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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설 춘향전 (一說 春香傳) ◈

◇ 이별(離別)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1925년
이광수

1. 離別(이별)

 
1
기쁜 세월은 빠르고 슬픈 세월은 더디다는 옛말과 같이 몽 룡이 춘향을 만나 서로 사랑하여 온지가 벌써 추월춘풍 일 년이 지내었다. 그 동안에 옥신각신 사랑 싸움 말다툼도 있 었고 춘향이나 몽룡이나 혹은 감기로 혹은 복통으로 앓기도 하였고, 또 그리 큰 걱정 근심은 있을 것도 없지마는 그래 도 잔 걱정은 늘 있었다. 그러나 가을 일기에도 하루 종일 맑아 가지고 있는 날은 없거든 인생 생활에 고만 걱정을 걱 정이라 하랴. 꽃 같은 춘향과 몽룡은 인생의 봄을 즐길 대 로 즐기고 놀 대로 놀았다. 그러나 홍진비래는 면치 못할 일이라. 찬달은 이즈러지고 핀 꽃은 이우나니 단꿈 같은 춘 향 몽룡의 사랑 놀이에도 슬픈 이별의 날이 오게 되었다.
 
2
하루는 몽룡이 책방에서 글을 읽다가 상방에서 부른다 하 기로 들어간즉 부사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듯이 풀갓끈에 뒷짐 지고 이리저리 거닐면서 낭청과 무슨 이야기를 하며 웃다가 몽룡이 들어와 읍하고 섰는 것을 보며 잠시 거닐기 를 그치고,
 
3
"몽룡아. 국은이 망극하여 내가 이조 참판 내직으로 승차 하여 승일상래하라신 전교가 계시니 가문의 경상랑, 넨들 아니 기쁘겠느냐. 하루도 지체할 수없이 곧 발정 상경하여 야 할 것이로되, 나는 미진한 공사나 마치고 문서중기 마감 후에 발정할 것이니, 널랑 사당 모시고 너의 어머니 배행하 여 명일 일찍 떠나게 하여라."
 
4
몽룡이 이 말을 들으니 정신이 아득하고 금시에 눈물이 쏟 아질 것 같다.
 
5
"아버지 먼저 행차하시면 소자가 하기 닥고 가오리다."
 
6
부사 몽룡을 흘겨보며,
 
7
"무엇이 어찌어?"
 
8
하고 한참이나 있다간,
 
9
"이 자식 너 어디를 요새에 날마다 다니느냐?"
 
10
"광한루 갔다 왔어요."
 
11
"광한루는 무엇하러 날마다 가?"
 
12
"용한 문필도 보고 글도 짓노라고 갔다 왔어요."
 
13
"내 들으니 밖에 괴악한 말이 주간 있으니 양반의 집 자 식이 아직 이십도 못도어서 청루주사에 다닌다는 것이 의문 이 창피하고 또 만일 그런 소리가 서울까지 들린다하면 혼 인길까지 막힐 것이요. 또 미장가전 아이놈이 하향천기 작 첩을 하였다면 사당 제사 때도 참예를 못하는 법이야. 내가 해괴한 소리를 들은지 오래되 네가 그치기만 기다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는 다시는 용서치 못할 것이니 썩 나가 거라!"
 
14
몽룡이 하릴없이 일어나 나올 제 부사가 낭청을 보고 분한 어조로,
 
15
"낭청은 어찌하여 벌써부터 알면서도 내게 말을 아니 하 였단 말이요?"
 
16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들린다.
 
17
"두고 갈까 데려 갈까. 데려가도 못할 터이요. 두고 가도 못할 터이니 이 사세를 어이하나."
 
18
몽룡이 이렇게 자탄하면서 기운 없이 춘향의 집을 찾아가 니 춘향은 그런 줄도 모르고 반가이 내다르며,
 
19
"오늘은 어찌 늦었소? 손님이 왔었소?"
 
20
하고 묻다가 몽룡의 얼굴에 수심 빛과 눈물 흔적이 있는 것을 보고 한 걸음 물러서며,
 
21
"웬 일이요? 사또께 꾸중 들으시었소?"
 
22
몽룡이 기운없이 방에 들어가 고개 푹 숙으리고 앉으며,
 
23
"꾸중 아니라 곤장을 맞았기로 울 내냐."
 
24
"그러면 웬 일이요? 본댁에서 편지 왔다더니 어느 일가 양반 돌아갔다고 부고 왔소?"
 
25
"일가 양반이 만 명이 죽으면 어때?"
 
26
"그러면 웬 일이요? 어디가 편치 않으시오?"
 
27
하고 손으로 몽룡의 손을 쥐어 보고 이마를 만지어 보더 니,
 
28
"열기는 없으신데 배가 아프시오?"
 
29
"............"
 
30
"왜 말이 없소? 도련님 슬픔이 내 슬픔이요, 도련님 걱정 이 내 걱정이니 도련님 그렇게 슬퍼하시면 내 맘이 어찌 편 하겠소? 내가 누구를 믿고 사오? 도련님 한 분만 믿고 도련 님께 대롱대롱 매달려서 사는 년을 왜 이렇게 괴롭게 하시 오. 어서 말이나 하오."
 
31
춘향의 말을 들으니 몽룡은 더욱 비감하여진다. 눈물을 씻 으면서,
 
32
"아버지가 간단다."
 
33
"가시다니 어디를 가시오?"
 
34
"이조 참판인가 되어 가지고 내직으로 들어 간단다."
 
35
"에그 경사로구려. 이조 참판 승차하시었으면 그런 경사 가 어디 있소? 너무 기뻐서 우시오?"
 
36
"기쁘기는 무엇이 기뻐? 차라리 아버지가 이 골 좌수나 되어선 물러 앉았으면 좋겠다."
 
37
"어찌해 그러시오? 내가 안 따라 갈까봐 그러시오? 서울 이 멀다기로 도련님 따라가지 않을 내 아니요. 우지 마오!
 
38
우지 마오! 오늘이나 내일이나 도련님 떠나시는 날이면 내 따라갈 것이니 울지 마오! 울지 마오!"
 
