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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星巖[성암]의 길 ◈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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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김동인
목   차
[숨기기]
 

1. 1

 

1.1. 1.1

 
3
“내 강태공 아니어늘, 고기는 어째서 미끼만 따 먹는고.”
 
4
미끼를 떼인 낚시에 다시 미끼를 꿰었다. 낚시를 다시 시내에 던졌다.
 
5
“자, 용왕님. 방치만한 고기, 홍두깨만한 고기 모두 몰아보내 주시우. 용왕님께 찬시(讃詩)를 올리리다.”
 
6
미소하면서 중얼거렸다.
 
7
그러나 낚시를 일단 물에 던진 뒤에는 그의 주의는 낚시 위에 멎어 있지 않았다.
 
8
시내 건너는 일면이 밭이었다. 한창 자라나는 밀 보리는 춘풍에 물결치고 있다. 일록일청으로.
 
9
눈은 거기 붓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눈만 그리로 붓고 있는 다름이었다.
 
10
그의 머리는 지금껏 생각하고 있던 공상 위에 헤매는 것이었다.
 
11
그(성암)가 그 새 경도 등지로 방랑의 길을 더듬다가 집에 돌아오매 그의 아우가 어느덧 안해맞이를 하고 있었다.
 
12
아우의 나이 벌써 스물아홉이매 안해맞이를 한 것이 무엇이 이상하랴마는, 아직껏 성암이 아우에게 안해맞기를 권고할 때마다,
 
13
“형님이 먼저 가셔야지 어찌 동생이 먼저 장가들리까.”
 
14
하여 거부하여 오던 것이어늘, 이번 방랑에서 돌아오매 집안에는 ‘계수’라 하는 한 여성이 새로 생겨 집안으로 하여금 새로운 생기를 보이게 한다.
 
15
부모를 일찍 여의기 때문에 홀아비 살림이 냉락하고, 쓸쓸하던 집안은 계수라는 한 젊은 여성이 생긴 덕으로 아주 호젓하고 화기있는 집안으로 변하였다.
 
16
아우 내외의 의좋은 모양을 보매 방랑성을 다분히 가지고 있는 성암도 약간 비위 동하지 않는 배 아니었다.
 
17
“안해라는 게 그렇게 좋은 것인가.”
 
18
돌아보고 회상해 보면 과연 지금껏의 생애는 과히 냉락하였다.
 
19
방랑을 즐겨하는 그가, 천하를 방랑하다가 그래도 자기의 난 집, 자란 집이라고 고향을 찾아오면 역시 홀아비 동생이 그를 맞고, 냉락한 베개가 피곤한 그의 머리를 고여 주는 뿐이었다.
 
20
이전에는 그것도 그저 당연하게만 생각되더니, 지금 눈앞에(총각을 면한) 동생의 살림을 보매, 지금껏 당연한 일이라고 보던 것이 모두 부자연하고 더욱 쓸쓸하게 보였다.
 
21
“나두 안해맞이를 할까.”
 
22
서른두 살이었다.
 
23
너무 늙은 총각이었다.
 
 

1.2. 1.2

 
25
“오빠. 낚시질하세요?”
 
26
공상에 잠겼던 성암의 고막을 두드리는 이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그의 육촌 누이 경자(景子)였다.
 
27
“에쿠쿠.”
 
28
바삐 낚싯대를 들어 보았다. 또 미끼만 잘린 낚시가 줄에 달려 올라왔다.
 
29
“강태공이 아니라 양태공, 고기 배만 불려 주누나. 경자 너 어디 가느냐.”
 
30
“언니한테 갔다가 ―.”
 
31
“언니란? 오, 오, 오. 그래 갔다가 어디루 가는 길이냐.”
 
32
경자의 언니란, 성암의 아우의 안해 ― 즉 성암 형제의 육촌 누이였다. 성암의 아우는 육촌 누이와 부부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33
“언니한테 댕겨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34
“집으로 가지요.”
 
35
“집으루? 이렇게 시냇가까지 돌림길을 해서?”
 
36
경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약간 얼굴을 붉히며 외면하였다.
 
37
“야, 좌우간 여기 잠깐 앉아서 태공망의 낚시질이나 구경해라.”
 
38
“몇 마리나 잡으셨어요?”
 
39
“태공도 고기 잡는다디?”
 
40
성암은 경자를 위하여 약간 자리를 비켰다.
 
41
“에쿠. 네가 앉는데 땅이 쿵하니 울리는구나. 세월도 빨라라. 인젠 제법 색시 꼴이 났네. 언니는 시집갔는데 너 부럽겠구나.”
 
