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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紀行 大同江, 初夏의 浿江을 禮讚하며 ◈
해설   본문  
1940.5.
梁柱東 (양주동)
삼천리 제12권 제5호 (발행일 : 1940년 05월 01일)
1
麗代의 시인 金學士 黃元이 일즉 浮碧樓에 올라 고금의 題詠을 보니 모두 그 뜻에 차지 않는지라 板額을 모조리 불사르고 온 종일 난간에 의지하여 苦吟한 끝에 오직「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이란 一句를 얻고 詩思가 고갈하므로 통곡하고 下樓하였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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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 이는 人口에 膾炙되는 名句요 또한 佳句이다. 누구나 그 樓에 올라 그 강산의 풍경을 對하량이면 무의식간에 입안에 떠오르리만치 叙實的이면서도 함축이 있는 一句이다. 이만한 佳句를 을프던 金黃元으로서도 이 浿江을 중심으로 한 이른 바 錦繡江山의 절경을 충분히 詠寫치 못하고 文思의 부족함을 스스로 통곡하였다 한다. 이것은 다만 好事者流의 조화가 아니오 아마도 實事일 것이다. 이만치 浿江의 形勝은 文으로 가히 표현치 못할 절경이 있고 才로써 족히 말하지 못할 묘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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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下에 絶勝이 많다하나 발이 정작 그 고장에 미치고 눈이 바로 그 진경을 보게 될 때 이른바 환멸을 느끼지 않을 만한 곳이 몇 군데나 되는가. 멀리 바다를 건너 黃石 公園이나 락키 連峯 혹은 나이야가라, 歐洲로 가서는 瑞西의 諸湖, 水都 베니쓰, 어느 것이 명승이 아니랴만는, 대개는 實不如名으로 듣든 바에 비하여 뜻밖에 평범하더란 것이 彼地 유람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蘇杭이 좋다하고 奏淮와 西湖가 좋다하고 長江을 거슬러 *塘*瀨堆나 巫山12峽의 경개가 천하에도 절경이라 하나, 이 역시 고금 許多 문인 墨客들의 題詠으로 말미아마 과대히 선전되었을 뿐, 하물며 寒山寺. 姑蘇臺 따위의 황량한 遺墟쯤이야 凡庸 이외의 무엇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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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제 논에 물대이는 격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가 무엇이라 하여도 천하의 絶勝은 반도에 있고 반도에 名勝이 많다하나 산으론 金剛의 만이천과 물로는 浿江의 溶溶水가 으뜸이라 함이 나의 持見이다. 그건 무슨 말인고 하면, 오직 金剛과 浿水만이 名不虛傳의 奇山妙水요, 들었으면 들었을사록 보면 보드새 實이 오히려 名을 지나치기 때문이다. 풋글이나 하는 사람으로도 막상 金剛에 이르량이면 감히 글을 읊조리지 못하고, 좀 된 글句나 엮든 자로서도 정작 浿江에 와서는 애오라지 한숨이나 쉬일 뿐이리라. 사람은 부질없이 「몽.블랑」이나 「미씨시피」, 「히말라야」나 「나일」만을 일커르니 이 아니 딱한 노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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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京에 寓居한 것이 일직 10년을 헤였고 浿水 일대를 소요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언만, 그 위대한 조물주의 神品을 보면서도 그것의 萬一을 묘사하는 한 장의 노래 한 편의 文을 만들지 못하였다. 「眼前有景道不得」이라 함이 이를 두고 이름인가. 이는 無論 나의 불문의 소치려니와, 설령 내게 절대한 文才가 있고 영묘한 詩思가 있다 한들 이 자연의 神品을 조화의 妙手를 어떻게 경솔히 노래하랴. 天來의 예술가로서도 여기에 와서는 문득 畵意와 화필이 한꺼번에 위축됨을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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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탑가워라 浿江의 形勝이여. 이 일대의 절경은 가히 붓으로 그릴만한 것이 아니오. 입이 있으면 오즉 예찬이나 할 것이다. 「따뉴브」를 그리라. 黃河를 그리라 .「깬디스」를 그리라 만은 우리의 浿江은 묘사가 있을 수 없고 오직 예찬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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衆水成滙, 名爲大同. 皛羔滉漾, 抱鎬歛澧. 淨鋪素練, 皎若靑銅. 解錦纜. 浮蘭舟, 中流回首, 怳然如在畵屛中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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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崔滋. 三都賦 중에 浿水를 노래한 일절로 몇 십자 안 되는 글을 가지고 浿江의 大體를 포착한 명품이다. 