39
춘향의 이 말에 몽룡은 더욱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춘향의 손을 잡으며,
 
40
"너를 데리고 갈 양이면 내가 왜 슬퍼하랴."
 
41
춘향이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 앉으며,
 
42
"그럼 나를 두고 가시려오?"
 
43
하고 어성이 날카롭다.
 
44
"글쎄 내야 데리고 가고 싶지마는......"
 
45
"아니 글쎄 나를 못 다려 가신단 말씀이요?"
 
46
춘향의 얼굴은 푸르락 누르락한다.
 
47
"글쎄 나는......"
 
48
"여러 말씀 하실 것 없이 외마디로 대답하오! 나를 데리 고 가시랴오! 두고 가시랴오?"
 
49
"아버지가—늙은이가—고집꾸러기어서 양반의 자식이, 미장 가전 아이놈이 하향천기 작첩하였다면 혼인배문이 막히고— 사당 제사 참예도 못하는 법이라고......"
 
50
춘향이 몽룡의 손을 뿌리치고 저만큼 물러 앉아 눈썹이 빳 빳해지며,
 
51
"다 알았소. 그만두오. 다 알았소. 다 알았소. 도련님 속도 다 알았소. 그럭저럭하야 나를 버려두고 도련님 혼자만 올 라 가신단 말이구려. 흥 하향천기! 그런 말이 몇 마디나 있 소? 어디 있는 대로 다해 보오. 옳소. 내가 하향천기요. 도 련님은 쩡쩡 우는 연안 이씨. 이 참판의 자제시로구려. 날 버리고 올라가서 귀가문에 장가 들어 부대부대 잘 살으오— 나는 그런 줄 몰랐네. 그런 줄 몰랐네. 도련님이 바다가 마 르고 돌이 다 녹아 없어 지더라도 변치 아니하시마기에 그 럴 줄만 믿었더니 날 속였구려. 날 속였구려...... 아이고 이 를 어찌하나—내 신세를 어찌하나."
 
52
하고 쓰러져 운다.
 
53
몽룡이 한 팔을 들어 춘향을 안아 일으키려 하나 춘향은 몽룡의 팔을 뿌리친다.
 
54
몽룡이 어찌할 줄 모르고 춘향의 곁에 쭈그리고 앉으며,
 
55
"춘향아, 울지 마라. 내가 가면 아주 가며, 아주 간들 널 잊으랴. 장부의 굳은 맹세 변할 줄이 있겠느냐. 너만 맘 변 치 말고 다시 보기 기다려라."
 
56
춘향이 와락 달겨 들어 몽룡에게 매달리며,
 
57
"못 가리다. 못 가리다. 나를 두고는 못 가리다. 날 데려 가오! 날 데려 가오! 못 데려 가겠거든—죽이고 가오! 도련님 께 들인 몸이니 맘대로 죽이고 가오! 살려 두고는 못 가리 다."
 
58
하고 몽룡의 허리를 안고 무릎 위에 얼굴을 비비고 느껴 운다.
 
59
이 때에 월매는 방에서 잠이 들었다가 춘향이 우는 소리에 깨어,
 
60
"또 저것들이 사랑 싸움을 하는군."
 
61
하고 그대로 도로 누워 자려다가 울음 소리가 하도 수상하 므로 가만가만히 걸어 나와 춘향의 방을 이윽히 엿보더니,
 
62
"이것들이 이별을 하는구나."
 
63
하고 도로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주워 입고 나와 크게 기 침하고 영창을 후닥닥 열며,
 
64
"허허 이게 웬 울음이냐. 내가 잠을 잘 수가 없으니 동네 사람은 자겠느냐. 이 밤중에 요망하게 대고 우니 매쳤느냐, 사가 들렸느냐. 아비가 없으니 어미 하나 있는 것을 어서 죽어지라고 이게 웬 방정이냐. 사 오세부터 사서 삼경 배운 행실이 이것이냐. 이게 무슨 행실이냐. 대관절 무슨 일이냐.
 
65
말이나 해라."
 
66
하면서 문안에 들어 앉는다.
 
67
월매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춘향은 몽룡의 무릎을 떠나 저 만치 물러가 한 손으로 턱을 고이고 치맛고름만 물어 뜯으 며 흐득흐득 느끼고 앉았다가 월매가 무슨 곡절이냐고 묻는 말에,
 
68
"도련님이 가신다오."
 
69
"도련님이 어디로 가시어?"
 
70
"사또께서 이조 참판 승차하시어 내직으로 들어가신다고 도련님은 내행 모시고 명일 일찌기 서울로 가신다오."
 
71
이 말에 월매 깔깔 웃으며,
 
72
"이애 댁에 경사났구나. 도련님이 경사시면 내 집도 영화 여든 울기는 왜 웃느냐. 너무 좋아서 웃느냐. 도련님과 같이 가되 행차 앞에 가지 말고 오리만큼 십리만큼 따름따름 가 다가 밤이 되거든 만나 보고 낮이면은 그렸다가 밤 되거든 또 만나볼 터인데 욕심 많은 도적년이 낮에 못 볼 것이 애 가 타서 남 다 자는데 애고지고 대고 우니 도련님을 꼭 맺 어서 네 옷고름에 채워 주랴? 울지 마라 울 것 없다. 날랑 은 세간 방매하고 천천히 갈 터이—나는 무슨 큰일이나 났다 고."
 
73
"도련님이 나를 못 데려 가신다오."
 
74
하는 춘향의 말에 월매 웃던 웃음도 다 집어치우고 우두커 니 방바닥만 들여다보고 앉았는 몽룡을 돌아보며,
 
75
"왜 못 데려가? 정녕 그렇소?"
 
76
몽룡은 외면하며,
 
77
"그렇다네."
 
78
월매 무르팍 걸음으로 몽룡의 앞으로 바싹 다가 앉으며,
 
79
"어찌하여 못 데려 가오?"
 
80
"낸들 데려 가고 싶은 맘이야 태산 같지마는 양반의 자식 이 미장가전에 외방 작첩하면 청문이 사나울뿐더러 사당 제 사에도 참예하지 못한다고 부명이 지엄하시니 낸들 어찌하 나. 잠시 서로 떠났다가 훗기약을 기다리세."
 
