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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백전 (張伯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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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전 (張伯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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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시절에 능주(綾州) 땅에 일위(一位) 재상이 있으니, 성(姓)은 장이요 명(名)은 충이요 자는 문정이라. 본디 한인(漢人) 장양의 후예로 공후(公侯) 장상(將相)이 끊이지 아니하여, 대대로 공명이 현달(顯達)하고 충후(忠厚)가 겸전하더니, 공에게 이르러는 벼슬이 좌복야(左僕射)의 거(居)하매, 위로 나라에 충성이 지극하고 아래로 만인에게 덕이 많되,
 
3
연기(年紀) 오십에 후사(後嗣)를 이을 길이 없고, 다만 여자(女子)가 있으매, 공의 부부가 매양 슬퍼하더니, 장공이 이러므로 벼슬의 뜻이 없고, 심사가 불평(不平)하여 조정을 하직하고 고향의 돌아가 농업으로 세월을 보내니, 세상에 분별(分別)이 없었으매 광음(光陰)이 가는 줄을 잊었으되, 평생 설워 하온 바는 무자(無子)함이라.
 
4
공이 부인과 더불어 술을 내와 서로 권하며 이르기를,
 
5
“우리 부부가 무정한 세월이 유수(流水) 같아 나이 많으니, 후사 얻기를 바라지 못하려니와, 여아(女兒)의 연광(年光)이 장성하니 쉬 사위나 보았으면 어찌 즐겁지 아니하오며, 가산(家産)이 부요(富饒)하니 재물을 흩어 명산대찰(名山大刹)에 정성이나 드려보면, 혹 성(姓)이나 전할 자식이 있을까 하나이다.”
 
6
부인이 추연(惆然)하여 탄식하기를,
 
7
“상공의 덕택에 남에서 유명(有命)하되 봉사(封祀)할 자손을 두지 못하였으니, 이는 첩이 무덕(無德)하므로 이러하오니, 모름지기 상공은 어진 첩이나 가리어 자손을 볼지니, 어찌 만행(萬幸)이 아니리잇고.”
 
8
공이 위로하기를,
 
9
“부인은 망령된 말씀을 하여 심란한 회포(懷抱)을 자취(自取)하지 마소서.”
 
10
하고 두루 정성드림을 공부하더니,
 
11
일일은 상공이 심회(心懷)를 정치 못하여, 혹 경처(景處)을 취하여 산천의 경개(景槪) 절승(絶勝)한 곳을 찾아 놀더니, 몸이 곤뇌(困惱)하여 한 바위 우에 앉아 시동(侍童)으로 하여금 주과(酒果)를 가져오라 하여 한가히 앉았더니,
 
12
홀연 일위(一位) 노승이 육환장(六環杖)을 짚고 나와 절하고 이르기를,
 
13
“소승은 천축(天竺)국 금강사 화주(化主)이더니, 부처를 위하여 두루 시주하러 다니더니, 만일 상공이 허수로 아니 보실진대 적선(積善)함을 바라나이다.”
 
14
공이 그 중을 자세히 보니. 선풍도골(仙風道骨)의 기위(奇偉) 웅장하고 청수(淸秀)한 기질이 범승(凡僧)과 다른지라. 황망이 답례하고 이르기를,
 
15
“존승(尊僧)이 부처를 위하여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나를 찾아 왔으니 어찌 감격하지 아니하리오. 나는 죄악(罪惡)이 심중(深重)하여 후사(後嗣)를 끊게 되기로, 나 죽은 후에 장차 후(後)길이나 닦으려하매, 평생 시주하기를 즐겨하더니, 이제 존사(尊師)의 말을 들으니 어찌 참회(慙悔)치 아니하리오.”
 
16
하고 권선(勸善)을 내라 하여 황금 일백 냥을 적고 이르기를,
 
17
“이것이 적으나 나는 정성을 발원(發願)함이니, 존사(尊師)는 불쌍히 여기소서.”
 
18
하고 함께 집에 돌아와 금을 내어 주니, 그 중이 백배사례(百拜謝禮)하고 이르기를,
 
19
“상공의 은덕으로 퇴락(頹落)하온 절을 중수(重修)하여 부처가 풍우(風雨)를 면하게 되었사오니, 어찌 공덕(功德)이 지극하지 아니하오며, 만일 세존(世尊)이 감동하시면 귀자(貴子)를 점지하시리니, 상공은 괘념(掛念)치 마소서.”
 
20
하고 인하여 하직하고 가니, 그 간 바를 모를러라.
 
21
공이 신기히 여겨 부인과 더불어 수말(首末)을 이르며 심회(心懷)를 정(定)하지 못하더니, 일일은 부인이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더니, 문득 한 노승이 부인께 구슬을 드려 이르기를,
 
22
“이는 천상(天上) 유성(柳星)이라. 상제(上帝)께 득죄(得罪)하여 인간(人間)에 내치시매, 금강사 부처가 지시하시미오니, 부인은 귀히 길러 후사를 이으소서.”
 
23
하거늘 부인이 그 구슬을 받아 자세히 보니, 서기(瑞氣)와와 광채(光彩) 눈의 배이고, 구슬이 아니거늘 부인이 놀라 깨달으니 침상(寢牀) 일몽(一夢)이라. 마음에 신기히 여겨 상공께 몽사를 고하니, 공이 가장 희한히 여겨 이르기를,
 
24
“나도 또한 거야(去夜) 몽사가 부인과 같으니 이는 반드시 심상치 아닌 일이로다.”
 
25
하고 즐겨 하더니, 과연 그달부터 잉태하여 십 삭이 되매, 일일은 향내 진동하며 일가(一家)가 옥동(玉童)을 생하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리오. 공의 부부가 만심(滿心) 환희(歡喜)하여 이름을 백(伯)이라 하고 자를 운부라 하다.
 
 
26
세월이 여류하여, 장백의 나이 칠 세 되매 늠름한 풍채는 선풍도골(仙風道骨)이요, 표표(表表)한 거동은 천지를 기울이니, 이른 바 만고(萬古) 영걸(英傑)이라. 공의 부부가 장중(掌中) 보옥(寶玉)같이 과도히 사랑하며, 그를 가르치매 하나를 들으면 백을 통하니, 공이 말년에 이러한 기자(奇子)를 얻으매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여, 부인을 대하여 이르기를,
 
27
“이제 저런 기자(奇子)를 얻었으니 추호(秋毫)도 한할 바는 없으되, 다만 우리 부부가 여년(餘年)이 불원(不遠)하여, 저희 남매의 재미를 보지 못할듯하니 이 일로 근심이로소이다.”
 
28
부인이 답하기를,
 
29
“상공의 어지신 덕으로 첩이 막대한 죄를 면하오니, 이제 죽으나 무한(無恨)이로소이다.”
 
30
하더라.
 
 
31
공이 그 해 가을에 홀연 득병하여 점점 침중(沈重)하매 스스로 일어나지 못할 줄 알고, 장백의 손잡고 부인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32
“나의 병이 가볍지 아니한지라. 황천(黃泉)길을 면치 못하리니, 부인은 백을 잘 길러 몸을 보중(保重)하고, 여아(女兒)의 혼사를 수이 하여 영화를 보시어야 돌아가는 혼백(魂魄)이라도 하례(賀禮)하려니와, 다만 슬퍼하는 바는 저희 봉황(鳳凰)이 쌍유(雙遊)함을 보지 못하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리오.”
 
33
하며 또 여아를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34
“너는 나 죽은 후라도 과도히 슬퍼 말고, 동생을 보호하며 모친을 위로하여 가사(家事)를 다스리되, 남의 말을 경홀(輕忽)히 듣지 말라.”
 
35
하고 신의(新衣)를 갈아입고 상(床)에 누우며 졸(卒)하니, 시년(時年)이 육십 세라. 일가(一家)가 망극하여 부인과 소저가 자주 혼절(昏絶)하여 인사(禋祀)를 모르는지라.
 
36
장백이 울음을 그치고 모친을 위로하며 자매를 보호하여 초상(初喪)범절(凡節)을 극진히 하니, 그 예절의 지극함이 어른이라도 미치지 못할러라. 길일(吉日)을 택하여 선산에 안장하고, 삼년을 당(當)하여 종상(終喪)을 지낼새, 모부인이 망극함을 마지 아니 하더니, 장백의 손을 잡고 이르기를,
 
37
“내 너희 남매 성취함을 보지 못하니, 한이 가슴에 맺히나, 너의 부친의 뒤를 좇으리로다.”
 
38
하고 명(命)이 진(盡)하니. 장백의 남매 호천(呼天) 통곡(痛哭)함을 마지아니하고, 상구(喪柩)를 또 극진히 하여 선산에 합장하고, 조석(朝夕) 제전(祭典)을 엄절히 하니, 가산이 점점 탕패(蕩敗)하여 노복(奴僕)들도 자연 흩어지고 빈 집이 되었으니, 장백의 남매 서로 의지하여 주야 애통하니 그 경상(景狀)은 차마 보지 못할러라.
 
39
이때 장백의 나이 십 세 되고, 소저의 나이 십칠 세라. 소저가 비록 우연(偶然) 초토(草土)의 몸을 버리고 애를 썩었으나, 화용월태(花容月態)가 동방(東方)의 명월(明月) 같고 옥빈홍안(玉鬢紅顔)이 조양(朝陽)이 모란(牡丹) 같으니, 인(因)하여 사람이 흠앙(欽仰) 아니할 이 없더라.
 
 
40
차설(且說) 이때 양주 땅에 사는 왕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본디 호협(豪俠)하고 남경의 큰 상고(商賈)이라. 마침 능주 지경(地境)에 와 물화(物貨)를 환매(還賣)하더니, 장소저의 색용(色容)이 유명함을 듣고, 재취(再娶)을 구할새, 사람을 얻어, 혼인이 되게 하면 천금으로 상사(償賜)하리라 하니, 장소의 동리(洞里)에 한 노고(老姑)가 있어 이 말을 듣고, 왕평을 찾아보며 이르기를,
 
41
“그 소저의 인물이 절색(絶色)함은 이로도 말고, 본디 일국 충신의 여아라. 필경(畢竟) 도모치 못하리니, 내게 한 계교 있으니 여차여차 하면 반드시 취하리니, 이는 제갈공명이 조조 잡든 계교라. 그대 뜻이 어떠하뇨?”
 
42
왕평이 대희(大喜)하여 즉시 천금을 주고 행여 실수할까 당부하더라.
 
43
노고가 집에 돌아와 밤을 지내고, 이튿날 장부(張府)에 가 소저를 보고 불쌍히 여기어 위로하면서 이르기를,
 
44
“낭랑(娘娘)이 이제 전과 같지 아니하여, 위로 부모 아니 계시고 아래로 노복이 지탱(支撑)하지 못하여, 다만 소공자(小公子) 동생뿐이라. 적막함이 비할 데 없으니, 노고의 마음에도 심히 척연(惕然)하온지라. 낭랑은 모름지기 거야촌에 가 외가(外家)에 의지하시면 적막함을 면하올 뿐 아니라, 내두(來頭)에 영귀(榮貴)함을 만나리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오릿가?”
 
45
소저가 청파(聽罷)에 옳게 여겨 공자와 함께 가기를 당부하니, 노고가 응낙하고 집의 돌아와 쉬고, 날이 새매 장부의 이르니, 소저가 벌써 교자(轎子)를 준비하였더라. 노고가 공자와 소저를 거느리고 거야촌으로 향할새, 한 수음(樹蔭) 속으로 들어가더니, 문득 건장한 도적 십여 인이 내달아 소저를 잡아 말에 싣고 풍우(風雨)같이 몰아가니, 장백이 아무란 줄 모르고 하늘을 부르짖으며 통곡하다가, 어쩔 수 없어 도로 집으로 찾아오되, 그 노고는 어디로 간 곳을 알지 못할러라.
 
 
46
차설(且說) 장소저 도적에게 잡히어 가니,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정신을 차릴 길이 없고, 동생 장백을 부르짖으며 분하고 설움을 견디지 못하여 차라리 몸을 마쳐 세상을 모르고자 하나, 동생의 사생(死生)을 알지 못하니 요행 화망(火網)을 벗어날진대, 우리 남매 면목(面目)을 다시 만나 볼까 하여, 이처럼 헤아리며 눈물만 흘리고 매달려 가더니, 날이 이미 저물어서는 한 주점을 치우고 쉴 새, 왕평이 자주 소저를 위로하더니 밤이 이미 깊었으매 조용히 들어와 달래어 이르기를,
 
47
“우리 이러함은 하늘이 정하신 연분이라. 어찌 할 수 없으리니 함께 취침(就寢)함을 청(請)하노라.”
 
