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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오연행록 (戊午燕行錄) ◈
◇ 권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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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정조 22)
서유문(徐有聞)
1
초구일
2
관의 머므다 날이 으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의 참예니라
3
역관이 고화신의 일을 드니 황뎨태뉴용을 명야 죄 사(査覈)라 지라 이러모로용이 날마다형부의 니러 국문 신이 임의 피편(皮鞭)으로 십 도(度) 맛고 피국의 큰 죄인을 다리 법이 우아 어즈러이 치지라신의 얼골과 왼몸이 다 프고 부프러 뭇 말마다 믄득 스로 승복고 나 발명(發明) 일이 업더라
4
그 아 부마와 다못 그 군왕은 임의 여금 노화 돌녀보 그 아은 궐의 두엇다 며신의
5
집 젹몰 믈이 금과 은이 억만 냥의 지나며 그 다른 보  혤 길이 업며젼(海甸)젹몰 믈도 곳 이와 다 며복쟝안은 혹 가도앗다 며 밧그로 조찻다 니 셔히 몰을 일이오쇼능아(小陵阿) 벼을 샥다 니 이러시 뎐 말이 다 샹업시 들니 말이라 가히 반시 밋지 못나화신은 필경 죽기 면치 못리라 더라
6
져녁의 관의 도라온 후의 슈역이 고 쇄마구인(刷馬驅人)  놈이 졔 이 병들고 져러 도라갈 길 업지라 헐가(歇價) 바다 피인(彼人)의게 고 갑 보여 호마(胡馬) 사  질 의 아문(衙門)으로 을고 드러오다가 통관의게 들닌 배 되여 스로 니 녜부의 나아가 고여야 우리게 죄 도라오지 아니리라 고 슈역을 블너 일변 니며 일변 밧비  모양을 니 슈역이 간신이 만류야 니 그녜부의 고려 미 올커니와 쇽담의 닐너시 관가의도 무고 촌가의도 무미 됴타니 그 무 일을 내고져 뇨 고 신이 말녓노라 니 대개 을 매미 국법이라 이러모로 통관의 무리 아모조록 이 튼 일을 펴 혹 눈의 이면 대단이 공동(恐動)야 슈역의게 면죄(免罪) 츌(責出)니 이 져희 댱기(長技)라 극히 통분(痛憤)더라
7
즉시 쇄마 령쟝(刷馬領將)과 각 방 하인을 일노브터 임의로 관문의 나지 못며 긔믈 매 못 쥴노 분부다 부 날마다 궐의셔 날을 보니 한만(閑漫) 일을 결을치 못  아니라 톄모(體貌) 텸시(瞻視) 위야 댱막을 막고 젹젹이 안자실 이라 댱막 밧긔 비록 보암즉 일이 이실지라도 샹업시 니지 못니 이 면이 그러거니와 구경을 위야 라온 사은 이곳의 큰 상 나시믈 위야 구경을 아니코  관의 구지 드러 이시면 만히 연 분의(分義) 져릴 거시오 초삼일 이후로 도셩 의 시졍의 매와 거마의 번셩미 이젼과 며  션와 셩은 다만 마으락이예 샹모 힐 이오 안연(晏然) 모양이 조금도 평일과 다미 업지라 비록 져희 모 녜법을 직희여 관문의 나지 아닌들 뉘 녜문 아 사이라 니리오송나라사이 쟝보(章甫) 초와월(越)나라희 니니 사마다 머리털을 고 몸의 옷 버셧지라 쟝보 쓸업다 일라시니 이와 엇지 다리오숑(子頌)과경인(景仁)이 슈일 졍양문 밧긔 구경을 엿노라 니 고이치 아닌 일이라 오치형(致馨)과경인이별행(別陪行)니광직(李廣稙)이 시 잘다 일흠이 잇고 슐을 잘 먹지라 이젼 드러와실 졔 일즉댱문도(張問陶)와 두어 번 챵화(唱和)엿 고로 두 사을 인도야 가지로 차자 갓다가 도라와치형이 뎐여 왈 과연 그곳의 니러 문밧긔 왓노라 통니 나와 마자 당의 안치고 지필노 약간 슈쟉니 인픔이 휴휴(休休)야 쟝 슌실(純實) 사이오 얼골이 잠간 늙어시나 못 쥰쵸(寯超)며 벽 위 셔화 득이 거러시 기즁  화샹(畵像)과 화샹찬(畵像讚)이 이시니동기챵(董其昌)의 손조 그리고 손조 지은 글이라 글과 그림이 극히 졍묘야 만일 진본이면 보라 일 거시오 그 겻강동(江東)만슈뎨 비문 박은 거 거러시니 이홍 판셔 냥호(洪判書良浩)의평안감(平安監司)로 이실 의 지은 글이라 족 미고 아 긔록야 오홍공(洪公)이 신으로 경셩의 니럿더니 그 아낙쥰(樂俊)이 이 가져 쥬거 벽의 거러 동국 사의 문안[아](文雅)믈 긔록노라 고 그 밋션산(船山)은 노라 야시니션산은댱문돈[도](의 별호러라 고 다시 만날 긔약을 머므고 도라왓노라 더라
 
8
초십일
9
관의 머므다 날이 으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의 참예니 오 바람이 이 블고 일긔 심히 치은지라 비록 댱막 안 안져시나 한나 다업고  바람이 댱막을 거두쳐 잠간도 안졍치 못기의 박셕 우 도듬을 노코 안자시니 피인이 서너 겹을 에우고 슈쟉고져  쟤 만커 짐즛 연관으로 여금 말을 답라 니 말을  일나 더 모드여   플니면    모히니 이치 날을  족히 바람을 막을지라 셰폐(歲幣) 방믈(方物)을 밧치니 다태화뎐좌우 월랑의 코 을 두어 셤을 두량(斗量)다가 남 거시 잇거 간검(看儉)야 밧 던 관원이 그만라 야 두량치 아니코 무폐(無弊)이 밧치다 더라
10
븍경의 니므로브터 여러 번 약대 만나되 셔히 본 일 업더니 오 관으로 도라올 예 약 여라문이 지나니 약마다 몽고 놈이 긴 곳비로 으지라 그 형샹이 의 머리며 몸이오 긴 목이 우흐로 벗첫 거유 목 며 목 아 멱이 드리웟고 다리 셰 마티며 발이 쇼와 나 굽이 업며 등이 압뒤흐로 두 치 남이 길마치 혹이 겨시니 두 이의 혹 포단을 노코 시며 혹 짐을 시러시니 짐은 셕탄 외의 다른 거 보지 못며 킈 길 반이 될 듯고 길의  킈와 방블(彷彿)나 몸이 심히 느러 극히 셤셔[셰](纖細)야 뵈지라 머리 우러러 길을 피 모양이 아니오 입의 샹해 무어 먹 거시  쇼와 튼지라 이 즘은 본 븍방의 나 거시니 힘이 능히 쳔 [근]을 싯고  삼 니 다 며 브리지 아니  집만 먹이다가 짐을 시러 면 쇼금을 집희 너허 셕거 먹이니 오뉵 일이 지나면 등의 두 혹이 더옥 기러진다 며 셰오고 짐을 시 길이 업기의 안치고 시러 다 며 몽고 놈 의[외]예  이 업지라 흉악 얼골의 괴이 즘을 고 엇개 우슭여 밧비 모라가 모양이 무셥고  우습더라
11
져녁의샤관(寫字官)고경빈이 이곳 션의 글 지은 거 가져와시니 션 셩명은젼영이오금제현사이라 누에 치 글 여 슈(首) 븕은 조희예 삭여 박아시며 두어 쥴 셔('序) 지은 거시 이시니 대강 니 우리 싀골이 누에 슝샹치 아니더니 (內子ㅣ) 비로소 누에 치지라 이 글을 지어  뵈노라 여시며
 
12
그 쳣 글의 오
 
13
[포][각]금침상(抛却金針學採桑)[주:금바늘을 리고  캐기 호니]
14
됴됴슈녹운향(朝朝雙手綠雲香)[주:아 아 두 손의 프른 구이 향긔롭더라]
15
잠긔잠됴[포]쳠우희(蠶飢蠶飽添憂喜)[주:누에 쥴이며 누에 비[] 브 근심과 깃브미 더니]
16
영득심규일야망(嬴得深閨日夜忙)[주:넉넉히 깁흔 집의 날과 밤을 밧부믈 어덧더라]
 
17
그 글귀 졔작이 족히 일 거시 업며 그나마 졀귀(絶句)  볼 거시 업나 그 안해 길인 의 만흐며 이웃 사도 그 안해 본바다 누에 치라 여시니 이곳도 즛어린 사이 잇도다
18
가히 우음지라 져근 편지와 이 글을 가져 관즁(館中)의 긔별여 오 임의 박군 졔가(諸家)의 글과 글시 어더 박아 내여시나 한두 문(文士)의 글 로치믈 엇고져 노라 여시니 졔 나라희 랑치 못여 남의 나라지 랑코져 니 더옥 우읍더라
19
경인이 운(次韻)다 더라
 
20
십일일
21
관의 머므다 날이 으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니라
22
오시 곡반을 파고 믈너와 더니 믄 고기 황지(皇旨)로 송(賜送)니 이 게유고기라 졔뎐의 믈닌 거신가 시브더라
23
피인이 니러 구경 쟤 셔로 슉덕여 지져괴기 마지 아니니 셔히 아라듯지 못나 대개 귀 거시라 일 의러라 이날치형(致馨)이용[융]복(隆福寺) 져의 구경고 와시니대명경태(景泰) 오년 갑슐(甲戌)의 지은 배라 대강 니대 이 졀 장녀(壯麗)타 니더니 젼년의   큰 집이 블이 븟고 다시 지을 이 졀 법당을 허러 그 목을 고 법당을 다른 목으로 곳쳐 지으되 이젼과 다미 업며 면의 여러  익낭이 다 즁슈 거시라 니 브 이 법당 목을 옴겨가믄 무 의 쥴 모나 그 공녁의 졍묘과 그 단쳥의 빗나미 젼의 보지 못 배오 졀 안밧 문 한[안]이 너른 곳의 븬틈업시 쟝 미안[만](彌滿)여시니 긔이 보와 공교 믈홰 형형(形形色色)이 니로 긔록 길이 업고 쥰쵸(寯超) 인믈과 션명 의복으로 흥셩 쟈 됴관과 션의 모양이 만흐며 양피 갓옷과 포 샹복(大布喪服)으로 니른 쟤  무슈니 엇진 풍쇽인 쥴 몰을너라
24
졀 동편 어귀예  푸 이시니 각양 명죵과 뉸도(輪圖)  곳이라 푸 안희 금칠 탁 우희 큰 궤 나흘 노하시니 면 우리와 기동을 다 침향으로 긔묘히 삭여 그러시며 알프로 뉴리  겹을 리오고 뉴리 안흐로 슈노흔 댱을 드리워시니 댱즁야 인지세운(仁智瑞雲) 네  삭여시며 겻흐로 보아도 긔이 그시라 쥬인려 그 속을 구경쟈 니 쥬인이 궤 우흐로 열쇠 나흘 집어내여 뉴리 안흐로  굼글 향야 두어 번 트니 가온  골희 스로 열니이고 그 안희 자믈쇠 뉸도 모양치 라시며 밧그로 지남텰(指南鐵)을 라시니 두어 번 졀노 도라 며 궤 쇽으로셔 스로 긔이 풍뉴 소 나더니 이윽고 슈놓은 댱이  스로 녑녑히 것치이며 그 안 대초만  과 알만  사이 무슈히 나오니 다 옥으로 그랏더라
25
각각 긔치와 부월을 드러시되 황뎨 알 나렬 거쟝이 낫낫치 진 거시 업셔 두어 쥴노  도라가며  안  겹 뉴리 막히여시니 코기리며 황옥교(黃屋轎)며   시위 좌우로 버러시되  스로 운동고 그 안희 뉴리로 팔구 층을 라 졀노 틀니며 슌환니 그 안 사이 요동  시브더니 홀연 두 층 금으로 근 탑을 노코 향양산(黃陽傘)을 밧쳐시며  아 쳔관(天官)이 됴회 형상을 베퍼시니 고 공교야 사라 음기 니 못 귀신의 조홰러라 젼후로 봉황이 입의 블근 됴 먹고 공즁으로셔 개 쳐 츔츄고 려오니 쳐음 열 틀므로브터 여러 번 변화 풍뉴 소 잠시[도] 그치지 아니니 그 소 쳥아야 냥금(洋琴)을 치며 황 블며 경쇠 쳐 졀죄(節調ㅣ) 샹응(相應)야 이치 반향[상](半晌)을 더니 여러 겹 뉴리와 슈댱(繡粧) 거시 례로 스로 닷치이고 풍뉴 소 라 긋쳐지니 그 신묘믈 측냥치 못지라 갑시 은 팔 냥이라 고 그 밧긔 명죵이 음기며 소 나니 졔작이 졍묘고 셔양국 뉸도(輪圖) 나히 갑시 삼십 냥 은 되니  푸의 힌 거시 갑 의논면 몃 억만 냥 될 쥴 모지라 즁국 믈을 가히 일로 짐쟉너라
26
 졀 안희 무슈 믈화와 푸의 매 거시 구여 사의게 실답고 긴요 거시 업고 샹업 손의 갓가오니 괴이타 너라
27
비연(鼻煙)이라  거시 담로   그러 져근 병의 너허시니 병은  치 남되 다 호박과 금패와 슈졍 만호 튼 보로 그라시며 병을 기우려  손긋 여 코의 다히고 긔운을 드리 그으니 그 니 속을 드러가며 옴을  나 그러치 아니코 사마다 병을 치 아닌 쟤 업니 쳐음은 만 사밧긔  쟤 업더니 근 한인도 즐기지 아니리 업다 며 아국 사을 만나면 믄득 병을 쥬며  법을 쳐 니 비긔 소통니 극히 됴흔 법이라 일더라
 
