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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5년 2월 창작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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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2.9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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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二月[2월] 創作評[창작평]
 
 
 

1. ‘描寫’[묘사]에의 沒理解[몰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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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花城[박화성][씨][작] 「理髮師[이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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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2월 5일- 지금까지에 발행된 2월호 잡지로 눈에 띄는 것이〈中央〉[중앙],〈新東亞〉[신동아],〈新家庭〉[신가정],〈朝鮮文壇〉[조선문단], 〈三千里〉[삼천리] 등이요,〈開闢〉[개벽]도 아직 2월호는 나지 않고 〈삼천리〉에는 신작이 없으니 중앙과 동아 계통의 두 잡지와 〈조선문단〉을 본 바로써 거기 발행된 소설을 토론할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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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신동아〉부터 보자면 계속물인 嚴興燮[엄흥섭] 씨의「苦悶」[고민]과 朴花城[박화성]씨의 「理髮師」[이발사] 全篇[전편]과 李無影[이무영] 씨의「山家」[산가] 全篇[전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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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서 먼저 박화성 씨의 「이발사」(〈신동아〉 2월호)를 보자면,
 
7
지금 조선 문단에서 중견 작가라고 지목을 받는 사람 가운데도 대개 ‘寫實’[사실]이라는 것을 ‘있는 대로 묘사한다’ 고 오인을 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이 작가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사실’ 의 진수까지 파악한다 하는 것은 좀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 개념뿐이라도 잡지 못하고 소설을 쓴다하는 것은 너무나 대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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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진수’ 라 하는 한 사람의 이발 직공이 나온다. 때는 섣달 대목인데 진수의 안해는 해산을 하였다. 진수라 하는 사람은 이 작자가 즐겨서 취급하는 소위 ‘운동자’ 였다. 그런데 그는 생활난에 밀려서 뜻아닌 이발 직공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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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진수가 어떤 날 주재소 주임의 머리를 잘못 깍기 때문에 주재소로 잡혀가는 것이 이 소설의 전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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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묘사’ 의 의의를 알지 못하는 이 작자는 이 전작을 통하여 한 군데도 엄밀한 의미의 문학상의 묘사를 보여 준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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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자가 ‘사실’ 이라고 독자에게 보여 준 것은 이발 의자에 걸터앉아서 부터 세면 후까지의 이발 과정을 차근차근히 독자에게 설명한 이발 강의 한군데뿐이다. 이발 과정을 순서 있게 적는 것이 이 소설의 최대 임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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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과 연락되는 감정- 감정과 연락되는 행동에 대해서는 한 군데도 묘사라고 볼 수 있는 필치를 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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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말미에 가서 주재소 주임과 진수와의 다툼에 있어서는 격분된 감정과 그 감정의 폭발 혹은 억압이 반드시 있어야 할 터인데 거기서까지도 작자는 이 극적 장면을 寫出[사출]하지를 못하였다. “여보, 댁이 경부라고 너무 과하게 세를 부리오그려” 하고 진수가 격분에 떨리는 소리로 말하자“뭣이 어째?” 하고 경부가 마에까께(まえかけ-앞치마)를 입은 채로 벌떡 일어섰다.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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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을 읽으면서도 독자는 사소도 그 기분을 감수치 못하는 것은 작자가 사실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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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안에 많은 소작인들이 모여서 서로 지주에게 대한 불평을 말하는 곳에서도 독자는 아무 의분도 느끼지 않고 지리하다는 감만 받는 것도 작자의 필력 부족이다. 더욱이 이 소설의 진행과 유기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는 ‘소작인의 대화’ 를 집어 넣은 것은 단지 소설의 효과를 減殺[감살]하는데 지나지 못할 것으로서 어떤 틀(이데올로기)에 붙잡혀 있는 작자들의 범하는 소설상의 과오가 여기 있다. 三思五思[삼사오사]하여도 소작인의 대화가 어떤 필요로 삽입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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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그 말미에서도 소설적으로든 사건적으로든 끝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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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 잘못 하였다고 순사에게 욕먹고 거기 반대하다가 주재소에 붙들려 갔다. -이것으로는 결코 소설의 테마가 되지 못할 것이다. 한 개 序曲[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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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자가 소설가로서 출발을 하려면 묘사라 하는 점과 소설 조성이라는 점에 많은 연구를 쌓아야 할 것이다.
 
