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관의 머므다 날이 으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의 참예니라
3
역관이 고화신의 일을 드니 황뎨태뉴용을 명야 죄 사(査覈)라 지라 이러모로용이 날마다형부의 니러 국문 신이 임의 피편(皮鞭)으로 십 도(度) 맛고 피국의 큰 죄인을 다리 법이 우아 어즈러이 치지라신의 얼골과 왼몸이 다 프고 부프러 뭇 말마다 믄득 스로 승복고 나 발명(發明) 일이 업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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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 부마와 다못 그 군왕은 임의 여금 노화 돌녀보 그 아은 궐의 두엇다 며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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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젹몰 믈이 금과 은이 억만 냥의 지나며 그 다른 보 혤 길이 업며젼(海甸)젹몰 믈도 곳 이와 다 며복쟝안은 혹 가도앗다 며 밧그로 조찻다 니 셔히 몰을 일이오쇼능아(小陵阿) 벼을 샥다 니 이러시 뎐 말이 다 샹업시 들니 말이라 가히 반시 밋지 못나화신은 필경 죽기 면치 못리라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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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녁의 관의 도라온 후의 슈역이 고 쇄마구인(刷馬驅人) 놈이 졔 이 병들고 져러 도라갈 길 업지라 헐가(歇價) 바다 피인(彼人)의게 고 갑 보여 호마(胡馬) 사 질 의 아문(衙門)으로 을고 드러오다가 통관의게 들닌 배 되여 스로 니 녜부의 나아가 고여야 우리게 죄 도라오지 아니리라 고 슈역을 블너 일변 니며 일변 밧비 모양을 니 슈역이 간신이 만류야 니 그녜부의 고려 미 올커니와 쇽담의 닐너시 관가의도 무고 촌가의도 무미 됴타니 그 무 일을 내고져 뇨 고 신이 말녓노라 니 대개 을 매미 국법이라 이러모로 통관의 무리 아모조록 이 튼 일을 펴 혹 눈의 이면 대단이 공동(恐動)야 슈역의게 면죄(免罪) 츌(責出)니 이 져희 댱기(長技)라 극히 통분(痛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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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 쇄마 령쟝(刷馬領將)과 각 방 하인을 일노브터 임의로 관문의 나지 못며 긔믈 매 못 쥴노 분부다 부 날마다 궐의셔 날을 보니 한만(閑漫) 일을 결을치 못 아니라 톄모(體貌) 텸시(瞻視) 위야 댱막을 막고 젹젹이 안자실 이라 댱막 밧긔 비록 보암즉 일이 이실지라도 샹업시 니지 못니 이 면이 그러거니와 구경을 위야 라온 사은 이곳의 큰 상 나시믈 위야 구경을 아니코 관의 구지 드러 이시면 만히 연 분의(分義) 져릴 거시오 초삼일 이후로 도셩 의 시졍의 매와 거마의 번셩미 이젼과 며 션와 셩은 다만 마으락이예 샹모 힐 이오 안연(晏然) 모양이 조금도 평일과 다미 업지라 비록 져희 모 녜법을 직희여 관문의 나지 아닌들 뉘 녜문 아 사이라 니리오송나라사이 쟝보(章甫) 초와월(越)나라희 니니 사마다 머리털을 고 몸의 옷 버셧지라 쟝보 쓸업다 일라시니 이와 엇지 다리오숑(子頌)과경인(景仁)이 슈일 졍양문 밧긔 구경을 엿노라 니 고이치 아닌 일이라 오치형(致馨)과경인이별행(別陪行)니광직(李廣稙)이 시 잘다 일흠이 잇고 슐을 잘 먹지라 이젼 드러와실 졔 일즉댱문도(張問陶)와 두어 번 챵화(唱和)엿 고로 두 사을 인도야 가지로 차자 갓다가 도라와치형이 뎐여 왈 과연 그곳의 니러 문밧긔 왓노라 통니 나와 마자 당의 안치고 지필노 약간 슈쟉니 인픔이 휴휴(休休)야 쟝 슌실(純實) 사이오 얼골이 잠간 늙어시나 못 쥰쵸(寯超)며 벽 위 셔화 득이 거러시 기즁 화샹(畵像)과 화샹찬(畵像讚)이 이시니동기챵(董其昌)의 손조 그리고 손조 지은 글이라 글과 그림이 극히 졍묘야 만일 진본이면 보라 일 거시오 그 겻강동(江東)만슈뎨 비문 박은 거 거러시니 이홍 판셔 냥호(洪判書良浩)의평안감(平安監司)로 이실 의 지은 글이라 족 미고 아 긔록야 오홍공(洪公)이 신으로 경셩의 니럿더니 그 아낙쥰(樂俊)이 이 가져 쥬거 벽의 거러 동국 사의 문안[아](文雅)믈 긔록노라 고 그 밋션산(船山)은 노라 야시니션산은댱문돈[도](의 별호러라 고 다시 만날 긔약을 머므고 도라왓노라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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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머므다 날이 으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의 참예니 오 바람이 이 블고 일긔 심히 치은지라 비록 댱막 안 안져시나 한나 다업고 바람이 댱막을 거두쳐 잠간도 안졍치 못기의 박셕 우 도듬을 노코 안자시니 피인이 서너 겹을 에우고 슈쟉고져 쟤 만커 짐즛 연관으로 여금 말을 답라 니 말을 일나 더 모드여 플니면 모히니 이치 날을 족히 바람을 막을지라 셰폐(歲幣) 방믈(方物)을 밧치니 다태화뎐좌우 월랑의 코 을 두어 셤을 두량(斗量)다가 남 거시 잇거 간검(看儉)야 밧 던 관원이 그만라 야 두량치 아니코 무폐(無弊)이 밧치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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븍경의 니므로브터 여러 번 약대 만나되 셔히 본 일 업더니 오 관으로 도라올 예 약 여라문이 지나니 약마다 몽고 놈이 긴 곳비로 으지라 그 형샹이 의 머리며 몸이오 긴 목이 우흐로 벗첫 거유 목 며 목 아 멱이 드리웟고 다리 셰 마티며 발이 쇼와 나 굽이 업며 등이 압뒤흐로 두 치 남이 길마치 혹이 겨시니 두 이의 혹 포단을 노코 시며 혹 짐을 시러시니 짐은 셕탄 외의 다른 거 보지 못며 킈 길 반이 될 듯고 길의 킈와 방블(彷彿)나 몸이 심히 느러 극히 셤셔[셰](纖細)야 뵈지라 머리 우러러 길을 피 모양이 아니오 입의 샹해 무어 먹 거시 쇼와 튼지라 이 즘은 본 븍방의 나 거시니 힘이 능히 쳔 [근]을 싯고 삼 니 다 며 브리지 아니 집만 먹이다가 짐을 시러 면 쇼금을 집희 너허 셕거 먹이니 오뉵 일이 지나면 등의 두 혹이 더옥 기러진다 며 셰오고 짐을 시 길이 업기의 안치고 시러 다 며 몽고 놈 의[외]예 이 업지라 흉악 얼골의 괴이 즘을 고 엇개 우슭여 밧비 모라가 모양이 무셥고 우습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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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녁의샤관(寫字官)고경빈이 이곳 션의 글 지은 거 가져와시니 션 셩명은젼영이오금제현사이라 누에 치 글 여 슈(首) 븕은 조희예 삭여 박아시며 두어 쥴 셔('序) 지은 거시 이시니 대강 니 우리 싀골이 누에 슝샹치 아니더니 (內子ㅣ) 비로소 누에 치지라 이 글을 지어 뵈노라 여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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됴[포]강[각]금침상(抛却金針學採桑)[주:금바늘을 리고 캐기 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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됴됴슈녹운향(朝朝雙手綠雲香)[주:아 아 두 손의 프른 구이 향긔롭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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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긔잠됴[포]쳠우희(蠶飢蠶飽添憂喜)[주:누에 쥴이며 누에 비[] 브 근심과 깃브미 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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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득심규일야망(嬴得深閨日夜忙)[주:넉넉히 깁흔 집의 날과 밤을 밧부믈 어덧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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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귀 졔작이 족히 일 거시 업며 그나마 졀귀(絶句) 볼 거시 업나 그 안해 길인 의 만흐며 이웃 사도 그 안해 본바다 누에 치라 여시니 이곳도 즛어린 사이 잇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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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우음지라 져근 편지와 이 글을 가져 관즁(館中)의 긔별여 오 임의 박군 졔가(諸家)의 글과 글시 어더 박아 내여시나 한두 문(文士)의 글 로치믈 엇고져 노라 여시니 졔 나라희 랑치 못여 남의 나라지 랑코져 니 더옥 우읍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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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머므다 날이 으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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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 곡반을 파고 믈너와 더니 믄 고기 황지(皇旨)로 송(賜送)니 이 게유고기라 졔뎐의 믈닌 거신가 시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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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인이 니러 구경 쟤 셔로 슉덕여 지져괴기 마지 아니니 셔히 아라듯지 못나 대개 귀 거시라 일 의러라 이날치형(致馨)이용[융]복(隆福寺) 져의 구경고 와시니대명경태(景泰) 오년 갑슐(甲戌)의 지은 배라 대강 니대 이 졀 장녀(壯麗)타 니더니 젼년의 큰 집이 블이 븟고 다시 지을 이 졀 법당을 허러 그 목을 고 법당을 다른 목으로 곳쳐 지으되 이젼과 다미 업며 면의 여러 익낭이 다 즁슈 거시라 니 브 이 법당 목을 옴겨가믄 무 의 쥴 모나 그 공녁의 졍묘과 그 단쳥의 빗나미 젼의 보지 못 배오 졀 안밧 문 한[안]이 너른 곳의 븬틈업시 쟝 미안[만](彌滿)여시니 긔이 보와 공교 믈홰 형형(形形色色)이 니로 긔록 길이 업고 쥰쵸(寯超) 인믈과 션명 의복으로 흥셩 쟈 됴관과 션의 모양이 만흐며 양피 갓옷과 포 샹복(大布喪服)으로 니른 쟤 무슈니 엇진 풍쇽인 쥴 몰을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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졀 동편 어귀예 푸 이시니 각양 명죵과 뉸도(輪圖) 곳이라 푸 안희 금칠 탁 우희 큰 궤 나흘 노하시니 면 우리와 기동을 다 침향으로 긔묘히 삭여 그러시며 알프로 뉴리 겹을 리오고 뉴리 안흐로 슈노흔 댱을 드리워시니 댱즁야 인지세운(仁智瑞雲) 네 삭여시며 겻흐로 보아도 긔이 그시라 쥬인려 그 속을 구경쟈 니 쥬인이 궤 우흐로 열쇠 나흘 집어내여 뉴리 안흐로 굼글 향야 두어 번 트니 가온 골희 스로 열니이고 그 안희 자믈쇠 뉸도 모양치 라시며 밧그로 지남텰(指南鐵)을 라시니 두어 번 졀노 도라 며 궤 쇽으로셔 스로 긔이 풍뉴 소 나더니 이윽고 슈놓은 댱이 스로 녑녑히 것치이며 그 안 대초만 과 알만 사이 무슈히 나오니 다 옥으로 그랏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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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긔치와 부월을 드러시되 황뎨 알 나렬 거쟝이 낫낫치 진 거시 업셔 두어 쥴노 도라가며 안 겹 뉴리 막히여시니 코기리며 황옥교(黃屋轎)며 시위 좌우로 버러시되 스로 운동고 그 안희 뉴리로 팔구 층을 라 졀노 틀니며 슌환니 그 안 사이 요동 시브더니 홀연 두 층 금으로 근 탑을 노코 향양산(黃陽傘)을 밧쳐시며 아 쳔관(天官)이 됴회 형상을 베퍼시니 고 공교야 사라 음기 니 못 귀신의 조홰러라 젼후로 봉황이 입의 블근 됴 먹고 공즁으로셔 개 쳐 츔츄고 려오니 쳐음 열 틀므로브터 여러 번 변화 풍뉴 소 잠시[도] 그치지 아니니 그 소 쳥아야 