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관의 머므다 통관계문(啓文)이 드러와 보거 내 그 셩을 무른대 답왈 나 본 됴션 사이니 팔 조대영(大榮)이 빌[비로]소즁국의 드러왓지라 오히려됴션텬안고을노 셩관을 삼으나 실즉달셩셔가(達成徐哥)로라 여 이쟤라 니 일가란 말이라 우읍더라
3
졔 하나비셩[셔]종(徐宗孟)이통관으로 아국의 여러 번 나오고 아국 말을 잘 더라 며계문이통관즁의 쟝 말을 잘다 나 슈쟉매 모 말이 만흐며 나 말마다 라 일며 오 나됴션말을 자셰히 아노니 호소며 옵시오 며 여라 며 여러 가지로 아노라 니 대져통관의 말이 신려 혹 진지 먹엇냐 며 하인려 밥 잡소 니 이런 말이 무슈지라계문은 비록 이 든 아니나 변변치 아니더라
4
대통관왜극졍(倭克精額)은 본의쥬김가니김간의 지친(至親)이라 쥬 보며 샹법을 아노라 여 관즁 사을 만히 보앗다 며 어졔치형이아문을 지낼통관태평뵈인고 셩을 무른 후의 홀연 머리 두루고 작(作色)여 오 동셩(同姓)이 심히 귀지라 그러나 그 나 일이 업고셔장(書狀)도 보기 쳥(請)치 아니니 동셩지의(同姓之誼) 어 잇뇨 그됴션사이오 나 대국 사이라 셔로 아라 긴(緊)치 아니나 이치 니 극히 애다 거치형이 답여 오 내 즐 쥴 어이 모로리오마 나 돈이라 츌입이 셔어(齟齬)여 미쳐 못미오셔장(書狀)도 그 잇 쥴을 임의 아지라 그 드러와 기 기리되 아니 드러오니 심히 셥셥이 너기더니 그 말이 이 트니 내 쟝 엿오리라 고 지나갓노라 더니 오날계문이 드러오 함긔 오지 아니니 대져 팔쵸 인믈이라 더라
5
역관들이대통관을 대감이라 고지통관(之次通官)들을 대령감(大令監)이라 일니 이리 아니면 노여 져희 업슈히 너긴다 며지통관으로대통관이 되면 대감 되엿노라 깃거다 더라
6
내 캉 동편 담 밧긔 즁 역마(驛馬) 쇄마(刷馬) 다 말독을 박고 곳비 여 머기되 쇄마 먹이 거시 변변치 아니 지라 밤마다 노히여 다른 여믈을 토며 여러 샹(私商)의 두른 슈슛대 드니 밤이면 싸오 소 관 안희 진동여 을 로 놀며 구인(驅人) 놈들이 짐즛 졔 을 노화 의 녀믈을 먹게 다 더라
7
이젼은 일 인매(人馬ㅣ) 다 관 안 이셔 견기 어렵더니 근의 관 마즌 편의 뉵칠 간 집을 지어 뇨화 잇기의 져기 낫다 더라
9
관의 머므다 부역뎡현이샹 뫼시고 낙후(落後)엿더니 이날 새벽의 믄져 니러 샹방(上房) 일이 식후의 맛당이 드러오리라 니 일역관과 부 삼방(副三房) 군관이 다 마자 드러오니 여러 날 기리다가 일이 둥글게 모히니 심히 다나샹병환이 오히려 쾌치 못지라 슈말(首末)을 셰히 드니 낙후던 날노브터 슈일을 즁히 지내고 쟝 날 교(雙轎)의 화텰(火鐵)을 과히 여 이 다 더여시 슈일을 지 못더니 감긔 져기 플닌 후 비로소 아푼 쥴을 고 본즉 다 버셔졋지라 일노여 역(行役)이 간신(艱辛)엿더라
10
슈역(首譯)이 진신녹(縉紳錄) 네 권과 즁츄비람 두 권과 시헌셔(時憲書) 권을 어더 드리다
12
관의 머므다 광녹시(光祿寺)로셔 송(賜送)심황어(鱘鰉魚) 마리 보내여시니 길이 바리 남고 머리 며 비늘이 가고 마시 심히 두터오니 곳 븍(北海)셔 나 고기라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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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의셔 비러온과록은 션 과거 본 글을 모든 거시라
14
시 녯일노 졔 내여 오던 이십구 뉼시와 쥴글은 셔의 졔 내여 아국과 튼 글이며 쳥시별(淸詩別栽) 쳥나라 시 모든 거시니 태샹황뎨 셔 지엇지라 셔에 오습덕잠(沈德潛)이 국됴(國朝)의셔 셔 그 문집의 빗내고져 니덕잠이 늙엇고 시 잘기로 특달(特達) 지우(知遇) 바다시니 쳥 바 맛당이 허치 아니미 업지라 인여 글을 나와 대강 보니 읏듬의 버린 글이 곳젼익겸(錢謙益)여러 이라 짐(朕)의 셔 구치 아니면 짐이 맛당이 뭇지 아니려니와 임의 짐의 셔 구즉 쳔츄의 공논(公論)이 히여시니 아가히 분변 아니치 못 거시라 믈읫 본됴(本朝)의 거여 망녕도이 젼됴(前朝) 각 쟤 어즈러온 셩이라 국법이 잇고 몸이명나라달관(達官)이 되여 다시 본됴 셤기믈 가온대 달게 너기 쟤 비록 일시 권되(權道ㅣ)나 초(超邁)의 고 괴 폐치 못 배라 그 사을 알기 요구즉 인 아니라 그 시가 스로 이시니 듯기 가거니와 아 본됴의 여러 사의 읏듬을 삼은즉 가치 아니코덕잠의게 잇셔 더옥 가치 아닌지라 시란 거 엇딘 거시오 츙셩과 효도 이라 츙셩과 효도 나 시 말면 내 그 시가 된 쥴을 아지 못노니익겸여러 사이 츙셩이라 랴 효되라 랴덕잠이 맛당이 깁히 이 의리 알 거시어 이졔 바 녯날 시 말던 되 아니라 엇지 그 늙으 망녕되고 거치며 식이 집을 잇지 못며 문하의 션들의 의지며 남의긔 부치 쟤 큰 의 알며 은 눈을 츤 사이
15
업지라덕잠이 미쳐 셔히 피지 못여 그러여 이 글이 난즉덕잠이 일 글 닑 일홈이 믄허질 거시니 짐이 야흐로덕잠을 위여 앗기니 엇지 능히 됴하 바의 아당며 셔(序) 리오 뎡명셔라 사은 황고(皇考)의 닐은바 명교(名敎)의 죄인이라 이 곳쳐 맛당이 너치 못 거시오 신군왕은 곳 짐의 슉뷔라 비록 졔왕의 스로 엿 글과 밋 됴졍 샹소의 일홈을 니 이 이에 국가의 법졔나 그러나 오히려 아 일홈을 브지 못거덕잠이 본됴의 신로 엇지 맛당히 그 일홈을 바로 리오 셰졔(世代次第) 젼후 그 버린 쟤 더옥 가히 낫낫치 들 길이 업지라각한님(內閣翰林)을 명여 버리여 두 거 졍히 샹고여 여금 다시 판의 사여 셰샹의 게 니 덕잠을 (栽培)여 셩 배오 내덕잠의 쳥을 조차 위여 셔 지은 배라 여시니건륭(乾隆) 이십년신지월(辛巳之月) 어필(御筆)이러라
16
덕잠의 고니쟝쥬사이오 벼은녜부 샹셔(禮部尙書)라 나히 일삼 셰의 죽으니라
18
관의 머므다 주사의 부(付子ㅣ) 니니 오됴션셤나(暹羅)두 나라 신이 경(京師)의 니럿지라 홍노시(鴻矑寺)의셔 본월 이십팔일 시의 년녜(演禮) 거시니통관이냥국 신으로 더브러 당일의홍노시로 니러 기리라 여시니홍노시(鴻矑寺) 됴회(朝會) 졀 가음아 을이오 년례란 말은 습의(習儀)라 니른 말이라 외국 신이즁국녜졀을 아지 못다 여 초일일 됴참(朝參) 위의(威儀) 미리 이기게 미라 지기의통관이 화즁당(和中堂)의 지휘 뎐여 오됴션 샹만일 임의 드러왓거든 이십팔일의 맛당이 인견 거죄(擧措ㅣ) 이시리라 거 임의 드러온 으로 답여 보내다 이날은 곳 오일 과실을 쥬 날이로 번 드린 후 군노 두 놈이 약간 방하인(房下人)을 쥬고 졔가 다 먹으니 이 젼례라 더라
19
계문(啓文)이 식후의 봉회회포도(回回葡萄) 가지고 드러와 오 만셰얘(萬歲爺ㅣ) 송(賜送)신 배라 니 아국 지(白紙)로 봉지 글아 너허시며 그 근 남즉지라계문이 닐오 이 젼례 송이 아니라 곳 황샹의 특은(特恩)이라 며역관도 닐오 이거 근 드믄 송이라 더라
21
관의 머므다 심양(瀋陽)으로녜부(禮部)의 니문(移文)여 오됴션도총경녁(都摠經歷)윤민동이 표인(漂人) 십오 인을 녕(領)여 문(咨文)을 가지고 드러오니 역 고 신과 쇼통 일 인과 죵인 삼 명과 마부 삼 명과 합 아홉 사이라 여시며 표인양영이 즁노의 병 드러 여러 날 믁다 니역관이 이 므드로 알외더라
22
역관들이 이 나라 매 놈을 샹고(商賈)라 니 소위쟝샹고신샹고니 가쟝 큰 샹괴라쟝가(張哥) 본검거사으로셔븍경셔 매여 믈이 만금이 고향으로 도라가지 아니고 슈 삼 년의 번식 단녀온다 며 셔반(序班)과 져근 쟝 잡된 믈화 가지고비쟝(裨將)과역관의 캉(炕)으로 단니며 팔기 구며 향과 과 필믁을 셔반의예 매 허치 아니고 젼인의 거 게 갓다가됴션사의게 니 먹지라 이런 고로 다른 쟝 팔 의 못며 셔반이 심히 피기의 하인들도 밧긔 가 사지 못지라 은 아니 사거니와 향과 필목을 각 캉 사의게 사라 여 려 의 이시면 여러 가지 쥬고 갑 의논 일이 업며 다만 의 가지슈 긔록엿다가 나기 님시(臨時)여 갑시 얼마라 고 달나 니 긔(行期) 박두(迫頭)지라 닷토지 못고 달나 로 쥬니 이런 고로 초두(初頭)의 갑 졍치 아닌다 더라
23
셔반은 다쥬의 마인(馬人) 구실이니 본 남방 사으로 시기 고로 황셩의 오 머므러 니(生理) 간신(艱辛)지라 약간 매 니(利)로 구며 (使行)이 니면 세네 가지 믈화 니 남긴다 며 셔반이 국은으로 지현(知縣)벼을 여 간다 더라
24
년젼 의 홍삼 갑시 근의 삼냥이 되고 가을 황녁(皇曆)의 뉵냥이 되엿 고로 이번도 갑시 칠냥의 니럿더니 밋 황셩의 니신가(申哥)·쟝가(張哥)두 샹괴 샹지(相持)여 지 아니코 삼오십냥을 바드라 니역관들이 다 쟝 지라 바 아지 못다 더라
26
관의 머므다 시 량의 삼 신이 졍관(正官) 이십칠 원을 거려 사모 관 갓초고홍노시(鴻矑寺)년녜(演禮)의 나아갈홍노시(鴻矑寺)녜부 조금 못 밋쳐 이시니 마을 졔도녜부와 고 텽(大廳)은 셔향여 잇더라
27
습의(習儀) 곳은 대텽 븍편의 이시니 조고만 문을 들 이 퍽 느르고 남향여 세 문을 세워시니 졍문의 뇽뎡(龍亭) 두 시며 좌우로 세네 간 익낭(翼廊)이 잇고 두어 층 셤을 놉히 무[두]엇더라
28
외편 익낭의 드러안자 져기 더니 이윽고녜부샹셔 겸 홍노시경(禮部尙書兼鴻矑寺卿)긔균(紀呁)이 드러온다 니 알 쟤 셔고 알도(喝道) 소 놉히 지며 그 뒤긔균이좌의교 고 드러오니 뒤 죵쟤 칠팔 인이며홍노시(鴻矑寺)쇼경(小卿) 두 사이 알도고 니러 다 대텽 남편 져근 캉의 드러가 안고명찬(鳴贊)두 사이 나와뇽졍문두 편의 갈나셔명찬은 아국 챵인의(引儀)벼이라 인여 문을 열고 문 알 졍 이시니 현판의습녜졍(習禮亭)세 시며 뇽(龍牌) 세워시니 금로 황뎨만만셰라 더라
29
졍 졔되 팔면이며 누른 기와 이워시니 집말니 우산 벗친 모양이러라
30
가온대 좌우로 프른 돌노 근 (牌) 세오고 오 간을 믈너 두 로 세워시니 이 반렬 위(位次) 표미러라통관이 삼 신을 인도여 동편 알프로 쥴의 세오고 그 뒤 이십칠 졍관(正官)이 졍여 삼 신이 셔시며 죵관은 쟈도 업더라
31
명찬이 올흔편의 션 쟤 소 놉혀 니 버례라 니 아국의 나오란 말이라 이에 조차 반녈을 졍졔히 대 외편의 션 쟤 부로 야쿠래라 니 아국의 난 말이라 일졔히 러안 후의 좌우명찬이 셔로 라 세 번을 브 헌키쾌라 니 아국의 졀란 말이라 대국 졀의 허리 굽히미 아니라 두 팔을 느리고 머리 다미니 이치 세 번을 시긴 후의 도로 니러섯다가 년여 챵을 응(應)여 세 번 며 아홉 번 머리 다히니 이 니론 삼궤구고두(三軌九叩頭)라 죵의 부 버드레라 니 이 아국의 믈너가란 말이니 이에 니러셔 뒤흐로 두어 거름 거러 몸을 둘너 례로 나오니라 챵 소 놉고 으 쳥에(淸語ㅣ)라통관이 좌편의 셔셔 아국 말노 그 소 라 블너 알긔 며 이젼은 습례(習禮) 날 졍제치 못다 여 셔너 번을 남아 시기더니 이번은 심히 졍졔타 여 번을 시긴 후 곳 파니라
32
