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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청전 ◈

◇ 심청전 상권 ◇

해설목차  1권 2권 
1
심청전 상권
 
2
송나라 말년에 황주 도화동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성은 심(沈)이고, 이름은 학규였다. 대대로 벼슬을 한 집안으로 이름이 났었으나, 집안 형편이 기울어져 스무 살이 못 되어 앞을 못 보게 되니, 벼슬 길이 끊어지고 높은 자리에 오를 희망이 사라졌다. 시골에서 어렵게 사는 처지이고 보니 가까운 친척도 없고 게다가 눈까지 어두워 서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양반의 후예로 행실이 청렴하고 지조가 곧아서 사람들이 모두 군자라고 칭송했다.
 
3
그 아내 곽씨 부인은 어질고 지혜로워서 임사 같은 덕행과 장강 같은 아름다움과 목란 같은 절개를 가졌다. [예기(禮記)],[가례(家禮)] <내칙편>과 <주남>, <소남> 관저시를 모를 것이 없었다. 이웃 과 화목하고 아랫사람에게 따뜻하며 집안 살림하는 솜씨가 빈틈이 없었으며, 백이 숙제처럼 청렴하고 안연처럼 가난하게 살았다. 물려받은 재산 없이 집 한 칸에 많지 않은 세간살이로 끼니조차 잇기 힘들었다.
 
4
들에는 논밭이 없고 행랑에는 종이 없어, 가련하고 어진 곽씨 부인 몸소 품을 팔아 삯바느질을 했다. 관대 도포 행의 창의 직령이며, 섭수 쾌자 중추막과 남녀 의복 잔누비질, 상침질 외올뜨기, 고두 누비 속올리기, 빨래하여 풀먹이기, 여름 의복 한삼 고의, 망건 꾸미기, 갓끈 접기, 비자 단추 토수 보선 행전, 줌치 쌈지 대님 허리띠, 약주머니 불끼, 휘양 복건 풍채 천의, 갖은 금침 베갯모에 쌍원 앙 수 놓기며, 오사 모사 각대 흉배에 학 놓기와, 초상난 집 원삼 제복, 질삼 선주 궁초 공단, 수주 남능갑사 운문 토주, 분주 명주 생초 퉁경이며, 북포 황저포 춘포 문포 제추리며, 삼베 백저 극상 세 목 짜기와 혼인 장례 큰일 칠 때 음식 장만, 갖은 중계하기, 백산 과절 신선로며 종이 접기 과일 고이기와 잔칫상에 음식 차리기, 청 홍 황백 침향 염색하기를 일년 삼백예순 날, 하루 한시도 놀지 않고, 손톱 발톱 잦아지게 품을 팔아 모을 적에, 푼을 모아 돈을 짓고, 돈을 모아 양을 만들어, 일수놀이 장리변으로 이웃집 착실한 데 빛 을 주어 실수 없이 받아들여, 봄 가을 올리는 제사와 앞 못 보는 가 장 공경, 사절 의복 아침 저녁 반찬과 입에 맞는 갖은 별미, 비위 맞춰 지성 공경 언제나 한결같으니, 위아랫 마을 사람들이 곽씨부인 음전하다고 칭송했다.
 
5
하루는 심봉사가 말했다.
 
6
"여보, 마누라."
 
7
"예."
 
8
"사람이 세상에 생겨 부부야 누군들 없겠소마는, 전생에 무슨 은혜로 이승에 부부되어, 앞 못 보는 나를 위해 잠시도 놀지 않고, 밤낮으로 벌어다가 어린아이 받들듯이, 행여 배고플까, 행여 추워할까, 의복 음식 때 맞추어 극진히 공양하니, 나는 편하다 하겠지만, 마누라 고생하는 일이 도리어 편치 못하니, 이제부터는 나한테 너무 마음쓰지 말고 사는 대로 살아갑시다. 우리 나이 마흔이 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어 조상 제사를 끊게 되었으니, 죽어 저승에 간들 무슨 면목으로 조상을 뵈오며, 우리 부부 신세를 생각하면 죽어서 장례를 치를 일이나, 해마다 돌아오는 제삿날에 밥 한 그릇 물 한 모금 그 누가 차려 주겠소? 명산대찰에 공이나 들여보아, 다행히 눈먼 자식이라도 아들이고 딸이고 간에 낳아 보면 평생 한을 풀 것이니, 지성으로 빌어보시오."
 
9
곽씨가 대답했다.
 
10
"옛글에 이르기를, '불효한 일이 삼천 가지나 되지만 그 가운데 자식 못 낳는 일이 가장 크다.'고 했으니, 우리에게 자식 없음은 다 저의 탓이라, 마땅히 내쫓을 일인데도 당신의 넓으신 덕택으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자식 두고 싶은 마음이야 밤낮으로 간절하여, 몸을 팔고 뼈를 간들 못 하겠습니까마는, 집안 형편도 어렵고, 바르고 곧으신 당신 성품에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 말을 꺼내지 못했는데, 먼저 말씀하시니 지성으로 공을 들여 보겠습니다."
 
11
그러고는 품팔아 모은 재물로 온갖 공을 다 들였다. 명산태찰 영신당과 오래 된 사당과 성황당이며, 여러 부처님, 보살님과 미륵님께 찾아다니며 칠성불공 나한불공 제석불공, 신중마지 노구마지 탁의시주 인등시주 창호시주 갖가지로 다 지내고, 집에 들어 있는 날은 조왕 성주 지신제를 극진히 드렸더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심은 나무가 꺾어지겠는가.
 
12
갑자년 사월 초파일에 꿈을 꾸니, 상서로운 기운이 공중에 어리고 무지개가 영롱한 가운데 어떤 선녀가 학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몸에는 색동옷이요 머리에는 화관이었다. 노리개를 느짓 차서 쟁그랑거리고 소리내며, 계화꽃 한 가지를 손에 들고 부인께 절하고 곁에 와 앉는 모양은 뚜렷한 달 기운이 품안에 드는 듯, 남해관음이 바다에서 다시 돋는 듯, 심신이 황홀하여 진정하기 어려웠다. 선녀가 부인에게,
 
13
"저는 서왕모의 딸이었는데, 반도 복숭아 진상하러 가는 길에 옥진비자를 만나 둘이 노닥거리느라 시간을 좀 어겼더니, 상제께 죄를 얻어 인간에 내치시매 갈 바를 모르고 있는데, 태행산 노군과 후토부인 제불보살 석가여래님이 부인댁으로 가라 하시기에 왔사오니, 어여삐 받아주소서,"
 
14
하고는 품안으로 들어오기에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즉시 봉사님을 깨워 꿈 이야기를 하니 두 사람의 꿈이 서로 같았다. 그날 밤에 어찌 했던지, 과연 그 달부터 태기가 있었다. 곽씨 부인 마음을 어 질게 가지고, 바르지 않은 자리에는 앉지를 않고, 깨끗하지 않은 음 식은 먹지를 않으며, 음탕한 소리는 듣지를 않고, 나쁜 것은 보지를 않으며, 가장자리에는 서지를 않고, 삐뚤어진 자리에는 눕지를 않았다. 이렇게 하면서 열 달이 되니 하루는 해산기가 있었다.
 
15
"애고 배야, 애고 허리야!"
 
16
심봉사가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놀라서 짚 한 줌을 깨끗이 추려 깔고 정화수 한 사발을 소반에 받쳐놓고 단정히 꿇어앉아,
 
17
"비나이다, 비나이다, 삼신 제왕님께 비나이다. 곽씨 부인 늘그막에 낳는 아이오니 헌 치마에 외씨 빠지듯 순산하게 해주옵소서."
 
18
하고 비는데, 난데없는 향내가 방에 가득하고, 오색 무지개가 둘러 정신이 가물가물한 가운데 아이를 낳고 보니 딸이었다. 심봉사가 삼을 갈라 뉘어 놓고 어쩔 줄 모르고 기뻐하는데, 곽씨 부인이 정신 을 차리고 나서 물었다.
 
19
"여보시오 봉사님, 아들 딸 가운데 무엇인가요?"
 
20
심봉사가 크게 웃고 아기의 아랫도리를 만져보니, 손이 나룻배 지나듯 거침없이 지나가니,
 
21
"아마도 묵은 조개가 햇조개를 낳았나 보오."
 