냥금(洋琴)을 치며 황 블며 경쇠 쳐 졀죄(節調ㅣ) 샹응(相應)야 이치 반향[상](半晌)을 더니 여러 겹 뉴리와 슈댱(繡粧) 거시 례로 스로 닷치이고 풍뉴 소 라 긋쳐지니 그 신묘믈 측냥치 못지라 갑시 은 팔 냥이라 고 그 밧긔 명죵이 음기며 소 나니 졔작이 졍묘고 셔양국 뉸도(輪圖) 나히 갑시 삼십 냥 은 되니 푸의 힌 거시 갑 의논면 몃 억만 냥 될 쥴 모지라 즁국 믈을 가히 일로 짐쟉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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졀 안희 무슈 믈화와 푸의 매 거시 구여 사의게 실답고 긴요 거시 업고 샹업 손의 갓가오니 괴이타 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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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鼻煙)이라 거시 담로 그러 져근 병의 너허시니 병은 치 남되 다 호박과 금패와 슈졍 만호 튼 보로 그라시며 병을 기우려 손긋 여 코의 다히고 긔운을 드리 그으니 그 니 속을 드러가며 옴을 나 그러치 아니코 사마다 병을 치 아닌 쟤 업니 쳐음은 만 사밧긔 쟤 업더니 근 한인도 즐기지 아니리 업다 며 아국 사을 만나면 믄득 병을 쥬며 법을 쳐 니 비긔 소통니 극히 됴흔 법이라 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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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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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쳥문 밧 가온 길노 황손이 해 거듕(擧動)야 반녈(班列)의 읏듬이 되여시니 믈읫 여라믄 사이라 날마다 삼시 곡반의 우리 셧 곳의 니러 혹 벼 픔슈 무니 혹 의복 졔양(制樣)을 샹\고야 셔로 가람[라] 무며 지져괴고 부의 금관 손으로 져 므 픔슈뇨 며 신이 능히 만 말을 아냐 며 무니 그 의 심히 슈쟉고져 나 우리 능히 말을 아지 못 아니라 비록 말을 나 외국 신이 황족과 괴 거시 톄면이 블길지라 통관이 황손이 말을 뎐 다만 뭇 말을 답 이오 아모 말도 모 톄며 무럼 것도 뭇 일이 업니 황손이 극히 무미(無味)히 너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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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삼일 이후로이엄(耳掩)을 아니 쓰니 져희도 양피 외예 다른 피믈을 못 연괴라 황손이 오 이젼은 쵸피(貂皮) 모 더니 즉금 어이 아니 뇨 날이 이치 치우니 시러금 칩지 아니냐 답여 왈 엇지 칩지 아니리오마 쵸피 모 빗난 복인 고로 지 아닌 배라 니 고개 그더겨 그러타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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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국의셔 피인의 거 마으락이라 고 피인은 모라 니 피인은 머리의 거시 다만 마으락이 이라 다른 명이 업니 아국은갓과벙거지며 사모와 탕건이며감토이엄휘항(揮項)망건(網巾)평냥(平凉子)삿갓시 다 각각 명이 다르나 피인은 보 쟤 일병 모라 일니 아국 사이 거 혹 마으락이라 니면 대욕(大辱)으로 알 거시로 특별이 피인의 거 오랑캐 복이라 니믄 피인이 치 비록 모라 니나 져희도 아국의 쓰 바 녯 복이오 져희 쓰 바 오랑캐 복이믈 아 고로 혹 아국 사의망건휘항과갓슬 달나 야 초와 쓰고 셔로 톄면이 됴타 일니 만일 져희 쓴 거 아국 사려 써 보라 면 진실노 우환이로 그리 일이 젼븟터 업다 니 져희도 알으미 잇 연괴러라 날마다 황손과 슈작 예셥[셤]나(暹羅)사과회(回子)사이 녑희 셔시나 번 뭇 말이 업고 홀노 아국 신의게 날마다 삼시 아니 와 보 젹이 업니 그 흠션(欽羨) 의 가히 볼 거시오 반녈의 츌입 의 비록 왕공 대인이라도 반시 닉이 보와 혹 우음도 먹음고 지졈(持點)며 혹 길을 양야 오 도라보 쟤 만흐니 아국 신이 드러온 젹마다 피인의게 견즁(見重)미 본 이 다 니 진실노 녜의 능히 사을 감동미로다 칙 패문(勅使牌文)이 이날 믄져 나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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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의 참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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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 곡반을 파 후의 동화문으로브터 대여(大ꞈ) 틀을 매워 드려와 경운문 알 니러 노흐니 기릐 슈십여 쳑이오 크기 서너 우흠이 될지라 여 인 졔되 방이 거의 트 편 길희 쥬쳑(周尺)으로 칠팔 쳑이 남고 놉 오뉵 쳑이라 누른 네 기동을 셰오고 샹쟝을 언즈니 아국 가마 두에 트 네 귀 반시 들니고 드리암이 자 남즉며 아 누른 칠 너 기동 안희 득히 고 휘댱을 막으니 누른 비단의 뇽을 그려시며 누른 당 노흘 샹댱 우희 그믈을 시니 곳도 누지 아닌 곳이 업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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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피 옷 닙은 사 다여시 그 가온 안고 담여군(擔ꞈ軍) 여 인이 깃 즌 마으락의 븕은 옷 닙고 일졔히 메고 셔니 그 담여 법이 편쥴노 메지 아니코 각각 젹은 남그로 누른 가족 을 그라 틀의 단단이 메고 젹은 남그로 엣게예 메니 거이 완완야 샹쟝의 들임이 스로 나븟기니 심히 엄슉고 안졍지라 도로 동화문을 좃차 나아가매 각 의댱이 다 임의 문밧긔 초아시며 길 좌우의 목패 세워 좌우 반(班次) 삭여시니 습의(習儀)야 라닐 예 반녈이 문란치 아니케 미러라 시 량(巳時量)의 샹부칙(上副勅使ㅣ) 칙셔 밋 유교 밧들고 궐로븟터 나올 앏 황뇽긔 니히 셔시며 그 나마 의쟝도 못 졍졔(整齊)지라 대궐 밧긔 니매 고 죵쟤 십여 인이오 칙셔와 밋 유교 누른 보흐로 사이 등의 지고 앏셔 니 샹부칙이 그 뒤흘 고 여러 통관이 샹부칙 뒤흘 좃차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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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쥴 가셔(家書) 언문으로 통관 계문(啓文)을 쥬어 의쥬의 뎐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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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곡반의 참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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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드니 초뉵일 황뎨 됴셔야 왈짐이 츙녕(冲齡)으로브터 황고(皇考)의 교회(敎誨)고 셩시믈 밧와 형뎨 즁의 죵(鐘愛)심과 기망(期望)시믈 샹녜의 지나시더니 친히 대보 쥬시므로브터 (孜孜)히 졍 치샤 삼 년이 지난지라 놉고 두터온 셩은이 호텬(昊天)이 망극니 진실노 녜로브터 뎨왕이 궤연 알셔 위 니은 쟈의게 가히 비치 못지라 비록 공경야 황고의 유교 밧와 날노 을 밧고라 시나 내 의 아 못미 이시니 곳 일을 복을 닙으나 일월이 진기 고 모(哀慕) 무궁지라 스로 맛당이 녯 법을 쥰야 공경야 삼년상을 여 져기 모고 졍셩을 위로리라거 각이 엿오 업듸여 됴셔 밧오니 일노 황샹의 효(孝思ㅣ) 돗타오시고 츄모 무궁시믈 우러러 볼지라 신 등이 엇지 감히 번거로이 쳥리오마 업듸여 샹고건대효경(孝經)이라 의 오텬 덕(德敎ㅣ) 셩의게 더으며 예 베플므로 효도 삼다여시니 일노 텬의 효되 셔인(士庶人)과 더브러 지 아니니 만긔(萬機) 지즁(至重)지라 됴희 보고 졍 드로매 밋 교묘(郊廟)의 큰 졔 다 법졔의 관계 배라 만일 삼년상을 면 졔 광폐(曠廢) 거시오 녯날진(晉)나라신하두예(杜預)양임[암]지의(諒闇之義) 푸러 오 텬의 양암이란 말은 복을 버슨 후 심샹(心喪)을 니미오 삼년상을 단 말이 아니라 야시며 믈며 대 태(샹)황뎨 룡어샹빈(龍馭上賓)시매 황샹이 효 망극샤 호호박[벽]용(呼號擗踊)샤 녜 다 시며 슬프믈 다 시니 진실노 녜로브터 업 일이라 임의 족히 모 졍셩을 펼지라 업듸여 원니 황샹은 텬디(天地)와 조증[종](祖宗)의 부탁신 과 쳔 신의 바라 을 각야 힘써 기치신 됴셔 쥰야 구버보 졍셩을 좃츠샤 날노 을 밧고 졔도 쇼셔 신 등이 명을 기려 결졀믈 이긔지 못이다 황뎨 다시 됴셔 왈왕공 대신의 엿온 글을 피며 삼년상을 거키 어렵다 야 녯 졔도 쥰야 이십칠 일의 복을 벗고져 나 엿온 말이 능히 짐의 을 피지 못미라 짐이 황고의 국육(鞠育)신 깁흔 은혜 밧와 텬디의 그음 업지라 홀연이 대고(大故) 만나되 눈믈 드리오며 이 통니 비록 모야 을 맛쳐도 오히려 랑시던 은혜 만분의 일도 우러러 갑지 못려든 엇지 삼년상을 다 므로 효도 다다 리오 황고 님어(臨御)신지 뉵십 년의 크게 다리믈 구샤 밤들며 날이 져모도록 쵸죠시더니 밋 과궁(寡躬)의 억교[죠](億兆) 부탁시매 오히려 히 교회샤 외 다 덕화의 덥혀시며 아다온 덕이 손의게 밋쳐시니 내 텬하 신민으로 더브러 깁히 감(感戴) 배어니와 복졔 일 신민이 스로 녯 도 쥰 거시오 짐은 친히 부탁시던 을 밧고 (고)복(顧復)신 은혜 닙와 날노 을 밧고 졔도 진실노 참아 치 못며 믈며 삼년샹은 텬지 못단 말이녜긔(禮記)예 실녀시니 아모리 각여도 내 삼년상 미 진실노 맛당지라 교묘 졔와 군국즁(軍國重事) 인여 상복 가온 다리미 셔로 방해롭지 아닌지라 내 이 임의 뎡여시니 졔왕 대신은 시러금 두 번 쳥치 말고 엇지야 삼년상을 고 셔히 녯 법과 녜문을 샹고야 확실이 의논야 초 엿오라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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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뉴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곡반의 참예다 새벽의 소셰(梳洗) 파매 쥬방이 약밥을 초와 나오니 몸이 이역(異域)의 이셔 명졀을 당니 목을 느리혀 고국을 라매 암연 회푀 금키 어렵더라
43
경운문 밧긔 니니 홀연 흰 담으로 근 몽고 댱막 두 곳을 베플고 곳은 누른 보흐로 덥헛지라 역관으로 여금 탐지니 어졔밤의 대여 이 문밧긔 습의(習儀) 황뎨 댱막의 안자 보앗다 더라
44
초삼일 이후 왕공 대신 이하 여러 관원이 비록 댱막을 문밧긔 베퍼시나 뎐을 파즉 각각 그 집으로 도라가며 혹 됴방(朝房)의 드러안잣다가 오시 미쳐 다시 모히며 신시의 이치 나 홀노 우리 대풍(大風)과 극한(極寒)이라도 오히려 구지 안자 움기지 아니니 대개 관의 니미 져기 먼 고로 왕기 극난 연괴라 슈일노브터 대쇼 관원이 다 막(幕次)의 드러안자 밥을 여 먹으며 신시 지나면 흣터져 우리와 가지로 거 치니 그 의 대개 외국 신도 오히려 궐네[]의 날을 맛거 우리 엇지 편믈 리오 민가 시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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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 슈쟉여 오 우리의 능히 왕치 못믄 짐즛 고져 미 아니라 그 형셰 그러지라 그러나 우리나라 본 녜의로 일 고로 이국 사의 관감(觀感)미 이 트니 이 가히 니 덕으로 사을 항복밧다 랴 셔로 웃고 파다 황형뎨(皇兄弟) 팔친왕이 야흐로구문졔독을 엿지라 궐의 왕 젹마다 죵쟈 슈 인이 젼후로 옹위야 위의(威儀) 심히 빗난지라 궐문의 직흰 관원이 그 츌입마다 허리 굽혀 맛고 보며 얼골이 쥰영(俊英)며 의복이 션명 쟤 겻흘 좃차 여러 번 답야 므 분부 듯 모양 다가 믈너셔 이치 그칠 젹이 업니 대개 벼이 황셩 아홉 문을 다 디야 일이 대쇼 업시 다 거 후의 시 고로 슈응이 스로 번다미라 이날 오시 후 믈너나 올 경운문 안희셔 셔로 마조쳐 압플 건너 지나미 가치 아닐 듯지라 믄득 길의 음겨셔 길을 양고 눈 쥬어 보기 마지 아니니 팔친왕이 우리 도라보매 우리 존경 의 보고 현연(顯然)이 블안 빗치 이셔 도혀 길가 됴방으로 드러갓다가 우리 문을 지날 의 도라보니 비로소 됴방으로 나와 건쳥문 안흐로 드러가며 우리 도라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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킈 칠 쳑이 남고 얼골이 슌실나 별노 귀 골격이 업고 범샹 사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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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뎨 이졔 두 형과 두 아이 이시니 형은 곳 뎨 팔의친왕(儀親王)이니 명은영션(永璇)이오 뎨 십일셩친왕(成親王)이니 명은영(셩)(永瑆)이오 뎨 십칠 친왕이니 명은영션이라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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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뎨 열 다 친왕으로 대통을 닛고 명은영염이라 첫 번은 긴[길] 영 항녈이러니 텬 되매 길 영 곳쳐 로 영로 다 더라