이날 셤나(暹羅) 샹 병드러 참예치 못다 여 삼 신과 밋 죵인 네 명이 드러와시 다 얼골의 병이 이셔 보기의 심히 위름(危懍)지라 대개 나라히 극남의 이셔 겨을이 칩지 아니 고로 다 겹옷 닙고 소음과 피믈을 닙지 아녀시니 븍방풍한(北方風寒)의 엇지 병이 업리오 신도 용뫼 용녈(庸劣)며 죵인은 거번(去番) 밤의 보던 바의셔 병이 드럿지라 얼릇 보 니(魑魅)와 다미 업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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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히 황셩셔 여러 이 되며 바다흐로 조차 슈쳔 니 지난 후의 비로소 뭇 오다 며 풍쇽이 나히 십 곳 되면 조금도 셩을 내지 못 법이니 만일 노여 셩을 낸즉 사의 밀니여 인류의 참예치 못지라 이런 고로 십 후 돌연히 남의게 대욕(大辱)을 보와도 목인치 잠잠여 다만 우 이라 니 극히 이샹 풍쇽이며 이번 드러온 네 신 즁의 세흔을묘년의 드러왓던 사이라 만일 외국의셔 사이 두 번 드러오니 엇진 의 쥴 모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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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셩명과 방믈(方物)을 모른 졍공(正貢使)[주:샹(上使)]는바아쥰흘슌탄아압[주:이픔 벼 일흠이라]납곡[주:셩명]이오 부공(副貢使)[주:부(副使)]낭와문손이하[주:삼픔 벼 일흠이라]악팔졸[주:셩명]이오삼공(三貢使)낭팔칭납비[주:픔 벼 일흠이라]믄져돌[주:셩명]쇼공(小貢使)곤비필과[주:오픔 벼 일흠이라]판[주:셩명]이오통(通事)뇌봉졍과학금픔두 사이오 죵쟈 열아흡 사이며 황뎨 밧치 방믈은 번셔(梵書)로 금엽(金葉)의 표문(表文) 도(道)와 표문 너흔 졍 좌(座)와 뇽연향(龍涎香) 근과금강찬(金剛鑽)닐급냥과상빙편(上氷片) 근과교향(白膠香)일 근과강진향(降眞香)삽 근과침향(沈香)두 근과단향(白檀香)일 근과즁빙련(中氷片)두 근과쟝뇌(樟腦)일 근과대풍(大風子)삼 근과두구(荳蔲)삼 근과필발(篳茇)일 근과계피(桂皮)일 근과갑밀피일 근과됴피뉵 쟝과공쟉미(孔雀尾)일 와샹아(象牙)열두 즁이 삼 근이오셔각(犀角)여과셔양홍포(西洋紅布)열 필과셔양담(西洋毯)두 좌와오목(烏木)삼 근과소목(蘇木)삼쳔 근 합 스믈여셧 가지오 황궁의 드리 방믈 명(名色)이 이시니 가지슈 황뎨와 트나 근냥이 반을 감여시니 황궁이란 말이 황후 니른 말인가 시부더라
35
쥬의 부 오니 오 본월 이십구일의 황샹이태묘(太廟)의 졔 지실 의 됴션국신이 맛당히오문알 니러 지영지숑 거시니 일 오경의오문(午門)앏쥬됴방의 니러 기리 죵인을 만히 리지 말고 엄슉며 고요 거 히며 지영(祗迎) 후의 즉시뇽죵문밧긔 니러즁화궁잔 참예에 황지(皇旨) 기리라 엿더라
37
관이 머므다 오경 두(頭)의 삼 신이 죵관 오뉵 인을 거리고홍노시(鴻矑寺)알플 지나 남으로 것거 궁쟝 밧그로홍문(紅柵門)으로 드니 됴관(朝官)이 이리로 조차 츌입 곳이라등표문이란 문으로 말아마 야텬안문으로 드니 이 문은 궁쟝 남편 졍문이라 홍예(虹霓) 틀어 문을 내여시 문 밧그로 문 안 니기 뵈 남을지라 굴속의 드러가 모양 트며 우희 두 층 문을 셰웟고 문 안밧긔 각각 셕쥬(石柱) 식 세워시니 뇽의 형샹을 삭여시며 놉희 열 길의 지나고 면의 구름과 뇽을 삭여더라
38
경텬쥬(擎天柱)라 일며 예 지나단문(端門)이란 문이 이시며단문을 지나오문(午門)이란 문이 이시니 문 우 누 세오고 좌우의 각 두 문이 잇고 문마다 누 세워시니오봉누(五鳳樓)라 일더라
39
셔편 월랑(月郞)의쥬됴방이 잇지라통관이 인도여 셔로 왕여 됴신의 츌입 쟤 다 등(橙)을 드러시 각각 마을 일홈을 셔로 기 게 엿더라
40
등 혜기 젼의오봉누샹(上)의 붑치 소 나 아국의 오고(午鼓) 치 소 더라
41
쳔관(千官)이 단문 안희셔 후(待候) 쟤 분쥬여 반녈을 졍졔거 삼 신과 죵관이 어가(御駕)의 니러 두 쥴노 셔니셤나신이 녑 셔시며녜부 샹셔긔균이샹우 압반(押班)엿더니 삼 신을 낫낫치 셔히 보고 내 손을 잡아 흔드러 모양 트니 이 인 녜(禮)라 더라
42
이윽고 오(五色) 양산(陽傘)과 그림 그린 둥근 부 두편으로 느러셔고 양각등(羊角燈)의 블을 혀 일시의 드니 초 욕쵸(肉燭)요 대 야 드러시 의쟝(儀仗)과 등이 나아가 일이 업고 자리 졍여 움기 일이 업더니 이윽고 양산이 단문 안흐로 나오니 그 졔되 누른 바탕의 약간 거믄 운긔(雲氣) 그려시니 바로 보매 검고 누 빗치 셔로 녕농며 구븐 로써 밧쳐시니 그 길희 두 길 넘지라 사이 드러시며 뒤 사이 이셔 자초의 쥴을 잡아시며 고 나오 쟤 여라믄 사이라 안장의 안자 약간 국궁(鞠躬) 모양이 잇더니 누른 가매 문의 나니 알 촉농(燭籠) 이 이실 이오 다른 거 뵈 배 업더라
43
길 셔셔 후(待候)던 관원과 아국 신이 일졔히 러 안자 두 손을 느리치고 눈을 리 조금만 소도 업니 좌위 슉연지라 다만 박셕 우희 소 늉늉더라
44
누른 가매 아국 교의셔 크지 못고 금으로 근 기동을 휘댱(揮帳) 밧그로 세워시니 사이 도라닐 만며 휘댱이 누른 비단이오 두 편의 뉴리 븟첫지라 가온대 쵹블을 혀 밧긔 빗최엿더라
45
가매 지나며 약간 등의 블을 즉시 며 대 누이니 뒤 시위(侍衛) 어두온 은로 조차 라 가니 그 뫼 극히 간략더라
46
거동 후의 도로 셔편 월랑의 안잣더니 날이 새고져 의단문문누이셔 븍을 치 소 나며오봉누(五鳳樓)의셔 쇠븍을 쳐 셔로 응거 삼 신이 도로 쳐음치 길 셧더니 날이 임의 새매 쳔관(千官)이 지영(祗迎) 반녈의 잇 쟤 셔로 왕여 못 졍졔(整齊)치 못며 갑군(甲軍)이 담대 믈고 지져괴거긔균이 크게 소여 지져 오 외국 사은 반녈이 졍졔여 이 거 너희 이와 다니 너희 왕법을 두리지 아닌다 니 됴관들은 즉시 다 반녈의 나아가나 갑군은 겁내 거동이 업며 담대 급히 지 아니니 분의(分義) 젼혀 업다 니너라
47
균의 나히 닐흔다시로 오히려 강강(康强)여 쇼년 트며 소 큰 븍소 더라
48
져기 오란 후의 풍뉴 소단문밧그로 졈졈 갓가와 오매 쥴과 대로 근 풍뉴요 경쇠와 쇠븍이 알 셔시니 그 소 고 느리 귀의 기니 놉흐락 즈락여 므 곡 잇 나 아국과 도히 다며 황뎨 나갈 의 업더니 드러올 졔야 풍뉴니 본 졀 그러가 시브더라
49
환궁 위의(威儀) 츌궁(出宮)과 가지오 가매 삼 신 안즌 곳으로 지낼 쵹블 아 황뎨 몸을 움겨 뉴리 안흐로 밧글 보 모양 트며 므 어음(語音)이 들니지 아니터니 녑 시위 사이 홀연 마 아 소 고 얼골빗치 싁싁여 밧그로 향여 손의 혁을 거너 가마 녑흐로 로다가 이윽여 다시 아 소 고 믈너 반녈의 나아가 섯더라
50
가매오문을 들통관이샹부 인도여 가마 뒤 라 인도여늉죵문밧긔 가 후(待候)고 나 즉시 려오니셔쟝(書狀)의 소임은즁어(行中御使ㅣ)라 비록 일홈은 신과 치 문(咨文)의 나 지영(祗迎) 외의 범간공(凡幹公事)의 참예 아니더라
51
단문을 날 코기리 다시 문으로셔 나오니 묏더미 움겨 오 듯지라 금안(金鞍)을 짓고 누른 보 덥허시 안쟝 가온 금으로 가마 쥬키리쳐로 크게 그라 안쳐시니 그 놉희 두어 자 엿지라 이 슈 쥴을 게 거시러라 코기리마다 븕은 옷 닙은 사이 목에 고 안자 쇠갈고리로 코기리 니마 어 다릐여 졔어(制御)니 혹 가족이 샹여 피가 나다가 별 곳 보면 즉시 아믄다 니 이 말은 밤 곳 지나면 아믄단 말이러라
52
코기리 나흔 사이 지 아니코 아셔 으니 아 세 살 먹은 아 션 모양이러라
53
길희 두 길희 지낼 듯고 놉히 두 길이 될 듯니 삼긴 거시 다븟터 극히 뇌실(牢實)고 코히 길기 다코 엄니 좌우로 다엿 자식이나 밧그로 벗쳐시니 크기 두 줌의 너므며 코기리 두 편 엄니 틉으로 혀시니 질니여 니기 어려온 연괸가 시브더라
54
눈이 톄(體)보다가 심히 젹어 쇠눈만 고 아 입시울기 코 아 드러시니 코긋치 부리 고 귀 크기 키만 여 앏흘 드리워시니 거름마다 움기더라
55
털이 심히 모드여 업 것 고 빗츤 빗치오 리 졀너 무희 츼며 다리 세 오 발의 다 톱이 이시 톱마다 굽이 달녀시니 크기 솟두에 트며 발을 옴겨 노흘 젹마다 히 으스러질 듯며 굴네와 밀치 쥬홍로 두 줌의 넘게 드려 금으로 쟝식고 함박쇠 쳥홍 두 빗츠로여 박아시니 크기 가마만 며 등도 금으로 글고 쥴도 쥬황로 엿더라
56
아국 사 외예 피인도 갓보 쟤 만흐니 큰 됴회와 거동 외의 내여오 일이 업가 시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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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갓가이 가면 으 쟤 금거 므니 치 셜고 맛지 못던 사은 코 둘너 치며 즉의 죽다 며 먹이 집단의 보리 너허 무 뭇거 코 아 노흐면 코흐로 집단을 안으로 구을녀 점점 올녀 입의 너허 먹다 매 코 드리웟다가 거두치면 왼편으로 둘넛다가 올흔편으로 둘너쳐 업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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젼의 드로니 코기리 남방의셔 나 즘이라 함졍을 노하 잡은 후의 황뎨 됴셔 닑어 들니면 머리 슈겨 슌히 좃 거 함졍의 내여도 조금도 거 일이 업고 머리 슈기지 아니면 이 기치 못 거시라 즉시 죽인다 니 령 즘이오 코히 별노 긴 고로 아국 사이 코기리라 가 시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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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을 지나매 지영던 됴신이 만흔지라 피인은 비록 존귀나 하인이 븟드 일이 업고 신은 절의도 나들 젹 하인이 조차 녑흘 븟들어 왕며 톄모(體貌) 직희여 이국 소시(所視)의 상업 시 못 고로 머리 고초고 거름을 리워 눈을 놀니지 아니여 피인을 거듧 보지 아니니 녑흘 지나며 마조 오 쟤 벼이 노픈 이라도 머므러 셰히 보며 혹 져흿기리 슉덕여셤나관이라 니 므 벼인고 말이며 오치면이라 니 톄뫼 됴탓 말이며 년칭지귀인이라 니 나히 졀믄 귀인이란 말이라 혹 녑흘 라오며이엄(耳掩)과각(角帶) 귀경며 셔로 지져괴니 대개 됴타 말이 만코 형용이 블워 의라 나 져희들 보 일업시 지나오 에워 둘너 귀경 쟤 만흐니 심히 괴롭더라
60
단문밧그로 나 텬안문을 못 밋쳐 동편으로 문이 잇고 문의 태묘가문(太廟嘉門)이라 여시며 문안히 심히 널고 슈목이 울연(鬱然)니 이 종묘 잇 곳이니 황뎨 거동엿 배라 절문을 나와 오던 길노 도로 올공부(工部)와홍노시(鴻矑寺)와태의원(太醫院)서너 아문(衙門)을 지나대쳥문셕(石冊) 밧그로 것거 지나니대쳥문왼편 협문(夾門)만 져기 여럿고 거믄 옷 닙은 두셰 사이 직희엿더라
61
샹부관의 도라온 후의 입시(入侍)란 졀 셔히 드니오문으로 드러뇽죵문(隆宗門)밧긔 의 안즈니샹 안미 편치 못고 새벽브터 비쳣지라 견기 어려워 박셕 우희 녑흘 의지엿더니마으라기슈졍증단 사이 니러샹 쳐부려 므 병이 잇냐 거 답니 곳샹부 쳥여 됴방(朝房) 더온 캉의 안치고 그 사이 마조 안즈며 캉 안 교위(交椅)의 안즌쟤 다망뇽의(蟒龍衣)며 산호증라 극히 귀 벼인가 시부더라
62
셔로 우며 므 말이 이시나 아지 못며 차 권더니 이윽여통관이 인도여뇽죵문으로 드러슈방(修方齋)란 집의 니니건쳥궁(乾淸宮)근쳐라 박셕이 다 화반셕(花斑石)으로 랏더라
63
뎐샹(殿上)이 너지 아니고 방문 밧긔 어탑(御榻)을 노하시니 태샹황 뎐좌(殿座) 곳이라 돈피(獤皮) 옷 닙어시며 옷기이 아로 드리워시니 젼샹(殿上)이 슉연여 므 소 업더라
64
챵 소 나거 셰 번 고 아홉 번 고두(叩頭) 녜 매 태샹황이 무러 오국왕이 평안시냐샹부공경여 답여 오 평안시니이다 니 인여샹부 앏흐로 인도여 어탑의셔 간 동안의 안치고 태샹황이 손의 슐잔을 드러 쥬거 겻 사이 러 바다 두 신의게 뎐거 잔을 바든 후 반(班次)로 믈너나와 안즈니 음식을 초와 먹이되 각보보(寶寶)와 실과며 희(戱子) 여라믄 가지 베펏더라
65
