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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 (靑春) ◈
◇ 청춘 2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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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나도향
 

2

 
2
그 소년은 의성군(義城郡)출생으로 대구상업학교를 작년에 마친 유일복(柳一馥)이라는 사람이다. 학교를 마치자 대구은행 안동지점 계산과에 근무하게 되어 오늘까지 계속해 온 것이다.
 
3
그는 그 주막집에서 집으로 향하여 돌아오려다가 또다시 영호루에 올라갔다. 고개를 돌리면 이름만 가진 영가(永嘉) 구읍의 쇠잔한 자취가 한가히 족재(簇在)하고 내다보면 자기의 그리운 고향으로 통한 주름살 같은 넓은 길이 낙동강의 허리를 잘라 남으로 통하였다.
 
4
그윽한 감구의 회포가 그의 마음을 수연하게 물들이는 동시에 아까 본 그 처녀의 달콤한 웃음이 애연한 인상을 박아 준 듯하다. 아무것도 없는 자기 주위가 무엇이 있어 못 살게 구는 듯하고 가득 찼던 자기 마음이 이지러진 반달같이 한귀퉁이가 비었다가 또다시 동그란 보름달처럼 가득 찼다 하는 것 같았다. 그의 마음 한귀퉁이가 비는 듯할 때에는 뜻 모르는 눈물이 흐르려 하고 그의 가슴이 찰 때에는 넘쳐 흐르는 기쁨이 그를 몹시도 즐거웁게 하였다.
 
5
그가 머리를 쳐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에는 끝없이 퍼진 하늘이 자기의 모든 장래를 말하는 것 같이 길어 보였으며, 그가 고개를 숙여 땅을 내려다볼 때에는 발 밑에 살살 기어다니는 개미보다 저 자신이 별로 커 보이지는 않았다.
 
6
그는 오늘에 비로소 그 전에 맛보지 못하던 비애를 맛보았으며 예전에 당해 보지 못하던 기쁨을 당하였다.
 
7
그는 웬일인지 자기의 몸뚱이를 돌고 또 도는 뜨거운 피가 약동하는 그대로 자기의 육체의 모든 관능을 모래 사장에 비비고 싶도록 발휘하여 보고도 싶고, 촉루(髑髏)의 곰팡내 흐르는 암굴에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눈 딱 감아 버리고 요절한 정(精)의 육향(肉香)에 취하여 그대로 사라지고도 싶었다.
 
8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9
혼자 군소리를 하기는 십여 차나 하였으나 발에다 송진을 이겨 붙이지도 않았을 것이요 몸에다 동아줄을 얽어 놓지도 않았으나 초가 삼 간 작은 집, 보이지 않는 그 방 안에 혼자 앉아 바늘을 옮기는 그 처녀의 흔적 없이 잡아 낚는 이성(異性)의 매력이 그를 잡아 놓았다.
 
10
그는 하는 수 없이 또다시 영호루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도 다시 한번 그 집 뒤를 일부러 돌았다. 행여나 그 처녀가 다시 한번 눈에 띄었으면! 다시 한번 나를 바라나 보았으면!
 
11
그러나 그 처녀의 숨소리나마 들리지 않았다. 다만 괴괴 정적한 마을 집에 저녁 연기가 자욱할 뿐이었다.
 
12
그는 가기 싫은 다리를 힘없이 끌어 서문(西門) 밖 법상동(法尙洞) 자기 여관을 찾아들어온다.
 
13
한 걸음 떼어 놓으니 한 걸음이 멀어지고 두 걸음 떼어 놓으니 두 발자국 떠나온다. 뒤를 돌아다보나 살금살금 기어오는 저녁 그늘이 벌써 그 집을 싸돌아 보이지 않으며 실모래 깔린 길이 그리로 연했으나 자기 맘 전해 줄 것은 하나도 없다.
 
14
그가 자기 은행 옆에 왔을 때였다. 누구인지,
 
15
"어데 가쇼?"
 
16
하는 이가 있었다. 일복은 다만 망연히 그를 바라보다가,
 
17
"네, 집에 갑니다"
 
18
하였다.
 
19
"어데 갔다 오십니까?"
 
20
"영호루에 바람 좀 쏘이러 갔다 옵니다."
 
21
"혼자요?"
 
22
"네, 혼자요."
 
23
"그런데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오시지요."
 
24
"참 간다 간다 하고 못 가 뵈어서 죄송합니다."
 