22
곽씨 부인 서러워하여 하는 말이,
 
23
"공을 들여 늘그막에 얻은 자식이 딸이란 말이오?"
 
24
심봉사가 이른 말이,
 
25
"마누라, 그런 말일랑 마오. 첫째는 순산이요, 딸이라도 잘 두면 어느 아들과 바꾸겠소. 우리 이 딸 고이 길러 예절부터 가르치고, 바느질 베짜기를 두루두루 가르쳐서 요조숙녀 되거들랑, 좋은 배필 가리어서 사이 좋게 살게 되면, 우리도 사위에게 의탁하고 외손에게 제사를 잇게 하지 못하겠소?"
 
26
하며, 첫국밥 얼른 지어 삼신상에 받쳐 놓고 옷매무새 바로 하고 두 손 들어 빌었다.
 
27
"비나이다, 비나이다. 삼십삼천 도솔천 제석님께 비오니, 삼신 제왕님네 모두 한마음으로 굽어보옵소서, 사십 넘어 점지한 자식 한두 달에 이슬 맺혀 석 달에 피 어리고, 넉 달에 사람 모습 생기고 다섯 달에 살갗 생겨, 여섯 달에 육정 나고, 일곱 달에 골격 생겨 사만팔천 털이 나고, 여덟 달에 친잠 받아 금강문 해탈문 고이 지나 순산하오니 삼신님네 덕이 아니신가. 비록 무남독녀 딸이오나 동방삭의 명을 주어, 태임의 덕행이며 대순 증삼 효행이며 기량 처의 절행이며 반희의 재질이며, 복은 석숭의 복을 점지하며 가이없는 복을 주어, 외 붓듯 달 붓듯 잔병 없이 일취월장하게 해주옵소서."
 
28
더운 국밥 퍼다놓고 산모를 먹인 뒤에 흔자말로 아기를 어른다.
 
29
금자동아, 옥자동아. 어허 간간 내 딸이야.
 
30
포진강 숙향이가 네가 되어 살아왔나.
 
31
은하수 직녀성이 네가 되어 내려왔나.
 
32
남전북답 장만한들 이보다 더 반가우며, 산호진주 얻었은들 이보다 더 반가울까.
 
33
어디 갔다 이제 와 생겼느냐.
 
34
이렇듯이 즐기더니 곽씨 부인 뜻밖에 산후 뒤탈이 났다. 어질고 음전한 곽씨 부인 해산한 지 초칠일 못다 가서 바깥 바람을 많이 쐬어 병이 났다.
 
35
"애고 배야, 애고 머리야, 애고 가슴이야, 애고 다리야."
 
36
지향없이 온몸을 앓으니, 심봉사가 기가 막혀 아픈 데를 두루 만 지며,
 
37
"정신차려 말을 하오. 체했는가, 삼신님데 노함인가?"
 
38
병세가 점점 위중하니 심봉사가 겁을 내어 건너 마을 성생원을 모셔다가 진맥한 후에 약을 쓸 제, 천문동 맥문동 반하 진피 계피 백복 염소 엽방풍 시호 계지, 행인 도인 신농씨 장백 초로에 약을 쓴들 죽을 병에는 약이 없는 법이라. 병세 점점 깊어져서 속절없이 죽게 되니, 곽씨 부인도 살지 못할 줄 알고 남편의 손을 잡고,
 
39
"봉사님!"
 
40
후유 한숨 길게 쉬고,
 
41
"우리 둘이 서로 만나 백년해로하려 하고 가난한 살림살이 앞 못보는 가장을 소홀히 하면 불편할까 걱정되어 아무쪼록 뜻을 받아 받들고자 하여, 추위 더위 가리지 않고 아랫동네 윗동네로 다니면서 품을 팔아 밥도 받고 반찬도 얻어, 식은 밥은 내가 먹고 더운 밥은 낭군 드려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게 극진히 공경해 왔는데, 천명이 그뿐인지 인연이 끊겨 그러한지 하릴없게 되었군요. 눈을 어찌 감고 갈까. 뉘라서 헌 옷 지어 주며 맛난 음식 뉘라서 권하리오. 내가 한 번 죽어지면 눈 어둔 우리 가장 사고무친 혈혈 단신 의탁할 곳이 없어, 바가지 손에 들고 지팡막대 부여잡고 때 맞추어 나가다가 구렁에도 빠지고 돌에도 채여 엎푸러져서 신세 한탄 우는 양은 눈으로 보는 듯, 집집마다 찾아가서 밥 달라는 슬픈 소리 귀에 쟁쟁 들리는 듯, 나 죽은 뒤 혼백인들 차마 어찌 듣고 보며, 명산대찰 신공들여 사십에 낳은 자식 젖 한 번도 못 먹이고 얼굴도 채 못 보고 죽는단 말이오? 전생에 무슨 죄로 이 승에 생겨나서 어미 없는 어린 것이 뉘 젖 먹고 자라나며, 가장 의 일신도 주체 못 하는데 또 저것을 어찌 하며, 그 모양 어찌 할 까. 멀고 먼 황천길에 눈물겨워 어찌 가며, 앞이 막혀 어찌 갈까.
 
42
저 건너 이동지 집에 돈 열 냥 맡겼으니 그 돈 열 냥 찾아다가 초상에 보태 쓰고, 광 안에 양식 해산쌀로 두었으나 못다 먹고 죽게 되니 나의 사정 절박하오. 첫 삭망이나 지낸 뒤에 두고 양식하옵고, 진어사댁 관복 한 벌 흉배 학을 놓다 못다하고 보에 싸서 아래 농에 넣었으니, 나 죽어 초상 뒤에 찾으러 오거든 염려 말고 내어주고, 건넛 마을 귀덕어미 내게 절친하게 다녔으니 어린아이 안고 가서 젖을 먹여 달라 하면 결코 괄세하지 않을 테니, 천행으로 이 자식이 죽지 않고 자라나서 제발로 걷거든, 앞세우고 길을 물어 내 무덤 앞에 찾아와서,
 
43
'너의 죽은 어머니 무덤이다.'
 
44
하고 가르쳐 모녀 상면하면 혼이라도 원이 없겠어요. 천명을 어길 길이 없어 앞 못 보는 가장에게 어린 자식 맡겨 두고 영결하고 돌아가니, 낭군의 귀하신 몸 애통하여 상하지 말고 천만보중하셔요. 이승에서 못다한 인연 다시 만나 이별 말고 사십시다.
 
45
애고 애고, 잊은 게 있네요. 저 아이 이름을 심청이라 지어주 고, 나 끼던 옥가락지 이 함 속에 있으니, 심청이 자라거든 날 본 듯이 내어주고, 나라에서 내려주신 돈 수복강녕(壽福康寧) 태평안락(太平安樂) 양편에 새긴 돈을 고운 비단 주머니에 주홍 당사 벌 매듭 끈을 달아 두었으니, 그것도 내어 채워주셔요."
 
46
하고 잡았던 손을 뿌리치고 한숨짓고 돌아누워 어린아이를 잡아당겨 낮을 한데 문지르며 혀를 끌끌 차며,
 
47
"천지도 무심하고 귀신도 야속하다. 네가 진작 생기거나 내가 좀 더 살거나, 너 낳자 나 죽으니 가없는 이 설움을 너로 하여 품게 하니, 죽는 어미 사는 자식 생사간에 무슨 죄냐? 뉘 젖 먹고 살아나며 뉘 품에서 잠을 자리. 애고, 아가, 내 젖 마지막 먹고 어서 어서 자라거라."
 
48
두 줄기 눈물에 낯이 젖는다. 한숨지어 부는 바람 소슬바람 되어 있고, 눈물 맺어 오는 비는 보슬비가 되어 있다. 하늘은 나직하고 검은 구름 자욱한데 수풀에 우는 새는 둥지에 잠이 들어 고요히 머 무르고, 시내에 도는 물은 돌돌돌 소리내며 흐느끼듯 흘러가니 하 물며 사람이야 어찌 아니 설워하리. 딸꾹질 두세 번에 숨이 덜컥 지니 심봉사가 그제야 죽은 줄 알고,
 
49
"애고 애고, 마누라, 참으로 죽었는가? 이게 웬일인고."
 
