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눈이 져기 나 람이 더옥 장[강]고 치위 혹심(酷甚)여 칼의 니블을 므릅쓰고 안져도 오히려 니지라양졈(雙陽店)일촌(一村)이 집집이 문을 닷고 계집도 져기 일이 업며 길희 인(行人)도 업더라
3
혹 인(行人)이 이셔 치위 견지 못여 젼방(廛房)의 문을 여러 달나 면 쥬인이 문을 닷고 드러오믈 허(許)치 아니니 대개 길셔 어러 죽기 온지라 이러므로 셔로 밀워 븟치 일이 업니 이런 날 길 니다가 죽 쟤(者ㅣ) 만타 더라
4
삼신(三司臣)이 샹의(相議)야 참(站)의셔 머므니 대개 병든 쟤(者ㅣ) 만흐니 이 풍한(風寒)의 역(行役)다가 반시 죽을 쟤(者ㅣ) 만흘지라 마지 못여 나지 못고 감히 캉(炕) 밧긔 나지 못여 방쟝(房帳)을 의구(依舊)히 치고 구지 안져시니 회(客懷) 슈란(愁亂)여 길 가니만 못더라
5
겻 캉의 쥬인의 가슐(家率)이 잇지라 혹 계집의 소 나며 고 느러 어훈(語訓)이 분명(分明)니 내 비록 한어(漢語) 모나 대마다 아라 들을 귀졀(句節)이 이시며 어룬 아 답 소 뇨뇨(了了)니 대개 무식(無識) 계집과 지각(知覺) 업 어린 거시라도 어(語次)의 긔이(奇異) 문(文字ㅣ) 만흐니 이러므로 한어(漢語)의 됴흐믈 알너라
6
계집마다 목소 다 고리 소 트니 소 들을 젹마다 의 혜오 져 계집이 반시 졀(絶色)이라 여 보고 시분 이 업지 아니더니 밋 보매 얼골이 흉악(凶惡)고 거동(擧動)이 츄잡(醜雜)니 잇다감 스로 우음을 닷지 못너라
7
식후(食後)의 쥬인의 큰 문 밧긔셔 여러 사 지져괴 소 나니 쥬인과 방 하인(房下人)이 급히 나가 문을 막고 드리지 아니거 문 틈으로 여어 보니 여라믄 놈이 다 쇠슬노 목과 발을 으고 거름 거 졔 발 동안을 계유 옴겨 노하 소 지며 드러오기 토거 내 무로 어인 사이며 므 연고(緣故)로 져 모양을 엿다 니 쥬인이 답 져 놈들이 다 죄범(罪犯)이 젹지 아닌지라 경션(輕先)이 노치 못 고로 져 형벌(刑罰)을 더어 그 츌입(出入)을 려 두엇다가 이 면 혹 귀향(歸鄕)도 보며 혹 노히 놈도 이시니 져 모양으로 이실 의 촌간(村間)으로 니며 음식을 비러 목슘을 보젼(保全)지라 치위 이 튼 고로 녀염(閭閻)의 캉(炕)을
8
의지고져 나 만일 죽기의 니면 븟친 사이 짐 죽엿다 여 살인(殺人) 죄(罪)와 치 의논(議論)니 이러므로 셩이 다 븟치지 못다 더라
9
지매 을 사이 셔로 모히여 쇠 울녀 길셔 오르리니 대개 셔로 블을 방비(防備)더라
11
발(發行) 샹(上使ㅣ) 슈일(數日) 젼브터 병이 긴졀(緊切)더니 밤이 증셰(症勢) 더야 젼진(前進) 길이 업니 이 참(站)으로브터 이틀을 월참(越站)야 십뉵일 미쳐 가히황셩(皇城)의 다지라 마지 못여 샹방(上房) 일은 이 참(站)의 낙후(落後)고 부삼방(副三房)이 몬져 나아가니 오 가감(加減)을 기려 즁노(中路)의 셔로 모히게 언약(言約)여시나 만리(萬里) 이역(異域)의 슈월을 동(同行)다가 홀연(忽然)이 이 지경(地境)의 니니 가 사과
12
머므 사의 심(心事ㅣ) 엇지 극히 참연(慘然)치 아니리오 병환(病患)은 비록 념녀롭지 아니나 치위 당여시니 엇지 참연(慘然)치 아니며 눈믈을 려 니별(離別) 졔 결연(缺然) 을 뎡(定)치 못려든 믈며 젹셜호산(積雪胡山)의 거류(去留)의 니별(離別)을 일우니 어이 말이 업며 눈믈을 금치 못여 드여 쳐 좌차(坐車)의 안즈니 심회(心懷) 진실노 됴치 못더라
13
송산보(松山堡)의 니러 됴반(朝飯)고관마산(官馬山)과산보(杏山堡)의 니니 두 뫼 의무려산(醫巫閭山)일(一脈)이라
14
이 뫼 뒤흔 곳몽고(蒙古)의 부락(部落)이니 궁실(宮室)을 일우지 아니고 다만 큰 들 가온대 댱막(帳幕)을 베퍼 거쳐(居處) 고로 무샹(無常)이 졍(定) 곳이 업며 위인(爲人)이 완악(頑惡)고 츄(麤悖)여 가히 두려온지라 일 모화 이 을의 니러 사의 안와 을 노락[략](虜掠)여 라나니 그 형셰(形勢) 풍우(風雨) 트니 마을 사이 부지(扶持)기 어려온지라 그런고로 나[난] 쟤(者ㅣ) 만흐니 마을이 극히 소조(蕭條)더라
15
십니하(十里河) 지나니 그 너븨 가히 여 지날너라
16
고교보(高橋堡)의 니러왕가(王哥)집의 슉소(宿所)니양졈(雙陽店)으로븟터황산보지 녀염(閭閻)이 졀연(絶然)이 희소(稀少)지라 대개송산보(松山堡)관마산(官馬山)산보(杏山堡)세 곳은 일대명(大明)군(軍士ㅣ) 참혹(慘酷) 함몰(陷沒) 곳이라
17
거의 이년(二百年)이 되여시 오히려 소복(蘇復)지 못여시며관마산(官馬山)의 큰 무덤 두 곳이 이시니 이 니론 경관(京觀)이라
18
경관(京觀)이란 말은 젼쟝(戰場)의 죽은 군사(軍士) 무러[더] 일 말이오 즉금은 이곳의 치 곳을 그랏다 더라
19
고교보(高橋堡) 인개(人家ㅣ) 번셩(蕃盛)여 신민둔(新民屯) 여양역(礪陽驛)과 트니 인개(人家ㅣ) 슈삼니(數三里)의 히지 아녓다 더라
20
병신년(丙申年)의 이곳의 슉소(宿所)다가 밤즁의 은(銀) 일쳔(一千) 냥을 일흔지라호송관(護送官)녕송관(迎送官)이금(錦州)와녕원부(寧遠府)의 고(告)니심양(瀋陽)으로 (使行) 슉소(宿所)엿던 쥬인의 부녀(婦女)지 잡아다가형부(刑部)의셔 구(究覈) 혹독(酷毒) 형벌(刑罰)을 갓초더니 쥬인의 계집이 견지 못여 고(告)여 오 은(銀)은 진실노 도젹(盜賊) 일이 업지라 다만 쳐녀 되야실 예 아모 곳 남(男子) 간통(姦通)여시니 오직 죽어 맛당지라 은(銀)은 일만(一萬) 번 죽어도 도젹(盜賊) 일이 업노라 니황뎨듯고 숨기지 아니미 긔특다 여 쥬인을 내여 보내고 그 계집을 옷 쥬어 닙히고 슈 와 보니 이후로브터 (使行)이 슉소(宿所)
21
뎡(定)매 마을 사이 다 브치기 어려워 더니 근(近來) 임의 오란지라 그러치 아니타 더라
22
마을 가온관왕(關王廟ㅣ)겨시니묘당(廟堂)이 장녀고소샹(塑像)이 웅위(雄偉)시니 본 녕험(靈驗)이 만타 지라 이번 (使行)이문(柵門)이후로 병드지 아닌 쟤(者ㅣ) 업고 죽은 쟤(者ㅣ) 임의 세 사이라
23
하인(下人)들이 다 황황(惶惶)여 병 드지 아닌 쟈도 니 곳을 아지 못며 병든 쟈 더옥 됴셕(朝夕)으로 보젼(保全)치 못 이 더지라 대져 하인(下人)의 쳔(賤)고 미욱(迷惑) 샹졍(常情)이 이시면 믄득 디도(指導)기 일지라 드여부방(副房)의 의논(議論)여 샹졍(常情)을 인여 진졍코져 여 이에 의돗과 약과(藥果) 닙과 와 밤 대조[초] 각 근과 슐을 초와 지젼(紙錢)을 와관뎨묘(關帝廟)의 졔(祭) 지댱샹역관(堂上譯官) 김명귀 보여 글을 가져 써 졔(祭)니 그 글의 니
24
유령(唯靈)이 당당츙의지긔(堂堂忠義之氣)는 병쳔고이댱존(炳千古而長存)이오 [주:오직 신령(神靈)이 당당(堂堂) 츙의(忠義)읫 기운(氣運)은 쳔고(千古)의 빗최여 기리잇고]
25
명명비우지은(明明庇佑之恩)은 전망방이균시(轉萬邦以均施)라 [주:명명(明明) 좁고 놉흔 은혜(恩惠) 일만(一萬) 나라흘 권고(勸告)여 고로게 보도다]
26
여슈디(如水在地)니 원옥쳔지현령(爰自玉天之顯靈)이오 [주:믈이 이심 트니 일 쳔(天子)의 신령(神靈)을 낫타내무로 븟터시며]
27
솔토보텬(率土普天)이 슈종금샹지타향(遂從金床之安享)이라[주:큰 와 너른 하이 드여 금샹(金床)을 평안(平安)이 뫼시기 치 엿도다]
28
신쳥구(矧靑丘) 피조지혜(被再造之惠)야 [주:믈며 쳥구(靑丘) 두 번 지은 은혜(恩惠) 닙어]
29
시단영(是丹楹)이 치냥묘지의(侈兩廟之義)라 [주:이 븕은 기동이 두묘당(廟堂)의 거동(擧動)을 빗내게 엿도다]
30
뇽샤지겁운(龍蛇之劫運)을 회(回思)니 신실노의(神實勞矣)오 [주:진년(辰巳年)겁운(劫運)을 도혀 각니 신령(神靈)이 진실노 슈고롭고]
31
뇌지향녜(牲牢之饗禮) 공궐(空闕)니 국왕(國王)이 역(亦拜)로다 [주:뇌(牲牢)의 향녜(饗禮) 공궐(空闕)니 국왕(國王)이 졀을 시도다]
32
쇼방이슈집양지공(殆小邦以修執壤之貢)야 삼개응츌강지역(乃三介應出疆之役)이라 [주:못 쇼방(小邦)이 흙덩이 잡 공을 닷그매 이에 삼개(三介) 지방(地方)의 나 역(役事) 맛탓도다 삼개(三介) 삼신(三司臣)이라]
33
관개샹쇽어도로(冠蓋相屬於道路)니 션션원습지노(駪駪原隰之勞)오 [주:관개(冠蓋) 새로 도로(道路)의 니어시니 션션(駪駪) 원습(原隰)의 슈고로미오]
34
세월(歲月)이 운모어관하(云暮於關下)니 비비우셜지영(霏霏雨雪之詠)이라 [주:셰월(歲月)이 관하(關下)의 져무러시니 비비(霏霏) 우셜(雨雪)의 읇프미러라]
35
졔시령뉴지질(際玆時令輪行之疾)야 슈치노젼련지탄(遂致行路顚連之嘆)이라 [주:이 시령(時令)의 뉴(流行) 병을 즈음야 드여 노(行路)의 업더지 탄식(歎息)을 닐위엿도다]
36
셔원한(暑怨寒咨)니 텬방강(天方降疵)여[주:더우면 원망(怨望)고 치우면 슬허니 하이 야흐로 못슬 병을 리오시거]
37
풍신우위(風呻雨喟)니 인실하고(人實何故)오[주:람의 신음(呻吟)고 비의 숨 쉬니 사이 진실노 무 죄던고]
38
미급만리지언[션]션[귀](未及萬里之旋歸)니 삼인지병녕(哀哉三人之竝零)이라 [주:만리(萬里)의 도라오기 밋지 못니 슬프도다 져 세 사의 죽으미여]
39
층빙젹셜(層氷積雪)의 귀쟝뇌이[의](鬼將餒矣)오 만젹쳔산(萬磧千山)의 혼불귀(魂不歸思)로다[주:층층(層層) 어름과 싸인 눈의 귀신(鬼神)이 쟝 쥴일 거시오 일만(一萬) 돌무덤이와 일쳔(一千) 뫼의 혼(魂)이 도다 가지 못리로다]
40
우호이의쟈(旴嗟乎已矣死者)어니와 하기유병져(乃此何其有病諸)아 [주:슬프고 슬프다 죽은 사은 일 업거니와 엇지 고 그 오히려 병드니여]
41
슈한질(雖寒疾)이 블가이풍(不可以風)이나 진졍[공](此進貢)이 유기일(自有其日)이로다 [주:비록 치위 병이 가히 람을 쏘이지 못 거시나 이 진공(進貢)이 스로 그날이 잇도다]
42
쇼쟝식(少待將息)면 공괴찬진지긔(恐乖攢進之期)어 공츅신명(恭祝神明)야 원부지지녁(願資扶持之力)이라 [주:져기도 셥기 기리면 찬진(撰進) 긔약(期約)을 어긔올가 거 가지로 신명(神明)의 비러 부지(扶持) 힘을 뢰(資賴)기 원도다]
43
당졀과묘지졔(玆當節使過廟之際)야 감우곤궁호텬지셩(敢寓困窮呼天之誠)이라 [주:이에 졀(節使ㅣ) 이묘당(廟堂)을 지날 즈음을 당야 감히 곤궁(困窮)면 하을 브지지 졍셩(精誠)을 븟첫도다]
44
복원(伏願) [주:업듸여 원니] 분언월휘각지위(奮偃月揮却之威)여 필야쇼멸병(必也消滅四百兵)고 [주: 언월도(偃月刀) 휘각(揮却) 위엄(威嚴)을 쳐 반시 몬져 병(四百兵)을 쇼멸(消滅)고]
45
진과셰지고(軫過歲行邁之苦)니 젹의삼쳔니묘망(逖矣三千里渺茫)이라 [주: 지나 (行邁) 괴로오믈 진렴(軫念)니 머다 삼쳔니(三千里) 길이 묘망(渺茫)도다]
46
풍슈일념(風收日斂)니 조현명이미졀(詔玄冥而弭節)고 [주:람을 거두고 일긔(日氣) 평안(平安)니 현명(玄冥)을 죠셔(詔書)야 졀을 느츄고]
47
됴동셕식(朝動夕息)야 호쳥츈지환향(好晴春之還鄕)이라 [주:아의 가고 져녁의 여 쳥츈(靑春)의 고향의 도라가게 지라]
48
유쟝됴언(愈將朝焉)니 비진회동지녜(俾晉會同之禮)고 [주:나오면 쟝 됴회(朝會)니 여금회동(會同) 녜(禮)예 밋게 고]
49
지[]명야(哀哉命也)라 용신질통지호(用伸疾痛之呼)라 [주:슬피 너기 거시 명(命)이라 질통(疾痛) 블지지믈 펴노이다]
50
김명귀 도라와 오 쟝 졔(祭) 베플고 지젼(紙錢)을 오매 죄인(罪人)들이 무리 지어 구경며 졔(祭) 파(破)매 음식을 화 쥬엇노라 며 오 하인(下人)들이 져희 위야 졔(祭) 지다 고 오 이 치 진념(軫念)시니 앏흔 줄을 지 못노라 며 이날 밤 졔(祭祀)의 인명 만히 살니라 야 깃거 다 니 하인(下人)의 우미(愚迷)미 이 튼지라
52
하쳐(下處) 군관(軍官)이 샹(上使) 머므 곳으로 도라가거 즉시 나 십여리 매 지게(地界牌)의금현탑산(錦縣塔山)네 (字) 시니금현(錦縣)은 고을 일홈이오탑산(塔山)은 마을 일홈이라
53
디형(地形)이 면(四面)이 놉고 즁간(中間)은 즈니 인개(人家ㅣ) 낙역(絡繹)여 못 쳔여회(千餘戶ㅣ) 될너라
54
연산역(連山驛)의 니러 됴반(朝飯)니 대촌(大村)이라 심히 즐비(櫛比)더라
55
건싀령(乾柴嶺)이란 고개 너므니 녜로브터 언덕이 층층(層層)이 잇고 도뢰(道路ㅣ) 긔구(崎嶇)지라 여 필이 구례 씌우지 아니코 지어 마조 오니 개개(箇箇) 됴흔 이오 셔로 갈지 아니며 우러 짓거리 일이 업고 다만 사이 뒤흘 니 이샹며 지나 바의 이 희[흰] 빗치 만코 쇼도 흰 빗치 만흐며 이 길고 버드러져 굽은 거 보지 못너라
56
예 지나영평(永平寺)란 졀이 이시니 밧그로 보아도 젹지 아닌 졀이오 졀 뒤 큰 돈(墩臺) 이시며 동(東)으로 큰 봉(峰)이 이시니 그 우 돈(墩臺) 치 므은 거시 이셔 일홈을구혈(嘔血臺)라 니 피 토 (臺)란 말이니녕원셩(寧遠城)문(門)과 셔로 엿지라한(漢)이 임의심양(瀋陽)의 웅거(雄據)야즁국을 엿보더니 이 대명(大明)이 됴뎡(朝廷)이 어즈럽고 변방(邊方)이 소활(疏闊)야 군(軍士ㅣ) 로 고 셩이 어육(魚肉)이 되지라 의 일원명쟝(一員名將)이 이시니 셩명은원슝환(袁崇煥)이라 나히 이십여셰오 지용(智勇)이 겸젼(兼全)야 위명(威名)이 화이(華夷)의 진동(震動)지라 관동(關東) 군(軍士) 거려 녕원셩(寧遠城)을 직희엿더니한(漢)이 슈십만 쳘긔(鐵騎) 거려녕원(寧遠)예우니슝환(崇煥)이 셩문(城門)을 구지 닷고 나와 젹(對敵)지 아니코 화약(火藥)과 텰(鐵)을 무더 셩(內城)으로브터 외셩(外城)지 느고 좌우의 졍병(精兵)을 복(埋伏)엿더니 외셩(外城)은 다 퇴븨(頹圮)야 직희기 어려온지라한(漢)이 임의 외셩(外城)을 치고 쟝 셩(內城)을 에울 소 방포(放砲)의 속의 화약(火藥)이 일시(一時)의 니러나니 벽녁(霹靂) 튼 소 하이 믄허지고 히 지 며 복(埋伏) 군(軍士ㅣ) 별치 니러나니 경[](頃刻) 이의 한(漢)의 슈십만 쳘긔(鐵騎) 다 즛치여 나토 면치 못니한(漢)이 이 (臺)의 안자 븍을 울녀 긔(猛氣) 도도와 치다가 이 모양을 보고 분고 놀나와 드여 피 토니 몸이 비록 죽기 면(免)나 치 도망야 도라간 후 인야 병드러 죽다 고 혹 니한(漢)이 쟝녕원(寧遠)을 칠 마니 셩(城) 밧긔 니러 디형(地形)을 피니 셩이 다 믄허져 직희기 어려온지라 잇튼날을 기려 텰긔(鐵騎)로 즛으려 더니 밋 날이 으매한(漢)이 이 (臺)의 올나 셩을 라보니 홀연이 믄허진 셩이 새로 흔 셩이라 곳도 이즈러진 곳이 업니 비록 날이 오라여도 졸연(猝然)이 칠 계(計巧ㅣ) 업지라한(漢)이 스로 혜오 이 하의 조화(調和)오 귀신(鬼神)의 도으미라 여 두렵고 놀나와 드여 피 토고 마니 라나 다시 의(意思) 두지 못고 인여 죽기예 니다 니 오랑케 풍쇽이 쟝 저허 배 곳 하과 귀신이라 대개원슝환(袁崇煥)이한(漢)이녕원셩(寧遠城)을 엿보 의(意思) 짐작고 밤로