28
십이일
29
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니라
30
건쳥문 밧 가온 길노 황손이 해 거듕(擧動)야 반녈(班列)의 읏듬이 되여시니 믈읫 여라믄 사이라 날마다 삼시 곡반의 우리 셧 곳의 니러 혹 벼 픔슈 무니 혹 의복 졔양(制樣)을 샹\고야 셔로 가람[라] 무며 지져괴고 부의 금관 손으로 져 므 픔슈뇨 며 신이 능히 만 말을 아냐 며 무니 그 의 심히 슈쟉고져 나 우리 능히 말을 아지 못  아니라 비록 말을 나 외국 신이 황족과 괴 거시 톄면이 블길지라 통관이 황손이 말을 뎐 다만 뭇 말을 답 이오 아모 말도 모 톄며 무럼 것도 뭇 일이 업니 황손이 극히 무미(無味)히 너기더라
31
초삼일 이후로이엄(耳掩)을 아니 쓰니 져희도 양피 외예 다른 피믈을 못  연괴라 황손이 오 이젼은 쵸피(貂皮) 모 더니 즉금 어이 아니 뇨 날이 이치 치우니 시러금 칩지 아니냐 답여 왈 엇지 칩지 아니리오마 쵸피 모 빗난 복인 고로 지 아닌 배라 니 고개 그더겨 그러타 더라
32
아국의셔 피인의  거 마으락이라 고 피인은 모라 니 피인은 머리의  거시 다만 마으락이 이라 다른 명이 업니 아국은갓과벙거지며 사모와 탕건이며감토이엄휘항(揮項)망건(網巾)평냥(平凉子)삿갓시 다 각각 명이 다르나 피인은 보 쟤 일병 모라 일니 아국 사이  거 혹 마으락이라 니면 대욕(大辱)으로 알 거시로 특별이 피인의  거 오랑캐 복이라 니믄 피인이 치 비록 모라 니나 져희도 아국의 쓰 바 녯 복이오 져희 쓰 바 오랑캐 복이믈 아 고로 혹 아국 사의망건휘항과갓슬 달나 야 초와 쓰고 셔로 톄면이 됴타 일니 만일 져희 쓴 거 아국 사려 써 보라 면 진실노 우환이로 그리 일이 젼븟터 업다 니 져희도  알으미 잇 연괴러라 날마다 황손과 슈작 예셥[셤]나(暹羅)사과회(回子)사이  녑희 셔시나  번 뭇 말이 업고 홀노 아국 신의게 날마다 삼시 아니 와 보 젹이 업니 그 흠션(欽羨) 의 가히 볼 거시오 반녈의 츌입 의 비록 왕공 대인이라도 반시 닉이 보와 혹 우음도 먹음고 지졈(持點)며 혹 길을 양야 오 도라보 쟤 만흐니 아국 신이 드러온 젹마다 피인의게 견즁(見重)미 본 이 다 니 진실노 녜의 능히 사을 감동미로다 칙 패문(勅使牌文)이 이날 믄져 나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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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삼일
34
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의 참예니라
35
진시 곡반을 파 후의 동화문으로브터 대여(大ꞈ) 틀을 매워 드려와 경운문 알 니러 노흐니 기릐 슈십여 쳑이오 크기 서너 우흠이 될지라 여 인 졔되 방이 거의 트  편 길희 쥬쳑(周尺)으로 칠팔 쳑이 남고 놉  오뉵 쳑이라 누른 네 기동을 셰오고 샹쟝을 언즈니 아국 가마 두에 트 네 귀 반시 들니고 드리암이 자 남즉며 아 누른 칠 너 기동 안희 득히 고 휘댱을 막으니 누른 비단의 뇽을 그려시며 누른 당 노흘 샹댱 우희 그믈을 시니  곳도 누지 아닌 곳이 업더라
36
양피 옷 닙은 사 다여시 그 가온 안고 담여군(擔ꞈ軍) 여 인이 깃 즌 마으락의 븕은 옷 닙고 일졔히 메고 셔니 그 담여 법이 편쥴노 메지 아니코 각각 젹은 남그로 누른 가족 을 그라 틀의 단단이 메고 젹은 남그로 엣게예 메니 거이 완완야 샹쟝의 들임이 스로 나븟기니 심히 엄슉고 안졍지라 도로 동화문을 좃차 나아가매 각 의댱이 다 임의 문밧긔 초아시며 길 좌우의 목패 세워 좌우 반(班次) 삭여시니 습의(習儀)야 라닐 예 반녈이 문란치 아니케 미러라 시 량(巳時量)의 샹부칙(上副勅使ㅣ) 칙셔 밋 유교 밧들고 궐로븟터 나올 앏 황뇽긔 니히 셔시며 그 나마 의쟝도 못 졍졔(整齊)지라 대궐 밧긔 니매  고 죵쟤 십여 인이오 칙셔와 밋 유교 누른 보흐로   사이 등의 지고 앏셔 니 샹부칙이 그 뒤흘 고 여러 통관이  샹부칙 뒤흘 좃차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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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쥴 가셔(家書) 언문으로  통관 계문(啓文)을 쥬어 의쥬의 뎐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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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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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곡반의 참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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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드니 초뉵일 황뎨 됴셔야 왈짐이 츙녕(冲齡)으로브터 황고(皇考)의 교회(敎誨)고 셩시믈 밧와 형뎨 즁의 죵(鐘愛)심과 기망(期望)시믈 샹녜의 지나시더니 친히 대보 쥬시므로브터 (孜孜)히 졍 치샤 삼 년이 지난지라 놉고 두터온 셩은이 호텬(昊天)이 망극니 진실노 녜로브터 뎨왕이 궤연 알셔 위 니은 쟈의게 가히 비치 못지라 비록 공경야 황고의 유교 밧와 날노 을 밧고라 시나 내 의 아 못미 이시니 곳  일을 복을 닙으나  일월이 진기 고 모(哀慕) 무궁지라 스로 맛당이 녯 법을 쥰야 공경야 삼년상을 여 져기 모고 졍셩을 위로리라거 각이 엿오 업듸여 됴셔 밧오니 일노 황샹의 효(孝思ㅣ) 돗타오시고 츄모 무궁시믈 우러러 볼지라 신 등이 엇지 감히 번거로이 쳥리오마 업듸여 샹고건대효경(孝經)이라  의 오텬 덕(德敎ㅣ) 셩의게 더으며 예 베플므로 효도 삼다여시니 일노 텬의 효되 셔인(士庶人)과 더브러 지 아니니 만긔(萬機) 지즁(至重)지라 됴희 보고 졍 드로매 밋 교묘(郊廟)의 큰 졔 다 법졔의 관계 배라 만일 삼년상을 면 졔 광폐(曠廢) 거시오 녯날진(晉)나라신하두예(杜預)양임[암]지의(諒闇之義) 푸러 오 텬의 양암이란 말은 복을 버슨 후 심샹(心喪)을 니미오 삼년상을 단 말이 아니라 야시며 믈며 대 태(샹)황뎨 룡어샹빈(龍馭上賓)시매 황샹이 효 망극샤 호호박[벽]용(呼號擗踊)샤 녜 다 시며 슬프믈 다 시니 진실노 녜로브터 업 일이라 임의 족히 모 졍셩을 펼지라 업듸여 원니 황샹은 텬디(天地)와 조증[종](祖宗)의 부탁신 과 쳔 신의 바라 을 각야 힘써 기치신 됴셔 쥰야 구버보 졍셩을 좃츠샤 날노 을 밧고 졔도 쇼셔 신 등이 명을 기려 결졀믈 이긔지 못이다 황뎨 다시 됴셔 왈왕공 대신의 엿온 글을 피며 삼년상을 거키 어렵다 야 녯 졔도 쥰야 이십칠 일의 복을 벗고져 나 엿온 말이 능히 짐의 을 피지 못미라 짐이 황고의 국육(鞠育)신 깁흔 은혜 밧와 텬디의 그음 업지라 홀연이 대고(大故) 만나되 눈믈 드리오며 이 통니 비록 모야 을 맛쳐도 오히려 랑시던 은혜 만분의 일도 우러러 갑지 못려든 엇지 삼년상을 다 므로 효도 다다 리오 황고 님어(臨御)신지 뉵십 년의 크게 다리믈 구샤 밤들며 날이 져모도록 쵸죠시더니 밋 과궁(寡躬)의 억교[죠](億兆) 부탁시매 오히려 히 교회샤 외 다 덕화의 덥혀시며 아다온 덕이 손의게 밋쳐시니 내 텬하 신민으로 더브러 깁히 감(感戴) 배어니와 복졔 일 신민이 스로 녯 도 쥰 거시오 짐은 친히 부탁시던 을 밧고 (고)복(顧復)신 은혜 닙와 날노 을 밧고 졔도 진실노 참아 치 못며 믈며 삼년샹은 텬지 못단 말이녜긔(禮記)예 실녀시니 아모리 각여도 내 삼년상 미 진실노 맛당지라 교묘 졔와 군국즁(軍國重事) 인여 상복 가온 다리미 셔로 방해롭지 아닌지라 내 이 임의 뎡여시니 졔왕 대신은 시러금 두 번 쳥치 말고 엇지야 삼년상을 고 셔히 녯 법과 녜문을 샹고야 확실이 의논야 초 엿오라다 더라
 