「뭇들이 뫃였으므로 그 이들이 大同」이라한 것을 보면, 대동의 어의는 莊子에 이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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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同而與小同異, 此之謂小同異. 萬物 畢同畢異, 此之謂大同異. (天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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倫與物相忘 大同乎涬溟. (在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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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한 것이 그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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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勝覽」을 按하건댄 大同江은 일명 浿江이오 又名 王城江이라 한다. 그런데 후자의 명칭은 없어지고 전자만이 大同의 雅稱으로 세상에 알려저 있다. 「浿水」란 원래 이 강의 원명인 「발내」(沸流江) 또는 「벌내」(列水)의 音轉 「뱃내」의 漢譯이다. 浿江이 鴨綠이냐 혹은 平山의 猪灘이냐, 또 혹은 遼東의 水名이냐 수삼설이 학계에 錯綜하여 있지마는 여기는 구태여 穿鑒할 필요가 없겠다. 문헌 상으로는 唐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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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壤城 漢樂浪郡也. 隨山屈繚爲部, 南涯浿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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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하였으니 여기의 浿水는 大同江일시 분명하고 史上의 同名異水는 어찌되었든 浿水라면 누구나 大同江의 별명인 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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陽德. 孟山 흐르는 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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浮碧樓 앞으로 감도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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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西京의 竹枝詞마따나 이 강은 근원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寧遠의 加幕洞에서 발하였고 또 하나는 陽德. 北文音山에서 발하였다. 전자는 도중에서 여러 소지류를 합하면서 혹은 順川江 城岩津이 되고 혹은 禹定淵 雜派灘이 되었으며, 후자는 成川에서 沸流江이 되고 江東에서 전자와 합류하여 西津江이 되었다가 平壤府 동북 40리쯤 와서 春漲으로 유명한 서부 팔경의 一인 馬灘이 되고, 다시 남으로 흘러 綾羅島. 白銀灘이 되었으니 정작 大同江은 白銀灘으로부터이다. 崔滋의 賦에 「衆水所滙」란 것은 이상의 경위를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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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同江의 물은 맑기도 유명하다. 前揭한 賦에도 「淨鋪素練, 皎若靑銅」이라 하였고, 金仁存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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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帶長江澄似鏡, 兩行垂柳遠如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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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하였거니와, 둘다 이 강의 실경을 말한 것이다. 大同江 물은 가까히 보면 글자대로 碧水요 綠波요 멀리 보면 그야말로 素練이오 明鏡이다. 저 黃河에서 보는 것 같은 진흙빛 물은 찾으려야 찾을 길이 없고 鴨綠. 洛東에서와 같은 팽배한 巨波와 洶湧한 급류는 보래야 볼 수가 없다. 실로 맑고 깨끗하고 종용하고 溫籍한 것이 이 강의 특색이니, 이 물의 흐름을 형용하랴면 아모래도 溶溶이니 漫漫이니 滉漾이니 하는 따위의 글자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 白銀灘이란 이름도 이 깨끗한 강물의 여흘진 것을 형용함이오 陳嘉猷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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遠水疑從銀漢落, 綵舟如在畵圖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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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한 것은 그 前句가 단순한 과장법이 아니오 그 희맑은 것을 그대로 영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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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毋論 大同江이라도 장마 때에 홍수가 지면 진흙빛 물의 급류가 없음이 아니나 그러한 수해도 다른 강에 비하면 정도가 심하지 않다. 