50
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니라
51
날마다 반녈의 나아가면 피인이 믄득 슈쟉고져 니 역관이 만일 답 배 이시면 십 나 더 모히니 비록 열 입이라도 슈응 길 업니 곤야 가히 견지 못지라 일노 피인이 뭇 배 이시면 믄득 화부동이라 일니 말을 아라 듯지 못노라 말이라 이 즁원 말이니 피인이 혹 뭇다가 이 말노 무미히 방챠(防遮)믈 보고 말 아닛 의 짐쟉고 웃고 오 화부둥이란 말은 홀노 즁원 말이 아니냐 답되 맛내 이 말 마 아노라 대 즁원 문로 답이 되니 뭇던 쟤 더옥 우셔 오 이 한만 말은 능히 알고 뭇 말은 모로노라 니 사을 엇지 이치 박뇨 야 여러 번나 혹 슈쟉이 되나 대져 라온 역관도 말을 별노 고져 아닐 아니라 슈쟉 곳 면 통관이 핀잔스러이 지져 오 말을 아니면 사이 어이 이치 모히리오 니 역관은 통관을 져허야 그 의 거리지 못 쥴노 아 고로 말을 시작다가도 통관의 지즈믈 본즉 즉시 근쳐 답지 아닌지라 그러나 슈쟉이 이시나 업시나 사 모히기 날마다 덜니 일이 업더니 오은 당샹 역관윤갑죵이 라 드러와 피인의 말마다 다 로 답니 모른[든] 사이 그 말믈 대락(大樂)야 닷토와 앏흐로 나아와 말식이라도 다 뭇지라 쟝 죵의회국사 나히 말코져 여 갓가이 나오니 상뫼(狀貌ㅣ) 녕츄(獰醜) 즁 검기 슛쟝슈의셔 심고 갓가오매 비린 더옥 사의 치지라윤역(尹譯)이 괴이 넉여 뒷거치며 화부둥이라 고 게을니 답니회국사이 븟그리고 노야 묿[물]더[러]가지 아니코 즁어리 말이윤역을 침욕(侵辱) 귀졀이 만흔지라윤역이 견지 못야 얼골이 븕으며 고개 슉여 말이 업다가 머믓거려 믈너안지라 대져회국사이 아국 사이 져희 더러이 너겨 말 아니믈 짐쟉야 처음브터 날마다 갓가히 셧시나 감히 앏흐로 니러 슈쟉 의 두지 못고 반녈 이로 옷기이 셔로 다으면 극히 괴로온지라 통관이 우리 긔을 짐쟉야 모든회국사들려 믈너셔라 니 이리여도 거리 일이 업고 슌히 믈너가더니 이날은 여러 사의 슈쟉믈 됴히 너겨 홀연 당돌 으로 말코져 다가 믄득 말을 모노라 니 져희도 챵 잇거든 엇지 분치 아니리오회의논 모양이라윤역의 욕먹고 믈너가 거동이 겻 보 쟈도 크게 우읍더라
52
통관이 와 뎐 황지(皇旨)로 셩졀(聖節) 방믈을 도로 내여쥬니 셩졀 방믈은 태샹황 일의 밧치 믈죵(物種)을 니미라 태샹황 일이 칠월이 아국 신이 별노 드러오지 아니코 마다 동지 (冬至使行)의 방믈을 미리 가져오 법이러니 태샹황이 셩졀을 지지 못고 상난 고로 방믈 바드미 블가타 야 도로 쥬미라녜부의 엿온 글월의 오 건륭(乾隆) 십일 년겨을의됴션국이효셩황후(孝聖皇后)[주:태샹황 모후라] 온 열 쟝 글월과 글월의 로인 녜믈 열 깃시 잇더니 그 이틈[듬] 졍월 이십삼일의효셩황후상 만난지라 각의셔 엿오믈 인연야 녜믈을 신의 마을의 두엇다가 후편의 도로 가져가게 문젹(文籍)이 잇지라 이번도됴션국의셔 대 태샹황뎨 오 녜믈 명과 됴[표]문(表文) 아홉 댱이 이시니 젼례 의거야 신의게 도로 맛겨 돌녀보며국왕 보 믈건과 신을 샹 쥬 믈건을 명을 좃챠 보 믈건을 분리라엿더라
53
다 가지 명은 곳 동지와 졍됴(正朝)와 셰폐와 셩졀과 샤은(謝恩)이니 셩졀 명을 졔면 네 가지 명이 된다 말이오 샤은 명은 아국 표풍(漂風) 셩이 즁원 바다 니매 뭇흐로 돌녀 보믈 샤례다 말이러라
54
이날 황뎨화신(和珅)의 큰 죄 스므 가지 혜여 즁외예 반포여 오 어졔 임의 됴지 리워화신의 죄샹을 베러 각각 독무(督撫)게[주:독무 법 맛튼 벼이라]효유(曉諭)야 논죄라 엿더니직역 춍독(總督) 벼흐[후]계당이 쥬왈(奏曰)화신이 텬셩을 다 일코 다시 인 아니라 가지가지 패역며 블신지죄(不臣之罪)와 나라 좀이 되며 셩의 병 되오미 거의쳔쵸(川楚) 도젹교비(敎匪)와 트며 탐독고 방탕미 갓 념치 업 쇼인이라 을 일허 밋친 병든 쟈와 다미 업고 눈의 군샹이 업 니 대역뉼(大逆律)을 의거야 능지야 죽이기 쳥엿지라
55
계 분 참남고 망령되여 법졔예 어긔며 갓가온 군현의 젼당풍와 믈을 모도와 두어시믈 사실(査實)고 년일화신의 금은 등믈을 쵸츌(抄出)믈 의거야 특별이 다시 뭇 사의게 효유노라 짐이건륭 뉵십 년구월 초삼일의 황고(皇考)의 황태 봉시믈 닙온지라 오히려 됴셔 반포치 아니여셔화신이 초이일의 짐의 앏 이셔 문져 니 로 되다 야 만 일을 누셜야 거연히 제 힘이 이스므로 공을 삼으니 그 큰 죄 가지오 황괴원명원(圓明園)의 계실 의화신을 블너 보실 제 내 을 고 바로 궐 좌문의 나아가졍광명뎐(正大光明殿)을 지나슈산(壽山)어귀지 니니 아비 업며 님군이 업지라 그 큰 죄 두 가지오 다리의 병이 잇노라 인연여 좌의교(坐椅轎) 고 대예 메여 드러오며 남여 고 신무문의 츌입니 여러 눈의 보 배로 조금도 긔탄미 업니 그 큰 죄 세 가지오 궁즁으로셔 나온 녀 (娶)야 버금 안해 삼아 념치 도라보미 업니 그 큰 죄 네 가지오 황괴 군(軍士) 일노 쥬야의 념녀시거화신이 각도 군즁의셔 엿 문셔 임의로 믈니쳐 의 긔망(欺罔)코져 미 이셔 군 일이 날이 오라도록 디 못니 그 큰 죄 다 가지오 황괴 셩궁(聖躬)이 평안치 못시되화신이 조금도 근심 빗치 업셔 양 나아와 뵈옵고 믈너가 외뎡의 인원과 슈작야 말과 우이 샹시와 트니 을 상실고 병드러 밋친 모양이라 그 큰 죄 여섯 가지오 젼년 겨을의 황괴 병환(病患)을 강잉(强仍)야 글을 일워 됴서(詔書) 리오실 글 획이 이이 분명치 못 곳이 잇거화신이 졔 감히 입으로 일라 업니만 지 못다 야 별노 신야 됴지(朝旨) 비의(非議)야 니 그 큰 죄 닐곱 가지오 젼의 황고 칙지(勅旨) 밧드러 졀노 여금니부(吏部)와형부(刑部)무 맛타 다리라 고 미좃차 군의 쓰니 부비(浮費) 라지 못믈 인연여 져 닉이 슈관이라 야 유지(諭旨) 밧드러 여금호부(戶部)의 여러 가지 일을 겸야 다리라 엿더니 졔 내호부무 오라지 아니야 사이 가지고 이시 변경(變更)미 젼녜(前例)되여호부다른 관원(官員)이 일도 참셥(參涉)야 의논치 못게 니 그 큰 죄 여 가지오 샹년(上年) 셧의규셰글노 엿오슌화와귀덕 두 곳 도젹이 쳔여 인이 둔(屯聚)야달와니마 쟝의 쇼 겁박(劫迫)야 아며 두 목슘을 샹해(傷害)고쳥(靑海) 니러 방히 노락질다 엿거화신이 그 엿온 글을 가져 도로 보고 슘겨 파단치 아니야 젼혀 변방(邊方) 일노 모 톄니 그 큰 죄 아홉 가지오 황괴 승하(昇遐)시매 짐이 몽고왕(蒙古王)의 효유(曉諭)야 역질(疫疾)을 지지 아닌 경성(京城)의 드지 말나 야거화신이 짐의 효유믈 쥰치 아니코 제 을 니 역질을 지 쟤 다 반시 오지 말나 야 젼혀 국가의 외번(外蕃) 무휼(撫恤) 을 도라보지 아니니 그 두물 실노 측냥치 못지라 그 큰 죄 열 가지오태(太學士)소능(小陵阿ㅣ)두 귀 막히고 쇠로(衰老)야 일을 감당치 못 거시어 졔 아한[화]림(和琳)의 인친(姻親)이라 야 고호(顧護)고 은닉(隱匿)야 엿지 아니고시랑(侍郞)오셩난과 태복시(太僕寺)[주:벼] 경(卿) 니광운은 다 일 졔 집의 이셔 글 로치던 배여 졔 드러셔 공경(公卿)의 계뎨(階梯)의 니르고 겸야태의 졍 맛지니 그 큰 죄 열 가지오 군긔(軍旗)의 일흠을 긔록 관원을화신이 임의로 거드쳐 버려 죵죵 오지 믈 가지가지 긔록치 못지라 그 큰 죄 열두 가지오 져 즈음 화신의 집을 젹몰(籍沒)야 사실(査實) 남목(南木)으로 지은 집이 참남고 샤치야 법의 넘고 그 다모각이란 집과 밋 문 얼골과 집 졔되 다명슈궁졔도 의방(依倣)고 그 동산의 민 배 다원명원(圓明園)봉대(鳳臺)와요(瑤臺)와 더브러 다미 업니 아지 못게라 이 무 심쟝(心腸)이뇨 그 큰 죄 열셰 가지오계쥬 분묘의 거연(居然)히 궁뎡(宮庭)을 베플고 슈도(隧道) 열니 두매 갓가이 사 사이 다 일기화신의 능이라 니 그 큰 죄 열네 가지오 집안 감쵼 바 보의 진쥬(眞珠) 그러 손에 디 구이 이 드이 나무니 대(大內)에 비교 그 나 더며 그 큰 진 어용(御用) 마으락이 징의 비기매 더옥 큰디라 그 큰 죄 열다 가지오 보셕 증의 져의 거시 아니어 감촌 바 진짓 보셕 증 십여 개 이시며 덩이로 잇 보셕(大寶石)이 그 슈 혤 길 업고 무부(內務府)의 입 만흐니 그 큰 죄 열여 가지오 집안 은냥과 의복 믈건이 그 쳔만의 넘으니 그 큰 죄 열닐곱 가지오 두 담 틈의 감초와 둔 황금이 이만 뉵쳔 냥이오 속의 므든 은이 여 만 냥이니 그 큰 죄 열여 가지오 경셩(京城) 갓가은통(쥬)(通州)와계쥬(薊州) 다 뎐장(田莊) 푸 잇지라 그 밋쳔을 사실매 십여 만 냥의 리지 아닌지라 읏듬 대신(大臣)으로 아로 쇼민(小民)으로 더브러 니(利) 토니 그 큰 죄 열아홉이오 졔 집 사뉴금은 하쳔노복(下賤奴僕)의 리지 아니거 그 가산(家産)을 살츌[]매 이십여 만 냥의 니며 큰 구과 진쥬(眞珠) 엄이 무슈니 만일 시겨 두로 징(徵索)지 아니면 엇지 이치 만흐며 요부기의 니리오 큰 죄 스무 가지며 그 나마 탐독(貪黷)며 광패(狂悖)며 망녕된 곳을 오히려 다 혜기 어려오니 진실노 고금의 드믄 배라 계당의 근본 엿온 글을 가져 경셩(京城)의 잇 문무(文武) 삼품 이상 관원의게 맛져 샹고여 펴 을 다야 공평(公平)도이 의논여 엿오며 이 안 만일 소견이 잇거든 베퍼 엿오미 무방(無妨)고 만일 소견이 다 트면 밧비 그 엿올 거 가져 드리라복쟝[강]안(福康安)은 한아비와 슉질(叔姪)이며 형뎨 로 두터온 은혜 바다 더옥 다른 사의 비 배 아니라 그군긔대신(軍機大臣)으로 이셔 니매화신으로 더브러 됴셕(朝夕)으로 모도혀 이시니 므릇화신의 탐독(貪黷)야 일을 경영(經營)매 죵죵 법[범](凡)되지 아니 죄악이 장 만흔지라 황고의 진즁(珍重)신 은혜 바다 샹해 홀노 뵈올 이시니 만일 과연화신의 방며 완롱(玩弄) 각 죄목(罪目)을 가져 실샹을 의거야 바로 엿오면 다른 사의 엿와 논박(論駁) 비기건 더옥 확실야 증험(證驗)이 이실 거시라 황괴 반시화신의 죄 즁히 다려 법을 바로게 실 거시니 젼브터 일을 과단(果斷)며 친구 죠종(操縱)던 죄안(罪案)에 엇지 일 져기 관가미 이시며 엇지 맛당이 군국(軍國)의 즁 무 그릇치미 갈치 이에 니리오 만일 니 황괴 년셰 놉오시니 감히 우러러 성녀(聖慮)의 번거히 못노라 진 응당 짐의 알 이셔 실샹을 웅거야 바로 베플 거시여 삼년 의 일즉화신의 죄안(罪案)을 가져 엿와 밋 일이 업니 그 부동(符同)야 눈 금젹이며 슘기던 졍 현연지라 만일복쟝[강]안(福康安)이 짐의 알 이셔 말이라도 엿온 배 이시면 짐이 결단코 즐겨 져 일변 벼을 삭(削)고 잡아 뭇지 아녀실 거시오 졔 집을 젹몰(籍沒)매화신의게 밋지 못나 구과 보 그 쳔만의 넘으니 제 집의 맛당히 이실 배 아니라 그 탐독고 올흔 일을 모름이 곳화신의 버금의 이실지라 일변 죄 의논라 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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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館)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의 참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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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습의(習儀)지라 신(使臣)이 지영(祗迎)을 다 거 젹이 일즉 드러가니경운문(景運門)밧긔 잇 댱막을 다 샤정(射亭) 앏 젹은 문밧긔 버렷지라 부(副使)와 가지로 젹이 댱막의 안잣더니 이윽고통관이 인도여 도경운문밧긔 이젼 모히던 곳의 니니 가온대 벽돌노 흔 곳의 누른 탁 노하시니 면이 두 간은 되지라 그 우희 지폐(紙幣) 싸하시니 놉희 두 길의 지나고 누른 보흘 덥헛지라 지폐 왼권 누른 됴희로 두 머리 뭇거 누누(累累)히 하시며 븍으로 흔 곳은 속이 젹이 궁글게 부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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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辰時) 밋쳐 반녈(班列)의 드러가니건쳥문(乾淸門)밧긔 누른 댱막을 베플고 그 안 상탁(床卓)을 셜(排設)여시며 반녈의 참예 쟤 젼의셔 만흔 고 동셔반녈(東西班列)을 모도와 동편 노 서게 여시니 대개 셔편 을 댱막 베픈 곳의 핍근(逼近) 연괴라 녜(行禮) 의 믄져 번 고 번 고두(叩頭)니 이 분향(焚香) 졀오 섯다가 즉시 도 가더니 문(門) 안흐로 무 글 닑 소 나니 이거 독츅(讀祝) 소라 며 닑기 매 곡(哭)고 번 고 세 번 고두고 인야 다시 럿더니 두 사이 양피(羊皮) 갓옷슬 초고 탁(卓子) 마조 들어 나오되 누른 보로 덥헛지라 졍문(正門)으로브터 밧드러 나오니 팔왕(王)이 뒤흐로 좃고 십일왕과 십칠왕이 그 뒤흘 라 나오 곡며 니 반녈의 참예 쟤 다 미좃차 나올 약간 시위(侍衛) 댱막 겻 둘너 잇고 슉경(肅敬) 의 이시니 혹 니 황뎨 댱막의 니러 지송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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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나매 환도(環刀) 여러 사이 피편(皮鞭)을 들어 문밧긔 잇던 반녈(班列)을 치워 샤정 뒤흐로 보고 쳔관(千官)이 황망(慌忙)야 거을 밧비 거르니 혹 니 황뎨경운문안 니럿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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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흘 곳의 니러 탁(卓子)의 밧드러 온 바 탁 우 븍편 궁근 곳의 노코 블을 지니 이 곳 태샹황(太上皇) 샹 날 의 썻던 마으락이와 의복이라건쳥문을 날 젹브터 쟤 다 망극(罔極)야 거동(擧動)이러니 밋 블을 노코 반녈의 잇 쟤 다 번 며 세 번 고두고 녜 매 소 들어 더옥 통(哀慟)더니 십일왕과 십칠왕과 열다엿 살 먹은 쇼년이 가지로 니 야 믄져 드러가니 황뎨(皇帝) 야흐로 문의셔 기리 고로 밧비 드러간다 며 쇼년은 곳 팔왕의 아이라 니 얼골이 단졍고 묘더라