41
십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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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뉴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곡반의 참예다 새벽의 소셰(梳洗) 파매 쥬방이 약밥을 초와 나오니 몸이 이역(異域)의 이셔 명졀을 당니 목을 느리혀 고국을 라매 암연 회푀 금키 어렵더라
43
경운문 밧긔 니니 홀연 흰 담으로 근 몽고 댱막 두 곳을 베플고  곳은 누른 보흐로 덥헛지라 역관으로 여금 탐지니 어졔밤의 대여 이 문밧긔 습의(習儀) 황뎨 댱막의 안자 보앗다 더라
44
초삼일 이후 왕공 대신 이하 여러 관원이 비록 댱막을 문밧긔 베퍼시나 뎐을 파즉 각각 그 집으로 도라가며 혹 됴방(朝房)의 드러안잣다가 오시 미쳐 다시 모히며 신시의  이치 나 홀노 우리 대풍(大風)과 극한(極寒)이라도 오히려 구지 안자 움기지 아니니 대개 관의 니미 져기 먼 고로 왕기 극난 연괴라 슈일노브터 대쇼 관원이 다 막(幕次)의 드러안자 밥을 여 먹으며 신시 지나면 흣터져 우리와 가지로 거 치니 그 의 대개 외국 신도 오히려 궐네[]의 날을 맛거 우리 엇지 편믈 리오 민가 시브더라
45
내 부 슈쟉여 오 우리의 능히 왕치 못믄 짐즛 고져 미 아니라 그 형셰 그러지라 그러나 우리나라 본 녜의로 일 고로 이국 사의 관감(觀感)미 이 트니 이 가히 니 덕으로 사을 항복밧다 랴 셔로 웃고 파다 황형뎨(皇兄弟) 팔친왕이 야흐로구문졔독을 엿지라 궐의 왕 젹마다 죵쟈 슈 인이 젼후로 옹위야 위의(威儀) 심히 빗난지라 궐문의 직흰 관원이 그 츌입마다 허리 굽혀 맛고 보며  얼골이 쥰영(俊英)며 의복이 션명 쟤 겻흘 좃차 여러 번 답야 므 분부 듯 모양 다가 믈너셔 이치 그칠 젹이 업니 대개 벼이 황셩 아홉 문을 다 디야 일이 대쇼 업시 다 거 후의 시 고로 슈응이 스로 번다미라 이날 오시 후 믈너나 올  경운문 안희셔 셔로 마조쳐 압플 건너 지나미 가치 아닐 듯지라 믄득 길의 음겨셔 길을 양고 눈 쥬어 보기 마지 아니니 팔친왕이  우리 도라보매 우리 존경 의 보고 현연(顯然)이 블안 빗치 이셔 도혀 길가 됴방으로 드러갓다가 우리 문을 지날 의 도라보니 비로소 됴방으로 나와 건쳥문 안흐로 드러가며  우리 도라보더라
46
킈 칠 쳑이 남고 얼골이 슌실나 별노 귀 골격이 업고  범샹 사이러라
47
황뎨 이졔 두 형과 두 아이 이시니 형은 곳 뎨 팔의친왕(儀親王)이니 명은영션(永璇)이오 뎨 십일셩친왕(成親王)이니 명은영(셩)(永瑆)이오 뎨 십칠 친왕이니 명은영션이라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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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뎨 열 다 친왕으로 대통을 닛고 명은영염이라 첫 번은 긴[길] 영 항녈이러니 텬 되매 길 영 곳쳐 로 영로 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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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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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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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반녈의 나아가면 피인이 믄득 슈쟉고져 니 역관이 만일 답 배 이시면 십 나 더 모히니 비록 열 입이라도 슈응 길 업니 곤야 가히 견지 못지라 일노 피인이 뭇 배 이시면 믄득 화부동이라 일니 말을 아라 듯지 못노라 말이라 이  즁원 말이니 피인이 혹 뭇다가 이 말노 무미히 방챠(防遮)믈 보고 말 아닛 의 짐쟉고 웃고 오 화부둥이란 말은 홀노 즁원 말이 아니냐  답되 맛내 이 말  마 아노라 대  즁원 문로 답이 되니 뭇던 쟤 더옥 우셔 오 이  한만 말은 능히 알고 뭇 말은 모로노라 니 사을 엇지 이치 박뇨 야 여러 번나 혹 슈쟉이 되나 대져 라온 역관도 말을 별노 고져 아닐  아니라 슈쟉 곳 면 통관이 핀잔스러이 지져 오 말을 아니면 사이 어이 이치 모히리오 니 역관은 통관을 져허야 그 의 거리지 못 쥴노 아 고로 말을 시작다가도 통관의 지즈믈 본즉 즉시 근쳐 답지 아닌지라 그러나 슈쟉이 이시나 업시나 사 모히기 날마다 덜니 일이 업더니 오은 당샹 역관윤갑죵이 라 드러와 피인의 말마다 다 로 답니 모른[든] 사이 그 말믈 대락(大樂)야 닷토와 앏흐로 나아와  말식이라도 다 뭇지라 쟝 죵의회국사 나히  말코져 여 갓가이 나오니 상뫼(狀貌ㅣ) 녕츄(獰醜) 즁 검기 슛쟝슈의셔 심고 갓가오매 비린 더옥 사의 치지라윤역(尹譯)이 괴이 넉여 뒷거치며 화부둥이라 고 게을니 답니회국사이 븟그리고  노야 묿[물][러]가지 아니코 즁어리 말이윤역을 침욕(侵辱) 귀졀이 만흔지라윤역이 견지 못야 얼골이 븕으며 고개 슉여 말이 업다가 머믓거려 믈너안지라 대져회국사이 아국 사이 져희 더러이 너겨 말 아니믈 짐쟉야 처음브터 날마다 갓가히 셧시나 감히 앏흐로 니러 슈쟉 의 두지 못고 반녈 이로 옷기이 셔로 다으면 극히 괴로온지라 통관이 우리 긔을 짐쟉야 모든회국사들려 믈너셔라 니 이리여도  거리 일이 업고 슌히 믈너가더니 이날은 여러 사의 슈쟉믈 됴히 너겨 홀연 당돌 으로 말코져 다가 믄득 말을 모노라 니 져희도  챵 잇거든 엇지 분치 아니리오회의논 모양이라윤역의 욕먹고 믈너가 거동이 겻 보 쟈도 크게 우읍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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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관이 와 뎐 황지(皇旨)로 셩졀(聖節) 방믈을 도로 내여쥬니 셩졀 방믈은 태샹황 일의 밧치 믈죵(物種)을 니미라 태샹황 일이 칠월이 아국 신이 별노 드러오지 아니코 마다 동지 (冬至使行)의 방믈을 미리 가져오 법이러니 태샹황이 셩졀을 지지 못고 상난 고로 방믈 바드미 블가타 야 도로 쥬미라녜부의 엿온 글월의 오 건륭(乾隆) 십일 년겨을의됴션국이효셩황후(孝聖皇后)[주:태샹황 모후라] 온 열 쟝 글월과 글월의 로인 녜믈 열 깃시 잇더니 그 이틈[듬] 졍월 이십삼일의효셩황후상 만난지라 각의셔 엿오믈 인연야 녜믈을 신의 마을의 두엇다가 후편의 도로 가져가게  문젹(文籍)이 잇지라 이번도됴션국의셔 대 태샹황뎨 오 녜믈  명과 됴[표]문(表文) 아홉 댱이 이시니 젼례 의거야 신의게 도로 맛겨 돌녀보며국왕 보 믈건과 신을 샹 쥬 믈건을 명을 좃챠 보 믈건을 분리라엿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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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가지 명은 곳 동지와 졍됴(正朝)와 셰폐와 셩졀과 샤은(謝恩)이니 셩졀 명을 졔면 네 가지 명이 된다 말이오 샤은 명은 아국 표풍(漂風) 셩이 즁원 바다 니매 뭇흐로 돌녀 보믈 샤례다 말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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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황뎨화신(和珅)의 큰 죄 스므 가지 혜여 즁외예 반포여 오 어졔 임의 됴지 리워화신의 죄샹을 베러 각각 독무(督撫)게[주:독무 법 맛튼 벼이라]효유(曉諭)야 논죄라 엿더니직역 춍독(總督) 벼흐[후]계당이 쥬왈(奏曰)화신이 텬셩을 다 일코 다시 인 아니라 가지가지 패역며 블신지죄(不臣之罪)와 나라 좀이 되며 셩의 병 되오미 거의쳔쵸(川楚) 도젹교비(敎匪)와 트며 탐독고 방탕미 갓 념치 업 쇼인이라 을 일허 밋친 병든 쟈와 다미 업고 눈의 군샹이 업 니 대역뉼(大逆律)을 의거야 능지야 죽이기 쳥엿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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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분 참남고 망령되여 법졔예 어긔며 갓가온 군현의 젼당풍와 믈을 모도와 두어시믈 사실(査實)고  년일화신의 금은 등믈을 쵸츌(抄出)믈 의거야 특별이 다시 뭇 사의게 효유노라 짐이건륭 뉵십 년구월 초삼일의 황고(皇考)의 황태 봉시믈 닙온지라 오히려 됴셔 반포치 아니여셔화신이 초이일의 짐의 앏 이셔 문져 니 로 되다 야 만 일을 누셜야 거연히 제 힘이 이스므로 공을 삼으니 그 큰 죄  가지오 황괴원명원(圓明園)의 계실 의화신을 블너 보실 제 내 을 고 바로 궐 좌문의 나아가졍광명뎐(正大光明殿)을 지나슈산(壽山)어귀지 니니 아비 업며 님군이 업지라 그 큰 죄 두 가지오  다리의 병이 잇노라 인연여 좌의교(坐椅轎) 고 대예 메여 드러오며 남여 고 신무문의 츌입니 여러 눈의 보 배로 조금도 긔탄미 업니 그 큰 죄 세 가지오 궁즁으로셔 나온 녀 (娶)야 버금 안해 삼아 념치 도라보미 업니 그 큰 죄 네 가지오 황괴 군(軍士) 일노 쥬야의 념녀시거화신이 각도 군즁의셔 엿 문셔 임의로 믈니쳐 의 긔망(欺罔)코져 미 이셔 군 일이 날이 오라도록 디 못니 그 큰 죄 다 가지오 황괴 셩궁(聖躬)이 평안치 못시되화신이 조금도 근심 빗치 업셔 양 나아와 뵈옵고 믈너가 외뎡의 인원과 슈작야 말과 우이 샹시와 트니 을 상실고 병드러 밋친 모양이라 그 큰 죄 여섯 가지오 젼년 겨을의 황괴 병환(病患)을 강잉(强仍)야 글을 일워 됴서(詔書) 리오실 글 획이 이이 분명치 못 곳이 잇거화신이 졔 감히 입으로 일라 업니만 지 못다 야 별노 신야 됴지(朝旨) 비의(非議)야 니 그 큰 죄 닐곱 가지오 젼의 황고 칙지(勅旨) 밧드러 졀노 여금니부(吏部)와형부(刑部)무 맛타 다리라 고 미좃차 군의 쓰니 부비(浮費) 라지 못믈 인연여 져 닉이 슈관이라 야  유지(諭旨) 밧드러 여금호부(戶部)의 여러 가지 일을 겸야 다리라 엿더니 졔 내호부무 오라지 아니야  사이 가지고 이시 변경(變更)미 젼녜(前例)되여호부다른 관원(官員)이  일도 참셥(參涉)야 의논치 못게 니 그 큰 죄 여 가지오 샹년(上年) 셧의규셰글노 엿오슌화와귀덕 두 곳 도젹이 쳔여 인이 둔(屯聚)야달와니마  쟝의 쇼 겁박(劫迫)야 아며 두 목슘을 샹해(傷害)고쳥(靑海) 니러 방히 노락질다 엿거화신이 그 엿온 글을 가져 도로 보고 슘겨 파단치 아니야 젼혀 변방(邊方) 일노 모 톄니 그 큰 죄 아홉 가지오 황괴 승하(昇遐)시매 짐이 몽고왕(蒙古王)의 효유(曉諭)야 역질(疫疾)을 지지 아닌 경성(京城)의 드지 말나 야거화신이 짐의 효유믈 쥰치 아니코 제 을 니 역질을 지 쟤 다 반시 오지 말나 야 젼혀 국가의 외번(外蕃) 무휼(撫恤) 을 도라보지 아니니 그  두물 실노 측냥치 못지라 그 큰 죄 열 가지오태(太學士)소능(小陵阿ㅣ)두 귀 막히고 쇠로(衰老)야 일을 감당치 못 거시어 졔 아한[화]림(和琳)의 인친(姻親)이라 야 고호(顧護)고 은닉(隱匿)야 엿지 아니고시랑(侍郞)오셩난과 태복시(太僕寺)[주:벼] 경(卿) 니광운은 다 일 졔 집의 이셔 글 로치던 배여 졔 드러셔 공경(公卿)의 계뎨(階梯)의 니르고 겸야태의 졍 맛지니 그 큰 죄 열 가지오 군긔(軍旗)의 일흠을 긔록 관원을화신이 임의로 거드쳐 버려 죵죵 오지 믈 가지가지 긔록치 못지라 그 큰 죄 열두 가지오 져 즈음 화신의 집을 젹몰(籍沒)야 사실(査實) 남목(南木)으로 지은 집이 참남고 샤치야 법의 넘고 그 다모각이란 집과 밋 문 얼골과 집 졔되 다명슈궁졔도 의방(依倣)고 그 동산의 민 배 다원명원(圓明園)봉대(鳳臺)와요(瑤臺)와 더브러 다미 업니 아지 못게라 이 무 심쟝(心腸)이뇨 그 큰 죄 열셰 가지오계쥬 분묘의 거연(居然)히 궁뎡(宮庭)을 베플고 슈도(隧道) 열니 두매 갓가이 사 사이 다 일기화신의 능이라 니 그 큰 죄 열네 가지오 집안 감쵼 바 보의 진쥬(眞珠) 그러 손에 디 구이 이 드이 나무니 대(大內)에 비교 그  나 더며  그 큰 진 어용(御用) 마으락이 징의 비기매 더옥 큰디라 그 큰 죄 열다 가지오  보셕 증의 져의  거시 아니어 감촌 바 진짓 보셕 증 십여 개 이시며 덩이로 잇 보셕(大寶石)이 그 슈 혤 길 업고 무부(內務府)의 입  만흐니 그 큰 죄 열여 가지오 집안 은냥과 의복 믈건이 그  쳔만의 넘으니 그 큰 죄 열닐곱 가지오  두 담 틈의 감초와 둔 황금이 이만 뉵쳔 냥이오 속의 므든 은이 여 만 냥이니 그 큰 죄 열여 가지오 경셩(京城) 갓가은통(쥬)(通州)와계쥬(薊州) 다 뎐장(田莊) 푸 잇지라 그 밋쳔을 사실매  십여 만 냥의 리지 아닌지라 읏듬 대신(大臣)으로 아로 쇼민(小民)으로 더브러 니(利) 토니 그 큰 죄 열아홉이오 졔 집 사뉴금은 하쳔노복(下賤奴僕)의 리지 아니거 그 가산(家産)을 살츌[]매  이십여 만 냥의 니며 큰 구과 진쥬(眞珠) 엄이 무슈니 만일 시겨 두로 징(徵索)지 아니면 엇지 이치 만흐며 요부기의 니리오 큰 죄 스무 가지며 그 나마 탐독(貪黷)며 광패(狂悖)며 망녕된 곳을 오히려 다 혜기 어려오니 진실노 고금의 드믄 배라 계당의 근본 엿온 글을 가져 경셩(京城)의 잇 문무(文武) 삼품 이상 관원의게 맛져 샹고여 펴 을 다야 공평(公平)도이 의논여 엿오며 이 안 만일 소견이 잇거든 베퍼 엿오미 무방(無妨)고 만일 소견이 다 트면 밧비 그 엿올 거 가져 드리라복쟝[강]안(福康安)은 한아비와 슉질(叔姪)이며 형뎨 로 두터온 은혜 바다 더옥 다른 사의 비 배 아니라 그군긔대신(軍機大臣)으로 이셔 니매화신으로 더브러 됴셕(朝夕)으로 모도혀 이시니 므릇화신의 탐독(貪黷)야 일을 경영(經營)매 죵죵 법[범](凡)되지 아니 죄악이 장 만흔지라 황고의 진즁(珍重)신 은혜 바다 샹해 홀노 뵈올  이시니 만일 과연화신의 방며 완롱(玩弄) 각 죄목(罪目)을 가져 실샹을 의거야 바로 엿오면 다른 사의 엿와 논박(論駁) 비기건 더옥 확실야 증험(證驗)이 이실 거시라 황괴 반시화신의 죄 즁히 다려 법을 바로게 실 거시니 젼브터 일을 과단(果斷)며 친구 죠종(操縱)던 죄안(罪案)에 엇지 일 져기 관가미 이시며 엇지 맛당이 군국(軍國)의 즁 무 그릇치미 갈치 이에 니리오 만일 니 황괴 년셰 놉오시니 감히 우러러 성녀(聖慮)의 번거히 못노라 진  응당 짐의 알 이셔 실샹을 웅거야 바로 베플 거시여 삼년 의 일즉화신의 죄안(罪案)을 가져 엿와 밋 일이 업니 그 부동(符同)야 눈 금젹이며 슘기던 졍 현연지라 만일복쟝[강]안(福康安)이 짐의 알 이셔  말이라도 엿온 배 이시면 짐이 결단코 즐겨 져 일변 벼을 삭(削)고 잡아 뭇지 아녀실 거시오 졔 집을 젹몰(籍沒)매화신의게 밋지 못나 구과 보 그   쳔만의 넘으니 제 집의 맛당히 이실 배 아니라 그 탐독고 올흔 일을 모름이 곳화신의 버금의 이실지라 일변 죄 의논라 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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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칠일
57
관(館)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의 참예니라
58
이날  습의(習儀)지라 신(使臣)이 지영(祗迎)을  다 거 젹이 일즉 드러가니경운문(景運門)밧긔 잇 댱막을 다 샤정(射亭) 앏 젹은 문밧긔 버렷지라 부(副使)와 가지로 젹이 댱막의 안잣더니 이윽고통관이 인도여 도경운문밧긔 이젼 모히던 곳의 니니  가온대 벽돌노 흔 곳의 누른 탁 노하시니 면이 두 간은 되지라 그 우희 지폐(紙幣) 싸하시니 놉희 두 길의 지나고 누른 보흘 덥헛지라 지폐 왼권 누른 됴희로 두 머리 뭇거 누누(累累)히 하시며 븍으로 흔 곳은 속이 젹이 궁글게 부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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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辰時) 밋쳐 반녈(班列)의 드러가니건쳥문(乾淸門)밧긔 누른 댱막을 베플고 그 안 상탁(床卓)을 셜(排設)여시며 반녈의 참예 쟤 젼의셔 만흔 고 동셔반녈(東西班列)을 모도와 동편 노 서게 여시니 대개 셔편 을 댱막 베픈 곳의 핍근(逼近) 연괴라 녜(行禮) 의 믄져  번 고  번 고두(叩頭)니 이 분향(焚香) 졀오 섯다가 즉시 도 가더니 문(門) 안흐로 무 글 닑 소 나니 이거 독츅(讀祝) 소라 며 닑기 매 곡(哭)고   번 고 세 번 고두고 인야 다시 럿더니 두 사이 양피(羊皮) 갓옷슬 초고  탁(卓子) 마조 들어 나오되  누른 보로 덥헛지라 졍문(正門)으로브터 밧드러 나오니 팔왕(王)이 뒤흐로 좃고 십일왕과 십칠왕이  그 뒤흘 라 나오 곡며 니 반녈의 참예 쟤 다 미좃차 나올 약간 시위(侍衛) 댱막 겻 둘너 잇고 슉경(肅敬) 의 이시니 혹 니 황뎨 댱막의 니러 지송다 더라
60
문을 나매 환도(環刀)  여러 사이 피편(皮鞭)을 들어 문밧긔 잇던 반녈(班列)을 치워 샤정 뒤흐로 보고 쳔관(千官)이 황망(慌忙)야 거을 밧비 거르니 혹 니 황뎨경운문안 니럿다 더라
61
벽돌 흘 곳의 니러 탁(卓子)의 밧드러 온 바 탁 우 븍편 궁근 곳의 노코 블을 지니 이 곳 태샹황(太上皇) 샹 날 의 썻던 마으락이와 의복이라건쳥문을 날 젹브터  쟤 다 망극(罔極)야  거동(擧動)이러니 밋 블을 노코 반녈의 잇 쟤 다  번 며 세 번 고두고 녜 매 소 들어 더옥 통(哀慟)더니 십일왕과 십칠왕과  열다엿 살 먹은 쇼년이 가지로 니 야 믄져 드러가니 황뎨(皇帝) 야흐로 문의셔 기리 고로 밧비 드러간다 며 쇼년은 곳 팔왕의 아이라 니 얼골이 단졍고 묘더라
62
혹 니 오날은 곳 하의 졔(祭) 지 날이니 쳔관(千官)이 크게 모히엿다 니 장(葬事) 젼의 므 텬졔(天祭) 녜 이시리오 모 말이러라
63
팔왕이 장 뒤 드러가되 븟들니여 호통(號慟)며 그 뒤 라 안흐로 드러가 쟤  만터라 우리 문밧긔 믈너 잇더니 이윽고  탁 식믈(食物)을 황지(皇旨)로 송(賜送)되 탁녜부(禮部)관원(官員)의 댱막으로셔 왓지라녜부관원 말을 보여 식믈만 가져가라 나 송 거 그릇 손의 드러 왕미 가치 아닐 듯야 탁지 가져오니 그릇  스므나므니오 사당(砂糖)가로 석근 이며 여러 가지 실과와 져육과 게우고기러라 부방(副房)으셔 른 하인의게 고고 호고 피인(彼人)들이 무슈히 니러 귀 음식이라 며 역질(疫疾) 아니 아희 먹으면 됴타야 구(求)호니  쥬니라 관의 도라와  진 후져관윤명종이 드러와지라 만리 이역의 고국 사을 만나니 반가오미 비 업며 여러 쟝 가셔(家書) 어드니 만리 밧긔 년모(戀慕)던 회포 져기 위로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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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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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의 참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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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화신을 (賜死)다 니신이 가도임으로브터 됴뎡(朝廷)이 토와 글을 올녀 죽이기 쳥지라신의 며리 공쥬(公主)는 곳 황뎨의 젹은 누의라 일야(日夜) 톄읍(涕泣)야 그 신톄(身體) 온젼이 기 쳥대 황뎨 허치 아녓더니 이날 능지(陵遲)라 여태(太學士)동고(東皐)와뉴용(劉用)이 엿오신의 죄 만유경(萬死猶輕)이오나 일 션됴(先朝)의 대신(大臣)이라 원컨 버금 뉼을 조지라 거 황뎨(皇帝) 비로소 허야 드여 약(藥)  그릇과 칼 나 깁  필을 리와 여금 진(自盡)라 고 인야 다형부(刑部)의 나아가 영결(永訣)라 니뉴용과동괴 동(同僚ㅣ)라 슐을 부어 영결화신이 죽기 님(臨)야  졀구(絶句) 일우니 그 글의 오
 
67
오십년몽환진(五十年來夢幻眞)[주:오십 년 의 이 을 변환엿더니]
68
타시슈신함용일(他時水汛咸容日)
69
금됴탈[분]슈샤흥진(今朝分手謝紅塵) [주:오날 손을 노하 홍진을 샤례노라]
70
인향연시후신(認取香煙是後身) [주:다른 예 함용뎐의 믈을 리 에 향긔로온 가 이 후신인 쥴 알니로다]
 