얼른 생각하면 그 大江이 한번 범람하는 날이면 平壤 全市가 고대 淹沒될 듯 싶지마는 그렇다고 平壤市는커녕 綾羅 一島도 침수되는 적이 극히 稀罕하기 때문에 綾羅島가 成川서 떠나려온 常浮島라는 전설이 생기고 옛날 堪輿家들의 「平壤은 舟形이라」는 설화가 있다. 이와 같이 大同江은 洶湧澎湃한 洪濤急瀾이 그 특색이 아니오 차라리 평온원만한 깨끗한 흐름을 그 자랑으로 삼는다. 東波 시에 「若把西湖比西子, 淡粧濃抹總相宜」라 하여 西湖를 기린 것이 있거니와 大同江을 사람에 비긴다면 아모래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오 여성이라도 凡女가 아닌 미인인데 그 雍容한 기상과 發越한 정신은 또한 숙녀요 재원이다. 歐語에 하천을 흔히 여성으로 취급하거니와 그 참된 實例는 오직 大同江에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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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灘을 지나 白銀灘의 急流數曲을 지나 바로 城東 일대로 감도라드는 大同江이 제 아모리 곡선미를 발휘하고 울트라.모던의 流線美를 나타내였다 하드레도 한줄기 강물만 가지고는 반도의 絶勝, 아니 천하의 절경을 형성하지 못할 것이다. 미인이 미인이 되려면 자체의 미도 필요하거니와 약간의 化粧濃抹은 있어야 하고 격에 맞는 의상과 패물, 시동과 시녀를 필요로 한다. 하믈며 알맞는 짝으로서의 배경-곧 好水는 好山을 가저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大同江 일대의 산수는 천하에도 可謂 유닉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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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 평야를 건너 동으로 동으로 바라보면 멀리 江東 三登의 완연한 連峯이 수묵 화병처럼 둘러있고, 東北으로는 高句麗 平原王의 安鶴宮 遺址가 있는 大城山이 외곽을 이루고, 가까이 나려와서는 바위 틈에서 술이 흘러나온다는 전설이 있어 史道로 하여금 「至今流不盡, 平壤多醉人」이라 노래케한 酒岩을 기점으로 한 小 산맥이 大同江을 沿하여 弓形으로 나려오다가 府北에 와서 錦繡山을 이루었고, 錦繡山의 정화는 大同江을 직접 굽어보는 牧丹峯과 좀 떠러저서 나려다보는 乙密臺로써 대표되었으니 양자의 연결선을 低邊으로 한 정삼각형의 면적은 松杉이 交翠한 常綠의 箕子林과 香魂玉骨이 무처있는 저 嬋娟洞이 그것이다. 牧丹峯을 나려서 高麗 이래의 명찰인 永明寺와 강을 끼고 綾羅島를 바라보는 浮碧樓. 그 어느 것이 절경이 아니며 명화가 아니랴. 一高一低 一曲一折이 모조리 조화의 周密한 가공이오 자연의 미묘한 絶品이라, 牧丹峯 우에 막대를 멈추고 浮碧樓가에 난간을 의지하야 이 일대의 勝景을 전망하는 자 - 누구나 「어허 강산이 그림같고녀!」 한마디를 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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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丹峯의 최고점을 차지하고 서서 남으로 바라볼작시면 淸流壁 아래를 沿하야 잔잔히 흘러가는 浿江의 일폭 素練이 德岩을 지나 練光亭 大同門을 안고 돌면서 平壤의 全市를 넌즛이 감싸으니 人道橋 以南 大同江 鐵橋에 이르기까지 점철된 시가는 완연히 煙景이다. 鐵橋 우에는 黑煙을 토하는 철마가 있고 轟然한 소리를 지르며 지나가거니와 거기서 長江이 다시 구뷔처 나려가면 古來로 才子. 佳人의 斷장處가 되어있는 저 南浦가 있지 않은가. 鄭知常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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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歇長提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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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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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얼마나 애조를 띠운 纏錦한 노래이냐. 浿江을 노래한 시가 만으되, 이 한 편은 그 중에도 미상불 絶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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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馬灘, 남으로 南浦까지 이르는 大同江의 絶勝한 景槪, 더구나 江左를 沿하야 錦繡山의 배경과 淸流壁 練光亭을 점철한 구도 - 浿江을 中ꟍ으로 한 이 일대의 形勝은 글자대로 錦繡江山이다. 이 강산의 好處를 감상하랴면 그 방법은 무릇 세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앞에 말한 바와 같이 牧丹峯이나 乙密. 