81
월매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하며 두 주먹을 발끈 쥐더니,
 
82
"너 이년 죽어라. 어느 놈이 살인률은 질 터이니 너 이년 썩 죽어라. 도련님 올라가실 뉘 간장을 녹이랴느냐. 요년아 썩 죽어라!"
 
83
하고 몽룡의 앞으로 바싹 대들며,
 
84
"여보게 나하고 말 좀 해보세. 그래 어찌해 내 딸을 못 데려 간단 말인가. 가만히 있는 아이를 감언 이설로 꾀어 내어 일년 이태나 되도록 진탕치듯 버려 주고, 이제 와서 안 데려 간다니 웬 말인가. 내 딸이 어떠한 딸로 알았던가.
 
85
늙은 년이 그것 하나를 길러낼 제 고생인들 어떠하였겠나.
 
86
말년에 그것으로나 낙을 볼 양으로 하늘같이 믿었더니 이제 자네가 안 데려 간다 하니 웬 말인가. 아 이 사람아 말 좀 하게. 양반의 자식의 행세는 그러한가. 자네집 사당 제사 참 예만 중하고 내 딸 죽는 것은 중하지 않단 말인가. 말게 말 게 못하네."
 
87
하고 소리를 바락 지르며,
 
88
"가랴거든 데리고 가고, 못 데려 가겠거든 죽이고 가게.
 
89
살려 두고는 못 가리! 이 사람아 말해 보세. 내 딸이 행실이 그르던가. 언행이 불순턴가. 무슨 죄가 있던가. 칠거지악 없 으려든 백옥 같은 내 딸을 무슨 연유로 버리랴나. 꽃 같은 청춘에 생과부를 만들어서 독수공방에 내딸을 말라 죽게 하 랴나. 이 사람아! 내 딸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던가. 내 딸 버리고 가는 놈은 내가 그놈의 간을 내어 아작아작 씹어 먹 을랴네."
 
90
하고 몽룡에게로 대들어 다리를 꼬집고 어깨와 팔을 물어 뜯는다.
 
91
몽룡이 황망하여,
 
92
"여보 장모. 이럴 것 없소. 내가 춘향을 데리고 가지. 두 고 간다던 것이 내 망발이로세. 데려 가리 데리고 가리."
 
93
하고 춘향을 향하여,
 
94
"춘향아 어서 행장 수습하여라. 명일 아침에 나하고 함께 떠나자."
 
95
이 말에 월매 물러 앉으며, 춘향을 보고,
 
96
"그래라 이년아 따라 가거라 따라 가. 이년아 네 서방 따 라 가거라. 물고 매어달려서라도 따라 가거라."
 
97
춘향이 한숨 지며,
 
98
"어서 어머니는 건너가오. 만사는 다 내가 알아 할 테니 어머니는 건너가 주무시오."
 
99
월매는 적이 안심한 듯이 담뱃대를 들고 일어나 나가며,
 
100
"꼭 따라 가라. 이번 놓치면은 영 놓치는 게다. 잘 적에 안 온다는 님 없고, 온다고 오는 님 없느니라. 여보 도련님 당신도 잘되랴거든 데리고 가오. 일부지원 고한 삼년이라고 안 데리고 가면 도련님도 안되리라."
 
101
하고 마루에를 내려섰다가 다시 오며,
 
102
"만일에 못 데려 가겠거든 먹고 살 것이라도 주고 가야 하오리다."
 
103
월매 들어간 뒤에 춘향이 눈물을 거두고,
 
104
"도련님 어머니 망녕을 노여 마오."
 
105
몽룡이 두 손바닥으로 눈물을 씻으며,
 
106
"노여는 게 무에냐—장모 말이 모두 옳은 말이다. 애초에 내가 너를 두고 간다는 게 말이 아니다. 백년을 같이 하자 고 굳게 맹약한 너를 혼자 두고 간다는 게 말이 아니다. 같 이 가자 같이 가. 데려 가마 데려 가마. 사당 제사에 참예를 못하면 말고, 우리 아버지가 나를 내쫓거든 너와 나와 둘이 서 어디가서 농사를 지어 먹든지 막벌이를 하여 먹든지 이 집 저집으로 돌아다니며 문전 걸식을 하더라도 같이 가자 같이가. 너를 두고는 못 가리라. 내 데리고 가마, 데리고 가 마."
 
107
춘향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108
"안될 말씀이요. 안될 말씀이요. 도련님 부모시자 내 부모 시니 도련님이 부모 명령 거역하시면 낸들 불효가 아니요?
 
109
남의 자식이 되어선 봉제사를 못하게 된다 하면 그런 불효 가 또 어디 있소? 안될 말이요. 애어 날 데려갈 생각은 하 지도 말고 도련님이나 부대 평안히 가시오. 내행 모시고 천 리원정에 조심조심히 가시오. 서울 올라 가시거든 내 생각 도 마시고 약주도 과히 잡숫지 마시고 공부나 잘하시어 대 과급제하시고 한림학사나 되신 뒤에 아버님께 여짜와서 날 데려가게 하여 주시오. 내걱정은 말으시오. 도련님 가신 뒤 면 나는 대문 중문 굳이 닫고 혼자 가만히 숨어 있어 도련 님 입신 양명하시기만 천지신명 전에 빌고 도련님이 부르시 기만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내 염렬랑 애어 마시고 부대 평 안히 잘 가시오. 천리 원정 도중에서나 가신 뒤에나 천금같 이 귀중한 몸을 부대부대 보중하시오. 공부하시다가 한가하 신 때나 남원 오는 인편 있는 때에 두어 자라도 좋으니 자 주자주 편지나 하여 주시오."
 
110
말을 다 맞추고 춘향은 새로운 설움이 복받치어 방바닥에 쓰러지어 울며,
 
111
"백년이 다 맞도록 님 떠나지 마잤더니 굳이 가신다네.
 
112
아니 가든 못하신다네. 한양 천리에 그린 님 보내옵고 이 몸이 홀로 어이 살려나 어이 살려나.
 