71
글짓기 매 목야 죽다 며신의 아 부마(駙馬)형부(刑部)옥(獄)의 노흔 후의 궐의 두엇다가 이날 비로소 명야 부(父子ㅣ) 영결라 고연좌법(連坐法)을 지 아니다 더라
72
쳐읏 듯기의복쟝안(卜將安)이화신으로 더브러  옥의 리왓다 더니 밋 십뉵일 반포(頒布) 됴셔(詔書)의 니되화신의 버금이라 일변(一竝) 죄 의논라 여시나 필경 므 죄 더은지 셔히 듯지 못고 혹 니화신을 죽일 복쟝안을 녀 그 죽으믈 보게 엿다 나 이  셔히 모너라
73
화신이 옥의 가도여실 예  글이 이시니 여시
 
74
야명여허(夜色明如許)[주:밤빗치 기 이 흔지라]
75
년원몽(百年元似夢) [주:년이 원간 과 튼지라]
76
차여곤막신(嗟然困莫伸)[주:슬프다 나 곤믈 펴지 못노라]
77
습왕노신載枉勞神)[주:스므나믄  쇽졀업시 졍신을 슈고죳도다]
78
실암난모(室暗難靉暮)[주:집이 어두오매 져믄 거 헷치기 어렵고]
79
셩신환일(星辰環冷日)[주:셩신은 찻 날의 둘니엿고]
80
쟝고블견츈(墻高不見春)[주:담이 놉흐매 봄을 보지 못리로다]
81
우셜읍고신(縷絏泣孤臣)[주:우셜의 외로온 신하 울녓도다]
82
경샹젼(對景傷前事)[주:경을 야 이젼 일을 각니]
83
여뇨무긔(餘生聊無幾)[주:남은 인을 혜아리건 여러 날이 업니]
84
희오신(懷才誤此身)[주:조 픔으매 이 몸이 그릇첫도다]
85
공부구즁인(空負九重仁)[주:쇽졀업시 구즁의 어지믈 져렷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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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대져 다 나라흘 원망 의라 이 글과 우 긔록 졀구(絶句) 임의 박아 두로 돌니니 피인의 글일  아니라 그 글 의 됴치 아니커 간(開刊)야 셰상의 니 알 길이 업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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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珅)이 죽은 후의 동복(僮僕) 누(百)여 인과 시쳡(侍妾) 삼여 인이 오히려 옥즁(獄中)의 잇다 며 계집은 갑 졍야 발(發賣) 그 얼골의 고으며 믜오믈 가 야 더 얼골을 가리워 가도와 사 쟈로 여금 보지 못게 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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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館)의 도라오매치형(致馨)이슝문문(崇文門)밧긔 남방(南方) 션 머므 곳의 가 슈쟉고 왓더니 션니운(李雲)의 별호(別號)완운(阮雲)이니 효렴(孝廉)의 히여 야흐로무부(內務部)교습(敎習)이란 벼을 엿고셥등교(葉登喬)의 별호균(均表ㅣ)니  효렴으로함연궁 교습(含煙宮敎習)이 되엿지라 두 션 다졀동현사이니 일젼치형이 뉴리창(琉璃廠)의 나갓다가 (冊) 져의셔니운(李雲)을 만나자 엿더니 이날경인(景仁)으로 더브러 고 도라와시니 대강 니 두 션 연공(年貢)의 히여 황셩(皇城)의 밋츤 지 십여 년이라 인믈(人物)과 죄 장 쇽되지 아니코 그림과 글시  졍묘(精妙)지라 글을 지으매 쵸(草) 일우지 아니코 지필(紙筆)을 가져 이젼 지은 거  니 심히 민쳡(敏捷)다 니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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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황(張皇) 슈쟉을 다 긔록지 못며 슐과 음식을 내여 졉니 슐을쇼흥쥬(紹興酒)라 일니 남방쇼흥(紹興)셔 나 슐이며셕(海石)이란 것슨 바다 고기 일홈이니 마시 먹음즉고 실과의무화과(無花果)와낙화(落花生)이 이시니무화과졀강(浙江)의셔 나 거시로 치 업고 열 매치여 크기비(榧子)만 고 마시인(杏仁)과 튼 고낙화은쵹(蜀)셔 나 거시로 월의 치 픠되 치  러져 모 쇽의 뭇치이면 스로 열되여 콩곳토리 트 겁질을 히면 혹 둘도 이시며 셋도 이시니 마시호도(胡桃)의라 대져 긔이 실괘러라 손을 졉 방이 이곳 사 자 방이로 캉을 미지 아녓지라 다만 굽 잇 평샹(平床)을 노코 방쟝(房帳)치 그러 면을 리오고 금침(衾枕)을 노화시니 괴히 너겨 자 곳을 무니 답왈 우리 남방 사이라 남방 풍쇽은 캉을 미지 아니코 자 곳이 다 이와 트니 남방인(南方人)이 만일 더은 캉의 거쳐면 피 토야 병이 드니 우리 븍방(北方)의 손이 되연지 여러 십 년이 오히려 남방 풍쇽을 리지 못니 엇지촛(楚)나라죄인(罪人)이 녯  소 잡음과 다리오 야 어(語次)의 침침히 강개 의 낫타나니 대져 긔졀(氣傑) 션라 니너라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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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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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의 참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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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당샹 역관(堂上譯官)홍인복(洪仁復)이 로지라 곡반(哭班)의  사이 홍역(洪譯)려 무로부(副使ㅣ)몃 픔(品)샹(宰相)이뇨 답왈가(加資) 이픔이오 벼은녜조 판셔(禮曹判書)로 대국녜부(禮部)샹셔(尙書)와{와} 트니라 우 문왈셔장(書狀)은 무 벼이뇨 답왈 본옥당(玉堂)벼노옥당을 겸엿니라 그 사이홍역(洪譯)려 니 그 몃 픔 벼이뇨 답왈 나도  이픔 벼이로다  오부(副使)도 이픔이며 그도 이픔이어 그 손을 고 뒤 셔시니 톄뫼(體貌) 어이 도히 다르뇨홍역이 오 픔(品數ㅣ) 트나 다만 아문(衙門)이 다로기예 그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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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픔 흐면 어이 아문이 다르다 뇨니부(吏部)와병뷔(兵部ㅣ)무 놉흐며 즘이 잇시리오홍역이 초두(初頭)로브터 답이 만환(漫漶)코져 거 뭇 쟤 더욱 근본을 알고져 지라 그 슈쟉 즈음의 뭇 이 부 명(明白)고져 며 답니 부 모호(糢糊)코져 니홍역(洪譯)이 젼혀 신(使臣)은 한어(漢語) 모른다 여 알셔 슈쟉이 이러나 어이 언(此言)을 짐쟉지 못리오 대져 나통관(通官)이라 면 괴롭지 아니 거시어 이국(異國)을 근본(根本)을 리오고져 야 말이 졈졈 굽듀이 의 이시니 우읍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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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사은 튼 풍쇽에 업셔 혹 변방(邊方)의 둔을 바치고 벼을 엿 쟤 아국(我國) 사과 슈쟉다가 그 벼 계뎨(階梯) 무면 슘기지 아니코 녜로이 답니 슌실(純實)믈 볼지라 아국역관은 이곳의 이러 벼을 무면 부홍노시(鴻寺)관원(官員)이로다 기의 비쟝(裨將) 오 쟈도  그 라 가지로 일니 므홍노시(鴻寺) 관원만븍경(北京)드러오리오 아국 사은 블관(不關) 일이라도 부 교(巧邪) 나타내고져 니 이곳 말에 니몽고(蒙古) 극히 츄(醜悖)니  속의 도혀 갈고리 업고고려(高麗) 비록 브드러오나  속의 일 갈고리가 잇다 니 이 아국 사이 스로 지목(指目)을 어드미라 어이 지 아니리오 이날치형(致馨)이송(子頌)을 조차텬쥬당(天主堂)을 보고오다텬쥬당은 셔양국(西洋國) 사 머므 곳이라 셔양국은 셔텬(西天) 바다 잇 나라히오즁국의셔 슈만 리 밧기라 녜로브터즁국을 통 일이 업더니대명(大明)홍무(洪武)초의 비로소 됴공(朝貢)고만력(萬曆)년간의 셔양국 사이 나와 녁(冊曆) 들기로흠텬관(欽天官)벼을 쥬어 로 나와 살게 니 대져 텬문셩샹(天文星象)과 츄보(推步)야 녁 드 법은 극히 셰밀야 텬지 도슈(天地度數) 낫낫치 의논야 셰월 절후(歲月節候) 틀니게 아니미 녯 사의 밋지 못 배 잇고  그 나라 풍쇽이 장 공교(工巧)야 온갖 긔계(機械) 졍묘(精妙)히 그니대명션덕(宣德)년간의 일즉왕삼보(王三輔)란 사을 보내여 셔양국의 니러 긔이 보와 이샹 긔명(器皿)을 무슈히 어더 왓지라 그 후 셩화(成化) 년간의 됴뎡이 못 완호(玩好) 구감(內監) 사을 보내여병부(兵部)의 니러왕삼부의 셔양국 가던 노졍긔(路程記) 즈니 예항츙이란 사이병부(兵部)샹셔(尙書)오뉴대하란 사이낭즁(郎中)이 되엿더니 밋감(內監)이 니름항츙이아젼을 명여 고(庫)의 드러가 노졍긔(路程記) 질 뉴대해믄득 믄져 드러가 어더 내여 다른 곳의 지 못게 감초고 나왓지라 아젼이 지 못거항츙이 아젼을 볼기 쳐 다시 슈험(搜驗)야 죵시 이치 슈일을 즈 죵시 업지라뉴대해모 톄야 구지 말을 아니터니 간관(諫官)이 년야 샹소(上疏)야 셔양국의 사을 보쇼셔 니  노졍(路程)을 알 길이 업지라 인야 즁지엿더니 그 후항츙이 아젼을 블너 힐난(詰難) 고즁(庫中)의 문셔(文書) 비록 셰쇄(細ꝯ) 거신들 어이 일허실 니 이시리요 여뉴대해겻 잇다가 희미히 우어 오왕삼뵈셔양을 녀 도라오매 은젼(銀錢)과 냥식(糧食)을 슈십 만을 허비고 사이 도라오지 못 쟤  슈 모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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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보 어드나 국가(國家)의 무 유익흠이 이시리오 이 큰 폐단이라 대신(大臣)이 맛당히 졀이 간(諫)여 막을 일이니 노졍긔(路程記) 비록 이시나  맛당히 져 리미 해롭지 아닌지라 엇지 구여 그 이시며 업믈 구(究覈)고져 뇨츙이대하의 일을 짐쟉고 송연(竦然)야 위의 려와 대하의게 두 번 졀고 샤례야 오 공(公)의 음덕(陰德)이 젹지 아니니 내 위예 오라지 아니야 맛당이 공(公)이 도라오리라 더니 그 후의 과연병부(兵部)샹셔(尙書)의 니른지라 이 일을 명(明史)의 일라 지금지 뎐여시니 셔양의 긔믈(奇物)과 보 고금의 유명 곳이라 이러므로대명이후로 이 지 그 사을 내여와 치 아니코 근 쟉픔(爵品)을 쥬어 후록(厚祿)을 먹이고 녁(冊曆) 글기를 전혀 맛기니 그 사이  번 나오면 다시 도라가지 아니고 각각 졔 나라 법으로 집을 지어 로 거쳐고 즁국 사과 혼잡(混雜)지 아니니 동셔남븍 네 집이 이셔 일홈을텬쥬당(天主堂)이라 니 그즁 셔편의 잇 집이 졔도(制度)와 긔믈(器物)이 더옥 이샹고 두 사이 잇더니 나흔 죽언지 두 라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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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형이 니졍양문(正陽門)알프로 지나현무문(玄武門)을 향야 셩(城) 밋트로 슈리(數里) 야 먼리 라보매  업 놉흔 집이 공즁의 혀나고 기와 니은 졔양(制樣)과 지 우 셰운 긔믈(器物)이 독도 며 말도 흐며 형용 길이 업고 그림에도 보지 못던 졔되라 뭇지 아녀도텬쥬당인 쥴 짐쟉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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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문(門) 칙건턴쥬당(勅建天主堂) 다  시니 태샹황(太上皇) 어필(御筆)오 동편으로  젹은 문(門)이 이시니 이 문(門)을 들매 두 편의 각(彩閣)을 세오고 남향(南向)야 십여 쟝 놉흔 집이 이시니 아로삭인 창(窓)과 비단 발(簾)이 예 졔도와 르고 발을 들고 문을 열 굴속의 드러가 것 고 사의 소 공즁의 맛초이지라 이곳 텬쥬(天主) 위 곳이라 그 안히 남븍으로 여라믄 간이오 동셔 오뉵간이라 텬장과 람벽과 간살을 막은 거시  조각 남글 드리지 아니고 젼혀 벽돌노 무어시니 그 안히 궁글고 싀훤야 임의 그 이샹 졔도 짐쟉 거시오 븍편 벽 우희 당즁(當中)야  사의 화샹(畵像)을 그려시니 계집의 샹이오 머리 프러 좌우로 두 가을 드리오고 눈을 츼 하을 라보니 무(無限) 각과 근심는 거동이라 이거시 곳 텬쥬(天主)라  사이니 형톄와 의복이 다 공즁의 여 셧 모양이오 션 곳의 깁흔 감실(龕室) 트니 첫 번 볼 졔 소샹(塑像)만 너겻더니 갓가이 간 후의 그 그림인 쥴을 치니 년긔(年紀) 삼십 셰 남즉  계집이오 얼골빗치 누고 눈두덩이 심히 검프니 이 샹해 눈을 칩 그러가 시부고 닙은 거슨  너른 긴 옷시로 옷쥬름과 졉히 거시 요연(瞭然)야 움일 니 텬하의 이샹 화격(畵格)이오 그 알 향노(香爐) 노코 향(香)을 픠오니 향긔 치이지 아니코 화샹 셔편 벽 밋트로 큰 탑을 노코 우희 뇽(龍) 그린 방셕을 고 민 거시 극히 화려니 뉘 안 곳인지 황뎨(皇帝)나 안즐 배오 샹인(常人)의 안즐 곳이 아닐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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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셔 벽의 각각 여라믄 화샹을 그려시 다 머리털을 느리치고 댱삼(長衫) 튼 옷 닙어시니 이 셔양국 의복 졔된가 시브고 혹 아희 안흔 모양을 그려시 아희 눈을 지릅 놀나 형샹이라 부인(婦人)이 어만져 근심 빗치오 늙은 나희 겁여 손을 묵긔 므어 비 거동(擧動)이며  부인이 병든 아희 구완 모양이로 우희  흰 새 개 버리고 부으리로 흰 거 어 부인 니마의 쏘이며 텬쟝(天上)의 방으로 구이 예워시되 어린 아희들이 구 쇽으로 머리 내여 보 거시 그 슈 혜지 못며 혹 쟝 러지 거동이라 노인이 손바닥으로 하을 향야 바드려  톄니 인믈(人物)의 졍신(精神)이 두어 간을 몰너셔 보면 아모리 보와도 그림으로 알 길이 업시니 긔괴(奇怪) 황흘(恍惚)야 오셔시 이 셧거워 됴치 아니터라 알  사이 인도(引導)니 그 안 별노 사이 왕 업 알플 지나 쟈 믄득 무릅흘 고 지나며 첫 번 구경 젹브텨 셔편 벽 밋  되놈이  다리 고 눈을 아 슘소 업시 안져시니 므 의 쥴 모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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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으로 벽을 의지야 놉흔 누각(樓閣)을 글고 (彩色) 닥다리   벽으로 하 오르게 야시며 난간 안흐로 긔이 악긔(樂器) 버려시니 이 셔양 사의 근 거시라 틀을 음기고 발을 트러 졀노 풍뉴(風流) 소 내게  거시더라
100
누(樓)의 려 븍으로 도라가   집을 졍히 미고 벽의 화상을 며시며 벽 밋트로 긴 탁 노코 우희 관(冠)과 의복을 노하시니 셔양 사의 경(京)의 올젹 닙 의복이라 옷슨 검고 누른 빗 댱삼(長衫)치 글고 관(冠)은 거믄 비단으로 모난 관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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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흐로   집을 드러가니 븍벽(北壁) 밋 큰 탑을 노코 알희 세  교위(交椅) 버플고 그 아 조고만 그시 등겨 담아 각각 노하시니 이 츔을 밧게  거시오 좌우 벽(左右壁)의 쳡쳡(疊疊) 누각(樓閣)과 셰쇄(細ꝯ) 즙믈(什物)을 그려시되 이편 벽 밋희셔 져편 벽을 라본 즉 그림은 간 곳이 업고 홀연(忽然) 무슈 문호(門戶)와 은영(隱映) 쟝원(莊園)이 별노 인간의 겨시며 람벽의 건 거시며 샹 우 베픈 거시 다 진즛 거시오 그림인 쥴 지 못여 갓가이 볼 졔 벽 우 두 쥴 거믄 획(劃)을 샹(常) 업시 흐리온 모양이러니 믈너셔 보면 글 완연여 획이 분명니 텬하의 이 죄러라 이 집 알프로    집이 이시니 이 (冊)과의긔(儀器) 싸흔 곳이라 은 비단갑을 그라 면의 탁 노코 싸하시 다 셔양 글라 므 인 쥴 모며의거[긔](儀器) 다여 노하시 쇠로 틀을 글고 둥근 형톄(形體) 그 안히 구을게 여시니 다 하 도슐(度數)을 측냥(測量)야 보게  거시라 우희 삼원(三垣) 이십팔슈(二十八宿)와 온갓 셩신(星辰)을 비히 그리고 쥬셕(朱錫) 골희 그 우희 셰워시 동셔로 임의로 돌니고 남븍은 각각 곳은 쇠 벗트여 치노지 못게 여시니  골희 일홈이 젹되(赤道ㅣ)니 하 가온 니미오  골희 황(黃道ㅣ)니 일월(日月) 니 길을 니미라 여러 그시 다 각각 대쇠이시나 거의 다  졔양(制樣)이러라
102
셔양 사은 죵시 나와 보 일이 업더니 도라올 의 텬쥬(天主) 위 집의셔 므 경(經) 닑 소 나거늘 문을 여러 보니 앗가 보던 관(冠)과 옷 닙고 븍벽(北壁) 밋트로 도라 니며 므 소니 킈 젹고 얼골이 거므며 인믈(人物)이 심히 모질어 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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셩(姓)은 탕개라 고 일홈은 긔록지 못며 근 아국 사이 이곳의 가 일이 업지라 밋 아국 사이 니 직희 쟤므러 오 이곳의 니믈 귀국(貴國)의셔 금다 더니 엇지 왓뇨 니 뉘 뎐 말인지 몰오 극히 고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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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孔子ㅣ)오샤 말이 츙셩되고 밋브미 실이 돗탑고 공경면 비록만(蠻貊)지방이라 가히 라라 시고뉴하혜(柳下惠)니 져 졔오 나 나니 졔 엇지 내게 더러리오 니텬쥬탕[당]을 구경 아니미  고히 의라 야치형이 보고 와셔 웃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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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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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머므다 날이 으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니라
107
이날 황뎨(皇帝) 됴서(詔書) 리워 오 져즘화신(和珅)의 죄상(罪狀)을 반포(頒布)여 뵈엿지라태(太學士)와 구경(九卿)의 엿오믈 의거야 임의화신으로 여금 진(自盡)케 엿거니와 화신(和珅)이 일을 맛단 날이 오라고 오지 쳔단(擅斷)야 속이고 리워 하졍(下情)이 능히 우흐로 통치 못믈 닐워시니 만일 즉시 원악(元惡)을 업시치 아니면 졍(政事) 히고 벼을 졍졔(整齊)히  길이 업지라 이졔 임의 그 죄 히 졍야 판단엿지라 인야 각니화신의 지 바 아문(衙門)이 만흐니 그 쳔거기 말아마 벼을 올므며 힌 쟤 반시 젹지 아닐 거시오 다른 마을 관원도화신문하의 분쥬(奔走)야 아쳠며 회뢰(賄賂)믈 다 면(免)치 못여실 배라 만일 낫낫치 구획(究覈)여 여러 사의게 밋면  벌이 뭇 사의게 밋지 아니케  이며  근의 쳐단(處斷)은 일 가지나 일호 혤 길이 업지라화신(和珅)의 죄상을 반포야 그 장 즁 간범(干犯)은 임의 효연(曉然)이 닐넛니 만일 됴신(朝臣)이 짐의 을 그 짐쟉야 혹  사과 두 일을 쳐 그 말을 실(實)답게 면 그 분운(紛紜)믈 니긔지 못지라 이치 여 알소(訐訴)여 보복(報復) 의 둘진대 이  당(黨)을 자 각각 문호(門戶) 흐 풍쇽을 면치 못 거시니 시러금 짐의 분의 아니라 짐이 화신을 즁히 다리믄 진실노 군국(軍國) 큰 일을 위흠이오 가지가지 탐독(貪黷)여  경영(經營)믄 오히려 그 죄의 젹은 일이라 일노 쥬(主客)의 판단(判斷)여 잠시도 요(饒貸)치 아니코 밧근 조금도 즐겨 두로 결년(結緣)코져 아닌니 오직 쟝 권고 이왕을 허믈치 아닐 거시니 믈읏 대쇼 신공(臣工)은 의 고심(苦心)고 두리지 말나 믈며 됴뎡 신해 예 사이 만흔지라 만일 능히 착 곳의 올무며 허믈을 곳치면 가히 국가의 보필(輔弼)이 될 거시니 이젼의 조급히 나아가다  그릇친 쟤라도 다만 능히 마을 씨며 념녀 곳쳐 이젼 그믈 통괘히 치면 가히 힘 단졍 션 될 거시오 몸이 도록 그른 사의 지지 아닐지라 특별이 이치 두 번 효유(曉諭)니 각각 힘 짐의 새로이 다리 을 맛치라 만일 이번 신칙(申飭) 후의도 곳치고 뉘웃쳐 아다온 일홈을 세오지 아니즉 이 스로 다려 짐의 효유 을 알나 다 더라
108
날마다 신후(申後)의 관으로 도라오면  거의 질 라 몸이 곤피(困疲)여 누엇가 밥을 머으니 톄 의도 잇고 치위의 죵일 노쳐(露處)다가 더은  니러 몸을 려셔 반시 병이날 나  내 이 길 오므로븟터 잠을 잘 일우지 못고 밤 곳 되면치형(致馨)과니광직을 블너 안치고 므 됴흔 말과 오 구경 바 니라 야 믄득 삼 경(更)을 지니 견지 못여 니러 가려 여도 굿지 안쳐 슈작니 밤이면 이러구러 파젹(破寂)더니 이날 밤은 두세 늙은역관(譯官)을 블너 므 이아기 니 니역관이 오 별노 이아기 아니 쇼인(小人)이 슈십 년 젼의 첫 번 길노 드로왓실   황뎨 후궁   당야 십삼 [세]의 고은 계집을 모화신무문(神武門)을 여러 일시의 드린다 거 두어 사을 리고 갓가이 니러 드러가 계집을 구경 가야온 슐위의 비단 휘댱이 빗 토고 긔이 향 길의 득야 그 슈 이 혜지 못고 슐위 우희 등(燈)을 라 그 우희 계집의 일홈과 사 지명(地名)을 지라 알 휘댱을 드러 몸을 초지 아니니 그 얼골과 의복을 세히 구경  아니라 졀믄 계집들이 외국 사을 첫 번 보지라 토와 머리 내여 구경니 그즁의 긔이 (姿色)을 니 피지 못고  계집이 손의 리 가져시니 흰 옥(玉)으로 근 거시라 손 빗과 옥빗치 분변이 업고 공교(工巧) 되 셰샹 사이 아닌 니 평의 긔이 구경이라 니려니와 혈긔(血氣) 굿지 못고 변변치 못 인믈(人物)이 이튼 구경이 이실가 념녀오니 년젼의 쇼인의 친구  사이 븍경을 드러올됴양문(朝陽門)밧긔셔  계집의 슐위 마조치되 앏뒤 거매(車馬ㅣ) 밀니여 셔로 지날 길이 업지라 계집을 야 반향(半)을 머므니 그 아리온 도와 공교 모양이 진짓 화월(花月)의 요괴(妖怪)라 오 년 원업(五百年寃業)을 지쳑(咫尺)의 만나 두어 시을 지니 삼혼(三魂)이 표탕(飄蕩)고 칠(七魄)이 유유(悠悠)야 밋 관의 도라오 므어 일흔 모양이라 졍신이 황홀야 아모란 쥴 모다가 계유유관(留館)을 지내고 고향의 도라와 내 닛지 못 사이 되니 진실노 삼(三生)의 원(怨讎ㅣ)라 일고 역관은 오 년젼의 심양의 니매심양 쟝군(將軍)이 슈만 군 거리고 셩 밧긔 니러 야흐로 조 시험지라 호쾌(豪快) 인마(人馬)와 셔리 튼 검극(劍戟)이 너른 들의 풍우(風雨)치 치돌(馳突)니 진실노 댱부의 쾌 구경이라 니너니 밋 황셩(皇城)의 드러간 지 오라지 아녀쇼금쳔(小金川) 도젹을 파고 도라오 군 만나니 오뉵십 슐위의 도젹의 머리와 사로잡은 인믈을 득 싯고 십여 만 군 항녈을 화 졍졔히 도라오니 이 뎨일 댱관(壯觀)이라 길 섯다가  군 잡고 무로  번도 (敗)치 아니코 공(功)을 일우냐 니 그 군 크게 놀나 손으로 귀 막으니 이 군즁(軍中)의 란 말을 사휘(私諱)홈이라 더라
 