浮碧에 올라서서 동남 일대를 전망하는 것이오 하나는 좀 멀리면 練光亭에서 가까이면 長慶門 舊墟 쯤에서부터 淸流壁 아래를 거르면서 綾羅島 일대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후자를 좋아한다. 올려다보면 綾羅島를 둘러 줄줄히 느러진 버들가지는 古人 시 그대로 「兩行垂柳遠如煙」인데 그것의 그림자가 강물에 거꾸러저 水道橋 밑 일대의 강물은 글자대로 碧波요 藍泓이다. 그것을 俯瞰하는 錦峯과 碧樓, 이를 그림이라 할까, 幻境이라 할까. 그러나 이 두가지보다도 더 좋은 방도는 직접 江上에 輕舸를 띠우는 것이다. 그것은 속칭 「매생이」라는 葉大의 小舟로도 좋고, 화려한 畵舫으로도 가하다. 각히 長處가 있기 때문이다. 또 酒岩 밑에서나 綾羅島 부근에서 흐름에 따라 나려가도 좋고, 大同門 부근에서 만만한 長江을 거슬러 올라가도 가하다. 어느 것이나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석양도 좋고 월야도 좋다. 미풍에 輕艪를 저어 잔잔히 흐르는 푸른 기름과 같은 수면을 미끄러저 나가며 兩岸 일대의 산수를 전망하는 맛은 雅趣를 지나 醍醐味에 가깝다. 鄭道傳 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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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之水兮悠悠, 泛蘭舟兮橫中流. 高菅激噪兮歌聲發, 賓宴譽兮獻酬. 或躍兮錦鯉, 飛來兮白鷗. 煙沉沉兮極浦, 草萋萋兮芳洲. 覽時物以自娛兮, 蹇忘歸江夷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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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운한 것은 너무나 번잡한 감이 있으나 그 逸興과 고취만은 충분히 알 만하다. 옛날 사람들이 男兒一代의 이상으로 한번 西道伯이 되여 大同江 上에 載妓隨波任去留를 원한 것은 所以然이 없음이 아니리라. 箇中에도 吾人의 눈섭을 찡그리게 하는 것은 浿江 諸詠 중의 明使. 淸使들의 마음껏 향락한 글구들이다. 陳鑑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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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筵要遣遲遲飮, 桂掉先敎緩緩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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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든지 金湜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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浪高如屋雨如拳, 人在江頭泊畵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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咫尺樓臺飛不上, 尋常詩酒慣相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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便拚客路三千里, 算作浮生五百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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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得魚龍齊起躍, 掃開雲霧見靑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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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위를 보면 그들의 득의연한 船遊의 풍경이 완연하지 않은가.(그런데 金湜 시의 首句는 과장이 너무도 심하다. 물결이 집채같단 말은 이 강에 쓰지 못할 것이다. 나는 어떤 風雨大作하는 날 浮碧樓에 올라 江上의 雨景을 바라본 적이 있거니와, 물결의 조금 설네는 모양이 아모리 과장하여 말하드래도 눈섭을 찡긴 佳人 이상의 暴威는 아니였다. 浿江을 보는 자 - 그 雨中景을 또한 잊지 말 것이다.) 往日에만 그러하였으랴. 지금도, 浿江의 船遊는 흔히 載酒載妓가 한 조건이 된양하야 俗子 유랑의 풍류ㅅ거리가 되여있다. 이는 浿江을 위하야 유감이라면 유감이려니와 도리켜 생각건댄 그들은 원악 浿江의 진미를 맛보지 못할 것이매 靈區의 진면목에 관할 배 없는지라 노닐 때로 노닐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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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浿江 일대의 형승을 생각할 때마다 畵道에서 말하는 소위 「波斯氈絨說」(imaersian carimaet theor)을 연상한다. 좋은 그림은 제대로 바로 놓고 보아도 좋고 거꾸루 매여달고 보아도 그대로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 浿江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錦繡江山이야말로 波斯의 氈絨 이상의 일대 예술품이 아니냐. 높은 데서 전망하여도 좋고, 하류에서 올려다 보아도 좋고, 江上에 앉어서 四圍을 둘러보아도 좋고, 淸和한 날이면 江中에 倒影된 수중 錦繡가 더한층 奇觀이다. 