50
가슴을 꽝꽝 두드리며 머리를 탕탕 부딪치며 내리 궁글 치궁글며 엎어지며 자빠지며 발구르며 슬퍼하며,
 
51
"여보, 마누라. 그대 살고 내가 죽으면 저 자식을 키울 것을, 내가 살고 그대 죽어 저 자식을 어찌 키우잔 말이오? 애고 애고, 모진 목숨, 살자 하니 무엇을 먹고 살며, 함께 죽자 한들 어린 자식 어찌 할까.
 
52
애고! 동지 섣달 찬 바람에 무엇 입혀 키워내며, 달은 지고 어두운 빈 방 안에 젖 먹자 우는 소리 뉘 젖 먹여 살려낼까? 마오 마오, 제발 덕분 죽지 마오. 평생 정한 뜻이 같이 죽어 한데 묻히자더니 염라국이 어디라고 날 버리오 저것 두고 죽는단 말이오? 인제 가면 언제 오리, 애고, 겨울 지나 봄이 되면 친구 따라 오려는가, 여름 지나 가을되면 달을 따라 오려는가. 꽃도 졌다 다시 피고 해도 졌다 돋건마는, 우리 마누라 가신 데는 가면 다시 못 오는가. 하늘나라 요지연에 서왕모를 따라갔나, 월궁 항아 짝이 되어 약을 찾아 올라갔나, 황릉묘 두 부인께 회포 풀러 올라갔나. 회사정에 통곡하던 사씨 부인 찾아갔나. 나는 뉘를 찾아갈까, 애고 애고, 설운지고."
 
53
이렇듯이 애통할 제 도화동 사람들이 남녀노소 없이 모여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이,
 
54
"음전하던 곽씨 부인 불쌍히도 죽었구나. 우리 동네 백여 집이 십시일반으로 장례나 치러주세."
 
55
공론이 모아져서 수의와 관을 마련하여 양지바른 곳을 가리어서 사흘만에 장례할 제 슬픈 소리로 상두가를 불렀다.
 
56
원어 원어 원어리 넘차 원어.
 
57
북망산이 멀다더니 건넛산이 북망일세.
 
58
원어 원어 원어리 넘차 원어.
 
59
황천길이 멀다더니 방문 밖이 황천이라.
 
60
원어 원어.
 
61
불쌍하다 곽씨 부인, 행실도 음전하고 재질도 기이터니, 늙도 젊도 아니해서 영결종천 하였구나.
 
62
원어, 원어, 원어리 넘차, 원어.
 
63
어화 너화 원어.
 
64
이리 저리 건너갈 제 심봉사 거동 보니, 어린아이 강보에 싼 채 귀덕어미 맡겨 두고, 지팡막대 흩어 짚고 논틀 밭틀 좇아와서 상여 뒤채 부여잡고, 목은 쉬어 크게 울진 못하고,
 
65
"여보, 마누라. 내가 죽고 마누라가 살아야 어린 자식 살려내지, 천하천지 몹쓸 마누라. 그대 죽고 내가 살아 초칠일 못다간 어린 자식, 앞 못 보는 내가 어찌 키워낼꼬. 애고 애고."
 
66
섧게 울면서 산소에 당도하여 안장하고 봉분을 다 한 뒤에, 심봉사가 제를 지내는데 서러운 심정으로 제문 지어 읽었다.
 
67
아아, 부인이여, 아아, 부인이여
 
68
그토록 음전하던 부인이여, 그 누군들 따를 수가 있으리오.
 
69
한평생 같이 살자 기약하고, 급히 떠나 어디로 갔소.
 
70
이 아일 남겨두고 떠나가니 이것을 어찌 길러내며
 
71
한 번 가면 못 돌아올 저승에서 어느 때나 오려는가
 
72
깊은 산에 묻혀 있어 자는 듯이 누웠으니
 
73
말 못 하고 조용하니 보고 듣기 어려워라.
 
74
눈물 흘러 옷깃 적셔 젖는 눈물 피가 되고
 
75
애끓는 마음으로 빌어본들 살 길이 전혀 없다.
 
76
그대 생각 간절하나 바라본들 어이하며
 
77
그대 잃고 탄식하니 뉘를 의지하잔 말가
 
78
백양나무 달이 지니 산은 적막 밤 깊은데
 
79
울음소리 들리는 듯 무슨 말을 하소한들
 
80
이승 저승 길이 달라 그 뉘라서 위로하리.
 
81
후세에나 만나려나 이승에는 한이 없네.
 
82
변변찮은 제물이나 많이 먹고 돌아가오.
 
83
제문을 막 읽더니 숨이 넘어갈 듯하여,
 
84
"애고 애고. 이게 웬일인고. 가오 가오, 날 버리고 가는 부인 탄하여 무엇하리. 황천으로 가는 길에 주막이 없으니 뉘 집에 자고 가리, 가는 데나 내게 일러주오."
 
85
슬피 우니 장례에 온 손님들이 말려 진정시켰다. 돌아와서 집이 라고 들어가니 부엌은 적적하고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어린아이 데려다가 횅댕그러진 빈 방 안에 태백산 갈가마귀 게발 물어 던진듯 이 홀로 누웠으니 마음이 온전하리, 벌떡 일어서더니 이불도 만져 보고 베개도 더듬으며, 전에 덮던 이부자리 전과 같이 있지마는 독수공방 뉘와 함께 덮고 자리. 농짝도 광쾅 치며 바느질 상자도 덥석 만져보고, 머리 빗던 빗도 핑등그리 던져도 보고, 받은 밥상도 더듬더듬 만져보고, 부엌을 향하여 공연히 불러도 보며, 이웃집 찾아가 서 공연히,
 
86
"우리 마누라 여기 왔소?"
 
87
물어도 보고, 어린아이 품에 품고,
 
88
"너의 어머니 무상하다, 너를 두고 죽었지? 오늘은 젖을 얻어먹었으니 내일은 뉘 집에 가 젖을 얻어먹여 올까. 애고 애고, 야속하고 무상한 귀신이 우리 마누라를 잡아갔구나."
 
89
이렇게 애통하다가 마음을 돌려 생각하기를,
 
90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올 수 없는 법이라. 할 수 없으니 이 자식이나 잘 키워내리라,'
 
91
하고 어린아이 있는 집을 차례로 물어 동냥젖을 얻어 먹일 적에, 눈어두워 보지는 못하고 귀는 밝아 눈치로 가늠하고 앉았다가, 아침 해가 돋을 적에 우물가에서 들리는 소리 얼른 듣고 나서면서,
 
92
"여보시오 아주머님, 여보 아씨님네, 이 자식 젖을 좀 먹여주오. 나를 본들 어찌하고, 우리 마누라 살았을 제 인심으로 생각한들 차마 어찌 괄시하겠으며, 어미 없는 어린 것이 불쌍하지 아니하오. 댁네 귀하신 아기 먹이고 남은 젖 한 통 먹여 주시오."
 
93
하니, 뉘 아니 먹여주리. 또 6, 7월 김매는 여인 쉬는 참 찾아가서 애걸하여 얻어 먹이고, 또 시냇가에 빨래하는 데도 찾아가면 어떤 부인은 달래다가 따뜻이 먹여주며 훗날도 찾아오라 하고, 또 어떤 여인은,
 
94
"이제 막 우리 아기 먹였더니 젖이 없구만요."
 
95
했다. 젖을 많이 얻어 먹여서 아기 배가 볼록하면 심봉사가 좋아라 고 양지바른 언덕 밑에 쪼그려 앉아 아기를 어루었다.
 
96
아가 아가 자느냐. 아가 아가 웃느냐.
 
97
어서 커서 너의 어머니같이 어질고 똑똑하여
 
98
효행 있어 아비에게 귀한 일을 보여라.
 
99
어느 할머니 있어 보아주며
 
100
어느 외가 있어 맡길소냐.
 
101
하루라도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어서 아이 젖을 얻어 먹여 뉘어 놓은 뒤에, 사이사이 동냥할 제 삼베 전대 두 동 지어 한 머리는 쌀을 받고 한 머리는 벼를 받아 모으고, 장날이면 가게마다 다니며 한푼 두푼 얻어 모아 아이 간식거리로 갱엿이나 홍합도 샀다. 이렇게 살면서 매월 초하루 보름과 소상, 대상, 기제사를 염려없이 지냈다. 심청이는 장래 귀히 될 사람이라, 천지 귀신이 도와주고 여러 부처 와 보살이 남몰래 도와주어 잔병 없이 자라나서 제발로 걸어다니며 어린 시절을 지났다. 무정한 세월은 물 흐르듯하여 어느덧 예닐곱 살이 되니, 얼굴이 아름답고 행동이 민첩하고, 효행이 뛰어나고 소견이 탁월하고 인자함이 기린이라. 아버지의 조석 공양과 어머니의 제사를 법도대로 할 줄 아니, 뉘 아니 칭찬하리.
 