 
 

2. ‘리얼’ 은 簡潔[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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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無影[이무영][씨][작] 「山家[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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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식과 찬사를 並發[병발]케 하는 작품으로 이 소설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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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있어서 서두 있는 ‘1’ 은 불필요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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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1’ 을 꼭 잡아 넣고 싶으면 ‘궁말’ 이라는 동리의 묘사에 그칠 것이지 ‘창건이’ 라는 청년의 묘사와 설명은 불필요한 것이다. 창건이라는 인물의 필요 이상의 설명이 나오기 때문에 독자는 먼저 항용 이 작가가 소설상에 올리는 ‘운동청년’ 이 나오는가고 질겁을 한다. 이 작가가 아직껏 소설상에 올린 소위 ‘운동청년’ 이란 것은 천편일률의 무기력 무정견한 인텔리겐챠로서 그런 무기력한 주인공을 작자는 언제든 또한 영웅화 지사화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모순에 모순을 거듭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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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있어서는 다행히 그 틀에 박힌 청년이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 ‘틀에 박힌 청년’ 인 창건이는 한 방관자 한 관찰자로 물러서고 ‘건강’ 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선다. 더구나 독자에게 기쁜 점은 그 방관자인 창건이가 이 소설에서 전개되는 사건에 대하여 주관적 비판을 가하지 않고 가볍게 모두 보아서 넘기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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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이의 눈앞에서 발생되는 여러 가지의 참담한 사건에 대하여 만약 창건이가 눈을 부릅뜨고 부르조아를 욕하고 자본주의를 저주하는 광경을 기입하였더면 이 소설의 효과는 10분의 1도 거두지 못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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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이가 촌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나무하러 올라갔다가 돌아올 때 창건이는 이 여러 아이들 가운데 조반 먹은 아이가 몇 사람이 못 된다는 점을 알고 깜짝 놀랄 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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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은 더 물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소낙비 설거질하듯 얼렁뚱땅해서 아이들을 끌고 집으로 내려왔다. 내려와서도 사무실 문을 꼭꼭 처닫고 앉아서 눈을 붓도록 혼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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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한 간단한 서술로써 처리하여 도리어 천만 어로 늘어 놓은 것보다 깊이 깊은 여유를 독자에게 주었다. ‘리얼’ 의 진수는 간결에 있는 것을 이 작자는 알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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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건강’ 이라는 인물이 前[전]반생을 왜 그렇게 신비화하였는지 이 소설을 위하여서는 그런 신비스런 과거를 가진 인물이 필요치 않다. 이 百害[백해]있고 一益[일익] 없는 신비 ‘호기심’ 이 이 작자 惡癖[악벽]으로서 그 때문에 버린 작품을 평자는 여러 개 기억한다. 첫째로 이 작자는 여기서 벗어 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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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디 그네들뿐이랴. 이 동리 사람은- 아니 이 세상의 남을 위해서 사는 모든 사람이 그런 길을 밟는 것이다.
 
 
31
이하의 수행 등의 작자의 소주관을 억지로 작중 인물에게 내려씌우려는 것으로서 이 작품의 대개가 범한 과오나, 용어에도 상당히 세련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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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고 멀리 계룡산 운운’ 이며 ‘값 비싸게 사 줄 만한 것이 없는 평범한 九穴山[구혈산] 운운’ 등의 직역식 문장을 벗겨 버릴 필요가 있으며 작중 인물의 자격에 적당치 못한 유식한 어휘 같은 것도 좀 삼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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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寫實’ [사실]의 요결은 파악하였다 하겠지만 아직도 제거해야 할 군더더기가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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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 작가에 대해서는 그간 너무도 진보가 더디므로 일단 낙망을 하였었는데 이제 비로소 단편의 진수를 잡은 듯한 이 작품을 보매 아직 불만한 數點[수점]이 있을지라도 매우 기쁜 일이다.
 