25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한번 놀러 오십쇼."
 
26
"네, 이따 저녁 후에 가겠읍니다."
 
27
"그러세요. 그러면 기다리지요."
 
28
그는 삼십이 가까운 그 고을 보통학교 교원인 이동진(李東眞)이었다.
 
29
일복은 자기 사관(舍館)에 돌아와 남폿불을 켜 놓고 저녁 예배를 보러 가리라 하고 성경과 찬송가를 찾아 놓고 저녁상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30
남폿불이 때없이 팔락팔락할 때에 그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것도 그 처녀이었으며 귀쪽 귀퉁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춤추는 듯하는 것도 그 처녀의 환영이었다. 그가 그 옆의 책을 집어 글을 볼 때 그 글자와 글자를 쫓아 내려가는 것도 그 처녀의 어여쁜 자태이었으며, 그가 편지를 쓰려고 붓을 들어 한 줄 두 줄 써 내려가는 것도 그 처녀의 그림자뿐이었다.
 
31
그가 저녁을 먹을 때였다. 편지 한 장을 주인 노파가 갖다 준다. 그것은 자기의 친구에게서 온 것이었다.
 
 
32
사랑하는 유군!
 
33
오래도록 군의 음신(音信)을 얻어듣지 못하여 나의 외로운 생애가 더욱 적막하다. 나는 웬일인지 아직 나어린 군에게 이 편지가 쓰고 싶어 못 견딜 만치 쓰고 싶었다. 그래서 종작이 없고 두찬(杜撰)의 흠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쓰고 싶어 쓰는 것이니까 거기에 진실이 있을 줄은 믿는 바이다.
 
34
군은 이 세속에 무엇이라 부르짖는 수많은 대명사의 껍질을 씀보다도 먼저 사람이 되기를 나는 바란다. 예술가가 됨보다도 학자가 됨보다도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35
우리 인생이 최고 이상을 향하여 부단의 노력을 하고 있다 하면 그 최고 이상이라 하는 것은 참사람일 것이다.
 
36
그러면 그 참사람이 되려면! 되지는 못하더라도 되려고 노력이라도 하려면 거기에는 그 무슨 힘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힘을 창조하는 그 무슨 신앙이 있어야 할 것이다.
 
37
유군이여 나는 달구다 ! 내버린 무쇳덩이다. 나는 참쇠가 못 된다. 참으로 쇠의 사명을 완전히 하는 참쇠다운 쇠가 되려면 그것을 불에 달구어 메로 때려야 할 것이다. 장도리 쇠메가 재아무리 많을지라도 그 쇠를 완전히 연단(鍊鍛)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 사람을 아무리 이성적으로 교육하고 훈어(訓御)하고 지도(指導)할지라도 가슴속에서 활활 붙는 사랑의 불길로 녹을 만치 달궈 내지 않으면 참사람이 못 될 것이다.
 
38
사랑의 불길! 아아 유군! 나의 가장 친애하는 유군! 나의 동생 같은 유군!
 
39
나를 신임하여주는 유군!
 
40
쇠가 불 속에 들어간다 함은 무엇을 이름인가? 철광에서 깨어 낸 차디찬 광철이 도가니에 들어간다 함은 무엇을 이름인가? 거기에 참으로 쇠 된 본분을 완전히 하려는 근본 정신의 발휘할 기회를 얻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광철은 쪼들림을 당할 터이다. 귀찮음을 맛볼 것이다.
 
41
인간 사회에 무근(無根)한 연쇄를 이룬 우리 인생도 정(情)의 불길에 들어가 이성(理性)의 망치로 두드려 맞아 참으로 사람이 되려는 그 고통은 어떠하며 그 가슴 아픔은 어떠할까? 자기의 영육(靈肉)을 정의 불길에 녹이고 달굴 때, 또는 이성의 망치로 두드릴 때 사붓사붓 박히는 망치의 흔적이 그의 가슴을 쓰리게 할 때, 아아 눈물지으며 한숨 쉴 터이다. 어떠한 때에는 해 돋는 월곗빛 하늘 같은 장래를 바라보고 너무 기쁜 눈물의 웃음을 웃을 것이며 그 어떠한 때에는 해 지는 석조(夕照)에 빠져 가는 저녁해 같은 낙망의 심연에서도 헤맬 터이다.
 