102
하루는 아버지께 여쭈었다.
 
103
"까마귀 같은 새짐승도 저녁이 되면 먹을 것을 물어다가 제 어미를 먹일 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새짐승만 못하겠어요? 아버지 눈 어두우신데 밥 빌러 가시다가 높은 데 깊은 데와 좁은 길로 여기저기 다니다가 엎어져서 상하기 쉽고, 비바람 부는 궂은 날과 눈서리 치는 추운 날이면 병이 나실까 밤낮으로 염려됩니다. 제 나이 예닐곱이나 되었는데 낳아서 길러 주신 부모 은덕을 이제 갚지 못하면 후에 불행하신 날에 애통한들 갚겠어요? 오늘부터 아버지는 집이나 지키시면 제가 나서서 밥을 빌어다가 끼니 걱정 덜게 해드리겠어요."
 
104
심봉사가 웃으며 하는 말이,
 
105
"네 말이 기특하구나. 인정은 그러하나 어린 너를 내보내고 앉아 받아먹는 내 마음은 어찌 편하겠느냐, 그런 말 다시 마라."
 
106
심청이 다시 여쭈었다.
 
107
"자로는 어진 사람으로 백리 길에 쌀을 져다 부모를 봉양했고, 제영이는 어진 여자였지만 낙양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제 몸 팔아 구해냈다는데, 그런 일을 생각하면 사람이 예나 지금이 다르겠어요, 고집하지 마셔요."
 
108
심봉사가 옳게 여겨,
 
109
"기특하다 내 딸아, 효녀로다 내 딸아. 네 말대로 그리 하여라."
 
110
하고 허락했다. 심청이 이날부터 밥빌러 나설 적에 먼 산에 해 비치 고 앞마을에 연기나면, 헌 버선에 대님치고 말기만 남은 베치마, 앞 섬 없는 겹저고리 이렁저렁 얽어메고, 청목 휘양 둘러쓰고 버선 없이 발을 벗고, 뒤축 없는 신을 끌고 헌 바가지 옆떼 끼고 노끈 매어 손에 들고, 엄동설한 모진 날에 추운 줄을 모르고 이집 저집 문앞 문앞 들어가서 간절히 비는 말이,
 
111
"어머니는 세상 버리시고 우리 아버지 눈 어두워 앞 못 보시는 줄 뉘 모르시겠어요? 십시일반이오니 밥 한 술 덜 잡수시고 주시면 눈 어두운 저의 아버지 시장을 면하겠습니다."
 
112
보고 듣는 사람들이 마음에 감동하여 밥 한 술, 김치 한 그릇을 아끼지 않고 주며 먹고 가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심청이 하는 말이,
 
113
"추운 방에 늙으신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실텐데 저 혼자만 먹겠습니까? 어서 바삐 돌아가서 아버지와 함께 먹지요."
 
114
이렇게 얻어서 두세 집 밥을 모아서 넉넉하면 급히 돌아와서 방문 앞에 들어서며,
 
115
"아버지 춥고 시장하지 않으셨어요, 오래 기다리셨지요, 여러 집을 다니다 보니 이렇게 더디었어요."
 
116
심봉사가 딸을 보내고 마음 둘 데 없어 탄식하다가 이런 소리를 얼른 반겨 듣고 문을 펄쩍 열고 두 손 덥석 잡고,
 
117
"손 시렵지,"
 
118
하며 손을 입에 대고 훌훌 불며, 발도 차다고 어루만지며, 혀를 끌 끝 차고 눈물을 글썽이며,
 
119
"애고 애고, 애닯구나 너의 어머니. 무정하다 내 팔자야. 너를 시켜 밥을 빌어먹고 사잔 말이냐? 애고 애고, 모진 목숨 구차히 살아서 자식 고생만 시키는구나."
 
120
심청의 극진한 효성, 아버지를 위로하기를,
 
121
"아버지 그런 말씀 마셔요.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의 효도 받는게 이치에 떳떳하고 사람의 도리에 당연하니, 그런 걱정일랑 마시고 진지나 잡수셔요."
 
122
하며 아버지 손을 잡고,
 
123
"이것은 김치고, 이것은 간장이어요, 시장하신데 많이 잡수셔요."
 
124
이렇듯이 공양하며 춘하추동 사시절 없이 동네 거지 되었더니,한해 두해 너댓 해 지나가니 천성이 재바르고 바느질 솜씨가 능란 하여 동네 바느질로 공밥 먹지 아니하고, 삯을 주면 받아와서 아버지 의복과 반찬 하고, 일 없는 날은 밥을 빌어 근근이 연명해갔다.세월이 물 흐르듯 흘러가서 심청의 나이 열다섯 살이 되었다. 얼굴이 빼어나고 효행이 뛰어나며 행동이 침착하고 하는 일이 비범하니 타고난 성품이지 가르쳐서 될 일인가? 여자 중의 군자요, 새 중의 봉황이었다.
 
125
이러한 소문이 온 이웃에 자자하니, 하루는 월명 무릉촌 장승상 댁 시비(侍婢)가 들어와서, 부인이 심소저를 부른다 하기에 심청이 아버지께 여쭈었다.
 
126
"어른이 부르시니 시비를 따라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가서 더디더라도 잡수실 진지상을 보아 두었으니 시장하시거든 잡수셔요. 부디 저 오기를 기다려 조심하셔요."
 
127
시비를 따라가며 손을 들어 가리키는 데를 바라보니, 문 앞에 심은 버들 아늑한 마을을 둘러 있고, 대문 안에 들어서니 왼편에 벽오동은 맑은 이슬이 뚝뚝 떨어져 학의 꿈을 놀래 깨우고, 오른편에 선늙은 소나무는 청풍이 건듯 부니 늙은 용이 굼틀거리는 듯, 중문 안에 들어서니 창 앞에 심은 화초 일년초 봉미장은 속잎이 빼어나고,높은 누각 앞에 부용당은 갈매기가 날고 있는데 연잎은 물 위에 높 이 떠서 동실넙적하고, 진경이는 쌍쌍, 금붕어 둥둥, 안중문 들어서니 규모도 굉장하고 대문과 창문에는 무의가 찬란한데, 머리가 반 쯤 센 부인이 옷매무새 단정하고 살결이 깨끗하여 복스럼게 보였다. 심소저를 보고 반겨하여 손을 쥐며,
 
128
"네가 과연 심청이냐? 듣던 말과 같구나."
 
129
하며 자리에 앉게 한 뒤에 가련한 처지를 위로하고 자세히 발펴보니, 타고난 미인이었다. 옷깃을 여미고 앉은 모습은 비 개인 맑은 시냇가에 목욕하고 앉은 제비가 사람보고 놀라는 듯, 황홀한 저 얼굴은 하늘 가운데 돋은 달이 수면에 비치었고, 바라보는 저 눈길은 새벽빛 맑은 하늘에 빛나는 샛별 같고, 두 뺨에 고운 빛은 늦은 봄 산자락에 부용이 새로 핀 듯, 두 눈의 눈썹은 초생달 정신이요, 흐트러진 머리털은 새로 자란 난초 같고, 가지런한 귀밑머리는 매미 의 날개라. 입을 벌려 웃는 양은 모란화 한 송이가 하룻밤 비 기운 에 피고자 벌어지는 듯, 횐 이를 드러내어 말을 하니 농산의 앵무였다. 부인이 칭찬하기를,
 
130
"전생의 일을 네가 모를 테지만 분명히 선녀로다. 도화동에 내려오니 월궁에 놀던 선녀가 벗 하나를 잃었구나. 오늘 너를 보니 우연한 일 아니로다. 무릉촌에 내가 있고 도화동에 네가 나니, 무 릉촌에 봄이 들고 도화동에 꽃이 핀다. 천지의 정기를 빼앗으니 비범한 너로구나. 내 말을 들어라. 승상이 일찍 세상을 버리시고, 두셋 있는 아들이 서울에 가 벼슬하니 다른 자식 손자 없고, 슬하에 재미 없고 눈앞에 말벗 없구나. 각 방의 며느리는 아침 저녁 문안한 후 다 각기 제 일 하니, 적적한 빈 방에 대하느니 촛불이요 보느니 책이로다. 너의 신세 생각하니 양반의 후예로 저렇듯 어려우니 어찌 아니 불쌍하랴. 내 수양딸이 되면 살림도 가르치고 글공부도 시켜 친딸같이 길러 내어 말년 재미 보려 하니, 네 뜻이 어떠하냐?"
 