113
떠나면 멀어지네. 멀어지면 잊는다네. 떠나서 못 뵈옴도 애 끊도록 설우려든 저 님이 잊으실진댄 어이 살리 어이 살까나.
 
114
차라리 죽어 잊으랴 죽도 못하고 살아 기다리랴 그 더욱 어려워 그려 아이고 내 신세야."
 
115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춘향의 울음에 몽룡도 목이 메어 울 며 춘향의 손을 부여잡고,
 
116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너 잊을 내 아니다. 네 뜻이 그러 하니 너를 두고 가거니와 두고 가는 내 맘인들 그 아니 슬 플소냐. 구곡간장이 다 끊는 듯하다마는, 하늘이 무너지고 바다는 마를지언정, 너 잊을 리 만무하니 네 말대로 내 힘 써 공부하여 대과나 한 연후에 너를 데려가마, 데려가마. 네 부대 나 간다고 설어 말고 몸조심하여 나 오기를 기다려 라."
 
117
하고 화류집 사릉경을 남대단 두루줌치 끈 아울러 끌러서 춘향의 손에 쥐어 주며,
 
118
"대장부 세운 뜻이 명경과 같을진댄 천만년 지난간들 변 할 줄이 있을건가. 내 뜻이 거울과 같아야 변할 줄이 없으 리니 이것을 몸에 지니어 날 본 듯이 보아라."
 
119
춘향이 일어나 그 거울을 받아 품에 품고 왼손 무명지에 꼈던 옥지환 한 쌍을 벗어 몽룡에게 주며,
 
120
"여자의 곧은 절개 옥빛과 같을진댄 천만년 진토에 묻혔 은들 변할 줄이 있으리까. 내 절개 이와 같아야 변할 줄이 업사오리니 부대 이것을 날 본 듯이 지니시오."
 
121
몽룡이 춘향의 지환을 받아 약낭에 집어 넣고 옷을 떨고 일어서며,
 
122
"닭이 우메, 벌써 세회째나 우네. 짧은 여름밤이 얼마 아 녀 밝으리라.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다시 볼 때까지 네 부대 잘 있거라."
 
123
춘향이 일어나 몽룡의 품에 안기니 몽룡이 춘향을 껴안고 느끼어운다.
 
124
이윽히 둘이 서로 안고 울다가 춘향이 몽룡께서 물러서며,
 
125
"도련님, 나는 이제부터는 살아도 도련님댁 사람이요, 죽 어도 도련님댁 사람이니 도련님 손수 내 귓머리나 풀어 주 오. 도련님 떠나시기 전 내 머리 얹은 양이나 보고 가시오!
 
126
비록 팔자에 없어 도련님과 육례는 못 갖춘다 하더라도 도 련님 손수 내 귓머리를 풀어 주시면 그것이 육례보다 낫지 아니하오!"
 
127
하고 삼단 같은 검은 머리채를 어때 위로 끌어 넘겨 몽룡 에게 준다.
 
128
몽룡은 춘향의 말에 깊이 감격한 듯이 이윽히 춘향의 눈물 흐르는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없이 춘향의 머리채를 받아 들고 댕기를 풀고 땋은 것을 훌훌 풀고 왼편 귓머리를 먼저 풀고 오른편 귓머리를 마저 풀고 나시 자기의 머리채 를 춘향에게 주며,
 
129
"네 귓머리를 내가 풀었으니 내 귓머리도 네가 풀어라."
 
130
춘향이 잠깐 머뭇머뭇하더니,
 
131
"내가 어떻게 도련님 귓머리를 풀겠소? 그런 법도 있 소?"
 
132
하고 고개를 두른다.
 
133
"나는 총각이요, 너는 처녀라. 너는 처녀의 몸을 내게 주 어 내 지어미 되고, 나는 총각의 몸을 네게 주어 네 지아비 되니, 지아비와 지어미는 한몸이라, 내가 네 귓머리를 풀어 너로 내 지어미를 삼노라 하는 표를 보이거든 네가 내 귓머 리를 풀어 나로 네 지아비를 삼는 표를 아니 보여야 되겠느 냐. 내 손으로 한 번 푼 내 머리를 다른 여자가 풀지 못하 리라. 자, 사양 말고 풀어라."
 
134
그래도 춘향이 감히 몽룡의 머리에 손을 대지 못하고,
 
135
"뜻은 아오마는 그런 법이 없소."
 
136
하니 몽룡이 언성을 높이며,
 
137
"없는 법이어든 내가 새로 내이마."
 
138
하고 뜻이 굳은 양을 보인다.
 
139
춘향이 마지못하여,
 
140
"그러실진댄 머리를 빗겨나 드리리다."
 
141
하고 몽룡의 머리채를 활활 풀고 조심조심히 두 귓머리를 다 풀 때에 몽룡은 감격을 못 이기어 사근사근하는 춘향의 잦은 숨소리를 듣는다.
 
142
춘향은 몽룡의 귓머리를 다 풀고 나서 어이없는 듯이 룡을 바라보며,
 
143
"나는 머리를 얹지마는 도련님은 어찌하시랴오?"
 
144
하니 몽룡이 잠깐 생각하다가,
 
145
"내 생각 같아서는 아주 상투를 짜버렸으면 좋겠다마는 그럴 수야 있느냐. 귓머리만 풀고 도로 땋아라."
 
146
"앗으시오! 내 손수 한 번 풀어 드렸으니 푼심 치고 다시 땋읍시다."
 
147
춘향이 빗접을 내어놓고 몽룡의 머리를 얼레빗으로 고르고 참빗질도 몇번 한뒤에 동백 기름 두어 방울을 손바닥에 떨 어뜨려 서너 번 싹싹 비벼 몽룡의 머리에 바른 뒤에 또 한 번 얼레빗으로 살살 빗겨 빗살 자국이 어질러지지 않도록 가만가만히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어 대목을 한 줌 덤뿍 놓 고 처음에는 느슨느슨 차차 힘을 주어 땋은 뒤에 석웅황 박 은 갑사 댕기 끝을 입으로 물어 꼭 졸라매고 그러고도 차마 그 머리채를 놓기가 아까운 듯이 만지고 또 만지고 쓰다듬 더니,
 
148
"그래도 도련님은 가시는구려."
 