48
소저가 청파에 분기가 대발하여, 손에 촌인(寸刃) 있으면 바로 그놈을 찔러 죽이고자 하되 속수무책(束手無策)이라. 할 수 없이 외면하며 박힌 듯이 앉았다가, 일계(一計)를 생각하고, 흠선(欽羨)하여 답하기를,
 
49
“내 벌써 그대에게 잡힌 바가 되어 면치 못할 연분이 되려니와, 육례(六禮)를 갖추기 전은 생심(生心)도 몸을 허락하지 못하리니, 그대는 아무 염려 말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감을 바라노라.”
 
50
왕평이 이 말을 듣고 대희하여 밖에 나와 술을 사 먹으며 자더라.
 
 
51
소저가 그놈을 보내고 고요한 때를 타 도망하더니, 수 리를 못가서 대강(大江)이 있거늘, 하늘을 부르며 망극함을 이기지 못하여 익수(溺水)하여 침사(沈死)하고자 하여 나상(羅裳)을 부여잡고 물속의 뛰어 들새, 난데없는 일엽(一葉) 소선(小船)에 여동(女童)이 앉아 배의 오름을 재촉하거늘, 장소저가 가장 괴이 여겨 오르며 묻기를,
 
52
“여동은 어디 계시관대, 죽을 몸을 구완하시니 은혜 망극하도소이다.”
 
53
여동 이르기를,
 
54
“소녀는 황릉묘(黃陵廟) 시녀이옵더니, 아황(鵝黃) 여영(女英)의 명을 받자와 용왕의 표주(瓢舟)를 얻어 낭자의 급함을 구하라 하시니, 어찌 소녀의 은혜라 하리있고.”
 
55
소저가 경아(驚訝)하여 이르기를,
 
56
“아황과 여영은 요비(堯妃) 순처(舜妻)이시거늘, 어찌 나를 구하시는고?”
 
57
하며 가더니 순식간에 대강을 건너 배에서 내리라 하고 간 데 없는지라.
 
58
소저가 신기히 여겨 공중을 향하여 사배(謝拜)하고 길을 찾아 가더니, 어느 곳인 줄 모르되, 빈 전각(殿閣)이 있거늘 찾아 들어가니 사람은 하나도 없고, 온 집이 공허(空虛)하였으나, 몸이 심히 곤뇌(困惱)하여 잠깐 쉬더니,
 
59
문득 선녀가 이르기를,
 
60
“우리 낭랑이 소저를 모셔 오라 하시더이다.”
 
61
하고 함께 한 곳에 올라가니 두 부인이 시녀를 거느리고 단정히 앉았다가 일어나 앉으며, 좌(座)를 정하고 공경하며 이르기를,
 
62
“낭자가 일시 곤욕을 당하매, 일신의 천금지보(千金至寶)를 돌아보지 아니시고 수중(水中) 원혼(冤魂)이 되려 하기로, 낭자를 구하였거니와 낭자는 본디 월궁(月宮)항아(姮娥)라. 광한전 결연시(訣宴時)에 심성과 눈 주어 본 죄로, 상제(上帝) 노(怒)하사 인간에 전승(轉乘)하시니, 심성은 곧 대명(大明) 태조가 되게 하고 낭자는 황후 되게 하사, 좋은 시절을 당하면 천하 강산이 그대 수족(手足) 같아 무상(無上)한 복록(福祿)을 누릴지니, 어찌 액화(厄禍)가 있음을 혐의(嫌疑)하리있고.”
 
63
하며 시녀로 하여금 차를 들어 권하거늘, 소저가 불승(不勝) 황공(惶恐)하여 그 부인을 자세히 보니, 몸에 운무의(雲霧衣)를 입고 머리에 용봉관(龍鳳冠)을 쓰고 허리의 영월패(盈月佩)를 차고 손의 백옥홀(白玉笏)을 잡았으며, 좌우로 무수한 부인이 차례로 좌(座)를 정하여시니, 쇄락(灑落)한 거동이 범인(凡人)과 다르더라.
 
64
공경하여 재배하고 아뢰기를,
 
65
“나는 본디 능주 땅에 사옵더니, 팔자가 기구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오매, 다만 남매 사옵더니, 동리에 사는 노고의 음흉한 해를 입어 중로(中路)에 도적에게 잡히어 가매, 어린 아우의 사생(死生)을 알지 못하나, 잔약(孱弱)한 몸이 화망(火網)을 벗을 길이 없어, 그 놈을 속기고 도망하여 몸을 강수(江水)에 던지면 혼백(魂魄)이라도 옳은 곳에 섞이리라 하였더니, 낭랑이 구호하심을 힘입어 이처럼 관대하심을 얻으니 은혜 망극하오나 알지 못할 게라. 두 부인은 어디에 계시리잇가?”
 
66
답하기를,
 
67
“우리 두 사람은 아황과 여영이요, 저 모든 부인은 절행이 있음으로 배향(配享)한 부인이니 낭자가 어찌 몰라보시느뇨. 낭자가 이제 소상강(瀟湘江)을 무사히 건너 이곳의 왔으니, 날이 밝으면 반드시 구할 사람이 있으리니, 낭랑은 헛되이 듣지 마소서.”
 
68
소저가 다시 이 말을 묻고자 하다가 홀연 두견의 소리에 놀라 깨니 한 꿈이라. 소저가 정신을 차례 두루 자세히 보니, 이미 밝았는데, 벽상(壁上)의 화상(畫像)이 걸렸으니 몽중(夢中)의 뵈던 형상이라. 차례로 분향재배하고 그 덕을 일컬으며 두루 구경하더라.
 
 
69
차시 하서(河西)에 사는 한 부인이 있으니, 승상 이공의 부인이라. 가군(家君)을 일찍 여의고 슬하의 남녀 간 자식이 없어 약간 노비를 거느리고 세월을 보내더니, 차야(此夜)의 일몽을 얻으니, 한 선녀 이르기를,
 
70
“황릉묘의 월궁선아(月宮仙娥)가 떨어졌으니 거두어 슬하의 두면, 일정(一定) 좋은 시절을 만나리라 하거늘, 놀라 깨여 급히 시녀(侍女)를 데리고 이비묘(二妃墓)의 들어가니 화상만 여전히 걸려있고 아무 일도 없는지라. 마음의 괴이 여겨 두루 배회하더니, 한 탁자 아래로 조차 일위 소저가 마주 나오거늘, 부인이 일변 놀라며 일변 기뻐하여 집수(執手)하며 묻기를,
 
71
“그대는 뉘 집 여자이기에 이곳의 이르렀는뇨? 헤아리건대 정처 없이 다니는가보니 나와 함께 집에 있어 때를 기다림이 어떠하뇨?”
 
72
소저가 이때의 향할 바를 알지 못하여 황황(遑遑) 망조(亡兆)하더니, 다행히 그 부인을 만나 간청(懇請)하는 말을 들으매 기뻐 답하기를,
 
73
“나는 능주 장승상의 여자라. 명도(冥途)가 기구하여 천지를 이별하고, 칠세 된 오라비와 서로 의지하여 사옵더니, 남의 간계의 빠져 도적에게 잡히어 가다가 겨우 화(禍)를 벗어났으나, 신령의 도우심을 입어 소상강 영혼을 면하고 이곳에 은신하였더니, 이제 부인이 슬하에 두시고자 하시니 그 감은(感恩) 하옴을 어찌하리잇가.”
 
74
부인이 기뻐 교자(轎子)를 함께 타고 이부(李府)에 돌아와 세월을 보내니 장소저가 일신은 안한(安閑)하나 장백을 생각하고 눈물만 흘리더라.
 
 
75
각설 왕평이 술이 취하여 자더니 계성(鷄聲)이 난만(爛漫)할 때의 소저를 보려 들어가니 종적이 묘연한지라. 두루 찾되, 간 곳이 없으니, 왕평이 놀라 탄식하며,
 
76
“내 일찍 장소저의 순종함을 믿었더니, 필경 소상강의 빠져 죽도다.”
 
77
하고 못내 불쌍히 여기고 헛되이 남경으로 가니라.
 
 
78
차설 장백이 자매를 데리고 외가로 가다가, 중로에서 도적을 만나 자매를 잃고 홀로 집을 찾아오니 뉘를 의지하리오. 주야로 통곡하더니, 한 사람이 이르되,
 
79
“장소저가 도적에게 잡히어 가더니 소상강물의 빠져 죽었다 하니 심히 참혹하다.”
 
80
하거늘 장백이 이 말을 듣고 더욱 애통하여 이르기를, 우리 남매 부모를 여희고 서로 의지하여 요행 도우며 있을진대 영화로이 종사(宗祀)를 받들고자 하였더니, 갈수록 팔자의 기구함을 면치 못하여, 자매 또한 수중 원혼이 되었으니 내 홀로 구차히 살아 무엇에 쓰리오. 나도 마저 죽음이 종사의 대죄를 면치 못하나, 그러나 살아 욕되이 죽느니만 같지 못하다.”
 
81
하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높은 나무에 올라 떨어져 죽으려 하고 점점 들어가더니, 큰 버드나무 있거늘 그 나무에 올라가 일성(一聲) 통곡(痛哭)에 손을 놓고 떨어지니, 그 높이 수십 장(丈)이나 되는지라. 그 아래 한 초동(樵童)이 나무를 베다가 장백이 내려짐을 보고 두 손으로 받들어 살려내니, 장백이 그 아이를 밉게 보며 이르기를,
 
82
“내 설워 죽으려 하거늘 어찌하여 못 죽게 하느뇨.”
 
83
목동이 소(笑)하며 이르기를,
 
84
“어제 우리 사부의 명을 듣잡고, 명일(明日) 진시(辰時)에 명국대원수 장백이 나무에서 떨어져 죽으려 하느니, 네 가 구하라 하시기에 왔거니와 어찌 만금지보(萬金之寶)를 무단히 버리니잇가?”
 
85
하고 간 데 없거늘, 장백이 괴이 여겨 다른 곳으로 찾아 가니, 주란환각(朱欄幻閣)이 반공(半空)애 걸려 있고, 향운(香雲)이 둘렀는데, 백화(百花)는 만발한 가운데, 거문고 소리가 은은히 들리거늘, 장백이 잠깐 죽을 마음이 사라지고 선경(仙境)을 구경코자 하여 그 곳에 올라가니 한 백발 노옹이 술상에 거문고를 빗기 안고 단정히 앉아 청산유수곡(靑山流水曲)을 타며 학이 춤추거늘, 장백이 나아가 재배하여 이르기를,
 
86
“소자는 인간(人間) 천인(賤人)으로 외람(猥濫)이 선경을 범하였사오니, 죄를 용서하소서.”
 
87
노인이 장백을 자세히 보더니 문득 잠소(潛笑)하여 이르기를,
 
88
“네 아까 나무에서 떨어져 죽으려 하던 유성(柳星)이로다. 내 거문고 곡조를 보니 지존한 사람을 만나리라 하여더니 언미필(言未畢)에 그대를 만났도다. 내 이 산의 머문 지 오래되 슬하에 혈식(血息)이 없는 고로, 주야 슬퍼하더니 이제 너를 만나 보니 이는 반드시 하늘이 지시(指示)하심이로다.”
 
89
장백이 공경 재배하여 이르기를,
 
90
“소자의 팔자가 험악(險惡)하여 혈혈(孑孑) 무의(無依)하기로 세상을 버리고자 하여 사지(死地)를 찾아다니더니 우연히 대인을 만나 애휼(愛恤)하심을 얻사오니, 은혜 망극하도소이다.”
 
91
노인이 웃으며 이르기를,
 
92
“나는 천관도사요, 이 산 이름은 사명산이라. 약간 천문을 알기로 너를 만날 줄 짐작하였거니와 이제 나와 함께 있으면 자연히 재조를 배우리니, 오래지 아니하여 이름이 사해(四海)에 진동할지라. 어찌 즐겁지 아니하리오.”
 
93
하고 부인을 청하여 서로 보게 하고 부자지의(父子之義)를 맺어 재조를 가르치니, 차시(此時) 장백의 나이 십칠이라. 본디 총명(聰明) 영오(英悟)하여 하나를 가르치매 백을 통하는지라.
 
94
도사가 기특히 여겨 칭찬하기를,
 
95
“네 내 집의 있은 지 벌써 삼년이 가까운지라. 이제 건장한 어른이 되고 문무겸전(文武兼全)한 가운데 웅재(雄才) 대략(大略)과 검술이 신기하매 기탄(忌憚)할 일이 없게 되었으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리오. 이제 중원(中原)이 요란하여 원(元) 황제 운수가 진(盡)하고, 대명(大明)이 중흥(重興)할 때라. 네 때를 만났으니 세상에 나가, 황제 될 사람을 찾아 충성을 다하여 공업(功業)을 세워 이름이 기린각(麒麟閣)의 오르리니, 어찌 오래 산중의 묻혀 운수를 찾지 아니하리오.”
 