131
심소저가 일어나 두 번 절하고 여쭈었다.
 
132
"팔자가 기구하여 태어난 지 이레 안에 어머니가 세상을 버리셔서, 눈 어두운 아버지가 동냥젖 얻어 먹여 겨우 살았습니다. 어머니의 얼굴도 모르는 더할 수 없는 슬픔이 끊일 날이 없기로, 저의 부모 생각하여 남의 부모도 공경해 왔습니다. 오늘 승상부인께서 저의 미천함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딸을 삼으려 하시니, 어머니를 다시 뵈온 듯 황송감격하여 마음을 둘 곳이 전혀 없습니다. 부인의 말씀을 좇자 하면 몸은 영화롭고 부귀하겠지만, 눈 어 두우신 우리 아버지 음식 공양과 사철 의복 뉘라서 돌보아 드리겠습니까? 낳아서 길러 주신 부모님 은혜는 누구에게나 있지마는 저에게는 더욱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제가 아버지 모시기를 어머니 겸 모시고, 아버지는 저를 믿기를 아들 겸 믿사오니,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제가 이제까지 살았겠습니까? 제가 만일 없게 되면 저의 아버지 남은 수명을 마칠 길이 없을테니 애틋한 정으로 서로 의지하여 제 몸이 다하도록 길이 모시려 하옵니다."
 
133
말을 마치며 눈물이 얼굴에 젖는 모습은 봄바람에 가는 빗방울이 복사꽃에 맺혔다가 점점이 떨어지는 듯하니, 부인도 또한 가련하여 등을 어루만지며,
 
134
"효녀로다 네 말이여, 마땅히 그래야지. 늙고 정신없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구나."
 
135
그러는 가운데 날이 저무니 심청이 여쭙기를,
 
136
"부인의 크신 덕을 입어 종일토록 모셨으니, 이제 날이 저물었기로 급히 돌아가 아버지의 기다리시는 마음을 위로코자 합니다."
 
137
부인이 말리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옷감과 양식을 후히 주어 시비와 함께 보낼 적에,
 
138
"너는 부디 나를 잊지 말고 모녀간의 의를 두면 이 늙은이의 다행이 되리라."
 
139
하니 심청이 대답하기를,
 
140
"부인의 고마우신 뜻이 이러하시니 삼가 그 말씀을 따르도륵 하겠습니다."
 
141
하며 절하며 하직하고 급히 돌아왔다.
 
142
이때에 심봉사는 홀로 앉아 심청을 기다릴 제, 배고파 등에 붙고 방은 추워 턱이 떨어질 지경인데, 잘 새는 날아들고 먼 절에서 쇠북 소리 들리니 날 저문 줄 짐작하고 혼자 하는 말이,
 
143
'내 딸 심청이는 무슨 일에 빠져서 날이 저문 줄 모르는고. 주인에게 잡히어 못 오는가, 저물게 오는 길에 동무에게 붙잡혀 있는가?'
 
144
눈바람에 길가는 사람 보고 짖는 개소리에,
 
145
"심청이 오느냐?"
 
146
하면서 반기기도 하고, 괜히 눈보라가 떨어진 창가에 부딪치기만 해도 행여 심청이 오는 소리인가 하여 반겨 나서면서,
 
147
"심청이 너 오느냐?"
 
148
하고 나가봐도 적막한 빈 뜰에 인적이 없으니 공연히 속았구나. 지팡막대 찾아 짚고 사립 밖에 나가다가 한 길 넘은 개천에 밀친 듯 이 떨어지니, 얼굴에 흙빛이요 의복에 얼음이라. 뒤뚱거리다 도로 더 빠지며 나오자니 미끄러져 하릴없이 죽게 되어, 아무리 소리친 들 해는 저물고 행인은 끊겼으니 뉘라서 건져주리. 그래도 죽을 사람 구해주는 부처님은 곳곳마다 있는 법인지라, 마침 이때 몽운사 화주승이 절을 새로 지으려고 시주책을 둘러메고 내려왔다가, 청산 은 어둑어둑하고 눈 덮인 들판에 달이 돋아을 제, 돌밭 비탈길로 절을 찾아가는데 바람결에 애처로운 소리가 들렸다.
 
149
"사람 살려 ! "
 
150
화주승은 자비한 마음에 소리나는 곳을 찾아가니, 어떤 사람이 개천에 빠져서 거의 죽게 되었다. 급한 마음에 구절죽장과 바랑을 바위 위에 휙 던져두고, 굴갓과 먹물장삼 실띠 달린 채로 벗어놓고,육날 미투리 행전 대님 버선도 훨훨 벗어 놓고, 고두 누비 바지 저 고리 거듬거듬 훨씬 추켜 올려, 급히 뛰어들어 심봉사 고추상투를 덥벅 잡아 들어올려 건져놓으니, 전에 보던 심봉사였다. 심봉사가 정신차려 묻기를,
 
151
"게 뉘시오?"
 
152
화주승이 대답하기를,
 
153
"몽운사 화주승이오."
 
154
"그렇지, 사람을 살리는 부처로군요. 죽을 사람을 살려 주시니 은 헤 백골난망이오."
 
155
화주승이 심봉사를 업어다 방안에 앉히고 빠진 까닭을 물었다. 심봉사는 신세를 한탄하다가 전후 사정을 말하니, 그 중이 봉사더러 하는 말이,
 
156
"딱하시군요. 우리 절 부처님은 영험이 많으셔서 빌어서 아니되는 길이 없고 구하면 응답을 주신답니다. 공양미 3백 석을 부처님께 올리고 지성으로 불공을 드리면 반드시 눈을 떠서 성한 사람이 되어 천지 만물을 보게 될 것입니다."
 
157
심봉사가 집안 형편은 생각지 않고 눈 뜬단 말에 혹하여,
 
158
"그러면 3백 석을 적어 가시오."
 
159
화주승이 허허 웃고,
 
160
"이보시오, 댁의 집안 형편을 살펴보니 3백 석을 무슨 수로 장만 하겠소."
 
161
심봉사가 홧김에 하는 말이,
 
162
"여보시오, 어느 쇠아들놈이 부처님께 적어놓고 빈말하겠소? 눈 뜨려다가 앉은뱅이 되게요. 사람을 업신여겨 그런 걱정일랑 말고 적으시오."
 
163
화주승이 바랑을 펼쳐 놓고 제일 윗줄 붉은 칸에,
 
164
'심학규 쌀 3백 석.'
 
165
이라 적어 가지고 인사하고 갔다. 그런 뒤에 심봉사는 화주승을 보내고 다시금 생각하니 시주쌀 3백 석을 장만할 길이 없어 복을 빌려다가 도리어 죄를 얻게 되니 이 일을 어이하리. 이 설움 저 설움, 묵은 설움 햇설움이 동무지어 일어나니 견디지 못하여 울음을 운다.
 
166
"애고 애고 내 팔자야, 망녕할사 내 일이야. 하느님이 공평하사 후하고 박함이 없건마는, 무슨 일로 맹인 되어 형세조차 가난하고, 일월같이 밝은 것을 분별할 길 전혀 없고, 처자 같은 친한 사람 대하여도 못 보겠네. 우리 아내 살았더면 끼니 근심 없을 것을, 다 커가는 딸자식을 온 동네에 내놓아서 품을 팔고 밥을 빌어 근근히 살아가는 형편에 공양미 3백 석을 호기있게 적어 놓고 백 가지로 생각한들 방법이 없구나. 빈 단지를 기울인들 한 되 곡식 되지 않고, 장농을 뒤져 본들 한 푼 돈이 어디 있나. 오두막 집 팔자 한들 비바람 못 피하니 살 사람이 뉘 있으리, 내 몸을 팔 자 하니 한 푼 돈도 싸지 않아 내라도 안 사겠네. 어떤 사람 팔자 좋아 눈과 귀가 완전하고 손발이 다 성하며, 부부가 해로하고 자손이 그득하며 곡식이 그득하고 재물이 쌓여 있어 써도써도 못다 쓰고 아쉬운 것 없건마는, 애고 애고, 내 팔자야. 나 같은 이 또 있는가? 앉은뱅이 곱사등이 서럽다 하더라도 부모 처자 바로 보고, 말 못 하는 벙어리가 서럽다 하더라도 천지 만물 볼 수 있네."
 