 
 

3. 有望[유망]한 新進[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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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朝奎[김조규][씨][작]「윤 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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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한 벌 갈아입을 것조차 변변치 않은 ‘윤 초시’ 라는 물장수가 어떤 사람의 심부름으로 순사부장의 집으로 꿩을 한 마리 보내러 갔다가 부장의 집 개에 옷을 찢기고 거기 분이 나서 돌멩이로 개를 때린 것이 원인이 되어 그 동리에서 물을 못 져 먹고 하릴없이 만주 이민에 끼여 고국을 떠난다는 것이 이 소설의 대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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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성 씨의「이발사」와 공통되는 점은 주인공이 순사의 부정당한 간섭- 권리 남용에 희생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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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윤 초시’ 가 ‘이발사’ 보다 승한 점은 박씨의 집에서는 ‘이발사’ 가 순사와 다툰 것은 ‘이발 기술’ 이라는 개인 문제거니와 윤 초시가 순사에게 욕본 것은 단벌 옷을 찢긴 즉 ‘생활 문제’ 라는 것이었고, ‘이발사’ 는 ‘운동자인 인텔리’ 인 반대로 ‘윤 초시’ 는 무식한 막벌이꾼이며 ‘이발사’는‘주재소에 붙들려 갔다’는 서곡으로 ‘完’ [완]이 된 대신 ‘윤 초시’는 생활을 잃고 만주로 밀려 나갔다는 대단원을 보여 주어서 훨씬 박씨의 것보다 무게를 더 보여 주었다. 그러나 신인의 작(추천작)이니만큼 전체의 흠집이 너무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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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등장 인물의 성격 선택을 그릇 한 것이 이 소설의 큰 결점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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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나타나는 윤 초시라는 인물이 너무도 능변하고 다변한 것은 이 소설의 효과를 반감하는 것이다. 이런 인물은 拙辯寡言者[졸변과언자]로 만든 뒤에야 비로소 비통한 대단원의 효과를 倍[배]케 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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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라는 사람의 성격은 너무 몽롱하였다. 다정한 여인인지 냉혹한 여인인지 소설에 있어서는 좌우양단간 한편으로 반드시 기울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윤 초시가 부장의 집 개와 싸우는 장면의 광경은(1인칭소설인이 소설에 있어서는) 부자연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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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 의 입을 통하여 ‘나’ 라는 ‘선생’ 에게 전말을 구전케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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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뿐 아니라 윤 초시를 불러 들여서 이야기하던 장면이든, ‘나’ 부처끼리 마주 앉은 장면이든, 모두 진실성를 띠지 못하였다. 이것은 묘사의 부족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45
이 소설에서 취한 점은 ‘소설 조성 기능’ 이다. 소설 진행상 필요없는 인물은 한 사람도 등장시키지 않은 점이며, 쓸데없는 ‘에피소드’ 를 넣지 않은 점이며 ‘종말’ 인 ‘클라이막스’ 를 향하여 일직선으로 진행시킨 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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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윤 초시가 주재소에 붙들려 간 다음 어떤 젊은 사람이 와서 자기가 인젠 윤 초시 대신으로 이 동리의 물을 긷는 사람이노라고 알게 하여, ‘윤 초시는 인젠 물장수 업(?)을 잃게 되었다’ 는 점을 암시적으로 나타낸 군데같은 데는 상당히 평가하여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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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방면(묘사며 성격 전개 등)에 대하여 얼마 더 연구하면 장래가 유망하다고 볼 수 있다.
 