96
하고 세 권 책(冊)을 내어 주거늘, 장생이 마지못하여 재배하며 아뢰기를,
 
97
“대인의 태산 같은 은덕으로 배운 일이 많고, 가르치심이 이 같사오니 망극하온 대은을 어찌 갚사오리잇가. 그러나 존문(尊門)을 떠나오매 심회(心懷) 창연(悵然)함을 억제치 못하리로소이다.”
 
98
하고 도사 부부에게 하직하고, 산에서 내려와 중원으로 향할새, 날이 저물거늘 주점(酒店)의 들어 쉬더니, 문득 한 사람이 들어오거늘, 장생이 자세히 보니 신장(身長)이 구 척(尺)이요, 소리가 웅장하여 예사 사람 같지 아니하더라. 장생이 맞아 좌정한 후에 기인(奇人)이 이르기를,
 
99
“생의 성명은 이정(李貞)이요, 청주 땅에 사옵더니, 마침 이곳의 와 장군의 만부부당지용(萬夫不當之勇)이 있음을 짐작하고 함께 좇아 성공하옴을 원하옵나니, 장군은 뜻의 어떠하시니있고?”
 
100
장생이 기인이 장군이란 말을 듣고, 괴이 여겨 답하기를,
 
101
“생은 능주인 장백이라. 본디 혈혈단신으로 정처 없이 다니거늘, 그대 생에게 장군이라 칭하니, 어찌된 말씀이니잇고?”
 
102
이정이 대희하고 이르기를,
 
103
“생이 약간 팔괘(八卦)를 아옵더니, 금일의 한 괘를 얻으매 대원수 아무를 만나리라 하였기에 자세히 알거니와, 이제 천하가 요란하여 백성이 도탄(塗炭)에 들었으니, 생이 비록 재조가 용렬(庸劣)하나 장군의 일비지력(一臂之力)을 돕고자 하나니 높으신 소견이 어떠하시니있고?”
 
104
장생이 이 말 듣고 심히 대희하여 차야(此夜)를 함께 지낼새, 이정 이르기를,
 
105
“생이 두루 다닐 제, 양주 장역촌에 들매 인가가 삼백여 호라. 밤을 당하면 집집이 음식을 많이 차려 놓고 피하여 산에 올라 그 밤을 지낸 후, 다시 집으로 찾아 들어오거늘 괴이 여겨 그 연고를 물으니 촌인(村人)이 이르기를, ‘우리 촌중(村中)의 난데없는 변고가 있어 천병(天兵) 만마(萬馬)가 들어와 먹을 것을 달라 하고 요란히 설치며, 만일 아니 주는 집이 있으면 모진 병(兵)을 내어 무수히 살해하기로 부지(扶持)하기 어렵다.’ 하거늘, 생이 그 말을 믿지 아니하여 한 집을 정하고 밤을 지내더니, 과연 삼경(三更)이 되어 천병만마가 들어오며 크게 요란하더니, 이윽고 촌가(村家)로 흩어지더니, 다섯 장수가 일시에 들어오니 다 각각 갑주(甲冑)를 입고 창검을 들었으니, 위의(威儀) 엄숙(嚴肅)하여 바로 보지 못할러니, 점점 들어와 생에게 사례하며 이르기를, ‘우리는 오방신장(五方神將)이라. 상제(上帝)의 칙교(勅敎)를 받들어, 군사를 거느리고 진천자(眞天子)를 호위하려 계양 땅 동문 밖으로 가더니, 이곳의 이르매 사졸(士卒)이 기갈(飢渴)을 이기지 못하여, 이 촌중의 들어와 염치(廉恥)를 모르고 얻어먹더니, 이제 그대 당돌히 앉았음을 보니 족히 장군의 기상이라. 그대는 진천자를 찾아 도우면 좋을까 하노라.’ 하거늘, 생이 그 심상치 않음을 알고 또 묻되, ‘진천자의 성씨는 어찌 이르지 아니하느뇨?’ 하니, 그 신장 이르기를, ‘성은 주(朱)씨니 걸인(乞人) 백 명을 데리고 다니며 걸식(乞食)하느니 부디 나의 말을 헛되이 듣지 말라.’ 하고 일시에 간 데 없거늘, 마음이 희한히 여겨 다니더니, 이제 장군을 만나 대사를 의논하오매, 계양 땅 동문을 찾아 걸인 괴수(魁首) 주씨를 만나면 창업지공(創業之功)을 이루리니,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리잇고.”
 
106
장생이 청파(聽罷)에 서안(書案)을 치며 이르기를,
 
107
“기재(奇才)라. 우리 장차 이름을 세워 공업(功業)을 이룰 때를 만났도다.”
 
108
하고 즉시 이정을 다리고 중원으로 행하니, 차시 장백이 나이 이십 세라. 기골이 장대하여 마음에 꺼릴 것이 없으되, 일신이 곤(困)함을 염려하나, 활달한 기용(氣勇)이 북해(北海)를 뛸 듯하는지라.
 
 
109
이정이 본디 첩을 데리고 다니니 이름 홍불기라. 함께 장백을 좇아 호주(湖州) 땅을 지날새 강을 건너더니, 문득 청룡과 거북이 싸우거늘 장생이 보고 진언(眞言)을 염(念)하더니, 문득 철장(鐵杖)을 들어 거북의 머리를 쳐 죽이니, 그 용이 대열(大悅)하여 장생을 자주 돌아보며 물속으로 들어가는지라.
 
110
장백이 그 용의 싸움을 구완하고 날이 저물매, 강변 주점에서 밤을 보낼새, 한 동자가 들어와 장생을 보고 절하여 이르기를,
 
111
“나는 백마강 용자(龍子)이옵더니, 작일(昨日) 그대의 은혜에 힘입어 부왕(父王)의 목숨을 보전하였사오니 그 보은할 바를 알지 못하는지라. 가져온 것이 비록 좋지 못하나, 그대 이를 가시시면 족히 쓸 곳의 유익함이 있으리라.”
 
112
하고 일개 구슬을 내어주며, 또 일척 장검을 놓거늘 장생이 자세히 보니 범상(凡常)한 기물(器物)이 아니라 지극한 보배이거늘, 심중(心中)의 기뻐 사례하고 놀라 깨니 동자는 간 데 없고 칼과 구슬이 곁에 놓였거늘, 거두어 행장에 감추고, 날이 밝은 후 이정과 함께 강을 떠나 한 곳의 이르니, 층암절벽에 수간(數間)초옥(草屋)이 있으되 채운(彩雲)이 둘렀거늘, 장백이 이정에게 이르기를,
 
113
“저 집에 필연 도인이 사는가 싶으니 잠깐 찾아보리라.”
 
114
하고 먼저 이정을 보내어 그 집 사람이 어떠한가 알아오라 하니, 이정이 응낙하고 그 집의 주인을 찾으니 한 여자가 녹의홍상(綠衣紅裳)으로 거문고을 타다가 이정을 보고 반겨 물어 이르기를,
 
115
“그대 아니 청주(靑州) 땅 이정 장군이신가. 소첩(小妾)의 가군(家君)이 아까 나가시며 당부하며 이르기를, ‘일정 귀객(貴客) 이인(二人)이 이르리니, 하나는 추성(箒星) 장원수요, 하나는 이정 장군이라 하시매 아옵거니와, 어찌 장원수는 아니 오시니잇가?”
 
116
이정이 이 말을 듣고 놀라 묻기를,
 
117
“그대 가군의 말을 들어 우리 두 사람 올 줄은 알려니와, 나와 장원수는 어찌 분변(分辨)하느뇨?”
 
118
그 여가가 답하기를,
 
119
“장원수은 천상(天上) 추성이라. 안목에 서기(瑞氣)가 반드시 있으리니, 이러므로 자연 앎이로소이다.”
 
120
이정이 그 지식 있음을 탄복하고 주저하더니, 이윽고 밖에서 세 사람이 들어와 문득 이정을 보고 반겨 이르기를,
 
121
“귀객이 도문(到門)하시되 마침 주인이 없었으니, 어찌 용렬함을 면하리잇가.”
 
122
하고 예필(禮畢) 좌정(坐定) 후에 삼인(三人)이 성명을 통하니, 형은 백운단이요, 둘째는 백운선이요, 셋째는 백운현이라.
 
123
삼인이 이르되,
 
124
“우리 삼 형제 약간 아는 일이 있기로, 이 산중의 은거하여 천하 영웅을 만날 줄 짐작하였으매, 이제 이장군은 만났거니와 장원수은 어디 계시니잇가?”
 
125
이정이 그 삼인의 귀신 같이 앎을 놀라하며 이르기를,
 
126
“생이 일찍 세상 구경코자 하여 두루 다니다가 과연 한 영웅을 만나니, 성은 장이요 이름은 백이라. 함께 이곳을 지날새 심상치 아니한 기운을 보고 왔더니, 그대 장원수를 보고자 하실진대, 생과 함께 가면 만나리로다.”
 
127
하고 사인(四人)이 함께 나와 장생을 볼새, 백운단이 이르기를,
 
128
“소생이 장원수 모심을 기다리더니 오늘날 만났으니 어찌 하늘이 지시하심이 아니리잇가. 이제 천하가 요란하여 처처에 영웅이 봉기하니, 원나라 기업(基業)이 이미 진(盡)하매 세상이 바뀜을 당하니, 만일 장원수 아니면 도탄의 든 백성을 건질 수 없으리니, 원컨대 소생 등은 장군을 따라 함께 이름을 후세의 유전(留傳)함이 어떠하리잇고?”
 
129
장생이 그 삼인의 기위(奇偉) 웅장함을 보고 마음에 기뻐하며 이르기를,
 
130
“나도 세상이 요란함을 짐작하나 뉘 결(決)함이 없고, 동심(童心)이 호걸을 만나지 못하였더니, 우연히 이곳에서 형을 만나니 마땅히 도원결의를 효칙(效則)하여 사생(死生)을 함께 하리라.”
 
131
하고 일반 단(壇)을 모아 잔치를 배설(排設)하고 백마를 잡아 맹세하며 기특한 묘책을 의논하니 그 형세 당할 자가 없더라.
 
 
132
원래 백운단이 첩 천봉을 데리고 산중의 있어 장원수 옴을 기다리다가 이런 때를 만나 기운을 떨치고 함께 중원을 향할새, 길에서 차차 사람을 얻으니 원종자(源從者)가 삼천여 인이라. 장생이 이정에게 이르기를,
 
133
“그대, 이 삼천 인을 모아 다닐 길이 없으니 약속을 정하여 각각 헤어져, 마구 다니며 집을 찾아 사환(使喚) 노릇하면 저마다 주인이 믿으리니, 이 고을 재사(才士)가 필경 습진(習陣)하면, 주인의 대신으로 각각 군복을 감추고 참례(參禮)하다가 습진이 파한 후에, 일시의 백운산으로 모이면, 내 먼저 묘책을 굳게 하고 기다리리니, 만일 영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군법으로 시행하리라.”
 
134
하니 이정이 영을 듣고 물러가다.
 
 
135
이러구러 진연(塵煙)이 되매, 이정은 남의 병도 고치며, 장생과 백운단 삼인은 혹 점도 보는 체하며 세상 물론(物論)을 듣고 보니 뉘 능히 알이오.
 
136
차시 연주(兗州) 자사 화양이 인심(人心)이 소동 있음을 염려하여 마보군(馬步軍)을 모으고 크게 연습하는 영(令)을 각 읍의 전하거늘, 장생이 이 일 알고 급히 이정을 불러 이르기를,
 
137
“아무 날 습진하는 영이 있으니, 그대는 착실히 지휘하여 영을 어기지 말면 난유(亂流) 삼천이 (化)하여 강병 삼천이 되리니, 어찌 묘책이 아니리오.”
 
138
하고 또 백운단 등을 불러 이르기를,
 
139
“그대는 백화산에 들어가 육정육갑(六丁六甲)을 벌이면, 오방신장이 옹위하고 신병(新兵)이 결진(結陣)하리니, 얻은 바 마군 삼천과 한 곳에 진을 치고 밤들기를 기다려 바로 연주를 취하리라.”
 
140
하고 약속을 정하였더니, 과연 약속과 같이 삼천 창두(蒼頭)가 갑주와 창검을 갖추고 습진에 참여하였더니, 파(破)하라는 영을 듣고 말을 달려 일시에 산하의 이르거늘, 장생이 대희하여 즉시 영솔(領率)하고 백화산의 백운단을 찾아 들어가니 때 정(正)히 황혼이 되였더라. 백운단 형제 나아와 장생을 맞아 장대(將臺)에 높이 앉히고 차례로 군례(軍禮)를 드려 하례(賀禮)하며 이르기를,
 
141
“오늘날 대원수를 모시는 날이라.”
 