167
한창 이리 탄식할 제, 심청이 바삐 와서 아버지 모습 보고 깜짝 놀라 발을 구르면서 온 몸을 두루 만지며,
 
168
"아버지 이게 웬일이어요? 나를 찾아 나오시다가 이런 욕을 보셨나요, 이웃집에 가셨다가 이런 봉변 당하셨나? 춥긴들 오죽하며 분함인들 오죽하리, 승상댁 노부인이 굳이 잡고 만류하여 하다보니 늦었어요."
 
169
승상댁 시비 불러 부엌에 있는 나무로 불 좀 지펴 달라 부탁하고,치마폭을 거듬거듬 걷어잡고 눈물 흔적 씻으면서,
 
170
"진지를 잡수셔요, 더운 진지 가져왔으니 국을 먼저 잡수셔요."
 
171
손을 끌어 가리키며,
 
172
"이것은 김치고, 이것은 자반이어요."
 
173
심봉사는 얼굴 가득 근심 띤 빛으로 밥먹을 뜻이 조금도 없었다.
 
174
"아버지 웬일이어요? 어디 아파 그러신가요, 더디 왔다고 화가나서 그러신가요."
 
175
"아니다. 너 알아 쓸데없다."
 
176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어요? 부자간 천륜이야 무슨 허물 있겠어요? 아버지는 저만 믿고 저는 아버지만 믿어 크고 작은 일을 의논해 왔는데 오늘날 말씀이, '너 알아 쓸데없다.' 하시니, 부모 근심은 곧 자식의 근심이라. 제 아무리 불효한들 말씀을 아니하시니 제 마음에 섭섭하네요."
 
177
심봉사가 그제야 말하기를,
 
178
"내가 무슨 일로 너를 속이랴만, 네가 알게 되면 지극한 너의 마음 걱정만 되겠기로 말하지 못하였다. 아아 너를 기다리다 저물도록 안 오기에 하도 갑갑하여 너를 찾아 나가다가 한 길이 넘는 개천에 빠쳐서 거의 죽게 되었더니, 뜻밖에 몽운사 화주승이 나를 건져 살려 놓고 하는 말이, '공양미 3백 석을 진심으로 시주하면 생전에 눈을 떠서 천지 만물 보리라.'하더구나. 홧김에 적었더니 중을 보내고 생각하니, 한푼 돈 한톨 쌀이 없는 터에 3백 석이 어디서 난단 말이냐? 도리어 후회로구나."
 
179
심청이 그 말을 반갑게 듣고 아버지를 위로한다.
 
180
"아버지 걱정 마시고 진지나 잡수셔요. 후회하면 진심이 못 되옵니다. 아버지 눈을 떠서 천지 만물 보신다면 공양미 3백 석을 어떻게 해서든지 준비하여 몽운사로 올리지요."
 
181
"네가 아무리 애를 쓴들 이런 어려운 형편에 어찌 할 수 있겠느냐?"
 
182
심청이 여쭙기를,
 
183
"왕상은 얼음 깨서 잉어를 얻었고, 곽거라 하는 사람은 부모 반찬 해 놓으면 제 자식이 상머리에 앉아 집어먹는다고 그 자식을 산 채로 묻으려 하다가 금항아리를 얻어 부모를 봉양했다 합니다. 제 효성이 비록 옛 사람만 못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니, 공양미는 얻을 길이 있을 테니 깊이 근심 마셔요."
 
184
갖가지로 위로하고, 그날부터 목욕재계하여 몸을 깨끗이 하며 집을 청소하고 뒷곁에 단을 쌓아, 밤이 깊어 사방이 고요할 때 등불을 밝혀 놓고 정화수 한 그릇을 떠 좋고 북쪽을 향하여 빌었다.
 
185
"아무 달 아무 날에 심청은 삼가 두 번 절하고 비옵나이다. 천지 일월성신이며 하지후토 산영성황 오방강신 하백이며, 제일에 석가여래 삼금강 칠보살 팔부신장 십왕성군 강림도령 차례로 굽어 보옵소서. 하느님이 만드신 해와 달은 사람에게는 눈과 같사옵니다. 해와 달이 없사오면 무슨 분별하겠습니까? 저의 아비 무자생(戊子生)으로 삼십 안에 눈이 어두워 사물을 못 보오니 아비 허물 을 제 몸으로 대신하옵고 아비 눈을 밝혀 주옵소서."
 
186
이렇게 빌기를 계속하던 중에, 하루는 들으니,
 
187
'남경 장사 뱃사람들이 열다섯 살 난 처녀를 사려 한다.'
 
188
하기에, 심청이 그 말을 반겨 듣고 귀덕어미를 사이에 넣어 사람 사려 하는 까닭을 물으니,
 
189
"우리는 남경 뱃사람으로 인당수를 지나갈 제 제물로 제사하면 가이없는 너른 바다를 무사히 건너고 수만 금 이익을 내기로, 몸 을 팔려 하는 처녀가 있으면 값을 아끼지 않고 주겠습니다."
 
190
하기에 심청이 반겨 듣고,
 
191
"나는 이 동네 사람인데, 우리 아버지가 앞을 못 보셔서 '공양미 3백 석을 지성으로 불공하면 눈을 떠 보리라.' 하기로, 집안 형편 이 어려워 장만할 길이 전혀 없어 내 몸을 팔려 하니 나를 사 가는 것이 어떠하실런지요?"
 
192
뱃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193
"효성이 지극하나 가련하군요."
 
194
하며 허락하고, 즉시 쌀 3백 석을 몽운사로 날라다 주고,
 
195
"오는 3월 보름날에 배가 떠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196
하고 가니, 심청이 아버지께 여쭙기를,
 
197
"공양미 3백 석을 이미 실어다 주었으니, 이제는 근심치 마셔요."
 
198
심봉사가 깜짝 놀라,
 
199
"너, 그 말이 웬 말이냐?"
 
200
심청같이 타고난 효녀가 어찌 아버지를 속이랴마는, 어찌할 수 없는 형편이라 잠깐 거짓말로 속여 대답한다.
 
201
"장승상댁 노부인이 달포 전에 저를 수양딸로 삼으려 하셨는데 차마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형편으로는 공양미 3백 석을 장만할 길이 전혀 없기로 이 사연을 노부인께 말씀드렸더니, 쌀 3백 석을 내어주시기에 수양딸로 팔리기로 했습니다."
 
202
심봉사가 물색도 모르면서 이 말만 반겨 듣고,
 
203
"그렇다면 고맙구나. 그 부인은 한 나라 재상의 부인이라 아마도 다르리라. 복을 많이 받겠구나. 저러하기에 그 아들 삼 형제가 벼슬길에 나아갔나 보구나. 그나저나 양반의 자식으로 몸을 팔았단 말이 듣기에 고이하다마는 장승상댁 수양딸로 팔린 거야 어떻겠느냐. 언제 가느냐?"
 
204
"다음 달 보름날에 데려간다 합디다."
 
205
"어허, 그 일 매우 잘 되었다."
 
206
심청이 그날부터 곰곰 생각하니, 눈 어두운 백발 아비 영 이별하고 죽을 일과 사람이 세상에 나서 열다섯 살에 죽을 일이 정신이 아득하고 일에도 뜻이 없어 식음을 전폐하고 근심으로 지내다가, 다시금 생각하기를,
 
207
'엎지러진 물이요, 쏘아 논 화살이다.'
 
208
날이 점점 가까워오니 생각하기를,
 
209
'이러다간 안 되겠다. 내가 살았을 제 아버지 의복 빨래나 해두리라.'
 