149
하고 몽룡의 등에 얼굴을 대고 운다.
 
150
몽룡이 고개를 돌리며,
 
151
"울지 마라. 머리를 풀어 헤치고 우느냐?"
 
152
하는 말에 춘향이 깜짝 놀라 눈물을 씻고 제 머리를 빗어 되는 대로 땋아 한 손으로 머리채를 들고 일어나 반닫이를 열고 서랍 속에서 백지에 꽁꽁 싸서 목함에 넣었던 금비녀 를 내어 몽룡의 손에 쥐어 주며,
 
153
"이것을 도련님 손으로 내 머리에 꽂아 주시오. 이 비녀 는 우리 아버지가 어머님께 주신 비녀 내가 시집가거든 주 신다고 어머님이 안 쓰시고 두었던 것이라오."
 
154
하고 머리쪽을 만들어 손으로 잡고 몽룡에게로 고개를 돌 리니 몽룡이 일어나 비녀를 꽂아 준다.
 
155
머리를 얹고 나서 두 사람이 맥맥히 마주 앉았을 제 닭이 재우쳐 운다.
 
156
"자던 닭이 우네. 먼동 트게 되었네. 이러고 있으면 끝이 있소? 가실 길은 가시어야지."
 
157
하고 춘향이 상단을 부르니 상단도 아직 자지 않고 일어나 있다가,
 
158
"예."
 
159
하고 나온다.
 
160
"도련님은 가신다. 멀리멀리 서울로 가신단다. 약주나 한 잔 따뜻이 데이고 포나 놓아 내오너라."
 
161
하고 상단을 시키고 춘향은 장문을 열고 백지에 싸두었던 담배를 내어 한 잎을 골라 붙이어 몽룡을 주며,
 
162
"마지막으로 내가 붙인 담배나 한 대 잡수시오."
 
163
하더니 남은 담배를 다시 싸서 장에 넣으며,
 
164
"도련님 가시면 이 담배는 누가 먹나. 도련님 다시 와서 이 담배를 잡술는지—부대 다시 오시어서 이 담배 잡수시 오."
 
165
하고 다시 거문고를 내어 장도를 빼어들고 거문고 줄을 드 윽 끊으니 스르릉하고 소리가 난다.
 
166
"너도 다 쓸데 없다. 님 안 계신데 거문고는 무엇하리. 누 구를 위해 거문고는 타리."
 
167
다시 경대를 열고 연지분과 기름 항아리 모두 내어 내던지 며,
 
168
"도련님 안 계시거든 누를 위해 단장하리. 님 뵈잔 단장 이니 님 가시면 뵐 이 있나. 면경도 쓸데 없고 연지분도 쓸 데 없네. 방안에 뵈는 것이 모두 도련님 만지시던 것이니 도련님 가신 뒤에 저것들을 보고 내 어찌 살까나."
 
169
하고 또 쓰러지어 운다.
 
170
몽룡이 춘향이가 흩어 놓은 것을 다시 제자리에 놓으며,
 
171
"잠깐이다, 잠깐이다. 세월이 잠깐이니 만날 날도 잠깐이 다."
 
172
상단이 술상을 들고 나와 이 광경을 보고 눈물을 씻으며,
 
173
"아씨! 약주 가지어 왔소."
 
174
춘향이 일어나 잔에 술을 부어 몽룡을 주니 몽룡이 받아 마시고, 이번에는 몽룡이 손수 부어 춘향을 주니 춘향이 또 받아 마시다가, 반을 다 못 마시고 목이 메어 울며,
 
175
"이별주 이별주, 말로는 들은지 오래건만 내가 이별주 마 실 줄은 뜻하지 못하였네."
 
176
하고 또 쓰러진다.
 
177
상단이 울며 춘향의 어깨를 흔들며,
 
178
"아씨! 아씨! 아씨가 이러시면 도련님 맘은 어떠시겠소!
 
179
먼길 떠나시는 도련님을 보아서 이러시지 마오."
 
180
춘향이 눈물 씻고 일어나며,
 
181
"오냐, 네 말이 옳다. 그런 줄을 알건마는 북받치어 오르 는 눈물을 어찌하느냐."
 
182
하고 몽룡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183
"자, 인제는 가시오. 날로 하여 밤을 새었으니 얼마나 곤 하실까."
 
184
하고 중문까지 나와,
 
185
"도련님 부대 평안히 행차하시오."
 
186
"부대 잘 있거라."
 
187
상단이 대문까지 나가서,
 
188
"도련님 부대 안녕히 행차하시오."
 
189
"오냐, 부대 잘 있거라—아씨 잘 신봉하고 위로해 드려 라."
 
190
"도련님 가신 후에 아씨께 편지나 자주 하시오."
 
191
하는 상단의 말에,
 
192
"오냐 그리하마. 아씨 잘 위로하여라."
 
193
몽룡이 춘향의 집 대문을 나서니 벌써 동편 하늘이 훤하 다. 차마 떠나지 못하고 문전으로 배회하다가 천천히 걸어 간다. 가다가는 돌아보고 가다가는 돌아보니 상단이 아직도 대문에서 바라보고, 정들인 청삽사리 어디서 자다가 깨어 꼬리를 치며 몽룡의 뒤를 따라온다. 몽룡이 걸음을 멈추고 개의 머리를 쓸어 주며,
 
194
"너도 내게 정이 들어 따라나오는데 춘향이를 두고 가는 내가 무정한 놈이다."
 
195
하고 춘향의 집을 향하고 두어 걸음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간다.
 
196
이튿날 평명에 이른 조반 먹고 부사께 하직하고 육방관속 의 하직 받고 사당내행 모시고 몽룡은 나귀를 타고 오래 부 리던 방자 경마를 잡히고 정든 남원을 다시금 돌아보면서 서울 길을 떠났다.
 