 
 

4. 三嘆[삼탄]할 手法[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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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廉想涉[염상섭][씨][작]「그 女子[여자]의 運命[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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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운명」(염상섭 씨작, 〈중앙〉 2월호)이란 여인의 기구한 생애- 거기는 女高普[여고보] 삼학년까지 다니다가 생활을 위하여 여점원으로 다시 변하면서는 결혼 생활로, 결혼 생활의 찌꺼기로는 어린 것을 하나 낳고 남편을 잃고(금 밀수출을 하다가 발각되어 만주로 도망쳤다) 거기서 떨어지면서 카페 여급으로, 또 다시 재출발로 제2차 결혼, 또 제2아 출산- 이리하여 姓[성] 다른 두 아이의 어머니인 한 젊은 여인이 두 번째 남편을 잃은 뒤(그 남편은 사기횡령으로 징역하게 되었다)의 행로를 그린 것이 이 소설이다.
 
51
다각적으로 전개되어 나아가는 사건을 추호의 얽힘이 없이 조종하여 나아가는 것은 타인의 흉내냄을 불허하는 일 작가의 특기다. 제각기 다른 이해관계와 다른 감정과 다른 처지에 있는 수다한 인물을 지면상에 늘어 놓고 사소한 혼동 교착이 없이 부리는 기능은 이 작자에게서야 볼 수 있는 보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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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명례’ 라는 여주인공은 남편을 여럿 갈아 댄 여자며 성이 각기 다른 세 아이(또 하나 배었다)의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음탕하거나 간악한 여인이 아니라는 점을 一字[일자]도 직접 설명이 없이 독자에게 납득시킨 수단이라든가 명례가‘영식이’라는 대학생이요 富家道令[부가도령]에게 갖는 바 不離不即[불리부즉]의 감정 및 감옥에 있는 본남편에게 그냥 갖고 있는 애정을 부자연미 없이 갈라붙인 점 등은 삼탄할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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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보자면 때때로 부자연한 곳이 없지 않으나 이것을 모두 자연스럽게 꾸며 나아간 것도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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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있어서 결점이라고 본 것은 템포의 不同[부동]이다. 대체〈중앙〉잡지에서 원고 부탁하는 방법이 원고지 幾[기] 100매 내외의 중편소설이라 하니 그 매수 안에 일정한 기럭지의 내용을 잡아넣기는 지난의 일이다. 그것도 수십 매의 원고지라면 그 템포를 짐작도 할 수 있거니와 기백매라 하게 되면 템포 조절은 지난의 일이다. 그런지라 이 소설의 템포는 緩徐[완서]의 불규칙이 현저히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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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종결이 어떻게 된 셈인지 매우 모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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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례라는 여주인공이 어떤 경로서 상해를 받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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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사건과 관계는 없을 듯하나 경찰에서는 명례의 증상을 보아서 임상심문을 개시하기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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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고는‘끝’자도 달리지 않고 그 다음 페이지에 계속도 없이 끊어지고 말았으니 소설로 보아서 아직 미완인 이 소설이매 혹은 이것은 인쇄상의 착오로 생긴 것이 아닐까. 이 작자의 조선어 구사에 대하여는 다시 말할 것도 없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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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남편에 두 번 다 손˙ 을˙ 데˙ 이˙ 고˙ ’
 
60
등 직역식 문자도 그다지 어색치 않은 것에 도리어 머리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61
이 내용을 가지고 기럭지는 2배 되는 소설을 쓰게 하였더면 하는 생각이 난다. 이 작자의 필치와는 어울리지 않는‘성큼성큼 건너뛴 듯한 감’이 있는 대목을 볼 때마다 이 생각이 더 난다.
 