210
하고, 춘추 의복 상침 겹것, 하절 의복 한삼 고의 박아 지어 들여놓고, 동절 의복 솜을 넣어 보에 싸서 농에 넣고, 청목으로 갓끈 접어 갓에 달아 벽에 걸고, 망건 꾸며 당줄 달아 걸어 두고, 배 떠날 날 을 헤아리니 하룻밤이 남아 있다. 밤은 깊어 삼경인데 은하수 기울어졌다. 촛불을 대하여 두 무릎을 마주 꿇고 머리를 숙이고 한숨을 길게 쉬니, 아무리 효녀라도 마음이 온전하겠는가.
 
211
'아버지 버선이나 마지막으로 지으리라.'
 
212
하고 바늘에 실을 꿰어드니, 가슴이 답답하고 두 눈이 침침, 정신이 아득하여 하염없는 울음이 가슴 속에서 솟아나니, 아버지가 깰까 하 여 크게 울지는 못하고 흐느끼며 얼굴도 대어보고 손발도 만져본다.
 
213
"날 볼 날이 몇 밤인가? 내가 한번 죽어지면 누굴 믿고 사실가? 애닯다, 우리 아버지. 내가 철을 알고 나서 밥 빌기를 놓으시더니, 내일부터라도 동네 거지 되겠으니 눈치인들 오죽하며 멸시인들 오죽할까. 무슨 험한 팔자로서 초칠일 안에 어머니 죽고 아버지조차 이별하니 이런 일도 또 있을까? 저문 날에 구름 일 때 소통천의 모자 이별, 수유꽃 꽃놀이에 근심하던 용산의 형제 이별, 타향살이 설워하던 위성의 친구 이별, 전쟁터에 님을 보낸 오희월녀 부부 이별, 이런 이별 많건마는 살아 당한 이별이야 소식들을 날이 있고 만날 날이 있건마는, 우리 부녀 이별이야 어느 날에 소식 알며 어느 때에 또 만날까, 돌아가신 어머니는 황천으로 가 계시고 나는 이제 죽게 되면 수궁으로 갈 것이니, 수궁에서 황천 가기 몇만 리, 몇천 리나 되는고? 모녀상면 하려 한들 어머니가 나를 어찌 알며, 내가 어찌 어머니를 알리. 묻고 물어 찾아가서 모녀상면 하는 날에 응당 아버지 소식을 물으실 테니 무슨 말씀으로 대답하리.
 
214
오늘밤 새벽 때를 함지에다 머물게 하고, 내일 아침 돋는 해를 부상지에다 매어두면 가련하신 우리 아버지 좀더 모셔 보련마는, 날이 가고 달이 가니 뉘라서 막을소냐. 애고 애고, 설운지고."
 
215
천지가 사정 없어 이윽고 닭이 우니 심청이 하릴없어,
 
216
"닭아 닭아, 우지 마라. 제발 덕분에 우지 마라. 반야 진관에서 닭울음 기다리던 맹상군이 아니로다.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죽기는 설쟎아도 의지 없는 우리 아버지 어찌 잊고 가잔 말이냐?"
 
217
어느덧 동방이 밝아오니, 심청이 아버지 진지나 마지막 지어드리리라 하고 문을 열고 나서니, 벌써 뱃사람들이 사립문 밖에서,
 
218
"오늘이 배 떠나는 날이오니 수이 가게 해 주시오."
 
219
하니, 심청이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없어지고 손발에 맥이 풀리며 목이 메고 정신이 어지러워 뱃사람들을 겨우 불러,
 
220
"여보시오 선인네들, 나도 오늘이 배 떠나는 날인 줄 이미 알고 있으나, 내 몸 팔린 줄을 우리 아버지가 아직 모르십니다. 만일 아시게 되면 지레 야단이 날 테니, 잠깐 기다리면 진지나 마지막으로 지어 잡수시게 하고 말씀 여쭙고 떠나게 하겠어요."
 
221
하니 뱃사람들이,
 
222
"그리 하시지요."
 
223
하였다. 심청이 들어와 눈물로 밥을 지어 아버지께 올리고, 상머리에 마주앉아 아무쪼록 진지 많이 잡수시게 하느라고 자반도 떼어 입에 넣어 드리고 김쌈도 싸서 수저에 놓으며,
 
224
"진지를 많이 잡수셔요."
 
225
심봉사는 철도 모르고,
 
226
"야, 오늘은 반찬이 유난히 좋구나. 뉘 집 제사 지냈느냐."
 
227
그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부자간은 천륜지간이라 꿈에 미리 보여주는 바가 있었다.
 
228
"아가 아가, 이상한 일도 있더구나. 간밤에 꿈을 꾸니, 네가 큰 수레를 타고 한없이 가 보이더구나. 수레라 하는 것이 귀한 사람 이 타는 것인데 우리 집에 무슨 좋은 일이 있을란가 보다. 그렇지 않으면 장승상 댁에서 가마태워 갈란가 보다."
 
229
심청이는 저 죽을 꿈인 줄 짐작하고 둘러대기를,
 
230
"그 꿈 참 좋습니다."
 
231
하고 진지상을 물려내고 담배태워 드린 뒤에 밥상을 앞에 놓고 먹으려 하니 간장이 썩는 눈물은 눈에서 솟아나고, 아버지 신세 생각하며 저 죽을 일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고 몸이 떨려 밥을 먹지 못하고 물렸다. 그런 뒤에 심청이 사당에 하직하려고 들어갈 제, 다 시 세수하고 사당문을 가만히 열고 하직 인사를 올렸다.
 
232
"못난 여손(女孫) 심청이는 아비 눈 뜨기를 위하여 인당수 제물로 몸을 팔려가오매, 조상 제사를 끊게 되오니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233
울며 하직하고 사당문 닫은 뒤에 아버지 앞에 나와 두 손을 부여 잡고 기절하니, 심봉사가 깜짝 놀라,
 
234
"아가 아가, 이게 웬일이냐? 정신 차려 말하거라."
 
235
심청이 여쭙기를,
 
236
"제가 못난 딸 자식으로 아버지를 속였어요. 공양미 3백 석을 누가 저에게 주겠어요. 남경 뱃사람들에게 인당수 제물로 몸을 팔아 오늘이 떠나는 날이니 저를 마지막 보셔요."
 
237
심봉사가 이 말을 듣고,
 
238
"참말이냐, 참말이냐? 애고 애고, 이게 웬말인고? 못 가리라, 못 가리라. 네가 날더러 묻지도 않고 네 마음대로 한단 말이냐? 네가 살고 내가 눈을 뜨면 그는 마땅히 할 일이나, 자식 죽여 눈을 뜬들 그게 차마 할 일이냐? 너의 어머니 늦게야 너를 낳고 초이래 안에 죽은 뒤에, 눈 어두운 늙은 것이 품안에 너를 안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구차한 말 해 가면서 동냥 젖 얻어 먹여 이만치 자랐는데, 내 아무리 눈 어두우나 너를 눈으로 알고, 너의 어머니 죽은 뒤에 걱정없이 살았더니 이 말이 무슨 말이냐? 마라 마라, 못 하리라. 아내 죽고 자식 잃고 내 살아서 무엇하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자. 눈을 팔아 너를 살 터에 너를 팔아 눈을 뜬들 무엇을 보려고 눈를 뜨리?
 
239
어떤 놈의 팔자길래 사궁지수(四窮之首) 된단 말이냐? 네 이놈 상놈들아! 장사도 좋지마는 사람 사다 제사하는 데 어디서 보았느냐? 하느님의 어지심과 귀신의 밝은 마음 앙화가 없겠느냐? 눈 먼 놈의 무남독녀 철모르는 어린아이 나 모르게 유인하여 값을 주고 산단 말이냐? 돈도 싫고 쌀도 싫다, 네 이놈 상놈들아.
 
240
옛글을 모르느냐? 칠년대한(七年大旱) 가물 적에 사람으로 빌라 하니 탕임금 어지신 말씀, '내가 지금 비는 바는 사람을 위함인데 사람 죽여 빌 양이면 내 몸으로 대신하리라.' 몸소 희생되어 몸을 정히 하여 상임 뜰에 빌었더니 수천 리 너른 땅에 큰 비가 내렸느니라. 이런 일도 있었으니 내 몸으로 대신 감이 어떠하냐? 여보시오 동네 사람, 저런 놈들을 그저 두고 보오?"
 