57
무영(無影)의 셩텹(城堞) 형샹(形相)을 그림 그려 셩 면(四面)을 둘너 막으니 먼리셔 라보매 진가(眞假) 분변치 못너라
58
슝환(崇煥)이 이 계교(計巧)로 강 도젹(盜賊)을 방비(防備)엿다 니 두 말 즁의 어늬 말이 올흔 쥴을 모나 예 지나매 그젹일을 샹샹니슝환(崇煥)의 모략(謀略)이며 공녈(功烈)이 비록 셰(百世) 아래라도 오히려 사으로 여금 용동(聳動)지라 그러나 이러 쟝(將帥ㅣ) 오라지 아녀 간신(奸臣)의 모함(謀陷) 배 되여시니 엇지 지 아니리오 큰 슐위 슈(數百)이 젼혀 산영 즘을 싯고 우희 다 누른 긔(旗) 고 길희 니이여황셩(皇城)으로 향여 가거 마두(馬頭)로 여금 무니달(韃子)의 진공(進貢)은 거시라 더라
59
달(韃子) 극븍(極北)의 잇 오랑캐니 즉금황뎨(皇帝)의 근본이 다달(韃子)의 종(種類ㅣ)라 즁원(中原) 복(服色)이 본달(韃子)의 모양을 본바든 고로 다르미 업가 시부더라
60
녕원셩(寧遠城)을 못 밋쳐고가(高哥)의 집의 슉소(宿所)니 셩(城)은 셔(西)으로 두어 솔밧탕은 되며 셩(城) 안조슈(祖大壽)의 누(牌樓) 이시니 번 보암즉다 나 초경(初更) 냥의 참(站)의 니른 고로 보지 못니라
61
녕원(寧遠)은 뉵됴(六朝)묘용시(募容氏) 동(東)의 웅거(雄據)여실 의집녕현(集寧縣)이라 일고금(金)나라의셔흥셩(興城)이라 고치고 대명(大明)션덕(宣德) 년간(年間)의 위(衛) 두니라여양역이 셔(西)으로븟터 큰 길이 바다흐로 발마(撥馬行) 나 다만 언덕의 리온 배 되여 능히 보지 못너니 오날 이 후로 왕왕 길의 (海色)이 뵈이니 큰 길 븍편(北便)으로셔 십 니(里) 안밧기 지나지 못너라
63
밤의 자리 고 쟝 눕고져 더니 덥기 심고 눗는 나거 급히 자리 거드니 임의 자리 밋 랏던 담(毯)과 돗기 다 탓지라 급히 믈을 리고 나모 널을 랏더니 오히려 더워 잠을 일우지 못니라
65
발(發行)야 십여 리(十餘 里) 니 눈이 니지라 쳬마소(替馬所)의 니러 칩기 심니 젼방(廛房) 앏 챠 머므고분탕(粉湯) 그 사 먹으니 져육(豬肉) 린 국의 국슈 만 거분탕(粉湯)이라 지라 국슈 옥슈슈 로로 그니 일홈을 그뢰라 고 파와 져육(豬肉) 써흔 거 너허 말아시니 져육(豬肉)믈 아니면 쟝 먹음즉 더라
66
하뇨(沙河潦)의 니러 됴반(朝飯)니하뇨(沙河潦) 즁우[후]소(中後所)라 니고 흙으로 싸흔 셩(城)이 길의 이시니 쥬회(周回) 일니(一里)의 지나지 못너라
67
아삭인 셩텹(城堞)이 업고 담 흔 모양 트니 이 몽고(蒙古)져의 디방(地方)이며 머디 아닌지라 왕왕 니러 노략질 거 셩이 민망이 너겨 가음연 쟤(者ㅣ) 이곳 셩을 싸하 스로 방비(防備)다 더라
68
망졈(望海店)의 니니 바다흘 라보단 말이라 (海色)이 이곳의 닐러 더옥 갓가오니 겨유 슈리(數里)될너라
69
동관역(東關驛)의 다라 셔문(西門)으로 드러가니 문 우동관역(東關驛)셰 (字) 쓰고 문뉘(門樓ㅣ) 업며 셩지위 은 거 보지 못니 녯빈현(海濱縣)이라 여진 셩(城)과 문허진 담이 곳곳이 소조(蕭條)니 대개 이즈음은 니(生理) 심히 간신(艱辛)야 셩이 부지(扶持) 어렵기의 슈년(數年) 이 더옥 잔(殘敗)엿다 더라
70
셰가의 집의 슉소(宿所)니 격쟝(隔墻)이역승(驛丞)마가(馬哥)의집이라 쇼년이 캉(炕)의 드러와 셔거 셩을 므니 이 곳역승(驛丞)의 아들이라 졔 무을묘년(乙卯年)의 신(使臣) 왓던셔 대인(徐 大人)이 무냐 거 어이 아냐 무니 오 그 셔 대인(徐 大人)내 집의 하쳐(下處)야 날을 블너 글을 닑으라 고 샹을 만히 쥬어 못 랑 의(意思ㅣ) 만흔지라 내 닛지 못여 노라 더라
71
을 븍편(北便)의 졀이 이시니 일홈은비라금(金)나라희셔 지은 배오대명(大明)만력(萬曆) 간의 즁슈(重修)여시며 법당(法堂)을 텬시[신]뎐(四大天神殿)이라 고 비(碑) 이시니 비(碑) 지은 사의 셩명은손방이오 비(碑)의 긔록여 오이 본 삼한(三韓) 지방(地方)이라여시니 삼한(三韓)은 곳긔됴션(箕子朝鮮)말년(末年)의 나라히 서희 호여 마한(馬韓)과 지[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이라 칭(稱)니 이 곳 삼한(三韓)이라 예셔 압녹강(鴨綠江)이 일쳔오 니(里) 되니 그 됴션(朝鮮)이 복원(北原)이 쟝믈 알너라
73
쇄마구인(刷馬驅人) 김광 믈고(物故)다
75
쟝 날오(五臺子) 곳 일츌(日出)을 보 곳이라 거 슈뤼 밧비 모라 니니 도다 임의 놉핫지라 다만 가 업 바다 빗 묘망(渺茫)야 기 슈은(水銀) 빗 트야 하의 득여시며 바다흐로 므 거믄 거시 둘니여시니 슈목(樹木)도 고 뫼 둘니인 모양도 트니 이 즈음이등·쥬(登·萊州)디경(地境)의 갓가올 알 길이 없더라
76
등·쥬(登·萊州)한(漢)이심양(瀋陽)웅거(雄據) 후의 우리나라의셔대명(大明)의 슈로(水路) 됴텬(調遷) 의 이리로 지나 곳이라 십여리 지나 즁우[후]소(中後所)의 니니 이 곳무령현(武寧縣)디방(地方)이라 길이 셩(城) 밧그로 말암으니 셩이 극히 웅장지라 대셕(臺石)을 다 슉셕(熟石)으로 길이나 노코 그 우 벽으로 은 거시 삼쟝(三丈)이나 되고 셩 남문(南門)을가훈문(歌薰門)이라 삭여시며 셩 안희통[총]판[관](摠管)아문(衙門)이 잇다 더라
77
셩 안흔 보지 못나 셩 밧근 인가(人家)와 져신민둔(新民屯)과 샹(相對)고 담과 감퇴 다 이곳의셔 난다 더라
78
젼방(廛房) 안집의셔 됴반(朝飯)고 젼방(廛房) 웃집이 곳관왕(關王廟ㅣ)라 밧긔 두 겹 문으로 막아시며 밧문을 (對)야 길을 건너 큰 각(彩閣)이 이시니 외집이로 셤돌이 길의 지나며 목(材木)과 단쳥(丹靑)이 웅쟝(雄壯)고 빗나니 이 희(戱子) 노름 집이라 희(戱子)라 거 우리나라 솔 노름의 탈 광(廣大) 노름과 트니대명(大明) 됴(朝士)의 의관(衣冠)에 괴이(怪異) 복(服色)을 초와 각(各色) 희롱(戱弄)을 니 이런고로 되놈이 우리나라 (使行)의 의복을 보며 우어 오 이 희(戱子) 일양(一樣)이라 니 졔 비록 근본한(漢)인(人)의 손이라 풍쇽(風俗)의 무드러 도로혀 우어 보니 엇지 블샹치 아니리오 들보의 사의 셩명을 버려 고 셩명 아 은(銀子) 츄렴(出斂) 슈(數) 긔록여시니 젼혀 강남(江南) 샹괴(商賈ㅣ)라 길 큰묘당(廟堂)앏 양 희(戱子) 노름 집을 지어시니 크게 졔(祭) 지면 반시 희(戱子) 노름을 베플고묘당(廟堂)밧긔 큰 비 셰워시니병신년(丙申年)의 즁슈(重修) 비(碑)오 시쥬(施主) 사의 셩명을 삭여시니 그 즁됴션(朝鮮)슈당(首堂)박도관(朴道貫)이라 여시니 이 쟈 곳 이번 행즁(行中)역관(譯官)박의 아비오박명화의 아비라 슈당(首堂)은 곳 슈역(首譯)을 니 말이니 오냥 은(銀)을 시쥬(施主)다 긔록(記錄)엿더라
79
좌우 월낭(月廊)의 젹토마(赤ꟙ馬)을 세워시 다 사이 곳비 쥐여시니 나흔 얼골이 븕고 영특(英特)며 하나흔 희고 고으니 이 우리나라관왕묘(關王廟)의셔 보던 바와 다며묘당(廟堂)이 졔되(製圖ㅣ) 장녀(壯麗)고 앏 졈(占) 슈통(數筒)이 이시니 녜븟터 녕험(靈驗)이 잇다 더라
80
소샹(塑像)이 별노 웅장니 세 길이 을 거시오 빗치 대초빗치라 아국(我國) 남(南)관왕묘(關王廟)소샹(塑像)과 고 앏 젹은 소샹을 앗첫더라
81
탁 앏 여라믄 소샹(塑像)을 셰워시니 다 장슈의 모양이라 거동이 개개 웅쟝고 어득 집 안 셔리 튼 창검(槍劍)을 좌우의 베퍼시니 사으로 여금 송연(竦然)여 스로 슉경(肅敬)더라
82
관왕(關王)은 텬하(天下) 영웅이라 범 튼 위엄(威嚴)과 금셕(金石) 튼 츙셩(忠誠)으로 을 일우지 못고 댱부(丈夫)의 쳔금(千金) 튼 몸을 헛도이 리시니 이러므로 분울(憤鬱) 졍신과 영녕(英靈) 혼(魂魄)이 텬지(天地) 간(間)의 치여 쳔여년이 지나도록 플니지 아니니 로 신병(神兵)을 거리고 구 속의 얼골이 나타나 텬하의 올흔 홈을 돕고 도젹으로 여금 긔운을 졍치 못지라 일노즁국(中國)사이 공경야 셤기미 부쳐의 지나고임진왜란(壬辰倭亂)을 당야 아국(我國)의 니러 텬쟝(天將)이 은(銀)을 모도와동관왕묘(東關王廟) 셰오고 그 후신종황뎨(神宗皇帝)누쳔(累千) 냥 은(銀)을 리오샤남관왕묘(南關王廟) 셰우게 시니 집을 일우고 소샹(塑像)을 봉안(奉安)매 모든 쟝(將帥ㅣ) 졍셩을 조츨이 야 졔 지 니 졔 파 후 우레고 번개면 이 관왕(關王)의 신령(神靈)이 강님(降臨)시미니 필연(必然) 도으미 이셔 병난(兵亂) 평졍(平定)다 니 이 하이 고 셩월(星月)이 됴요(照耀)지라 사이 다 밋지 아니더니 졔 거의 파매 홀연이 바람이 니어나며 셔븍으로셔 거믄 구이 모라와 하을 덥고 텬동(天動)과 번개며 큰 비 리지라 사이 다 놀나고 이샹이 너기더니 오라지 아녀관(關白)평슈길(平秀吉)이 죽고 젹병(賊兵)이 믈너가니 지금지 관왕(關王)의 도으믈 쾌(快)히 아지라 긔이(奇異) 젹(史蹟)이오 각지 못 일이러라
83
묘당(廟堂)뒤 큰 집이 잇고 현판(懸板)을문창(文昌廟ㅣ)라 여시니 텬하(天下)의 문장(文章)을 음아 별 일홈이니 그 별 신졍[령](神靈)을 위 거시라 머리의 영낙당건(瓔珞唐巾)을 써시며 몸의 곤룡포(袞龍袍) 닙어시니 얼골이 극히 풍셩(豊盛)고 화려(華麗)며 아다온 슈염이 자이 지나니 유복(有福) 왕쟈(王者)의 긔상(氣像)이라 동신(才童神)이라 칭더라
84
사하졈(沙河店)의 니니 문허진 셩지위 잇고 셩 밧긔 녀염(閭閻)이 슈십 개 되며 십여리 지나 돌리 잇고 두 편의 늙은 버들이 이시니 디명(地名)은셥가분(葉家墳)이라 좌우의 인개(人家ㅣ) 만흐나 다 흙집이오 기와로 니은 집이 업더라
85
마을의셔 슈보 지나 두어 분(墳墓ㅣ) 이시니 일노 인야 디명(地名)을셥가분(葉家墳)이라 가 시브더라
86
무덤 앏흐로 삼 간(三 間) 돌문을 셰우고 문 밧긔 망쥬(望柱) 가로 세워시니 뇽셰(龍勢)와 혈법(穴法)이 우리나라 분묘(墳墓)와 대강 고 도곡(都局)이 활대(濶大)야 됴타 니너라
87
슈리(數里) 야구어하(口魚河)의 다니 토셩(土城)이 이셔 즁우[후]소(中後所)의 보던 바와 가지오 다 문허져 동셔(東西) 두 문만 앗고 십여 인개(人家ㅣ) 셩 밧긔 잇더라
88
양슈하(亮水河)의 니러셕가(石哥)의 집의 슉소(宿所)니 이날 뉵십 니 니라
90
효두(曉頭)의 나 십 니(十 里) 가니 비로소 돗더라
91
소동[송]녕(小松嶺)의 니니 이 즈음 셔동븍을 바다히 뵈매 믈빗치 검고 프러 하 다하 가이 업니 이발(渤海)라 바다히오 셔븍으로 큰 산이 막혀시니 산 허리의댱셩(長城)이 구뷔구뷔 둘니여시니 이진시황(秦始皇)싸흔 바님조(臨洮)란 희셔 시작야뇨동(遼東)의 니러 너븨와 기 만여리(萬餘里)라즁션의 다니 길 올흔편의 큰 셩이 이셔즁후소(中後所)와 트여 길이 셩 밧그로 지나며 길관왕(關王廟ㅣ)이시니 현판(懸板)의 써 오 충의신무녕후(忠義神武寧候) 관셩대뎨(關聖大帝)라 고 쳥(淸) 글로 써시니 이 연노(沿路)의 쳐음 보 배라 이후관왕묘(關王廟)현판(懸板)이 이와 만히 고 츙셩묘(虫聖廟)라 묘당(廟堂)이 이시니 버러지 셩인(聖人)의 묘당이란 말이라 누에귀신을 위 곳인가 시부나 셰히 믈을너라
92
길의 왕왕 뤼(牌樓ㅣ) 이시니 다 녈녀(烈女)와 효(孝子) 졍표(旌表) 곳이오 상(喪行)을 만나니 앏 풍뉴(風流) 모양은 이젼 보던 배오 풍뉴 뒤 두 긔(旗) 세워시니 흰 긔(旗)와 프른 긔(旗)오 그 뒤 지폐(紙幣) 그려시며 상예(喪輿ㅣ) 그 뒤 셔시니 졔되(製圖ㅣ) 네모히 번듯며 면(四面) 거믄 비단의 금을 려 그러 둘너시며 상여(喪輿) 앏 사이 머리의 흰 두건(頭巾)을 시니 길희 자희 고 몸의 좁은 흰 옷 닙어시니 녑픈 두로막이라 두 사이 좌우로 븟드러 가매 머리 거의 다하 아국(我國) 신(新來) 블니 신은(新恩)의 모양 트니 샹인(喪人)인가 시부며 계집 서너히 슐위의 안져 흰 옷시며 머리의 흰 나올(羅兀) 튼 거 드리워시나 헷치고 얼골을 내여시니 비록 거샹(居喪)을 닙어시나 분을 희게 고 입의 연지 어시니 평인(平人)과 다르미 업더라
93
한가(韓哥)의 집의 됴반(朝飯)고 슈십 니(數十 里) 지나팔피보의 니러 길 남편(南便) 언덕 우희강녀(姜女廟ㅣ)란묘당(廟堂)이 잇고 오 리(五 里) 지나한(漢)의 장(將臺) 이시니 다 년년(年年)의 (使行)이 구경 배로 이번은 샹 낙후(落後)고부(副使)와 내 병 드러 칠팔일(七八日)이로 쾌(快差)치 못고 즁(行中) 두어역관(譯官)이 됴셕(朝夕)으로 병(待病)지라 다른 이 업셔 다 그져 지나니라 예 지나매 댱셩일면(長城一面)이 앏 잇고 큰 바다히 둘니여 묘연(渺然)히 무궁(無窮)니 진즛 댱관(壯觀)이러라
94