142
하고 크게 즐기는지라. 오방신장(五方神將)은 방위(方位)를 응(應)하여 삼십만 신병을 거느리고 장원수를 호위하며 철기(鐵騎) 삼천과 함께 진을 치매 엄숙함이 철통같은지라.
 
143
원수 제장을 불러 크게 호궤(犒饋)하고, 이정으로 선봉장을 삼고 백운단으로 후군장을 삼아, 이날 삼경(三更)에 발군(發軍)하여 바로 연주를 취할새, 성하의 다다르니 날이 밝고자 한지라.
 
144
성문을 깨치고 들어가니 성중 백성이 불의지변(不意之變)을 만나는지라. 황황(遑遑) 망조(亡兆)하여 사산(四散) 분주(奔走)하거늘, 이정이 대군 몰아 들어가며 외치기를,
 
145
“이 무도한 자사(刺史) 화양은 빨리 나와 항복하라.”
 
146
하는 소리 천지를 진동하는지라. 화양이 대경실색하여 급히 군사를 모으고 정창(挺槍) 출마(出馬)하여 외치기를,
 
147
“너는 어떤 도적이기에 나를 업수이 여기느냐. 내 칼이 사정이 없나니 오늘날 너를 죽여 역천(逆天) 무도(無道)한 죄를 다스리리라.”
 
148
하고 내달으니 백운단이 맞아 싸워 십여 합에 이르매 불분(不分) 승부(勝負)이러니, 화양이 소리를 지르고 철퇴를 들어 백운단을 쳐 엎지르고 창을 들어 찌르고자 하더니, 홀연 뒤에서 함성이 대진(大振)하며 일원대장이 말을 달려 칼을 춤추어 내다르니, 이는 선봉장 이정이라.
 
149
급히 백운단을 구하고 한번 시위를 당기어 화양을 쏘니, 화양이 맞아 엎어지거늘, 아우 화충이 제 형이 위태함을 보고 내달아 이정과 싸울새, 삼 합이 못되어 이정의 창이 빛나며 화충의 머리 마하에 떨어지니, 화양이 그 아우 죽는 양을 보고 분기(憤氣) 대발(大發)하여 바로 달려들며 꾸짖어 이르기를,
 
150
“내 너를 베어 아우의 원수를 갚으리라.”
 
151
하고 맞아 싸우더니 십여 합에 이르러는 화양이 능히 저당(抵當)치 못할 줄 알고 서 문을 바라고 내닫더니, 장원수의 대진(大陣)이 있음을 보고 황겁하여 어느 곳으로도 갈 줄 모르는지라. 장원수 눈을 부릅뜨고 대질(大叱)하기를,
 
152
“이 무도한 화양은 들으라. 네 국록지신(國祿之臣)으로 일도(一道) 방백(方伯)이 되어 치민(治民)할 줄 알지 못하고, 주색(酒色)을 좋아하여 백성이 도탄(塗炭) 중에 들었으니. 내 너를 먼저 죽여 백성을 건지리로다.”
 
153
하고 원수의 철창(鐵槍)이 이은 곳에 화양의 머리 마하의 구르는지라. 그 머리를 성문에 달아 군중(軍中)에 호령(號令)하고, 제장(諸將) 군졸(軍卒)을 안둔(安屯)하며, 창고를 열어 백성을 무휼(撫恤)하고 부세(負稅)를 감(減)하니, 백성이 크게 기뻐하더라.
 
154
원수 이정과 백운단을 불러 이르기를,
 
155
“이제 연주 병(丙)을 합진(合陣)하면 호주(湖州) 치기는 여반장(如反掌)이라.”
 
156
하고 일변(一邊) 장졸을 상사(償賜)하며, 선봉장을 백운현으로 바꾸고 행군하여 호주로 행하니라.
 
 
157
이때 단양(丹陽) 태수(太守) 이연횡은 본디 천관도사의 제자라. 흉중(胸中)에 천지(天地) 조화(調和)를 품수(稟受)하매 변화 불측(不測)한지라. 이제 장백이 이름 없는 군사를 발(發)하여 태주(泰州)를 쳐 얻고, 또 호주를 치러 가매 망풍귀순(望風歸順)함이 천하를 도모할 듯한지라.
 
158
“내 장백과 동문수학한 정이 있으나 반드시 저를 쳐 없이하리라.”
 
159
하고 먼저 도사(道士)를 보고 장백 칠 말씀을 의논하더니, 도사가 이르기를,
 
160
“네 재조가 비록 비상하나 장백을 당할 수 없으리니, 장백을 도와 대공을 이룰 만 같지 못하리라.”
 
161
하니 이연횡이 불열(不悅)하여 이르기를,
 
162
“영위계구(寧爲鷄口)이언정 무위우후(無爲牛後)라 하니, 선생의 가르치심을 봉행(奉行)치 못하리로소이다.”
 
163
하고 하직하고 돌아와 군사를 조발하니 그 세(勢) 호대(浩大)하더라.
 
 
164
차시 이정이 군사를 다 회동하여 호주 성하(城下)에 진을 치고 격서(檄書)를 전하여 싸움을 재촉하니, 태수 황겁하여 성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아니하거늘, 이정이 군사를 발(發)하여 높은 봉(峰)의 올라, 화전(火箭)을 묻고 사장(射場)을 명하여, 각각 일지군(一枝軍)을 거느리고 사문(四門)에 매복하였다가, 일성(一聲) 포향(砲響)에 화전을 발하니, 성중이 대란(大亂)하여 불이 사면(四面)에 일어나니, 화염이 충천(衝天)하는지라.
 
165
이정이 삼천 철기를 거느리고 서문을 엄살(掩殺)하니, 고각(鼓角) 함성이 천지가 진동하는지라. 사면(四面) 복병이 일시의 문을 깨치고 들어가니 호주 태수가 장계를 올려 급히 동문으로 달아나다가, 이정의 아장(亞將) 황문홍을 만나니, 황문홍은 연주에서 얻은 장사이라. 태수를 에워싸고 꾸짖어 이르기를,
 
166
“우리 장원수 천명을 받들어 의병을 이루니 군사가 삼십 만이오, 맹장이 무수한 지라. 천도(天道)가 번복(飜覆)함을 짐작하고, 무도한 원황제를 내치고자 하나니, 네 만일 목숨을 도모코자 할진대, 빨리 항복하라.”
 
167
하니 태수 분노하여 창 들어 싸울새 반 합이 못하여 황문홍의 칼이 빛나며 태수의 머리 내려지는지라. 원수가 그 용맹을 일컫고 방(榜) 뿌려 백성을 안무(按撫)하여 부로(府老)을 불러 위로하기를,
 
168
“여등(汝等)은 착한 태수 만나지 못하여 도탄의 잠겼다가, 지금은 민폐(民弊)를 진정하였으니 족히 편하다 하려니와, 위로 걸주(桀紂) 같은 원황제 있으니 어찌 천도가 무심하리오. 이제 그대 등으로 동남 수성장을 시키나니, 성을 착실히 보호하라.”
 
169
하고 제장을 모아 삼군을 회동하여 장안으로 향하고자 하더니
 
 
170
문득 탐마(探馬)가 보(報)하되 난데없는 적병이 이르러 싸움을 돋운다 하거늘, 장원수 괴이 여겨 장대(將臺)의 올라 진세(陣勢)를 살펴보니, 한 장수가 갑주를 갖추고 청총마(靑驄馬)를 탔으니, 낯이 불빛 같고 수염이 바늘 같으며 신장이 팔 척이라. 즉시 이정을 명하여 나가 싸울새, 먼저 육화진(六花陣)을 쳐 조화로 잡으려 하니, 이연횡이 군사를 호령하여 나오며 외치기를,
 
171
“반적(叛賊) 장백이 너 나를 모르느냐? 내 오늘 너를 죽여 공을 세우리라.”
 
172
하고 점점 가까이 오니 무수한 신병(神兵)이 입 벌리며 기운을 토하니, 사졸(士卒)이 상하는지라. 장원수가 놀라 입으로 옥갑경(玉甲經)을 염하니, 이윽고 대풍이 일어나며 안개 비 오듯 하여 눈을 뜨지 못하니, 단양병(丹陽兵)이 비록 신기하나 어찌 당하리오. 항오(行伍)를 차리지 못하고 육화진 속에 들어 나갈 바를 알지 못하는지라.
 
173
이연횡이 대경하여 도망코자 하나, 사면에 지킨 장수가 잇는지라. 장원수가 장대의 올라 북을 치고 양진(兩陣) 승패를 보더니, 이연횡이 수십 기를 거느리고 남을 향하여 도망하는지라. 백운단이 빨리 따르며 창으로 말 찔러 엎지르고, 이연횡을 생금(生擒)하여 장대(將臺)의 이르거늘, 원수가 대희하여 이정을 상사(償賜)하고, 이연횡을 꾸짖기를,
 
174
“내 이제 의병을 일으켜 무도한 무리를 쓸고자 하거늘 네 천시(天時)를 모르고 괴이한 신병을 몰아 나를 항거하니, 너 같은 무도한 놈을 베어 위엄을 도우리라.”
 
175
하고 군중에 호령하여 바삐 베라 하니, 이연횡이 고두사죄(叩頭謝罪)하기를,
 
176
“소장의 죄는 죽기를 면치 못하나 원수는 대덕으로 목숨을 살리시면 죽기로써 원수를 도우리니, 복망(伏望) 원수는 잔명(殘命)을 구하소서.”
 
177
하거늘 원수가 기뻐 맨 것을 끄르고 장대의 올려 앉힌 후에, 전후 지내던 수말(首末)을 이르고 술을 내와 권하며 황성 칠 일을 의논하더라.
 
 
178
각설 장소저가 황릉묘에서 이승상 부인을 만나 애휼함을 얻으매, 일신이 평안하되 다만 장백만 생각하고 주야 설워하며 밤이면 후원의 올라가 하늘께 축수(祝手)하여 장백 만나보기를 발원(發願)하더니, 일일은 한 노인이 이르기를,
 
179
“네 이곳에서 그리 말고 산 뒤의 대성사란 대찰(大刹)이 있으니 그 절에 가서 칠일 공양하면 오래지 아니하여 동생을 만나리라.”
 
180
하거늘 놀라 깨니 도승 간 데 없거늘, 즉시 내려와 부인께 몽사를 이르고 함께 그 절에 가 공양함을 청하니, 부인이 그 정성을 기특히 여겨 즉시 행장과 교자(轎子)를 차려 주며 이르기를,
 
181
“과연 이 산 뒤의 대성사란 절이 있으니, 승(僧)이 많지 않고 심히 정쇄(精灑)한지라. 네 만일 소원을 이룰진대 어찌 즐겁지 아니리오.”
 
182
소저 인하여 하직하고 대성사에 올라가니, 노승이 맞아 법당에 인도하매 소저가 불전(佛錢)을 올리고 공양(供養)차 축수하더니, 난데없는 걸인 수십 인이 들어와 들레며 이르기를,
 
183
“우리 등이 촌가(村家)의 다니며 밥을 얻었거니와, 이 절에 와 밤이나 자고 가리라.”
 
184
하며 사면으로 헤어지더니 한 걸인이 급히 법당문을 열고 들어온지라. 소저가 미처 몸 감추지 못하고 부처 뒤에 숨으려 하더니, 그 걸인이 소저를 보고 쫓아와 묻기를,
 
185
“그대는 사람이냐, 귀신이냐? 어찌 고요한 법당에 홀로 있느뇨?”
 
186
소저가 놀라 떨며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그 걸인이 소저의 망조(亡兆)함을 보고 다시 집수(執手)하며 이르기를,
 
187
“그대 무슨 일로 이곳에 이르렀느뇨?”
 
188
소저가 마지못하여 답하기를,
 
189
“나는 능주의 장승상의 여자라. 조상(早喪) 부모하고, 어린 동생을 데리고 잔명을 보존하더니, 간인(奸人)의 해(害)를 만나 중로에서 동생을 잃고 도적에게 잡히어 가더니, 그 도적을 속이고 소상강의 빠져 죽으려 하더니, 이비(二妃)의 구함을 힘입어 창파(滄波)의 원혼을 면하고, 이부인을 만나 완명(頑命)이 부지하오나, 다만 어린 오라비를 만나지 못하므로, 불전(佛殿)에 발원(發願)이나 하면 그 얼굴을 볼까 하고 이곳의 이르렀더니, 그대 급히 들어오매 심히 놀랍도다.”
 