241
심청이 아버지를 붙들고 울며 위로하기를,
 
242
"아버지 할 수 없어요. 저는 이미 죽지마는 아버지는 눈을 떠서 밝은 세상 보시고, 착한 사람 구하셔서 아들 낳고 딸을 낳아 후사나 전하고, 못난 딸자식은 생각지 마시고 오래오래 평안히 계십시오. 이도 또한 천명이니 후회한들 어찌하겠어요?"
 
243
뱃사람들이 그 딱한 형편을 보고 모여 앉아 공론하기를,
 
244
"심소저의 효성과 심봉사의 일생 신세 생각하여 봉사님 굶지 않고 헐벗지 않게 한 살림을 꾸며주면 어떻겠소?"
 
245
"그 말이 옳소."
 
246
하고 쌀 2백 석과 돈 3백 냥이며, 무명 삼베 각 한 동씩 마을에 들 여 놓고 동네 사람들을 모아 당부하기를,
 
247
"쌀 2백 석과 돈 3백 냥을 착실한 사람 주어 실수 없이 온전하게 늘려 심봉사에게 바칩시다. 3백 석 가운데 20석은 올해 양식으로 제하고, 나머지는 해마다 빛을 주어 이자를 받으면 양식이 넉넉할 테고, 명베 삼베로는 사철 의복 장만해 드리기로 하고, 이런 내용을 관청에 공문으로 보내고 마을에도 알립시다."
 
248
구별을 다 짓고 나서 심소저를 가자 할 때, 무릉촌 장승상댁 부인이 그제야 이 말을 듣고 급히 시비를 보내어 심소저를 부르기에, 소저가 시비를 따라가니 승상부인이 문 밖에 내달아 소저의 손을 잡고 울며 말했다.
 
249
"네 이 무상한 사람아. 나는 너를 자식으로 알았는데 너는 나를 어미같이 알지를 않는구나. 쌀 3백 석에 몸이 팔려 죽으러 간다 하니 효성이 지극하다마는, 네가 살아 세상에 있어 하는 것만 같겠느냐? 나와 의논했더라면 진작 주선해 주었지. 쌀 3백 석을 이 제라도 다시 내어 줄 것이니 뱃사람들 도로 주고 당치 않은 말 다시 말라,"
 
250
하시니 심소저가 여쭈었다.
 
251
"당초에 말씀 못 드린 것을 이제야 후회한들 무엇하겠습니까? 또 한 부모를 위해 공을 드릴 양이면 어찌 남의 명분없는 재물을 바라며, 쌀 3백 석을 도로 내어주면 뱃사람들 일이 낭패이니 그도 또한 어렵고, 남에게 몸을 허락하여 약속을 정한 뒤에 다시 약속 을 어기면 못난 사람들 하는 짓이니, 그 말씀을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하물며 값을 받고 몇 달이 지난 뒤에 차마 어찌 낮을 들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부인의 하늘 같은 은혜와 착하신 말씀은 저승으로 돌아가서 결초보은하겠습니다."
 
252
하고 눈물이 옷깃을 적시니, 부인이 다시 보니 엄숙한지라, 하릴없이 다시 말리지 못하고 놓지도 못했다. 심소저가 울며 여쭙기를,
 
253
"부인은 전생에 나의 부모라. 어느 날에 다시 모시겠어요? 글 한 수를 지어 정을 표하오니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254
부인이 반기어 종이와 붓을 내어 주니 붓을 들고 글을 쓸 제, 눈물이 비가 되어 점점이 떨어지니 송이송이 꽃이 되어 그림 족자였다. 안방에 걸고 보니 그 글은 이러했다.
 
255
생기사귀일몽간에
 
256
견정하필루잠잠이랴마는
 
257
세간에 최유단장처하니
 
258
초록강남인미환을.
 
259
이 글 뜻은,
 
260
사람의 죽고 사는 게 한 꿈 속이니
 
261
정에 끌려 어찌 굳이 눈물을 흘리랴마는
 
262
세간에 가장 애끓는 곳이 있으니
 
263
풀 돋는 강남에 사람이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라.
 
264
부인이 재삼 붙들다가 글 짓는 것을 보시고,
 
265
"너는 과연 세상 사람 아니로다. 글은 진실로 선녀로다. 분명 인 간의 인연이 다하여 상제께서 부르시니 네 어이 피할소냐. 내 또 한 이 운에 맞추어 글을 지으리라."
 
266
하고 글을 써 주었다.
 
267
무단풍우야래흔하니
 
268
취송명화각하문고
 
269
적거인간천필연하사
 
270
강피부모단정은을
 
271
이 글 뜻은 이러하다.
 
272
난데없는 비바람 어둔 밤에 불어오니
 
273
아름다운 꽃 날려서 뉘 집 문에 떨어지나
 
274
인간의 귀양살이 하늘이 정하셔서
 
275
아비와 자식으로 하여금 정을 끊게 하는구나.
 
276
심소저가 그 글을 품에 품고 눈물로 이별하니 차마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심청이 돌아와서 아버지께 하직하니 심봉사가 붙들고 뒹굴며 괴로워 하여,
 
277
"네가 날 죽이고 가지 그저는 못 가리라. 날 데리고 가거라. 네 혼자는 못 가리라."
 
278
심청이 아버지를 위로하기를,
 
279
"부자간 천륜을 끊고 싶어 끊사오며 죽고 싶어 죽겠습니까마는, 액운이 막혀 있고 생사가 때가 있어 하느님이 하신 일이니 한탄한들 어찌하겠어요? 인정으로 할 양이면 떠날 날이 없을 것입니다."
 
280
하고 저의 아버지를 동네 사람에게 붙들게 하고 뱃사람들을 따라갈 제, 소리내어 울며 치마끈 졸라매고 치마폭 거듬거듬 안고 흐트러진 머리털은 두 귀 밑에 늘어지고 비같이 흐르는 눈물 옷깃을 적신 다. 엎더지며 자빠지며 붙들어 나갈 제 건넛집 바라보며,
 
281
"아무개네 큰아가, 바느질 수놓기를 뉘와 함께 하려느냐, 작년 오월 단오날에 그네뛰고 놀던 일을 네가 행여 생각하느냐? 아무개네 작은아가, 금년 칠월 칠석 밤에 함께 기원하자더니 이제는 허사로다. 언제나 다시 보랴. 너희는 팔자 좋아 양친 모시고 잘 있거라."
 
282
동네 남녀노소 없이 눈이 붓도록 서로 붙들고 울다가 마을 어귀 에서 서로 손을 놓고 헤어졌다. 그 때 하느님이 아시던지 밝은 해는 어디 가고 어두침침한 구름이 자욱하며 청산이 찡그리는 듯, 강물 소리 흐느끼고, 휘늘어져 곱던 꽃은 시들어 제 빛을 잃은 듯하고,하늘거리는 버들가지도 졸듯이 휘늘어졌고, 복사꽃은 다정하여 슬픈 듯이 피어 있다.
 
283
'묻노라 저 꾀꼬리, 뉘를 이별하였길래 벗을 불러 울어대고, 뜻밖에 두견이는 피를 내어 우는구나. 달밝은 너른 산을 어디 두고 애끊는 슬픈 소리 울어서 보내느냐. 네 아무리 가지 위에서 가지 말라 울건마는 값을 받고 팔린 몸이 다시 어찌 돌아올까.'
 
284
바람에 날린 꽃이 얼굴에 와 부딪치니 꽃을 들고 바라보며,
 
285
"봄바람이 사람 마음 알아주지 못한다면 무슨 까닭으로 지는 꽃을 보내리오, 한무제 수양공주 매화비녀 있건마는 죽으러 가는 몸이 뉘를 위해 단장하리. 앞산에 지는 꽃이 지고 싶어 지랴마는 마지못한 일이러니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리오."
 
286
한 걸음에 돌아보며 두 걸음에 눈물지며 강머리에 다다르니, 뱃 머리에 판자 깔고 심청이를 인도하여 빗장 안에 실은 후에 닻을 감 고 돛을 달아 여러 뱃사람들이 소리를 한다,
 
287
"어기야, 어기야, 어기양, 어기양."
 
288
소리를 하며 북을 둥둥 울리면서 노를 저어 배질하며 물결에 배를 띄워 떠나간다.
【 】심청전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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