62
혹 니 오날은 곳 하의 졔(祭) 지 날이니 쳔관(千官)이 크게 모히엿다 니 장(葬事) 젼의 므 텬졔(天祭) 녜 이시리오 모 말이러라
63
팔왕이 장 뒤 드러가되 븟들니여 호통(號慟)며 그 뒤 라 안흐로 드러가 쟤 만터라 우리 문밧긔 믈너 잇더니 이윽고 탁 식믈(食物)을 황지(皇旨)로 송(賜送)되 탁녜부(禮部)관원(官員)의 댱막으로셔 왓지라녜부관원 말을 보여 식믈만 가져가라 나 송 거 그릇 손의 드러 왕미 가치 아닐 듯야 탁지 가져오니 그릇 스므나므니오 사당(砂糖)가로 석근 이며 여러 가지 실과와 져육과 게우고기러라 부방(副房)으셔 른 하인의게 고고 호고 피인(彼人)들이 무슈히 니러 귀 음식이라 며 역질(疫疾) 아니 아희 먹으면 됴타야 구(求)호니 쥬니라 관의 도라와 진 후져관윤명종이 드러와지라 만리 이역의 고국 사을 만나니 반가오미 비 업며 여러 쟝 가셔(家書) 어드니 만리 밧긔 년모(戀慕)던 회포 져기 위로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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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의 참예니라
66
이날 화신을 (賜死)다 니신이 가도임으로브터 됴뎡(朝廷)이 토와 글을 올녀 죽이기 쳥지라신의 며리 공쥬(公主)는 곳 황뎨의 젹은 누의라 일야(日夜) 톄읍(涕泣)야 그 신톄(身體) 온젼이 기 쳥대 황뎨 허치 아녓더니 이날 능지(陵遲)라 여태(太學士)동고(東皐)와뉴용(劉用)이 엿오신의 죄 만유경(萬死猶輕)이오나 일 션됴(先朝)의 대신(大臣)이라 원컨 버금 뉼을 조지라 거 황뎨(皇帝) 비로소 허야 드여 약(藥) 그릇과 칼 나 깁 필을 리와 여금 진(自盡)라 고 인야 다형부(刑部)의 나아가 영결(永訣)라 니뉴용과동괴 동(同僚ㅣ)라 슐을 부어 영결화신이 죽기 님(臨)야 졀구(絶句) 일우니 그 글의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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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년몽환진(五十年來夢幻眞)[주:오십 년 의 이 을 변환엿더니]
69
금됴탈[분]슈샤흥진(今朝分手謝紅塵) [주:오날 손을 노하 홍진을 샤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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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향연시후신(認取香煙是後身) [주:다른 예 함용뎐의 믈을 리 에 향긔로온 가 이 후신인 쥴 알니로다]
71
글짓기 매 목야 죽다 며신의 아 부마(駙馬)형부(刑部)옥(獄)의 노흔 후의 궐의 두엇다가 이날 비로소 명야 부(父子ㅣ) 영결라 고연좌법(連坐法)을 지 아니다 더라
72
쳐읏 듯기의복쟝안(卜將安)이화신으로 더브러 옥의 리왓다 더니 밋 십뉵일 반포(頒布) 됴셔(詔書)의 니되화신의 버금이라 일변(一竝) 죄 의논라 여시나 필경 므 죄 더은지 셔히 듯지 못고 혹 니화신을 죽일 복쟝안을 녀 그 죽으믈 보게 엿다 나 이 셔히 모너라
73
화신이 옥의 가도여실 예 글이 이시니 여시
74
야명여허(夜色明如許)[주:밤빗치 기 이 흔지라]
75
년원몽(百年元似夢) [주:년이 원간 과 튼지라]
76
차여곤막신(嗟然困莫伸)[주:슬프다 나 곤믈 펴지 못노라]
77
습왕노신載枉勞神)[주:스므나믄 쇽졀업시 졍신을 슈고죳도다]
78
실암난모(室暗難靉暮)[주:집이 어두오매 져믄 거 헷치기 어렵고]
79
셩신환일(星辰環冷日)[주:셩신은 찻 날의 둘니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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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고블견츈(墻高不見春)[주:담이 놉흐매 봄을 보지 못리로다]
81
우셜읍고신(縷絏泣孤臣)[주:우셜의 외로온 신하 울녓도다]
82
경샹젼(對景傷前事)[주:경을 야 이젼 일을 각니]
83
여뇨무긔(餘生聊無幾)[주:남은 인을 혜아리건 여러 날이 업니]
84
희오신(懷才誤此身)[주:조 픔으매 이 몸이 그릇첫도다]
85
공부구즁인(空負九重仁)[주:쇽졀업시 구즁의 어지믈 져렷도다]
86
이 글이 대져 다 나라흘 원망 의라 이 글과 우 긔록 졀구(絶句) 임의 박아 두로 돌니니 피인의 글일 아니라 그 글 의 됴치 아니커 간(開刊)야 셰상의 니 알 길이 업더라
87
신(珅)이 죽은 후의 동복(僮僕) 누(百)여 인과 시쳡(侍妾) 삼여 인이 오히려 옥즁(獄中)의 잇다 며 계집은 갑 졍야 발(發賣) 그 얼골의 고으며 믜오믈 가 야 더 얼골을 가리워 가도와 사 쟈로 여금 보지 못게 다 더라
88
관(館)의 도라오매치형(致馨)이슝문문(崇文門)밧긔 남방(南方) 션 머므 곳의 가 슈쟉고 왓더니 션니운(李雲)의 별호(別號)완운(阮雲)이니 효렴(孝廉)의 히여 야흐로무부(內務部)교습(敎習)이란 벼을 엿고셥등교(葉登喬)의 별호균(均表ㅣ)니 효렴으로함연궁 교습(含煙宮敎習)이 되엿지라 두 션 다졀동현사이니 일젼치형이 뉴리창(琉璃廠)의 나갓다가 (冊) 져의셔니운(李雲)을 만나자 엿더니 이날경인(景仁)으로 더브러 고 도라와시니 대강 니 두 션 연공(年貢)의 히여 황셩(皇城)의 밋츤 지 십여 년이라 인믈(人物)과 죄 장 쇽되지 아니코 그림과 글시 졍묘(精妙)지라 글을 지으매 쵸(草) 일우지 아니코 지필(紙筆)을 가져 이젼 지은 거 니 심히 민쳡(敏捷)다 니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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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황(張皇) 슈쟉을 다 긔록지 못며 슐과 음식을 내여 졉니 슐을쇼흥쥬(紹興酒)라 일니 남방쇼흥(紹興)셔 나 슐이며셕(海石)이란 것슨 바다 고기 일홈이니 마시 먹음즉고 실과의무화과(無花果)와낙화(落花生)이 이시니무화과졀강(浙江)의셔 나 거시로 치 업고 열 매치여 크기비(榧子)만 고 마시인(杏仁)과 튼 고낙화은쵹(蜀)셔 나 거시로 월의 치 픠되 치 러져 모 쇽의 뭇치이면 스로 열되여 콩곳토리 트 겁질을 히면 혹 둘도 이시며 셋도 이시니 마시호도(胡桃)의라 대져 긔이 실괘러라 손을 졉 방이 이곳 사 자 방이로 캉을 미지 아녓지라 다만 굽 잇 평샹(平床)을 노코 방쟝(房帳)치 그러 면을 리오고 금침(衾枕)을 노화시니 괴히 너겨 자 곳을 무니 답왈 우리 남방 사이라 남방 풍쇽은 캉을 미지 아니코 자 곳이 다 이와 트니 남방인(南方人)이 만일 더은 캉의 거쳐면 피 토야 병이 드니 우리 븍방(北方)의 손이 되연지 여러 십 년이 오히려 남방 풍쇽을 리지 못니 엇지촛(楚)나라죄인(罪人)이 녯 소 잡음과 다리오 야 어(語次)의 침침히 강개 의 낫타나니 대져 긔졀(氣傑) 션라 니너라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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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의 참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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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당샹 역관(堂上譯官)홍인복(洪仁復)이 로지라 곡반(哭班)의 사이 홍역(洪譯)려 무로부(副使ㅣ)몃 픔(品)샹(宰相)이뇨 답왈가(加資) 이픔이오 벼은녜조 판셔(禮曹判書)로 대국녜부(禮部)샹셔(尙書)와{와} 트니라 우 문왈셔장(書狀)은 무 벼이뇨 답왈 본옥당(玉堂)벼노옥당을 겸엿니라 그 사이홍역(洪譯)려 니 그 몃 픔 벼이뇨 답왈 나도 이픔 벼이로다 오부(副使)도 이픔이며 그도 이픔이어 그 손을 고 뒤 셔시니 톄뫼(體貌) 어이 도히 다르뇨홍역이 오 픔(品數ㅣ) 트나 다만 아문(衙門)이 다로기예 그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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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픔 흐면 어이 아문이 다르다 뇨니부(吏部)와병뷔(兵部ㅣ)무 놉흐며 즘이 잇시리오홍역이 초두(初頭)로브터 답이 만환(漫漶)코져 거 뭇 쟤 더욱 근본을 알고져 지라 그 슈쟉 즈음의 뭇 이 부 명(明白)고져 며 답니 부 모호(糢糊)코져 니홍역(洪譯)이 젼혀 신(使臣)은 한어(漢語) 모른다 여 알셔 슈쟉이 이러나 어이 언(此言)을 짐쟉지 못리오 대져 나통관(通官)이라 면 괴롭지 아니 거시어 이국(異國)을 근본(根本)을 리오고져 야 말이 졈졈 굽듀이 의 이시니 우읍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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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사은 튼 풍쇽에 업셔 혹 변방(邊方)의 둔을 바치고 벼을 엿 쟤 아국(我國) 사과 슈쟉다가 그 벼 계뎨(階梯) 무면 슘기지 아니코 녜로이 답니 슌실(純實)믈 볼지라 아국역관은 이곳의 이러 벼을 무면 부홍노시(鴻寺)관원(官員)이로다 기의 비쟝(裨將) 오 쟈도 그 라 가지로 일니 므홍노시(鴻寺) 관원만븍경(北京)드러오리오 아국 사은 블관(不關) 일이라도 부 교(巧邪) 나타내고져 니 이곳 말에 니몽고(蒙古) 극히 츄(醜悖)니 속의 도혀 갈고리 업고고려(高麗) 비록 브드러오나 속의 일 갈고리가 잇다 니 이 아국 사이 스로 지목(指目)을 어드미라 어이 지 아니리오 이날치형(致馨)이송(子頌)을 조차텬쥬당(天主堂)을 보고오다텬쥬당은 셔양국(西洋國) 사 머므 곳이라 셔양국은 셔텬(西天) 바다 잇 나라히오즁국의셔 슈만 리 밧기라 녜로브터즁국을 통 일이 업더니대명(大明)홍무(洪武)초의 비로소 됴공(朝貢)고만력(萬曆)년간의 셔양국 사이 나와 녁(冊曆) 들기로흠텬관(欽天官)벼을 쥬어 로 나와 살게 니 대져 텬문셩샹(天文星象)과 츄보(推步)야 녁 드 법은 극히 셰밀야 텬지 도슈(天地度數) 낫낫치 의논야 셰월 절후(歲月節候) 틀니게 아니미 녯 사의 밋지 못 배 잇고 그 나라 풍쇽이 장 공교(工巧)야 온갖 긔계(機械) 졍묘(精妙)히 그니대명션덕(宣德)년간의 일즉왕삼보(王三輔)란 사을 보내여 셔양국의 니러 긔이 보와 이샹 긔명(器皿)을 무슈히 어더 왓지라 그 후 셩화(成化) 년간의 됴뎡이 못 완호(玩好) 구감(內監) 사을 보내여병부(兵部)의 니러왕삼부의 셔양국 가던 노졍긔(路程記) 즈니 예항츙이란 사이병부(兵部)샹셔(尙書)오뉴대하란 사이낭즁(郎中)이 되엿더니 밋감(內監)이 니름항츙이아젼을 명여 고(庫)의 드러가 노졍긔(路程記) 질 뉴대해믄득 믄져 드러가 어더 내여 다른 곳의 지 못게 감초고 나왓지라 아젼이 지 못거항츙이 아젼을 볼기 쳐 다시 슈험(搜驗)야 죵시 이치 슈일을 즈 죵시 업지라뉴대해모 톄야 구지 말을 아니터니 간관(諫官)이 년야 샹소(上疏)야 셔양국의 사을 보쇼셔 니 노졍(路程)을 알 길이 업지라 인야 즁지엿더니 그 후항츙이 아젼을 블너 힐난(詰難) 고즁(庫中)의 문셔(文書) 비록 셰쇄(細ꝯ) 거신들 어이 일허실 니 이시리요 여뉴대해겻 잇다가 희미히 우어 오왕삼뵈셔양을 녀 도라오매 은젼(銀錢)과 냥식(糧食)을 슈십 만을 허비고 사이 도라오지 못 쟤 슈 모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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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보 어드나 국가(國家)의 무 유익흠이 이시리오 이 큰 폐단이라 대신(大臣)이 맛당히 졀이 간(諫)여 막을 일이니 노졍긔(路程記) 비록 이시나 맛당히 져 리미 해롭지 아닌지라 엇지 구여 그 이시며 업믈 구(究覈)고져 뇨츙이대하의 일을 짐쟉고 송연(竦然)야 위의 려와 대하의게 두 번 졀고 샤례야 오 공(公)의 음덕(陰德)이 젹지 아니니 내 위예 오라지 아니야 맛당이 공(公)이 도라오리라 더니 그 후의 과연병부(兵部)샹셔(尙書)의 니른지라 이 일을 명(明史)의 일라 지금지 뎐여시니 셔양의 긔믈(奇物)과 보 고금의 유명 곳이라 이러므로대명이후로 이 지 그 사을 내여와 치 아니코 근 쟉픔(爵品)을 쥬어 후록(厚祿)을 먹이고 녁(冊曆) 글기를 전혀 맛기니 그 사이 번 나오면 다시 도라가지 아니고 각각 졔 나라 법으로 집을 지어 로 거쳐고 즁국 사과 혼잡(混雜)지 아니니 동셔남븍 네 집이 이셔 일홈을텬쥬당(天主堂)이라 니 그즁 셔편의 잇 집이 졔도(制度)와 긔믈(器物)이 더옥 이샹고 두 사이 잇더니 