뎐샹을 잠간 우러러 보니 태샹황이 얼골과 터럭이 심히 쇠여시나 모진 치며 큰 입이 범샹 사과 다며 모신 쟤 여닐곱 사이오화신(和珅)이 앏셔 오락가락지라부 고 도혀 보니 녑통관이 섯다가 급히 말녀 오 보지 말나 고 겁내 얼골 놀난 사 모양이라 희 노름을 잠간 파니 신이 즉시 믈너나 온다 더라
66
샹부의게 샹 쥬거 향낭 넷과 운무차 두 납병과부쇠나와비연통(鼻煙筒)나와쳥뉴리·황뉴리 졉시각 나와화(畫)졉시나희동뎡귤(洞庭橘)다 담아시니부샹와 고 오 쥬머니 두 감(減)엿더라
67
오후의광녹시의셔 송(賜送)이라 고셕뉴와동뎡귤과문단(紋丹)을 셰 방의 화 보내여시니문단은 크기 연젹만 고 몸은복셩화와 고 속은유와 트나 잠간 마시 이시니 남방 실과라 더라
68
쥬의셔 부 니니 졔(祭) 젹의됴션신이 맛당이보화뎐(保和殿)의 나아가 잔예 참예 거시오 졍됴의 신이 믄져건쳥궁의 니러 녜 고 두 번태화뎐됴회(朝會)예 반녈을 라 녜 거시니 두 날은 오고(午鼓) 의 궐의 드러와 기리라 엿더라
70
관의 머므다 오경 두의샹부슈 부역을 거려동화문으로 조차보화뎐의 입시니 나 드러가지 아니니라
71
샹부관의 도라온 후 졀 드른즉보화뎐은건쳥궁앏히오즁화궁뒤히라 졍뎐의 니러 반녈을 라 세 번 고 아홉 번 고두(叩頭) 녜 고통관이 인도여 탁 앏 안치니 탁의 임의보보(寶寶)와 실과 버려시 어졔과[와] 치 엿더라
72
이윽여 뎐샹(殿上)의셔 슐을 드리 모양이 잇더니샹부 나오라 거 나아가니 뎐 우희 삼층 탁 베플고 셕난(石欄)을 면으로 돌너시니 돌 빗치 옥과 다미 업고 뇽호(龍虎)와 삭여 긔교미 귀신의 조 더라
73
탑 겻 니러 동편으로 안치니 황뎨 뎐좌 곳의셔 옷기이 다흘 지라 어탑 아 임의 슐잔을 노핫다가 황뎨 손으로 잡아 환쟈(宦者)로 여금샹부 먹이니샹부쳐음 뎐샹의 오 예 의 혜오 이 태샹황의 명인가 엿더니 밋 슐을 쥬매 비로소 신황(新皇)의 쥬 바 아라시며 안즌 곳이 심히 갓가온지라 비록 감히 머리 우러러 보지 못나 슐잔을 쥴 예 손길이 심히 고 희여 옥 트며 황거(惶遽) 가온 위의 셔히 피지 못나 쳐음의 직 소 흘 움기더니 뎐샹이 엄슉고 심히 무셥고 됴신이 발을 움겨 놋 소도 업며 황뎨 소 어음(御音)을 듯지 못너라
74
슐을 먹은 후 믈너와 쳐음 반녈의 나아가 음식을 먹을 긔명(器皿)이 다 극히 공교(工巧)고보보(寶寶)와 실괘 모 거시 만흐며 희 노롬을 례로 나오다가 잠간 이의 다 믈니라 더라
75
져녁 의광녹시로셔 찰화 보내여시니 삼 신의게 탁식이오 탁마다 마흔 다 그릇식을 올녀시 그 그릇시 다 텰(白鐵)노 그라 크기 져근 반만 지라 탁 크 그릇 다 포괴여 노핫더라
76
실과뉼(生栗)·대초·호도·샤과·뇽안(龍眼)이오빙광(氷糖)·칠보당(七寶糖)·오화당(五花糖)튼 뉴(類)오 이 열네 가지 모양이 각각 다나 마 가지오 것츤 보암즉나 먹을 거 업며 고기 졔육(猪肉) 마리라 셔반 (序班) 세 사이 녕거(領去)여 왓거 세 방의셔 각각 됴와 부 쥬어 보니라 져녁 식후의 셰 방비장(裨將)과 여러역관과 밋 방하인(房下人)과의쥬샹고(商賈)들이 구셰문안(舊歲問安)이라 일고 셔로 갈아 드러오니 경절(慶節)과 가향(家鄕)의 년결 회푀(懷抱ㅣ) 더욱 챵연믈 금치 못너라
77
관의 드던 날노브터 밤이면지총(紙銃)소 왕왕이 나더니 이날 밤은 벽녁이 진동 여 밤이 도록 긋치지 아니고 졈졈 더니 을 일으기 어렵더라
78
지총은 화약과 염초(焰硝)당지(唐紙)속의 가득이 너허시당지 여러 겹으로 고 밧긔 븕은당지로 닙혀시니 크기 줌은 고 기 셔너 치나 되지라 그즁 크게 라 긔이 형상이 되게 거 각각 일홈이 이셔 믈녁(物力)을 무슈히 허비니 이 황공(王公) 귀인의 집의셔
79
거시니화포(梅花砲)와좌샹과굉텬뇌(轟天雷)여러 가지 명이라 납월(臘月) 망후(望後)로브터 졍월 을 긋치지 아니니 가음연 집은 슈냥은 허비다 더라
81
관의 머므다 경의 소셰(梳洗) 파매 쥬방이 국을 나오니 염쟝이 맛지 못여 먹임지 아니터라샹·부방·비쟝(裨將)과 즁역관이 셰라 일고 드러와 보니라
82
군뇌 문을 여럿다 며통관이 대궐 가기 촉다 니 관의 드던 날노브터 문 열며 닷기 군뇌 고니 문은 곳졔독(提督)의 가음아 문이라 도드면 열고 지면 닷더라
83
삼 신이 졍관을 초와 궐하로 나아갈 쵸릉[롱](燭籠) 이태평챠앏 인도야옥하교앏흘 지나 동으로 것거 큰 길의 밋니 오락가락 초롱(燭籠)이 길 니어지나니 비록 왕공이라도 낫 초롱이 앏 셔시며 샹쾌 과 가야온 슈 츙돌여 지나니 다 됴(朝士)의 대궐 드러가 쟤러라 동편 궁쟝의 니문 튼 문이 곳 동쟝 안문이니 이 문으로 말암아동화문으로 들어 좌익 우익 두문을 지나 어두온 가온 보니 길 셧 남글 다 모진 단을 무어시니 일넛지라 궐의 사이 희소더라
84
우익문안 됴방의 져기 다가 동으로 것거늉죵문을 드니 이 문이경운문으로 더브러 먼니 셔로 여시며건쳥궁이 그 안 이시니 곳태화뎐·즁화뎐·보화뎐세 집 뒤히러라 날이 쟝 새매 븍과 경쇠 소건쳥궁안의셔 나니 그 소 심히 쳥월여 옥을 울니 지라 태샹황이 야흐로 졍뎐의 오다 며 산션(傘扇)과 부월(斧鉞)이건쳥궁밧 동 셔졍의 화 셔니 대 길 두 길의 지날지라 조금도 참치(參差) 일이 업고 의쟝을 밧든 군 다 븕은 옷 닙어시 금으로 려시며 혹 목슘 슈 노핫고마으라기 아국젼립(戰笠)트 버렁이 좁고 모 둥글며 븕은 실노 얽고 우희 누른 새 깃 자증모양 더라
85
의쟝 남편으로 화 왕 길을 내여시니 됴신이 이리로 말아마 드러가지라 우리 드러가 반녈의 나아가니 반녈이 셔반 구픔 아 이시며셥나신도 우리 겻 셧더라
86
의쟝과 밋 됴신이건쳥궁안희 잇 거시 만흐 먼리 라보매 능히 두로 아지 못여 다만 보니건쳥문이 믈읫 세 문이오 쳠하의 다 등을 다라시니 그 졔되 각각 다더라
87
이윽고 직 울니 소 세 번 나니 직을 가족 오리로 그라 그 크기 두 줌이 되며 븕은 옷 닙은 사이 서히 동 셔뎡의 화 고 몸을 두루쳐 흘 치니 벽녁 튼 소 궐 을 진동케 지라 챵 소 미좃차 나거 반녈의 잇 쟤 일졔히 세 번 며 아홉 번 고두(叩頭)니 반녈이 졍졔여 갈고 홀노 여라믄 사이 동 셔반 녑흐로 버셔 반녈을 피 형샹 트니 이 십삼 (省)과도관이니과도관은 아국감찰과 벼이러라
88
녜 파 즉시 동 남편 협문으로 나오니 현판의 우후문(右後門) 셰 써시며 문 안 월랑의 포단(蒲團)을 무릅고 자 놈이 여닐곱이 이시니 이 문을 직흰 군러라보화뎐이 니문이 이시니 니문은 곳보화뎐뒤 협문이라보화뎐이 두 층집이오 방으로 옥난을 셰 겹으로 둘너시니 삭임이 긔묘며 지난 문의셔 곳은 길노 문을 지나니즁우문이라 써시며 문 안희즁화뎐이 이시니 민 거시보화뎐과 며 그 남편이 곳태화뎐이라 졔되 보화뎐·즁화뎐나 놉고 크기 지날지라 간 슈 열두 기동이라 동셔간 닐곱 간이오 여러 간이 좁으며 너른 거시 갈지 아니고 옥 셤이 면 삼층이오 셤 우흐로 옥난간을 둘너시며 동편은 거복을 안치고 셔편은 학을 셰워시니 거믄 구리로 근 것 더라
89
먼리셔 셤 우흘 라보매 희고 놉하 셜산이 둘닌 듯야 븕은 빗치 바며 사으로 여금 눈이 부시고 셤 아 프른 구리로 솟 라 열여 노하시니 놉히 길이 지나고 그 앏 거믄 구리로 근 을 녀시니 좌우의 누각이 셔로 표묘(縹緲)이 년여 월랑을 글고 월랑 당 즁의 큰 뉘(樓ㅣ) 셔로 여 셔편은흥의이오 동편의톄의이라 현판을 다라시며 그 밧 월랑이 다 금은 보[]와 비단을 둔 곳이라 젼샹의 침향을 오니 향긔 의 가득며 의 검고 둥근 돌을 세워 품급을 삭여시니 쳔관(千官)이 다 품급을 좃차 섯더라
90
됴회 졀 갈치건쳥궁과 나 다만 의장이 져기 만흔 며 뎐샹이 심슈(深邃)여 먼리셔 가히 분변치 못지라 다만 보매황냥산(黃陽傘)이 뎐샹의 당즁(當中)여 서시니 그 아 황뎨 안즌 곳인가 시브며 악공(樂工)이태화문셤 우 븍향여 풍뉴 엿오니 쳔관이 며 고두(叩頭) 의 곳첫다가 도로 엿와 창 소와 더브러 셔로 응며 삼층 셤 우 븕은증와 돈피 옷 닙은 사 여라모니 로 녜 니 이 종실의 왕 벼이라 더라
91
황뎨 즉위 이후의 됴뎡 됴회의 태샹황이태화뎐의 뎐좌(殿座)고 황뎨 뫼셔 안 이러니 올흔 비로소 됴회 밧다 며 황뎨 믄져건쳥궁의셔 태샹황긔 됴회고 이리로 나왓다 나 나오 위의(威儀) 보지 못니 대개태화뎐뒷문이건쳥궁앏문과 셔로 고 두 문 이의 옥돌노 박셕을 라태화뎐뒷문 밧그로 세 가락 층계 노하시되 가온대 길은 돌의 뇽을 트러 삭여시니 뎐마다 압뒤흔 다 이와 가지러라 황뎨 이리로 조차 뎐좌기의 나오 위의 보지 못가 시브더라
92
피인이 샹시 다 귀쳔 업시마으락이 시되증 둥근 구실치 글고 비록 픔슈(品數) 조차 븕고 검으며 프고 흰 빗 다게 나 옷슨 빗 거믄 거시오 우희 세 겹 옷 닙어시니 장 우쾌란 옷 닙어시니 아국등거리고 그 밋좌오란 옷 닙으니 뒤흔 두루막이라
93
녑흘 터시며 다 단초 여러 곳의 세워 아로 서너 치 터시며 몸의 븟쳐 닙은 거아오라 여 상해 등급이 업더니 이날은 져희 니른바 됴관과 됴복을 초와시니 거믄 비단의 슈 노하 목을 여 두 엇게의 걸쳐 압뒤 세 치 남이 덥흔 거 은 피견(彼肩)이니 우리나라 년메군 메 것 고 옷 길의 허리의 니고 소매 졀너 팔마의 니른 거 은 졉슈(接袖)요 문관은 새로 슈노코 무관은 즘으로 슈노하 가과 등의 가리게 거 은 보복(補服)이니 아국 흉란 말이라 왕공 후은 무론문무(無論文武)고 다 망뇽 흉(蟒龍胸背)며 일픔 문관은 션학 흉오 무관은 긔린 흉오 이픔 문관은 금계 흉오 무관은 흉오 삼픔 문관은 공쟉 흉오 무관은 포범 흉오 픔 문관은 운안 흉오 무관은 범 흉오 오픔 문관은 학 흉오 무관은 곰 흉오 뉵픔 문관은 노 흉오 무관은 츄 (鶖) 흉오 칠픔 문관은 비오리 흉오 무관은 셔우(犀牛) 흉오 구픔 문관은 연쟉(燕雀) 흉오 무관은 마 흉며도찰원과안찰와과도관튼 벼은 다 아국 법관 튼지라 픔급을 의논치 아니고 다 치(獬豸) 흉 브치니 이 다대명(大明)젹 졔되오 됴회예 닙은 좌우 은 망푀니 일픔으로브터 구픔지라 뇽 튼 니심을 슈노시 일픔 이픔 삼픔은 아홉 니심의 톱이 돗친 거시 너히오 오픔은 여 니슴의 톱이 도친 거시 네히오 뉵픔 칠팔구픔은 다 니슴의 톱 도친 거시 네히니마으라기예 다증 다라시 빗 화 그라 두 치 남게 여시니 왕공 후과 문무 일픔은 금으로 바탕을 그라 우희 븕은 보셕을 믈니고 가온대 동쥬(銅柱) 박아시며 이픔은 우희 산호(珊瑚) 믈니고 가온대 져근 븕은 보셕을 박아시며 픔은 우희 쳥금셕을 믈니고 가온대 져근 프른 보셕을 박아시며 바탕은 다 일픔과 고 오픔은 우희 슈졍을 믈니고 가온대 슈졍을 박아시며 칠팔구픔은 우희 믈닌 거시 업고 가온대 다만 져근 슈졍을 박아시며 안 방셕과 돈(銙)과 메 념 다 픔슈 조차 다니 방셕은 일희 가족과 돈은 옥판과 념쥬의 산호 쟝 놉흔 픔니 념쥬 즁의 메 모양치 구 일단팔(一白單八)을 여시며 져근 구노 여 거러시니 문쟝으로 귀쳔을 표 의 못 분명나 다만 곡뒤 변(辮子)의 됴회 면 구을 다라시니 극히 우어 뵈더라
94
반녈의 나아갈 의 여라믄 사이태화뎐남편 궁쟝 밋 안져시 옷과말이 피인과 트나 개개(個個) 치 흉녕(凶獰)고 눈알이 깁흐며 장 져믄 것 밧긔 다 구례나시라 즁원(中原) 인믈과 바이 지 안닌 고로 무론즉희국사으로 관의 이셔 됴회의 참예 쟤라 머므런지 오란 고로 능히 한어 지라역관으로 여금 무 네 나라히 황셩셔 몃 니 되뇨 답왈 다 날 만의 오니라
95
나라흔 바다 가온 이시나 신이 올 젹은 도로 뉵노로 오니라
96
쟝 뭇고져 반녈의 드러가 고로 뭇지 못니라
97