197
이때는 오월 하순이라 사면 청산에 아침 안개는 스러지지 아니하고 푸르게 늘어진 오류정 버들가지는 흔드는 바람도 없어 오직 벗 부르던 꾀꼬리가 사람에 놀래어 푸드득 날아 가는 바람에 잎사귀 위에 잠자던 구슬 같은 이슬 방울을 뚝 뚝 떨굴 뿐이었다. 몽룡은 맘이 비감하여,
 
198
"임루사 남원(눈물로 남원을 작별하고) 함비 향경로(슬프게 서울로 향하노라). "
 
199
하는 글귀를 읊조리다가 경마 잡은 방자를 향하여,
 
200
"벌써 오류정이로고나."
 
201
방자 몽룡을 돌아보며,
 
202
"누가 아니라오?"
 
203
"어허, 춘향이 있는 남원은 점점 멀어 가는구나!"
 
204
"소인의 계집도 점점 멀어가오."
 
205
몽룡이 나귀를 세우고 고개를 돌려 안개에 싸인 남원부중 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에 버드나무 그늘로서 상단이 뛰어 나오며,
 
206
"도련님!"
 
207
하고 부른다.
 
208
몽룡이 놀라 돌아보니 상단이라 깜짝 놀라 몸을 굽혀 상단 을 보며,
 
209
"웬 일이냐. 네가 어찌하여 여기 왔단 말이냐?"
 
210
상단이 찬합 하나 술병 하나를 방자에게 주며,
 
211
"이것은 도련님 도중에서 잡수시라고, 우리 아씨가 보내 시는 것이요."
 
212
몽룡이 나귀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213
"너만 나왔느냐. 필경 아씨도 나왔을 것이니 아씨는 어디 계시냐?"
 
214
"아씨는 오시다가 저기 앉어 계시오."
 
215
하고 상단은 손을 들어 가리키며,
 
216
"혹 사람이 보더라도 도련님 체면에 안 될까봐 소녀더러 이것 갖다가 도련님 드리고 부대 편안히 행차하시라고 전갈 하라 하시오."
 
217
상단이 손 들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길가 늙은 소나무 밑 에 춘향이 홀로 서서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고, 씻고 이곳 을 바라본다.
 
218
몽룡이 나귀에서 뛰어내려 춘향에게로 따라가서,
 
219
"예까지 나왔느냐. 날 보내려 나왔느냐?"
 
220
하고 춘향의 손을 잡으니 춘향이 울며,
 
221
"한 번 더 뵈온다고 시원할 것 없으련만, 하도 아쉬운 맘 에 먼 발치로 도련님을 한 번 뵈오랴고 여기까지 나왔소.
 
222
도련님 이제 가시오면 언제나 오시랴오? 천리 한양에 도련 님 보내옵고 내 어찌 살라오?"
 
223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몸은 비록 한양으로 가거니와 맘 은 너 있는 남원에 두고 가니 울지 말고 몸조심하여 다시 만나기만 기다려라."
 
224
둘이 마주 잡고 한참이나 울다가, 춘향이 눈물을 거두며,
 
225
"도련님, 어서 가시오. 길 늦겠소—대부인께서 걱정 하시오 리다. 어서 가시오."
 
226
하고 몽룡의 손을 놓으니 몽룡은 차마 떠나지 못하여,
 
227
"내 사랑아, 잘 있거라."
 
228
하고 한 걸음 나오다가는 또 한 걸음 들어가고 또 한번,
 
229
"부대 잘 있거라, 들어가거라."
 
230
하고 두어 걸음 나오다가는 또 두어 걸음 들어가니 이러할 수록 피차에 떠나기 슬픈 생각은 더욱 깊어 간다.
 
231
"어서 가시오!"
 
232
"오냐. 잘 있거라, 나는 간다."
 
233
"부대 원로에 평안히 가시오."
 
234
"내 걱정은 말고 잘 있거라. 하늘이 무너저도 널 다리러 내 다시 오마. 마음이나 변치 마라."
 
235
춘향이 손을 들어 소나무를 가리키며,
 
236
"내 마음은 이 소나무와 같소. 도련님이나 변치 마오."
 
237
몽룡은 손을 들어 해를 가리키며, 내 마음은 저 백일과 같다. 너 부대 잘 있거라.
 
238
"도련님, 부대 평안히 가오."
 
239
그러나 이 모양으로 작별하는 인사만 하고 또 할 뿐이요, 두 사람은 언제까지나 떠날 줄을 모른다.
 
240
이때에 방자가 두 사람이 섰는 곳으로 뛰어오며,
 
241
"도련님 야단났소. 대부인께서 앞참에 가마를 머무시고, 도련님 왜 안오시느냐. 어서 오시라 합신다고 급창 이놈 발 광하오...... 이별을 하실 때에 도련님 부대 평안히 가오. 오 냐 춘향아, 부대 잘 있거라. 이 만할 일이지 그려 웬 이별을 이렇게 끈질기게 하시오? 그만하고 어서 가십시다."
 
242
몽룡이 하릴없이 춘향의 손을 놓고,
 
243
"나는 간다 아니 가든 못하리니 너를 두고 나는 간다. 대 장부 이별할 때 눈물 아니 뿌린단 말 낸들 어찌 모르랴만 아마도 그 사람이 이별 안해 본 사람인가 보다."
 
244
"부대 평안히 가오."
 
245
"오냐 부대 잘 있거라."
 
246
몽룡은 할 걸음에 돌아보고 두 걸음에 돌아보고 손을 흔들 며 나귀를 몰아가는데 춘향은 땅에선 솟은 사람 모양으로 입만 벙긋벙긋하며 몽룡을 바라본다. 사람은 차차 작아가고 음성은 차차 멀어간다. 몽룡이 탄 나귀가 반석틔를 넘어설 때 몽룡의 옷자락이 한 번 펄렁 보이더니 요만큼 뵈다가 조 만큼 뵙다가 밥지내를 지나서야 아주 깜빡 아니 뵌다.
 
247
"상단아!"
 
248
"예. "
 
249
"도련님 가시는 것이 보이느냐?"
 
250
"안 뵈어요."
 