나흔 죽언지 두 라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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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형이 니졍양문(正陽門)알프로 지나현무문(玄武門)을 향야 셩(城) 밋트로 슈리(數里) 야 먼리 라보매 업 놉흔 집이 공즁의 혀나고 기와 니은 졔양(制樣)과 지 우 셰운 긔믈(器物)이 독도 며 말도 흐며 형용 길이 업고 그림에도 보지 못던 졔되라 뭇지 아녀도텬쥬당인 쥴 짐쟉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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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문(門) 칙건턴쥬당(勅建天主堂) 다 시니 태샹황(太上皇) 어필(御筆)오 동편으로 젹은 문(門)이 이시니 이 문(門)을 들매 두 편의 각(彩閣)을 세오고 남향(南向)야 십여 쟝 놉흔 집이 이시니 아로삭인 창(窓)과 비단 발(簾)이 예 졔도와 르고 발을 들고 문을 열 굴속의 드러가 것 고 사의 소 공즁의 맛초이지라 이곳 텬쥬(天主) 위 곳이라 그 안히 남븍으로 여라믄 간이오 동셔 오뉵간이라 텬장과 람벽과 간살을 막은 거시 조각 남글 드리지 아니고 젼혀 벽돌노 무어시니 그 안히 궁글고 싀훤야 임의 그 이샹 졔도 짐쟉 거시오 븍편 벽 우희 당즁(當中)야 사의 화샹(畵像)을 그려시니 계집의 샹이오 머리 프러 좌우로 두 가을 드리오고 눈을 츼 하을 라보니 무(無限) 각과 근심는 거동이라 이거시 곳 텬쥬(天主)라 사이니 형톄와 의복이 다 공즁의 여 셧 모양이오 션 곳의 깁흔 감실(龕室) 트니 첫 번 볼 졔 소샹(塑像)만 너겻더니 갓가이 간 후의 그 그림인 쥴을 치니 년긔(年紀) 삼십 셰 남즉 계집이오 얼골빗치 누고 눈두덩이 심히 검프니 이 샹해 눈을 칩 그러가 시부고 닙은 거슨 너른 긴 옷시로 옷쥬름과 졉히 거시 요연(瞭然)야 움일 니 텬하의 이샹 화격(畵格)이오 그 알 향노(香爐) 노코 향(香)을 픠오니 향긔 치이지 아니코 화샹 셔편 벽 밋트로 큰 탑을 노코 우희 뇽(龍) 그린 방셕을 고 민 거시 극히 화려니 뉘 안 곳인지 황뎨(皇帝)나 안즐 배오 샹인(常人)의 안즐 곳이 아닐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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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셔 벽의 각각 여라믄 화샹을 그려시 다 머리털을 느리치고 댱삼(長衫) 튼 옷 닙어시니 이 셔양국 의복 졔된가 시브고 혹 아희 안흔 모양을 그려시 아희 눈을 지릅 놀나 형샹이라 부인(婦人)이 어만져 근심 빗치오 늙은 나희 겁여 손을 묵긔 므어 비 거동(擧動)이며 부인이 병든 아희 구완 모양이로 우희 흰 새 개 버리고 부으리로 흰 거 어 부인 니마의 쏘이며 텬쟝(天上)의 방으로 구이 예워시되 어린 아희들이 구 쇽으로 머리 내여 보 거시 그 슈 혜지 못며 혹 쟝 러지 거동이라 노인이 손바닥으로 하을 향야 바드려 톄니 인믈(人物)의 졍신(精神)이 두어 간을 몰너셔 보면 아모리 보와도 그림으로 알 길이 업시니 긔괴(奇怪) 황흘(恍惚)야 오셔시 이 셧거워 됴치 아니터라 알 사이 인도(引導)니 그 안 별노 사이 왕 업 알플 지나 쟈 믄득 무릅흘 고 지나며 첫 번 구경 젹브텨 셔편 벽 밋 되놈이 다리 고 눈을 아 슘소 업시 안져시니 므 의 쥴 모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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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으로 벽을 의지야 놉흔 누각(樓閣)을 글고 (彩色) 닥다리 벽으로 하 오르게 야시며 난간 안흐로 긔이 악긔(樂器) 버려시니 이 셔양 사의 근 거시라 틀을 음기고 발을 트러 졀노 풍뉴(風流) 소 내게 거시더라
100
누(樓)의 려 븍으로 도라가 집을 졍히 미고 벽의 화상을 며시며 벽 밋트로 긴 탁 노코 우희 관(冠)과 의복을 노하시니 셔양 사의 경(京)의 올젹 닙 의복이라 옷슨 검고 누른 빗 댱삼(長衫)치 글고 관(冠)은 거믄 비단으로 모난 관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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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흐로 집을 드러가니 븍벽(北壁) 밋 큰 탑을 노코 알희 세 교위(交椅) 버플고 그 아 조고만 그시 등겨 담아 각각 노하시니 이 츔을 밧게 거시오 좌우 벽(左右壁)의 쳡쳡(疊疊) 누각(樓閣)과 셰쇄(細ꝯ) 즙믈(什物)을 그려시되 이편 벽 밋희셔 져편 벽을 라본 즉 그림은 간 곳이 업고 홀연(忽然) 무슈 문호(門戶)와 은영(隱映) 쟝원(莊園)이 별노 인간의 겨시며 람벽의 건 거시며 샹 우 베픈 거시 다 진즛 거시오 그림인 쥴 지 못여 갓가이 볼 졔 벽 우 두 쥴 거믄 획(劃)을 샹(常) 업시 흐리온 모양이러니 믈너셔 보면 글 완연여 획이 분명니 텬하의 이 죄러라 이 집 알프로 집이 이시니 이 (冊)과의긔(儀器) 싸흔 곳이라 은 비단갑을 그라 면의 탁 노코 싸하시 다 셔양 글라 므 인 쥴 모며의거[긔](儀器) 다여 노하시 쇠로 틀을 글고 둥근 형톄(形體) 그 안히 구을게 여시니 다 하 도슐(度數)을 측냥(測量)야 보게 거시라 우희 삼원(三垣) 이십팔슈(二十八宿)와 온갓 셩신(星辰)을 비히 그리고 쥬셕(朱錫) 골희 그 우희 셰워시 동셔로 임의로 돌니고 남븍은 각각 곳은 쇠 벗트여 치노지 못게 여시니 골희 일홈이 젹되(赤道ㅣ)니 하 가온 니미오 골희 황(黃道ㅣ)니 일월(日月) 니 길을 니미라 여러 그시 다 각각 대쇠이시나 거의 다 졔양(制樣)이러라
102
셔양 사은 죵시 나와 보 일이 업더니 도라올 의 텬쥬(天主) 위 집의셔 므 경(經) 닑 소 나거늘 문을 여러 보니 앗가 보던 관(冠)과 옷 닙고 븍벽(北壁) 밋트로 도라 니며 므 소니 킈 젹고 얼골이 거므며 인믈(人物)이 심히 모질어 뵈더라
103
셩(姓)은 탕개라 고 일홈은 긔록지 못며 근 아국 사이 이곳의 가 일이 업지라 밋 아국 사이 니 직희 쟤므러 오 이곳의 니믈 귀국(貴國)의셔 금다 더니 엇지 왓뇨 니 뉘 뎐 말인지 몰오 극히 고히더라
104
공(孔子ㅣ)오샤 말이 츙셩되고 밋브미 실이 돗탑고 공경면 비록만(蠻貊)지방이라 가히 라라 시고뉴하혜(柳下惠)니 져 졔오 나 나니 졔 엇지 내게 더러리오 니텬쥬탕[당]을 구경 아니미 고히 의라 야치형이 보고 와셔 웃더라
106
관의 머므다 날이 으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니라
107
이날 황뎨(皇帝) 됴서(詔書) 리워 오 져즘화신(和珅)의 죄상(罪狀)을 반포(頒布)여 뵈엿지라태(太學士)와 구경(九卿)의 엿오믈 의거야 임의화신으로 여금 진(自盡)케 엿거니와 화신(和珅)이 일을 맛단 날이 오라고 오지 쳔단(擅斷)야 속이고 리워 하졍(下情)이 능히 우흐로 통치 못믈 닐워시니 만일 즉시 원악(元惡)을 업시치 아니면 졍(政事) 히고 벼을 졍졔(整齊)히 길이 업지라 이졔 임의 그 죄 히 졍야 판단엿지라 인야 각니화신의 지 바 아문(衙門)이 만흐니 그 쳔거기 말아마 벼을 올므며 힌 쟤 반시 젹지 아닐 거시오 다른 마을 관원도화신문하의 분쥬(奔走)야 아쳠며 회뢰(賄賂)믈 다 면(免)치 못여실 배라 만일 낫낫치 구획(究覈)여 여러 사의게 밋면 벌이 뭇 사의게 밋지 아니케 이며 근의 쳐단(處斷)은 일 가지나 일호 혤 길이 업지라화신(和珅)의 죄상을 반포야 그 장 즁 간범(干犯)은 임의 효연(曉然)이 닐넛니 만일 됴신(朝臣)이 짐의 을 그 짐쟉야 혹 사과 두 일을 쳐 그 말을 실(實)답게 면 그 분운(紛紜)믈 니긔지 못지라 이치 여 알소(訐訴)여 보복(報復) 의 둘진대 이 당(黨)을 자 각각 문호(門戶) 흐 풍쇽을 면치 못 거시니 시러금 짐의 분의 아니라 짐이 화신을 즁히 다리믄 진실노 군국(軍國) 큰 일을 위흠이오 가지가지 탐독(貪黷)여 경영(經營)믄 오히려 그 죄의 젹은 일이라 일노 쥬(主客)의 판단(判斷)여 잠시도 요(饒貸)치 아니코 밧근 조금도 즐겨 두로 결년(結緣)코져 아닌니 오직 쟝 권고 이왕을 허믈치 아닐 거시니 믈읏 대쇼 신공(臣工)은 의 고심(苦心)고 두리지 말나 믈며 됴뎡 신해 예 사이 만흔지라 만일 능히 착 곳의 올무며 허믈을 곳치면 가히 국가의 보필(輔弼)이 될 거시니 이젼의 조급히 나아가다 그릇친 쟤라도 다만 능히 마을 씨며 념녀 곳쳐 이젼 그믈 통괘히 치면 가히 힘 단졍 션 될 거시오 몸이 도록 그른 사의 지지 아닐지라 특별이 이치 두 번 효유(曉諭)니 각각 힘 짐의 새로이 다리 을 맛치라 만일 이번 신칙(申飭) 후의도 곳치고 뉘웃쳐 아다온 일홈을 세오지 아니즉 이 스로 다려 짐의 효유 을 알나 다 더라
108
날마다 신후(申後)의 관으로 도라오면 거의 질 라 몸이 곤피(困疲)여 누엇가 밥을 머으니 톄 의도 잇고 치위의 죵일 노쳐(露處)다가 더은 니러 몸을 려셔 반시 병이날 나 내 이 길 오므로븟터 잠을 잘 일우지 못고 밤 곳 되면치형(致馨)과니광직을 블너 안치고 므 됴흔 말과 오 구경 바 니라 야 믄득 삼 경(更)을 지니 견지 못여 니러 가려 여도 굿지 안쳐 슈작니 밤이면 이러구러 파젹(破寂)더니 이날 밤은 두세 늙은역관(譯官)을 블너 므 이아기 니 니역관이 오 별노 이아기 아니 쇼인(小人)이 슈십 년 젼의 첫 번 길노 드로왓실 황뎨 후궁 당야 십삼 [세]의 고은 계집을 모화신무문(神武門)을 여러 일시의 드린다 거 두어 사을 리고 갓가이 니러 드러가 계집을 구경 가야온 슐위의 비단 휘댱이 빗 토고 긔이 향 길의 득야 그 슈 이 혜지 못고 슐위 우희 등(燈)을 라 그 우희 계집의 일홈과 사 지명(地名)을 지라 알 휘댱을 드러 몸을 초지 아니니 그 얼골과 의복을 세히 구경 아니라 졀믄 계집들이 외국 사을 첫 번 보지라 토와 머리 내여 구경니 그즁의 긔이 (姿色)을 니 피지 못고 계집이 손의 리 가져시니 흰 옥(玉)으로 근 거시라 손 빗과 옥빗치 분변이 업고 공교(工巧) 되 셰샹 사이 아닌 니 평의 긔이 구경이라 니려니와 혈긔(血氣) 굿지 못고 변변치 못 인믈(人物)이 이튼 구경이 이실가 념녀오니 년젼의 쇼인의 친구 사이 븍경을 드러올됴양문(朝陽門)밧긔셔 계집의 슐위 마조치되 앏뒤 거매(車馬ㅣ) 밀니여 셔로 지날 길이 업지라 계집을 야 반향(半)을 머므니 그 아리온 도와 공교 모양이 진짓 화월(花月)의 요괴(妖怪)라 오 년 원업(五百年寃業)을 지쳑(咫尺)의 만나 두어 시을 지니 삼혼(三魂)이 표탕(飄蕩)고 칠(七魄)이 유유(悠悠)야 밋 관의 도라오 므어 일흔 모양이라 졍신이 황홀야 아모란 쥴 모다가 계유유관(留館)을 지내고 고향의 도라와 내 닛지 못 사이 되니 진실노 삼(三生)의 원(怨讎ㅣ)라 일고 역관은 오 년젼의 심양의 니매심양 쟝군(將軍)이 슈만 군 거리고 셩 밧긔 니러 야흐로 조 시험지라 호쾌(豪快) 인마(人馬)와 셔리 튼 검극(劍戟)이 너른 들의 풍우(風雨)치 치돌(馳突)니 진실노 댱부의 쾌 구경이라 니너니 밋 황셩(皇城)의 드러간 지 오라지 아녀쇼금쳔(小金川) 도젹을 파고 도라오 군 만나니 오뉵십 슐위의 도젹의 머리와 사로잡은 인믈을 득 싯고 십여 만 군 항녈을 화 졍졔히 도라오니 이 뎨일 댱관(壯觀)이라 길 섯다가 군 잡고 무로 번도 (敗)치 아니코 공(功)을 일우냐 니 그 군 크게 놀나 손으로 귀 막으니 이 군즁(軍中)의 란 말을 사휘(私諱)홈이라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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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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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 곡반(辰時哭班)을 파 후의 무 의복(衣服)을 밧드러 내여와경운문(景運門)밧 박돌 문은 곳의 니러 지폐(紙幣)와 가지로 사니 그 졀 십칠일과 다미 업나 다만 반녈(班列)의 참예 관원이 젼의셔 이 젹고 황뎨(皇帝) 나왓다 말이 업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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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아밥은 드려다가 댱막 안히셔 먹으니 혹 알플 아니 막으면 구경 사이 뭇근 모히고 혹 인믈범(人物凡百)이 놉흔 사이 와 보다가 혹 반찬(飯饌)을 쳐 무어시니 고 뭇지라 겻 셧던역관이 혹 무 우리 밥 먹 거동 너희 보기의 됴치 아닐 다 면 웃고 답이 업니 대개 아국 사이 이곳 사을 셔로 야 가진 거시나 닙은 거시 엇더니 무면 됴타 아니 리 업 오직 밥 먹 모양은 됴히 너기지 아닌 의라 마즌 댱막의 져희 밥 먹 거 보니 밥은 젹은 보의 골케 담앗고 무 고기 졉시 나믈 졉시오 열구탕(悅口子湯)을 그 노하시 밧친 그시 업고 노코 밥은 먹은 로 죵(從者)의 각금 아 쥬니 보 드러 입의 다히고 져(箸)흐로 그러 너흐 별노 니 야 보도 먹고 두 보도 먹으니 이곳 사의 밥 먹 법이 본 간약(簡略)되 궐(闕內)의셔 먹 거슨 더옥 간략더라
113