회관이 황셩 셔편의 이시니강희(康熙) 십뉵년의회국이 반거즁국군 발야 칠 그 님군을 사잡아 경의 니니 죄 샤고 관을 지어 둔지라 그 님군이 을 궁즁의 드렷더니 봉여 귀비 삼앗더니 총(寵)이 못 뉵궁(六宮)의 오롯지라 귀비 샹해 그 아비 보기 각나 시러금 쟈죠 왕여 보지 못지라강희황뎨명여 누 궁쟝 셔편의 두어회관과 셔로 여시니 귀비 샹 누의 올나 아비 보더니 그 님군을 본국으로 도라보고 좃차온 죵낙(種落)과 신하 머므러 볼모 삼으니 계집과 식을 거려 거(居生)여 지금 아을 나흐며 을 길너 셔로 혼(婚娶)며 즁원 사으로 여금 섯기여 잇지 못고 로이 닐 머리의 바말이 각 담(毯)으로 둥글게 여말이우희 세워시니 놉희 자 고 됴회의 드러오면 피인의말이 다 더라
98
졍도관이란 문을 나오니 이 문 곳태화문셔편 협문이라단문과오문과쳔안문을 조차 도로동화문을 말아마 나오니라
99
대져 황셩 쥬회 믈읫 십삼 니오 동셔남븍의 아홉 문이 이시니 남은 은졍양문·슝문문·션문이오 동은 은됴양문·동직문이오 셔 은부셩문 셔직문이오 븍은 은안졍문·덕승문이며 황셩셔남각과동남각으로 븟터 즁셩(重城)이 이시니 길희와 너뵈[븨] 이십 니오 닐곱 문을 내여시니 남은 은영졍문·좌안문·우안문이오 동은 은사와문이오 셔챵의문이오동븍각은 은동젼문이오셔븍각은 은셔젼문이오 그 안희텬단이 이시니 하의 졔 지 곳이러라
100
셩 졔되 면이 방졍고 입구 모양이 오십 보마다 셩낭(城廊)이 잇고 셩낭마다 다 갑군이 직희여 쥬야로 나지 못며 연고 업시 셩의 올올면 그 죄 교(絞) 법이오 밤의 경뎜(更點) 븍소 대궐노셔 나오면 셩 우희셔 초두(勺斗) 응여 잠간 이 슌환며 셩이 평긔예 은 고로 오릴 길이 업지라
101
문 잇 마다 문 편으로 의지야 셩 밋트로 셩치 하 올려시며 두 편은 와 치 고 놉혀 층계쳐로 여 사이 오르리게 여시며 두 긋로 목을 느고 문을 내여 갑군이 츌입 곳 아니면 샹해 구지 다닷시니 그 셜시(設施) 거시 극히 엄고 궁쟝 쥬회(周回) 믈읫 십팔 니니 황셩 안 거의 반을 지 못지라 궁쟝 안 궁쟝이 이시며 외 궁쟝이 각각 네 문이 이시니 외궁쟝은 은 남은대쳥문이니졍앙문으로 셔로 엿고 동은 은동안문이오 셔 온셔안문이오 븍은 온지안문이오 궁쟝은 온 남은동화문이오 븍은 온신무문이라 외궁쟝은 길희 다 길의 지나되 담 모양치 여 다 븕은 분칠여시며 누른 기와로 니이고 궁쟝은 길희 외궁쟝 트나 셩 모양으로 하시며 궁쟝 밧근 면을 모도 창고 둘너시니 은견(銀絹)과 곡식을 핫다 며 창고 밧그로 (垓子) 둘너시니 너븨 보 될 며 쳔안 밧근 우희 다 다리 노코 다 난간을 베러시며 동화문 셔화문 밧근 녀염(閭閻)과 젼방(廛房)이 년락(連絡)고 이이 조[주]루각(朱樓彩閣)이 표묘(縹緲)히 혀나시니 곳 외궁쟝 안히라 대쳥문 안은 쳔안문이오 단문(端門) 안흔 오문이오 오문 안흔 태화문이오 태화문 안흔 곳태화뎐이라 태화문으로셔 대쳥문지 곳 긴 쥴노 친 니 큰 됴회 의 다 문을 다 열면 안밧키 활연(豁然)여 조금도 막힌 곳이 업지라태화뎐우희셔 가히 대쳥문 밧글 라보 고로 사을 금여 건너니지 못게 더라
102
대쳥문 좌우 월랑(月廊)이 각 여 간이요 동셔로 문이 이시니 동은 희화문(熙和門)이오 셔 협화문(協和門)이오 쳔안문 좌우 월랑이 각 스믈두 간이오 즁간의 각각 문이 이시니 우편 문은 샤직(社稷)으로 통 문이니 일흠은 태가문이라 여시며 단문 좌우 월랑은 십여 간이오 즁간의 문이 이시니 동은 동됴문(東朝門)이오 셔 셔됴문(西朝門)이오 오문 좌우 월랑이 여 간이며 문 졔도 놉희 다 길은 고 동셔 뉵십 보 가온대 세모진 지게문을 내고 문루 두 층의 아홉 간이오 문 좌우 녑희 것거 셩을 하 머리로 다 삼층 십각(十字閣)을 지엇고 문누의 십각 이의 월랑쳐름 년여 지은 집이 이시 다 누른 기와로 닛고 십각은 금으로 동치 라 대공 말 입허시니 빗치 찬란지라 혹 니 이 금이 아니라 일흠을 풍마동(風磨銅)이라 니 외국의셔 나 배오 그 귀기 금의셔 나 더니 바람의 이면 더옥 누른 빗치 찬란 고로 풍마동이라 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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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졔되 긔묘(奇妙)여 그림으로 그려도 엇지 못지라 쟝 웃층은 층 져근 집이오 뎨 이층은 것거 지어 여 집의 면이 크게 고 네모흔 젹긔 여시나 기와 히지 아니케 니어시니 우러러 보매 현황(眩慌) 긔묘여 인력의 밋 배 아닌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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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端門)은 문뤼 두 층 아홉 간이오 쳥[쳔]안문도 문누의 층슈와 간 다 단문과 고 대쳥문 층 집이니 동안(東安) 지안(地安) 셔안(西安) 세 문과 다 모양이라 그러나 대쳥문은 쟝구 다다시며 동안 셔안 두 문은 녀염이 그 안희 사 고로 거매 샹해 히지 아니며 잡도히 츌입니 심히 셜만(褻慢)타 니 거시오 대쳥문과 쳔안문 이의 동쟝안 셔쟝안 두 문이 이시니 대쳥문 앏흘 지나려 즉 이 문을 츌입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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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쳥 안흐로브터 대궐 안희 다 벽돌을 라시 다 모흐로 세워 펴시니 브러지지 아니케 일이나 피인(彼人)이 궐의셔 을 니 고로 벽돌이 만히 파이여 편편치 못 곳이 만터라븍경(北京)궁궐이 다대명(大明)셩조황뎨(成祖皇帝)영낙(永樂) 십오년 뎡유(丁酉)의 일운 배라명(明史)의 니 종묘와 샤직과 궁궐과 뎐문을 다남경(南京)졔도치 여 놉고 시훤며 장려기 지나다 니갑신년(甲申年)니셩(李自成)의 난의 더러 블븟고 다시 곳첫다 나 당초 졔되라 그 웅위(雄偉) 빗치 진짓 뎨왕의 긔믈답더라
106
태화뎐은 곳명됴(明朝)의봉텬뎐(奉天殿)이라 일 집이니 큰 됴회면 뎐좌(殿座) 곳이라 혹 닐오명됴의황극뎐(皇極殿)으로 나 져[셔]히 모나 건쳥문 밧긔 셔실 후우문 압셔 관원려 무른 령탁문(英卓門)이라 일나 밋 현판을 보매 후우문이라 여시니 혹황극뎐이라 여실 이 문을 령탁문으로 다가태화뎐이라 곳친 후의 이 문을 우후문이라 엿가 시부며 좌우 월랑 이의 두 문은 좌익문 우익문이라 현판여시니 집과 문 일흠을 곳친가 시부더라
107
태화뎐됴방의셔 여러 사이 집 대쇼(大小) 의논여 혹 아국인졍뎐(仁政殿)의셔 젹다 며 혹 크다 니 졍키 어려오나 대져 졔도 심히 흔 더라
108
뎐 압마다 큰 구리 가마 여셧 노하시니 놉히 길 반은 고 널히기 두 아은 며 누른 무명으로 부 지어 웟거 무즉 쇼금믈을 담아 블을 방비다 더라
109
이젼은 (使行)이 반녈의 드러올 의 양 치위 인연여 휘항(揮項)을 벗지 아니다 더라 니 므 이 명(使命)을 놉히고 공경을 닐위 이 아니라 삼 신이 셔로 의논여휘항을 벗고 역관을 다 버스라 니 역관이 통관을 시험여 휘항을 버야 말냐 야 통관이 답여 버 묘리 업다 니 이 망녕된 말이라 피인이 샹해 쓰휘항이 이시나 반녈의 사도 쓴 쟤 업니 이 샹복을 됴반(朝班)의 쓰지 못 연괸가 시브더라
110
이젼의 아국 신으로 여금 벗기지 아니믄 다만 외국 사으로 대졉여 족히 망 것 업 곳의 돌녀보낸 거시라 만일 뭇 쟤 이셔 오 너희 나라 됴회 의 냐 므면 그 쟝 무 말을 답리오 오 노라 면 스로 망녕된 사이 될 거시오 지 아닌노라 면 졔 쟝 오 네 나라 이시면 아니 고 대국의 드러와 냐 면 므 말노 답리오 이치 의논여 일졔히 버니셤나(暹羅) 신이 우리 아 셔셔휘항을 썻다가 밋 우리휘항벗 양을 보고 그 리고 온 통관이 벗기니 우읍더라
111
피인이 됴반의 셔로 만나면 다만 눈 쥬어 인 이러니 밋 믈너나 올 셔로 아 쟤 븟잡아 셔로 나 거동을 며 져기 믈너셔 므 말이 잇다가 도 나와 븟잡고 난 거동을 니 심히 졍다와 븨[뵈]며 나히 만흐면 져므니 만나면 져므니 두 손을 잡고 나히 만흐니 손으로 븟드더라
112
하인들도 태화문지 드러오나 의(白衣) 사을 심히 먹[막]지라 하인 업 곳은 통관이 녑흘 븟드러 고 관의 도라온 후 슈고 일고 무 면죄(免罪)을[] 구니 극히 우읍더라
113
날이 낫슨 여 두 듀[쥬]방(廚房)으로셔 셰찬(歲饌)이라 고 큰 반의 슈십 가지 아국 음식을 혀 나오니 졍히 혓더라
115
관의 머므다 이젼 드니 황뎨 오경(五更) 두(頭)에 거동 곳이 이시니 곳 단(丹齋)라 일 곳이라 혹 닐오 단등 쟝군의 묘니등 쟝군은 첫 번 니러날 젹 공신이라 태묘의 밋쳐 가지 못여 공신의 당의 믄져 가기 도니 밧긔 일이오 혹 닐오대명쟝슈뉴졍(劉綎)은 당셰 명쟝이라 오랑케 멸 을 일우지 못고 죽엇 고로 원이 구텬의 치여 졍녕이 뵈여 황뎨 침노지라쳥(淸)이 즁국의 웅거믈 인여뉴 쟝군의 소샹을 그라 묘당의 위고 알 사 나흘 동혀매여 녀시니 이 황뎨 쳐음 니러나던노라치소샹이라 일로 그 한을 프러 작난을 그치게 엿다 니 이 밋부지 아닌 말이오 셜 이런 묘당이라도 위기 이리 일이 업 거시오 혹 니노라치흘 졔 여러 병쟝기와 의복을 감초와 훗님군이 창업의 간난던 쥴을 알게 므로 부 졍됴와 믄져 간다 니 이 말이 그즁 근나 이럴진 구여 휘 니 업 죵시 말이 다며 피인려 무러도 분명이 아 쟤 업니 셔히 알 길이 업지라 젼부터 일긔의 다 의심여시니 심히 고이 일이라 올흔 황뎨 졍됴의 거동 고지 업니 젼과 다 아니라노가일긔(老稼齋日記)와담헌일긔(湛軒日記) 보건대 황뎨 거동의 군악을 베프니 그 소 웅장여 히 움기더라
116
오문 좌우 월랑의 간마다 등을 라 은 빗치 휘황니 시위와 의쟝이 만터라 여시 이번 이십구일 태묘 거동의 다 이와 다니 아지 못 일이오 혹 닐오 태샹황이 비록 뎐위여시나 졍됴마다 반다시태화뎐의셔 됴회 밧고 황뎨 뫼실 이러니 이번은 황뎨 쳐음으로태화뎐의 뎐좌며건쳥궁의 태샹황이 로 됴회 몬져 밧다 나 실즉 병환이 낫지 못지라 황뎨 다만 쳔관과 외국 신을 거려 녜 이오 거동의 위의 이러시 간락고 당(檔子) 거동도 아니 거시 다 아니라 태샹황 병환이 심즁기로 다른 일을 결을치 못다 며 일젼의치형이 이 니명이란 사을 만나 슈쟉더니니명이 오 태샹황이 귀국 신을 인견엿다 니 이샹 은슈로다 태샹황이 근의 쇠로여 병환이 임의 깁흔지라 이런 쥴을 외인이 다 아 배러니 귀국을 격외로 졉지라 반시 병환을 강잉(强仍)여 인견시미니 져기 낫기의 그러려니와 귀국 곳 아니면 어이 은(恩讎ㅣ) 이의 미리오 더라 니 대개 셔히 모나 젼과 다른 일이 만흐믄 고이 일이러라
117
니명은 관 서편이친왕 원당(願堂)이란 묘당의 잇 사이라이친왕은옹졍(擁正)의 아이니 일즉 죽고 그 왕비 장 이 잇거옹졍이 궁즁의 블너드려 괴이미 잇지라 옹졍이 그 을 위로코져 여이친왕 원당을 지어시 극히 졍묘여 지금 오 퇴락 고지 이시나 목셕의 아로삭인 것과 묘당의 치 쳐음 샤려 쥴을 가히 짐쟉지라옹졍 십이년의 세운 배라 더라
118
치형이 일니명을 만나 약간 슈쟉이 이시니치형이 무 남방에묘젹교비(苗賊敎匪)란 도젹이 잇다 니 엇더 도젹이뇨 답왈 특별이 노략질을 일삼 도젹이라 무리 모하쳔 웅거지 임의 뉵칠 년이라 면 됴슈지[치] 흣터젓다가 군 파면 도로 모히여 져근 군현을 침노니라
119
무 근일의 승뷔 엇더뇨 답왈 됴뎡의셔 쟝슈 명여 군 내엿더니 화림(和琳)과 복강안(福康安) 두 쟝 화 죽고 뎐년의 늑뵈(勒保ㅣ)란 쟝슈 다시 보여 여러 번 교젼니 도젹이 형셰 졈졈 쇠잔여 즉금 족히 념녀 거시 업나 당초로븟터 병을 탕은(內帑銀)으로 응(策應)더니 여러 되엿지라 탕은이 부족여 됴뎡의셔니부시랑(吏部侍郞)증계의 엿오믈 인여 벼을 파라 병냥(兵糧)을 도으니 벼이 졍 갑시 잇지라 안 벼은 낭즁(郎中)의 일만 삼쳔냥이오 원외랑(員外郞)의 일만 이쳔냥이오급즁(給事中)과쥬셔(注書)튼 벼이 갑슬 오로려 졍 거시 잇고 밧 벼은 도(都) 벼의 삼만여 량이오 지부(知府)의 만여 량이오지현(知縣)통판(通判)도 풍박(豊薄)으로 갑 졍니라