산(山海) 십여리 젼브터 기와집이 만흐며 이지음은 집 졔되(製圖ㅣ) 밧긔 다 담을 시며 벽돌노 아로 삭여 하시며 담 우 기와 니어시 다 회(灰)예 프른 믈을 들여 나시니 조금도 틈이 업고 문을 다 작게 그러 표묘(縹渺)히 세워시며 길 분(墳墓ㅣ) 이시니 앏 븕은 긧대 셰우고 담을 하 무덤을 두고 문을 내여시며 뫼[](廟ㅣ) 졔도(製圖) 둥글어 동 업허 노흔 모양이오 혹 놉희 길에 지나 우히 니 마다 가토(加土)기의 그러타 며 혹 무덤 우 큰 남기 나시니 소견(所見)이 블(不似)나봉셩(鳳城)이후로됴양문(朝陽門)밧지 이런 거시 만흐니 이 즁국(中國)인가 시브더라
95
당샹역관(堂上譯官)박과통(通詞)윤갑죵(尹甲宗)과쳥역관(淸學譯官)고임을 몬져 보여산관(山海關)의 니러부도통(副都統)의게 (使行) 니므로 통여 진시(辰時) 문(門)을 들게 라 고 문 밧긔 니니 인(行人)이 관(關)의 가 쟤(者ㅣ) 예(例事) 다 샹고(上告)여 긔찰(譏察)을 엄히 고로 인(行人)이 임의로 츌입지 못여 모히여 섯 쟤(者ㅣ) 만터라 관(關) 밧긔 갑군(甲軍) 슈십인이 둘너 셔고 안 관원(官員) 모양 튼 사이 갑군(甲軍)을 거리고 혜여 드리 모양 더라
96
쳐음 드러가 셩은댱셩(長城)줄기니 외셩(外城)은 셩을 둘너 문을 내고 문뉘(門樓ㅣ) 업며 셩문(內城門)의산관(山海關)이라 써시니 세샹이 니진(秦)젹니(李斯)의 글시라 나 이졔 그 글시 보매 곳 (楷字)라진(秦)젹의 엇지 (楷字ㅣ) 이시리오 혹 니대명(大明)진(進士)소현(蘇玄)의 글시라 분명치 아니터라 이 문을 지나 즁셩(重城)이 잇고즁셩(重城) 안 두 겹 문을 여시니 현판(懸板)의텬하뎨일문(天下第一門)이라 여시니 다 글 시 문누(門樓) 층의 가득여 필법(筆法)이 비등(比等)여 봉(鳳)이 며 난최(蘭草ㅣ) 넙흐 니 이 진즛 명필(名筆)이라 너라
97
이 문을 지나즁셩(重城)이 잇고즁셩(重城)을 지나 두 겹 문이 이시니 현판의샹단[부]샹(祥靄扶桑)네 (字) 시니 샹셔(祥瑞)의 안개 부상(扶桑)의 두 줄기 인단 말이니건륭황뎨(乾隆皇帝)어필(御筆)이라 며 문 졔되(製圖ㅣ) 십각(十字閣) 더라
98
예를 지나 문을 드러가니 믈읫 셩이 네 겹이오 문이 여덟 겹이라산관(山海關)문의 드러올 의 남으로 오뉵 즈음의 셩이 십여 간(間) 동안이 문허진 곳이 이시니 이한(漢)이오삼계(吳三桂)로 여금 헐니고 드러온 곳이라
99
대명(大明)슝졍(崇禎) 갑신(甲申)의 뉴젹(流賊)니셩(李自成)이 텬하(天下)의 흉 도젹이라 여만 군 거려븍경(北京)을 함몰(陷沒)니슝졍황뎨(崇禎皇帝)만셰산(萬歲山)의 올나 됴뎡(朝廷)의 사 업믈 탄식(歎息)시고 셩이 도탄(塗炭)의 지믈 슬허 샤 샤직(社稷)을 좃챠 도라가시니 이 오삼계(吳三桂)산관(山海關)을 직흰 쟝슈(將帥)로븍경(北京)이 함몰 쇼식을 듯고 군 거려 븍으로 향하여 원슈 갑흐려 나한이 야흐로산관(山海關)을 엿보와 기리믈 듯고져 계(計巧ㅣ) 잇지라삼계(三桂) 번 이곳을 나면한(漢)의 형셰(形勢) 뉘 막으며니셩(李自成)이 임의황셩(皇城)을 웅거(雄據)야 병녁(兵力)이 심히 강니 산관(山海關)군로 당키 어려온지라 드여 머리 고한의게 항복(降伏)야 가지로셩(自成)을 버혀 원슈 갑흐면 텬하(天下) 반드시 다른 로 도라가지 아니리라 니한(漢)이 크게 깃거 허락나 오히려 므 계(計巧ㅣ) 이실가 여 군 거려 관문(關門) 밧긔 니러 관문의 들기 의심거 이에삼계(三桂)군 슈십만을 내여 셩을 헐고 인도여 드리니한의 슈십만 졍병(精兵)이 일시(一時)의 드러와 셕하(石河) 믈 우셔셩(自成)을 만나 번 호매셩(自成)을 사잡고 격셔(檄書) 텬하(天下) 뎐(傳)야 슈년 이즁국(中國)을 통일고 텬하 대부(士大夫)로 여금 머리 고 호복(胡服)을 변착(變著)야 지금 슈년을 누리니 이곳의 니러 그 샹샹면삼계(三桂)의 계(計巧ㅣ) 마지 못야 일이어니와 다만 맛당이 눈물을 리고 군 셰야 나아가셩(自成)을 젹(對敵)며 믈너가한(漢)을 믈니쳐 긔운(氣運)을 가다고 츙셩을 다다가 힘이 진(盡)고 운(運數ㅣ) 면 하히 신졀(臣節)을 오로지 야 디하(地下)의 녯 님군을 좃리니 엇지 셔어(鉏鋙) 계교로 몸을 헐워 욕을 만셰(萬世)의 깃치리오한이 텬하 어든 후의 셩을 다시 지 아니야 근본을 닛지 아니노라 고심양(瀋陽)의 거동(擧動)면 반시 이리로 어로(御路) 삼으니 샹(常事) 다만 텰망(鐵網)으로 븬 막을 이러라
100
이러모로 한이 오 내 대명(大明)을 아슬 이 아니라 쳥야 드려쥬 거 어이 양(辭讓)리오 더라 니 엇지 텬명(天命)이 아니리오 이젼의 (使行)이 관(關)의 드러 갈 의 갑군(甲軍)이 좌우의 느러셔 일을 다 혜여 나토 츼지 면 드지 못게 며 문 관원(官員)이 낫낫치 졈고(點考)야 조금도 착난(錯亂)치 못더라 더니 이번은부(副使ㅣ)몬져 드러가고셔장(書狀)이 다 나죵 니러 함 드러가지 아니니 법이 이젼의셔 못 소활(疏闊)타 며 다만 관(關)의 니러 아문(衙門)을 지날 의 슈 탄 쟈 문 편 지우며 쟈 다 리고 신(使臣)이 가마 브리온 시 야 졉(待接) 의(意思) 뵐 이러라
101
셩(城內)의 시졍(市井)이 버려야 가히심양(瀋陽)의 비기여 인믈이 셕(白晳)고 동탕(動蕩) 쟤(者ㅣ) 만흐니 관외(關外ㅣ)의 비길 배 아니오관왕묘(關王廟)와 졍문(旌門) 뤼(牌樓ㅣ) 좌우의 찬란(燦爛)야 눈의 며 옥황묘(玉皇廟)이시니옥황상뎨(玉皇上帝) 봉안(奉安)묘당(廟堂)이러라
102
녀염문(閭閻門) 우희 금(金字)로진(進士)와문원(文苑)과 문괴(文魁)라 여 부쳐시니즁국(中國)의진(進士) 아국(我國)의 의 급뎨(及第)와 가지오문원(文苑)과 문괴(文魁) 초시(初試) 사을 닐으미라 계집이 문 안희셔 몸을 슘겨 엿보니 긔묘(奇妙) 얼골이 만코 의복이 다 샤려(奢麗)니 관외(關外)의 보지 못 배러라망졍(望海亭)은 이곳 유명 곳이라 남으로 십니(十里) 된다 더라
103
홍화졈(紅花店)의 니러왕가(王哥)집의 슉소(宿所)다 밤 든 후의건량관(乾糧官)이 와 고(告)븍경(北京)샹괴(商賈ㅣ) 이젼븟터역관(譯官)즁 단골을 마자 이 참(站)으로 마다 오더니 이번 신가·장가(申·張哥)두 샹괴(商賈ㅣ) 와 인(人蔘)을 매(賣買)코져 지라븍경(北京)소문을 무니쟝개(張哥ㅣ)닐오태샹황(太上皇)이십이월 초뉵일샹(喪事ㅣ) 나시나 대국법(大國法)이 일(百日) 안 감초와 발샹(發喪) 일 업시 말며신가 오 아직 모지라 나 분명이 드니 태상황(太上皇)이 납월(臘月) 초의 (生冷)을 과히 나오고 병환이 졸즁(猝重)야 날마다홍(紅蔘)너 돈식 라 다 더라 니 대져태상황(太上皇)이 이젼 치 강건(强健)치 못가 시부나 혹 병환이 즁(重)타 며 혹 일이 임의 낫다 니 극히 괴이(怪異)더라
104
역관(譯官)김종길이 병이 졈졈 즁(重)야 젼진(前進)키 어려온지라 샹(私商) 두 놈의게 분부야 져기 나을 동안 가지로 낙후(落後)야 구완(救援)라 다
106
효두(曉頭)의 발(發行) 삼십니 니 비로소 돗더라
107
봉황졈(鳳凰店)의 니러 마다 (使行)이 즁화(中火)던 곳이라 이번은 월참(越站)야 삼[심]하역(深河驛)의 니러니가(李哥)의 집의 즁화(中火)니 여긔 문허진 셩이 이셔 쥬회(周回) 슈리(數里)될너라
108
사이 어린 아 리고 캉(炕) 문 밧긔 니러 구경니 의복이 장 션명(鮮明)고 머리의 거시 직비단(直緋緞)의 거믄 션을 두루고 우 크게 단초 시며 알 구실을 라시니 모양은 우목 솟두에 고 니마 반(半)을 덥허시니 연노(沿路)의 이거 쟤(者ㅣ) 간혹 이시니 졔 집의셔 쓰 거신가 시브더라
109
손의 각지 시니 노 둥글게 그라 엄지 손가락의 지라 녑 션 사이 관원(官員)이라 일거 벼을 무니 각지 뵈며 오우지(郵督)라 니 이곳역승(驛丞)이라 며 아희 뉘뇨 무니 아이라 더라
110
지나 참(站)마다 마을 사이 모혀 구경며 아들은 큰 마을은 오십식 나 무어 토와 구경며 계집은 다 문 안셔 느러셔 보니 분을 고 머리의 다 자시니 식 잇 쟤(者ㅣ) 만하 아국(我國)의 싀골 계집 모양 튼 거시 젹으니 대개 븍방(北方) 풍쇽은 남(男子) 농(農事)와 장의 힘을 다고 믈을 기며 블을 히 일도 스로 야 러진 옷과 므든 치 사의 모양 지 아니고 녀(女子) 다 캉(炕) 우 편히 안자 갓 얼골만 비우고 일삼 거시 오직 지아븨 바지와 보션이오 이 밧근 다 의 손을 비니 을 위야 바느질 쟤(者ㅣ) 남의 일노 애(生涯) 삼 쟤(者ㅣ)라 길 혹 걸인(乞人) 튼 모양읫 계집이 젼방(廛房)의 알나 마을 문 알나 안자 헌 옷로 깁 쟤(者ㅣ) 인(行人)의게 갑 밧고 가 시브나 손 놀니 모양이 서어(鉏鋙)고 바느질 모양이 굼 계집의 복(服色) 지 아니니 그 녀공(女工)이 브즈런치 못믈 알너라
111
녜로브터 븍방(北方)의 가인(佳人)이 만타 닐너시니 그 허언(虛言)이 아닌가 시브더라
112
관(關內)의 녀(女子ㅣ) 슐위 고 지나 쟤(者ㅣ) 만흐니 혹 앏흘 헤치고 얼골을 내여 아릿다이 이 아국(我國) 사을 구경다가 눈이 마조치이면 혹 움쳐 안니 이 외(內外) 의(意思ㅣ) 이시나 슐위 모 놈이 슐위 앏 바[반]드시 안져 더럽고 흉악(凶惡)[] 몰골노 슐위 안즌 계집의 과 등이 셔로 다흘 니 필연 제 지아비 아니라 이 므 외(內外)라 리오 가히 우읍고 혹 아국(我國) 사을 눈이 러지도록 보와 현연(顯然)히 흠션(欽羨) 의(意思ㅣ) 이신 즉 슐위 와 가 쟤(者ㅣ) 도라보와 무어시라 즁어리면 믄득 문을 드리워 피니 졀도(絶倒)더라
113
이십니 여뉴관(楡關)의 니니 인개(人家ㅣ) 극히 번셩여 그 슈(數) 혜지 못며 마을에 야흐로 집을 짓 사이 이시니 임의 기동을 심으고 들보 언져시되 역(役事) 지 아니니 날이 치온 고로 즁지(中止)가 시브더라
114
이곳의 양한지(養漢的)라 거시 이시니 아국(我國)의 간나와 튼 거시라 문을 의지야 구경거 마두(馬頭) 놈이 무러 오 너희 머[버]으리가 이 이 엇더냐 니 계집이 우어 왈 니(利) 업나 이시나 네 알 배 아니라 네 아미 버으리나 므라 니 가히 우읍더라
115
븍으로 산이 먼리 뵈며 특별이 높흔 묏부리 이시니문필봉(文筆峰)이라 니고 그 아창녀현(昌黎縣)이니 곳한퇴지(韓退之)사던 곳이라 더라
116
무령현(武寧縣)의 니니뉴관(楡關)셔 이십 니라 이 고을은 녜븟터 대부(士大夫)의 사 곳이라 벼 집과 글 닑 션 만흐니 즙믈(什物)과 셔젹(書籍)이 치(奢侈)기로 일홈 잇지라뉴관(楡關)을 지난 후 년여 뫼 놉고 골이 깁허 협즁(峽中) 모양이 잇더니 이곳의 니매 다시 들이 열니고 뫼히 자 흰 모와 먼 슈목(樹木) 이의 촌낙(村落)이 극히 소쇠(瀟灑)고문필봉(文筆峰)이 이러 셔남(西南)으로 반공의 혀 나 쟝 픠고져 년(蓮) 봉오리 트니 산쳔(山川)이 이러틋 명미(明媚) 고로 인물이 문명(文明)기 여러 쇠치 아니니 디리(地理) 속이지 못너라
117
동문(東門)으로 드러 슈보(數百步) 야 좌우의 져 극히 번셩고 단니 인믈이 조츨니 만흐되 그 즁 의복이 션명고 마으락이의 징(鏳子) 븟친 쟈 벼이 잇 사이오 션 벼이 업셔도 징(鏳子) 븟치니 션의 징(鏳子) 금(金)으로 근 거시러라 큰 집이 슈리 년야 문 우 현판(懸板)이 무슈히 니여 금(金字)로 삭여시니 다 쥬인의 젹(史蹟)과 실(行實)과 벼 니력(履歷)을 찬양 말이오 길을 막아 세 뤼(牌樓ㅣ) 이시니 나흔병부샹셔(兵部尙書)젹봉이오 나흔병부급즁(兵部給事中)왕담이오 나흔형부급즁(刑部給事中)왕인샹이오 길 올흔편의 별노 큰 문이 잇고 문 우 서너 현판을 층층이 부쳐시니 이 곳셔 진(徐 進士)의 집이라 (代代) 글을 슝샹(崇尙)고 가음여러 셔화(書畵)와 즐[즙]믈(什物)이 긔이 것이 만흐니 년년(年年) (使行)이 그 집의 드러가 구경고 시쥬(詩酒)로 창화(唱和)고 (使行) 도라온 후도 혹 셔신(書信)을 치 아닌다 더라
118
셔 진(徐 進士)의 아이 남방(南方)지현(知縣)벼을 야 과만(瓜滿)고 도라와 잇다 나 근(近來) 가산(家産)이 녜와 지 아니야 문직[적](文籍)이 넉넉지 못야 아국(我國) 사을 굿여 반기지 아니코 (使行)이 변변이 일이 업다 더라
119
십각(十字閣)이 이시니 면(四面)의 현판(懸板)을 라시며 놉희 십 댱(丈)의 지날지라 공즁의 표묘(縹渺)더라
120
셔문 안 니니 쳬마(替馬) 곳이라 이곳의변시라 하는 음식 먹음즉다 거 사오라 야 먹으니 아국(我國)의 만두 모양 치 글고 싄 마시 이시며 더운 물의 웟더라
121
셔문(西門)을 나 오보의뇽왕(龍王廟ㅣ)길의 잇고 마즌 편의태산군[궁](泰山行宮)이라 집이 이시니 문을 굿이 닷지라심양(瀋陽)거동(擧動) 의 머므 궁(行宮)인가 시부며 길 길 남 문(牌門)이 잇고 문을 (對)야 무덤이 이시니대명(大明)젹의 벼 던 사의 (廟ㅣ)라 비(碑)의 긔록여시며 슈호(守護) 모양이 뵈니 손이 갓가이 잇가 시부더라
122
산관(山海關)으로 븟터 이곳과 밋뉴관(楡關)이 극히 번셩고 그나마 인개(人家ㅣ) 영셩(零星)고 관(關) 밧긔셔 나은 거시 업고 돈(墩臺) 팔 니(八 里) 이의 믄득 곳식 이시니 평디(平地)의 세워 놉희 겨유 두어 길이 되고 돈(墩臺) 녑 반시 흙을 하 아 둥근 단(壇) 모양이오 단(壇) 녑 동의 업흔 모양 치 하시 우히 게 야 이 치 다식 버려 두어시니 봉화(烽火) 들녀 번 일희을 픠워 셔로 연긔 보와 응(應)며 그 녑희 단쳥(丹靑) 븬 집 간을 셰우고 그 안 혹 탁 튼 거 노하시니 졔(祭) 지 곳인가 시부더라
123
돈(墩臺) 뒤 십여 간 긴 집이 이시니 아국(我國)의 발소(發所) 튼 곳이오 돈(墩臺)마다 돌의 아모 디방(地方) 영문(營門)이라 삭여시니 관 안흐로븟터 통 뒤지 모양이니 이대명(大明)쟝슈(將帥)원슝환(袁崇煥)의 업(事業)이라 더라
124
양하(洋河)의 니러 셔흐로 라보매 여러 산이 둘니이고 우희 큰 봉(峰)이 이셔 가운 터져 셔로 (對)야 셔시니 일홈은태봉(太子峰)이라 그 아 큰 졀이 잇다 더라