우리 반찬(飯饌)은 이리 안져셔도 상(床)의 여라믄 그시나 버려 노하시니 폐(弊) 젹지 아니타 니지라 일즉 뎐 말이월사(月沙)니샹공(李相公)이명됴(明朝)신(使臣)으로 드러와 실의 샹(宰相)이날을 긔약야 집으로 즈라 엿더니 긔약 날 그샹이 공괴(公故ㅣ) 이셔 궐(闕內)의 드러가고 가인(家人)으로 말뉴(挽留)야 나오기 기리라 엿지라월새(月沙ㅣ)식젼의 나아가매 가인이 그샹의 말을 뎐고 쥬찬(酒饌)으로 졉더니 날이 느즈매 식젼이라 고 도라가고져 거 과 실과로 접 밥을 아직 먹지 못지라 굿이 가기 쳥니 가인이 그 시쟝가 야 오젼(午前)의 네 번을 음식을 먹이되 죵시 식젼이로라 고 도라가니 그샹이 도라와 가인의 말을 듯고 뉘웃쳐 오됴션(朝鮮)사은 밥 곳 아니 먹으면 굼다 니니 내 밥을 졉란 말을 니졋노라 더라 니 즁원 사은 밥을 즁히 너기지 아니코 각 과 실과로 됴셕을 신니 아국 사의 삼시 그 밥 먹 거 극히 위(危殆)코 금기 너기가 시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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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 뎐(奠)을 파야 나올 쳥슈(淸秀)샹이 앏셔 나오거 무니 곳한 각노 유영(韓閣老兪永)이라 킈 예 사이오 얼골이 늙어시나 쟝 초강며 셩건 나시 낫 거믄 털이 업고 눈의 졍(精彩) 이셔 귀 골격이러라
115
그러나 거지(擧止) 소샹(昭詳)야 쇼년과 다르미 업니 좌우 로 도라보 거동이 옹즁(雄重) 긔샹은 젼혀 업더라
116
댱막의 안즌 후 음식(飮食) 탁 가져와시니 이 황뎨 송(賜送)신 배라 모히여 보 쟤 다 엇고져 호니 궐내 음식을 별노 귀히 너기 모양이라 이 아국과 다미 업더라
117
신시(申時) 후 나올경운문밧긔셔 곳 을 고 나오 쟤 이시니 이 항녈이 놉흔 왕(王)이라 며 양피(羊皮) 갓옷 닙은 죵쟈 칠팔 인이 니 이 왕의 햐라 사이라동화문(東華門)을 나셔 다 을 고 옹위(擁衛)니 뉘 관원이며 죵쟨지 창졸(倉卒)의 분변치 못너라
118
황뎨 앏 시위(侍衛)무관(武官)은 햐라 니니왕부(王府)의 햐와 일홈이 트나 다만 마르약이의 공쟉위(孔雀羽) 니 일노 층등(層等)을 짐작다 더라
119
동쟝안문(東長安門)을 나와 완완(緩緩)이 더니 압 누른 옷 닙은 나마승(喇嘛僧)이부(副使)슐위 녑희 갓가이 가지라 부방(副房) 하인이 무 말을 뭇다가 돌연이 깃옷락을 들치니 즁이 대경여 믈너셔 대쇼(大笑)고 졔 옷 다시 드러 보니 대개몽고(蒙古)와 나마승은 바지 닙지 아니고 다만 깃옷로 리 라 리오니 하인이 이런 쥴을 아 고로 번 소기고져 니 즁이 그 긔동(擧動) 쥴을 짐쟉고 셩내지 아니미러라옥하슈(玉河水)개쳔 셔편을 인연여 올 동향(東向)야 큰 븕은 대문이 곳화신(和珅)의 회 군왕(郡王)의 집이라화신이 일 난 후로 문졍이 젹젹(寂寂)더니 이날이 문을 못 밋쳐 사이 슐위 고 문밧긔 니러 쟝 리려 문안흐로셔 다엿 사이 급히 나와 므 말을 뭇거 그 사이 슐위예 리며 셔로 슉덕여 얼골의 젹이 근심 빗치 이시니 므 일인지 모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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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하교(玉河橋)알프로 걱거 관으로 여 보 못 밋쳐 남향(南向)야호국삼관(護國三官祠ㅣ)란 묘당(廟堂)이 이시니 곳대명(大明)젹 고찰(古刹)이라 다엿 사이 문의 비겨 섯지라 이 다쥬셔반(主客序班)이라 (使行)이 들면 이 졀의 모히여 므 일을 거며 매(賣買) 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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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오 길 샹(上使) 보니 밋 캉의 들 침향(沈香) 옥지라 므역관박이 침향 목가산(木假山)을 삼십 냥 은(銀子) 쥬고 사다 거 셰히 보니 길의 쥬쳑(周尺)으로 자가옷슨 되고 몸이 자 즉되 아로삭인 흔젹(痕迹)이 업고 다엿 봉(峯)이 텬연(天然)이 삼겨 긔이지라 오히려 갑시 헐니 침속인가 야 조금 가 화로(火爐)의 살오니 향 이 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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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闕下)의 나아가 삼시 곡반의 참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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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 뎐(辰時奠)을 파 후의 믈너나오려 니 통관이 오 오은 신(使臣) 므 샹(賞)이 이시리니 아직 나가지 말나 거 져희 므 아가 야 의구히 반녈의 셔시니 이젼은 곡을 그친즉 뎐을 믈니 졀라 즉시건쳥궁(乾淸宮)졍문(正門)을 닷 고로 짐작더니 이번은 뎐후(奠後)의 문을 닷지 아니코 장 오란 후의 큰 궤(樻) 튼 그슬 드러 뎐문(殿門)으로 나오니 누른 흐로 덥헛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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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밧긔 니러 노코 여라믄 관원(官員)을 갓가이 세운 후의 궤 열고 속의 든 거 내여 노흐니 다 마으락이와 좁은 깃갓옷시라 갓가이 세운 관원을 례로 화쥬며 져희 니 이 이샹(移賞)이라 니 황뎨 태샹황의 샹 쥬실 거 신야 옴겨 쥰다 말이라 샹을 밧 쟈 다 태샹황 근시(近侍)던 사이라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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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라믄 사이 례로 밧고 번 며 번 고두(叩頭)더니 례 파매 문을 닷지라 샹을 밧은 쟤 인여 소 노하 통곡고 다시 세 번 며 아홉 번 고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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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즉시 나고져 다가통관(通官)의 말을 인연여 잇더니 밋 샹 쥬 거 보매 다 오랑캐 관복(官服)이라부(副使ㅣ)날을 도라보아 우니 통관의 아모란 쥴을 모 거시 다 이 라 극히 우읍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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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졔 져녁의 궐(闕內)로셔 나올 예통관이 황지(皇旨)라 일고 삼 신과 라드러온졍관(正官)의 일홈을 젹어 드리라 다 거역관을 블너 의논니 역관이 알외 므 일인지 모 라드러온역관은 날마다 뉸회(輪廻)니 누를 지젹여 지 사(取捨) 어려온지라 대개통관을 젹어 드리 거시 해롭지 아니타 거 그 말이 올타 여 삼신 일홈과슈역(首譯)김윤셔와일쟝통(一上通事)김경위와이샹통(二上通事)윤갑종의 일홈을 젹어 드렷더니 오날 막(幕次)의 도라온 후의통관(通官)이 역관(譯官)과 부삼방(副三房) 하인을 블너 리고 드러가며 샹을 바다 가라 더니역관과 하인이 타다가 관의 두고 도로 드러왓거 무니통관이 가지로동화문(東華門)안 마을의 니니 마을은무부(內務府)라 일고 관원이 이셔 가지슈 젹어 쥬며 이 보와 타가라 니 곳 사 다 마리와 곰 마리와 산졔(山豬) 세 마리와 노로 세 마리와 치(生雉) 스므 마리와 큰 션(生鮮) 세 마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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젹은 션 스므 마리와 사슴의 혀 열 밋과 사슴의 리 열 낫치라 여러 가지 타올 이샹과 치 쥬 곳이 만치 아니코 다만 왕공대신(王公大臣) 여라믄 집인가 시분지라 큰 슐위의 시러 관으로 올 졔 길 셔 보 쟤 다 장히 너기고 밋 관의 니매 여러통관이 니 이러 상(賞) 이젼의 듯도 못 배라 며 관즁의 츌입 되들이 모히여 볼 혹 니 황뎨됴션신을 친왕(親王) 쥬 샹과 치 니 이샹 일이라 슉덕이더라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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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관들이 태샹황 상(喪事) 후의역관을 공동(恐動)야 오 태샹황 예 너희 아무리 여도 관계흠이 업셧다가 시방은 이젼과 다르리니 너희 각별 조심라 고 조고만 일이라도 져희 별노 공갈(恐喝)랴 의러니 초칠일 녹육(鹿肉) 반(頒賜)므로브터 혹 사흘 이 닷새 이의 궐로 음식 샹(賞賜ㅣ) 지 아니 다가 밋 오 이 샹(賞)이 이시매통관들이역관려 니로 신황뎨됴션졉이 태샹황 의 지나도다 더라 니 우읍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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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샹 쥰 거시 곳 길희셔 맛난달(㺚子)의 진공(進貢)이라 던 믈건이라 즘을 다 창으로 질너 잡은 모양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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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후(申後)의 나올 일은 태샹황 궁(梓宮)을경산(景山)으로 옴겨 모시지라동화문(東華門)밧그로븟터 븍(北)으로경산지 어로(御路) 닷가시되 그 가온 길을 도도와 본길셔 두 자즘음을 놉히니 너븨 다엿 간이 될 거시오 두 편 즌 길은 각각 세 간의 지나니 그 길어[의] 프물 가히 짐쟉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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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도도되 황토(黃土) 무히 드려 으고 일변 남그로 으며 일변 으며 둥근 큰 돌노 구을니 역군(役軍)이 다 고 슈겨 마 소도 아니코 일시의 힘쓰 거동이 놀난 사도 고 실셩(失性) 사도 여 놈도 쓰 모양이 업니 잠간 머므러 보매 구경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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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賞) 탄 거 샹방(上房)으로셔 세 방(房)과비쟝(裨將)역관(譯官)의게 각각 분다 고 [져]녁밥의 노로 고기로 젼쳘(煎鐵)을 찰아 나오니 젹이 노린 의 이시나 족히 먹엄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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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景山)으로 궁 뫼시 의쥬(儀註) 가져와시니 오 졍월 이십 삼일 묘시(卯時)의 대태샹황뎨(大行太上皇帝) 궁을경산으로 옴겨 뫼실 이날 오고(五鼓)의난의위(鑾儀衛)관원(官員)이 법가(法駕)와 노부(簿)와 어승마(御乘馬) 십 필과 탄타(駱駝) 열여 리 베픈 후의 상(喪事) 다리 졔왕대신(諸王大臣)이집관(執事官)을 거리고 드러와 누른 댱(帳)과 흰 댱(帳)이며 졔상(祭床)과 향상(香床) 들 믈을 거더 미리경산빈궁(殯宮)으로 보고공부(工部)관원(官員)이 니어와 밋 쇼여(小轝)경운문밧게 초고 담여군(擔輿軍)이 각각 그 복을 초고 반졀을 화 기리다가 밋거든녜부(禮部)상셔(尙書) 엿와 궁 압흐로 나아가 곡고집관이 뎐(奠)을 나오거든 황상(皇上)이 슐잔을 드려 세 번 드리 번 드리 믄득 번 고두(叩頭)고 니러 왼편의셔 공경야 샹위의(喪事威儀) 다리고 졔왕대신과무부(內務府)와공부(工部)와난의위(鑾儀衛)대신이집관과 밋 가젼(駕前)의 뫼시고 쟝교(將校) 거리고 안희 드러와 쇼여 나오고 공경여 궁을 밧드러 뫼셔 황샹(皇上)이 궁을 밧드러 인도여건쳥문졍문을 나경운문밧글 니러 대여(大輿)의 뫼실 황샹이 동븍(東北)으로 셔셔 향야 고녜부 당관(禮部長官)이 대여(大輿)의 졔(祭) 지낼 슐잔을 세 번 들이 번 들매 번 고두(叩頭)고 반녈(班列) 참예 쟤 라 녜고 녜 매 지젼(紙錢) 삼쳔 쟝을 오고 가젼의 뫼시 쟝교 담여군을 거려 메워 법가(法駕)와 노부(簿) 압셔 인도고 대여 날 황샹이 대여 외편의 거러 여 지송(祗送)고 뒤 인원(人員)은 라 시위(侍衛) 황(皇子)와 밋 근시(近侍)던 인원이 다 동화문의 나와 반녈노 졍졔 황샹이 셔향(西向)여 고 쳔관(千官)도 엇다가 대여 지나거든 승여(乘輿)로 갓초와동화문으로 드러 즈럼길노신무문(神武門)을 나 빈궁(殯宮)의 나아가 기리고 궁이 궁(宮)의 나온 후 궁즁(宮中) 권쇽(眷屬)은신무문(神武門)으로 말암아 미리관덕젼뒤흐로 가 기리고 궐의 츌입던 공쥬(公主)와 복진(福晉)은 미리 빈뎐(殯殿) 대문 안 나아가 모도이고 공쥬 이하 팔분공부인(八分公夫人) 이샹은 미리 빈궁 대문 안 셔편의 모히고 팔분공부인 이하 삼등시위관원(三等侍衛官員)의 안 미리 빈궁 대문 안 셔편의 모히엿다가 궁이 니시거든 곡(哭)고 러 마즈며 각대신(內閣大臣)은건쳥궁밧긔셔브터 반녈을 초와 일졔히 모히고 졔왕(諸王) 