120
치형왈 그 돈은 곳 이시면 맛당이 이 벼리로다
121
답왈 만일 이시면 뉘 못리오 무 즉금 됴뎡의 외[의]쟝(倚仗) 샹이 뉘뇨 답왈화 대인(和大人)이 텬하 쳔단(擅斷)지라 태샹황이 갈치 려 맛기니 차 마시며 담 픠오 거시라도 젼혀화 대인의 말을 조차 니 긔거(起居)와 동졍의 다화 대인의 모 거시 업니 그 일을 지으매 사의 의 지 못지라 이러모로 년젼의 묘젹이 창궐여실 셩들은 다화 대인의 타시라 며 벼 파 쟤 마지못 졍라 젼혀화 대인을 죄 삼지 못 거시나 졔 젼혀 돈을 요구 일노 사이 져 올타 아니며 몸의 븟좃지 아닌 쟈 니니부샹셔쥬[긔]균은 본 강직 샹으로 일더니 치인 배 되여 야흐로 먼리 나가시며 이밧 믈니치믈 닙은 쟤 손가락을 이긔여 곱지 못니 유식 사은 다 믈 마지 아닌니라 고 인여치형려 무러 오 귀국 샹도 돈을 요구 쟤 잇냐 답왈 샹이 엇지 돈을 요구리오 돈을 요구면 샹이 되지 못니 아국의 사 믄 쳥념고 곳으니 다 니라
122
니명이 오 이 여야 야흐로 됴흔 샹이라 니리로다 무 신황뎨 신임 사이 잇냐 답왈뉴용(劉墉)이 본 믈망이 이시나 나히 칠십이 너믄지라 이졔 늙은지라 큰 일을 당치 못고왕걸(王杰)이 일흠이 잇 샹이로 녜 니른바
123
반식샹(伴食宰相)이오스승아 이젼의 쳥(淸流ㅣ)라 일더니 근화 대인의게 븟치엿다 며 그 나마 아지 못노라뉴보 지용이 겸젼기의 대쟝을 삼앗냐 답왈 벼이 크기의 소임이 큰지라 이 화 대인의 보내[낸] 배라 지용을 의논 거시 어이 이시리오 무 대국은 진 외예 무 과게 잇냐 답왈 다 명이 업니라
124
그러면 진로 벼을 못 쟤 잇냐 답왈 근본 법이 삼 년마다 진 야 갑과 삼 인은 급뎨츌신(及第出身)이라 일라즁셔관(中書官)의 부치고 을과뉵뷰(六部)의 화 부치고 병과 외방(外方)통판으로 나가게 더니 [근] 방 례로 즌 쟈 과거 지 슈십 년이 되여도 혹 벼을 이지 못니라
125
그 어(語次)의 경셔 문와 녯 사의 글귀 만히 지라 무러 오 그 글 닑은 사이라 일 과거 보앗냐 답왈 일즉 분[본] 일 업셰라 고 오 나 글시 잘 못 고로 과거의 스로 긔약지 못거니와 우리 튼 사이 비록 과거의 오나 벼의 나아가기 어려오니 내 만 사의 형셰 당치 못며 즁국의 법이 가음연 쟤 귀 쟈로 더브러 샹죵니 그 슈박회 븕히며 그 집을 금으로 미고 거마와 복쳡(僕妾)이 공후(公侯)의 비기며 가음열고 안한(安閑) 거시 도로혀 귀고 슈고롬의셔 나을지라 과거 셜여도 별양 즐거오미 업고 과거 못여도 별양 괴로온 일이 업니
126
무 일 반시 엇지 못 일을 구챠히 리오 이러므로 사마다 시졍을 즐기 배라 더라 니 그 말이 대개 분개 의 여시며 그 사을 보건대 파락(破落) 데 갓가은 모양이러라
127
그러나 즁국의 법 세온 거시 진실노 이 튼지라 시졍(市井)이[의] 식이 샹이 되며 샹의 식이 시졍이 되니 관 근쳐 장가(張哥) 샹고(商賈) 사이 역관들과 아니 만흔지라 그 형의 아이 야흐로공부시랑이 되엿다 며됴유경이라 쟤 샹고로셔 그 질이 진여 즁각만시독으로하 지부(河內知府) 여 갓다 더라
128
셔반(序班)심개(沈哥ㅣ)로 관의 드러와 역관들과 슈쟉더니 신황샹의 졍톄(政體) 아냐 무니 오 신황샹이 날마다 다 근 슐을 나오고 졍의 알은 톄 일이 업다 니 외인이 므 말을 드리오만은 슈믄 덕이 만타 일니라
129
대개 태샹황이 젼혀화 대인을 맛져 말마다 아니 듯 일이 업고 샹해 금즁의 머므러 졍 오지 아니니 신황샹이 므 일을 아른 쳬리오븍쟝안이 화 대인의게 브리이 배라 텬하 일이 다화 대인쟝악(掌握)의 잇지라화 대인의 일이 곳 팔월이니 만됴(滿朝) 공경(公卿)과 외방 션믈 믈이 극히 젹어야 쳔금이라 그 권셰 가히 짐작네라 젼브터 역관의 대국 쇼문 듯 쟤 곳셔반과통관이라 이런 고로 업 일도 잇다 며 져근 일도 크게 니니 혹 그즁 올흔 말이 이시나 젼혀 밋지 못 배러라븍쟝안은븍황의 아이오븍늉안(福隆安)의 아이니 만 사으로 여러 샹 집일너라
130
황셩 안은 큰 길 거리로 군포(軍鋪) 년여 지어 갑군 너식 직희오고 셩 우희 직희 군 밤이면 목탁을 쳐 경졈(更點) 로 초경의 마치오 이경의 두 마치오 더여 오경의 다 마치 치며 경경이 소 응니 아국 슌경 소와 강 며 궐 각 문의 로밤 슈직(守直) 군 팔쳔 명이니 븕은빗 옷과 깃 고즌 마으락이라 졍됴 새벽에 오문 밧 월랑의 혹 갓옷 므릅고 박셕 위희셔 코 고으 소 니 치운 쥴을 모고 이치 잠이 깁흐니 사이 아닌가 시부더라
132
관의 머므다 오시(午時) 랑[량]의 역관이 드러와 고 길 왕 쟤 다 마으락이 우 샹모 히며 통관이 아문의 잇 쟤 그리거 나가 그 연고 무니 태샹황이 묘시의 상 낫다 더라
133
우리 황셩의 니런 날 즉시 드러오믈 뭇고 그 이튼날 인견코져 더니 그날 비록 아니 되여시나 이십구일 슈방의셔 인견야국왕 평안시믈 뭇고 그 이튼날 황뎨즁화뎐의셔 인견야 한만(閑漫) 슈작이 이시며 졍됴의 두 곳의 화 됴하(朝賀) 바드니 일노 홍화졈(紅花店) 이후 소문이 극히 허황믈 짐쟉고 황셩 사도 귀쳔 업시 아국 드러온 후로부터 태샹황 병환이 쾌히 령복엿다 일더니 일 슈일이 못야 이의 니니 됴하 못고 이곳의셔 큰일이 잇 당니 진실노 근심되고 민망지라 황셩 안 사이 조금도 놀난 빗과 셜워 빗치 업고 다만 오 셰 노인의 예라 무 괴이리오 며 샹고들이 양피 무역여 코 내지 아니니 이 드러오므로브터 양피 갑시 도닷다 말이 들니고 오랑 겨을의 국샹을 만나면 흰 갓옷 닙어 샹복이라 일 연괴라 인심이 흉악기 이 더라
134
그러나 나라희 큰 샹 이시나 셩즁이 안연(晏然)야 아홉 셩문을 의구히 열엇고 큰 길의 급히 왕 쟈 보지 못며 졍됴 이후 지춍(紙銃) 소 쥬야 히이지 아니터니 이날 낫젼의 일시의 업셔지더라
135
녯 법의 황뎨 젼의 태 세오지 아니고 다만 몃 아 아모 세오라 야 아모도 므게 궐 현판 속의 너헛다가 죽기 님야 비로소 일흠 둔 곳을 로치 법이라 그 법이 극히 소활야 근심되고 위 일이 경의 관계지라 이러므로 황뎨 상의 여러 날 발샹 아니코 새 황뎨 졍 후의 비로소 발샹을 더니 태황은 뉵십 년 텬하 누리고 이의 젼의 황태 세워 위 졍니 신황뎨 즉위지 임의 년이라 밋 태샹황 상 당매 나라 어룬 님군이 잇지라 인심이 귀향 배 인심을 인연여 텬해 안연고 즉일의 발샹야 관이 야흐로 궐하의 모히엿다 니 대개 태황이 이젼
136
그른 법을 라 젼의 아다온 법을 본바드니 엇지 영명 님군이 아니리오 그 븍녁이 이치 맛당도다 오후의 쥬 부 니니 오됴션신과 통관과 와 셔반의 복 닙을 대포(大布) 관으로 보 거시니 즉의녜부로셔 타다가 옷 일워 명일 궐의 나아와 일졔히 모히라 엿더라
137
밤든 후에 역관이녜부의[피휘1] 가져와시니 이 나라희 므 일이 이시면 위의 졀녜부로셔 마련야 반포미러라 의[피휘1]의 닐너시녜부 삼가 엿와 황지 쳥노니 대 태샹황뎨 궤연(几筵) 알 날마다 향등을 도도며 슈직 곳은 춍관과 태감으로 셔로 맛지고 아과 낫과 져녁 삼시 졔젼의 법가(法駕)와 뇨(燎) 초와 베플며 븕은 명졍을 건쳥문 외현의 셰오고 왕 이하와 문무관과 종실 각노(閣老)의 무리며 공쥬 복진 이하와[주:복진은 옹쥬(翁主) 튼 사이라]향군(鄕君)[주:공후(公侯) 부인의 관명(官名)]봉은 쟝군(奉恩將軍)의 안공인(恭人)이샹과민공(民公)[주:벼 일흠]부인 이하와좌령(佐領) 삼시시위(三時侍衛)[주:벼]안해 이샹과 죵실의 드리 긔 복을 일우며무부(內務府)관원녕최당아[주:벼]의 무리 다 머리털을 코 복을 일우며부[주:마을 일흠]삼긔[주:벼]관원과 호군(護軍)과 녕최당아의 안해와 밋관영하집[주:벼]남부(男婦)[주:나와 안해라]무리 다 머리털을 버히고 복을 일우고 삭쟉 종실 각노도 여금 복을 일우며 삭직 만와 한인 대신의 관원은 셩복의 드지 아니며 경셩의 잇 외번 공쥬와 복진 격노[주:종실의 이라]의 무리와 부[주:벼]왕길[주:벼]의 무리와 밋 외국 공 다 여금 복을 일우 그 이십칠 일 예 경셩의 니른 쟈 일톄로 복을 일우고 후의 니른 쟈 나희 관의 영낙(纓絡)을 리고 겨집은 슈식(首飾)을 려 흘을 지고 단묘(端廟)와 당와복션젼(福善殿)과슈황뎐(壽皇殿)과곤령궁(坤寧宮)졔와 신젼과 능침(陵寢)의 응당 졔 지 곳 일을 맛튼 관원과 감(內監)[주:환관]과 밋 군즁과 영문의 잇 이와 츌젼 군와 그 가쇽의 거샹 옷 다 졍지고 그 부모의 샹 새로 만나니와 녀의 역질 도드니 복을 일우지 아니며 인야 일을 머리털을 지 아니며 관원의 일졔히 모히 곳은 갓가히 뫼시던 왕과 대신과 건쳥문의 시위던 이 건쳥문 안희 뫼히여
138
오긔왕[주:벼 픔슈]이하와 입팔분공[주:공 벼 픔슈]이샹과 대신과 각태(太學士)의 무리와 샹삼긔 시위와 한만(漢滿) 종실 각노와 포의(布衣) 관원은 건쳥문 밧긔 뫼히여 오긔(五旗)도통부(都統府)도통과 팔긔(八旗) 관원과 경셩 잇 대신의 관원과 믈읫 응당 뫼히 관원은 경훈문 밧긔 뫼히여 좌우 화 립(排立)야 날마다 세 번식 궁(梓宮) 알 젼 드리 기려 반녈을 와 슬프믈 드러 녜며 안희 잇 공쥬와 복진은경산(景山)문(柵門) 안희셔 을 고 신무문으로 나와 창진문의 니러 을 려 안흐로 나와 궤연 뫼신 뎐예셔 녜며 오긔왕의 복진과 군쥬경산문 밧긔셔 을 고 신무문으로 나와 뇽[늉]죵문의 니러 을 려 안흐로 나오며 대신의 명뷔(命婦ㅣ) 맛당히
139
안해 나올 쟈경산문 밧긔 잇다가 신무문의 니러 을 려 거러 여 늉종문을 나아가 궤연 뫼신 집 아 븕은 셤 올흔편의셔 녜며 그 능히 안해 나아오지 못 명부 늉죵문 밧긔 일졔히 모히여 날마다 세 번식 반녈을 라 슬프믈 드러 녜며 믈읫 삼 일을 고 일 만의 왕류[륵](王貝勒)과 쾌[패]공(貝子公)의[주:졔일 놉흔 벼이라]공쥬와 왕의 복진(福晉)[주:옹쥬 튼 벼이라]들은 각각 집 실의 이시며 각 부와 각 원 관원은 각각 아문의 이시며 샹복 이십칠을 지되 날마다 일졔히 모히여 공경여 상 위의 다리고 왕대신과 시위 집 샹복을 닙으며 왕공 관원과 군와 셩이 다 일을 머리털을 치지 아니며 갓가온 종실과 경셩의
140
잇 왕공 대신과 문무 관원은 긔년(朞年) 안 혼(婚聚) 아니며 경셩의 와 잇 군와 셩은 마으락의 영낙을 히고 샹복을 이십칠 일을 닙고 일 안희 혼 아니며 풍뉴 짓지 아니며 문무의 히기 기리 관원과 과업을 닉이 감(監生)과 니뎐(吏銓)과 승관(僧官)과 도관(道官)도 다 상복을 닙어슌텬부(順天府)의 삼 일을 모히여 아과 저녁의 슬프믈 드며 상복 벗기 젼은 비답의 프른 붓 며 각 부 각 원 엿 글월은 십오 일 후로 기려 다시 엿오며 이십칠을 안 엿 샹소와 문셔와 니문(移文)을 다 프른 인을 치고 경셩의 잇 졀과 묘당의 잇 븍을 삼만 마치 치라 엿더라
141
샹복 이십칠 일 젼의 예인을 브리지 못니 문을 맛틀 길이 업지라 이 회졍기 아직 미리 졍키 어려온 고로녜부의 믄져 글을 드려 믄져 두 사을 돌너보내여 태샹황 샹 긔별을 장계고져 여 슈부(首副) 역관으로 여금녜부의 나아가 의논라 니 여러 의논이 다 닐오 일이 로 되지 못리라 야 의논이 갈지 아닌지라 반시 쟝 연타(延拖)여 여러 을 보낼지라 이러므로 즉의 시 오지 못게시니 이리져리 샹냥 사으로 여금 침식이 다지 아니더라
143