190
그 걸인이 촉(燭)을 가까이 하고 소저를 자세히 보니, 옥모(玉貌) 화용(花容)이 요요정정(夭夭貞靜)하여 짐짓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한번 보매 심변(心變)하여 장부의 심사를 잡는지라 어찌 범연(泛然)하리요. 그 정성을 탄복하고 이르기를,
 
191
“낭자는 나의 행세(行勢) 추미(醜美)함을 흉하지 말라. 비록 그러하나 천하(天下) 흥망(興亡)이 흉중(胸中)의 품수(稟受)하였으니 실로 제업(帝業)을 창기(創起)할지라. 그러므로 자취를 감추고 다니며 천시를 기다리더니, 우연히 이 절에 들어와 낭자를 만나니 이는 하늘이 정하신 연분이라. 내 천하를 평정한 후 낭자를 육례(六禮)로 맞을 것이니 무슨 신물(信物)을 내어 후고(後考)를 굳게 함이 좋으리로다.”
 
192
소저가 이제 말을 듣고 더욱 놀람을 이기지 못하나 그 사세(事勢)할 수 없는지라. 잠깐 눈 들어 그 걸인을 보니 얼굴이 묵은 때 가득하여, 눈 아래 코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지 못하고, 머리털이 흩어져 방부(榜符)가 되었으며, 옷이 헐어 몸을 감추지 못하였으니, 그 추함을 바로 보지 못하나, 그러나 엄숙한 거동은 맹회(盟會) 기산(岐山)에 안김 같고, 쇄락한 형용은 청룡이 벽해(碧海)를 뒤치는 듯 풍채 늠름하여 융준(隆準) 용안(龍顔)이 당당이 제왕의 기상이라.
 
193
심중에 암희(暗喜)하여 부처 지시하심을 탄복하고 고개를 숙이고 대답지 못하며 다만 머리의 봉채(鳳釵)를 빼어 내어주니, 그 걸인이 봉채를 받아 반을 꺾어 낭자에 주며 이르기를,
 
194
“이것으로 신(信)을 삼으라. 나는 동국(東國) 사람 주원장(朱元璋)이니 간밤에 일몽을 얻으매 대성사 부처가 계화(桂花) 일지(一枝)를 주며 이르되, ‘이 계화를 후원의 심어 두고 물을 주어 잘 기르면 월궁(月宮) 계화(桂花) 되리라’, 하거늘, 꿈을 깨어 해몽치 못하였더니 이제 낭자를 만나 신물로 봉채를 주니 어찌 부처의 지시함이 아니리오.”
 
195
소저가 답하기를,
 
196
“첩이 이제 언약을 지키리니, 낭군은 뜻을 세운 후 찾으심을 기다리로소이다.”
 
197
주생이 탄식하여 이르기를,
 
198
“일후(日後) 계양(桂陽)에서 대병이 일어난다 하거든, 내 기군(起軍)한 줄 알고 찾기를 기다리라.”
 
199
하고 이별하니라.
 
200
소저가 이부에 가니, 이부인이 반기며 그 정성이 지극함을 못내 일컬으며, 소저의 봉채 없음을 괴이 여겨 그 연고를 물으니, 소저가 양구(良久) 후 아미(蛾眉)를 숙이고 지난 일을 자세니 고하니, 부인이 그 천정(天定)임을 탄복하고 더욱 애중(愛重)이 여기더라.
 
 
201
차설 주생이 대성사를 떠나 천왕묘에 들어가 자더라.
 
202
그 마을에 유기(劉基)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신장이 구 척이오 지략이 과인(過人)한지라. 뜻을 얻지 못하여 두루 다니더니 일일은 집의 들어 자는지라. 삼경(三更)이 되어 어떤 사람이 냇물을 요란히 건너오거늘 괴이 여겨 연고 자세히 물으니 기인(奇人) 이르기를,
 
203
“우리는 천왕묘(天王廟) 신령이러니, 금야(今夜)에 대명(大明) 태자(太子)가 묘중(廟中)에 와 머무시는 고로, 감히 함께 지내지 못하는 고로 잠깐 피하노라.”
 
204
하고 간 데 없거늘, 심중의 괴이 여겨 천왕묘에 올라가 두루 살펴보니, 한 사람이 잠을 깊이 들었으되, 의복이 남루하고 형용이 곤곤(困困)하여 주린 걸객(乞客) 같은지라. 그러한 가운데 상서(祥瑞)의 구름이 그 사람을 둘렀으니 심히 황홀한지라. 한번 보매 크게 이상히 여겨 곁에 앉아 그 잠 깨기를 기다리더니, 이윽고 그 사람이 놀라 깨어 일어나 앉으며 이르기를,
 
205
“승상이 어찌 이곳의 이르렀느뇨?”
 
206
유기가 경아(驚訝)하며 이르기를,
 
207
“소생은 이 마을에 사는 미천한 사람이라. 승상이라 칭(稱)하심은 진실로 깨닫지 못하거니와, 아까 신통한 일이 있어 이곳에 왔사오니 진정으로 이르심을 바라나이다.”
 
208
기인(奇人) 이르기를,
 
209
“나는 조선(朝鮮) 사람이니, 성명은 주원장(朱元璋)이라. 본디 집이 빈한(貧寒)하기로 정처 없이 다니더니, 우연히 대국(大國)에 들어와 인심을 살피더니, 어찌 일몽을 얻으매 ‘승상이 왔거늘 어찌 잠만 자느뇨.’ 하기로, 놀라 깨니 과연 그대 곁에 앉았으매 알거니와, 금(今) 원(元) 황제(皇帝) 무도하여 천운이 진(盡)하였으매, 천하 호걸(豪傑)이 봉기하니, 내 삼척검(三尺劍)을 잡아 진(秦)나라 잃은 사슴을 잡으려 하되, 동모(同謀)할 사람을 얻지 못하더니, 이제 그대를 만나니 족히 근심이 없으리로다.”
 
210
하거늘 유기 대희하여 사례하고, 집의 돌아와 처자(妻子)를 불러 가산을 수습하라 하고 주생으로 더불어 계양(桂陽)으로 들어갈새, 이때 한기(旱氣) 태심(太甚)하고, 시절이 흉년이매 처처(處處)에 주려죽는 자 무수하되, 유독(惟獨)히 계양이 풍년이매 사방 걸인이 구름 피하듯 하는지라.
 
211
유기, 주생으로 더불어 무수한 걸인의 괴수 되어 매양 엄숙하게 하더니, 일일은 하령(下令)하되,
 
212
“미명(未明)에 연목(軟木) 한 개와 짚 한 뭇씩 얻어 드리되, 위령(違令)한 자는 계양에서 내치리라.”
 
213
하니 걸인들이 다른 땅에 가면 얻어먹을 수 없으매, 영(令) 듣고 즉시 얻어 왔거늘, 유기가 그제야 계양 동문 밖에 평원(平原) 광야(廣野)를 찾아 한 집을 짓되, 족히 천병(千兵) 만마(萬馬)를 용납할지라. 유기 또 집에 큰 그릇을 만들어 모든 걸인들에게 임무(任務)하되,
 
214
“너희 빌어오는 밥을 이 그릇에 모아 일시의 나눠 먹이되 만일 사사로이 먹는 자이면 동류(同類)에 붙이지 아니하리라.”
 
215
하니 모든 걸인들이 유기와 주생의 그 관후(寬厚)함을 탄복하며, 위세(威勢)에 황겁(惶怯)하여 조석으로 밥을 빌어다가 바치니, 유기 받아 큰 그릇에 모으고 걸인 등을 연치(年齒)로 앉히며 평균으로 나눠 주니, 그 중의 혹 밥을 얻지 못한 자라도 같이 배불리 먹으니 저희들도 또한 즐거워하더라.
 
 
216
이러구러 겨울이 지내고 삼춘(三春)이 다다르니 모든 걸인들이 정의(情義) 관숙(慣熟)하여 형제 같은지라. 유기 가산을 진매(盡賣)하니 십만여 금이 되는지라. 일변(一邊) 군기(軍器) 복색(服色)을 준비하여 감추고, 모든 걸인을 모아 술을 먹인 후 그 마음을 시험하리라 하여 불덩이를 그릇에 담아 차례로 내려오며 돌리더니, 한 사람에게 다다른즉 문득 불그릇을 들고, 좌(座)에 나서며 주생과 유기를 향하여 이르기를,
 
217
“마땅히 영(令)를 좇으리이다.”
 
218
하거늘 자세히 보니 이는 유문정(劉文靜)이라. 주유(朱劉) 양생(兩生)이 제인(諸人)의 뜻을 시험코자 하더니, 수화(水火)라도 피(避)하지 않을 줄 알고 잠소(潛笑)하며 이르기를,
 
219
“그대 어찌 아느뇨.”
 
220
문정이 답하기를,
 
221
“장수가 불을 전함은 반드시 기병코자 함이라. 아등 삼백여 인이 친척을 버리고 분묘를 버리며 장수를 좇아 유리걸식(遊離乞食)하매, 숙식(宿食)을 함께 하며 인의(仁義)로 대접하니 은혜 태산 같은지라. 장부가 세상에 처하매 이름을 후세의 유전(留傳)함이 떳떳하온 일이라.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영유종회(永有終會)리오.”
 
222
하니 유기 청파(聽罷)에 대찬(大讚)하고 그 손을 이끌어 곁에 앉히며 실사(實事)를 의논하니, 모든 사람이 일시의 좇기를 원하거늘, 주생이 기뻐 즉시 백마(白馬)를 잡아 하늘에 제(祭)하고 살을 꺾어 맹세하며 유문정에게 이르기를,
 
223
“그대 차야(次野)에 계양성 군기(軍器)가 쌓인 곳에 불을 놓으면 반드시 성문을 열고 불을 구하라 할 것이니, 내 마땅히 삼백육십 인을 거느리고 거짓 불을 구하는 체 하다가 들어가 여차여차 하리니 언약을 잃지 말라.”
 
224
유문정이 응낙하고 가니라.
 
225
이때 사경(四更)이 되어 과연 성중에 불이 이러나며, 사문(四門)을 크게 열고 백성을 모아 불을 끌새, 유기 일시의 모든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 일변(一邊) 민가의 불을 놓으며, 무수한 군기(軍器)를 내어가지고 성 동문을 나오니, 궁시(弓矢) 창검(槍劍)이 불가(不可) 승수(勝數)라.
 
226
주생이 대희하여 급히 군을 모아 진세(陣勢)을 벌리고, 유기로 선봉장을 삼으며 유문정으로 정동장군하고, 주생이 스스로 대원수가 되어 삼군을 거느리고 일시의 고함하며 성문으로 짓쳐 들어 가니라. 성중에 불이 일어 화광(火光)이 충천(衝天)하더니, 불의에 천병만마가 들어옴을 보고 미처 대처할 수 없으매, 성중 백성이 다 도망하여 막을 자가 없더라.
 
227
태수가 할 길 없어 다만 천패(天牌)를 모시고 나아와 꾸짖어 이르기를,
 
228
“이 무지한 도적이 어찌 날 당하리오. 내 비록 재조가 없으나 너의 무리는 족히 두렵지 아니하되, 시운(時運)이 불리하여 천도가 진(盡)하였으니 어찌 살기를 구하리오. 내 마땅히 자결하여 어진 귀신이나 되리라.”
 
229
하고 자문이사(自刎而死)하니, 원수가 그 충성 일컫고, 계양 군(軍)을 모아 진세를 굳게 하고, 백성을 안무하여 즐기게 하며, 유문정으로 하여금 계양을 지키오고, 군사를 조발하여 파주(巴州) 성을 칠새, 일 합에 항복받고 크게 북을 울려 군사를 점고하니 정병이 삼십만이라.
 
 
230
주원수가 기운을 가다듬어 군사를 쉬게 하고, 대연을 배설하여 즐길새, 원수가 위연(喟然) 유기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231
“내 어려서 스승이 양육(養育)한 은혜를 입고, 이제 몸이 대원수에 거하매 스승을 청(請)하여 함께 놀리라.”
 
232
하고 즉시 사람을 보내어 청하매, 주과(酒果)가 나와 서로 권하니 그 은근한 정이 관숙(慣熟)하더라. 원수가 술이 대취하여 서안을 의지하고 잠이 깊이 들었는지라.
 
233
그 스승이 원수의 곁에 앉아 원수가 잠듦을 보고 생각하되,
 
234
‘내 원수와 더불어 수십 년을 동거하였으나, 어려서부터 왼손을 편 양을 보지 못하였더니, 오늘날 보지 못하면 어느 날 만나리오.’
 