42
“망칙해. 오빠는 작은오빠 장가 드시는데 부러우세요?”
 
43
“암, 부럽지. 내가 부럽기에, 너도 부러울 줄 짐작이 가는 게 아니냐.”
 
44
“망…”
 
45
아마 ‘망칙해’를 또 말하려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뒤를 흐려 버렸다.
 
46
성암은 다시 낚시를 끌어당겨, 거기 또 미끼를 끼려 하였다. 그러나 경자가, 그것을 막았다.
 
47
“오빠두. 일껏 예까지 뵈려 오니까, 낚시질만. 난 몰라요.”
 
48
“오오. 일부러 나를 찾아왔더냐. 난 또 돌림길해서 집으로 간다기에….”
 
49
“오빠, 그래 수정 같은 시냇물 앞에 두고 너울거리는 보리밭 건너편에 펴시고, 어떤 노래를 얻으섰어요? 그 노래 들려 주세요.”
 
50
“노래는 하나도 못 얻었구나.”
 
51
“그럼 고기두 못 잡으시구 노래두 못 얻으시구 무얼 하셨어요?”
 
52
“아우놈 장가든 거 강짜만 하구 있었다.”
 
53
“망….”
 
54
또 ‘망’이었다.
 
55
“그럼 오빠두 장가드시면 되지 않아요.”
 
56
“그러니, 재산은 아우에게 죄 물려 주고, 한 푼 반 전 없는 ― 게다가 서른두 살의 늙은이에게 누가 오겠느냐.”
 
57
성암은 눈을 들었다.
 
58
머리를 약간 돌려 경자의 뺨을 보았다. 강바람에 깜티티하게 타기는 하였지만, 몹시 이지(理智)적이면서도 또한 정열적인 눈을, 흐르는 시내에 붓고 있는 이 열일곱의 소녀는 무슨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잠자코 있었다.
 
59
잠깐 그것을 바라보고 다시 눈을 앞으로 돌렸다. 서른두 살의 중로(中老) 답지 않은 정열이, 차차 그의 마음 한편 구석에 일려 하였다.
 
60
성암은 일단 놓았던 낚시를 다시 끌어당겨, 거기 미끼를 끼려는 조작을 시작하였다. 그것은 한 유다른 이야기를 꺼내려는 전제에 지나지 못하였다.
 
61
“야 경자야.”
 
62
“네?”
 
63
“네 어렸을 때 흔히 하던 말, 생각나느냐.”
 
64
“무에요?”
 
65
“있지 않느냐? 그 ―”
 
66
다시 반문하려다가 경자는 얼굴을 홱 돌려 버렸다.
 
67
경자 어렸을 때 하도 ‘에도’에 공부 가 있는 오빠(성암)가 그립고 훌륭해 보여서, ‘나 이다 ― ㅁ 에 오빠게루 시집갈 테야’ 늘 외던 것이었다.
 
68
“잊었느냐.”
 
69
“…”
 
70
혹은 인젠 생각이 달라졌느냐.”
 
71
“…”
 
72
“야 경자야, 아내 말을 들어 봐라. 내 나이 서른둘, 장가들기 싫어서 아직 총각으로 있는 것도 아니다. 들구 싶어. 들구 싶기는 하지만, 사실 마음에 맞는, 마음에 드는 색시를 아직 찾아 내지를 못했구나.”
 
73
경자는 눈을 들었다. ‘말’로가 아니고 ‘눈’으로 물었다.
 
74
“어떤 색시를 그렇게 어렵게 구하세요?”
 
75
“응? 말하자면, 영리하고 영특하고 슬기롭고 ― 게다가 이쁘고 마음씨 곱고 ― 또 정열 많고, 그 위에 시를 이해할 줄 알고 ―. 야 경자야, 꼭 너 같은 색시가 있어야 내가 총각을 면할 테로구나. 그러니 내 아우가 벌써, 네 언니를 안해로 맞아왔으니, 내 또 어찌 너를 안해로 달랄 수 있겠느냐.
 
76
가련한 양 선생 총각귀신을 면할 바이 없구나.”
 
77
농담 비슷이 자조(自嘲)비슷이 내어던지는 이 말에는, 그의 무한한 뜻과 무한한 희망이 암시되어 있는 것이었다.
 
78
경자는 묵묵히 아래만 굽어보고 있었다.
 
79
땅에는 개아미가 줄을 지어 무엇을 나르고 있었다.
 
80
잠시 그것을 굽어보다가 , 경자는 그냥 눈을 아래로 부은 채 말하였다.
 