 
 

5. 統一[통일]을 잃은 作品[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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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沼葉氏[김소엽씨][작]「發村[발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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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엽 씨 작 「發村[발촌]」(〈조선문단〉2월)은 이무영 씨의「산가」와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장면을 넣어서 작 전체를 혼란케 하고 不調[부조]롭게 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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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여주인공인 점순이가 양조장에 모주을 사러 갔는데 양조장 작은주인이 점순이에게 까닭없이 호의를 보여 주었다. 그 호의를 점순이는‘호의는 호의대로 받아 두고 그 뒤 보수를 요구하면 거절하리라’이만한 마음으로 받아 두었다. 이 점만 해도 시골 순직한 처녀(이 처녀“계집애가 서울로 팔려갔대”하는 말도 무슨 뜻인지를 모를 만치 순직한 처녀다)가 마치 賣笑婦[매소부]적 奸智[간지]를 가졌다는 모순된 점을 독자에게 강제하려 하였거니와 더구나 그 점순이가 어떤 저녁 외따른 길에서 양조장 작은 기인 작은주인과 마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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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부터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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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운의, 도회의‘모던 보이’가‘모던 걸’에게나 할 고백을 듣고 작은주인 따귀를 때리고 달아났는데- 도대체 이 소설에 있어서는 작은주인의 등장이라는 것은 소설의 진전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으로서 전연 제거해야 할 것이다. 만약 꼭 작은주인이라는 인물을 집어 넣으려면 점순이가 작은주인의 따귀를 때리기 때문에 어떤 악착한 보수를 받았으냐 하는 후일담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이 소설의 전반은 작은주인의 따귀 한 대로 끝을 막고 후반은 전반과는 아무 유기적 관련이 없는 딴 이야기(단지 전반의 주인공인 점순이가 후반에서도 주인공 노릇을 했다는 이상은 아무 관련이 없는)로 채운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다. 통일이라는 점을 이 작자는 몰랐다.
 
68
매일 양조장에서 모주를 사다가 도야지를 치는 점순이가 양조장 작은주인의 따귀를 때린 다음에는 무엇으로 도야지를 길렀느냐, 작자는 여기 대해서 설명까지도 독자에게 하여줄 것을 잊었다. 농촌 계집애의 입에서,
 
 
69
“고맙다. 그렇지만 우리 같은 가난한 사람들은 결코 마음이 약해서는 안된다. 도리어 남보다 굳센 마음을 가져야지.”
 
 
70
운운의 마치 대학 출신자와 같은 말을 한다는 것도 우습거니와, 점순이가 계옥이의 마음을 떠보느라고 마치 선문답 같은 응답을 한참 하여 내려갔다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71
이 소설에서 취할 점은 작자가 조선 농촌 파멸에 대하여 가지는 그 동정이다. 어떤 집에는 서울로 갈보로 팔려 가고 어떤 무리는 만주로 밀려 나가고 점순이는 진남포로 精米工[정미공]으로 가게 되고- 이리하여 파멸하는 농촌을 그려 보려고 한 동정이다.
 
72
소설 구성의 방식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불필요한‘작은주인’의 에피소드를 넣으며 농촌 처녀답지 않은 부자연한 대화를 시키는 등 과오는 범했을 망정 차차 파멸되는 농촌의 실정을 그리는 데는 비교적 순서를 바로잡고 진전도 순조로왔다.
 
73
점순이가 정미공이 되려 진남포행 기선을 올라서 생각에 잠길 때,
 
74
‘갑자기 작은주인이 떠올랐다. 그 더러운 사내’
 
75
운운의 몇 줄도 필요없는 문자다.
 
76
글자의 낭비와 군더더기를 삼갈 것이다.
 
 
 

6. 稚作三四[치작삼사]

78
-「구질구질한 人生[인생], 崔仁俊[최인준][씨][작]
 
79
이 소설(〈朝鮮文壇〉[조선문단] 2월호)에 대해서는 잠시 평을 보류해 둘 밖에는 도리가 없다. 이러한 형식은 그 작자의 역량을 측량하기에는 너무나 연막이 깊어서 똑똑한 측정을 하기가 곤란하므로다.
 