251
춘향이 정신없이 섰던 곳에 펄썩 주저앉아 잔디 잎을 박박 쥐어 뜯으며,
 
252
"그만 갔네. 참으로 갔네. 인제는 아주 가시었구나. 지금 여기 있던 양반 금시 간곳 없네그려. 어쩌면 가오? 나를 이 곳에 혼자 두고 어쩌면 도련님 혼자만 가오! 에그, 무정도 해라."
 
253
하고 목을 놓아 운다.
 
254
상단도 눈물을 씻으며,
 
255
"아씨 우지 마오. 도련님 오시리니 우지 마오. 마님 걱정 하시리다. 들어갑시다 들어가요."
 
256
그러나 춘향은 일어나지 못하고 땅바닥에 엎드려 느껴 운다.
 
257
이때에 월매 춘향이 오래 안 돌아오는 것이 걱정이 되어선 따라 나오며,
 
258
"이년아, 이게 무슨 행실이란 말이냐. 새파랗게 젊은 년이 백주 대로변에 펄떠리고 앉어, 애고지고 대고 우니 님이 부 끄럽지 아니하냐. 그대도록 설겠거든 네 서방을 따라 갈 것 이지 가는 놈은 보내고서 울기는 왜 우느냐. 들어가자 들어 가, 어서 집으로 들어가."
 
259
춘향이 월매를 보며,
 
260
"어머니도 어찌 그리 무정하오. 내가 그렇게 설어하면 달 래는 말씀 한 마디라도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리도 무 정하오?"
 
261
월매 후회하는 듯이 언성을 부드럽게,
 
262
"자식에게 무정한 어미 어디 있다드냐. 네가 우는 꼴을 보니 애가 타서 그러는 것이다. 울지 말아, 울지 말아. 울지 말고 들어가자. 너를 두고 가는 놈을 생각하는 네가 어리석 다. 어젯밤에 이가놈이 너를 다리고 가마고 능청스럽게 그 러길래 귓문 넓은 늙은년이 그놈의 말을 참으로만 믿었더 니, 그놈이 마침내 너를 두고 가버렸네. 그럴 줄 알았더면 내가 그놈의 자식의 코라도 물어떼고 넓적다리 살이라도 한 점 큼직이 물어떼어 주었을 것을. 그놈의 자식이 날 속이고 갔네 그려. 이놈 이가놈아, 내 딸을 버리고 간 이가놈아. 네 놈이 십리 안짝에 배가 갈라지어 즉살을 하리라."
 
263
춘향이 월매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264
"어머니 이게 웬 말이요? 망녕이요? 웬 말이요? 나를 두 고 가는 도련님의 심산들 오죽하겠소?"
 
265
월매의 입을 가리우는 춘향의 손을 물리치며,
 
266
"앗어라. 네 그리 착한 체를 말어라—가장 열녀인 체도 말 어라! 네가 아직 철이 없어 사람 볼 줄을 몰라서 그런다. 이 가놈이 외양은 번듯하고 말은 그럴 듯하게 하건마는 그놈이 천하에 흉물스럽고 전 깍장이 놈이다. 어쩌면 감언 이설로 살이라도 버혀 먹일 듯이 너를 꼬여내 가면서도 돈 한 푼 필육 한 자 이러한 말없이 가니 그런 전 깍장이 놈이 어디 있나. 나는 생각하기를 이가 놈이 너는 못 다려가더라도 적 더라도 논 섬지기 돈 천냥은 주고 갈 줄 알았더니 그말 저 말 없이 가니, 요놈이 전 깍장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267
작년 이때부터 금년 이때까지 준 일년을 더우나 추우나 늙 은년이 밤잠도 못자고 저를 위해 밤참을 차린다 술상을 본 다 하늘라고 내시잿돈 수천 냥을 모조리 없앴거든 어쩌면 고놈의 아들놈이, 고맙소 말 한 마디 없이 가버린단 말이냐 —요 이가놈아! 요 전 깍장이 재리놈아! 요놈아, 네 행세가 전중이나 거지 밖에는 더 못되리라."
 
268
하고 몽룡이 지난간 길을 향하여 악을 쓴다.
 
269
춘향이 월매의 팔을 붙들고,
 
270
"그리 마오. 그리 마오. 어미니 그리 마오. 시하에 달린 도련님이 돈인들 어디 있으며 설사 있어 주신다기로 어머니 는 받으며 나는 받겠소?"
 
271
"왜 안 받아? 왜 안 받아? 주는 돈을 왜 안 받아? 세상 천하에 돈 밖에 더 좋은 것 있다드냐. 주는 돈을 왜 안 받 아? 서방이 좋다 해도 사랑 절반 돈 절반이라, 사랑 없는 서방은 써도 돈 없는 서방은 못쓴단다. 사랑먹고 산다드냐, 돈 있어야 먹고 산다. 너는 아직 나이 어려 이일 저일 모르 거니와 젊었을 제 내 천냥 만들어야지 내 천 냥 못 만들곤 이렁저렁 늙어지면 밭고랑 베고 죽는단다. 압다 그놈 이가 놈 갈 놈이면 잘 갔다. 그놈이 일년만 더 있었더면 내집 팔 아 널 뻔했네."
 
272
하고 춘향이 손을 끌며,
 
273
"아가, 들어가자. 들어가서 아침이나 먹자. 그 후레아들놈 잘 갔으니 학질 뗀 줄만 알고 들어가자. 내 돈 먹고 가서 고놈이 배지가 안 터지나 보자."
 
274
춘향이 월매에게 끌려가며,
 
275
"아이고 어머니! 말을 왜 그렇게 하오? 도련님은 내 남편 이니 내 남편이자 어머니 사위 아니오? 사위도 반 자식이라 니 어쩌면 그대도록 악담을 하시오? 어머니 그리 마오."
 
276
"딸 본 사위라고 너를 보아 그 깍장이놈을 귀애했지, 너 를 두고 가는 놈은 물어뜯어 죽여도 아깝지 않거든 악담 좀 하기로 어떠하리."
 
277
"어머니 그리 마오. 도련님이 아주 가실 리가 만무하고 아주 가시더라도 날 잊으실 리 만무하니 어머니 그리 마 오."
 