109
이십일일
110
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니라
111
진시 곡반(辰時哭班)을 파 후의  무 의복(衣服)을 밧드러 내여와경운문(景運門)밧 박돌 문은 곳의 니러 지폐(紙幣)와 가지로 사니 그 졀 십칠일과 다미 업나 다만 반녈(班列)의 참예 관원이 젼의셔 이 젹고 황뎨(皇帝) 나왓다 말이 업더라
112
날마다 아밥은 드려다가 댱막 안히셔 먹으니 혹 알플 아니 막으면 구경 사이 뭇근  모히고 혹 인믈범(人物凡百)이 놉흔 사이 와 보다가 혹 반찬(飯饌)을 쳐 무어시니 고 뭇지라 겻 셧던역관이 혹 무 우리 밥 먹 거동 너희 보기의 됴치 아닐 다 면 웃고 답이 업니 대개 아국 사이 이곳 사을 셔로 야 가진 거시나 닙은 거시 엇더니 무면 됴타 아니 리 업 오직 밥 먹 모양은 됴히 너기지 아닌 의라 마즌 댱막의 져희 밥 먹 거 보니 밥은 젹은 보의 골케 담앗고 무 고기  졉시 나믈  졉시오 열구탕(悅口子湯)을 그 노하시 밧친 그시 업고  노코 밥은 먹은 로 죵(從者)의 각금 아 쥬니 보 드러 입의 다히고 져(箸)흐로 그러 너흐 별노 니 야  보도 먹고 두 보도 먹으니 이곳 사의 밥 먹 법이 본 간약(簡略)되 궐(闕內)의셔 먹 거슨 더옥 간략더라
113
우리 반찬(飯饌)은 이리 안져셔도  상(床)의 여라믄 그시나 버려 노하시니 폐(弊) 젹지 아니타 니지라 일즉 뎐 말이월사(月沙)니샹공(李相公)이명됴(明朝)신(使臣)으로 드러와 실의 샹(宰相)이날을 긔약야 집으로 즈라 엿더니 긔약 날 그샹이 공괴(公故ㅣ) 이셔 궐(闕內)의 드러가고 가인(家人)으로 말뉴(挽留)야 나오기 기리라 엿지라월새(月沙ㅣ)식젼의 나아가매 가인이 그샹의 말을 뎐고 쥬찬(酒饌)으로 졉더니 날이 느즈매 식젼이라 고 도라가고져 거  과 실과로 접 밥을 아직 먹지 못지라 굿이 가기 쳥니 가인이 그 시쟝가 야 오젼(午前)의 네 번을 음식을 먹이되 죵시 식젼이로라 고 도라가니 그샹이 도라와 가인의 말을 듯고 뉘웃쳐 오됴션(朝鮮)사은 밥 곳 아니 먹으면 굼다 니니 내 밥을 졉란 말을 니졋노라 더라 니 즁원 사은 밥을 즁히 너기지 아니코 각 과 실과로 됴셕을 신니 아국 사의 삼시 그 밥 먹 거 극히 위(危殆)코 금기 너기가 시브더라
114
오시 뎐(奠)을 파야 나올  쳥슈(淸秀)샹이 앏셔 나오거 무니 곳한 각노 유영(韓閣老兪永)이라 킈 예 사이오 얼골이 늙어시나 쟝 초강며 셩건 나시 낫 거믄 털이 업고 눈의 졍(精彩) 이셔 귀 골격이러라
115
그러나 거지(擧止) 소샹(昭詳)야 쇼년과 다르미 업니 좌우 로 도라보 거동이 옹즁(雄重) 긔샹은 젼혀 업더라
116
댱막의 안즌 후  음식(飮食)  탁 가져와시니 이  황뎨 송(賜送)신 배라 모히여 보 쟤 다 엇고져 호니 궐내 음식을 별노 귀히 너기 모양이라 이 아국과 다미 업더라
117
신시(申時) 후 나올경운문밧긔셔 곳 을 고 나오 쟤 이시니 이 항녈이 놉흔 왕(王)이라 며 양피(羊皮) 갓옷 닙은 죵쟈 칠팔 인이 니 이 왕의 햐라  사이라동화문(東華門)을 나셔 다 을 고 옹위(擁衛)니 뉘 관원이며 죵쟨지 창졸(倉卒)의 분변치 못너라
118
황뎨 앏 시위(侍衛)무관(武官)은  햐라 니니왕부(王府)의 햐와 일홈이 트나 다만 마르약이의  공쟉위(孔雀羽) 니 일노 층등(層等)을 짐작다 더라
119
동쟝안문(東長安門)을 나와 완완(緩緩)이 더니 압 누른 옷 닙은 나마승(喇嘛僧)이부(副使)슐위 녑희 갓가이 가지라 부방(副房) 하인이 무 말을 뭇다가 돌연이 깃옷락을 들치니 즁이 대경여 믈너셔 대쇼(大笑)고 졔 옷 다시 드러 보니 대개몽고(蒙古)와 나마승은 바지 닙지 아니고 다만 깃옷로 리 라 리오니 하인이 이런 쥴을 아 고로  번 소기고져 니 즁이 그 긔동(擧動) 쥴을 짐쟉고 셩내지 아니미러라옥하슈(玉河水)개쳔 셔편을 인연여 올 동향(東向)야 큰 븕은 대문이 곳화신(和珅)의 회 군왕(郡王)의 집이라화신이 일 난 후로 문졍이 젹젹(寂寂)더니 이날이 문을 못 밋쳐  사이 슐위 고 문밧긔 니러 쟝 리려  문안흐로셔 다엿 사이 급히 나와 므 말을 뭇거 그 사이 슐위예 리며 셔로 슉덕여 얼골의 젹이 근심 빗치 이시니 므 일인지 모너라
120
옥하교(玉河橋)알프로 걱거 관으로 여 보 못 밋쳐 남향(南向)야호국삼관(護國三官祠ㅣ)란 묘당(廟堂)이 이시니 곳대명(大明)젹 고찰(古刹)이라 다엿 사이 문의 비겨 섯지라 이 다쥬셔반(主客序班)이라 (使行)이 들면 이 졀의 모히여 므 일을 거며 매(賣買) 다 더라
121
드러오 길 샹(上使) 보니 밋 캉의 들 침향(沈香)  옥지라 므역관박이 침향 목가산(木假山)을 삼십 냥 은(銀子) 쥬고 사다 거 셰히 보니 길의 쥬쳑(周尺)으로 자가옷슨 되고 몸이 자 즉되 아로삭인 흔젹(痕迹)이 업고 다엿 봉(峯)이 텬연(天然)이 삼겨 긔이지라 오히려 갑시 헐니 침속인가 야 조금 가 화로(火爐)의 살오니 향 이 다 더라
 