이하 대신(大臣) 종실(宗室)은동화문(東華門)밧긔셔 좌우 화 일졔히 모히고무부(內務府) 관원(官員)은 븍편 못 어귀 밧거[긔]셔 모히고 그 마 관원은 혹풍신문큰 거리의도 모히고 모 여흘의도 모히엿다가 대예(大輿) 지나거든 곡(哭)고 러 마즈며 인야 뒤흘 로 갓가히 뫼시던 왕공(王公) 대신(大臣) 시위(侍衛) 안흐로 말암아 상 위의(喪事威儀) 다리고 마 왕공 대신과 예부(禮部)·공부(工部)·무부(內務府)당관은 궁(梓宮) 두 편으로 라 며 궁을 메 사을 여 운(運)의 호 운의 팔십 인식 상복(喪服)을 닙히고 두목(頭目) 네 사은 향쳑을 쳐 각각 운식 지며 공후(公侯) 이하와경거도위(輕車都尉)와급즁(給事中)·어낭즁(御使郎中)·원외랑(員外郞)은 열의 여 관원식 지며난위의네 관원은 진퇴(進退) 예 지휘며 명졍(銘旌)은 으 사은 여 운의 호 운의 셜흔두 사식 분야 여 관원이 지며 지나 문(門)과 리의 대신이 각각 슐잔을 세 번 나오광녹시(光祿侍)관원은 슐병을 밧들고녜부관원은 잔을 나오 번 잔을 드리고 번 고두(叩頭)며 지젼(紙錢)을 각 오 쟝식 오고 나마승으로 여금 일여 사이 미리 빈궁 대문 밧 셔편의 나아가 궁(梓宮)을 마며 미리 개와 매 대문 밧긔 베플고 궁 알 인도 관원(官員)이 궁을 마며동화문밧브터 지젼을 이니 궁이 빈궁 대문 알 니러 대여(大轝)의 려 쇼여(小轝)의 뫼시고 황샹(皇上)이 미리 문밧 외편의 어 마자 곡시고 여러 관원도 다 러 곡고교위(校尉)벼 관원이 궁을 메워 즁문의 드러가 빈뎐의 니러 삼가 뫼시고 황샹(皇上)이 라 드러가 빈뎐(殯殿) 쳠하 동편의셔 상(喪事) 다 찰이고 졔왕대신(諸王大臣)이 관원과 쟝교(將校) 거리고 드러가 궁(梓宮)을 밧드러 뎐(殿內)의 당즁(當中)야 뫼시고 누른 댱(帳)과 흰 댱(帳)을건쳥궁(乾淸宮과 치 셜고 황(皇子)와 갓가온 종실왕(宗室王)은 셤 아 셔고 갓가이 뫼시던 졔왕대신은 대문(大門) 안 셔고 왕공(王公) 이하로보은 쟝군(報恩將軍)과태(太學士)와공·후···남(公候伯子男)과부도통(副都統)과부도어(副都御使)와 몽고왕(蒙古王) 한산종실(閒散宗室)은 대문 밧 동편의 셔고 그 나마 관원은경산(景山)동문(東門) 안셔 립(排立)야 곡(哭)고 궁을 편안히 뫼신 후의 황뎨(皇帝) 뎐(殿) 나오 위예 나아가 슐잔을 세 번 나오 번 나오매 믄득 번 고두(叩頭)고 여러 관원이 다 라 녜(行禮)며 지젼(紙錢) 오쳔 쟝을 오며 명졍(銘旌)의 른 됴희도 다 오고 문 다든 후 곡(哭)을 그치고 황뎨 환궁(還宮)시고 대(大內) 권쇽(眷屬)이 다 환(還內)고 뭇 관원이 다 믈너가며 향등(香燈)을 도도기태감(太監)이 궁뎐(宮殿)죵관(從官)으로 더브러 간검(看檢) 일 삼식 거고 이 기 젼은 날마다 세 번식 난가와 노복(奴僕)을 셜(排設)고 이 후 졍지고 의장(儀仗)은 졔날의 인여 진셜(陳設)고 삼시 뎐(三時奠) 나올 졔 잔(盞) 드릴 왕(王)은 일홈을 엿와 낙뎜을 므로온 후 녀 잔을 나오고 일 안흔무부(內務府)이하 관원과 명부(命婦) 여 운의 화 식 뉸(輪廻)야 삼시 뎐의 참예고 곡며 직슉대신(直宿大臣)과 시위(侍衛)와 밋 군(軍士) 직힐 곳과 나마승의 경(經) 의[외]오 일을 각각 젼녜 의지야 명(命)시믈 기려 신 등(臣等)이 각 아문의 지휘야 다리게 라 야시며 희도 젹어시되 삼가 샹고(相考)니셰종 헌황뎨(世宗憲皇帝)[주:옹졍 묘호(雍正廟號)]샹의 옴겨 뫼실 의 신(臣)의 을노셔 황샹(皇上)이 미리 빈궁(殯宮)으로 가시믈 엿왓더니 황지(皇旨) 밧와 황샹이 거러 라관덕뎐지 니시리라 엿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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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머므다 오경(五更)은 야 부(副使)와 가지로 궐하의 나아갈 군관(軍官)과 역관(譯官) 아홉이 로니라 큰 길희 니러 쳔관(千官)이 야흐로 드러가지라 게[거]매(車馬ㅣ) 길희 메이고 각각 슐위 알 등블이 인도니 원됴(元朝)의 보던 바와 더라
138
동편 궁쟝 밋 밋 이 슐위 셔로 마됴쳐 반향(半晌)을 나마 셔시 길이 통(通)치 못지라
139
좌우의 슐위 관원이 혹 머리 두혀 우리 셧 거 보고 무 슈쟉야 구지 안자 믄져 가기 닷토지 아니니 극히 안졍(安定)야 뵈더라
140
우리 션 곳의 길이 편은 고 편은 놉흐니 슐위 기우러 놉흔 편으로 다른 슐위 조치며 것구러질 니 심히 위지라 슐위 려 역관(譯官)의 을 밧고와 고 알프로 나아가동화문(東華門)밧긔 니러 긔 리니 사이 구 야 길흘 지 못지라 통관이 인도야 동편 (垓字) 발마 븍으로 향 어졔 도도던 어로(御路) 사의 왕 금고 길 두 편으로 대 심으고 등(燈)을 라시니 먼리 라보매 츨 보지 못너라
141
읏읏 등블이 두 쥴노 친 야 기 낫 더라
142
밤븟터 능개비 긋치지 아니니 길이 밋그러워 거름이 위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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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쟝(宮墻) 동편 모통이의 니니 어뢰(御路ㅣ) 기여셔 븍으로 벗쳐시니 이경산(景山)으로 가 길이라 븍편으로 궁쟝(內宮墻)이 막히이고 동편 궁쟝을 니어 동으로 막아 삼문(三門)을 내엿던 곳을 다 허러시니 대여(大轝) 츌입의 방해로올가 일이오 문(門) 안희 긔치(旗幟)와 의쟝(儀仗)이 무슈히 겨시며 사이 만히 모히엿더라
144
궁쟝 밧근 다 녀염(閭閻)과 뎐방(廛房)이니 날이 칩고 비 지 아닌지라 방(房)을 어더 고져 야 하인들을 블너 분부야 어드라 니 문을 다 구지 닷고 드러 안기 허치 아니니 아모리 면피(綿皮) 만히 쥬마 여도 듯지 아닛지라
145
길 븍편의 븬 각(行閣) 두어 간이 잇거 상(床)을 노코 안니 사들이 에워 여러 겹을 두고 보기 마지 아니니 견 기리 업지라 어로(御路) 동편 길이 진(盡) 곳의 너른 골이 잇고 큰 집이 니이여시니 므 마을 잇가 시부며 골에 거믄 휘댱으로 막고 환도(環刀) 군 왕니 직흰 사인가 시부더라
146
비 이매 어로의 년여 황토(黃土) 리고 뭇이 바 상(傷) 곳을 메오며 날이 으매 등블을 다 업시고 사이 왕왕(往往) 급히 왕며 잡(雜)되이 셧 사을 환도 관원이 피편(皮鞭)을 드러 지라 통관이 인도야 길셔 남향(南向)야 반녈(班列)을 졍졔고 기리더니 남으로 라모매건쳥궁(乾淸宮)의 셰웟던 명졍(銘旌)이 첫 알 염염(冉冉)히 잇지라 누른 남그로 틀을 그러 그 가온대 박아 면으로 군(軍士ㅣ) 메여시니 거을 옴길 젹마다 관원이 손의 남오 조각으로 근 거 쳐 소 내여 졀차 고(告)니 이 니른바 햐쳑이라 더라
147
쟝 셔흐로 향야 삼문(三門) 잇던 곳의 니매 문 안흐로셔 지젼(紙錢)을 오니 블곳치 장 장더라
148
명졍(銘旌)이 나오며 탁타(駝) 아홉 (雙)을 좌우로 모화 으니 다 누른 안쟝(鞍裝)을 짓고 금 굴네 씨워시니 아 쵸피(貂皮) 쟝과 쥬락(珠絡) 부식 라시며 쵸피 네 발이 다 니엿고 안흐로 금칠을 야시며 안쟝 우희 다 시른 거시 이시니 휘댱과 막댄가 시부며 우 누른 담(毯)으로 덥헛더라
149
탁태 지며 마(白馬) 스므 이 좌우로 화 니니 황금 안쟝(黃金鞍裝)을 지어시며 의 두 곳비 느러 좌우로 으며 마다 관원 나식 며 의쟝(儀仗)이 례로 렬야 다 니니 이 다건쳥궁(乾淸宮)의 세웟던 거시오 다른 거시 업더라
150
황옥교(黃屋轎) 둘이 의쟝 뒤 법악(法樂) 지은 필(匹)을 댱즁(當中)야 세워시며 악공(樂工)이 각각 악긔(樂器) 가지고 셔시 풍뉴 엿지 아니터라 황옥교 먼리셔 올 젹브터 지젼(紙錢)을 이고 됴희 둥글게 도리고 궁글 러 남긔 여 여러 사이 가졋다가 이음라 니니동화문(東華門)이후로경산(景山)지 헤여여 븟기여 어로(御路)의 헤여하게 니엿더라
151
황옥교 지나며 쳔관(千官)이 교젼(轎前)의 메이고 소 치여 호곡(號哭)고 로더니 대여(大轝) 그 뒤 밋니 졔왕대신(諸王大臣) 등은 대여 알 먼니 압셔 곡(哭)고 지나며 대여 압 슈십 보 즈음의 사 십여 인이 길 외편으로 믈 니더라
152
대여 갓가오 일졔히 러 대여 라고 곡더니 알 십여 인 믈 가던 사이 우리 러안즌 남편(南便)의 니러 븍향야 대여 라고 통곡다가 우리 러 안즌 곳을 피 거동이라 의복이 여 사과 지 아니코 거믄 마으락이며 양피(羊皮) 갓옷시오 위의(威儀) 간략니 졔왕(諸王)인가 엿더니 오 셧거 셔히 보니 거러 알 푸른 집의 너흔 칼 이 셔시니 이샹방검(尙房劍)이오 뒤 시위(侍衛) 쟤 다 나로시 업니 이 시(內侍)라 비로소 황뎬(皇帝) 쥴을 알니러라 대여 오히려 먼리 셔시니 황뎨 로 도라보며 곡(哭)을 긋치지 아니코 우리 곳과 졍히 마조 엿지라 닉이 보다가 몸을 굽히고 더옥 통곡니 션황뎨(先皇帝) 아국 녜(禮待)던 일을 각고 일(一倍) 감창(感愴)미오 몸을 굽히믄 피인(彼人)의 사을 졉 녜뫼(禮貌ㅣ)라 아국을 별노 졉 고로 이치 의가 시부더라
153
비록 쳑(哀戚) 가온대나 얼골이 셜[석](白晳)갓고 풍영(豊盈)야 면이 번듯고 귀 우굿 별노 크고 눈이 쳐져 븟튼 오 길며 킈 팔 쳑의 지날 거시오 구각(軀殼)이 쟝대며 온후 긔운과 인 빗치 얼골의 낫타나니 심샹(尋常) 사의 비치 못너라
154
시(內侍) 두 편을 븟드러 죵죵 뒤흐로 도라보니 대여 니로믈 피미러라 대여
155
일즉경운문(景運門)밧긔셔 보던 배오 쳔관(千官)이 옹위야 다만 발자최 소이라 대여 우리 알 니매 두어 관원이 창황(倉皇)이 니며 곡을 긋치라 니고 우리도 손 쳐 곡(哭)지 말나 니 황뎨(皇帝) 갓가히 셧 고로 그리지 모너라
156
인교(四人轎) 나히 대여 뒤 셔시 우 누른 빗치오 휘댱(揮帳)은 거믄 거 둘너시니 이 황뎨 환궁시(還宮時)예 맛당이 거시라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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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 지나며 우리 그 뒤흘 라 어로(御路)로 말암아 니 사의 엇게 셔로 시아쳐 발을 옴겨 놋치 못너라
158
셔븍으로 이윽이 다가 셔편으로 큰 삼문(三門)이 이시니 문 일홈이 샹[산]좌리문(山左裏門)이라 일니 곳경산담 밧 외편 문이라 문 직흰 쟝 환도(環刀)와 도 들고 셧다가 대여 문을 지난 후 사을 금야 못 드러 가게 니 오직 황뎨(皇帝) 뎐(殿內)의 밋쳐 드지 못가 시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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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사이 몰기여 문을 너무랴 면 쟝 눈을 부릅고 환도(環刀) 집을 갓고로 잡아 가을 내여 밧으니 마조친 사이 공즁(空中)의 잣지지라 그 형셰 극히 무셥더라
160
우리 일(一行)도 밧비 오랴 미 아니로 등 뒤 사의 밀니인 배 되여 발이 닷치 아니코 임의 문밧긔 니지라 쟝 굿여 공갈(恐喝)지 아니코 통관려 니 져기 기려 드러가리니 아직 문밧긔 머믈나 고 좃차 내치지 아니니 외국(外國) 사이라 야 구박(驅迫)지 아닌가 시부더라
161
셥나(暹羅)신이 우리 뒤 더니 문의 사을 것구로치 거동을 보고 두리 빗치 얼골의 나타나고 몸을 러 진졍치 못니 외국 사이 괴이치 아닌 일이라 아국 일은 년년이 드러와 이목(耳目)이 닉을 아니라 조금도 조심고 두리 긔이 업니 일노 보면 아국 인믈이 심히 당돌타 니너라
162
이윽야 문을 막지 아니커 드러가니 문 안희 누른 기와 니은 집이 뵈니 이관덕뎐(觀德殿)이란 집이니 곳 궁(梓宮)을 뫼신 집이라 의쟝(儀仗)은 담 안밧긔 다 누이고 문으로 왕 사이 드무더라
163
우리경산(景山)밋 니러 셔시니관덕젼의셔 이윽지라 뎐(殿內) 동졍(動靜)을 피지 못지라 누른 옷 닙은 사이 우리 알 니 머리의 배 젼의 보지 못 거시라 누른 거로 즁의 곳갈치 그라시 실쥭고 희 누른 털노 샹모(象毛)치 느리여시니 별노 이국 사인가 야 무니 이 나마승이라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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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은 본타아산이라 일고 산이라 일 만슈산(萬歲山)이라 니 곳대명(大明)슝뎡 황뎨(崇禎皇帝)슌산(殉死)신 곳이라 이곳의 니러 녯 자최 어지매 홀노 쳔연(慽然)믈 닷지 못너라
165
마 사려 무로 이 녜산이 아니냐 야 손을 쳐 왈 일홈이경산(景山)이니 이 셰샹의셔산이란 일홈을 휘(諱)니 이 일홈을 다시 일지 말나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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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뫼신무문(神武門)밧긔 이시니신무문은 곳 궁쟝(內宮墻) 븍편 졍문이라 문을 내매 곳 (垓字ㅣ) 막히여 큰 무지게 다리 노코 돌난간을 돌너시며 다리 지나 문이 이시니 이 문은븍산문이라 븍산문을 지나 곳경산이 이시니 동셔 두 치 고 즁앙이 놉흐니 슈십 댱의 지날지라 쟝 노픈 곳의 삼층각을 세오고 동셔로 이층각을 둘식 세워시니 집마다 풍마동(風磨銅)으로 쥬졔 그라 덥고 집 졔도 웃층은 우산을 베픈 모양이오 아층은 년(蓮)봉오리 마친 모양이라 븕은 난간이 령농며 쳠해 표묘(縹緲)야 녹벽(金碧)이 눈의 부싀이니 진짓 션경(仙境)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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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목(樹木)이 장 무밀(茂密)고 이이 간숑(白榦松)이 이시니 프른 닙 옥(玉) 튼 쥴기라 긔이 남기러라관덕뎐겻 누른 기와 니은 집이 잇고 집 동편의 담을 가로 막고 문을 내여시며 문밧긔 삿자리로 놉흔 집을 그러관덕뎐과 담을 격(隔)야 와 마조 야시니 젼후 좌우의 믈읏 네 세오고 집 다 아로삭여시며 쳠하 마다 비단 댱을 드리워시며 알프로 댱즁(當中)야 문을 그라 누른 댱(帳)을 드리워시니 곳 나마승의 경(經) 닑 곳이라 더라