관의 머므다 어졔밤이 깁흔 후의 통관이녜부의 나아가 대포 바다 왓지라 즉시 피인의 바질 쟈 삭 쥬어 쳔담복 우희 슷쳐 관 모양으로 셩화치 촉여 지어 닙고 새벽의 쟝 궐하의 나아가랴 통관이 닐오 우리 맛당이 몬져녜부의 나아가 졀 셔히 아라온 후의 궐하로 나아가미 늣지 아니타 고 식후 비로소 도라와 닐오 대쇼 관원을 다 대포 쥬어 여금 복을 일우게 졍 날이 업니 샹복이 밋쳐 일우지 못여시면 일을 기리미 무방고 샹복이 임의 일워실지라도 진시 곡반(哭班)의 밋지 못면 오시와 신시 곡반의 드러가 참예미 가치 아니타 고로 이날은 아니 드러가니 이거시 반시 져의 상복을 밋쳐 짓지 못 연고로 즁간의셔 연타 연괴러라
144
태샹황 상 낫단 말이 관의 니른 후 여러 통관이 슐 붓고 깃븐 비치 얼골의 낫타나 셔로 니 크게 통엿다 니 대개 아국의 부음을 반포라 오면 은 만히 어더 오리라 말이니 극히 통악(通惡)더라
145
이십칠 일을 지내야 져 연다 되 셩 셩외예 져 다 의구히 것지 아녓고 만인과 한인의 벼 업 쟈 프른 옷과 거믄 옷 평시와 치 닙고 스로 닐오 관계미 업다 고 다만 마으락이 우희 븕은 영낙을 힐 이오 일 젼의 머리털을 지 못다 더라
146
관의 왕 샹고 사이 니로 태샹황 샹 초이일 나시니 밧긔 사도 아 쟤 만터니 초삼일 묘시로 의조 내여시니 아지 못다 니더라
147
녜예 니 텬 구 일의 복을 일운다 여시나 이 나라은[] 날을 뎡 일이 업고 다만 상복을 초면 궐 곡반의 나아가 셩복이라 일니 공경으로브터 말관지 다 그러면 셩은 궐하의 회곡(會哭) 일도 업다 더라
148
삼 신이 샹의야녜부의 글을 깃쳐 믄져 사 보내기 도모니 대개 의셔 급급히 사을 보내고져 믄 면의 반시 마지못 일이라 역관들이 고 비록 밧비 도모코져 이 큰 샹 비요(匪搖) 가온 엇지 즐겨 쇼국을 위여 쾌[괘]렴(掛念) 니 이시리오 이십칠 일 젼은 각 각 부의셔 인(印) 브리 젼례 업니 반시 관의 나갈 공문을 일워 쥴 니 업다 야 쳐음븟터녜부의 나아가 쳥코져 아니니 대개 그 의 젼의 업 젼례 내고져 아니야 이치 만환()지라 내긔 잇 도리 진실노 졀 졍셩을 코 밧그로 비통 모양을 뵈여 나라 고미 급 의로 두 번 쳥며 세 번 쳥야 쳥을 엇기의 긔약 거시 이곳 인졍의 그러치 아니치 못 일이오 왕명을 밧드러 욕되지 아니케 도리라 져의 니른비[바]녜부모든 대인이 진실노 우리 이치 졀 거동을 본즉 엇지 을 움기며 힘을 베퍼 그 을 일우지 못리오 이날 부역뎡현이녜부샹셔긔균의 집의 나아갓더니균은 야흐로 대궐의 나아가고 홀노 아홍노시 명찬(鴻臚寺鳴贊)벼 쟤 집의 잇다가뎡현의 말을 듯고 오 너희 급히 셔들고져 미 진실노 맛당 일이라 대인의 공퇴(公退)기 기려 내 맛당이 엿와 슈히 쥬션리라 더라 고 뎡현이 도라와 이리 고더라
149
셰폐 방믈(歲幣方物)을 심양셔 르친 거시 이날이야 비로소 드러오니 져[쟤]관(䝴咨官) 일은 야흐로심양을 다 나시리라 더라
151
관의 머므다 어졔 밤든 후 쥬 부(付子ㅣ) 니니 여시되 태샹황뎨 상의됴션국(朝鮮國)복 닙을 신이 날마다 진시 오시 신시의 경운문 밧긔 니러 반녈을 라 슬프믈 들 거시니 날마다 닷거든 통관이 가지로 기려 녜 라 엿더러 대포 관 초삼일 밤의 임의 일운지라 어졔 샹방(上房) 부방(副房) 소문을 드니 부방의셔오각(烏角帶) 지로 고 쟝사모(紗帽) 로려 나 다만목화(木靴) 길도 업고 달니 변통 업지라 샹방의셔 부방을 조차오각 르려 임의 희게 면사뫼검지 못 거시오목화만 검지 못지라 야흐로 걱졍여 내게도 의논여시나 내 별양 의견이 업지라 드여 역관을 모화 의논니 샹방 별행{니}니광직(李廣稙)이 오 쇼인이 일즉뎡유년(丁酉年)의닙동(笠洞)니 판셔(李判書)대감을 라 드러와실 졔 태샹황 황태후 샹 당여 셩복날오사모오각거믄 훠[휘][양][으]로 참예여시니 이 은 인증이라 의심 배 업다 거 부 여러 번 져(趑趄)다가 샹로 젼례로 미 무방타 야 드여 른 거 도로 고 의논이 졍지라 이날 새벽의 대포 관와오사모와오각예흑화(黑靴子) 초고 궐하의 나아가 동화문을 드러 븍으로 슈 보 니 프른 기와로 덥흔 집이 잇지라 이대명(大明)녈셩됴 황태 계시던 집이니 니른바쳥궁(淸宮)이러라
152
쳥궁을 못 밋처셔 븍으로 져근 문을 드러가니 그 안히 심히 너고 동편으로 여러 됴방이 이시니 첫 번 지나 됴방은 복(內司僕)이라 어승마 먹이 곳이라 더라
153
경운문 밧긔 나아가니 이 문은건쳥궁왼편 월랑의 잇 문이라 뎡됴의 드러가던 늉죵문과 셔로 엿더라
154
즉시 곡반을 참예 피인(彼人)의[이] 예셔 녜 쟤 쳔여 인이라 다 우희 양피 갓옷 닙고 갓옷 안 포로 녑 튼 두루막이 닙어시며 포로 쇼공(小功) 만 거[게] 졉어 여시며 그 안흔 프고 거믄 옷 평시치 닙어시며 거믄 마으락이 써시니 왕공 대신 이하로 쇼관지 다름 업며 거믄 의복이 만흐니 이 여러 관원의 죵(從者ㅣ)라 더라
155
경운문 안흐로셔 곡셩 나면 문밧긔 반녈이 라 곡을 되 믄져 번 며 세 번 고두(叩頭) 후의 다시 니러셧다가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 고 인야 곡니 졀가 이러더라
156
경운 밧 동남편 오십 보즈음의 일좌 단쳥 집이 이시니 누른 기와 니어시며 셤돌이 길이나 놉흐니 이 샤뎡이라 니 황뎨 활 뎡라 더라
157
뎡 올흔 편의 각 부의셔 댱막을 리워 누누이 년여시니 댱막마다 일흠을 표엿더라
158
낫이면 다 모혀 안자 기려 삼시 곡반을 참예더라
159
시말의 통관이 황지 일고 경운문 안흐로 인도여 드러가 졍됴의 녜던 곳의 니러 기릴 좌우 의쟝이 졍됴의 베펏던 곳과 조금도 다미 업고 건쳥문 밧 왼편의 명졍을 세워시니 그 졔되 댓 길이 다 길은 고 굵기 두 우음의 지나면 샹하 다 누른 칠고 대의 바 블근 비단의 금으로 을 더으고 당즁(當中)은 거믄 비단을 라시니 기 두 자 고 너븨 다 치오 글 거 보지 못며 문 우편의 마 십여 필을 세워시니 다 법안을 지엇고 우희 누른 보 덥허시며 개 을고 바든 쟤 의쟝 으로 셔시니 이 다 태샹황뎨 평일의 산양 예 로가 시부더라
160
라르 븕은 옷 닙은 사이황냥산(黃陽傘)을 드러 뎡문 셔편의 셰오거 좌우 의쟝이 일시의 졍졔더니 곡셩이 뎐로셔 나오 삼문을 통(洞開)니 며 고두고 곡 졀 경문 밧긔 이실 와 더라
161
문 안 반녈은 다 삼픔 이샹이라 며 사이 누쳔이 될지라 곡을 면 소 궐의 진동더라
162
곡 소 마 소로 우되 미거(未擧) 아희 소 고 별노 다른 거시 업더라
163
문 안희 여러 사이 이시니 이 다 왕궁 대신과 갓가온 종실이라태뉴뇽(劉墉)과녜부샹셔긔균이 건쳥문(乾淸門) 밧 동셔반(東西班首ㅣ) 되엿더라
164
뎐 우리 션 반녈의셔 먼지라 다만 라보며 뎐샹의셔 당즁야 큰 문이 건쳥문 졍문으로 더브러 졍히 셔로 여시나 심슈(深邃)야 셔이 블[볼] 길이 업더라
165
뎐(奠)을 파매 일시의 이 쟝 지오고 문이 다치이며 븕은 옷 닙[은] 여라믄 사이 금빗 탁 두 사식 마조 들고 누른 보흐로 덥허 나오니 뎐을 믈닌 것신[가] 시부며 왕공 대신과 다 네 녁흐로 흣터져 가더라
166
셤나국신은 우리 아 셧시 머리 우 독각 금관(獨脚金冠)을 검은삼승(三升)으로 시며 흰 두루막이 피인과 치여 닙엇더라
167
[회]국(回子國)신은셤나국신 아 셔시 곡 의 혹 로 눈믈을 씻 쟤 이시니 즁국의 픔직이 이셔 곱[놉]다 나 거믄 과 구례[레]나로시 뮙지 아니여도 흉악 오랑캐며 압흐로 지면 비린 코흘 거니더라
168
삼 신이 반녈의 나아간 후 곳 인 즁이라 피인이 몰기[리]여 니러 서네 겹을 에우고 혹 손으로 모 어로져 보며 혹 손바닥의 글 벼도 무며 거거(來來去去)여 몰을 말노 지져괴며 져희리 슉덕여 업더라
169
사으로 여금 셔로오믈 견지 못너라
170
우리 뎐 파 후 경운문 밧그로 나오니녜부로셔 댱막을 베퍼 쥬거 그 가온 나아가 안니 죵녀 겁질노 두터온 명셕쳐로[럼] 그러 라시며 댱막은 삼승 겹으로 며시며 거족은 검고 안은 희며 우희 면 자즘을 놉혀 창을 내고 사(紗)로 나시며 속이 널너 여라믄 사이 족히 용납너라
171
신시 미쳐 반녈의 니니 오히려 밋지 못엿지라즁화뎐뒷문 셤돌 밋 안잣더니 사이 오뉵 종인을 리고 알프로 나아와 닉이 보기 마지 아니니 얼골이 셕(白晳)고 조 약간 표경(剽輕) 거동이 이시며 예 사이오 나히 삼십이 못여 뵈더라
172
그 죵인을 도라보아 므 말이 잇더니 그 죵인이 나아와 녑 션 역관려쳥심환을 달나 대 가져온 거시 업지라 다만 쥬머니 속의오(烏梅) 낫치 잇거 내여쥬니 바다 가진 후 년여 지우지우고 몰[려] 건쳥문 앏흐로 가니 지우란 말은 가쟈 말이라 통관려 엇던 사이뇨 니 태샹황의 손오 십일친왕(十日親王)의 아이라 신시 곡반 졀 오시와 고 믄져 번 고 고규[두]기 젼을 나아올 졀라 더라
173
관의 도라오니 오히려 지지 아니얏더라
174
저녁 의 통관이화 즁당(和中堂)의 지위(知委)로 일라 오됴션신이 명일븟터 죵인을 만히 거리지 말고 다만 역관 두 사식 리고 드러와 반녈의 와 참예라 니 이 거말이라 이날 부역이 뎐 초삼일노브터 황뎨 명샤화신(和珅)과복장[강]안(福康安)을 쥬야로 빈뎐(殯殿)의 직희여 임의로 츌입지 말나고 그 이튼날 화신의구문졔독(九門提督)이란 벼을 라 황형뎨 팔친왕을 시기다 니구문졔독은 아홉 벼을 지 벼이니 권력이 극히 즁 소임이라 이 말노 보건대 쟝 죽기 결을치 못려든 어 결을의 외국 신을 지위여 죵인을 만타 젹다 리오 대져 통관들이 이젼부터 화 즁당을 일라 외국 신을 공동(恐動)코져 나 젼혀 됴뎡 일을 아지 못 거시러라 그러나 임의 지위 잇다 니며 깁고 엄슉 곳의 죵인을 만히 드려가 거시 진실노 삼가 도리 아니라 이런 고로 즁 역관의게 분부여 일브터 둘식 로라 니라
176
관의 머므다 샹 즁병지여(重病之餘)의 어졔 죵일토록 노쳐(露處)지라 더칠까 념녀야 부 날노 브러 기의 경운문 밧긔 나아와 기리다가 진시 밋쳐 드러가 참예고 도로 나왓다가 오시 밋쳐 드러가고 신시 밋쳐 드러가니 반녈 졀 갈치 어졔와 고 경운문 밧긔 댱막을 어졔 와 친 로 두어시니 젼을 파 후의 나오면 댱막의셔 니라 이젼은 셔장(書狀)이 뉴관(留館) 예 황뎨의 거동의 지영지송(祗迎祗送)과 졍됴 됴회와홍노시년녜(宴禮)와광녹시(光祿寺)하마연(下馬宴)과 오문 밧 샹 타 날 밧근 다른 공고(公故)의 나아가 참예 일이 업지라 번 성복 후의 다시 참예치 아니 스로 구 거시 업 다만 샹 병환으로 나아가지 못니 부 날마다 혼자 드러가기 면(事面)의 구챠고 피인이 무 무 일노 신만 참예뇨 면 답기 어려온지라 이러모로 초오일브터 이십팔일지 부와 가지로 날이 새면 궐하로 나아가 삼시 곡반의 참예고 질 의 관의 도라오니라
177
이날 오시 곡반의 믈너나온 후 사슴의 고기 서 근을 황뎨 송(賜送)이라 고 쥬니 녯 법으로 면 텬 샹의 셩복날이 머러시 고기 송 거시 므 녜문(禮文)인지 모너라
178
어졔 쳐음 곡반의 드러온 날이라 삼 신이 샹의야 니 오날 궐의셔 밥과 고기 먹으미 가치 아니타 야 쥬방의 분부야 밥을 히고 소찬을 찰와 나오라 야 댱막 안셔 가지로 엇더니 하인들이 피인의 밥 먹 거 보고와 니 혹열구쟈탕(悅口子湯)을 노코 화로의 돌아안자 어즈러이 먹으며 슐 쟝와열구쟈탕쟝 무슈엿더라 니 조금도 평일과 다이 업더라 극히 연(駭然)더라
179
열구쟈탕은 곳 탕제라 일니 졔육과 의 고기 너허 그러시 그즁 호뷔(好否ㅣ) 이셔 두냥어치와냥반의[어]치와 냥의[어]치 양념과 나믈이 다다 더라
180
드러올 의 복 알셔 셔너 오랑캐 삽흘 가지고 담 우 븕은 면 흙을 긁으며 이변 로히 븕은 흙을 바니 므 의 쥴 모며 샤졍 압 삼십 보즘 가온대 벽돌노 담을 시며 면이 방졍(方正)지라 놉희 자 남즉며 그 안히 방 열 자히 될 듯고 그 가온대 무어 은 이시니 태샹황 유의(遺衣)와 폐(幣帛)을 오 곳이라 더라
181