122
이십이일
123
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闕下)의 나아가 삼시 곡반의 참예니라
124
진시 뎐(辰時奠)을 파 후의 믈너나오려 니 통관이 오 오은 신(使臣) 므 샹(賞)이 이시리니 아직 나가지 말나 거 져희 므 아가 야 의구히 반녈의 셔시니 이젼은 곡을 그친즉 뎐을 믈니 졀라 즉시건쳥궁(乾淸宮)졍문(正門)을 닷 고로 짐작더니 이번은 뎐후(奠後)의 문을 닷지 아니코 장 오란 후의 큰 궤(樻) 튼 그슬 드러 뎐문(殿門)으로 나오니 누른 흐로 덥헛더라
125
문밧긔 니러 노코 여라믄 관원(官員)을 갓가이 세운 후의 궤 열고 속의 든 거  내여 노흐니 다 마으락이와  좁은 깃갓옷시라 갓가이 세운 관원을 례로 화쥬며 져희 니 이 이샹(移賞)이라 니 황뎨 태샹황의 샹 쥬실 거 신야 옴겨 쥰다  말이라 샹을 밧 쟈 다 태샹황 근시(近侍)던 사이라 더라
126
여라믄 사이 례로 밧고  번 며  번 고두(叩頭)더니 례 파매 문을 닷지라 샹을 밧은 쟤 인여 소 노하 통곡고 다시 세 번 며 아홉 번 고두더라
127
우리 즉시 나고져 다가통관(通官)의 말을 인연여 잇더니 밋 샹 쥬 거 보매 다 오랑캐 관복(官服)이라부(副使ㅣ)날을 도라보아 우니 통관의 아모란 쥴을 모 거시 다 이 라 극히 우읍더라
128
이졔 져녁의 궐(闕內)로셔 나올 예통관이 황지(皇旨)라 일고 삼 신과 라드러온졍관(正官)의 일홈을 젹어 드리라 다 거역관을 블너 의논니 역관이 알외 므 일인지 모 라드러온역관은 날마다 뉸회(輪廻)니 누를 지젹여 지 사(取捨) 어려온지라 대개통관을 젹어 드리 거시 해롭지 아니타 거 그 말이 올타 여 삼신 일홈과슈역(首譯)김윤셔와일쟝통(一上通事)김경위와이샹통(二上通事)윤갑종의 일홈을 젹어 드렷더니 오날 막(幕次)의 도라온 후의통관(通官)이 역관(譯官)과 부삼방(副三房) 하인을 블너 리고 드러가며 샹을 바다 가라 더니역관과 하인이 타다가 관의 두고 도로 드러왓거 무니통관이 가지로동화문(東華門)안  마을의 니니 마을은무부(內務府)라 일고 관원이 이셔 가지슈 젹어 쥬며 이 보와 타가라 니 곳 사 다 마리와 곰  마리와 산졔(山豬) 세 마리와 노로 세 마리와 치(生雉) 스므 마리와 큰 션(生鮮) 세 마리와
129
젹은 션 스므 마리와 사슴의 혀 열 밋과 사슴의 리 열 낫치라 여러 가지 타올  이샹과 치 쥬 곳이 만치 아니코 다만 왕공대신(王公大臣) 여라믄 집인가 시분지라 큰 슐위의 시러 관으로 올 졔 길 셔 보 쟤 다 장히 너기고 밋 관의 니매 여러통관이 니 이러 상(賞) 이젼의 듯도 못 배라 며 관즁의 츌입 되들이 모히여 볼 혹 니 황뎨됴션신을 친왕(親王) 쥬 샹과 치 니 이샹 일이라 슉덕이더라 더라
130
통관들이 태샹황 상(喪事) 후의역관을 공동(恐動)야 오 태샹황 예 너희 아무리 여도 관계흠이 업셧다가 시방은 이젼과 다르리니 너희 각별 조심라 고 조고만 일이라도 져희 별노 공갈(恐喝)랴  의러니 초칠일 녹육(鹿肉) 반(頒賜)므로브터 혹 사흘 이 닷새 이의 궐로 음식 샹(賞賜ㅣ) 지 아니 다가 밋 오 이 샹(賞)이 이시매통관들이역관려 니로 신황뎨됴션졉이 태샹황 의 지나도다 더라 니 우읍더라
131
오 샹 쥰 거시 곳 길희셔 맛난달(㺚子)의 진공(進貢)이라 던 믈건이라 즘을 다 창으로 질너 잡은 모양이러라
132
신후(申後)의 나올 일은 태샹황 궁(梓宮)을경산(景山)으로 옴겨 모시지라동화문(東華門)밧그로븟터 븍(北)으로경산지 어로(御路) 닷가시되 그 가온 길을 도도와 본길셔 두 자즘음을 놉히니 너븨 다엿 간이 될 거시오 두 편 즌 길은 각각 세 간의 지나니 그 길어[의] 프물 가히 짐쟉지라
133
길을 도도되 황토(黃土) 무히 드려 으고 일변 남그로 으며 일변 으며  둥근 큰 돌노 구을니 역군(役軍)이 다 고 슈겨 마 소도 아니코 일시의 힘쓰 거동이 놀난 사도 고 실셩(失性) 사도 여  놈도  쓰 모양이 업니 잠간 머므러 보매  구경이러라
134
샹(賞) 탄 거 샹방(上房)으로셔 세 방(房)과비쟝(裨將)역관(譯官)의게 각각 분다 고 [져]녁밥의 노로 고기로 젼쳘(煎鐵)을 찰아 나오니 젹이 노린 의 이시나 족히 먹엄더라
135
경산(景山)으로 궁 뫼시 의쥬(儀註) 가져와시니 오 졍월 이십 삼일 묘시(卯時)의 대태샹황뎨(大行太上皇帝) 궁을경산으로 옴겨 뫼실  이날 오고(五鼓)의난의위(鑾儀衛)관원(官員)이 법가(法駕)와 노부(簿)와 어승마(御乘馬) 십 필과 탄타(駱駝) 열여 리 베픈 후의 상(喪事) 다리 졔왕대신(諸王大臣)이집관(執事官)을 거리고 드러와 누른 댱(帳)과 흰 댱(帳)이며 졔상(祭床)과 향상(香床) 들 믈을 거더 미리경산빈궁(殯宮)으로 보고공부(工部)관원(官員)이 니어와 밋 쇼여(小轝)경운문밧게 초고 담여군(擔輿軍)이 각각 그 복을 초고 반졀을 화 기리다가  밋거든녜부(禮部)상셔(尙書) 엿와 궁 압흐로 나아가 곡고집관이 뎐(奠)을 나오거든 황상(皇上)이 슐잔을 드려 세 번 드리  번 드리 믄득  번 고두(叩頭)고 니러 왼편의셔 공경야 샹위의(喪事威儀) 다리고 졔왕대신과무부(內務府)와공부(工部)와난의위(鑾儀衛)대신이집관과 밋 가젼(駕前)의 뫼시고 쟝교(將校) 거리고 안희 드러와 쇼여 나오고 공경여 궁을 밧드러 뫼셔  황샹(皇上)이 궁을 밧드러 인도여건쳥문졍문을 나경운문밧글 니러 대여(大輿)의 뫼실  황샹이 동븍(東北)으로 셔셔 향야 고녜부 당관(禮部長官)이 대여(大輿)의 졔(祭) 지낼  슐잔을 세 번 들이  번 들매  번 고두(叩頭)고 반녈(班列) 참예 쟤 라 녜고 녜 매 지젼(紙錢) 삼쳔 쟝을 오고 가젼의 뫼시 쟝교 담여군을 거려 메워  법가(法駕)와 노부(簿) 압셔 인도고 대여 날 황샹이 대여 외편의 거러 여 지송(祗送)고 뒤  인원(人員)은 라  시위(侍衛) 황(皇子)와 밋 근시(近侍)던 인원이 다 동화문의 나와 반녈노 졍졔 황샹이 셔향(西向)여 고 쳔관(千官)도 엇다가 대여 지나거든 승여(乘輿)로 갓초와동화문으로 드러 즈럼길노신무문(神武門)을 나 빈궁(殯宮)의 나아가 기리고 궁이 궁(宮)의 나온 후 궁즁(宮中) 권쇽(眷屬)은신무문(神武門)으로 말암아 미리관덕젼뒤흐로 가 기리고 궐의 츌입던 공쥬(公主)와 복진(福晉)은  미리 빈뎐(殯殿) 대문 안 나아가 모도이고 공쥬 이하 팔분공부인(八分公夫人) 이샹은 미리 빈궁 대문 안 셔편의 모히고 팔분공부인 이하 삼등시위관원(三等侍衛官員)의 안 미리 빈궁 대문 안 셔편의 모히엿다가 궁이 니시거든 곡(哭)고 러 마즈며 각대신(內閣大臣)은건쳥궁밧긔셔브터 반녈을 초와 일졔히 모히고 졔왕(諸王) 이하 대신(大臣) 종실(宗室)은동화문(東華門)밧긔셔 좌우 화 일졔히 모히고무부(內務府) 관원(官員)은 븍편 못 어귀 밧거[긔]셔 모히고 그 마 관원은 혹풍신문큰 거리의도 모히고 모 여흘의도 모히엿다가 대예(大輿) 지나거든 곡(哭)고 러 마즈며 인야 뒤흘 로 갓가히 뫼시던 왕공(王公) 대신(大臣) 시위(侍衛) 안흐로 말암아 상 위의(喪事威儀) 다리고 마 왕공 대신과 예부(禮部)·공부(工部)·무부(內務府)당관은 궁(梓宮) 두 편으로 라 며 궁을 메 사을 여 운(運)의 호  운의 팔십 인식 상복(喪服)을 닙히고 두목(頭目) 네 사은 향쳑을 쳐 각각  운식 지며 공후(公侯) 이하와경거도위(輕車都尉)와급즁(給事中)·어낭즁(御使郎中)·원외랑(員外郞)은  열의 여 관원식 지며난위의네 관원은 진퇴(進退) 예 지휘며 명졍(銘旌)은 으 사은 여 운의 호  운의 셜흔두 사식 분야 여 관원이 지며 지나 문(門)과 리의 대신이 각각 슐잔을 세 번 나오광녹시(光祿侍)관원은 슐병을 밧들고녜부관원은 잔을 나오  번 잔을 드리고  번 고두(叩頭)며 지젼(紙錢)을 각 오 쟝식 오고 나마승으로 여금 일여 사이 미리 빈궁 대문 밧 셔편의 나아가 궁(梓宮)을 마며  미리 개와 매 대문 밧긔 베플고 궁 알 인도 관원(官員)이 궁을 마며동화문밧브터 지젼을 이니 궁이 빈궁 대문 알 니러 대여(大轝)의 려 쇼여(小轝)의 뫼시고 황샹(皇上)이 미리 문밧 외편의 어 마자 곡시고 여러 관원도 다 러 곡고교위(校尉)벼 관원이 궁을 메워 즁문의 드러가 빈뎐의 니러 삼가 뫼시고 황샹(皇上)이 라 드러가 빈뎐(殯殿) 쳠하 동편의셔 상(喪事) 다 찰이고 졔왕대신(諸王大臣)이 관원과 쟝교(將校) 거리고 드러가 궁(梓宮)을 밧드러 뎐(殿內)의 당즁(當中)야 뫼시고 누른 댱(帳)과 흰 댱(帳)을건쳥궁(乾淸宮과 치 셜고 황(皇子)와 갓가온 종실왕(宗室王)은 셤 아 셔고 갓가이 뫼시던 졔왕대신은 대문(大門) 안 셔고 왕공(王公) 이하로보은 쟝군(報恩將軍)과태(太學士)와공·후···남(公候伯子男)과부도통(副都統)과부도어(副都御使)와 몽고왕(蒙古王) 한산종실(閒散宗室)은 대문 밧 동편의 셔고 그 나마 관원은경산(景山)동문(東門) 안셔 립(排立)야 곡(哭)고 궁을 편안히 뫼신 후의 황뎨(皇帝) 뎐(殿) 나오 위예 나아가 슐잔을 세 번 나오  번 나오매 믄득  번 고두(叩頭)고 여러 관원이 다 라 녜(行禮)며 지젼(紙錢) 오쳔 쟝을 오며 명졍(銘旌)의 른 됴희도 다 오고 문 다든 후 곡(哭)을 그치고 황뎨 환궁(還宮)시고 대(大內) 권쇽(眷屬)이 다 환(還內)고 뭇 관원이 다 믈너가며 향등(香燈)을 도도기태감(太監)이 궁뎐(宮殿)죵관(從官)으로 더브러 간검(看檢) 일 삼식 거고 이 기 젼은 날마다 세 번식 난가와 노복(奴僕)을 셜(排設)고 이  후 졍지고 의장(儀仗)은 졔날의 인여 진셜(陳設)고 삼시 뎐(三時奠) 나올 졔 잔(盞) 드릴 왕(王)은 일홈을 엿와 낙뎜을 므로온 후 녀 잔을 나오고 일 안흔무부(內務府)이하 관원과 명부(命婦) 여 운의 화  식 뉸(輪廻)야 삼시 뎐의 참예고 곡며 직슉대신(直宿大臣)과 시위(侍衛)와 밋 군(軍士) 직힐 곳과 나마승의 경(經) 의[외]오 일을 각각 젼녜 의지야 명(命)시믈 기려 신 등(臣等)이 각 아문의 지휘야 다리게 라 야시며 희도 젹어시되 삼가 샹고(相考)니셰종 헌황뎨(世宗憲皇帝)[주:옹졍 묘호(雍正廟號)]샹의 옴겨 뫼실 의 신(臣)의 을노셔 황샹(皇上)이 미리 빈궁(殯宮)으로 가시믈 엿왓더니 황지(皇旨) 밧와 황샹이 거러 라관덕뎐지 니시리라 엿더라
 
