깥쪽으로 설치된 한 쌍의 누혈(漏穴) 장식은 연잎 모양으로 맵시 있게 조각되어 이 성문의 건축 단장에 매력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na-;▼창의문 잡상(雜像)들은 기와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놓이는 와제(瓦製)로 ≪서유기 西遊記≫에 나오는 인물 및 토신(土神)을 형상화하여 놓아 살(煞)을 막기 위함이랍니다.
 
 
\na-;▼앞에서 뒤로 대당사부(大唐師傅,삼장법사), 손행자(孫行者,손오공), 저팔계(猪八戒), 사화상((沙和尙,사오정) 등
 
 
\na-;▼창의문루에 있는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의 공신(功臣) 이름이 보입니다. 인조반정은 1623년(광해군 15) 이귀(李貴) 등 서인 일파가 광해군 및 이이첨(李爾瞻) 등의 대북파를 몰아내고, 능양군 종(綾陽君 倧: 인조)을 왕으로 옹립한 쿠테타입니다.
 
1등, 2등, 3등 공신(功臣) 등으로 구분되는데 1등공신은 김류·이귀·김자점(金自點)·심기원(沈器遠)·신경진(申景禛)·이서(李曙)·최명길(崔鳴吉)·이흥립(李興立)·구굉(具宏)·심명세(沈命世) 등 10명,
 
2등공신은 이괄(李适)·김경징(金慶徵)·신경인(申景禋)·이중로(李重老)·이시백(李時白)·기시방(奇時昉)·장유(張維)·원두표(元斗杓)·이해(李澥)·신경유(申景裕)·박호립(朴好立)·장돈(張暾)·구인후(具仁垕)·장신(張紳)·심기성(沈器成) 등 15명,
 
3등공신은 박유명(朴惟明)·한교(韓嶠)·송영망(宋英望)·이항(李沆)·최내길(崔來吉)·신경식(申景植)·구인기(具仁墍)·조흡(趙潝)·이후원(李厚源)·홍진도(洪振道)·원우남(元祐男)·김원량(金元亮)·신준(申埈)·노수원(盧守元)·유백증(兪伯曾)·박정(朴炡)·홍서봉(洪瑞鳳)·이의배(李義培)·이기축(李起築)·이원영(李元榮)·송시범(宋時范)·김득(金得)·홍효손(洪孝孫)·김련(金鍊)·유순익(柳舜翼)·한여복(韓汝復)·홍진문(洪振文)·유구(柳䪷) 등 28명으로 모두 53명이었습니다.
 
\na-;▼성밖에서 본 창의문
 
 
 
 
 
 
\na-;출처: 한국문화재단,종로구청, 네이버,민족문화대백과사전,서울시,문화재청, 안내팜플릿
 

 
※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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