81
“오빠. 안 잡히는 고기를 그냥 기다리실 테야요? 해도 차차 기울려는데….”
 
82
“글쎄, 집에 들어간댔자 쓸쓸한 다다미, 냉락한 방석 ― 아우 내외 부럽구 강짜만 나구 ― 원(鴛)은 있지만 앙(鴦)은 없고 봉(鳳)은 있지만 황(凰)은 없고 낙(駱)은 있지만 타(駝)는 없는 살림이니 왜 쓸쓸치 않으랴.”
 
83
홱 머리를 경자에게로 돌렸다. 뺀뺀히 깎은 중머리 아래 그의 눈이 빛을 내었다.
 
84
“아, 경자 너 타(駝)가 되지 않으련? 어렸을 때부터 늘 말하던 대로….”
 
 

1.3. 1.3

86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성암도 안해맞이를 하였다. 성암 나이 서른두 살. 그의 안해 경자는 열일곱이었다.
 
 
87
簾閣通明日漸高[염각통명일점고]
88
畫眉窓下笑櫻桃[화미창하소앵도]
89
一輪妝鏡何多事[일륜장경하다사]
90
更向潘郎管二毛[경향반란관이모]
91
(발을 드리운 다락에는 해가 높이 올랐고,
92
창안에서는 새색시 눈썹을 그리고 있는데,
93
한 개 거울은 바쁘기도 해라,
94
늙은 신랑의 흰 털 뽑는 데도 쓰여야겠구나)
 
95
스스로 자기의 늙음을 노래로 비웃으며, 서른두 살의 새서방은 어린 안해의 아리따운 자태를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96
그러나 새살림을 시작하고, 살림의 자리가 좀 잡히자 이 방랑성을 다분히 가진 시인의 마음에는, 차차 무럭무럭 또 방랑의 유혹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97
절기는 첫여름.
 
98
첫여름 훈풍에 벌에는 오곡 춤을 추고, 농촌의 길에는 말똥구리 말똥을 희롱하는 이 좋은 방랑절기에, 집안에 박혀 젊은 안해의 화장 구경이나 하며 있기는 약간 싫증도 났다.
 
99
“네(ネ), 홍란(紅蘭 ― 경자) 이 머리 봐. 흉허지?”
 
100
밴밴히 깎았던 머리를 결혼하려고 기르기 시작했다. 지금이 꼭 솔잎 머리였다.
 
101
“이 머리가 좀더 자라서 손질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아주 보기 흉할 테야. 늙은 것만 해도 젊은 안해 보기에 좀 어떤데 머리까지 이 꼴이니, 내 되지 않았어. 이 머리 자랄 동안, 한동안 어느 산골에 가서 숨어 있을까봐.
 
102
어떨까?”
 
103
이 말에 그의 어린 안해도 미소하였다.
 
104
“또 방랑 생각이 나신 모양이외다그려. 이 홍란보다 객주집 밥따르는 계집애가 더 그리우서요?”
 
105
“아니야, 아니래두 그런다. 그럴 리가 있나. 이 머리가 ―”
 
106
“머리는 괜찮아요. 제가 좋다는데 왜 그러세요.”
 
107
“그래두 젊은 색시에 늙은 중 ― 꼴이 안됐어. 내 사탕 엿, 많이 사다 주께. 나 없는 동안 당시선(唐詩選)이며 삼체시를 횅횅 따로 외고, 운(韻)도 더 잘 ―.”
 
108
“엿 엿 싫어요. 사탕 싫어요.”
 
109
“그럼 뭐나?”
 
110
“중 영감.”
 
111
“그 중 영감이 한동안 오작교 건너가 있다가, 머리 기른 새서방 돼서 돌아올께. 내 딸 귀여워라, 내 딸 착하지.”
 
112
성암에게는 벌의 매력, 산야의 매력은 막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어리고 아리따운 안해의 아양보다도, 산수의 부르는 소리, 창해의 외치는 소리가 더 고혹적이었다.
 
113
“이봐, 홍란. 은하수 가운데 두고, 견우직녀 서로 건너다보며 그리는 정경 더욱 아름다우느니. 그 정경 두고 나 없는 동안 늘 노래 일백 수만 지어 두어. 아아, 애처 홀로 집에 두고, 먼길 떠나자니, 오장이 끊어지는 듯하이.”
 
114
“누가 떠나시래요?”
 
115
“압다. 집 잘 보아 주게.”
 
116
며칠 뒤, 성암은 어린 안해의 간곡한 전별을 받으며, 또 방랑의 길을 떠났다.
 
117
소위, 깎은 머리 길기까지를 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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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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