136
이십삼일
137
관의 머므다 오경(五更)은 야 부(副使)와 가지로 궐하의 나아갈 군관(軍官)과 역관(譯官) 아홉이 로니라 큰 길희 니러 쳔관(千官)이 야흐로 드러가지라 게[거]매(車馬ㅣ) 길희 메이고 각각 슐위 알 등블이 인도니 원됴(元朝)의 보던 바와 더라
138
동편 궁쟝 밋 밋 이 슐위 셔로 마됴쳐 반향(半晌)을 나마 셔시 길이 통(通)치 못지라
139
좌우의 슐위  관원이 혹 머리 두혀 우리 셧 거 보고 무 슈쟉야 구지 안자 믄져 가기 닷토지 아니니 극히 안졍(安定)야 뵈더라
140
우리 션 곳의 길이  편은 고  편은 놉흐니 슐위 기우러 놉흔 편으로 다른 슐위 조치며 것구러질 니 심히 위지라 슐위 려 역관(譯官)의 을 밧고와 고 알프로 나아가동화문(東華門)밧긔 니러 긔 리니 사이 구  야 길흘 지 못지라 통관이 인도야 동편 (垓字) 발마 븍으로 향 어졔 도도던 어로(御路) 사의 왕 금고 길 두 편으로 대 심으고 등(燈)을 라시니 먼리 라보매 츨 보지 못너라
141
읏읏 등블이 두 쥴노 친 야 기 낫 더라
142
밤븟터 능개비 긋치지 아니니 길이 밋그러워 거름이 위더라
143
궁쟝(宮墻) 동편 모통이의 니니 어뢰(御路ㅣ) 기여셔 븍으로 벗쳐시니 이경산(景山)으로 가 길이라 븍편으로 궁쟝(內宮墻)이 막히이고 동편 궁쟝을 니어 동으로 막아 삼문(三門)을 내엿던 곳을 다 허러시니 대여(大轝) 츌입의 방해로올가  일이오 문(門) 안희 긔치(旗幟)와 의쟝(儀仗)이 무슈히 겨시며 사이  만히 모히엿더라
144
궁쟝 밧근 다 녀염(閭閻)과 뎐방(廛房)이니 날이 칩고 비 지 아닌지라 방(房)을 어더 고져 야 하인들을 블너 분부야 어드라 니 문을 다 구지 닷고 드러 안기 허치 아니니 아모리 면피(綿皮) 만히 쥬마 여도 듯지 아닛지라
145
길 븍편의 븬 각(行閣) 두어 간이 잇거 상(床)을 노코 안니 사들이 에워 여러 겹을 두고 보기 마지 아니니 견 기리 업지라 어로(御路) 동편 길이 진(盡) 곳의 너른 골이 잇고 큰 집이 니이여시니 므 마을 잇가 시부며 골에 거믄 휘댱으로 막고 환도(環刀)  군 왕니 직흰 사인가 시부더라
146
비 이매 어로의 년여 황토(黃土) 리고 뭇이 바 상(傷) 곳을 메오며 날이 으매 등블을 다 업시고 사이 왕왕(往往) 급히 왕며 잡(雜)되이 셧 사을 환도  관원이 피편(皮鞭)을 드러 지라 통관이 인도야 길셔 남향(南向)야 반녈(班列)을 졍졔고 기리더니 남으로 라모매건쳥궁(乾淸宮)의 셰웟던 명졍(銘旌)이 첫 알 염염(冉冉)히 잇지라 누른 남그로 틀을 그러 그 가온대 박아 면으로 군(軍士ㅣ) 메여시니 거을 옴길 젹마다  관원이 손의 남오 조각으로 근 거 쳐 소 내여 졀차 고(告)니 이 니른바 햐쳑이라 더라
147
쟝 셔흐로 향야 삼문(三門) 잇던 곳의 니매 문 안흐로셔 지젼(紙錢)을 오니 블곳치 장 장더라
148
명졍(銘旌)이 나오며 탁타(駝) 아홉 (雙)을 좌우로 모화 으니 다 누른 안쟝(鞍裝)을 짓고 금 굴네 씨워시니  아 쵸피(貂皮)  쟝과 쥬락(珠絡)  부식 라시며 쵸피 네 발이 다 니엿고 안흐로 금칠을 야시며 안쟝 우희 다 시른 거시 이시니 휘댱과 막댄가 시부며 우 누른 담(毯)으로 덥헛더라
149
탁태 지며 마(白馬) 스므 이  좌우로 화 니니  황금 안쟝(黃金鞍裝)을 지어시며  의 두 곳비 느러 좌우로 으며 마다 관원 나식 며 의쟝(儀仗)이 례로 렬야 다 니니 이 다건쳥궁(乾淸宮)의 세웟던 거시오 다른 거시 업더라
150
황옥교(黃屋轎) 둘이 의쟝 뒤  법악(法樂) 지은   필(匹)을 댱즁(當中)야 세워시며 악공(樂工)이 각각 악긔(樂器) 가지고 셔시 풍뉴 엿지 아니터라 황옥교 먼리셔 올 젹브터 지젼(紙錢)을 이고 됴희 둥글게 도리고 궁글 러 남긔 여 여러 사이 가졋다가 이음라 니니동화문(東華門)이후로경산(景山)지 헤여여 븟기여 어로(御路)의  헤여하게 니엿더라
151
황옥교 지나며 쳔관(千官)이 교젼(轎前)의 메이고 소 치여 호곡(號哭)고 로더니 대여(大轝) 그 뒤 밋니 졔왕대신(諸王大臣) 등은 대여 알 먼니 압셔 곡(哭)고 지나며 대여 압 슈십 보 즈음의  사 십여 인이 길 외편으로 믈 니더라
152
대여 갓가오 일졔히 러 대여 라고 곡더니 알 십여 인 믈 가던 사이 우리 러안즌 남편(南便)의 니러 븍향야 대여 라고 통곡다가  우리 러 안즌 곳을 피 거동이라 의복이 여 사과 지 아니코 거믄 마으락이며 양피(羊皮) 갓옷시오 위의(威儀) 간략니 졔왕(諸王)인가 엿더니 오 셧거 셔히 보니 거러  알 푸른 집의 너흔 칼  이 셔시니 이샹방검(尙房劍)이오 뒤 시위(侍衛) 쟤 다 나로시 업니 이 시(內侍)라 비로소 황뎬(皇帝) 쥴을 알니러라 대여 오히려 먼리 셔시니 황뎨 로 도라보며 곡(哭)을 긋치지 아니코 우리  곳과 졍히 마조 엿지라 닉이 보다가 몸을 굽히고 더옥 통곡니 션황뎨(先皇帝) 아국 녜(禮待)던 일을 각고 일(一倍) 감창(感愴)미오 몸을 굽히믄 피인(彼人)의 사을 졉 녜뫼(禮貌ㅣ)라 아국을 별노 졉 고로 이치  의가 시부더라
153
비록 쳑(哀戚) 가온대나 얼골이 셜[석](白晳)갓고 풍영(豊盈)야 면이 번듯고 귀 우굿 별노 크고 눈이 쳐져 븟튼  오 길며 킈 팔 쳑의 지날 거시오 구각(軀殼)이 쟝대며 온후 긔운과 인 빗치 얼골의 낫타나니 심샹(尋常) 사의 비치 못너라
154
시(內侍) 두 편을 븟드러  죵죵 뒤흐로 도라보니 대여 니로믈 피미러라 대여
155
일즉경운문(景運門)밧긔셔 보던 배오 쳔관(千官)이 옹위야 다만 발자최 소이라 대여 우리 알 니매 두어 관원이 창황(倉皇)이 니며 곡을 긋치라 니고 우리도 손 쳐 곡(哭)지 말나 니 황뎨(皇帝) 갓가히 셧 고로 그리지 모너라
156
인교(四人轎) 나히 대여 뒤 셔시 우 누른 빗치오 휘댱(揮帳)은 거믄 거 둘너시니 이 황뎨 환궁시(還宮時)예 맛당이  거시라 더라
157
대여 지나며 우리  그 뒤흘 라 어로(御路)로 말암아 니 사의 엇게 셔로 시아쳐 발을 옴겨 놋치 못너라
158
셔븍으로 이윽이 다가 셔편으로 큰 삼문(三門)이 이시니 문 일홈이 샹[산]좌리문(山左裏門)이라 일니 곳경산담 밧 외편 문이라 문 직흰 쟝 환도(環刀)와 도 들고 셧다가 대여 문을 지난 후 사을 금야 못 드러 가게 니 오직 황뎨(皇帝) 뎐(殿內)의 밋쳐 드지 못가 시부더라
159
혹 사이 몰기여 문을 너무랴 면 쟝 눈을 부릅고 환도(環刀) 집을 갓고로 잡아 가을 내여 밧으니 마조친 사이 공즁(空中)의 잣지지라 그 형셰 극히 무셥더라
160
우리 일(一行)도 밧비 오랴 미 아니로 등 뒤 사의 밀니인 배 되여 발이  닷치 아니코 임의 문밧긔 니지라 쟝 굿여 공갈(恐喝)지 아니코 통관려 니 져기 기려 드러가리니 아직 문밧긔 머믈나 고 좃차 내치지 아니니 외국(外國) 사이라 야 구박(驅迫)지 아닌가 시부더라
161
셥나(暹羅)신이 우리 뒤 더니 문의 사을 것구로치 거동을 보고 두리 빗치 얼골의 나타나고 몸을 러 진졍치 못니 외국 사이 괴이치 아닌 일이라 아국 일은 년년이 드러와 이목(耳目)이 닉을  아니라 조금도 조심고 두리 긔이 업니 일노 보면 아국 인믈이 심히 당돌타 니너라
162
이윽야 문을 막지 아니커 드러가니 문 안희   누른 기와 니은 집이 뵈니 이관덕뎐(觀德殿)이란 집이니 곳 궁(梓宮)을 뫼신 집이라 의쟝(儀仗)은 담 안밧긔 다 누이고 문으로 왕 사이 드무더라
163
우리경산(景山)밋 니러 셔시니관덕젼의셔 이윽지라 뎐(殿內) 동졍(動靜)을 피지 못지라  누른 옷 닙은 사이 우리 알 니 머리의  배 젼의 보지 못 거시라 누른 거로 즁의 곳갈치 그라시 실쥭고 희 누른 털노 샹모(象毛)치 느리여시니 별노 이국 사인가 야 무니 이  나마승이라 더라
164
경산은 본타아산이라 일고 산이라 일 만슈산(萬歲山)이라 니 곳대명(大明)슝뎡 황뎨(崇禎皇帝)슌산(殉死)신 곳이라 이곳의 니러 녯 자최 어지매 홀노 쳔연(慽然)믈 닷지 못너라
165
마  사려 무로 이 녜산이 아니냐 야 손을 쳐 왈 일홈이경산(景山)이니 이 셰샹의셔산이란 일홈을 휘(諱)니 이 일홈을 다시 일지 말나 더라
166
이 뫼신무문(神武門)밧긔 이시니신무문은 곳 궁쟝(內宮墻) 븍편 졍문이라 문을 내매  곳 (垓字ㅣ) 막히여 큰 무지게 다리 노코 돌난간을 돌너시며 다리 지나  문이 이시니 이 문은븍산문이라 븍산문을 지나 곳경산이 이시니 동셔 두 치 고 즁앙이 놉흐니 슈십 댱의 지날지라 쟝 노픈 곳의 삼층각을 세오고 동셔로 이층각을 둘식 세워시니 집마다 풍마동(風磨銅)으로 쥬졔 그라 덥고 집 졔도 웃층은 우산을 베픈 모양이오 아층은 년(蓮)봉오리 마친 모양이라 븕은 난간이 령농며   쳠해 표묘(縹緲)야 녹벽(金碧)이 눈의 부싀이니 진짓 션경(仙境)이러라
167
슈목(樹木)이 장 무밀(茂密)고 이이 간숑(白榦松)이 이시니 프른 닙 옥(玉) 튼 쥴기라  긔이 남기러라관덕뎐겻  누른 기와 니은 집이 잇고 집 동편의 담을 가로 막고 문을 내여시며 문밧긔 삿자리로 놉흔 집을 그러관덕뎐과 담을 격(隔)야 와 마조 야시니 젼후 좌우의 믈읏 네  세오고 집  다 아로삭여시며 쳠하 마다 비단 댱을 드리워시며 알프로 댱즁(當中)야 문을 그라 누른 댱(帳)을 드리워시니 곳 나마승의 경(經) 닑 곳이라 더라
168
이곳은 개(私家ㅣ)라도 상(喪事) 만나면 문밧긔 삿집을 졔되 긔묘게 세오고 혹은 집을 다 삿츠로 흰 집을 그니 더윽 고은지라 그 안 풍뉴(風流) 초와 초상(初喪)부터 경을 닑으니 풍뉴 엿와 스므로 긋치지 아니고 쟝[상]후(喪後) 됴이 니면 삿집의셔 퓽뉴 베퍼 쟈(死者)의 신졍을 즐기게 고 됴(弔客)의 슬프믈 위로다 니 길셔브터 황셩(皇城)지 삿집을 본 곳이 여러히라 혹 글로 아로삭여 셔방졍노[토](西方淨土) 네  트러 세웟더라
169
진시(辰時) 뎐(奠)을 파 후의 삿자리문으로 도로 나오니 문밧긔 동븍편으로경운문밧긔 베럿[펏]던 댱막을 다 옴겨 첫더라
170
댱막의 안매 밧긔 잇던역관이 니 대여(大轝) 드러간 지 오라지 아녀셔 황뎨 동장문 안셔 조차 나와 인교(四人轎) 고 대(大內)로 도라가니 시신(侍臣)이 다만 슈십 인이오 그 뒤  인교 여라믄이  기즁 진홍 비단 휘댱이 이시니 피인(彼人)이 니 이 곳 황귀비(皇貴妃)  배오 그 나마 공쥬(公主)와 비빈(妃嬪)이라 이곳은 비록 궐(闕內)나 궁쟝(內宮墻) 밧긔라 왕 거마(車馬)와 매(賣買) 음식이경운문밧긔셔 일(一杯) 분잡고 구경 사이 더옥 모히니 휘댱을 가리오고 믁믁히 안졋다가 오시(午時) 곡반(哭班)을 참예고  안잣다가 신시(申時) 밋쳐 드러가 참예니 삼시 반녈(三時班列)과 졀 치건쳥궁과 고 다만 오시(午時)브터 명졍(銘旌)을 누이고 세오지 아니니 이 오 졀러라 신후(申後)의 관(館)으로 나올 삿자리 문 압흐로 지나 큰 길노 말아마 나오더니 남으로 거이 길의 가로막아 거믄 휘댱(揮帳)을 첫지라 븍편 녑흐로 좃차 삼문(三門) 잇던 밧긔 니니 슈 이곳의 와 령(待令)엿더라
171
신(使臣)이븍경(北京)드러온 후 츌입면 지쳑(咫尺)이라도 믄득 소[슈] 니 이곳 톄면(體面)을 위미라 니 대개 도셩(都城) 안 관인(官人)은 다 슈 미라 혹 신 츌입의 갑군(甲軍)  이 을 고 피편(皮鞭)을 여 길흘 츼오니 이  관인(官人)의 위의(威儀)라 슈 셰(貰) 잠간 궐하의 나아갓다가 도라와도 쇼쳔[젼](小錢) 닐곱 냥식 쥬 머나 갓가오나 잠간 이나 죵일 나 셰(貰) 갑시 고해(高下ㅣ) 업니 이럴니 어이 이시리오마 셔(書者) 놈이 슈 셰  놈과 화 먹으니 임의 뉴례(流例)) 되엿지라 이번 (使行)은 슈 아니 니 업니 셰 갑시 과연 너라
172
예서브터 동화문지 궁쟝(內宮墻)으로 발마 나아가니 궁쟝 셩첩(宮墻城堞)이 쥴노 친 시 공즁의 표묘(縹緲)며 궁쟝 안흐로 궁뎡(宮庭)과 누각(樓閣)이 령농 황홀(玲瓏恍惚)야 진짓 화즁(畵中)의 경개오 궁쟝 동븍각(東北角)의 두 층 집이 졔되 긔묘니오봉누(五鳳樓)알 잇던 누와  모양이라 궁쟝(內宮墻) 네 편 모히 다 이와 튼 집이 잇다 더라
173
관의 니른 후 드니 여러역관이 모히여 황뎨 얼골 보믈 셔로 랑야 셔히 본 바 니더니 역관이 오 나 황뎨 셔히 볼  아니라  공쥬(公主) 보앗노라 며 니 아의 나올 의 어로(御路)로 조차 나오더니 뒤셔  인 니 죵쟤 십여 인이라 소 야 기리라 거 셔히 보니  부인이 흰 옷 닙어시 옷 졔도 창졸의 알 길이 업고 머리 뒤흐로 샹토치 족져시며 흰 무명으로 졉어 니마 동히고 두 츌 굽혀 두 귀 밋흐로 혀 드리워시며 담대 믈고 교의(交椅)예 안연(晏然)히 안자시며 죵 다 양피(羊皮) 옷 닙고  시 라 어로로 좃차 가다가 휘댱으로 길을 막앗거 죵쟤 휘댱을 혀 졔치고 피편을 드러 군(軍士) 치며 지니 위의 현[혁]연(赫然)지라 이 반시 공러라 거 역관이 오 친왕비(親王妃)도 잇고 대신(大臣)의 명부(命婦)도 이시니 그 그 공 쥴 어이 아뇨 답왈 그 년긔(年紀) 삼십 안이로 얼골이 덜 믜여 남와 다로지 아니니 공쥬 아니면 그 믜온 얼골의 어이 이 튼 귀인(貴人)이 이시리오 니 듯 쟤 다 웃더라
 