278
"누구나 첫서방한테는 정이 더 드는 법이라, 나도 처음에 는 그랬다만 갈 때에 오마 아니하는 님 없고 오마하고 오는 님 없더라. 네가 아직 경난 못하여 그놈의 소리를 믿는구 나."
 
279
"어머니, 그럴 리 없소! 천하 사람을 다 못 믿어도 우리 도련님을 나는 믿소."
 
280
월매 비웃으며,
 
281
"오냐. 첫서방 적에는 누구나 다 그러니라. 너와 같이 믿 나니라. 그 서방 죽으면 따라 죽을 것도 같고 일생에 다른 서방 대하지도 아니할 것 같으니라."
 
282
춘향이 기가 막혀 길바닥에 펄썩 주저앉으며,
 
283
"어쩌면 어머니 그런 말씀을 하시오—이 자식이 이 자리에 서 목절피하는 것을 볼 양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오? 나는 죽소! 나는 죽소!"
 
284
하고 몸부림하고 운다.
 
285
월매는 범연하게 웃으며,
 
286
"오냐 오냐. 어서 가기나 하자. 첫서방 적에는 나도 그리 하였더니라. 그러하지마는 새서방 맛만 보면 첫서방만 못하 지 아니하니라. 너도 이삼일 사오일 지나면 이별 설움도 잊 어버리고 그럭 저럭 신관 사또 도임하면 또 책방 도련님 있 을 터이니 어디 서방 흉년 들었더냐. 염려 마라. 울지 말고 집에 가서 아침이나 먹자."
 
287
춘향이 생각하니 아무리 말하여도 월매의 마음 못 돌리고 자기 마음 월매에게 알리지 못할 줄 알고 울음을 그치고 일 어나 따라갈 제, 한 걸음에 돌아보고 두 걸음에 돌아보고, 몽룡의 나귀 지난 길을 다시금 돌아보며 월매와 상단에게 붙들려 집으로 돌아온다.
 
288
춘향이 몸은 비록 집으로 끌려오나 혼은 몽룡의 나귀를 따 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한양으로 행한다. 눈앞에 알른알른 박석퇴 넘어가는 몽룡의 모양이 보이고 오류정에서 손길을 부여잡고 이별하던 양이 보이니 눈물이 앞을 가리워 길이 보이지를 아니한다. 몇 번이나 돌에 채와 넘어질 뻔하나 아 픈 줄도 모르고 춘향이 집으로 걸어 간다.
 
289
혼이 빠진 듯하고 정신이 없는 듯하여 아뜩아뜩 기가 막히 니 이러고도 살 수가 있을까? 춘향은 집에 돌아오는 길로 상단이 시켜 대문 중문 굳이 닫아 걸게 하고 제방인 부용당 덧문조차 닫아 걸고 자리 펴고 아랫목에 쓰러졌다.
【 】이별(離別)
▣ 우선 표시 (부가정보나 한줄평에서 우선순위 높은 자료입니다.)
필아저* (49.166.***.**)
2021-04-07 17:03:22
『일설 춘향전』은 『춘향전』의 여러 계보 중의 하나가 아니라 여러 『춘향전』의 계보들을 하나로 종합하는 가장 최종의 『춘향전』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한다. 그리고 이는 식민사회에서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겠다는 포부에 맞닿은 것이며, 그러한 전통을 기획하는 절대적인 지위에 작가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교보문고(해설)
필아저* (49.166.***.**)
2021-04-07 17:02:30
『일설 춘향전(一說春香傳)』은 ‘춘향’이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1925년 9월 30일부터 1926년 1월 3일까지 총 96회 분량으로 연재되었다. 1925년 『동아일보』는 『춘향전』을 “조선 사람의 전통적 정신”을 계승하는 작품으로 설정하고 이를 다시 씀으로써 “참된 국민문학”을 만들어낼 것을 이광수에게 요청하고, 이러한 개작의 방향은 계몽주의적 태도를 전제로 하는 이광수의 창작의 방식과 교호하면서 근대적인 문학의 체제를 갖춘 새로운 『춘향전』을 탄생시킨다. 『일설 춘향전』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기본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하되, 식민사회에서 요청되었던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는 과정의 일환으로서 『일설 춘향전』의 창작은 적층적이고 서민적인 형태로 유통되었던 『춘향전』에 작가적 주체의 자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근대적인 소설의 형태로 확정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 교보문고(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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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의견 3
필아저* (49.166.***.**)   
2021-04-07 17:03:22
『일설 춘향전』은 『춘향전』의 여러 계보 중의 하나가 아니라 여러 『춘향전』의 계보들을 하나로 종합하는 가장 최종의 『춘향전』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한다. 그리고 이는 식민사회에서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겠다는 포부에 맞닿은 것이며, 그러한 전통을 기획하는 절대적인 지위에 작가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교보문고(해설)
필아저* (49.166.***.**)   
2021-04-07 17:02:30
『일설 춘향전(一說春香傳)』은 ‘춘향’이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1925년 9월 30일부터 1926년 1월 3일까지 총 96회 분량으로 연재되었다. 1925년 『동아일보』는 『춘향전』을 “조선 사람의 전통적 정신”을 계승하는 작품으로 설정하고 이를 다시 씀으로써 “참된 국민문학”을 만들어낼 것을 이광수에게 요청하고, 이러한 개작의 방향은 계몽주의적 태도를 전제로 하는 이광수의 창작의 방식과 교호하면서 근대적인 문학의 체제를 갖춘 새로운 『춘향전』을 탄생시킨다. 『일설 춘향전』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기본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하되, 식민사회에서 요청되었던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는 과정의 일환으로서 『일설 춘향전』의 창작은 적층적이고 서민적인 형태로 유통되었던 『춘향전』에 작가적 주체의 자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근대적인 소설의 형태로 확정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 교보문고(해설)
필아저* (106.240.***.***)   
2021-03-11 12:23:29
춘향전 중에 최고의 작품인 것 같습니다. 고전 소설을 현대 소설로 재탄생한 작품 중에는 이광수의 '허생전 (이광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광수 허생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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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설춘향전 [제목]
 
이광수(李光洙) [저자]
 
1925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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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 참조
이광수의 장편소설 (1925)
 
춘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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