샤졍 녑흐로 븍을 라보건쳥궁뒤흐로 놉흔 언덕이 잇고 언덕 우희 삼층 집과 이층 집이 이시니 먼리셔 셔치 아니나 졔되 긔묘야 운쇼(雲宵)의 소사나니 이 언덕은 곳대명젹만슈[세]산(萬歲山)이오 미[매]산(煤山)이라 일니 희 셕탄으로 라시매미산이라 여시며 이졔 곳쳐경산(景山)이라 더라
182
경쳥궁동편의봉션뎡(奉仙亭)이 잇고건쳥궁·봉션뎡두 집 이의 담 안흐로 져근 집이 뵈니 이뉵경궁(毓慶宮)이라 곳 신황뎨 태 되여실 제 거쳐던 배오 즉위 후로 샹해 거쳐니 대개건쳥궁의셔 갓가와 신혼(晨昏)의 뎡셩(定省)기 심히 편믈 위미러라봉션뎡으로 오십 보 남기 야 담을 막고 가온대 문을 내여시니 셕경문이라 현판고 그 안이 너른지라 븍으로 긴 담을 고 셰 문을 셰워시니 가온대 은 황극문(皇極門)이오 좌편은 황극좌문이오 우편은 황극우문이니 현판은 다 태샹황 어필이라 도셔 쳐시되 고희텬(古稀天子) 네 삭여시니[주:녯 드믄 텬란 말이라]황셩 아홉 문과 궐 무슈 문의 현판마다 다 즁원 글와 만 글 고 어필노 현판 곳은 만 글 어필이러라
183
황극문 마즌 남편 담의 당즁여 돌을 셰워시니 길 두 길의 남고 너뷔 다 간이 된지라 돌이 셔로 다흔 틈을 보지 못니 그 공교오믈 가히 짐작 거시오 아홉 뇽을 트러 삭여시되 아홉 빗 다 각각 빗로 라 삭임이 극히 졀묘야 톱과 비이 사라 움기 더라
184
황극우문이 열녓지라 역관이 그 안흐로 엿보니 문 안희 삼문이 잇고 두 익[랑] 분합문을분당지(粉唐紙)로 새로 나 희기 눈의 며 문 앏 금 니고 가온대 휘댱과 댱막 뉘여 노하시니 다 누른 빗치며 에 약간 쇼남기 잇고 네 모흐로 큰 독이 이시니 크기 슈십 셕 곡식이 가히 용납지라 이 쇼금믈을 은 거시니 궁뎐마다 다 앏 두어시며황극뎐은 셔히 보지 못여시나 졔도와 치 거시건쳥궁과 모양이라노가일긔(老稼齋 日記)예 닐너시화뎐이 이 황극뎐이라 여시나 별노황극뎐이 이에 이시니 혹황극뎐을태화뎐이라 일흠 후의 새로이 집을 지어황극뎐이라 엿거나 그러치 아니면노가그 긔록가 시부더라
185
초삼일노브터 삼 신이 일졔히 장계 오쟈 의논을 내여시나녜부공문 곳 아니면산관(山海關)을 날 길이 업지라 이런 고로 삼 신이 슈부 역관의게 분부야 여금 아모도록 쥬션야 별션(別先來) 보려 니 져희 오 이 비요(匪擾) 즁의 쇼국 졍을 말기 어려올 아니라 비록 을 발뵈나 졔 반시 경탕[쳥] 니 업며 녜부관원이 궐의셔 나오지 아닐지니 말을 고져 나 얼골을 보지 못리라 며 오병진년(丙辰年)태샹황이 뎐위 의 으로셔 쟝계 오고져 야산관지낼 공문을 도모다가 내 엇지 못지라 드여봉황셩드러가 샹고의게 은 여냥을 쥬어 언문 편지로의쥬(義州) 뎐여 달나 여시니 그 봉셩 샹고의 가히 밋엄 도라가기의 삭 쥬어 슌긔 편으로 브쳐거니와 이번은 그치 밋을 사의 슌긔 편도 업지라 만일 이곳 사으로금 편지 뎐면 셔실(閪失)기 반 일이라 며 오 초삼일노븟터 날슈 혜여 이십칠 일 젼은 인(印)을 브리지 못다 니 인 브리기 젼은 공문을 일워 쥬고져 나 일 업다 여 젼혀 방챠(防遮) 의라 내 마지못여 두 역(譯)을 지져 믈니치고 분부여 오날노셔녜부의 가 진졍(眞情)을 쳥야 공문을 맛타 내되 만일 일 로 못 어더 내면 이슈역(首譯)의 죄라 내 쟝 장계여 죄 의논리라 엿더니 이 초삼일 분부 일이라 이에 슈부역이 궐하와녜부의 나아가 후(伺候)다가긔균의 아을 인연여 그 아븨게 통니 그 아비 오 신의 이리미 진실노 올타 고 인여 오 신이녜부의 뎡문(呈文)면 맛당이병부의 이문(移文)야 긔약고 공문을 어더 [쥬]리라 다 거 급히 글월을 일워녜부의 뎡엿더니 두 마을 여러 관원의게 돌녀 뵌 후의 공문을 내여 쥬 고로 오도 밋쳐 장계 오지 못나 슈부역이 이예 을 다고 힘써 일이 로 되게 니 가히 다 일이라 드니녜부로셔 임의 의 통관을 차뎡(差定)다 니 왜국졍과 태평보와왜승과졔문과보덕무다 사이라 며 혹 니 이 다 통관이 합녁여 은 팔냥을 모도와녜부의 녀코 나가기 구지 도모다 니 만일 이 말과 트면녜부의 졍 가히 알너라
187
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 곡반을 참예다 진시 곡반의 믈너나 와 댱막의 안잣더니병부로셔 공문을 일워 가져와시니 만쥬 글로 판의 삭여 박은 거시라 무 말인 쥴 모며 귀졀마다 프른 거로 도려시니 엇진 의 쥴 모너라
188
댱막 앏셔 앏흘 막고 가셔(家書) 더니 피인이 혹 댱을 드러보다가 편지 믈 짐작고 즉시 댱을 덥허 구여 드러오려 아니니 외국 사이 무어 며 반시 구지 보고져 거시로 그러치 아니니 이 지 아닌 일이러라
189
미시 량의 장계 봉야 을부 병방 비쟝(副使兵房裨將)쳠지니득연(李得延)과방 건량관(三房乾糧官)젼 판니시관(李時觀)을 별장여 보내니니시관이 경운문 밧긔 니러 편지 맛고 하직니라
190
이날 칙 봉다 니 샹칙(上勅)의 셩명은댱승훈(張承訓)이니 벼은산질대신(散秩大臣)이오 후 봉 대신이오 부칙의 셩명은걸(項傑)이니 벼은각(內閣學士) 한군부도독(漢郡府都督)을 겸여시니 곳 만 사이오 샹칙은 한인이라 열사흔날 길을 난다 며 칙 뎡 혹 의논이 본국 신 도라갈 예 칙셔 븟쳐 보미 무방다 거녜부 시랑과영뮈오 이 튼 대 엇지 구챠히 공의게 부치리오죠션은 녜의 아 나라히라 만일 칙 곳 아니 나가면 견모(見侮)리라 야 황뎨 알외고 드여 칙 뎡다 더라
191
오후의 대풍이 니러나니 안잣던 댱막이 업드러진지라 부와 가지로사모 르치고 긔여 나오니 오랑캐 모히여 보 쟤 더옥 만하 우며 지져괴니 괴롭기 심더라
192
회국반녈이 아국 신 녑 잇지라 심시 곡반 젹마다 크게 소 야 부지져 통곡며 슈건을 드러 눈믈을 씨시니 쳐음은 진졍으로 슬허가 의심엿더니 여러 번 피니 번번이 츔을 어 눈 나 눈믈 나 톄고 로 씻 모양을 니 그즁 져믄 거 슈건으로 리오고 우숨을 참 거동이 이시니 져희도 져희 간샤믈 슷치고 잇다감 우슴 반 우름 반이라 그 우숨을 참고져 나 견지 못 형샹이 긔관(奇觀)이러라
193
희제 비록 즁국의 머므러시나 외국 사이라 태샹황 은혜 엇지 닙엇지 모로거니와 무 연고로 진짓 통 모양을 지어 스로 그 셩실치 아니믈 나타내고 겻셔 보 쟤 졀도(絶倒)더라
194
댱막을 엿보 쟈 니로 슈응 길이 업 분 아니라 혹 므 말 곳면 일나 더 모히기예 목인치 안자실 이러니 사이 댱막 뒤흐로 와 엿보며 므 말을 고져 거 역관이 오 그 관인이냐 답왈 벼이 잇노라 무러 오 몃 픔니요 삼픔이라 니 그 픔 놉흔지라 역관이 몸을 일위여 졉 의 닐위고 무슴 벼인요 무니 답왈 나 종실이라 벼 일흠을 닐너도 그 모더라
195
인야 셩을 무른대됴(趙)가로라 지라 대져 황뎨 셩은 [주:랑 ] 신[주:새 신] 각[주: 각] 나[주:깁 라]니 만쥬 글로 니면 신은 은을 일 말이오 각나 금을 일 말이니 은과 금은 오래여도 빗치 변치 아닌 고로 이 여 셩을신각나라 니 일즉 이치 드럿더니 길셔브터됴가라 쟤 믄득 만셰야 동셩이라 니 만셰야 황뎨야 일 말이라 대개 즁원의 아희 로치가셩회(百家姓會)라 이 이시니 곳송나라사이 근 거시라송나라황뎨 셩이 됴시기로 첫 글 곳 나라 됴라 아희 로칠 예 만셰야셩됴(萬歲爺姓趙)라 니송젹브터 그리 일이라 이러므로 무식 사이 황뎨 셩을 됴가라 가 시브더니 이 종실이라 며 됴가라 니 모 일이라 무로 그 종실이 어 어이 됴가라 뇨 그러면 황뎨도 됴시냐 신각나 홀노 황뎨셩이 아니냐 졔 다만 머리 그더겨 그러타 의라 뭇 말을 혹 셔히 몰나 드럿거나 혹 답이 괴와 그러가 아지 못너라
196
이날 궐하의셔 드니 태샹황 장역(易州ㅣ) 지난다 니 곳 강희황뎨(康熙皇帝) 능소(陵所) 국(局內)라쳥(淸)이대명을 니어 일통 지 오십뉵 년의 믈읫 다 님군이니 쳐음 즁원을 어즈런인 님군은슌치황뎨(順治皇帝)라 묘조[호](廟號)셰조(世祖)오 그 아강희황뎨니 묘호셰종(世宗)이오 그 아은 곳 샹황이라슌치능은계쥬 잇고강희능은역쥬 이시니옹졍은계쥬 계장(繼葬)엿지라 태샹황은 맛당히역쥬의 계장리라 니 이슌치황뎨의 유(遺詔ㅣ)니 쇼목(昭穆)을 조차 마다 니어 장 지내게 엿다 더라
197
역쥬븍경셔 일삼십 니러라 혹 니 황뎨 임의 됴신 즁의화신(和珅)과 함지 못야 치엿던 쟈 블너드리니화신의 일을 가히 알니러라 질 예 관으로 도라오다
199
관의 머므다 날이 으매 궐하의 나아가 삼시로 곡반을 참예니라
200
어졔밤의 태샹황의 유됴 반포 거 가져와시니 닐너시녜부 삼가 엿니 졍월 초팔일의 공경야 대 태샹황 유됴 반포공부(工部)관원이 누른 샹을 궤연 뫼신 뎐 동편의 미리 베플고각각즁으로브터 유됴 밧들고 각 관원들이 알[] 인도여 건쳥문의 니러 어보 치고태유됴 밧드러 즁문으로브터 드러와 궤연 뫼신 뎐샹 쳠하의 니거든 황뎨 뎐샹 쳠하 동편의 셔 잇다가 공경야 밧와 즁문으로브터 드러와 번 고 세 번 고두 례 고 니러나 뎐 외편 문으로 말암아 나와 향야 셔고태밧드러 건쳥문 밧긔 니러녜부 당관을 쥬거든 당관이 세 번 고두고 어 밧와 구름 그린 쇼반의 평안이 뫼시고 밧드러 나갈녜부관원드리 알[] 인도여 가온대 길노 말암아 후좌문 즁좌문 태화문과 오문 단문을 나와 밧긔 니러 고 우 평안히 베플고 누른 일산을 베플거든 왕공 관이 샹복으로 기로(耆老)와 군민을 거리고 세 번 며 듯기 다 셔셔 슬프믈 거두고 다시 셰 번 며 아홉 번 고두녜 고녜부관원이 유됴 뇽졍(龍亭) 안 밧드러 대문으로 나와녜부의 니러 사겨 누른 됴희예 박아 텬하의 반포라 엿더라
201
진시예 곡반을 파 후의 쳔관을 라 후우문 즁우문 졍됴문과 밋 오문 단문을 지나 쳥[쳔]안문 밧긔 니니 건쳥문 의와 경운문 밧긔 모혓던 관원이 다 모혀시며 이밧긔 드러온 셩과 군 모혓지라 사이 몃 만 명인 쥴 모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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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녈을 졍졔여 셧더니 이윽고 쳥[쳔]안문 알 누른 일산을 벗치지라 세 번 며 아홉 번 고두고 니러셧다가 다시 러 유됴 닑으니 와시하을 밧들며 운을 니은 태샹황뎨 샤 짐이 각니 뎨왕이 하 명을 밧고 응야 복조 누려 오래고 기 거시 반시 조심야 이 셤기 졍셩이 이셔 하노 더브러 이 업 연후 그 덕이 회곡(回曲)지 아니야 만흔 복을 길이 평안케 누리니 일노 긍긍업업(兢兢業業)야 게으로미 업며 거미 업시여 로 님군 위 으 하 두리오믈 각니 진실노 찬 거 가지며 큰 거 보젼키 어려옴과 을 삼가 오직 쳐음븟터 지 아니믈 알지라 짐이 우러러 상텬(上天)의 큰 도음과 녈셩의 쥬신 업을 밧와 츙녕(冲齡)의 황조 춍시믈 닙엇더니 밋 황괴(皇考ㅣ) 원량(元良)을 삼가 브샤 신긔(神器) 부쳐 쥬시니 즉위믈 날마다 날을 삼가 비록 즁희 누흡(累洽) 긔약을 당나 감히 례(豫大)며 즁향 을 두지 못며 조샹을 공경며 졍의 브즈런며 셩을 랑 이시니 이 두어 가지 일이 알기 어려오미 아니라 키 어려온지라 슈십 년 예 엄공(嚴恭)며 인의며 게오리지 아니코 더옥 공경야 양 교단의 큰 졔 당면 몸소 친히 졍셩을 베퍼 졍히 졔 지믈 갓초 극진히 야 나히 날노 놉흐므로 스로 편 톄 아니코 즁간의 네 번 셩경(盛京)의 나아가 공경야 조샹 능침의 뵈오니 기리 창업이 간신(艱辛)믈 각야 더옥 슈셩(守成)의 두려오미 졀지라 만긔(萬機) 몸소 춍남(總攬)야 밤들며 져므도록 곤피(困疲)믈 닛고 신뇨 인(引對)며 엿온 글월을 비답야 거의 븬 날이 업며 각의 너으며 볏 나고 풍년이며 흉년이 시의 회포(懷抱)의 얽키여 이의 여 번 강졀(江浙)의 슌야 믈 역와 바다 언 막이 각야 젹(赤子) 보젼 야 널니 텬하의 젼곡을 감여 쥰 거시 다 번이오 조운(漕運)냥식을 더러 쥰 거시 세 번이오 힌 포흠(逋欠) 탕쳑(蕩滌) 거시 두 번이며 간간 