125
진 후 십여 리 여 이경(二更) 냥의노봉구(蘆峰口)의 니러조가(曹哥)의 집의 슉소(宿所)니 인개(人家ㅣ) 다엿 집이라 일이 용졉(容接)기 어렵기로 하인은 반나마 한둔더라
126
이날 벽의 셔(書者)광복이부방(副房)셔(書者)로 더브러옥하관(玉河關)의 캉(炕)을 슈졍기로 몬져 나 보다
128
계명(鷄鳴) 초에 발(發行)야음마하(飮馬河)의 니니 먹이 믈이란 말이라 녯 글의만니댱셩(萬里長城)을 일매 반시음마하(飮馬河) 만히 닐너시니 이 믈을 친 말인가 시부더라
129
뉴[누]원(漏澤園)의 니니 길 큰 집이 잇고 직희 쟤(者ㅣ) 업며 가온 현판(懸板)의 써 오 아라 엇기 요구다 고 왼편 협실(夾室)의 오 환슐(幻術)을 드린다 고 올흔 편 협실(夾室)은 오 희미 거 친다 니 므어 니른 말인 쥴 모나 이 희(戱子) 노름 곳인가 시브며 그 겻 묘당(廟堂)이 이시니 현판의 써 오 하이 쥬엇다 고 묘당(廟堂)앏 큰 밧치 이시며 밧 (牌) 셰우고 오 소(小學)밧치라 더라
130
이곳으로브터 길 두 편의 언덕이 놉고 가온 우목야 큰 길이 나시며 모래와 돌이 만흐니 슐위 요동(搖動)야 심히 편치 못지라 십여 리 야영평부(永平府)의 니러 셩 밧그로 말암아 지나니 셩이 극히 웅장며 여 보 동안의 믄득 곡셩(曲城)을 베프고 곡셩(曲城)마다 믄득 셩낭(城廊)이 이시며 혹 노픈 누(樓) 셰워시며 남편(南便)의 누각(樓閣)의 졔되(製圖ㅣ) 극히 빗나고 공교(工巧)니 믈윗 세 층 집이오 쟝 웃층은 열두 모흘 고 모마다 아로삭인 문을 내여시니 금과 쥬홍칠을 여시며 우러러 보매 표묘영농(縹渺玲瓏)야 아국(我國)의 보지 못한 졔되(製圖ㅣ)러라 영평부(永平府) 진(秦)적 샹군(上郡)이오한(漢)젹우부[븍]평(右北平)이니대명(大明)홍무(洪武) 년간(年間)의 곳쳐영평부(永平府)라 니라
131
쥬가의 집의셔 됴반(朝飯)니 셩외(城外)의 인개(人家ㅣ) 번셩더라
132
십여리 니니광(李廣)의 샤호셕(射虎石) 이시니 범을 던 돌이란 말이라한(漢)젹 쟝슈니광(李廣)이 일즉븍평태슈(北平太守)되여 오랑캐 방비(防備) 용녁(勇力)이 졀인(絶人)고 활 기 잘니 오랑캐 두려 일홈야 쟝(將帥ㅣ)라 지라광(廣)이 일즉 산영을 낫다가 날이 져믈매 슐을 (醉)고 도라오더니 믄득 슈플 가온대 흰 범이 언덕을 지고 사을 엿보니광(廣)이 크게 노야 활을 달의여 힘을 다여 니 범이 살을 마매 조금도 움기지 아니거광(廣)이 괴이히 너겨 나아가 보니 범이 아니오 큰 돌이 언덕 우 섯지라 살이 그 돌의 박혀 깃 븐친 거시 다 드러 갓거광(廣)이 크게 놀나 다시 살을 혀 두어 번 죵시(終始) 박이지 아니니 대져 첫 번은 졍신이 골돌야 돌의 살이 박히미오 두 번 돌인 쥴 안 연괴(緣故ㅣ)라 졍신 니 바의 쇠와 돌을 단 말이 엇지 헛되리오 쳔여 년이 지나 오히려 닐너 젼나 풍마우셰(風磨雨洗)여 돌 무덕이만 나맛다 며 븍으로 이십니(二十里)만 지나면이(伯夷)슉졔(叔齊)의 당(祠堂)이 잇다 더라
133
이 슉참(宿站)이로 월참(越站)야 십여 리 지나니 날이 임의 황혼(黃昏)이라 흰 눈이 들을 덥헛고 은 이 낫 트니 오뉵 니 야하역(沙河驛)의 니니 셩은 믄허져 업 문은 이써 돈(墩臺) 치 셧지라 문을 들 져 다 문을 다다시니 집이 셔 니이여 극히 즐비며 마을이 진매 문이 잇고 우희 뉘(樓ㅣ) 이시며 블빗치 밧긔 빗최니 사이 잇가 시브더라
134
왕가(王哥)의 집의 슉소(宿所)니 이날 일십오 리 니라
135
부방(副房)농마두(籠馬頭)진복이와 쇄마구인(刷馬驅人)니츈긔믈고(物故)고장무관(掌務官)역관(譯官)됴익진이 병이 즁야영평부(永平府)의 낙후(落後)다영평부(永平府)의 대초와 밤이 유명 곳이오 지나온 곳의조장(棗莊)이란 곳이 이시니 대초 잇 마을이라 이 즈음은 셩이 일노 업(生業)을 삼으며 관가의 셰(稅) 밧친다 더라
136
녯 젹브터 닐[니]대연(燕)나라의 밤나모 쳔 쥬 둔 쟤(者ㅣ) 쳔 호(戶) 디 후(候)와 다 니 그 만흔 쥴을 알너라
138
하역(沙河驛)을 나홍묘(紅廟)란 곳의 니니묘당(廟堂)이 이시 다 븕은 벽이며 히 븕은 흙이라홍묘(紅廟)라 홈이 이 인연(因緣)엿더라
139
삼십오리 야쳥뇽교(靑龍橋)의 니니 리 놉희 두어 길이오 슈문을 내여시니 을 고 가히 츌입다 며 아 두 편의 돌흘 하 담 치 그라시 밧그로 졋쳐지게 야 믈의 이지 아니케 엿더니진졈(榛子店)의 다니 셩이 믄허져 디위만 남고 동셔와 가온대 세 문이 규연(巋然)히 셔로 이라 동셔(東西) 두 문을 지나지가의 집의 즁화(中火)나 길의 져 심히 만흐나 집이 다 퇴븨(頹圮) 여시니 녜 번셩 곳이러라
140
셔문 안진진[졈](榛子店)아문(衙門)이 이시니 엇더 관원(官員)이 잇 쥴 아지 못너라
141
대명(大明)말년(末年)의 강남(江南) 녀(女子)계문난(季文蘭)이 쳥인(淸人)의게 피로(被粩)야심양(瀋陽)으로 향 이곳 젼방(廛房)의 시 지어 벽 우 써시니 그 시예 여시
142
퇴계공연셕일댱(椎髻空憐昔日粧)니[주:퇴계(椎髻) 쇽졀업시 녯날 단쟝(丹粧)을 어엿비 너겨시니]
143
졍군환진월나샹(征裙換着越羅裳)을[주:길의 치월(越)나라깁치마 밧고왓다 엿도다]
144
야냥지하쳐(爺孃生死知何處)오[주:아비와 어미 (生死) 어 곳의 알고]
145
통쇄츈풍샹(痛殺春風上)심양(瀋陽)이라[주:봄바람의심양(瀋陽)으로 올나가 쥴을 슬허노라]
146
글 아 오 텬하(天下)의 유심(有心) 사은 이 보고 블샹이 너겨 건져내믈 라노라 여시니 쳥셩(淸城)김 샹공(金 相公)이 신(使臣)으로 예 지날 글을 보고 운(次韻)고계문단[난](季文蘭)의 젹(史蹟)을 셔히 긔록지라 젼후(前後)의 일노 글 지은 쟤(者ㅣ) 만흐니 그 즁뉴(柳) 하홍(下洪) 셰(世泰) 글의 오
147
강남강븍규졔(江南江北鷓鵠啼)니[주:강남(江南)녁과 강븍(江北)녁희 (鷓鵠ㅣ) 울어시니]
148
풍우경비실구셔(風雨驚飛失舊棲)라[주:풍우(風雨)의 놀나 라 빗기 드린 곳을 일헛도다]
149
일낙텬애귀부득(日落天涯歸不得)니[주:날이 러지매 하의 도라가믈 엇지 못니]
150
심양셩(瀋陽城)의[하]초쳐쳐(下草萋萋)라[주:심양셩(瀋陽城)밧긔 플이 쳐쳐(萋萋)도다]
151
이 글이 못 사의 젼송(傳誦) 배 될너라
152
연돈녕(烟墩嶺)십니 지나매 길 어즈러온 돌이 니여 슐위 편치 못며우란산(牛欄山)이 길 븍편(北便)의 이시니 표연(飄然)이 혀 잣더라
153
판교(板橋) 지나 길이 홀연 기여 셔븍 간을 나시며 길 기인 모통이의 묘당(廟堂)이 이시니 큰 사이 교위[의](交椅)의 거러 안져 손을 드리워시니 므삼 귀신을 위지 문을 여러 두고 조희 발닌 것도 업며 들의 큰 비 이시나 박낙(剝落)여 글 분변치 못너라
154
은셩보(銀城堡)와오리(五里坮) 지나풍윤현(豊潤縣)의 니러 셩 밧왕가의 집의 슉소(宿所)니풍윤(豊潤)은 녯 젹토현이라 관(關)을 지나무로븟터 힌 눈이 관외(關外)의셔 (倍)나 고 거마(車馬) 니 곳 아니면 흰 눈이 가이 업셔 하과 셔로 다핫지라역관(譯官)이 닐오 금년(今年) 치위 젼의 지지 못 배오 눈이 근의 쳐음 뵌 배라 더라
155
븍경(北京)샹고(商賈) 두어 사이 이 참(站)의 니럿지라역관(譯官)이 무태샹황(太上皇)이 태평야(太平耶)아 니 이 초(初生)의 병환이 이셔 시방은 져기 나흐나 혹 됴셕(朝夕)으로 신음(呻吟)니 반시 오라지 못리라 더라
157
쟝 날 샹뱡(上房) 셔(書者) 놈이 캉(炕)을 지으라븍경(北京)으로 몬져 갈 편지 뎐니 병셰(病勢) 져기 나으므로 야흐로 젼진(前進)야 어졔노봉구(盧峯口)의 슉참(宿站)이 되리라 니양졈(雙陽店)의셔 난호연지 열흘이 되여시나 막연히 셩식(聲息)이 막히이니 졍히 민망코 갑갑더니 밋 이 긔별을 드매 일이 다 깃거야 을 노흐나역관(譯官)김동길이 구치 못니 참혹(慘酷)며 역마부(驛馬夫)김언쇠 죽다 더라
158
평명(平明)의 풍윤(豊潤)남문(南門)으로 조차 드러가니 셩(城內) 번화기 거의무령(撫寧)의 비기며 십각(十字閣)이 이시니 우 놉흔 집을 세워시며 졔되(製圖ㅣ) 일산(日傘)을 벗친 모양이오 아 면(四面)으로 왕(往來) 길을 그랏더라
159
두 현판(懸板)이 이시니 우흔 졍긔즁[츙]텬(正氣沖天) 네 (字) 고 아 긔만창명(氣滿彰明) 네 (字) 시며 앏 쟈근 각(行閣) 두 간(間)이 잇고 가온
160
쥬창(朱窓)의 견마(牽馬) 븟든 소상(塑像)이 이시니 집의 관왕(關王)을 봉안(奉安)가 시부더라
161
남묘(南廟) 안 냥도곤부(兩都閫府) 네 (字) 아문(衙門)이 잇고 아경샹[산]셔원(景山書院)네 (字) 현판(懸板) 곳이 이시며 셕루(石牌樓)와 목뤼(木牌樓ㅣ) 셔로 야 만히 이시니 이곳이 션와 벼 쟤(者ㅣ) 만타 더라
162
노가장(老哥庄)을 지나고려보(高麗堡)의 니니 길 올흔편의 여호 촌낙(村落)이 이시며 촌낙(村落) 앏 약간 눈이 이시니 이병뎡노란(丙丁虜亂)의 피로(被虜) 사의 사던 곳이라 그 손이 인야 셰거(世居) 고로 디명(地名)을고려(高麗)라 더라
163
(使行)이 예 지나면 남녜(男女ㅣ) 몰여 슐을 가지고 마자 졍즁(鄭重) 의(意思) 뵈고 쳐창(凄愴) 빗치 이셔 고향 사을 만난 시 반기고 죽을 어 을 먹여 보여 뉵칠년지 그리다 더니 이졔 내여다가 보 일도 업고 다만 쇼쥬(燒酒)와 을 고져 야 사라 며 갑시 젹다만 고 닷토니 은 아국(我國) 졀병(切餠) 튼 모양이러라
164
사류하(沙流河)의 니러왕가의 집의 됴반(朝飯)다 이곳이 큰 마을이라 믈홰(物貨ㅣ) 만히 모히고 사이 가얌이 이 더라
165
이곳을 지나매 셩이 퇴뷔(頹圮)고 다만 문이 남앗더라
166
십니 야냥슈교의 니니 디계(地界牌)쥰화영(遵化營)이라 여시니쥰화(遵化) 곳 고을 일홈이라 십오리 니 길의 큰 졀이 잇고 졀 앏 셕문(石牌門)을 세워시니 기동이 밧친 거븍이 놉희 길의 지나며 두 편의 줄노 근 (獅子) 니고 문의 네 (字) 삭여시니 원희승경(元熙勝景)이라 엿더라
167
누른 옷 닙은 쟤(者ㅣ)태평차(太平車) 타고 지나니 의복이 극히 빗나고 얼골이 못 늙엇지라 눈의 약간 졍(精彩) 이시며 쟤(者ㅣ) 혹 도 며 슐위 시니 옷과 마으락이 다 빗치 누르나 졔도(制度) 즁원 사과 가지오 머리의 하 느리온 거시 업시니 혹 니[나]마승(喇嘛僧)이라 며 혹몽고왕(蒙古王)이라 니몽고(蒙古) 즁이 아니라도 머리 모도 그며 나마(喇嘛)몽고(蒙古)즁을 일 이라 극븍(極北)의 잇 오랑캐 죵낙(種落)이라 풍쇽(風俗)이 몰 니고 활 기 잘나 궁실(宮室)을 배[베]프지 아니야 졔곳의 이실 젹은 댱막(帳幕)을 치고 이시나 길흘 가면 비록 극한셜샹(極寒雪上)이라도 한셔 밤을 지나며 죵낙(種落)이 극히 번셩야 녜로븟터 졔어(制御)키 어려오니의무려산(醫巫閭山)밧그로븟터 그 부락(部落)이 합야 셜흔 여 동[종]뉴(種類)요 대막(大漠) 오쳔여리가몽고(蒙古)의 디방(地方)이라 샹괴(商賈ㅣ) 셔로 통나 됴공(朝貢) 일이 업고 홀노 부쳐 셤기기 극히 공경야 살며 죽기가 다 부쳐의 명(命) 배라 고 져의 나라의 읏듬 님군은 이젼부터 죽기 님야 닐오 내 후신(後身)이 아모 곳의 나노라 니 신해(臣下ㅣ) 가 자 다시 밧드러 님군을 삼지라 (代代) 이러라[타] 니 이 블도(佛道)의 뉸회(輪廻)단 말을 심히 밋 연괴(緣故ㅣ)라 이런고로황뎨(皇帝)그 즁의 무리로 여금황셩(皇城)만슈산(萬壽山)과응[옹]화궁(雍和宮)과탑(白塔寺)여러 곳의 두어 졉(待接)을 극히 두터이 고 년젼(年前)의반션(班禪)이라 즁을 려다가 황금집을 지어 두고 셤기기 신명(神命) 치 니 깁흔 의(意思ㅣ)요 황(皇子) 장가드리며 황녀(皇女)로 혼인(婚姻)야구국(舅甥國)을 일오고 벼을 쥬어 왕위(王位)의 니른 쟤(者ㅣ) 무슈(無數)니 이 다 그 즐기 을 구미오 마다열하(熱河)거동(擧動)야 더위 피다 일나 대쳬 텬(天子ㅣ) 스로몽고(蒙古) 방비(防備)홈이오 대국법(大國法)의황뎨홀노 누른 옷 닙지라 왕공(王公) 이하(以下)로 조각 누른 빗 감히 쓰지 못나 오직몽괴(蒙古ㅣ)귀쳔(貴賤) 업시 누른 옷 허(許)니 이 쳔(天子)로 더브러 미라 그 다며 억뉴(抑留) 의(意思) 가히 짐작지라 그러나 즁원 사이 다 더러이 너기며 흉악히 넉여 말 못 거시라 더라
168
동팔리보(東八里堡)의 니니 돈(墩臺)의옥젼영(玉田營)이라 삭여시니 녜부터옥젼(玉田)히라 삼리(三里) 지나뇽지암(龍池菴)이란 곳의 다니 누각(樓閣)이 즁즁(重重)고 분장(粉牆)을 둘너시며 문의 현판(懸板)을원부영(元府靈臺)라 고 벽 우 여러 가지 약명(藥名)을 판의 박아 븟쳐시니 곳 병증(病症)의 합게 방문(方文)을 젹어 인이 보고 자 오게 거시니심양(瀋陽)젼후(前後)로 큰 마을 젼방(廛房)과 고을 근쳐의 아니 븟친 곳이 업시니 약이 잇 곳은황셩(皇城)동화문밧긔육당(六生堂)이라 약국이라 기 위야 동(東)으로 쳔여 리 이리야 븟쳐시니 셔남븍편(西南北便)도 이리여실지라 그 됴희 든 바 혜면 여러 쳔 권이 될 거시니 약 방문(方文) 즁의 남녀의 욕심을 도으며 (胎) 르치 방문(方文)이 뎨일 만흐니 더럽고 괴이 일이며 이런 방문을 젼방(廛房)의 븟쳐 기 구 것도 오히려 셜만(褻慢)거든 믈며 졀 문 밧긔 븟쳐 인을 보게 니 쳥졍(淸淨) 규모(規模) 더러일너라
169
날이 질 의옥쳔[전]셩(玉田城)외(外)의 니러부가(夫哥)의 집의 슉소(宿所)니 이날 팔십니 니라
170
옥쳔[전](玉田)은 본 츈츄(春秋) 의무죵국(無終國)이니한(漢)젹의무죵현(無終縣)이라양옹(陽雍伯)은노릉현(魯陵縣)사이니 어버 셤기기 잘더니 부모(父母)무죵산(無終山)의 영쟝(永葬)니 산이 놉기 팔십니라
171