235
하고 가만히 그 손을 펴 보니, 붉은 자로 써 있으되, 대명(大明) 천자(天子)라 하였거늘 크게 놀라 그 손을 도로 닫고 앉았더니, 원수가 잠을 깨여 일어앉으며 눈썹을 찡그리고 이르기를,
 
236
“사부가 나를 사랑하여 친자같이 헤아리니, 태산 같은 은혜를 일시인들 어찌 잊으리오마는, 소자가 이제 천하를 정하고 대업을 이룬 후, 그 은공을 갚으려 하였더니, 사부가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내 손을 펴 천기를 누설하니 어찌 사정(私情)이 온전하리오. 천하를 위하는 자는 불고(不顧) 부모(父母)이라 하였으니, 내 이제 사부를 죽여 누설하는 기운을 없애고자 하나니, 복망(伏望) 사부는 나를 원(怨)치 마소서. 반드시 왕례(王禮)로 장사(葬事)를 지내고, 사시(四時) 향화(香火)을 끊지 아니하리이다.”
 
237
하고 눈물을 흘리며 무사(武士)을 명하여 그 머리를 베어 하늘에 제하고 왕례로 안장(安葬)하니라.
 
 
238
차설 관서(關西) 태수 이연횡이 장졸을 거느려 성밖에 나와 격서(檄書)를 전하거늘 떼어보니 하였으되,
 
239
‘관서태수 이연횡은 삼가 글월을 닦아 주원수 좌하(座下)의 올니옵나니, 소관(小官)이 비록 일방(一方)을 지키어 식록지신(食祿之臣)이 되었으니, 실로 당(唐)을 섬겼는지라. 무도한 원제(元帝) 섬기기를 부끄러워 하더니, 이제 장군의 의병이 이르시니, 소관이 곡요(曲腰)로 바치나니 장군은 합병하여 천하를 도모함이 어떠하뇨?’
 
240
하였더라. 유기 남필(覽畢) 후에 대희하여, 주원수를 뵈고 이연횡을 맞아들이니, 열읍(列邑) 장졸이 구름 모이듯 하더라. 원수가 대군을 거느려 행할새, 이연횡으로 표기장군을 삼아 군사를 거느려 행하라 하고, 유기와 유문정으로 후군을 거느려 장안(長安)으로 향하니 정기폐일(旌旗蔽日)하고 검극(劍戟)이 서리 같더라. 소과(小過)의 망풍귀순(望風歸順)하는지라.
 
 
241
각설 원 황제 날마다 풍악을 갖추고, 가는 허리로 춤 추이며 정사(政事) 돌아보지 아니하니, 천하 인심이 흉흉하여 난시(亂時)을 기다리더라.
 
242
이때 청주(靑州) 자사(刺史) 김연이 표(表)를 올렸으니, 하였으되,
 
243
‘남방에서 이름 없는 도적이 백만 대병을 거느려 남방 칠십여 성을 쳐 항복받고 장안으로 향하니, 그 형세 가장 큰 지라. 복망(伏望) 폐하는 대군을 급히 보내어 도적을 소멸하소서, ’
 
244
하였더라. 황제 대경하여 만조(滿朝)를 모으고 도적 막을 계교(計巧)를 의논하니, 문득 일인(一人)이 출반(出班)하여 주(奏)하기를,
 
245
“신이 비록 무재(無才)하오나, 일지병(一枝兵)을 빌리시면 도적을 파하여 폐하의 근심을 덜리리다.”
 
246
하거늘 모두 보니 병부샹서 한충국이라. 황제 대희하여 충국으로 대원수를 삼고 남성으로 부원수를 삼고 최덕명으로 양초(糧草)를 수운(輸運)하게 하고 연평덕으로 도성을 지키오고, 황제 친정(親征)할새, 양양 병을 일으켜 행군하니 장사가 천여 원(員)이요, 정병이 백만이라. 호호탕탕하게 행군하여 연주(延州) 땅에 이르니, 장원수가 정병을 거느리고 육화진(六花陣)을 쳤는지라.
 
247
충국이 나아가 대질하기를,
 
248
“네 어떤 도적이기에 감히 중원을 범하여 백성을 요란케 구느냐? 바삐 나와 내 칼을 받으라.”
 
249
이정이 대질하기를,
 
250
“나는 이정 장군이라. 하늘이 우리 장원수를 내사, 날로 하여금 무도한 원제를 멸하고 도탄에 든 백성을 건지고자 하나니 빨리 나와 자웅(雌雄)을 결(結)하라.”
 
251
하고 맞아 싸워 십여 합에 이정이 돌아와 육정육갑(六丁六甲) 신장(伸張)을 벌려 진세(陣勢)를 웅장히 하고, 이정이 황금투구에 수은갑(水銀甲)을 입고 청총마(靑驄馬)를 탔으며, 장창(長槍)을 빗겨 들고 진전(陣前)의 나와 싸움을 돋우니, 원제(元帝) 대노하여 부장 남성으로 싸우라 하니, 남성이 정창(挺槍) 출마(出馬)하여, 교전 십 합에 이정의 칼 이는 곳에 남성의 머리 마하에 내려지는지라.
 
252
이정이 창끝에 꿰어 들고 좌충우돌하니, 원(元) 진중(陣中)에서 표기장군 충방이 남성이 죽음을 보고 대노하여 화극(畫戟)을 들고 내달아, 이정과 더불어 교전 칠십여 합에 불분(不分) 승부(勝負)이러니, 충방이 힘을 다하여 칼을 날려 이정의 가슴을 찌르니, 이정이 소소(小小)히 피하여 창을 들어 충방의 머리를 찔러 마하에 내려지는지라. 원진(元陣) 장졸이 황겁하여 싸울 마음이 없는지라.
 
253
이정이 의기양양하여 대호(大呼)하기를,
 
254
“나를 대적할 자가 있거든 빨리 나와 싸우라.”
 
255
하며 진전에서 횡행하더니 이윽고 호통소리 나며 한 장수가 내달아 대호하기를,
 
256
“나는 원국 대장 산호라. 오늘날 충방의 원수를 갚으리라.”
 
257
하고 내다르니, 이정이 웃으며 이르기를,
 
258
“어린 아이가 큰 말을 하니 가히 우습도다.”
 
259
하고 맞아 싸우더니 수합이 못하여 이정의 칼이 빛나며 산호의 머리 내려지는지라.
 
260
이정이 크게 외쳐 이르기를,
 
261
“원제는 무죄한 장수만 죽이지 말고 빨리 나와 항복하라.”
 
262
하니 원 황제 대노하여, 즉시 대원수 한충국을 불러 이르기를,
 
263
“이제 적세 강성하여 명장 사인(四人)이 죽은지라. 어찌 분하지 아니하리오. 경이 한번 나아가 이정의 머리를 베어오면 천하를 반분(半分)하리라.”
 
264
충국이 답하기를,
 
265
“신의 재조가 박미(薄微)하오나, 오늘 싸움에 사장(四將)의 원수를 갚으리니, 폐하는 근심치 마소서.”
 
266
하고 엄신갑(掩身甲)에 황금 투구를 쓰고 철리(鐵利) 대완마(大宛馬)를 탔으며, 대도(大刀)를 들고 방포(放砲) 일성(一聲)으로 고함하고, 진문(陣門)에 나와 외치기를,
 
267
“필부(匹夫) 이정은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네 머리를 베어 황상(皇上)의 근심을 덜리라.”
 
268
하고 싸움을 재촉하니 이정이 대노하기를,
 
269
“네 무슨 재조가 있관데 감히 큰 말 하느냐?”
 
270
하고 맞아 싸워 삼십여 합에 이르매, 충국의 칼 쓰는 법이 점점 무광(無光)한지라. 황제 행여 실수할까 저어하여 쟁(錚)을 쳐 군(軍)을 거두니라.
 
271
이정이 따르고자 하나 날이 저문지라. 본진에 돌아와 장원수께 아뢰기를,
 
272
“명일 싸움에는 당당히 충국을 베어 오리이다.”
 
273
하니 원수가 이르기를,
 
274
“충국은 범상(凡常)한 장수가 아니니 삼가고 경적(輕敵)하지 말라 하고, 각 진에 절영(絶影)하여 밤에 잠을 돌려 자게 하였더니,
 
 
275
밤이 깊은 후에, 충국의 아우 충철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만히 이르러 군사를 무수히 죽이거늘, 백운현이 벽력(霹靂) 같은 소리를 지르며, 충철 맞아 엄살(掩殺)하니 뇌고(雷鼓) 함성(喊聲)이 천지진동하더라. 이정이 분노하여 말을 타고 내달아 싸울새, 일 합에 충철을 베고 승승장구하여 원진에 충돌하니, 충국이 유문방 유경방을 거느리고 맞아 싸워 오십여 합에 이르매, 이정의 칼이 이는 곳에 양장(兩將)의 머리 추풍낙엽 같은지라
 
276
원진 장졸이 크게 황겁하여 싸우지 못하거늘, 원제 넋을 잃고 말을 못하다가 제장을 돌아보아 이르기를,
 
277
“짐의 군사가 백만이요, 장사가 천여 원이로되, 저 조그만 도적을 당하지 못하여, 예기(銳氣) 꺾이니, 누구를 믿고 사직(社稷)을 안보(安保)하리오.”
 
278
관부(官府) 중의 일인이 주하기를,
 
279
“신이 한번 나아가 장백과 이정의 머리 베어 천하를 평정하고, 폐하의 근심을 덜이이다.”
 
280
모두 보니 병마도총사 권행이라. 말에 올라 내다르며 대호하기를,
 
281
“네 조그만 도적이 감히 대국을 항거(抗拒)하고자 하느냐. 나의 칼이 사정이 없나니 목을 늘리어 내 칼을 받으라.”
 
282
하거늘 이정이 웃으며 이르기를,
 
283
“어린 강아지 맹호(猛虎)를 모름이로다.”
 
284
하고 싸울새 권행이 진언(眞言)을 염(念)하더니, 무수한 신병(神兵)이 달려들어 군사를 살해하니 이정이 위태한지라. 장원수가 그 거동을 보고 놀라 내달아 크게 호통하며 철장(鐵杖)을 들어 귀졸(鬼卒)을 끌어 버리고, 권횡과 맞아 싸워 칠십여 합에 이르매 ,뒤에는 이정이요 좌우는 백운단 삼형제라. 일시에 협공하니 주검이 뫼 같고 피 흘러 내가 되었더라. 권횡이 대적하지 못하여 내닫더니 장원수의 칼이 번듯하며 권횡의 머리 검광(劍光)을 좇아 떨어지니, 이정이 창끝에 꿰어 들고 좌우충돌하며 대호하기를,
 
285
“원제는 무죄한 장졸만 죽이지 말고 빨리 나와 항복하라.”
 
286
하니 원제 황황망조하여 아무리 할 줄 모르고, 약간 남은 군사 거두어 진(陣) 치고 나오지 아니하더니, 중서령 최감이 주하기를,
 
287
“난데없는 적병이 황성의 들어와 위(位)를 앗으며, 십만 병을 거느려 이곳으로 온다 하니 폐하가 그 적군을 어찌 감당하리잇고. 차라리 장백에게 항복하여 목숨을 보전한만 같지 못하도소이다.”
 
288
원제 이 말을 들으매, 혼백(魂魄)이 비월(飛越)하여 아무 말도 못하다가 통곡하기를,
 
289
“짐이 박덕(薄德)하므로 종사(宗社)를 보전하지 못하니, 하늘이 망하게 하심이라.”
 
290
하고 옥새(玉璽)를 봉(封)하여 목에 걸고 연주 거리에 항복하니, 장원수가 옥새를 가지고 원제를 꾸짖어 이르기를,
 
291
“그대 포학(暴虐)하여 국정을 다스리지 못하매, 어찌 하늘이 무심하리오. 이러므로 그 죄를 면치 못하리니 마땅히 저자에 버릴 것이로되, 십분(十分) 안치(安置)하고 안평공으로 봉(封)하노라.”
 
292
하고 함께 좌(座)를 정하여 말씀하고 대연 배설하여 삼군을 상사하며, 백성을 안무하고 장안으로 향하고자 하더라.
 