80
다만 이 작가에게 경고할 것은 그 출발에 있어서 너무도 정로에서 벗어나면은 작가적 생활의 일생을 그르칠 염려가 있다는 점이다.
 
81
─「藝術盜賊」[예술도적], 李學仁[이학인][씨][작](〈朝鮮文壇〉[조선문단] 2월호)
 
82
먼저 작자의 양심을 의심케 하는 작품이다.
 
83
소학생에게 소설을 쓰라 할지라도 이 이하의 소설을 만들어 놓기가 매우 힘들 것이다.
 
84
어떤 문학청년이 소설을 구상키 위하여 장충단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순사에게 불심검문을 받고 그 순사에게“자기는 소설 구상을 하는 가난한 작가노라” 고 하니까 순사가 돈 1원을 그에게 준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한 이 소설은 자초지종으로 稚氣[치기]와 痴氣[치기]로 충일된 한 개 공상이다.
 
85
그 위에 이 작자는 조선말 센텐스의 조직조차 모르는 모양이다.
 
86
하루를 굶은 무명 작가가 달을 쳐다보고 소설을 구상하는 장면-
 
 
87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 눈을 딱감고 구상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누런 달빛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리하여 나는 솔밭 속으로 시선을 던지고 구상에 노력하였다.”
 
 
88
등등이며 요해할 수 없는 조선어 천지며 그 위에 더구나 초대면의 남녀의 회화 장면에서 한 서너 마디 응대가 교환된 뒤에 남자가(비위 좋게도) 여자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이제 일은 다 끝났는데 울면 무얼 합니까”하고 위로하니까 그 여자는 벌떡 일어서더니 나(남자)의 가슴에 머리를 푹 파묻고, 등등 상식으로 판단치 못할 장면이 뒤따라 나온다.
 
89
출발이 이러하고는 이 작자는 대성은커녕 소성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90
─「불끄는 꿈」, 成孝英[성효영][씨][작] (〈朝鮮文壇〉[조선문단] 2월호)
 
91
이 작은 콩트라 명색 붙이거니와 콩트가 무엇인 줄을 모르는 것은 이 작자뿐이 아니겠다. 콩트는 즉 단편소설이요, 콩트가 단편소설인 이상에는 종으로는 서두와 진전과 종결이 있어야 하고 횡으로는 인물과 사건과 성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불끄는 꿈」은 콩트가 아니요, 한 개 수필이다.
 
92
─「헛물킨 사람들」, 洪順玉[홍순옥][씨][작] (〈朝鮮文壇〉[조선문단] 2월호)
 
93
여기 이학인 씨의「藝術盜賊」[예술도적]과 마찬가지로 소설의 ABC도 모는 사람이 쓴 소설이 또 한편이 있다.
 
94
거기는 10여 인의 청년 남녀가 난무를 하지만 독자는 그들이 무슨 까닭으로 난무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95
‘입선’ 이라는 特註[특주]가 붙었기 때문에 좀 관대히 보려고 애썼으나 아무리 관대히 보아도 문자의 濫費[남비]요, 인쇄잉크와 인쇄지의 남비로밖에는 더 관대히 볼 수가 없다.
 
96
「히도리요가리(一人よがリ-혼자 좋아함)」의‘나’라는 여주인공의 덤비는 꼴이 독자는 고소를 금할 수가 없다.
 
97
마땅히 붓을 꺾어 버려야 할 사람의 하나이다.
 
 
 

7. 天才的[천재적] 閃光[섬광]

99
- 崔貞熙[최정희][씨][작]「洛東江」[낙동강]
 
100
「낙동강」(최정희 씨 작,〈삼천리〉 11, 1, 2월호 연재)은 비교적 유창한 문장과 비교적 흠없는 솜씨다. 그러나 이것을 소설로 보기에는 아직 먼 감이 많다. 소설의 제일 요소인 주관과 묘사가 이 작품에 결여되었다.
 