그 우 믈이 업더니옹(雍伯)이 무덤 겻 집을 짓고 밤낫 우니 신령(神靈)이 감동샤 무덤 겻셔 이 스로 소나니 인야 그 을 큰 길노 흘녀 길 가 사을 먹게 니 삼년(三年) 만의 사이 와 그 믈을 먹고 흰 돌 되 쥬며 닐오 이 심으면 아다온 옥(玉)이 날 거시오 고은 아 어드리라 고 인야 간 곳이 업거옹(雍伯)이 괴이(怪異)히 너겨 그 말로 심것더니 그 후븍평(北平)셔시(徐氏)의 이 이셔 회 구되 엇지 못지라옹(雍伯)이셔시의 집의 나아가 혼인을 구니셔시(徐氏)밋친 사이라 여 희롱(戱弄)여 오 벽(白璧) 일(一雙)으로 폐(幣帛)을 삼으면 맛당이 혼인을 허리라 니옹(雍伯)이 그 돌 심은 곳을 가 헤쳐 보니 벽(白璧) 다 (雙)이 길기 다 자의 지나지라 셔시(徐氏)의게 폐(幣帛)을 삼으니셔시(徐氏)크게 놀나 드여 부뷔(夫婦ㅣ) 되엿더니 슈년 후의 하노셔 구과 뇽(龍)이 려와 마니 부뷔(夫婦ㅣ) 함 고 올나 갓지라 그 후 고을을옥쳔[젼]현(玉田縣)이라 고옹(雍伯)의 사던 곳을옥쳔[전]방(玉田坊)이라 고옹(雍伯)이 신션(神仙)되여 간 후의 후손양쳔뵈옥 심엇 곳의 큰 셕쥬(石柱) 네흘 박아 보람니라
172
무죵산(無終山)은옥쳔[전]현(玉田縣)삼십니(三十里)의 잇고 그 우희연 소왕(燕 昭王)의 무덤이 잇다 더라
173
일 슈십 년 젼의 (使行)이 이곳을 지날 두어 사이 고을 향교 자 가매 두어 션 만나 슈작더니 그 사들은디현(知縣)의 아이라디현(知縣)이 듯고 아문(衙門)으로 가지로 드러가니 음식을 셩비(盛備)야 졉이 관곡(款曲)고 아국(我國) 사모(紗帽)와 관(冠帶) 쟝복(章服)을 보와지라 니 그 즁의역관(譯官)이 마두(馬頭)
174
보여 짐의 든 관판(冠帶板)을 갓다가 내여뵈니디현(知縣)이 니러 안흐로 드러가 당(內堂)의 여러 사을 쳥야 교위[의](交椅)의 안치고 그 가권(家眷) 여러 부녜(婦女ㅣ) 피치 아니코 안졋더니 디현(知縣)이 홀연 마으락이 벗고 사모(紗帽) 며 관(冠帶) 내여 닙어 각(角帶)와 목화(木靴) 초고 다시 교위[의](交椅)의 올나 안자매 두 눈의 눈믈이 비 오 야 슬프믈 이긔지 못 거동(擧動)이오 그 부녀(婦女)와 아이 다 눈믈을 먹이거 괴이히 너겨 무니지현(知縣)이 오 이거 우리 녯 의관(衣冠)이라 우리 조샹의 닙던 쥴을 각매 엇지 감창(感愴)치 아니리오 고 인야 다시 졔 복(服色)을 고 사을 블너 므 말을 더니 이 밤이 깁헛지라 여러 촉농(燭籠)이 문의 됴요(照耀)고 교(轎子) 메여 문 앏 노흐니 쟝 어 가려 거동(擧動)이라 그 가 곳을 무니지현(知縣)이 오됴션(朝鮮)은 이 의관(衣冠)이 이시니 극히 귀지라 내 그 대인(大人)들을 가 보고져 노라역관(譯官)이 신(使臣)의 의향(意向)을 모고 혹 져의게 므 말이 이실가 야디현(知縣)려 닐오 밤이 임의 깁허시니 대인(大人)들이 다 을 드러실지라 보지 못리라 니디현(知縣)이 심이 창연(愴然)이 너기 거동이오 그 이튼날 (使行)이 일 나 고로 만나지 못다 니 만일 만나더면 무 슈작이 이실넌지역관(譯官)이 악착(齷齪) 소견으로 져의 을 막으니 가히 애다른지라 그러나 머리 고 호복(胡服)기 슬허진 벼을 리고
175
깁히 숨은 즉 셰샹의 놉흔 사이 되리니 이 못니 작녹(爵祿)의 양(辭讓)홈이 엇지 어렵지 아니리오심양셩(瀋陽城)(內)의약왕(藥王廟ㅣ)잇더니 이곳의 이시니 혹 약을 쳐음 근신농시(神農氏) 뫼셧거나 혹 기(岐伯)과 편쟉(扁鵲)을 봉안(奉安)가 시브더라
176
븍경(北京)샹고(商賈)왕개(王哥ㅣ)치형의 자 방의 니러 와시니 얼골이 단졍고 의복이 다 운문(雲紋) 잇 비단이오 거지(擧止) 못 잡되지 아닌지라치형이 캉(炕)의 안라 고 무러 오 셩(姓)이 무어시뇨 답왈왕개(王哥ㅣ)로라 년긔 언마나 뇨 답왈 이십구셰(二十九歲)로라치형왈 내 동갑(同甲)이로다왕개(王哥ㅣ)나아와 안자 손을 잡고 됴하 우어 오 퉁금아 퉁금아 니 퉁금은 동갑(同甲)이란 말이라 무러 오태샹황(太上皇)이 태평(太平)시냐 답왈 일 병환(病患)이 즁(重)터니 근(近來) 쾌(快)히 평복(平復)야 강건(康健)시니라
177
치형왈 임의 병환이 나으면 스므날 빙희[회](聘會) 쟝 베프냐 답왈태샹황(太上皇)이 셩픔(性稟)이 근년(近年)은 됴동(躁動)기 심니 병환이 져기 이셔도 맛당이 젼례(前例)로 거(擧行)리라 그러나 졍신이 이스락 업스락 야 일젼의 황손(皇孫)이 옥쳡(玉牒)을심양(瀋陽)다가 봉안(奉安)고 도라온 후 드러가 뵈오 어 갓던 쥴 각지 못니 보낼 의 황손(皇孫)려 극히 조심라 여 경계(警戒) 말이 만터니 도라오매 그 갓던 곳을 모니 졍신이 이러고 엇지 오라리오 후년(後年)의 구십(九十)이 지라 명년(明年)으로 경하례(慶賀禮) (行)니 귀국(貴國)의셔 신(使臣)이 올 도다치형이 문왈(問曰) 곡뒤의 가 털이 무 의(意思ㅣ)뇨 일 드니 부뫼(父母ㅣ) 잇 쟈 가을 두고 업 쟈 업시 야 일홈을 호승치라 다 더니 이번 길 보니 발(白髮) 노웅[옹](老翁)도 이시니 엇지뇨왕개(王哥ㅣ)우셔 오 므 의(意思ㅣ) 이시리오 고 마으락이 벗고 머리 손으로 만져 오 이거시 젼혀달(韃子)의 모양이라 우리 만셰얘(萬歲爺ㅣ) 근본달(韃子ㅣ)니 일홈이 호승(胡僧)치 아니라 변(辯子ㅣ)라 본(本朝ㅣ) 쳐음 텬하(天下)로 여금 머리 그라 녕(令)을 리오니 죽은 쟤(者ㅣ) 만코 우리 싀골이 장 만히 죽으니라 인야 무러 오 싀골이 어뇨금능(金陵)이라 오 그븍경(北京)잇다 니 어 예 낫뇨 답왈 우리 아얘(阿爺ㅣ) 나시니 나금능(金陵)을 보지 못엿노라 무 계집이 발을 동히 법이 어 예 시작며 발 동힌 쟤(者ㅣ) 근(近來)의 졈졈 젹다 니 그러냐 답왈 엇지 그러리오 본(本朝ㅣ) 쳐음의 이 법(法)을 금(禁)코져 야 녕(令)을 리오 응(應) 쟤(者ㅣ) 업지라 그 계집의 아비 버혀도 듯지 아니며 지아비 버혀도 듯지 아니니 녀(女子)의 셩되(性度ㅣ) 협[](狹隘)지라 일 업셔 금(禁)치 못고 다만한(漢)인(人)과만(滿)인(人)을 셔로 혼인을 시기니 어미 조차 어미만(滿)인(人)이면 발을 동히지 아니니 이 밧긔 아니 동힌 쟤(者ㅣ) 업며 법이한 션뎨(漢 宣帝)로븟터 시작다 나 셔히 모노라 그 일홈을 무니승휴라 더라
179
옥쳔[전]현(玉田縣)의셔 니발(離發)니 지나 바의 팔니보(八里步)와 황가쟝(黃家庄)과 졍교(彩亭橋)란 디명(地名)이 이시니 마을이 년낙(連絡)며 인믈이 번셩더라
180
대고슈졈(大枯樹店)의 니니 큰 마른 남기 잇 슐막이라 니른 말이라 길 븍편(北便)의 두 산 이 오목 곳의 마른 남기 이시니 이 심동(深冬)이라 목엽(木葉)이 다 이우러시니 다른 나모와 미 업나 사이 니 봄과 녀름의도 과 닙히 업고 여러 년 지나나 더 라 일이 업지라 죽은가 의심여 가기[지] 그면 프른 의와 진(津液)이 이시니 산 거시 분명다 며 진텬(眞天子ㅣ) 니러나면 과 닙히 픤다 니 밋부지 아닌 말이오 혹 닐오 오년(五年)마다 닙히 난다 니 여름 (使行)이 혹 본 쟤(者ㅣ) 이실 나 내 보지 못 일이라 대져 진젹(眞的)지 못 말이오역관(譯官)이 닐오 이젼 드니 강감[남](江南) 대고(大賈) 사이 예 지나다가 이 남글 보고 닐오 내 텬하(天下)의 두로 매 오직촉(蜀)와 이곳의 잇다 더라
181
예 지나 일니(一里) 쇼고슈졈(小枯樹店)이 이시니 져근 마른 남기 이시미 아니라 특별이 대쇼(大小)로 일홈을 분변(分辨)미러라 봉산졈(蜂山店)과나산졈(螺山店)을 지나니 븍편(北便)의 놉흔 언덕이 잇고 즁셕(重石)이 치치(峙峙)야 층계 무은 모양 고 우 졀을 지어시니 졔되(製圖ㅣ) 심히 졍치(精緻)고 예 지나니졔산(梯子山)의 돌이 이여 누(累百) 층(層) 셤돌이 기고 졀이 이셔나산졈(螺山店)과 고 졀 밧긔 담을 둘너시며 븕은 분으로 나시니 우러러 보매 규뫼(規模ㅣ) 방졍(方正)고 빗나며 그 아 평디(平地)의관왕(關王廟ㅣ)이시니 문을 길노 향야 여러시며 소샹(塑像)이 뵈이지라 (使行)이 지나 즁의 무리 향을 픠오고 경쇠 치며 손의 그 들고 돈을 달나 니 극히 셜만(褻慢)며 관(關內)로븟터 길지 모혀 일(一行)이 지날 의 보(百步) 앏셔븟터 소 크게 야 대노야(大老爺) 돈을 쥬라 며 즉시 아니 쥬면 여보 좃차 와 나 며 계집은 젼혀 발을 동혀시니 이한(漢)인(人)이라 동힌 발노 슈보 와오 너머지 일은 업나 거름 모양이 극히 위(危殆)고 옷시 극히 남누(襤褸)나 귀 밋 가화(假花) 폐(廢)치 아니여시니 가히 우읍더라
182
즁(行中)의 혹 돈 쥬 쟤(者ㅣ) 이시며 아니 쥬 쟈 슐위 모나 되놈이 돈 푼식 쥬고 마두(馬頭)황이(黃伊) 보 족족 두 푼식 쥬더라
183
별산졈(鱉山店)의 니니 길묘당(廟堂)이 잇고 현판(懸板)의현뎨(玄帝)라 여시니노(老子) 위가 시브더라
184
마을 동편으로 일 니(一 里) 즉 곳의 큰 마을이 이시니 일홈은송가장(宋家庄)이라대명(大明)말년(末年)의송시(宋氏)가음여러 일의 읏듬이라 믈(財物)이 누거만(累巨萬)이오 노복(奴僕)이 슈쳔명이라쳥(淸)인(人)이 여러 번 치되 파(破)치 못엿더니 나라히 망고 힘이 다 비로소 항복(降伏)니쳥(淸)인(人)이 노야 마다 고초 일 속(束)을 셰(稅) 바다 일노 벌을 더니 그 손이 젼과 치 요부(饒富)치 못하나 오히려 부(富者ㅣ)라 일더라
185
그 손의 사이됴션(朝鮮)보기 원야 년젼(年前)칙(勅使)나올 의 스로황셩(皇城)의 나아가 쳔금지(千金之財) 허비(虛費)야 나오기 도모다가 내 을 일우지 못다 더라
186
됴반(朝飯) 후 십칠 니 여운젼(雲田寺)의 니니 이즈음은 다계쥬(薊州)디방(地方)이라황셩(皇城)의 여 승경(勝景)이 이시계문연[](薊門煙樹ㅣ)그 읏듬이 되니 인 남글 닐으미오 고금(古今)의 뎐 배니 이즈음 곳계문(薊門)이라 머리 도로혀 오 라보매 그 긔특 거 보지 못니 대개 힌 눈이 니미라 눈 우 슈목(樹木)이 졍졍(亭亭)고 날빗치 비최여 묘연(渺然)히 영농(玲瓏)니 이뇨동(遼東)팔 니(八百里)의 가지라 일 드니 큰 들 슈목(樹木) 만흔 곳의 흰 긔운이 들니여 도 트며 믈도 트여 슈목(樹木)과 촌낙(村落)이 졀노 흔득이 야 바다 믈이 득 모양이라 오 쇼와 가 이 녁녁(歷歷)히 것구로 빗최이며 져른 남기 길어 보이며 즌 집이 놉하 보이여 허령황흘(虛靈恍惚) 보기의 긔이(奇異)니 을 모라 그 곳의 밋 즉 젹연(寂然)히 잇 거시 업다 더니 이번은 보지 못나 들이 하의 다하시니 눈이 옥(白玉)을 니 네 녁흐로 눈을 구을니 이 긔관(奇觀)이러라
187
병산(翠屛山)의 니니 산이 심히 놉지 아니나 못 솔남기 이셔 프른 병풍(屛風)을 가리은 니 이러므로 일홈이취병산(翠屛山)이오 산이 진(盡) 홀연(忽然)이 큰 봉(峰)이 니러나 웅쟝미병산(翠屛山)의 여러 라 이반산(盤山)이라 일니 곳계쥬(薊州)읏듬뫼라옹졍황뎨(雍正皇帝)일 예 지날 홀연 향긔 코의 거리거 어용의쟝(御用衣欌)을 샹고(上告)여도 잇 배 업며 시신(侍臣)의 의복(衣服)을 헤텨도 잇 거시 업고 긔이 향긔 거름을 와 졈졈 갓가온지라 향긔 자 곳의 니니 셩의 집이 잇지라 드러가매 별노 잇 배 업고 녀(女子ㅣ) 이시니 용뫼(容貌ㅣ) 졀(絶色)이오 거지(擧止) 단졍거황뎨(皇帝)대열(大悅)여 궁즁(宮中)의 블너 드려 괴이고 봉야황비(皇妃) 삼으니 이곳태샹황(太上皇)이[의]황태휘(皇太后ㅣ)라 산하(山下)의향비원당(香妃願堂)이 이시며 원당(願堂) 겻 궁(行宮)을 베퍼시니태샹황(太上皇)이 일 여러 번 거동(擧動)엿다 더라
188
계쥬(薊州)셩텹(城堞)이 이곳의셔 보인다 나 젹이 미 둘니여 못볼너라
189
팔니보(八里堡)와어양교(漁陽橋)와관일쟝(貫日庄)을 지나니 이어양(漁陽)히오 범이라 일니라
190
어양교(漁陽橋) 지날 의 사이 교 고 동으로 향야 가거 무니 죵쟤(從者ㅣ) 답왈병부시랑(兵部侍郞)이오 인(大人)이 공사(公事) 인야산관(山海關)의 단니라 간다 더라
191
교 졔되(製圖ㅣ) 아국(我國) 가마 모양이오 압뒤 긴 내여시니 안 곳을 아 처지게 글고 교의(交椅)예 올나 안시니 일홈을파의교라 고 앏뒤 각각 두 사이 메여시되 의 나식 메지 아니코 두 사이의 쥴을 느르고 남글 여 두 사이 압뒤흐로 느리 메여시니 사이 법이 의셔 지지 아니코 가마 우히 조금도 요동치 아니터라 교자 뒤 큰 슐위와 져근 슐위 오니 큰 슐위만 여라믄 사이 다 교 메 놈이라 셔로 갈마 멘다 더라
192
젹은 슐위의 계집이 니 이 시쳡(侍妾)인가 시브더라
193
방균졈(邦均店)의 니니 녯 셩디위(城址) 이시며 동·셔 두 문이 잇고 문 밧긔 니문(里門) 튼 문이 이시며 녀념(閭閻)과 져 슈리(數里)의 니여시니신민둔(新民屯)과여양역(閭陽驛)의 지날 며 목뤼(木牌樓ㅣ) 좌우의 버러시되 날이 임의 어두엇지라 현판을 셔히 보지 못며 혹 강침(强針)이라 시니 곳 바 그 푸(舖子ㅣ)라 편 문(牌門)의셩화졔쳔(星火諸天)네 (字) 시니 무어 위묘당(廟堂)인 쥴 모너라
194
이 곳의븍경(北京)샹괴(商賈ㅣ) 만흔지라역관(譯官)을 보고 인 쟤(者ㅣ) 만터라 집의 하쳐(下處)니 집이 극히 졍졔(整齊)고 도(塗褙)와 반 새로 여시니 다분당지(粉糖紙)로 발낫지라 극히 조거 쥬인을 부라 야운(雲泰)로 여금 무러 오 그 셩이 무어시뇨 답왈양개(梁哥ㅣ)로라
195
귀경(貴庚)이 언마뇨 답왈 삼십뉵일 이라 아이 잇냐 답왈 셰 아이 이시니 아들은 스믈두 살이로라 손(孫子ㅣ) 잇냐 답왈 임의 손 보왓노라운(雲泰)우문왈(又問曰) 이곳의 됴흔 밧 로갈이의 갑시 언마나 뇨 답왈 은 두 냥 두 돈을 쥬고 됴치 못면 이 갑셔 반(半)이 되이라 관가(官家)의 황[환](還子) 쥬 법이 잇냐 답왈 어이 업리오 말의 모곡(耗穀)이 언마뇨 답왈 말의 오 흡이 되니라 니 이 곳의 오 흡이 아국(我國)의 되 가옷시 되더라
196