 
293
각설 주원수가 계양을 파하고 군사를 얻으매 삼십만 병이라. 바로 장안을 향하매 지나는 곳에 대적할 이 없고, 길을 열어 영접하니, 물밀듯 남경 십여 성을 항복받고 예주(禮州)의 이르러 군사 쉬게 하더니
 
294
문득 들으니 연주 땅에 적병이 강성하매, 원황제 친정하고 황성이 비었다 하거늘, 주원수가 대희하여 급히 군사를 모라 장안으로 들어가니, 성중 백성이 다 피란(避亂)하고 흔드는 자가 없더라. 일 합에 연평덕을 죽이고 궁중의 들어가, 황후(皇后)와 비빈(妃嬪)을 잡아 참하고, 미녀(美女) 옥백(玉帛)을 추호도 범치 아니하며, 먼저 군마(軍馬)를 짓치고 방을 붙여 백성을 안무하고, 대사인(待士引)하니 허다한 장졸을 모으고 크게 잔치하며 연주 도적 파할 묘책을 의논하니,
 
295
제장이 고하기를,
 
296
“소장 등이 주장(朱將)을 좇아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풍진(風塵) 중에 고초를 헤아리지 아니하여 이곳의 들어옴은 원수가 대업을 이룬 후에 봉작(封爵)을 바람이더니, 이제 원수가 먼저 장안의 들어오사, 벌써 덕택(德澤)이 사방의 미쳤으니, 백성이 낙업(樂業)하니 마땅히 황제(皇帝) 위(位)에 나아가사 천하를 평정케 하소서.”
 
297
원수가 옳이 여겨 대위(大位)에 직(職)하니, 이때는 무신(戊申) 추구월 갑자(甲子)일이라. 모든 신하 일시의 무릎을 꿇어 만세를 부르고 국호(國號)를 대명(大明)이라 하며 연호를 홍무(洪武)라 하다.
 
298
상(上)이 황국전에 어좌(御座)하시고, 제신의 벼슬을 돋우실새, 유기로 좌승상을 삼고 유문정으로 병부상서를 삼으며, 기여(其餘) 장졸은 차례로 봉작을 하시고, 대연을 배설하여 즐기느라.
 
 
299
승상 유기 주하기를,
 
300
“연주 병(兵)이 원제의 항복받고 옥새를 가졌으니, 이제는 족히 근심할 바가 없거니와 필연 장백이 분한 마음이 대발(大發)하여 죽기로써 싸우리니, 급히 정병을 발하여 잔병(殘兵)을 소멸하고 대보(大寶)를 찾으소서.”
 
301
상이 옳게 여겨 유문정으로 정병 백만을 거느려 연주 병을 파하라 하시니 문정이 봉명(奉命)하고 즉일 발행(發行)하니라.
 
302
예부상서 호전이 주하기를,
 
303
“폐하 천명을 받자와 만승지위(萬乘之位)에 거(居)하오시니, 천하 백성이 막불(莫不) 흠탄(欽歎)이오나, 다만 내전(內殿)이 공허(空虛)하오니, 복망(伏望) 폐하는 황후를 간택(揀擇)하사 백성의 바람을 저버리지 마소서.”
 
304
상이 우연(憂然)하여 탄식하기를,
 
305
“짐이 당초(當初) 사방으로 유리(流離)할 때에, 우연히 대성사에서 한 소저를 만나니, 이는 능주 장승상의 여아라. 인물이 비범하기로 일후(日後) 찾을 언약을 정한지라. 이제 그 소저를 찾아 황후를 봉함이 좋을까 하노라.”
 
306
하고 예관(禮冠)을 명하여 위의(威儀)를 갖추고 서간을 닦아 장소저에게 보내니라.
 
 
307
각설 장소저가 이부(李府)에 있어 일신은 안한(安閑)하나, 주야 장백을 생각하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으매 부인이 매양 위로하여 세월을 보내더니, 계양 땅에 적병이 일어남을 듣고, 당초 주생(朱生)이 이르던 말을 생각하매, 필연 그 사람이 기군(起軍)한가 하고 기약과 같이 찾기를 기다리나, 풍진이 요란하므로 내사(來事)를 알지 못하여 천애(天愛)만 바라고 광음을 보내더니, 일일은 밖에 들리는 소리 나며 이부인이 급히 들어와 소저를 보고 황제의 서간이 이르렀다 하거늘, 소저가 의아하여 돌아보지 아니하더니, 문득 부러진 봉채(鳳釵)를 보매 자기 신물인 줄 알고 펴보니, 하였으되,
 
308
“대명 황제 주원장은 삼가 글월을 닦아 장소저 좌하(座下)의 올리나니 하늘이 사람을 내시매 다 각기 임자 있는지라. 짐이 본디 조선 사람으로 미천함을 면치 못하여 혈혈단신으로 사방을 유리하다가, 우연히 대성사에서 소저를 만나 창졸(倉卒)간의 봉채를 꺾어 언약을 정하니, 소저의 천금(天金) 지보(至寶)로써 짐의 추루(醜陋)함을 꺼리지 아니하고, 언약을 허하시니 은혜 망극한지라. 서로 이별한 후로 자연 구할 사람을 만나 먼저 계양에서 기군하여 계양을 항복 받고 지나는 곳마다 망풍귀순(望風歸順)하니 정병이 백 만이요, 대갑(大甲)이 수십 만이라. 한번 북을 쳐 남경 칠십여 성을 항복 받으니 이름이 사해에 진동하매, 순식간에 장안(長安)에 들어오매 조정(朝庭)을 전하므로 천자 위에 직하였으니, 다만 옥새를 찾지 못하고 겸하여 내전이 공허하였으니, 만일 언약을 저버리지 않을진대, 이부인을 모시고 황성으로 돌아옴을 바라노라.”
 
309
하였더라.
 
 
310
소저가 남필(覽畢)에 불승황공(不勝恍惚)하여 이부인을 모시고 황금연(黃金輦)에 올라 황성으로 향할새, 백만 대병이 전후에 옹위하고 쌍쌍이 시녀들이 좌우에 시위(侍位)하며, 예관은 뒤를 따르고 이원(吏員) 풍악은 원근에 사무치니, 관광(觀光)하는 자가 도로에 가득하더라.
 
311
행하여 궐내에 들어가니, 상이 곤룡포(衮龍袍)에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서로 초례를 마친 후에 좌(座)를 정하니, 황제의 쌍성(雙星) 곤룡포와 소저의 만보(萬寶) 명월패(明月牌)로 어찌 대성사 법당에서 만남을 비기리오. 일변 별궁을 정하여 이부인을 머무르게 하고, 만조백관을 모아 황후 봉하는 진하(進賀)을 마치매, 걸인 삼백여 명을 각각 봉작하니라.
 
 
312
재설(再說) 장원수 황성 잃음을 분노하여 바로 장안을 짓밟아 치고자 하더니, 벌써 주원수가 대명 황제라 하고, 정병 백만을 보내어 연주로 나려온다 하거늘, 원수가 대노하여 이정을 부장 삼아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陣)을 치고, 명진(明陣)을 기다리더니, 오래지 아니하여 명진이 이르러 싸움을 돋우니 이정이 분노하여 대질하기를,
 
313
“우리 의병을 일으켜 무도한 원제의 항복을 받고 옥새를 받았으니, 이는 하늘이 주심이거늘, 너희는 어떤 무리관데 부질없이 천위(天位)에 항거하니, 죽기를 재촉하거든 빨리 나와 내 칼을 받으라.”
 
314
하고 내달으니 병부상서 유문성이 대노하여 꾸짖어 이르기를,
 
315
“우리 황상이 천시(天時)에 응하여 의병을 일으키매, 남경 칠십여 성을 항복받고 먼저 장안의 들어와 백성을 안무하고 인심을 진정하였으니, 이른바 선입성(先入城) 만중(萬重)이라. 네 아무리 옥새를 취하였으나, 반드시 진천자(眞天子)께 드려 공명을 얻을 것이거늘, 네 당돌한 마음으로 천병(天兵)에 항거하니 어찌 천도가 무심하리오.”
 
316
하고 맞아 싸워 십여 합에 이르매, 백운현이 문정의 탄 말을 찔러 엎지르니 유문정은 만부부당지용(萬夫不當之勇)이라. 마상(馬上)에서 몸을 날려 뛰어 달아나거늘, 백운현이 말을 달려 급히 따르니, 명진 중에서 일원대장이 급히 나오며 이르기를,
 
317
“적장은 나의 형을 해치 말라.”
 
318
하고 달려드니 이는 유문정의 아우 유문경이라. 백운현을 맞아 이십여 합을 싸우되 승부가 없더니, 백운현이 한 소리를 지르고 유문경을 찔러 마하에 내리치니, 유문정이 그 아우 죽는 양을 보고 분노하여, 선봉장 홍용의 말을 앗아 타고 바로 백운현을 취하니, 백운현이 맞아 싸워 칠십여 합에 불분(不分) 승부(勝負)이러니,
 
319
유문정의 형 유방이 장대(將臺)에서 양진(兩陣) 승패를 보다가, 유문경의 죽는 양을 보고 분노한 중에 유문정이 또한 위태한지라. 즉시 좌장군 유문타와 총독 이경덕에 명하여 백운현과 더불어 삼십여 합을 싸우더니, 유문정의 칼이 빛나며 백운현 머리 마하에 나려지거늘, 백운선이 제 아우 죽는 양을 보고 통곡하며, 형제 일시의 내달아 싸워 오십여 합에 유문정이 말을 돌이켜 본진으로 돌아가거늘,
 
320
백운단 형제 더욱 분노하여 말을 채쳐 명진으로 들어가니, 유문정은 간 데 없고 팔문금쇄진을 쳤으니, 굳기가 철통같아 능히 헤칠 길이 없는지라. 두루 방황하더니 문득 생문(生門)을 찾아 들어가며, 좌충우돌하되 유문정을 보지 못하더니, 홀연 일성포향에 일원대장이 팔 척 장검을 들고 내달으니 이는 선봉장 홍용이라. 백운단 맞아 싸워 삼합이 못하여 백운단이 대갈(大喝) 일성(一聲)에 홍용을 베어 내리치고, 백운단의 형세 승승장구하여 짓쳐 들어가며, 연하여 두 장수를 베니, 명진 장대에서 방포일성의 함성이 대진하며 난데없는 급한 비와 모진 바람이 일어나 비사주석(飛沙走石)하는지라. 백운단 등이 정신이 아득하여 아무리 할 줄을 모르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이하기를,
 
321
“우리 삼형제 이곳에서 죽으리로다.”
 
322
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생문을 찾더니,
 
323
차시 장원수가 장대에서 보다가 백운단 등이 위태함을 알고, 급히 이연횡 이정 등을 불러 철기 삼천을 거느리고 백운단을 급히 구하라 하니, 이장(二將)이 말에 올라 명진으로 향할새, 아장(亞將) 신기로 뒤를 따르라 하고 일시에 명진에 충돌하니, 풍우(風雨) 대작(大作)하여 백운단 등을 보지 못하는지라.
 
324
장원수가 쉬 그 뒤를 따르며 진언을 염하고, 풍백(風伯)을 호령하여 들어가니, 문득 일기(日氣) 명랑(明朗)하여 사변(四邊)을 분간(分揀)하는지라. 즉시 백운단을 찾아 합병(合兵)하여 명진을 짓치니, 명진 장졸이 황급하여 항오(行伍)를 차리지 못하고 사면으로 달아나니, 이정이 승승장구하여 연하여 십여 장(將)을 베고, 신기 또한 대군을 몰아 엄살(掩殺)하니 명진이 싸울 장수가 적고 서로 짓밞아 죽는 자가 무수하더라.
 
325
유문정이 정신을 차례 사졸(士卒)을 점고(點考)하니 다만 삼천여 병이라. 군사가 많이 죽고 패함을 근심하여 탄식하기를,
 
326
“적세 강성하여 위태함이 조석의 있으니 이를 장차 어찌 하리오.”
 
327
하고 표를 닦아 구완함을 주달(奏達)하니라.
 
 
328
차시 명황제 유문정을 보내시고 날로 첩서를 기다리시더니, 문득 표를 보시고 대경하사, 즉시 승상 유기로 대원수를 내리시고 철기 백만을 조발하여 유문정을 도우라 하시니, 유원수가 하직하고 군사를 거느려 유문정의 진의 이르니 유문정이 반겨 적세 강성함을 이르고, 장백 잡기를 의논할새 유기가 유문정에게 이르기를,
 
329
“이제 적병이 강성하여 졸연(猝然)이 파하기 어려우니, 차야(此夜)에 적병이 잠들기를 기다려, 그대 삼만 병을 거느려 적진 우편을 치고, 이덕요로 삼만 병 거느려 적진 좌편을 치고, 나는 삼만 병 거느려 전면 치면, 제 비록 용맹하나 어찌 당하리오.”
 
330
하고 약속을 정하고 밤을 기다려 방포일성으로 사면을 엄살하니, 적장(敵將)이 불의지변(不意之變)을 만나매, 장원수가 대경하여 급히 이정을 불러 이르기를,
 
331
“아까 천문(天文)을 보니 승상의 주성이 살기를 띠어 방위(方位)를 떠났으매 적병이 올 줄을 알되, 어찌 이 같으리오.”
 