쟝마와 감음에 편벽(偏僻)된 앙을 만나 덜고 진휼(賑恤) 거시 억만만의 리지 아니니 오직 쇼민의게 가음연 거 감초며 다미 샹니의 닷기 긔약더니 우러러 하과 조샹의 권고(眷顧)시믈 힘닙어 (海內) 승평(昇平)고 우 식확야이려(伊犁)란 오랑캐와부(回部)란 오랑캐와 대금쳔 쇼금쳔 도젹을 다 평뎡고명[면]졍[젼]국(緬甸國)은 됴공고안남국(安南國)은 신복(臣服)며셔화기락이란 오랑캐 항복바다 뫼 리 노코 바다 워 니 바의 머리 조아 다 졍셩을 드리고 그 스로 안졍치 아니믈 짓 쟈 다 죽이고 멸 바의 니니 믈읫 이 큰 공을 여러 번 여온 거시 다 마지못야 군 쓰미좌[라] 위예 이시미 날이 오라고 일을 격미 만흐나 두리 을 인야 날마다 졀야 쳐음브터 감히 임의 평안며 임의 다리다 니고 조금도 가득며 한가 곳의 밟지 못니 도혀 쳔조(踐祚)던 쳐음을 각니 일즉 상뎨 가마니 비러 오 만일 능히 권고시고 명시믈 바다 위의 이셔 뉵십 년 되거든 맛당이 (嗣子)의게 위 뎐야 황조(皇祖) 긔년(期年)신 슈의 넘기지 아니리라 니 그 짐의 츈 야흐로 스믈다시라 미리 뉵십 년을 혜오매 시일이 방댱(方長)지라 가히 아즉도 고 가히 아지 못염즉도 슈의 잇더니 이에 하와 조샹의 도타이 도으시믈 닙와 평안고 강강(康强)야 길믈 만나 나히 구십을 바라보매 니르고 친히 오 원손을 보며 즉위 원년이 환갑이 되여 능히 쳐음 소원을 니 을 어로져 피고 감동미 셔로 더으지라 이에병진졍됴의 친히 황뎨 어보 쥬고 스로 태샹황뎨라 일라 쵸원(初元)의 하긔 고던 본 을 니오미오 스로 한가코 평안야 깁히 거고 놉히 팔쟝 질너 노픈 나 이양코져 계 아니라 이러므로 뎐위 후의 인야 날마다 졍 친히 며 대개 스로 혜아리 졍신 근력이 권근(倦勤)의 니지 아닌지라 만일 우유(優遊)고 이양믈 일삼으면 우러러 하과 조샹의 깁흔 은혜 답 배 아니니 참아 못 분이 아니라 진실노 감히 못 배라 졍 치믈 날마다 야 삼 년이 넘엇지라 근일의텬[현]셩(縣城)의교비(敎匪)란 도젹을 쵸파(勦破)기 인연여 뉴[쥬]필(駐蹕)의 근노야 날노 쳡셔 기리더니 임의 읏듬 도젹과 긴요히 각각 죄범(罪犯)이 있 거괴(巨魁) 연여 잡히인 나아가고 그 라나고 도망 도당도 가히 날 호여 사로잡히믈 일울지라 공을 일우미 즉의 잇고 근년의 로 풍년 드러 샹셔(祥瑞)와 화긔 길 마니 이 져기 안셔(安舒) 나 어려온 일을 각며 힘 일을 도모 이 진실노 일즉 시도 브리오지 못더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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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경신(庚申)은 짐의 구슌 되 라 젼년 겨을의 황뎨 왕공과 문무대신을 거리고 경하례 거기 미리 쳥야 과 말이 졀야 진실노 지극 졍셩이 낫지라 임의 됴지 리워 허락엿니 믈읫 짐의 나히 샹질(上耋)에 오고 모든 복을 초고 응지라 황뎨 만국의 즐거오믈 모도고 억 년의 츅슈믈 펴고져 진실노 인(人子ㅣ) 되며 인신(人臣)의 된 쟈의 무궁 지원(志願)이라 그러나 짐의 본 은 진실노 놉흔 잔 샤치케 베플고 브졀업 허비 과히 말고져 며 각니홍범(洪範)의 고죵(考終)으로 오복의 버려시니 녜로 좃차 뎨왕이 만흔 나흘 누린 (史冊)의 셔로 바라나 내 진미 잇 도라가고 읏듬 슈(壽限)이 년이라 짐이 임의 팔식구 셰의 올나시니 곳 년의 차기 혜매 슌식간이라 오직 장셩야 날노 강건야 몸을 닷가 기리매 엇지 오히려 브족 배 이셔 과히 라기 마지 아니리오 짐의 긔톄(氣體) 강건야 내 질병이 업더니 샹년 납월의 우연히 풍한에 촉상야 됴리매 낫기의 나아가나 졍신이 져기 젼과 지 못지라 새 졍됴의 오히려건쳥궁의 됴하 바닷더니 이졔 음식이 젼감(全減)고 보고 듯 거시 능히 여샹(如常)치 못여 늙은 되 돈연(頓然)이 더지라 황뎨 효도로 봉양 졍셩을 극진이 야 일 가지로 됴호야 낫기 라나 짐이 년 임의 느[노]픈지라 의약에 능히 효험을 볼 배 아니니 이 쟝 졈(大漸)지라 특별이 짐의 위예 이셔 슈십 년 이로 익익(翼翼)히 쇼심야 하과 조샹의 은혜와 도으믈 바든 연유 들어 기리 오 손의게 쥬노라 황뎨 총명 인효야 짐의 을 본바드니 반시 능히 짐의 복과 틀지라 부탁이 사을 어더시니 진실노 깁히 위로 배라 대쇼신공을 그 각각 직을 브즈러니 며 을 쳥여 황뎨의 지극 다리믈 도아 억됴녀민(億兆黎民)으로 여금 긔 즐기게 면 짐이 녈됴의 하의 계신 신령을 라 거의 유감이 업리라 그 샹례 녯 법을 쥰여 이십칠 일 만의 벗고 텬지와 종묘와 샤직 졔 가 오 폐치 못며 일 신령 모든 졔도 거두지 못 거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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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이 이리 고야 경계니 그 각각 쥰야 일을 공경라가경(嘉慶) 년졍월 초삼일 됴셔라 고 어보 첫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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녜부 만샹셔(滿尙書)덕명이 믄져 두어 쥴을 닑어 들니매 그 소 홍챵(弘暢)더니 그치고녜부 시랑여러 관원이 뉸회여 셔로 가라 닑다가 닑기 매 반녈의 참예 쟤 니러나 곡고 다시 세 번 며 아홉 번 고두고 녜 매녜부관원이 유됴 밧드러 대쳥문으로 나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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녜부의셔 황뎨 올닌 쥬문(奏文)이 이시니 니로대 태샹황뎨 유됴 신의 마을노 말암아 공경야 누른 됴예 박아 각 부 각 원과 팔긔아문(八旗衙門)과 밋슌텬부(順天府)여러 곳과 셩경의 쇼쇽 각 아문과 다못신강(新彊)여러 곳과 각 셩슈위(省城守衛) 여러 아문과 밋 각도의 츌젼 대신의게 반포 다병부의 맛겨 반포고 각 쥬무 잇 아문은 젼례로 관원이 유됴 보여 유됴 니 날 각 의 문무 관원이 됴관과 션와 늙은 셩을 거려 다 영낙을 히고 소복을 초와 교외예 나와 러 맛고 마을의 니러 셜고 세 번 며 아홉 번 고두고 문무 관원이 다 복을 일워 이십칠 일을 닙으 흘 안흔 됴관과 션 거려 됴셕으로 곡고 병부도 소복을 초와 이십칠 일을 복 닙으며 젹 관원은 일 예 혼 아니며 일 의 풍뉴 짓지 아니며 권원과 군와 셩이 다 상날을 혜여 일을 다 머리털을 치지 아니코 졔진(諸鎭) 등 관원의 향을 나오 곳을 다 졍지고 대신이 군 거려 츌젼 쟤 유됴 니 날 관원과 군 거리고 마자 녜여 곡고 래[례]고[도] 졀 다 다른 곳과 치고 군 영낙을 혀 삼 일을 지고 나흘 되 날은 여샹이 니매 신을 보여됴션국의 유됴 반포국왕이 군신을 거리시고 소복으로 마자 고(鼓吹)와 풍뉴 졍지며 신이 관의 나아가 연향(宴餉)을 밧지 아니며 외반[번]과몽고부락이 이 번은 관원을 보여 유됴 반포됴션국의 반포 졀와 틀지니 이 위여 삼가 엿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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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궐하의셔 드니 초일 황뎨 명야화신의군지[기]대신과구문졔독두 벼을 히고 명야태유용(劉墉)과니부샹셔쥬규 블너드리니쥬구 일즉화신의 뫼신 배 되여 야흐로 강남의 슌무로 나갓다 며 오 오시의화신을 잡아형부로 리오고 그 식 부마 된 쟈과[와] 그 회 군왕 봉 쟈 여금 가도라 고화신의 집 문을 봉고 쟝 젹몰 황형뎨 팔친왕이 그 일을 간검(看儉)다 며화신의 별업(別業)이 젼(海甸)이란 곳의 이시니젼은셔산(西山)의 잇 지명이라 황손 사으로 여금 젹몰라 엿다 며 신의 셔울 집이 믈홰 츙인(充牣)여 탕(內帑)의 지나며 시쳡이 삼 인이오 그즁 졀이 십여 인이라 황손 사이 오 왕 봉기 원치 아니코 다만화신의 믈 엇기 원다 니 그 믈이 만흐믈 가히 알지라화신을 잡아 내여 갈 졔 응당 우리 잇 곳으로 지날 되 샹해 사이 몰게여 셧기의 피지 못여시며 대뎌 모힌 사이 슉덕여 젼과 로며 그 회 집은 곳유[옥]화관뒤히라 오후의형부로셔 잡아 관 앏흐로 지나지라 쇠슬노 목을 잠으고 슈 와 니 모라가다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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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닐오병진뎐위 즈음의 태샹황이 병환이 즁지라 급급히 봉을 졍화신이 가온로 조차 다른 의논이 잇다 여 이 말이 약간 외국의 들니더니 밋 황뎨 즉위매화신이 혹 졍로 황뎨의 의향을 듯고져 면 황뎨 믄득 피지 아니코 오 맛당이 황야 엿와 결단지라 이 짐의 가히 의논 배 아니라 고 조금도 알은 톄 아니니화신이 을 노코 졔 로 방히 다가 이의 니러 일이 내 패엿다 더라
209
날마다 댱막 안희셔 부로 샹엿지라 벼과 나히 샹젹(相適)지 못 고로 비록 강박히 담 먹으라 여도 반시 구지 양니 내 [도]리 그럴 아니라 겸야 피인의 쳠시(瞻視) 위여 날이 도록 손을 곳고 단졍이 안져시니 그 괴오믈 가히 짐쟉지라 부 말이 드무러 피 츄[츅]일(逐日) 샹여시나 한만(閑漫) 슈쟉이 업더니 이날 날려 무러 왈 심심지라 위연이 각니 피인 즁의 만일병진년간의 아국의 나갓던 쟤 이셔 우리 복을 보고 무러 왈오사모오각어이 네 나라셔 녜던 것과 다르뇨 시러금 답기 어려오니 엇지며 미리 강논치 아니치 못지라 그 의 엇더뇨 내 답여 오 그 어렵지 아닌지라 피인의 바 마으락이 다만 영낙을 히고 의구히 검은 빗 시며 밧긔 흰 옷 닙어시며 안희 샹시 의복(常時衣服)과 다미 업고 거믄슈화(水靴子)로 곡반을 참예니 졔 졀[셜]혹 뭇 배 이실지라도 다만 답기 우리나라 녜문이 이러리오마 나라히 각각 다 아니라 너희 복 닙으믈 보고헌황후(憲皇后)샹 나실 젼녜도 곳 이런지라녜부지휘로 닙엇노라 면 방해롭지 아니타 니 부 듯기 다매 그의 말이 과연 그러타 니 대개 외국 신으로 드러와 텬하의 큰일을 돌연히 당지라 이러므로 쥬야 동동(憧憧)야 혹 어 일의 그미 이셔왕명을 욕되게 가 념녀지라 드여 조심 이 아니 밋 곳이 업니 소임이 즁지라 엇지 이러치 아니리오 이날이 별노 칩지 아니나 바람이 죵일토록 이 블고 틔글이 챵텬(漲天)야 댱막 안 드러 안져시나 신긔(神氣) 심이 블평고 부 노인이오 어졔 긔복다 던지라 로도 길 업고 날마다 셔 날을 보니 극히 민망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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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의 관의 도라오니 역관이 드러와 뵈고 오 칙 십삼 일 만의 나되 패문(牌文)은 십일 일 믄져 나 팔구 일 만의의쥬 나간다 니 진실노 그러 량이면 별션(別先來) 벅벅이 뒤질지라 셔이 몰나 답답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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