우문왈(又問曰)한(漢)인(人)의 호젹(戶籍)이 언마나 뇨 답왈 슈(數) 알기 어려오니라 일년 호역(戶役)은 언마나 뇨 답왈 대호(大戶) 텬은(天銀) 십 냥이 되고 즁호(中戶) 닷 냥이오 하호(下戶) 두 냥 닷 돈이니 일노 고을마다 갑군(甲軍)의 일년 뇨(料) 하(上下) 고로한(漢)인(人)이 간난 쟤(者ㅣ) 만흐니라 우문왈 즉금은 텬해(天下ㅣ) 태평야 군 곳이 업니 갑군(甲軍)만 어이 두호(斗護)뇨 답왈 어이 곳이 업리오 호븍(湖北)의 도젹이 챵셩(昌盛)야 팔년을 호믈 야 거의 다 로 잡게 되엿니라운(雲太)오 도젹과 홈던 시죵(始終)을 약간 니라 답왈 남방 도젹길니국(吉利國)이라 놈이 여러 작난(作亂)거 쟝슈 보여 버히니 그 안 두 과부와 그 쳡 두 계집이 군 거려 여러 고을을 노략더니 시방 형셰 쇠미(衰微)야 근심 배 업고오반쳔(吳半天)이라 쟤(者ㅣ)니 남방(南方) 도젹이라 혹 닐오오삼계(吳三桂)의 후손이라 야 슈년(數年)을 작난(作亂)더니 년젼(年前)의 화 산 로 잡아 경(京師)로 니니태샹황이대쳥문(大淸門)의 뎐좌(殿座)고 친히 무 반쳔(半天)을 고쳐 반(半生)이라 니 쟝 사로고져 의(意思ㅣ)라 반쳔이 우러러 부도지셜(不道之說)이 잇거 드여 버히다 며 젼년(前年)의븍경(北京)셩즁 사이 다토와 닐오졍양문(正陽門)의 큰 니슴이 걸니엿다 거 나아가 셰히 보 니슴이 아니오 바다 큰 의 닷쥴이라졍양문은 셩남(城南) 졍문이라 그 놉희 새도 범연이 지나가지 못 곳이어 이 고이 일이 잇니라 니 두어 말이 다 분명치 아니며 닷쥴 말은 더옥 샹(常)업 말이라운(雲泰)무르 네 집을 고이 도(塗褙)여시니 큰 손을 졉엿던가
197
시부도다양개왈 지난 황손(皇孫)이심양(瀋陽)왕(往來)의 드러시며 오오 인(吳 大人)이 됴반(朝飯)고 갓니라 무 황손과오 인의 의 디방 고을의셔 지(支待)가 이실이니 슐막(酒幕)의셔 어 머므럿뇨 답왈오대인 슐막의 먹고 가나 슐막 쥬인이 관가의 그 갑 바드니 본 졍 법이오 황손 각 읍의셔 지(ㄱ 업지라 스로 은젼(銀錢)을 내여 먹고 다만 방의 자고 갈 이라 더라
198
대국(大國) 사은 그져 자고 지나도 방젼(房錢)이 이시니 만여 쇼쳔(小錢) 냥의 지나지 아니고 아국(我國) (使行)의 로밤 방셰가장지(壯白紙)부 환약과 쇼쳔을 합야 은(銀子) 두 냥이 더무니 낫참 잠간 안즌도 장지 부 퍽 쥬어도 젹다 만타 야 하인들과 종종 호니 심히 통분(痛憤)더라
199
이곳의 본 양한지(養漢的) 만흐니 (使行)을 오 갑군과 챠 모라오 되(胡)들이 다 양한지 자가 잔다 며 겻 캉(炕) 벽 우 졀구(絶句) 거시 이시니 계집을 니별 글이라운양가려 무로 네 집의도 양한지 두엇다 답왈 둔 일이 업노라 거 그 글 말을 닐너 왈 업면 이 글이 엇진 의(意思ㅣ)뇨 답왈 혹 과인(過客人)이 양한지 려 다가 자고 가 일이 이시니 대져 샹(常) 업 사이니라 우문왈(又問曰) 밤의 갑시 언마나 뇨 답왈 엇지 졍 갑시 이시리오 고 웃더라
202
새벽의 나 십 니 야 간졈(白間店)의 니니 지나 참마다 마두(馬頭)의 고(告) 말을 듯지 아녀 스로 짐쟉니압녹강이후로노졍긔(路程記) 가진 연괴(緣故ㅣ)ㅣ라 밋 이곳의 니 디계(地界牌)의반가장(潘家庄)이라 일라시며 공낙졈(公樂店)의 니 디계(地界牌)의오호발(五百戶撥)이라 여시니 오날 낫참 젼의노졍긔와 디명(地名)이 틀니 곳이 다 곳이라 아지 못게라 두 일홈이 이시믈 인연야 그런가 혹 아국(我國) 사이 젼브터 그 긔록야 그런가가졈길히 암(庵子ㅣ) 이시니 일홈이향화암(香火庵)이라 이 곳 승(僧)이 잇 곳이니 졔되(製圖ㅣ) 심히 화려고 공교더라
203
암 녑 궁(行宮)이 이시니 혹 닐오슌치황뎨(順治皇帝)누의 나히 일즉 과뷔(寡婦ㅣ) 되엿 고로 승(僧)이 되여 이 암의 머무럿더니 밋 죽으 이 암로 원당(願堂)을 삼고황뎨심양(瀋陽)거동 의 양 이곳의 슉소(宿所) 고로 궁(行宮)을 두엇다 더라
204
관가령(管家嶺)을 지아셕비교(石碑橋)의 니니 계집이 나귀 고 지나 쟤(者ㅣ) 이시니 장 졈고 약간 이 잇지라 우 지(紫朱) 긴 옷 닙어시며 밋 븕은 치마 닙어시나 녑히 터져시니 졈[젼]산후(前三後四)로 가 시부며 쥬름을 심히 잘긔 야 지 졉어시며 발이 심히 젹으니 다엿 살 아 발 고 신을 신어시 압과 뒤가 심히 고 가온 오목니 이 신을 신고 거러가 계집을 혹 만나면 거름이 극히 위지라 이러므로 막 다 집허시며 발등은 소독고 신바닥이 들니여 두 만 다하시며 혹 녀닐곱 살 먹은 계집 길 셧 거시 두 팔 밋 각각 막 집허시니 이 갓 동혓 고로 것지 못야 닐 의 막 가로 의지엿더라
205
길 계집이 머리의 거믄 비단을 덥허 시니복건(幅巾)이라 일며한(漢)인(人)의 계집이 고 호녀(胡女) 아니 다 며 나 휘양(揮項)을 시니 너르게 그라 마으락이 덥허 고 션을 븕은 비단을 둘너시며 혹 털 잇 가족을 됴개겁질 모양으로 그라 귀 리워시니 곳 이션(襈子)라 더라
206
어하교의 다르니 호타하(滹沱河)라 곳이니한(漢)광무황뎨(光武皇帝)왕낭(王郞)이란 도젹의 좃치여 이 믈의 니 밤이 어름이 어러 잡히인 배 되지 아니고 풍[즁]이 팟쥭을 나왼 곳이라 니나 혹 닐오븍경(北京)을 지나다가 호타하란 믈이 이시니 이곳은 아니라 니 모너라
207
오 리(五 里) 가삼하현(三河縣)을 지나니 셩이 길셔 뵈더라
208
상(喪行)을 만나니 상여(喪輿) 이젼 보던 모양이오 뒤 흰 옷 닙은 (者ㅣ) 태평챠(太平車) 고 오니 챠 흰 쟝(帳)으로 둘넛더라
209
먼니셔 오 모양 거 무니봉셩쟝녕영이심양(瀋陽)셔 죽어 도라오며 오 쟈 상인(喪人)이라 더라
210
심양(瀋陽)지날 의 드니 치샹(治喪)을심양 쟝군이 당고 은(銀子) 삼 냥을 별노 부의(賻儀)다 더라
211
연노(沿路)의 혹 먼니 가 상(喪行)을 만나면 반시 슈을 언져 가니 신령(神靈)이 의 소 와간다 더라
212
조림쟝(棗林庄)의 니니 동셔 니문(里門)이 잇고 문을 널노 두터이여 라시니 밤이면 닷가 시브더라
213
노가(盧哥)의 집의 즁화(中火)니 계집이 별노 피치 아니코 캉(炕) 문 밧긔 모히엿지라 계집이 등의 어린 계집아 업고 셧거역관이 무 업은 아희 곳 (奶奶)의 이냐 니 (奶奶) 계집 위야 일 한에(漢語)라 그 계집이 답왈 내 창다외(倡多誤ㅣ)라 니 창다오(倡多誤)란 말은 아국(我國)의 블한당(不汗黨) 튼 도젹을 니른 말이라 대져 즁원 풍쇽은 을 혼인매 집을 고 망 사이 혹 이시니 예(例事) 형셰(形勢) 쳔금의 리지 아니 고 가난 사은 삼 냥의 리지 못다 니 이런고로 을 도젹의게 비야 시 브 명호(名號) 삼으니 극히 무식지라역관이 우셔 오 을 창다외(倡多誤ㅣ)라 니 (奶奶)도 이 일홈을 면치 못엿도다 그 계집이 한 웃더라
214
십여 리 지나 신졈(新店)의 다니 예로븟터 셔븍의 잇던 뫼 졈졈 지고 큰 들이 도로 열니이니 슈목(樹木)이 극히 관외(關外)의셔 셩지라 셔로 니이여 마다 울연(蔚然)이 슈플을 일웟더라
215
황친쟝(皇親庄)이란 곳의 니니 예 황친(皇親)이 사던 곳인가 시브나 녀염이 황낙(荒落)야 귀 사 사던 곳 지 아니터라 뉵 니 가셔하졈(夏店)이란 마을이 이시니 길 두 편의 푸(舖子ㅣ) 녀염집과 반이 되며 문과 담을 다 아로 삭여시며 집마다 굴독을 쳠하 우희 지나게 엿더라
216
이날 쟝날이라 믠 머리와 거믄 옷 닙은 쟤(者ㅣ) 길 머이고 고이 소로 기 발뵈니 극히 요란(搖亂)며 황셩(皇城)이 갓가와 가지라 가야온 슐위와 보옛 믈(物)이 길 이지 아녓더라
217
십여 리 지나연교보(燕郊堡)의 밋니 마을 가온 이층문을 내고 문 우연교진(燕郊津)이라 시며 그 우희 현판을 오 쳥념(淸廉)야 친 당(祠堂)이라 여시니 웃층 집의 봉안(奉安) 신령이 잇가 시브더라
218
연산(燕山)녯 져라 시니 을이 심히 번셩지라 오 지난 곳의 큰 을이 만흐하졈(夏店)과 이 참이 뎨일(第一)이 될너라
219
연교(燕郊) 곳 녯제탁녹(涿鹿)히니황뎨헌원시(軒轅氏)치우(蚩尤) 사로 잡던 곳이라 이졔도 큰 바람이 짓다 더라
220
참(站)의 들 의 큰 쇼 모라 지나가 되 잇거황이 무 그 쇼 갑시 언마뇨 답왈 은(銀子) 이십오 냥이라 니 그 별노 지고 크지 못며 오 이 젹은 라 이 크면 은 삼십오 냥을 쥬니라 고황이려 무러 왈 너 나라 이안[만]면 갑시 언마나 뇨황이오 너희 나라 갑과 트니라 고 지나니라 큰 슐위 둘이 지나니 각각 을 오십 필식 메운지라 닷쥴 튼 바흘 네 가의 느러 을니고 큰 바의 젹은 바흘 여 을 메워시니 오십 필 이 동안을 지난 후의 슐위의 시른 거 보니 곳 듬은 빗돌(碑石)이라 기 두 길이 고 두테 두 자의 지난지라 큰 박회 우희 톳남글 가로 노코 그 우 언져시니 가 모양이 완완(緩緩)야 쥴이 스로 가 니 보기의 금즉야부방(副房)과 가지로 머무러 지나 거 보더니 마뒤(馬頭ㅣ) 가 곳을 무니역쥬(易州)로 간다 거역어뇨 니 이곳의셔 니(里) 된다 더라
221
하가의 집의 슉소(宿所)니 이날 니 니라
222
이곳의 양한지 만흔지라역관 사이 가보고져 거 그 동(同行)이 말녀 왈 년젼(年前)의 사이 동 사으로 더브러 양한지의 집을 니 되놈이 인도야 드러가 계집이 웃고 마지 안기 쳥고 쥬육(酒肉)을 초와 졉고 슈작이 졍다와 만뉴(挽留) 의(意思ㅣ) 심히 관곡(款曲)거 인되[도](引導)던 되놈은 드려 보낸 후의 믄져 가고 다만됴션사들 안졋더니 밋 계집 려 가노라 고 문의 다니 문을 잠으고 밧긔 두세 되놈이 이셔 지져 왈 네 법을 범고 대국(大國) 계집을 간통도다 즉금은 우리만 아랏거니와 여러이 알면 쟝 죽으리니 네 엇지 려 다 무(無限) 공동(恐動)거 그놈의게 속은 배 된 쥴을 아나 임의 문 안 갓친[치]인지라 일 업셔 각각 마두(馬頭) 블너 은을 열 냥식이나 허비(虛費)고 간신이 욕(辱)을 면니 그 그 사의 일을 당리로다 니 그역관이 대겁(大怯)야 가지 못니라
224
계초[명]명[초](鷄鳴初)의 발(發行) 다만 쵹롱(燭籠) 나흘 좌챠(座車) 압 달아시니 블이 명멸(明滅)야 뵈이 배 업더라
225
등가장(滕家庄)·습가장(習家庄)·호가장(胡家庄)을 지나하(白河)라 믈의 니러 오히려 지 아닌지라 어두은 가온대 보니 느리 노하 리 그라시니 우희 널을 다 라시며 대국(大國) 졔되(製圖ㅣ) 두 치 들니이지 아니케 고 젼과 치 널을 라시니 사 건너 이 도 다 이 모양닐너라
226
이런고로 이 느르고 다 널을 라 리 되엿더라
227
이 믈 너븨 아국(我國)양화진(楊花津)의 지나지 못나 텬하(天下)의 조운(漕運) 다 믈의 모힌다 며황셩(皇城)으로 인슈(引水)야 셩(城內)의 여러 리의 믈과 궐(闕內) 어구(御溝)와 못 믈이 다 이 믈이오황셩(皇城)으로셔 셔문 밧그로 인슈야셔산(西山)의 니러 삼십 니 못 두고 뇽쥬(龍舟) 웟다 더라
228
통쥬(通州)로 작로(作路)면팔니교(八里橋)로 말암아 니팔니교 곳하(白河)의 돌노 노흔 리오 시방 지나 곳은팔니교와 잇 곳이라 겨을이 되면 로 리 노하 인을 통고 어름이 플니면 로 건넌다 더라
229
하(白河) 지나 구 리(里) 야 홀연히 슐위 박회 돌의 브드이져 굉굉(轟轟) 소 우레 거 댱(帳)을 드러 보니 길 다 박셕(礡石)을 랏지라 그 졔되(製圖ㅣ) 슉셕(熟石)을 네모지케[게] 다듬아 여섯 노하시니 돌 나 너븨 다섯 자히 을 거시오 두 편 의 좁은 돌노 변탕(邊鐋)을 쳐시니 여닓[닐]골[곱] 슐위 (並) 갈지라통쥬(通州)셩(城內)브터황셩(皇城)지 니어 노하시니황셩(皇城)문(四門) 밧 오십 니 이치 다 여시며관가장(官家庄)·양가장(楊家庄)·삼간방(三間房)·졍부쟝(定府庄)·대왕쟝(大王庄)십여 리 이의 촌낙이 간단 곳이 업지라 간간 조루 각(彫樓彩閣)과 쥬문 분벽(朱門粉壁)이 번려(繁麗)고 긔교(奇怪)야 사의 옴과 눈을 놀내며 이즈음은 전혀 대가(大家) 분뫼(墳墓ㅣ)라 분칠 담을 셔로 년(連)여시며 놉 문이 길 두 편의 셔로 야 다 굿이 닷고 혹 겻 젹은 문을 내여 사이 츌입며 문 압마다 개쳔을 글고 난간(欄干) 무지게 리 노하시니 그 긔괴(奇怪) 졔양(制樣)이 다 가지 고 담 안 집이 이시며 집 뒤 집이 이시니 무덤은 두 집 이의 이시며 무덤이 다 남향(南向)여시되 흙을 무어 쥬산(主山)을 글고 무덤 앏 집을 아닌 쟈 면쟝(面墻)을 고 가온 문을 내여시며 비셕은 무덤마다 이시나 셕인(石人)은 보지 못고 슈목을 무슈히 심거시되 측(側柏)이 쟝 만흐니 프른 닙히 흘 덥허 겨을인 쥴 지 못너라
230
길 븍편의 두 층 놉히 집이 두 곳의 다 누른 기와도 니엇고 가온대 서너길 큰 비 이시니역관(譯官)이 닐오 이황뎨의 글과 글시니 이 길 박셕(薄石)을 곳쳐 노히고 그 젹(事蹟)을 긔록 말이라 며 칙건운(勅建紫雲寺)란 졀이 이시니 밧긔 둘니인 븕은 쟝원(牆垣)이 눈의 브싀이며 집 지은 졔되(製圖ㅣ) 더옥 긔이니 집의 쳠하 니으며 집을 짓고 두 쳠하 니은 곳은 기와 로 라 빗믈을 흘니며 뒤 잇 집은 집마다 말늘 아니 야 둥길이 새오등 트니 보기의 신교(神巧)지라 이십 니 오 날이 도다 은 후의 십칠 니 야대왕장의 됴반(朝飯)니 집이 쟝 찬란고 집의 치(配置) 것과 캉(炕)의 버린 긔명(器皿)이 못 초초(草草)치 아니며 쥬인은 왕가(王哥)라 더라
231