332
하고 풍백을 불러 호령하니 풍위 대작하며 벽력이 진동하니, 명진이 돌이켜 황급하여 본진으로 돌아올새, 유원수가 이장(二將)을 거느리고 짓쳐 들어가니 백운단이 맞아 싸워 십 합이 못하여 백운단이 이덕요를 베니, 유기 대노하여 바로 백운단을 취하니 이정이 앞을 막아 유기를 치니, 유기 당하지 못하여 본진으로 돌아오니, 장백 이정 등이 일시에 엄살하며, 유문정을 생금(生擒)하여 가거늘, 유기 급히 본진으로 돌아와 찰주(札駐)하니라. 장백이 유문정을 잡고 대희하여 못내 즐기더라.
 
333
장백이 장중(帳中)에서 졸더니, 사몽(思夢) 간에 천관도사가 이르러 이르기를,
 
334
“너에게 이른 말을 어찌 잊었느뇨. 천자는 곧 주씨(朱氏)이거늘, 네 비록 옥새를 얻었으나 물망(物望)이 네게 있지 아니하거늘, 공연히 민심만 소동케 하니 어찌 해를 면하리오. 하물며 황후는 너의 누이라. 골육상쟁(骨肉相爭)함을 알지 못하니 어찌 한심치 아니리오.”
 
335
하고 간 데 없는지라. 원수가 그 말을 듣고 심히 괴이 여겨 생각하되,
 
336
‘내게 과연 자매 잇더니 도적에게 잡히어 갔다가 욕을 볼까 하여 소상강의 익사한 지 벌써 십 년이라. 이따금 생각하여 사후(死後) 만남을 원하더니, 이제 선생의 가르치심이 약차(若此)하시니, 실로 괴이하도다.’
 
337
하고 군중에 하령하여 군사를 쉬게 하고, 유문정을 잡아들여 서안(書案)을 치며 대질하기를,
 
338
“내 벌써 원황제를 잡아 항복받고 옥새를 가졌거늘, 네 거짓 황제를 내고 천병(天兵)에 항거하니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
 
339
유문정이 노하여 질(叱)하기를,
 
340
“우리 황상이 성신문무(聖神文武)하사, 먼저 장안에 들어와 추호도 범하지 않으시고 대위에 오르시며, 벌써 국호를 정하시고 장씨를 취하여 황후를 봉하시니, 굳음이 반석(盤石) 같거늘, 너는 부절없는 군사를 일으켜 만대에 더러운 사람이 되고자 하느냐. 빨리 죽이지 무슨 말을 하느뇨?”
 
341
장원수가 대노하여 즉시 죽이고자 하나, 황후 장씨란 말을 듣고 선생의 말을 생각하며 노(怒)를 그치고 아직 진중에 두니라.
 
 
342
재설 유원수가 유문정을 잡혀 보내고, 분기가 대발한 가운데 사졸이 태반이나 죽고, 장수가 많이 죽음을 크게 근심하여, 만일 황제 친정(親征)하지 아니시면 졸연(猝然)히 파(破)하기 어려운지라. 즉시 표를 올려 친정하심을 주하니, 상이 표를 보시고 대경하사 만조백관을 모으시고 친정하심을 의논하시며 크게 병을 조발하여 택일 출사하실새, 정동장군 임충우로 도성을 지키오고, 황후에게 그 사이 안보(安保)함을 일컬으며 이르기를,
 
343
“이제 장백 도적을 파하지 못하면 천하가 흉흉하니, 어느 때에 민심을 정(靖)하리오. 이러므로 짐이 친정코자 하여 오늘 전장(戰場)에 나아가니, 모름지기 황후는 보중(保重)하소서.”
 
344
하니 황후 청파(聽罷)에 장백이란 말을 듣고, 성명이 익음을 의심하여 아뢰기를,
 
345
“신첩(臣妾)이 도적에게 잡힐 때에 중로에서 잃고 사생을 알지 못하더니, 이제 장백이라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심히 반갑도소이다.”
 
346
상이 이 말을 들으시고 심하(心下)의 자세하지 못함을 일러 이르기를,
 
347
“천하에 어찌 동성명(同姓名)자가 없으리있고?”
 
348
황후 눈물을 흘려 이르기를,
 
349
“장백의 지위(地位)를 알지 못하니 자세히 알고자 할진대 비록 조정의 웃음이 되나, 첩이 한번 전장의 나아가 그 얼굴을 보면 자연 짐작하오리니, 폐하는 윤허하소서.”
 
350
상이 황후의 비감(悲感)하여함을 보시고, 만류(挽留)치 못하사, 후군장 위령으로 황후를 모시게 하고, 상이 스스로 대원수가 되어 철기 백만을 거느리고 행군하여 광릉성 하(下)에 다다르니, 유기 나와 맞아 성중의 모시고 복지(伏地) 주하기를,
 
351
“적장 장백은 만부부당지용(萬夫不當之勇)이 있사오매, 당할 장수가 없사와 표주(表奏)하였사오나, 이제 폐하 친정하오시니 장백을 어찌 근심하리있고.”
 
352
상이 가로되,
 
353
“전장의 승부는 예사니, 어찌 승상의 허물이 있으리오마는, 이제 황후 친행함은 적장의 성명을 의심하여 그 동정을 알고자 함이니, 경은 무슨 계교로 장백을 가까이 유인하리오.”
 
354
유기 양구(良久) 후 이르기를,
 
355
“한패공(漢沛公)이 항우(項羽)와 쟁봉(爭鋒)할 제, 홍문연(鴻門宴)을 베풀고 영웅이 구름 모이듯 한 중에 항장(項將)의 칼이 속절없으니, 일로 보건데 두려울 바가 없거이와, 이제 성중에 잔치를 배설하고 장백을 청하면 반드시 염려 없사오리니, 그 얼굴 보와 그 사람 아니거든 급히 병을 매복하였다가 치면 당당히 패하리니, 복망 폐하는 이를 행하소서.”
 
356
상이 옳이 여기사 즉시 격서를 닦아 장백에게 보내니라.
 
 
357
차시 장원수가 유문정을 진중에 가두고 도사의 말을 생각하여 안병(按兵) 부동(不動)하고 마음이 번뇌하더니, 문득 명제(明帝)가 친히 내려옴을 듣고 분기 대발하여 군사를 발하고자 하더니, 명진에서 격서가 이르거늘 떼어보니, 하였으되,
 
358
“승상 유기는 글월을 장원수께 전하느니, 우리가 남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장군은 서쪽에서 기군(起軍)하매, 천하가 명장을 좇기를 원하는지라. 무도한 원제를 내치고 창업(創業)하고자 함은 피차 일반이나 하늘이 먼저 진천자를 되시게 하였으니, 실로 임자 있음을 알거니와 금(今) 황제 먼저 장안을 얻으시니 그 공이 크고, 장군은 옥새를 취하였으니 또한 큰 공이라. 이러므로 황제 대의(大義)을 생각하시고, 이곳의 대연 배설하여 모든 장졸로 그 공을 표(表)하고자 하느니, 장군이 만일 혐의(嫌疑)치 않을진대 한번 이르러 즐김이 어떠하뇨?”
 
359
장원수가 남필(覽畢)에 제장과 의논하기를,
 
360
“명진에서 잔치를 배설하고 나를 청하니 무슨 흉계 있음을 알지 못하나, 아니 가면 약함을 보임이라. 그러나 어찌 저함을 두리리오.”
 
361
이정으로 군사를 거느려 뒤를 따르라 하고, 명진에 이르니 유기 진문을 크게 열고 장원수가 맞아 들어가니, 양진(兩陣)이 상합(相合)하매 살기(殺氣) 충천하더라. 명제 맞아 동서로 분좌(分座)하니라.
 
 
362
차시 황후 주렴 사이로 자세히 보니 과연 장백이나, 신수(身手)가 건장하여 어려서 보든 모습이 변하였으나 성음(聲音)이 익은지라. 반가운 중 눈물 남을 깨닫지 못하더니, 홀연 대풍이 일어나 주렴을 거듭 치니, 장백이 술잔을 받다가 눈결에 황후를 보고 그 얼굴이 자매와 같음을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거늘, 명제 그 연고를 물으니, 장백이 탄식하여 이르기를,
 
363
“우리 서로 적국 되어 천하를 다투매, 사정을 이를 바가 아니로되, 소장이 어려서 쌍친(雙親)을 여의고 남매 의지하여 지내더니, 동리 노고(老姑)의 흉계의 빠져 외가로 가더니, 중노에서 도적 만나 자매를 잃으매, 그 때 소장이 연유(年幼)함으로 따르지 못하고 망극한 중 집의 돌아와 살기를 원치 아니하더니, 세월이 여류하여 지우금(至于今) 목숨을 보전하나, 매양 자매를 생각하면 설워하더니, 아까 대풍(大風)에 주렴 중 부인을 보매 자매와 방불하기로 자연 비창(悲愴)하도소이다.”
 
364
상의 미답(未答)에 황후 이 말 듣고 좌우를 물리치고, 급히 나와 장백의 손잡고 방성대곡(放聲 大哭)하며 오래도록 말을 못하다가 정신 차려 이르기를,
 
365
“네가 내 동생 장백이냐. 그 사이 죽었더냐, 살았더냐? 그때 도적에게 잡히어 갈 때에 중노에서 너를 잃고 어찌 할 줄 모르더라.”
 
366
소상강 원혼을 면하고 자연 구하는 사람을 만나 부지(扶持)하던 말이며 전후사를 이르니, 장백이 슬퍼하며 희한히 살아나 이처럼 만남을 신기히 여기고 즉시 계하(階下)에 내려 복지하며 옥새를 올려 이르기를,
 
367
“신의 누의 죽은 줄로 슬퍼하였더니, 창천(蒼天)의 위하심을 입어 목숨을 부지하였으니, 상이 그 고단(孤單)함을 혐의(嫌疑)치 아니하고, 황후를 삼으시니 은혜 망극하온지라. 수삼 인 간교(奸巧)에 민심을 요란케 하오니, 만사무석(萬死無惜)이온지라. 복망 폐하는 진을 거두어 환궁하심을 바라나이다.”
 
368
상이 장원수의 돈수(敦壽) 사죄하고 옥새 올림을 보시고, 환희하사 위로하여 이르기를,
 
369
“짐이 누대(累代) 포의(布衣)로 제업을 이루었으니, 경이 아니면 어찌 이에 이르리오.”
 
370
하시고 즉시 군을 거두어 황후와 함께 장안의 돌아와 만조를 모으시고, 대연을 배설하여 즐기시며 모든 장졸의 공을 돋울새, 장백으로 안남왕에 내리시고 이정으로 제림 후를 내리시며, 유기로 초왕에 내리시고, 백운현으로 청주 자사를 내리시고, 이연횡으로 연평후를 봉하시고, 기여(其餘)는 차차 봉작하시며 군졸을 각각 후상(厚賞)하시니 환성이 진동하더라.
 
 
371
안남왕이 사은하고 본국으로 나가실새, 왕이 본디 취처(娶妻)치 못한지라. 이때 이부상서 소준철의 여아가 현숙(賢淑)함을 듣고, 상과 황후가 주장(主掌)하여 안남왕과 성혼하니 왕의 선풍도골(仙風道骨)과 왕비의 요조(窈窕)숙덕(淑德)이 차등이 없더라. 상이 칭찬하시고 안남으로 내려감을 재촉하시니 왕이 떠남을 결연(訣宴)하더라.
 
372
왕이 하직하고 떠나 능주에 이르러, 선산의 소분(掃墳)하고 사명산의 들어가 선생께 뵈려 하더니, 그 집도 없는지라. 방황할 즈음에 한 목동이 이르기를,
 
373
“그때 선생은 이 산 신령이라. 수고롭게 찾지 말라.”
 
374
하고 간 데 없거늘 왕이 신기히 여겨 산상(山上)을 향하여 무수히 사례하고 돌아갈새, 청주의 이르러 상고(商賈)하는 왕평과 노고를 잡아드려 문죄(問罪)할새, 왕평을 자처(自處)하여 후일을 징계(懲誡)하고, 노고는 엄형(嚴刑) 정배(定配)한 후, 왕과 비 안남국에 돌아가 정사를 다스리니 시화세풍(時和歲豐) 하며 백성이 격양(擊壤)하니 요순(堯舜)일월(日月)을 다시 본 듯하더라.
 
375
왕이 삼자 이녀를 두었으니 부풍모습(父風母習)하여 개개(箇箇) 영준(英俊)이라. 장자로 세자(世子)를 봉하고, 여자(餘子)는 각각 군(君)을 봉하고 이여(二女)는 부마를 얻어 무강(無疆)한 복을 누리니, 천고(千古) 희한한 일이기로 대강 기록하여 유전(留傳)하노라.
【원문】장백전 (張伯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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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백전 (張伯傳)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