101
낙동강의 대홍수의 전주곡인 큰비가 내릴 때에도 작자는 연거푸‘비가 내린다’ ‘바케츠로 붓는 듯이 내린다’ 설명하였지만, 거기는 주관을 통하여 본 바의 묘사가 없기 때문에 조금도 실감을 주지를 못한다.
 
102
낙동강의 물이 차차 불어서 온 평야를‘赤手化’[적수화]하는 곳에서도 그 처참하고 어지러워할 광경이 한 장 사진이 보여 줄 만한 실감을 독자에게 주지 못하는 것은 작자의 寫實[사실]의 힘이 부족한 탓이다. 더구나 비가 온 지 3시간쯤밖에 지나지 못한 듯한데 벌써
 
103
‘물은 수십여 척이나 불어서 제방을 넘기 시작하였다.’
 
104
운운은 아무리 그 아랫절에‘상류 지역에 큰비가 있는 모양이라’고 변명을 하였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니 수시간에 수십 척의 增水[증수]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105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생명 없는 인물인 듯이 실감이 부족하며‘정쇠’라는 인물이 죽을 때에 정쇠의‘지금 남편을 잃는 그는 얼마 전에 그의 사랑하는 딸을 생활 때문에 먼 곳에 팔았고 그의 아들마저 생활 때문에 유랑의 길을 떠난 것이다’가 기가 막혀서 슬퍼하여야 할 것이고 그 슬퍼하는 양이 독자의 가슴에 들어 박혀야 할 터인데 독자는 마치 꿈 이야기라도 듣는 듯이 아무 감각도 가질 수 없다.
 
106
큰물을 겪은 뒤에, 농민들은 모두 생활에 밀려서, 딸이며 누이며 작부로 팔아 먹는데 거기도,
 
107
‘아침밥거리 겨(현미를 정미할 때 나오는 것)를 씻고 있는’ 운운의 단 일절로서, 작자는 이만했으면, 농민의 상을 충분히 나타냈거니 하고 그 이상 한 행도 더 나가지 못한다. 참담한 농민의 몰락상은 한군데도 구체적으로 나타내지를 못하였다.
 
108
리얼을 몰각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전체가 한 산만한 이야기가 되었지, 독자의 마음을 잡는 힘이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도 제거해야 할 장면이 많지만 더우기 말미의‘김 판서 댁으로 등장간다’는 장면은 이 소설을 더욱 몽롱하게 한 감이 있다. 만약 등장가는 장면이 있으면 등장간 뒤의 장면이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이다.
 
109
그러나 이 소설과 작자를 소개한 글에 의지하건대‘아직 나이 어린 여자의 처녀작’이라 하였으니 그만한 핸디캡을 붙이고 볼 때에는 이 작자에게는 아직 촉망할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 본다.
 
110
소설의 제재를 잡는데 이만치 웅대한 스케일을 취한다는 점이 첫째로 상당히 평가하여야 할 것이고, 낙동강의 수해라는 것을 배경삼고 이만치 한 개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하는 데 천재적임을 발견할 수가 있다. 사실이라는 데 연구를 더 쌓으면 장래 유망한 작가 됨을 의심치 않는 배다.
 
 
 

8. 女流作家[여류작가] 中[중]의 白眉[백미]

112
- 姜敬愛[강경애][씨][작] 「原稿料2百圓」[원고료2백원]
 
113
이 작자의 첫 작품을 본 것은 벌써 5,6년 전 〈別乾坤〉[별건곤]에서다. 그때에 장래 유망한 작가라 보았다. 그 領分[영분]이 다른 작가들이 대개 엿보지 못하는 농촌 처녀며 특색 있는 묘사 등으로 많은 기대를 가졌었다. 장편의 소질이 있다 보았다.
 