예 잠간 지나 녀념이 더옥 셩고 좌우의 쥬식(酒食) 파 푸(舖子ㅣ) 무슈 집 앏흐로 놉흔 남글 쳠하의 여러 자(尺)히 지나게 셰우고 여라믄 간(間) 삿집을 셰웟시며 슐과 고기 닷토와 나으며 삿집 밧긔 슐위와 안매(鞍馬ㅣ) 만히 머므러시 개개히 화려야 길우 셔로 빗최여 인이 길 메여시니 그 즁 균표 인믈과 샤려(奢麗) 의복과 빗난 안마(鞍馬)와 번렬 위의(威儀)와 호한(浩汗) 긔안(奇玩)이 다 지난 곳의 보지 못 배라 스로 을 피 의연 외방(外方) 션와 협즁 셩(峽中百姓)이 피폐(疲弊) 장으로한강(漢江)을 건너남대문(南大門)을 들고져 모양이라 믈며 비쟝(裨將) 역관들은 련의 여러 가지 짐을 너허 안장(鞍裝)의 더으고 바지 져고리 극히 둣터온지라 을 려 면 마두(馬頭) 놈이 미러 올녀 안치니 그 모양이 극히 우은지라 피인(彼人)들이 살진 과 가야온 갓옷스로 을 완완(緩緩)이 모라 우리 일을 구경야 셔로 쳐 웃고 말다가 혹 아국(我國) 사의 을 졔 등(鐙子) 븟들니고 옷 뒤흘 거동을 보고 대쇼 아니리 업고 마두(馬頭)의 미러 올니 거 보면 지지괴여 졀도(絶倒)히 너기니 이 아국인(我國人)이 셔로 보아도 가히 우음 지라 대개 피인(彼人)의 법이 길의 지나 이라도 안장(鞍裝)의 등(鐙子) 층층이 아 시 올나 안즌즉 옷 뒤 드리온 거시 업니 그 긴 옷시 뒤 트고 녑락을 거두어 단초 온 연괴(緣故ㅣ)라 왼손의 혁(革)을 거리고 올흔손의 여 번 치면 번개치 라나 잠간 이의 간 곳을 모니 그 거동이 극히 호샹(豪爽)더라
232
태평쟝(太平庄)과십니보(十里堡)·팔니보(八里堡) ·흥문(紅門)·미륵원(彌勒院)을 지나종악묘(東岳廟)의 니니 문 우희칙건동악묘(勅建東岳廟)라 다 글 븟쳐시며 문 앏 두 븕은 긔대 구 밧긔 소사나 기리 짐쟉 길이 업고 거믄 구리로 (獅子ㅣ) 그라 좌우의 안쳐시니 놉희 사의 길의 지나더라
233
남편 동편 셔편이 다 문(牌門)이 이시니 남(南)은 은 명[영]년[연]졔됴(永延帝祚) 네 히(字ㅣ)오 동(東)은 은 쳥악신(靑岳神祠)며 안 괸[관]인셕복[블](坤人石佛) 네 히오 셔(西) 온 태허동텬(太虛洞天)이며 안희 봉승경(蓬萊勝景) 네 (字) 시니 단쳥(丹靑) 됴란(照爛)고 졔되(製圖ㅣ) 웅장지라 묘문(墓門)이 남편 문(牌門)으로 더브러 졍히 샹(相對)엿더라
234
묘문으로 들 좌우의 익낭(翼廊)이 이시니 즁과 도의 머무 배오 즁문이 이시니 놉기 밧문과 가지며 현판의 쳠긔문(瞻垈之文) 네 더라
235
이 문 안 큰 뎐(殿)이 이시니 쳥기와로 니으고 현판의악종보뎐(嶽宗寶殿)네 더라
236
뎐(殿內)의 남향야 소샹(塑像)이 이시니 곤의(袞衣) 면류(冕旒) 초와 왕(王子)의 모양이며 얼골이 심히 희고 인 긔샹이 나타나니 이 곳 태샹신인(太常神人)이라 좌우의 시위 션관(仙官)이 십여 인이나 고 탁 우희 벗렷 긔명(器皿)이 다 긔이고 뉴리등(琉璃燈) 여러흘 라시며 향 픠오 틀을 라시니 아 둥글게 글고 네 기둥을 세워 머리가 셔로 닷케 고 쥴기향을 기동의 의지야 얽어시니 텰 얽은 모양이라 블을 달혀 야흐로 반이 못 타시니 번 얽은 후 열흘을 타일 며 뎐문(殿門) 밧긔 큰 탁 노코 그 우희 큰 그릇 언져시니 모양이 아국(我國) 소라 튼지라 거믄 기름을 가득 담고 가온대 발심(發心)야 블을 켜시니역관이 니 기름이 아니라 칠(漆)이라 며 이 블이묘당(廟堂)즁슈(重修) 후로 진 일이 업다 며 칠이 달으면 더으니 양 득다 더라
237
좌우 월랑(月廊)이 각 십 간이로 간 너기 네 간의 지나며 남편 월랑(月廊)은 문 좌우로 각 십여 간이 지나지라 모도 벽을 라시며 면(四面) 셤돌이 갈치 놉흐니 사의 엇게의 치며 가온대 비(碑) 세워시니 그 슈 아지 못너라
238
별노 큰 비 둘이 이시니 나흔강희황뎨(康熙皇帝)글과 글시오 나흔태샹황의 글과 글시라 다 두 층 집을 짓고 누른 기와로 니엇더라
239
강희(康熙)의 비(碑)의 닐너시 이묘당(廟堂)이원(元)명(明)으로븟터 임의 세웟더니 즁간의 블의 앙(災殃)을 만난지라강희(康熙) 삼십구년(三十九年)의 즁슈 시작여 십일년의 니 믈읫 삼년이라 엿더라
240
새 빗돌이 이시니 곳 금년의 셰운 비러라 월랑(月廊)의 간간이 신령이 이시니 귀신의 벼 일홈을 현판의 맛튼 직을 알게 며 소샹(塑像) 앏흐로 각각 여러 져근 소샹을 라 다리 거동을 여시니 이로 구경 길이 업나 대져 온갓 죄인 다리 모양이라 흉녕(凶擰) 귀졸(鬼卒)이 칼과 텰쇄(鐵鎖) 가지고 혹 결박(結縛)야 니고 혹 괴이 형벌을 초고 혹 얼골을 변야 온갓 즘이 되어시며 혹 아직 죄 닙지 아닌 거 그 녑셔 각(各色) 거동을 보고 근심 모양이 현연(顯然)야 심히 무셥고 간은 문을 굿이 닷고 문 밧긔 큰 향노(香爐) 노핫지라 문 틈으로 본즉 남녀 두 소샹(塑像)이 안져시 화길(和吉) 얼골과 인후(仁厚) 긔샹이 사을 향야 웃 고 젼후 좌우의 어린 아희 슈 십이 이시니 혹 누인 것도 이시며 안은 것도 이시며 안기여 웃 것도 잇고 셔셔 것고져 롱 것도 이시니 얼골이 다 긔묘여 소샹인 쥴 지 못게 여시니 이 산(生産)을 가음아 신령이라 더라
241
뎐(殿) 뒤 큰 뎐이 이시니 현판의육덕지뎐(毓德之殿)네 (字) 고 뎐 외의 두 소샹(塑像)이 으로 안져시 나흔 댱부(丈夫)오 나흔 부인이라 혹 닐오 태산신인(泰山神人)의 부모라 더라
242
이 뎐의 동 셔 븍 삼면의 월랑이 이시 간 더 만코 간마다 소샹이 이시니 이로 다 볼 길이 업다 더라
243
븍편의 층뉘(層樓ㅣ) 이시니 셜흔 여셧 간 층뉘(層樓ㅣ)로 즁간이 스믈 두 간이오 좌우 각 닐곱 간식이라 당즁(當中)여 소샹을 뫼셔시니 이 옥황샹뎨(玉皇上帝)라 며 누(樓) 현판(懸板)의 벽소화(闢消災禍) 네 더라
244
밧문의셔옥황누(西玉皇樓)지 이 오십 보(步)나 니 집 앏뒤간 슈(數) 합야 삼여 간이 될지라 규뫼(規模ㅣ) 웅장고 금벽이 찬난며 뎐마다 은(銀絲)로 그믈을 그라 쳠하 둘너시니 긔괴령농(奇怪玲瓏)여 못 사의 공녁(工力)이 밋지 못너라
245
내부(副使)로 더브러 사모(紗帽)와 흑단령(黑團領) 초고 쟝 문을 나고져 통관(通官)들이 니러 례슈(禮數) 의(意思) 뵈고 아국(我國) 말노 잘 왓쇼 니 말 호 아 말과 며 분명치 아니더라
246
예셔브터 교(雙轎)와 좌챠(坐車)와 밋 일산(日傘)을 몰니고 고 문(咨文) 바리의 누른 긔 앏 셰우고 그 뒤통관(通官)이 이 셔시니 져의 젼롄(前例)가 시브더라
247
셔편 문(牌門)을 지나 일 니 여 돌다리 지나니 셩 밧 (垓子)라 문의 다니 문 밧긔 옹셩(瓮城)을 둘너 막고 셩 우 누(樓) 지어시니 네층이라 층마다 열두 문을 내여시니 네 층을 합여 마흔여 문이라 이 활 고 총 노화 도젹을 막게 미러라 누(樓) 아 문을 내지 아니여시며 다만 안편 문누(門樓) 리오게 여시니 이 니른바 젹누(敵樓)라 셩 졔도(製圖) 우아 다 벽돌이오 셩 우흔 밧그로 엿보 틈을 글고 안흔 담 흔 시 막아시니 그 이 오마(五馬隊) 지나다 더라
248
셩문(內城門) 우희됴양문(朝陽門)이라 현판 엿더라
249
문을 드니 길 너븨 칠팔 니(里)나 며 번셩 녀념과 찬란 져며 구집이오 비단방이며 아로삭인 누와 빗난 기동이 눈의 현황(炫煌)여 두셔 힐 길이 업며 사 슈와 짐 시른 슈 길흘 더퍼 은은륭륭(殷殷隆隆)여 졍신이 셧들니며 구경 사이 좌우의 미만(彌滿)여 븬 틈이 업 니 인민(人民)의 셩믈 가히 볼너라
250
심양(瀋陽)산관(山海關)은 족히 비치 못너라
251
황셩(皇城)안은 궁궐이 즁앙의 잇 고로 십뉘(十字樓ㅣ) 업고됴양문(朝陽門)을 지나 반 니(半 里) 즈음을 네 문(牌門)이 셔로 여시니 동은니인문(履仁門)이니 어진 거 단 말이오 셔의문(行義門)이니 올흔 거 단 말이오 남븍은 다 대시가(大市街)라 여시니 큰 져거리라 일 말이러라
252
동편 문(牌門)을 들 셔븍편으로 울연(蔚然)히 뫼히 이시니 이경산(京山)이라 일니 곳대명(大明)젹만셰산(萬歲山)이라 남편 문(牌門)으로 드러 일 니 다가 셔흐로 걱거 큰길이 이시니 이리로 여 로녜부(禮部)로 드러가니 밧문 지나 즁문이 이시며 대텽(大廳)이 오십여 보 동안이러라
253
좌우 월랑(月廊)이 각 슈십 간이 되고 셔너 간식 지나 현판을 브쳐시녜긔고(禮器庫)라공긔쳐(公器處)라최독쳐(催督處)라왕회텽(王會廳)이라 니 다녜부(禮部)의 당 일을 긔록 거시러라왕희텽(王會廳)의 드러가 긴 캉(炕)이 잇지라부(副使)와 가지로 이윽이 안잣더니 구경 사이 며[모]혀시니 혹 증 븟쳐시며 의복의 션명 쟤(者ㅣ) 만터라 쟝 오란 후녜부시랑(禮部侍郞)완원(阮元)이 드러왓다 거 대텽으로 나아가니 너로기 십여 간이 되며 다 벽돌을 라시니 이런고로 아문(衙門)의 다벽대텽(甓大廳)이라 더라
254
븍편 람벽의 당즁(當中)여 구과 뇽(龍)을 사기고 금칠을 여 인쳥찬화(仁淸贊化) 네 시니 앏옹졍(擁正)어필(御筆) 도셔(圖書) 쳣더라
255
대텽(大廳) 남편으로 남향여 큰 탁 노코 누른 보로 더퍼시니완원(阮元)은 동남을 향야 탁 녑희 셔고부(副使ㅣ)날노 더브러 븍향여 탁 알 러 안니샹통(上通使)두역관이 문궤(咨文跪) 밧드러 러 드리거 날과부(副使ㅣ)손으로 드러 탁 우희 노케 고 삼궤구고두녜(三跪九叩頭禮) 고 니러셔니완원이역관려 신이 즉시 관으로 나아가라 다 거 즉시옥하관(玉河館)의 니니 큰 거믄 문을 드러 져근 문을 들 세 집이 압뒤흐로 이시니 압부(副使ㅣ)들고 븍편 내 드니라비쟝(裨將)과역관은 좌우 랑각(廊閣)의 화 햐쳐(下處)고 내 햐쳐 동편 담 밧긔 닐곱 간 집이 이시니 두 쥬방(廚房)이 들고 남은 캉(炕)은역관이 드다 더라
256
셔(書者ㅣ) 믄져 니러 캉(炕)을 민지라 캉의 안니 쟝 졍결여 남편은 쟝지문(壯紙門)이니쟝지(壯紙)로 고 세 람은 능화(菱花)로 고 그림 두 쟝을 븟처시며 셔편은 슈고로 의지여 됴희로 고 녑흐로 츌입 문을 내여시며 샹고되(上古臺)의 게문편(揭門扁子) 비러 안밧그로 드리오니 아국(我國) 방샤(房舍)와 다미 업더라
257
문(咨文) 밧치기 젼의녜부(禮部)이 쟝 분요(紛擾)지라 므론즉 희(戲子) 노름 습의(習儀) 다 더니치형(致馨)이 보고 뎐 쳐음의 여 사이 머리의 긴 관 고 옷슨 각(各色)을 닙어시 너른 라 각각 나모을 시 두 리 쥼 안희 드 남기라 남의 다리 발의 드게 그라 먼니셔 거러 드러 오 모양이 극히 위 뵈(行步ㅣ) 죵용(從容)여 조금도 헷집 일도 업며 나모 머리 흔득여 닷 모양이라 혹 밧비 가며 혹 쳔쳔이 가기 임의(任意)로 여 손의 활을 들고 손의 살을 잡아 형상을 며 흐로 셜흔두 사이 각각 븕은 그슬 드러시니 키(箕) 업흔 듯 모양이라 다 븍향여 셔고 마흔 나믄 사이 남그로 근 칼흘 들고 치며 지 형상을 여 동셔로 화 셔시니 닙은 거 다 너른 오 놉흔 관이라 두 사이 대텽(大廳) 우셔 셔로 가라 므 소 면 아 사이 다 소 응여 조 드리니 븕은 그 가진 사은 다만 그로 흘 쳐 우질길 름이라 여라믄 살 먹은 아 열아문이 다 악긔(樂器) 가지고 좌우 화 셔시 풍뉴 일이 업고 우희 너른 담(氈)을 더니 열아믄 아희 례로 조 니 혹 것구로 셔셔 조 어[너]무 안도 너므며 셔셔도 너무 아국(我國) 경인(呈才人)의 조 나 내고 르기 아국(我國)의 비 배 아니라 혹 닐오 이고려(高麗)죄라 조셔히 모너라
258
회일(晦日) 궐의셔 쟝 이 노름을 고로 닉힌다 더라
259
이 날부터통관(通官)여과 갑군(甲軍)이 아문(衙門)의 와 이시며졔독(提督)과대(大使) 혹 니러통관(通官)을 금칙(禁飭)다 더라
260
진 후의통관이화즁당(花中堂)의 지휘로 와 뎐여 오 태샹황 무됴션신이 만일 임의황셩(皇城)의 드러시면 명일의 맛당이양심뎐(養心殿)의셔 인견(引見)리라 더니 이윽고 주사(主客司)의셔 부(付子ㅣ) 오니 부(附子) 아국(我國) 이문(吏文)과 튼 거시라 닐어시됴션신이 이십일 오고(午鼓)의늉종문(隆宗門)밧긔 (丐貸)라 여시니 (使行)이 이십일 밋처황셩(皇城)의 니미 심히 다더라
261
화즁당(花中堂)은 슈각노(首閣老)화신(和珅)을 일 말이오주사 아국(我國) 신을 졉 을이러라
263
관의 머므다. 오경두(午更頭)의 부로 더브러 태평챠 셰 내여 고 궐하(闕下)의 나아갈 통관(通官)이 와오며 슈부역(首副譯)이 조더라
264
옥하교(玉河橋)앏흘 님야 쳔을 인연여 이윽이 가 븍으로 큰 다리 지나 동편궁쟝(宮墻)의 니니 븕은문(柵門)을 베플고 문을 내엿지라 이 문을 지나고 궐문 나흘 지나동화문(東華門)밧긔 니러 비로소 슈리 려태화문(太和門)밧그로 지나 드러가 곳의 협화(協和)·희화(熙和)두 문을 지내니 븍으로 것거 두어슬 바탕을 여 잠간궁쟝(宮墻)아 승창을 노코 안자 다가 좌익문(左翼門)알프로 조차 됴방(朝房)의 드러 안니셤나(暹羅)신 네 사이 드러왓지라 겻 캉(炕)의 안잣거 잠간 보니 의복은즁국졔도와 다지 아니 블근 바탕과 거믄 바탕의 약간 슈 노하 닙어시니 머리의 거 금빗츠로 그라 니마박의 덥히게 고 우 긴 을 그시니 길이 거의 여닐곱 치나 지나며 긴 아 두 층도 글며 세 층도 그라 네 사이 배 지 아니니 옷빗과 관층(冠層)으로 픔직(品職)을 표(表)가 시브더라
265
죵쟤(從者ㅣ) 서너 사이 드러왓시되 킈 져며 얼골이 잔망(孱妄)여 보기 블(不似)며 죵쟈(從者)의 바 곳즁국의 마으락이오 머리털은 모도 가 변(辮子ㅣ)라 거시 업더라
266
도드통관(通官)이 와 닐오 외국 신이 밧그로 븟터 믈너가라 후일 맛당이 다시 인견(引見)리라 거 인여 믈너나 올 궐문 밧긔 니니 거매(車馬ㅣ) 구치 모히여시니 은 머리 다 이 여 좌우 화 셔시며 슈 좌우의 미만 (彌滿)고 태평챼(太平車ㅣ) 반은 되 프른 쟝과 거믄 쟝(帳)을 두고 에예 거믄 노흘 얽은 거 귀인의 배라 니대(大使ㅣ) 됴회(朝會)예 드러와 아직 파(罷)치 못엿가 시브더라
267