42
유군이여! 만일 그대가 처음으로 이성을 동경하게 되거든 그가 웃을 때 군도 군 모르게 웃을 것이며 그가 눈물질 때 군도 군 모르게 울 것이다. 그때의 그대는 지순(至純)할 것이며 지정(至淨)할 것이다. 조화가 무르녹는 진주 같은 문자를 주루룩 꿰어 놓은 일 편의 시(詩)였을 것이다. 아니라, 아무 시인도 그것을 시로 표현하기 곤란할 만치 청정무구(淸淨無垢) 지순지성(至純至聖)이었을 것이다.
 
43
만일 그대가 그 찰나를 얻었거든, 그 순간을 얻었거든 그것을 연장하여라.
 
44
그것을 무한히 연장하기에 노력하라.
 
45
나는 옛날에 그것을 얻었었으나 그것을 연장하지 못한 까닭에 무쇳덩이가 되어 버렸다. 군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대가 만일 그 찰나를 연장시키려 노력하다가 반 발의 반 발을 연장시켰을 때 그것이 끊기려 하거든 그것을 놓지 말고 붙잡고 사라져라. 감정과 이성의 조화 일치가 참사람 되는 데 유일한 궤도라 하면 감정의 모든 것인 사랑의 연장이 끊어지려 할 때 그 이성 혼자만 남는다 하면 그것은 궤도를 벗어난 유량(流量)일 것이니 그대는 참 사람이 못 될 것이라. 최고 이상에 이르지 못하는 자여, 인생의 사명을 이루지 못할 사람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반 발의 반 발만큼 참사람 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그대는 참사람으로 사라지는 것이 도리어 인생의 근적 정신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46
사랑하는 유군! 나는 나중으로 군이 사랑에 눈뜨거든 먼저 사랑을 얻으라!
 
47
하는 것이다. 사랑을 위하여 너의 이성을 수고롭게 하라! 그리하여 그 사랑을 얻은 그 후에 군에게 생(生)의 광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절대의 세력을 부여하는 신앙이 생길 것이다.
 
 
48
金友一柳一馥[유일복]의 것 편지를 다 본 그의 마음은 바늘 끝으로 찌르는 듯하기도 하고 또는 치륜(齒輪)과 치수(齒輸)가 절조 있게 맞아나가는 것과 같이 그의 편지에 써 있는 글의 의미와 정신이 자기 가슴속에서 혼자 휴지(休止)하였던 무슨 치륜과 서로 나가 맞아 돌아가기를 시작하는 듯하였다.
 
49
그리고 어떠한 사물을 만나든지 반드시 자기 가슴에서 새로이 약동하는 그 처녀의 춤추는 듯하는 모양을 끌어내어 그것과 조화를 시키려고만 하는 그에게 자기의 가장 경모하는 김우일의 편지를 볼 때 끓는 물로 밀가루를 반죽하는 것과 같이 차지고 끈기 있게 그 처녀와 또는 자기와 그 편지의 정신을 혼일(混一)할 수가 있었다.
 
50
그는 그 편지를 보고 가장 큰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 전보다 더 그 편지를 요 경우 그 시기에 보내 준 그 김우일을 신뢰할 생각이 생겼으며 절대의 애착하는 마음이 그를 잡아당기었다.
 
51
그리고는 다시 그 편지를 펼쳐 들고,
 
52
'만일 그대가 처음으로 이성을 동경하게 되거든 그가 웃을 때 군도 군 모르게 웃을 것이며 그가 눈물질 때 군도 군 모르게 울 것이다⋯'
 
53
하고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그리고는,
 
54
'그대가 만일 그 찰나를 얻었거든, 그 순간을 얻었거든 그것을 연장하여라. 그것을 무한히 연장하기에 노력하여라'하고 다시 읽었다.
 
55
'그렇다. 나는 웃었다. 그 처녀가 웃을 때 나도 모르게 나는 웃었지! 그렇다. 나는 얻었다. 그 찰나를 얻었다. 나는 그것을 연장할 터이다. 연장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56
그렇게 부르짖고는 주먹으로 상을 한 번 치고 벌떡 일어서 무엇을 얻은 듯이 한 번 웃었다.
 
57
' 그렇다. 나는 그 찰나를 연장할 터이다.' 구두를 신으면서도 중얼거리었다. 대문을 나서 큰길로 걸어가면서, '나는 웃었다. 그가 웃을 때 나도 나 모르게 웃었다⋯ 나는 얻었다. 그 찰나를 얻었다. 그것을 무한히 연장할 터이다. 노력할 터이다.'
【원문】청춘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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