114
그 뒤에 모 일보의 신년 현상소설에 응모한 단편을 본 일이 있는데 관찰에 재미있는 점은 있지만‘단편소설이란 어떤 것인지’를 당초에 이해치 못하는 감이 있었다.
 
115
그 2년 뒤에 그 신문에 연재소설을 싣는 것을 띄엄띄엄 읽어 보았는데 그것을 보고 느낀 바는 그의 처녀작(〈별건곤〉)은 우연한 가작이었는가 하는 감이다.
 
116
이번「원고료 2백원」(〈新家庭〉[신가정] 2월호)에서도 다시 그와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117
‘나’라는 여주인공이 그의 생전 처음 보는 대금인 원고료 2백원을 받아 가지고 이것으로서 자기의 금시계와 금반지와 구두와 외투를 장만하려고 생각 먹는 곳은 칭찬할 만하나 그와 동기의 여류 문인들의 대개가 이런 때에는 여주인공으로 하여금 반드시 사회 봉사적 공상을 일으키게 하려고 헛 노력을 하는데 반하여 이 작자는 본능적 욕망을 강권한 것은 다른 작가보다 훨씬 앞섰다 볼 수 있다.
 
118
그러나 진전에 있어서 부자연 투성이다.
 
119
‘나’와 남편과의 새에 돈 쓸 의견이 불합한 때에 일차의 격론도 없이 ‘나’는 왜 울었느냐, 울었으면 울었지, 안해의 우는 까닭을 안해의 입에서 직접 듣지 못한 남편은 어떤 근거로 갑자기 안해의 따귀를 때렸느냐, 남편은 소위 × × 가인데 그런 사람이 안해의 우는 까닭을 알아보기도 전에 히 손바닥이 안해의 뺨으로 날아갔을까.
 
120
이리하여 악에 받친 안해가‘저런 사내와는 금을 줘도 못 살겠다’고 그 집을 뛰쳐나와서(쫓겨났다) 취한 행동은 어떠하였나.
 
121
그는 멀리 가지도 않았다. 그 문밖에 그냥 서서 생각하였다. 자기의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려는 것이 잘못임을 알았다. 자비심이 갑자기 일어났다. 그래서“나 잘못했소”하고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기 작자의 허위가 있다.
 
122
악에 받쳤던 여인이 마음이 그렇게 쉽사리 돌아설까. 이것은 남성인 평자보다 여성인 작자가 더 잘 알 것이다. 한 번 비뚤어져 벋기 시작하는 여성의 비장한 공상이 일개 의식적 자비심 때문에 그렇게도 단시간 내에 돌아설 리 만무한 것은 증언할 것도 없다. 만약‘내’가 남편에게 돌아왔다면 그것은 ‘더러운 미련’이요 그 위에다가 소위 사회주의 사상을 도금한 것은 작자의 자기 기만의 행위며 겸하여 사회주의 모독이다.
 
123
서두와 말미의‘K에게의 넋두리’는 소설 본내용과는 아무 유기적 관련이 없는 것이나 유해무해의 문자의 濫費[남비]나 어떤 점까지 리얼리즘을 파악한 것은 현 여류작가 중에 희귀한 일이나 소설적 논리와 진전에 더 유의할 필요가 있고 허위적 연막을 벗어 버릴 필요가 있다.
 
124
지금까지에 입수된 창작을 평하고 나니 모두가 평이 아니요‘작법교시’라는 점이 너무나 명료히 눈에 띈다. 현상소설 선평이 아니고야 어찌 이럴 것이랴. 작가라는 이름을 듣는 사람의 작품을 평함에 모두 이 모양이 되니 작자인 그들보다 평자인 내 얼굴이 더욱 단다.
 
125
이리하여 조선의 비평조차 초라하여 가는 것이다.
 
 
126
(〈每日申報〉[매일신보],1935.2.9, 10, 13~17, 19)
【원문】1935년 2월 창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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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5년 2월 창작평 [제목]
 
  김동인(金東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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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0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