이날 노븟터광녹시[사](光祿寺)예셔 차하(上下) 식믈이 이시니 게유 일 슈 계(鷄) 일 슈 션 이 미(尾) 졔육(猪肉) 일 근 반 양육(羊肉) 일 쳑(隻) 타락(駝酪) 반 근 면(白麪) 반 근 황쥬(黃酒) 뉵 병 두포 이 근 침(沈菜) 삼 근 쟝(醬)의 넉 냥 쳥쟝(淸漿) 뉵 냥 된쟝 뉵 냥 쵸(醋) 십 냥은 날마다 통삼방(通三房)여 황육(黃肉) 냥 차(茶) 일 냥 화쵸(花椒) 돈 쇼금 냥 등육(燈油) 두 냥은 날마다 쥬 거시오 사과 칠십오 개와 니 칠십오 개 포도 칠근 반 능금 일십이 개 곳 통삼방(通三房)여 닷마다 쥬 거시니 날마다 쥬 식믈이 샹방은 여러 가지 더고부(副使)셔쟝(書狀)과 트 각 방이 다 다른 거 오직 날마다 차하 남기니 샹방(上房)은 삼십 근이오부방(副房)은 십칠 근이오 삼방(三房)은 십오 근이며 닷마다 쥬 실과 삼방의 돌녀 자 쓰니 이 즁(行中) 젼례(前例)러라대통관(大通官)삼 원(員)과압믈관(押物官)이십삼 원(員)이 일 각각 쥬 거시니 마리 졔육 이 근 면(白麪) 일 근 침 일 근 황쥬(黃酒) 일 병 두포 일 근 쳥쟝 이 냥 육(生肉) 너 근 쟝(醬) 너 냥 등유(燈油) 두 냥 화쵸 오푼 (采) 닷 돈 소금 일 근 나모 십 근이오 종인(從人) 삼십 명의 일 각각 쥬 거 졔육 일 근 반 면 반 근 침(沈菜) 팔 냥 쇼금 일 냥 황쥬 합여 여 병 등유 합여 십이 냥 나모 너 근이오 샹(賞) 업 종인(從人) 일칠십 명 은 일 각각 쥬 거 졔육 반 근 침 넉 냥 쟝 석 냥 쇼금 냥 나모 이 근이러라
268
각 방과 졍관(正官)과 샹(賞) 잇 종인(從人)과 샹(賞) 업 종인을 날마다 쥬 거시 이시니 삼신(三司臣)은 각 두 되식이오 기여(其餘) 각 되식이라 이곳 되가 아국(我國) 서되 되리라 더라
269
졍관(正官)이라 거 곳대통관(大通官)압믈관(押物官)을 니미니 (使行) 관원 슈 녜브터 삼십으로 졍여시니 삼신이 이 슈의 들며 어의(御醫)와 화원(畫員)과 샤관(寫字官)과 국방의원(局方醫員)으로 다 메오 이젼은 군관이 비록 이 슈에 아니 드나 샹 쥬 은(銀)을 화 다 지[치] 먹으며 기즁(其中) 샹 쥬 비단은 졍관 외예 참예치 못더니 근년은 샹을 호 젼례 업다 더라
270
샹 잇 죵인이란 말은 졍관 삼십 인에 죵인 나식 샹 쥬 명(名色)이 잇고 그 밧근 일 샹하의 합여 샹 업 죵인이라 니 샹은(賞銀) 샹단(賞緞) 말은 은으로 샹 쥬고 비단(緋緞)으로 샹 쥬단 말이니 샹이 업면 샹 업 죵인이란 일홈이러라
271
삼신의 찬믈(饌物)은 각방(各房) 셔(書者)들이 당여 자 약간 혀 먹으며 군노(軍牢)도 디고역·군관(譯軍官)의 냥찬(糧饌)은 군노(軍奴) 두 놈이 다 바다 졔 낭탁(囊橐)을 삼으니 군노의 구실이 극히 다한지라 젼브터 젼례(前例) 이럿타 더라
272
쟝무관(掌務官)조익진이 이날 져녁의 드러와시나 병이 오히려 낫지 못지라역관됴졍규로 환차(換差)니라
274
관의 머므다 황셩(皇城)남편의 셔문을 내여시니 졍남(正南)은졍양문(正陽門)이오졍양문동편은슝문문(崇文門)이오 셔편은션무문(宣武門)이라옥하관(玉河館)이졍양·슝문두 이의 이시니 관문(關門) 밧근 곳 셩 밋치라 너븨 오뉵십 보(步)의 지나지 못너라
275
관 동편의 집이 곳님졔춘의 집이니졔춘의 아비 쳐음 쟝질노 집이 부요(富饒) 후의 아국(我國) 포교(捕校) 튼 구실을 여 포 니니 사이 극히 근실(勤實)지라 산(生産)이 졈졈 요부(饒富)여 남방 션 마자 그 아졔춘을 글을 쳐 약간 글 지을 쥴 아라을묘년(乙卯年)의츈쳔부(春川府)향시(鄕試) 치니 각노(閣老)뉴령과급즁(給事中)왕챵이 문괴(文魁) 두 쥬어 문의 현판을 여시며 그 우흔 곳쳔과호국란 졀이오 관 셔편은 곳 한림(翰林) 번소(番所) 드 마을이니태(太學士ㅣ)오일(五日)마다 니러한림의 공부 권장다 며 이젼은 글 션 (使行)을 라 드러온 쟤(者ㅣ) 날마다한님번소(番所)의 드러가 더브러 시쥬(詩酒) 창화(唱和)더니 근년 이로 문을 막아 드리지 아니 지라 역관이 시독(侍讀)쟝문도(張問陶) 만나 슈쟉다가 아국(我國) 션 드리지 아니믈 무니 쳐음은 말을 아니고 져(趑趄)다가 구지 무니 답여 오한님(翰林)은 본대명(大明)젹 대가(大家) 손이 만흔지라 귀국 션 혹 슈쟉다가 셩명과 조샹을 무른 후 믄득 오 이 튼 명교의 손으로 엇지 아 머리 그며 외편 옷기 여 본됴(本朝)의 벼을 구뇨 니 듯 쟤(者ㅣ) 좌우 도라보아 답 바 아지 못여 얼골이 믄득 난연(赧然)고 괴로오믈 견지 못여 이후로브터 동뉴(同類)로 의논여 됴션사을 문을 막아 드리지 아니 니라 니 사괸 거시 엿고 말이 깁흐니 엇지 막 배 아니 되리오황셩(皇城)의 골목을호동(衚衕)이라 일니 이호동에 대개 만흔지라 이젼칙(勅使)로 나왓던아슉(阿肅)의 집과 후(侯) 벼과 (伯) 벼 사 집이 만흐며옥하교(玉河橋)알프로 븍편호동의 큰 집이 이시니 이화신(和珅)의 회군왕(群王)의 집이니왕야부(王爺府)라 일더라
276
관졍문은 신의 츌입 곳 아니면 쟝 다시며 문 밧 좌우 기동의 시 십이월 이십일 인(印)을 봉(封)고 졍월 이십일 인을 연다 여시며 두 편 담 우희 인친 됴희 븟쳐시니 금을[은](金銀) 매와 한만(閑漫) 츌입을 막은 공(公舍ㅣ)라 년젼(年前)은 문금(門禁)이 심이 엄여 사의 츌입을 갑군이 막아 임의로 왕치 못더니 근년(近年)은 관의 니므로븟터 나 날지 조금도 금 일이 업니 이 이젼 일과 다더라
278
관의 머므다 신은 톄모(體貌) 도라 보지라 젼(自適)으로 구경을 한만(汗漫)히 아니코 공고(公故) 의[외](外)예 관문을 나지 아니 니 캉(炕) 우희 홀노 안자 심히 젹막 만히 지내니 못 삼일 안 신부(新婦) 의(意思ㅣ) 이시며 촛(楚)나라 가도인 사의 모양이라 혹 두세 곳 구경 곳이 이시나 일 잇 당여 번도 시훤이 지내지 못 고로 관의셔 대궐 드러가 외예 눈의 뵈 배 업지라치형(致馨)은니 진(李 進士) 숑과니 검셔(李 檢書) 경인(景仁)을 조차 날마다 구경고 드러와 본 바 젼니 내 일긔예 누관(樓觀)과 산쳔(山川)과 승지(勝地)와 풍쇽을 긔록 배치형(致馨)의 젼 거시 만흔지라 이날치형이 비로소 뉴리챵(琉璃廠)을 귀경고 도라와 대강 뎐 식후의 쟝 나아가려 관 동편 담 져근 문으로 지나 아문(衙門) 알 나아가니 아문(衙門)은 곳대(大使)와졔독(提督)이 니면 안 곳이오 아문(衙門) 녑흐로 것거 집이 이시니 이통관(通官)의 머므 곳이라 아문 알 져근 담을 리오고 담 밧긔 문을 내여시니 관 안 잇 사이 샹하 무론고 신 외의 다 이리 츌입지라 계유 문을 나매 빗난 의쟝이 길 메여시니 둥근 부며 슈 노흔 긔(旗)며 호피(虎皮牌)와 슈졍(水晶牌)며 은으로 근 독긔와 금으로 근 졀(節)이며지쥬(知州)ː지부(知府)와 여러 대부(大夫) 가(加資) 네모지고 블근 칠 남긔 삭여 좌우로 드리워시니 의쟝(儀仗)이 못이리 이 버럿더라
279
쟝 오란 후의 가마 나히 지나니 샹하와 젼후 다 금으로 몃더라
280
둑게 집 지은 네 귀 들니고 큰 곡지 라시며 블근 휘쟝을 둘너시니 네 기동은 댱(帳) 밧그로 겻[셧]시며 기동과 댱 친 이 사이 가히 도라닐너라
281
늙은 겨집이 댱 밧긔 안자시며 븕은 옷 닙은 여 놈이 메워 완완(緩緩)이 지나며 그 뒤희 태평챠(太平車) 안 겨집이 만흔지라 긔이 향 길 득거 므니 님님졔츈의 의 혼인이라 니 대져 대국한(漢)인(人)의 [혼]례는 신뷔(新婦ㅣ) 신랑의 집의 니러 교(交拜)여 부부 며 만인(滿人)의 법은 신낭이 신부 친영(親迎)여 졔 집의 니러 경계다 이러라
282
님졔츈의 문 밧긔 니니 금안쥰마(錦鞍駿馬)와 경긔슈곡(輕車繡轂)이 구치 모혀시며 좌의(坐椅橋ㅣ) 만흐니 귀 손이 모힌가 시부더라
283
과 슈 직희여 셧 쟤(者ㅣ) 인믈이 호한(豪悍)고 의복이 션명더라
284
도로 관문 알플지나호동(衚衕)어귀예 지나니 살문을 그라니 문 모양 고 문우희졍양문(正陽門)셩근(城近)호동(衚衕)닐곱 시며 문 안 셩 밋흐로 간 집이 이시니 밤이면 갑군(甲軍)이 직희여 만일 사이 츌입면 거쥬(居住)와 셩명을 무 이오 문 안의 왕 쟈 일도 업다 니 이황셩(皇城)호동이 다 이 모양이라 더라
285
이 문을 지나 슈십 보 매 곳 젼방(廛房)이 이시며 큰 길 니니 이 곳졍양문(正陽門)안히라졍양문(正陽門)븍편으로대쳥문(大淸門)이 이시니 이 대궐의궁쟝(宮墻)졍문이라 삼문(三門)을 세오고 누른 기와 니워시며 앏흘 셕(石冊)을 여 둘너시니 셕(石柵)이 면이 방졍(方正)여 안히 면이 뵈 될 며 셕 동셔로 두 간 동안 왕 길흘 내여 보(步行)이 니고 거마(車馬) 막으며 동셔 각 슈 보식 지나 표묘(縹緲) 문(牌門)이 이시니 동(東)은 부문(富文) 두 (字) 고 셔흔 진무(振武) 두 시며 대쳥문(大廳門)의셔졍양문(正陽門)의 니히 삼 보의 지나지 못며 큰 길 좌편 우편의 젼방(廛房)이 이시며졍양문안셔 면을 둘너보 졍졍방방(正正方方)여 금벽(金碧)이 됴요(照耀)며 거마와 인이 문의 메여 슈 박회 소 벽녁(霹靂) 트니 지쳑의셔 말을 셔로 못너라
286
문을 나니 문 졔되(製圖ㅣ)졍양문과 다미 업나 옹셩(甕城)을 모지게 고 남(南)과 동셔(東西)의 다 문을 내여시니 남문은 샹해 구지 다시며 네 층 문뉘(門樓ㅣ) 됴양문(朝陽門)젹누(敵樓)와 트며 동셔 문누(門樓) 다만 층이러라
287
동편 문을 조차 여 남편 큰 길노 것거 나가 큰 돌다리 이시니 다 슈 가히 셔 갈 거시오 좌우 셩난(城欄)이 졔되(製圖ㅣ) 졍교며 다리 지나 큰 문(牌門)이 이시니 금로졍양교(正楊橋)세 더라
288
문 밧근 다 젼방이라 셔흐로 골목을 들 길 너븨 세 거의 남지 못고 온갓 젼방이 셔로 여시니 파 거시 젼혀 긔괴 보(寶貝)라 금옥과 산호와 슈졍과 오동(烏銅)과 호박으로 각 공교 긔명(器皿)과 노리개 그라 네모진 그 너코 뉴리로 두예 그라 덥허시며 필통과 향노와 일홈 모 즙믈(什物)이며 옥으로 븟쳐와 신션을 그라 와 범과 사과 코기리 빗 조차 금옥으로 삭여 시니 바 아지 못나 이 즙믈의 거신가 시부며 버려 노흔 거시 극히 졍졔(整齊)여 사의 눈을 놀내며 젼방(廛房)마다 길의 지나 거울을 당즁(當中)여 거러시니 알 버린 것과 여 잇 젼방과 지나 사이 형형이 다 빗최니 눈이 현황(炫煌)여 이로 볼 길이 업며 예 지나 뉴리챵(琉璃廠)의 닷토록 젼방(廛房)이 히인 곳이 업고 힌 믈화(物貨) 일호 일홈을 형샹 길이 업더라
289
뉴리창은명(明)젹동창(東廠)이라 일던 곳이라호동어귀예 니문(里門)이 잇고 문을 들매 져이시니 각각 당호(堂號) 명(名色)을 화슝슈당·문슈당(文殊堂)·셩경당(聖經堂)·명셩당(明星堂)·문셩당(文星堂)·뉴당(裕堂)·셩당(聚星堂)·대쵸당(大招堂)·유무당(有無堂)·문무당(文武堂)·영화당(英花堂)·문환(文換齎)합 열세 져라 다 두 겹 집을 짓고 안밧그로 여러 탁(卓子) 면으로 놉게 하시며 집 우희 누(樓) 라시니 져의 힌 거시 슈만 권이 지날지라 목녹(目錄) 샹고 반명젹 이후 문집(文集)이오 셩셰예 유익(有益)이 될 거시 만흐니라
290
젼의 듯도 못던 배라 아국(我國)의 법이 마다 이젼 나온 거 구기예 아국(我國) 사을 만나면 갑 만히 블러 빗오니 아국(我國)의셔 귀히 너기가 짐쟉 일이라 이 져 외예 두세 곳이 이시나 죡히 보암즉지 아니며 져 다 아국(我國)동의보감(東醫寶鑑)을 고이 장(粧冊)여 세네 길 업 곳이 업니 피인(彼人)의 귀(貴)히 너기 가 시브더라
291
안경포(眼境舖)와 셔쳡포(書帖舖)와 그림 푀(舖ㅣ) 여러 곳이오 각양 믈화(物貨) 일홈을 표하여 (牌) 세워시니 비록 슈월(數月)을 지내여도 두로 볼 길이 업며 창시(唱戱) 노과 환슐(幻術) 구경이 이 곳이 만흔지라 사의 엇게 셔로 갈니이며 슈 박회 셔로 치이며 길이 통치 못니 왕왕이 슈 앏히 막히여 식경(食頃)이 넘도록 머므러 셧지라 슈예 안 쟤(者ㅣ) 손의 을 들고 반 권을 나마 보니 인픔의 조급(早急)지 아니믈 가히 볼너라
292
비록 귀인이라도 알 섯 쟤(者ㅣ) 지낸 후의 지나고 벽졔(辟除) 일이 업더라
293
셔편으로 호동을 조차 도라오니 이곳은 좌의교(坐椅橋)와 태평챠(太平車) 며 파 푸(舖子ㅣ)라 이외예호동이 진(盡)토록 (牌)의 인 두 다라 여라믄 푸(舖子ㅣ) 남으니 믈화의 만흐믈 알너라
294
푸의 드러가니 이 등(燈) 푸(舖子ㅣ)라 임의 근 거 슈십 간 푸의 쥴을 고 거러시며 야흐로 그 거 바탕과 각양 믈건을 분분이 다라시니 젼혀 뉴리와 양각(羊角)이며 사로 른 거시 십분의 일이 못 되이 둥글며 모지며 댱단대쇼(長短大小) 이로 형샹을 긔록지 못며 령농휘황(玲瓏輝煌)니 긔관(奇觀)이오 쥬류(酒樓)의 니매 오륙십 간 푸의 간마다 네모진 탁 노코 면으로 반등(伴燈)을 노하시니 사이 다엿도 안시며 여닐곱도 안잣고 탁의 버린 각 보보와 나믈이며 쥬루란 거 졔육(猪肉)을 가늘게 흐러 쵸(炒) 거시오 기단가오란 거 의 알노 근 거시라 의 앏마다 병(甁)을 둘도 노코 세넷도 노하시니 병 슈로 갑 바드며 차(茶)과 향노 각각 나식 노하시며 푸 녑흐로 여러 다리 세워 집으로 오게 여시니 그 우도 아와 가지라 풍뉴와 노래 소 히지 아니며 문 밧긔 마금안(白馬金鞍)이 만히 뫼혀시니 번화 긔샹이라황뎨긔(畿內)예 거동면 큰 쥬류(酒樓)의 긔명(器皿)과 음식을 게 여 죵관(從官)이 사 먹게 다 더라
295
치형(致馨)이 질 도라본 바 니며 오 도라오기 닛고 구경더니운오황셩(皇城)문 닷 법이 날이 어둑면 곳 닷 고로 년젼의 여긔 푸와 인가의 외 사을 임의(任意)로 브치지 아닛 고로 사들이 구경의 탐여 진 쥴을 닛고 잇다가 밋 문의 니매 단지 오란지라 부치 곳은 업고 극한(極寒)의 한둔 길이 업고로 문 직힌 갑군을 블너 통니 갑군이 그져 잇지 못여병부(兵部)로 보(報)니병부의셔황뎨긔 뎐쥬(轉奏)여 밤즁의 뉴문(留門)고 드렷다 며 가기 쵹기의 대겁(大怯)을 내여 밧비 왓노라 며 두어 가지 을 비러 왓시니과록(科事錄)과쳥시별(淸詩別裁)와당시픔휘(唐詩品彙)로 빌니라 대 님쟤 조금도 지란(持難) 의(意思ㅣ) 업더라 니 이 대국지풍(大國之風)이러라
296
츈귤(春橘)과등(橙)을 각 나식 가져 와시니등은광셔(廣西)셔 나고츈귤(春橘)은쟝님셔 나 실과라등이귤(橘)의셔 몸이 더 곱고 마시 고 향긔롭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