168
이곳은 개(私家ㅣ)라도 상(喪事) 만나면 문밧긔 삿집을 졔되 긔묘게 세오고 혹은 집을 다 삿츠로 흰 집을 그니 더윽 고은지라 그 안 풍뉴(風流) 초와 초상(初喪)부터 경을 닑으니 풍뉴 엿와 스므로 긋치지 아니고 쟝[상]후(喪後) 됴이 니면 삿집의셔 퓽뉴 베퍼 쟈(死者)의 신졍을 즐기게 고 됴(弔客)의 슬프믈 위로다 니 길셔브터 황셩(皇城)지 삿집을 본 곳이 여러히라 혹 글로 아로삭여 셔방졍노[토](西方淨土) 네 트러 세웟더라
169
진시(辰時) 뎐(奠)을 파 후의 삿자리문으로 도로 나오니 문밧긔 동븍편으로경운문밧긔 베럿[펏]던 댱막을 다 옴겨 첫더라
170
댱막의 안매 밧긔 잇던역관이 니 대여(大轝) 드러간 지 오라지 아녀셔 황뎨 동장문 안셔 조차 나와 인교(四人轎) 고 대(大內)로 도라가니 시신(侍臣)이 다만 슈십 인이오 그 뒤 인교 여라믄이 기즁 진홍 비단 휘댱이 이시니 피인(彼人)이 니 이 곳 황귀비(皇貴妃) 배오 그 나마 공쥬(公主)와 비빈(妃嬪)이라 이곳은 비록 궐(闕內)나 궁쟝(內宮墻) 밧긔라 왕 거마(車馬)와 매(賣買) 음식이경운문밧긔셔 일(一杯) 분잡고 구경 사이 더옥 모히니 휘댱을 가리오고 믁믁히 안졋다가 오시(午時) 곡반(哭班)을 참예고 안잣다가 신시(申時) 밋쳐 드러가 참예니 삼시 반녈(三時班列)과 졀 치건쳥궁과 고 다만 오시(午時)브터 명졍(銘旌)을 누이고 세오지 아니니 이 오 졀러라 신후(申後)의 관(館)으로 나올 삿자리 문 압흐로 지나 큰 길노 말아마 나오더니 남으로 거이 길의 가로막아 거믄 휘댱(揮帳)을 첫지라 븍편 녑흐로 좃차 삼문(三門) 잇던 밧긔 니니 슈 이곳의 와 령(待令)엿더라
171
신(使臣)이븍경(北京)드러온 후 츌입면 지쳑(咫尺)이라도 믄득 소[슈] 니 이곳 톄면(體面)을 위미라 니 대개 도셩(都城) 안 관인(官人)은 다 슈 미라 혹 신 츌입의 갑군(甲軍) 이 을 고 피편(皮鞭)을 여 길흘 츼오니 이 관인(官人)의 위의(威儀)라 슈 셰(貰) 잠간 궐하의 나아갓다가 도라와도 쇼쳔[젼](小錢) 닐곱 냥식 쥬 머나 갓가오나 잠간 이나 죵일 나 셰(貰) 갑시 고해(高下ㅣ) 업니 이럴니 어이 이시리오마 셔(書者) 놈이 슈 셰 놈과 화 먹으니 임의 뉴례(流例)) 되엿지라 이번 (使行)은 슈 아니 니 업니 셰 갑시 과연 너라
172
예서브터 동화문지 궁쟝(內宮墻)으로 발마 나아가니 궁쟝 셩첩(宮墻城堞)이 쥴노 친 시 공즁의 표묘(縹緲)며 궁쟝 안흐로 궁뎡(宮庭)과 누각(樓閣)이 령농 황홀(玲瓏恍惚)야 진짓 화즁(畵中)의 경개오 궁쟝 동븍각(東北角)의 두 층 집이 졔되 긔묘니오봉누(五鳳樓)알 잇던 누와 모양이라 궁쟝(內宮墻) 네 편 모히 다 이와 튼 집이 잇다 더라
173
관의 니른 후 드니 여러역관이 모히여 황뎨 얼골 보믈 셔로 랑야 셔히 본 바 니더니 역관이 오 나 황뎨 셔히 볼 아니라 공쥬(公主) 보앗노라 며 니 아의 나올 의 어로(御路)로 조차 나오더니 뒤셔 인 니 죵쟤 십여 인이라 소 야 기리라 거 셔히 보니 부인이 흰 옷 닙어시 옷 졔도 창졸의 알 길이 업고 머리 뒤흐로 샹토치 족져시며 흰 무명으로 졉어 니마 동히고 두 츌 굽혀 두 귀 밋흐로 혀 드리워시며 담대 믈고 교의(交椅)예 안연(晏然)히 안자시며 죵 다 양피(羊皮) 옷 닙고 시 라 어로로 좃차 가다가 휘댱으로 길을 막앗거 죵쟤 휘댱을 혀 졔치고 피편을 드러 군(軍士) 치며 지니 위의 현[혁]연(赫然)지라 이 반시 공러라 거 역관이 오 친왕비(親王妃)도 잇고 대신(大臣)의 명부(命婦)도 이시니 그 그 공 쥴 어이 아뇨 답왈 그 년긔(年紀) 삼십 안이로 얼골이 덜 믜여 남와 다로지 아니니 공쥬 아니면 그 믜온 얼골의 어이 이 튼 귀인(貴人)이 이시리오 니 듯 쟤 다 웃더라
175
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경산(景山)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니라
176
셩졀(聖節) 방믈을 도로 내여 쥬란 말을 십뉵일의 드럿지라 그날 삼 신이 샹의여 오 져의 도로 쥬믄 괴이치 아닌 일이어니와 우리 도리 엇지 믁믁히 말도 업시 바다 가리오 뎡유년의 방믈을 도로 가져가라 여 아국의셔녜부의 문(咨文)야 밧기 쳥 일이 이셔시니 이번인들 엇지 문(咨文)야 밧기 쳥치 아니리오뎡유년은 방믈을 도로 가져가란 말이 신이 임의 도라간 후의 잇 고로 문 곳 아니면 밧기 쳥 길이 업거니와 이번은 신이 야흐로 황셩의 머므지라 번녜부의 졍문(呈文)야 밧긔 믈 도모(圖謀)미 곳 우리의 아니치 못 일이라 야 이치 샹의니역관들은 혹 니 황지(皇旨)로 도로 쥬라 엿거 쇼국(小國) 신(陪臣)으로 안연(晏然)이 안져셔 졍문미 분의예 블감(不敢) 아니라 만일 졍문 후의녜부로셔 엿와 신 방믈 논죄(論罪)면 면(事面)이 엇더리오 니 신이 이 의논의 요동(搖動) 배 되여 믄득 졍문을 못고 쳔연(遷延)여 이지 니럿더니 밤낫 샹냥(商量)야도 말이 업시 도로 가져가 거시 가치 아닌지라 드여 샹방(上房)으로 글을 일위여녜부의 밧치니 그 글의 대강 오 쇼방(小邦)이 평일의 대국을 셤기 졍셩 만치 아닌 폐믈(幣物)의 젹이 부치더니 신민(臣民)이 복이 업셔 대태샹황뎨(大行太上皇帝) 의외예 하의 오시니 놀납고 통박(慟迫)나 오히려 젹이 위로 밧쟈 표문(表文)과 방믈(方物)을 빙궤(憑几)신 젼의 밋온지라 업여 귀부(貴部)의 공(公事) 본즉 만만슈졍졀(滿滿壽聖節) 방믈을 신의게 븟쳐 돌녀 가라 야시니 이 명(命)시믈 밧드러 엇지 쥰(尊行)치 못리오마 다만 업여 각건대 쇼방의 젹은 졍셩을 다시 펴을 히 업 아니라 임의 나온 방믈을 도로 가져가면 쇼방의 군신 샹해(君臣上下ㅣ) 비결(悲切) 회푀 맛당이 엇더리오 뎡유년효셩헌황후(孝聖憲皇后)샹(喪事)의 쇼방(小邦) 례믈(祭物)을 내국왕(國王)의 문(咨文)을 인연여 즉시 도로 밧기 인연여 헌[허](許)니 쇼방이 지금 감(感幸) 배라 업여 비노니 귀부(貴部) 쇼방의 졍셩을 펴 특별이 엿오믈 라노라 니라
177
이곳의 희(戱子) 노름과 환슐법(幻術法)이 이시니 이젼은 신이 혹 길셔도 보고 혹 관의 블너드려 보더라 나 이번은 이젼과 다고 이십칠일 젼은 도셩(都城) 안밧긔 곳이 업다 더라
178
희진한(秦漢)이후로 녁의 뎐염 일을 희여 노름을 삼으니 곳 아국 산도(山臺)와 들노름(野遊) 모양이라 민간의 셩야 상(喪事) 만난 집은 삿집 속의셔 이 노름을 베프니 극히 괴이 일이오 황뎨 혹 궐의 드려 본다 니 샹하 무론고 됴히 너기지라 비록 샹(常)업 노름이나 다만 노름을 베플 젹이면 반시 그 나라 복을 초니 녯 의복을 짐쟉 이 아니라 됴뎡 복(朝廷服色)과 궁즁 복(宮中服色)과 상 복(喪事服色)과 길녜 복(吉禮服色)을 다 녯 위의 초니 셩인(聖人)이 오 녜 일흐매 들의 가 구다 시니 즁국의 위의 다 희(戱子)의 잇다 니지라 만일 왕쟤(王者ㅣ) 니러나면 반시 희의 모방(模倣)리니 이러므로 무식 피인(彼人)이 우리 복(服色)을 보면 믄득 우셔 오 희와 모양이라 니 엇지 블샹치 아니리오 환슐(幻術)은 혹 사거[기] 졉시 긴 대(竹) 우 돌니 르기 표 며 혹 대 츼쳣다가 다시 바다 돌니기 마지 아니코 혹 입의 젹은 월도(月刀) 먹음고 월도 우희 젹은 월도 노화 이 셔로 케 노흐 르치지 아니코 우희 노힌 칼 우희 졉시 돌니 대 야 심으고 입으로 칼로 놀니며 눈으로 도 졉시 피니 칼도 박은 시 음기지 아니코 졉시도 일향 도니 그 사의 졍신이 모히여 눈을 감기지 아니니 이 도니 밧긔 일이오 혹 탁(卓子) 우희 나모 두 뇽을 노하 뭇 사을 뵈여 속의 잇 거시 업믈 뵈고 담(毯)으로 덥헛다가 손을 너허 두 뇽의 속의셔 비돍이 나흘 집어내니 비돌기 울며 노다가 간 곳이 업셔지고 혹 지(白紙) 올혀 나븨 개 치 그러 입을 버리고 삼키더니 손을 입의 너허 됴희 집어내매 됴희 다 셩야 올힌 흔젹이 업고 혹 탁(卓子) 우희 담(毯)을 덥헛다가 이윽 후 담을 거든즉 각(各色) 실과(實果)와 각 보로 화졉시(畵楪子)의 담아시니 먹어 보아도 진짓 거시오 혹 역졸(驛卒)의 젼립(氈笠)을 벗겨 뒷쳐 노핫다가 젼립 안흐로셔 실과 졉시 지어 내고 졉시 도로 노핫다가 홀연 간 곳이 업거 겻 션 사의 픔속을 뒤져 그 실과 졉시 드러내고 혹 상아져(象牙箸) 을 가져 왼 코 속으로 질너 올흔 코흐로 혀 내고 올흔 코 속으로 질너 왼 코 속으로 혀 내며 혹 탁의 칼을 박더니 슐이 소사나지라 병(甁)을 다히고 바다 두로 먹이며 혹 아희 공즁의 더져 텬도(天桃) 밧들고 려오니 다 셤흘(閃忽)야 알 길이 업니 비록 눈을 히고 혀도 그 진가(眞假) 잡아낼 길이 업다 나 졉시 돌니 거 졔 진짓 공뷔오 혹 발 동힌 계집이 비슥이 눕고 동힌 발노 아드리 독을 츼쳐 바다 쥬방을 치 다 니 이 긔이 일이라 일더라
179
밤의 이 드럿다가 홀연 놀나 치니 등이 결니며 호흡(呼吸)을 통치 못고 몸을 운동 길이 업지라 못 견여 소 지르 쥴을 지 못니 겻 캉의 사이 대경(大驚)야 모히여 창졸(倉卒)의 약(藥) 길이 업지라 즉시 쥬방(廚房)의 닐너 모밀 슉을 려다가 마시고삼승고약을 어더 결니 곳마다 라 브치니 식경(食頃)이 지난 후 젹이 나은지라 잠간 다시 을 드럿다가 니 동이 임의 텃더라
181
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경산(景山)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니라
182
부(副使ㅣ)뎐갈(傳喝)야 드러가지 말고 도라오라 고 구지 만류(挽留) 병이 젹이 나핫고 임의 슈십여 일을 니다가 오 아니 드러가미 가치 아니코부홀노 참예 거시 면(事面)의 구 지라 관계치 아니타 고 드러가 막의 잠간 안잣더니 밋쳣거 산좌리문으로 드러 이젼 셧던 곳의 니매 황뎨 뒤흐로 좃차 나온다 더라
183
이윽야 황뎨 인교 고신무문과븍샹문으로 조차 나오니 가마 알 시위 슈십여 인이라 다 환도(環刀) 고 며 가마 뒤 표미긔(豹尾旗) 다엿이오 시(內侍) 가마 좌우로 뫼셧더라
184
경산겻 니거 동셔 반녈이 좌우로 화 쟝 지영(祗迎)려 더라
185
황뎨 졍노(正路) 지나지 아니코 반녈 뒤흐로 즈레 빈뎐(殯殿)동협문(東夾門)으로 드러갈 문을 십여 보 못 밋쳐 가마 려 드러가니 뒤흐로 바라보매 등이 급은 의 이시니 대개 이곳 사이 나히 만치 아니여도 니 모양이 압히 구버뵈니 의복 졔되 달나 그러가 시부더라
186
황뎨 곡(哭)며 문밧긔셔 다 일시의 곡며 뎐(殿內)의 드러가 진시 뎐(辰時奠)을 나오지라역관 사이 갓가이 가 사의 등으로 엿보니 황뎨 친히 잔(盞)을 드러 세 번 드릴 번 드리고 믄득 번 고두(叩頭) 이오 별노 다른 졀 보지 못너라 더라
187
빈뎐(殯殿) 담 밧긔 법안(法鞍)과 가즉 방셕을 여러흘 싸코 겻 누른 비단을 하시니 다 구름과 뇽(龍)을 그런 문이 잇고 덩이식 뭉쳐 노하시니 그 십만여 필이 될지라 쟝 블을 오려 거 의 혜오 비록 긔[지]뵈[뷔](四海之富ㅣ)나 엇지 헛도이 믈(財物)을 허비야 글니오 더니 밋 펴보매 비단을 아니오 다 흰 바탕 됴희의 오 뇽(龍) 문을 노코 비단 필치 묵거 아시니 비록 비단은 아니나 됴희 그 슈 아지 못니 금즉더라
188
뎐(奠)을 파 후의 누른 보의 므어 크게 뭉쳐 빈뎐(殯殿)으로브터 밧들고 나오 황뎨 그 뒤흐로 조찻더라
189
이에 흔 됴희 법안과 긔 블을 지니 신시 뎐(申時奠)의 드러가기지 블이 지지 아니야시니 그 만흐믈 짐쟉너라
190
진시뎐 후의 황뎨 즉시 나오던 길노 환궁(還宮)더라
191
나마승이 빈뎐 안밧그로 왕 진시 뎐 후의 슈 인이 빈뎐 동셔문(東西門)을 화 나오거역관으로 여금 무니 피인(彼人)왈 나마승 일뉵십을 블러드려 팔 인은 빈궁의 잇고 팔십 인은 담 밧 삿집의 이셔 빈뎐의 옴겨 뫼시던 날노브터 삼칠(三七)이 이십일 일을 (限)고 경(經)을 외오 경의 올 븍을 치며 풍뉴 갓초아 졀조(節度) 마촌다 더라
192
낫 후의 나마승 나히 막의 니러 기웃거리거황이(黃伊)로 여금 안라 쳥(請)고 무 그 본 어 사이뇨 승왈(僧曰) 셔방(西方) 나라 사이로라 몃 니(里) 되뇨 오쳔여 리라 며 경(京師)의 니른지 몃 되엿뇨 삼 년이 되엿노라 무 어 머무뇨 답왈탑(白塔寺)의셔 머므노라황이오 녜 몃치나 뇨 승이 쇼왈(笑曰) 너희 나라 즁이 녀 두엇냐황이왈 아국(我國) 즁이야 어이 녜 이시리오 승왈 즁은 가지라 어이 이치 뭇뇨황이왈 녀 업나 (奶奶) 이시리로다 승이 우셔 오 산승(山僧)과 문답(問答)며 어이 이대도록 됴롱(嘲弄)뇨 승이 인야 오 너 이치 무름이 아니라 이곳의 승속(僧俗)이 괴이야 너희 임의 아 일이라 슐과 고기 갈희지 아니코 쳐쳡(妻妾)을 둔 쟤 이시니 이 무 즁이라 일리오 우리 만리 밧긔 잇 즁으로 황뎨(皇帝) 별노 와 경셩(京城)의 졀을 짓고 두어시니 엇지 블가(佛家)의 경계(警戒) 직희여 즁의 도리 극진이 아니리오
193
황이(黃伊) 오 이곳 즁의 풍쇽(風俗)을 아지라 너희 그러치 아닌 쥴을 모 거시 아니로 희룡(戱弄)미로다 니라
194
그 즁의 거지(擧止) 단졍고 얼골이 됴츌니 츌가(出家) 사의 모양이오 나히 십이 남엿더라
195
쳥심원(淸心丸) 환을 쥬니 져희 흔이 엇지 못지라 장 깃거야 치샤고 가더라
196
어졔 반녈의녜부(禮部)시랑(侍郞)쳘뵈(鐵保ㅣ)니러부(副使)와 날을 향여 손을 드러 녜(禮)고 벼과 닙됴(入朝) 슈 뭇고박졔개(朴齊家ㅣ)됴희 잇냐 믈으니박졔가(朴齊家)드러와실 의 친가 시부더라
197
얼골이 초강고 거지 소랑(昭朗)야 글 사의 모양이러라
198
오셔 므 슈쟉을 고져 말을 통치 못지라 다만 무미(無味)히 이윽히 섯다가 도라가더니 이날 반(班次)의 만나나 션 곳이 젹이 먼지라부(副使ㅣ)믄져 손을 드러 아른 쳬니철뵈(鐵保ㅣ) 손을 드러 가의 다히고 흔덕이기 마지 아니니 극히 졍다온 거동이라 이 풍쇽이 이러더라
199
오날도 식믈(食物) 탁(卓子) 쥬니 젼의 쥬던 것과 가지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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