174
이십일
175
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경산(景山)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니라
176
셩졀(聖節) 방믈을 도로 내여 쥬란 말을 십뉵일의 드럿지라 그날 삼 신이 샹의여 오 져의 도로 쥬믄 괴이치 아닌 일이어니와 우리 도리 엇지 믁믁히 말도 업시 바다 가리오 뎡유년의 방믈을 도로 가져가라 여 아국의셔녜부의 문(咨文)야 밧기 쳥 일이 이셔시니 이번인들 엇지 문(咨文)야 밧기 쳥치 아니리오뎡유년은 방믈을 도로 가져가란 말이 신이 임의 도라간 후의 잇 고로 문 곳 아니면 밧기 쳥 길이 업거니와 이번은 신이 야흐로 황셩의 머므지라  번녜부의 졍문(呈文)야 밧긔 믈 도모(圖謀)미 곳 우리의 아니치 못 일이라 야 이치 샹의니역관들은 혹 니 황지(皇旨)로 도로 쥬라 엿거 쇼국(小國) 신(陪臣)으로 안연(晏然)이 안져셔 졍문미 분의예 블감(不敢)  아니라 만일 졍문 후의녜부로셔 엿와 신 방믈 논죄(論罪)면 면(事面)이  엇더리오 니 신이  이 의논의 요동(搖動) 배 되여 믄득 졍문을 못고 쳔연(遷延)여 이지 니럿더니 밤낫 샹냥(商量)야도  말이 업시 도로 가져가 거시 가치 아닌지라 드여 샹방(上房)으로 글을 일위여녜부의 밧치니 그 글의 대강 오 쇼방(小邦)이 평일의 대국을 셤기 졍셩 만치 아닌 폐믈(幣物)의 젹이 부치더니 신민(臣民)이 복이 업셔 대태샹황뎨(大行太上皇帝) 의외예 하의 오시니 놀납고 통박(慟迫)나 오히려 젹이 위로 밧쟈 표문(表文)과 방믈(方物)을 빙궤(憑几)신 젼의 밋온지라 업여 귀부(貴部)의 공(公事) 본즉 만만슈졍졀(滿滿壽聖節) 방믈을 신의게 븟쳐 돌녀 가라 야시니 이 명(命)시믈 밧드러 엇지 쥰(尊行)치 못리오마 다만 업여 각건대 쇼방의 젹은 졍셩을 다시 펴을 히 업  아니라 임의 나온 방믈을 도로 가져가면 쇼방의 군신 샹해(君臣上下ㅣ) 비결(悲切) 회푀 맛당이 엇더리오 뎡유년효셩헌황후(孝聖憲皇后)샹(喪事)의 쇼방(小邦) 례믈(祭物)을 내국왕(國王)의 문(咨文)을 인연여 즉시 도로 밧기 인연여 헌[허](許)니 쇼방이 지금 감(感幸) 배라 업여 비노니 귀부(貴部) 쇼방의 졍셩을 펴 특별이 엿오믈 라노라 니라
177
이곳의 희(戱子) 노름과 환슐법(幻術法)이 이시니 이젼은 신이 혹 길셔도 보고 혹 관의 블너드려 보더라 나 이번은 이젼과 다고  이십칠일 젼은 도셩(都城) 안밧긔  곳이 업다 더라
178
희진한(秦漢)이후로 녁의 뎐염 일을 희여 노름을 삼으니 곳 아국 산도(山臺)와 들노름(野遊) 모양이라 민간의 셩야 상(喪事) 만난 집은 삿집 속의셔 이 노름을 베프니 극히 괴이 일이오 황뎨 혹 궐의 드려 본다 니 샹하 무론고 됴히 너기지라 비록 샹(常)업 노름이나 다만 노름을 베플 젹이면 반시 그 나라 복을 초니 녯 의복을 짐쟉 이 아니라 됴뎡 복(朝廷服色)과 궁즁 복(宮中服色)과 상 복(喪事服色)과 길녜 복(吉禮服色)을 다 녯 위의 초니 셩인(聖人)이 오 녜 일흐매 들의 가 구다 시니 즁국의 위의 다 희(戱子)의 잇다 니지라 만일 왕쟤(王者ㅣ) 니러나면 반시 희의 모방(模倣)리니 이러므로 무식 피인(彼人)이 우리 복(服色)을 보면 믄득 우셔 오 희와  모양이라 니  엇지 블샹치 아니리오 환슐(幻術)은 혹 사거[기] 졉시 긴 대(竹) 우 돌니 르기 표 며 혹 대 츼쳣다가 다시 바다 돌니기 마지 아니코 혹 입의 젹은 월도(月刀) 먹음고 월도 우희  젹은 월도 노화 이 셔로 케 노흐 르치지 아니코 우희 노힌 칼 우희 졉시 돌니 대 야 심으고 입으로 칼로 놀니며 눈으로 도 졉시 피니 칼도  박은 시 음기지 아니코 졉시도 일향 도니 그 사의 졍신이 모히여 눈을 감기지 아니니 이 도니 밧긔 일이오 혹 탁(卓子) 우희 나모 두 뇽을 노하 뭇 사을 뵈여 속의 잇 거시 업믈 뵈고 담(毯)으로 덥헛다가 손을 너허 두 뇽의 속의셔 비돍이 나흘 집어내니 비돌기 울며 노다가 간 곳이 업셔지고 혹 지(白紙) 올혀 나븨 개 치 그러 입을 버리고 삼키더니 손을 입의 너허 됴희 집어내매 됴희 다 셩야 올힌 흔젹이 업고 혹 탁(卓子) 우희 담(毯)을 덥헛다가 이윽 후 담을 거든즉 각(各色) 실과(實果)와 각 보로 화졉시(畵楪子)의 담아시니 먹어 보아도 진짓 거시오 혹 역졸(驛卒)의 젼립(氈笠)을 벗겨 뒷쳐 노핫다가 젼립 안흐로셔 실과 졉시 지어 내고 졉시 도로 노핫다가 홀연 간 곳이 업거 겻 션 사의 픔속을 뒤져 그 실과 졉시 드러내고 혹 상아져(象牙箸) 을 가져 왼 코 속으로 질너 올흔 코흐로 혀 내고 올흔 코 속으로 질너 왼 코 속으로 혀 내며 혹 탁의 칼을 박더니 슐이 소사나지라 병(甁)을 다히고 바다 두로 먹이며 혹 아희 공즁의 더져 텬도(天桃) 밧들고 려오니 다 셤흘(閃忽)야 알 길이 업니 비록 눈을 히고 혀도 그 진가(眞假) 잡아낼 길이 업다 나 졉시 돌니 거 졔 진짓 공뷔오 혹 발 동힌 계집이 비슥이 눕고 동힌 발노 아드리 독을 츼쳐 바다 쥬방을 치 다 니 이 긔이 일이라 일더라
179
밤의 이 드럿다가 홀연 놀나 치니 등이 결니며 호흡(呼吸)을 통치 못고 몸을 운동 길이 업지라 못 견여 소 지르 쥴을 지 못니 겻 캉의  사이 대경(大驚)야 모히여 창졸(倉卒)의 약(藥) 길이 업지라 즉시 쥬방(廚房)의 닐너 모밀 슉을 려다가 마시고삼승고약을 어더 결니 곳마다 라 브치니  식경(食頃)이 지난 후 젹이 나은지라 잠간 다시 을 드럿다가 니 동이 임의 텃더라
 
180
이십오일
181
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경산(景山)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니라
182
부(副使ㅣ)뎐갈(傳喝)야 드러가지 말고 도라오라 고 구지 만류(挽留) 병이 젹이 나핫고 임의 슈십여 일을 니다가 오 아니 드러가미 가치 아니코부홀노 참예 거시 면(事面)의 구 지라 관계치 아니타 고 드러가 막의 잠간 안잣더니  밋쳣거 산좌리문으로 드러 이젼 셧던 곳의 니매 황뎨 뒤흐로 좃차 나온다 더라
183
이윽야 황뎨 인교 고신무문과븍샹문으로 조차 나오니 가마 알 시위 슈십여 인이라 다 환도(環刀) 고 며 가마 뒤 표미긔(豹尾旗) 다엿이오 시(內侍) 가마 좌우로 뫼셧더라
184
경산겻 니거 동셔 반녈이 좌우로 화 쟝 지영(祗迎)려 더라
185
황뎨 졍노(正路) 지나지 아니코 반녈 뒤흐로 즈레 빈뎐(殯殿)동협문(東夾門)으로 드러갈 문을 십여 보 못 밋쳐 가마 려 드러가니 뒤흐로 바라보매 등이 급은 의 이시니 대개 이곳 사이 나히 만치 아니여도 니 모양이 압히 구버뵈니 의복 졔되 달나 그러가 시부더라
186
황뎨 곡(哭)며 문밧긔셔 다 일시의 곡며 뎐(殿內)의 드러가 진시 뎐(辰時奠)을 나오지라역관 사이 갓가이 가 사의 등으로 엿보니 황뎨 친히 잔(盞)을 드러 세 번 드릴  번 드리고 믄득  번 고두(叩頭) 이오 별노 다른 졀 보지 못너라 더라
187
빈뎐(殯殿) 담 밧긔 법안(法鞍)과 가즉 방셕을 여러흘 싸코 겻  누른 비단을 하시니 다 구름과 뇽(龍)을 그런 문이 잇고  덩이식 뭉쳐 노하시니 그  십만여 필이 될지라 쟝 블을 오려 거 의 혜오 비록 긔[지][뷔](四海之富ㅣ)나 엇지 헛도이 믈(財物)을 허비야  글니오 더니 밋 펴보매 비단을 아니오 다 흰 바탕 됴희의 오 뇽(龍) 문을 노코 비단 필치 묵거 아시니 비록 비단은 아니나 됴희  그 슈 아지 못니 금즉더라
188
뎐(奠)을 파 후의 누른 보의 므어 크게 뭉쳐 빈뎐(殯殿)으로브터 밧들고 나오 황뎨 그 뒤흐로 조찻더라
189
이에 흔 됴희 법안과 긔 블을 지니 신시 뎐(申時奠)의 드러가기지 블이 지지 아니야시니 그 만흐믈 짐쟉너라
190
진시뎐 후의 황뎨 즉시 나오던 길노 환궁(還宮)더라
191
나마승이 빈뎐 안밧그로 왕 진시 뎐 후의 슈 인이 빈뎐 동셔문(東西門)을 화 나오거역관으로 여금 무니 피인(彼人)왈 나마승 일뉵십을 블러드려 팔 인은 빈궁의 잇고  팔십 인은 담 밧 삿집의 이셔 빈뎐의 옴겨 뫼시던 날노브터 삼칠(三七)이 이십일 일을 (限)고 경(經)을 외오 경의 올  븍을 치며 풍뉴 갓초아 졀조(節度) 마촌다 더라
192
낫 후의 나마승 나히 막의 니러 기웃거리거황이(黃伊)로 여금 안라 쳥(請)고 무 그 본 어 사이뇨 승왈(僧曰) 셔방(西方) 나라 사이로라 몃 니(里) 되뇨 오쳔여 리라 며 경(京師)의 니른지 몃  되엿뇨 삼 년이 되엿노라  무 어 머무뇨 답왈탑(白塔寺)의셔 머므노라황이오 녜 몃치나 뇨 승이 쇼왈(笑曰) 너희 나라 즁이 녀 두엇냐황이왈 아국(我國) 즁이야 어이 녜 이시리오 승왈 즁은  가지라 어이 이치 뭇뇨황이왈 녀 업나 (奶奶) 이시리로다 승이 우셔 오 산승(山僧)과 문답(問答)며 어이 이대도록 됴롱(嘲弄)뇨 승이 인야 오 너 이치 무름이 아니라 이곳의 승속(僧俗)이 괴이야 너희 임의 아 일이라 슐과 고기 갈희지 아니코  쳐쳡(妻妾)을 둔 쟤 이시니 이 무 즁이라 일리오 우리 만리 밧긔 잇 즁으로 황뎨(皇帝) 별노 와 경셩(京城)의 졀을 짓고 두어시니 엇지 블가(佛家)의 경계(警戒) 직희여 즁의 도리 극진이 아니리오
193
황이(黃伊) 오 이곳 즁의 풍쇽(風俗)을 아지라 너희 그러치 아닌 쥴을 모 거시 아니로  희룡(戱弄)미로다 니라
194
그 즁의 거지(擧止)  단졍고 얼골이 됴츌니 츌가(出家) 사의 모양이오 나히 십이 남엿더라
195
쳥심원(淸心丸) 환을 쥬니 져희 흔이 엇지 못지라 장 깃거야 치샤고 가더라
196
어졔 반녈의녜부(禮部)시랑(侍郞)쳘뵈(鐵保ㅣ)니러부(副使)와 날을 향여 손을 드러 녜(禮)고 벼과 닙됴(入朝) 슈 뭇고박졔개(朴齊家ㅣ)됴희 잇냐 믈으니박졔가(朴齊家)드러와실 의 친가 시부더라
197
얼골이 초강고 거지  소랑(昭朗)야 글 사의 모양이러라
198
오셔 므 슈쟉을 고져  말을 통치 못지라 다만 무미(無味)히 이윽히 섯다가 도라가더니 이날 반(班次)의  만나나 션 곳이 젹이 먼지라부(副使ㅣ)믄져 손을 드러 아른 쳬니철뵈(鐵保ㅣ) 손을 드러 가의 다히고 흔덕이기 마지 아니니 극히 졍다온 거동이라 이 풍쇽이 이러더라
199
오날도 식믈(食物)  탁(卓子) 쥬니 젼의 쥬던 것과 가지러라
【원문】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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