전신 半態 大寫. 小寫가 모조리 佳麗 아님이 없고 雅致 아님이 없으니 浿江이야말로 天成의 일폭 麗人圖가 아니고 무었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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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의 五大江은 제각기 특색이 있다. 鴨綠. 豆滿은 국경 朔方에 있느니만치 그 거츠른 물결과 급한 기상이 赳赳한 武夫의 風이 있고, 漢江은 활달한 襟度와 雍容한 자태가 어딘지 모르게 王者의 기상이 있다. 洛東江은 차창에서 잠간 내여다 보거나 근년에 종종 전하는 대홍수의 소식을 듣거나 급류 激湍이 협곡을 구비처서 岸壁을 따리는 모양이매 이는 본시 快漢의 본색이다. 하늘이 五大江으로 하여금 모조리 洶湧한 荒波를 가지게 하였던들 朝鮮의 水勢 - 남성적으로만 치우칠 것을, 진작부터 알맞은 배합을 잊지 않어서 여성적인 大同江 한줄기를 중간에 가로 그어 놓았으니, 조화의 묘수를 또한 경탄하지 않을 수 없거니와 이러한 의미에서 大同江은 五大江 중에서도 가장 특색있는 강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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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勝地가 勝地됨에는 세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는 天成의 靈區로써 절경과 奇觀을 가진 것이오, 둘째는 史蹟의 異와 人事의 妙가 가히 後人 유람의 자최가 될만한 것이오, 셋째는 이상의 두 가지를 혹은 글로써 혹은 노래로써 널리 천하 후세에 알리고 자랑함이다. 그런데 浿江은 어떠한가. 浿江은 첫째 조건으로 보아 천하의 으뜸이 될 만하다. 겅방진 옛날의 支那 사신들이 속으로는 경탄을 마지 않으면서도 겉으론 小邦의 것이라 하야 小錢塘이니 무었이니 하였지만는 公正한 안목으로 볼 때에 이 강의 절경을 저 錢塘. 西湖 따위에 비할 것이 아니다. 그러면 둘째 조건은 어떠한가. 浿江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고문화-古朝鮮은 母論 句麗와 樂浪, 高麗의 西京, 李朝의 平壤, 상하 수천년간의 문화사적 의의, 史上에 점철된 幾多의 陳迹과 삽화, 어느 것으로 보거나 미상불 동방 문화의 1중요한 樞點 아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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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것도 없이 古朝鮮 시대엔 이 浿江 중심의 古都가 史記의 소위 「平壤仙人王儉文宅」으로 「王儉城」(검잣) 又는 「險瀆」(검터)한 稱으로 오랫동안 고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었고 나려와 箕準. 衛滿 시대에는 漢族과의 각축지가 되였으니 그 결과로서의 이른바 樂浪의 문화는 平壤府 南10里許 大同江 南岸 일대(현 土城里. 貞柏里 기타)에 그 본거를 두었었다. 그 陳迹이 근년에 陸績 발굴되야 내외의 學的 흥미를 제공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一方 이 강을 경계로 한 그 北岸 일대는 自來로 句麗의 세력 범위였으니, 句麗가 蔚興 남하함에 미처 東川王의 平壤城, 故國原王의 黃城, 長壽王의 大城山城. 安鶴宮城. 王城, 밑 平原王의 長安城 등이 모다 이 강 연안 일대에 修築되야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였었다. 다음 近古에선 麗初에 新修된 西京과 在城, 成, 穆년간엔 契丹과의 항쟁으로 仁宗時엔 妙淸의 난으로 한동안 어수선도 하였거니와 長樂宮, 龍堰宮, 大華宮 등은 모다 이에 전후하야 史上에 興滅된 이 古都의 陳迹이다. 더나려와 근세의 幾多 사적이야 煩說할 필요도 없으리라. 依依한 一條의 長江, 迢迢한 일편의 고성을 둘러 얼마나 만은 사적과 遺痕이 客子의 마음을 설네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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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지리적. 역사적 幾多의 장점과 특색 아울러 陳迹을 가진 西京, 西京에도 大同江--이는 확실히 반도 隨一의 명승이오 동시에 족히 천하에 일커를 만한 勝蹟이라 하리라. 그러나 이로써 다만 游子 일시의 산책. 유람의 고장을 삼는 이상으로 참으로 이를 勝蹟化하고 名區化하랴면 우리는 다시 전술한 셋째 조건을 상기치 않을 수 없으니 이 名區와 승적을 절세의 대문장 혹은 驚人의 巨篇으로써 능히 천하 후세에 널리 알리고 자랑할 자는 누구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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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記
 
46
西京을 중심으로 한 약간 지명의 원칭을 부기하여 둔다.
 
47
平壤의 원명은 「벌내」이니, 본시 大同江의 원칭으로 저 史記의 「冽水」와 同索隱에 이른바 「潮水」 내지 成川의 「沸流江」은 곧 이 「벌내, 발내」의 借字이며, 「浿水」는 「내」의 音轉 「뱃내」의 借字이다. (大同江의 又 一 별칭 「蛇水」는 「뱃내」가 다시 「뱀내」로 와전된 것.) 이 「벌내」란 水名에 의하야 그 도성을 역시 「벌내」(平壤)과 仍稱한 것이다. 「大同江」이란 칭호는 「벌내」의 속칭 「한내」(大江)를 후세에 한자로 雅譯한 것에 不外한다.
 
48
平壤의 고칭 「王儉城」(史記)은 母論 「검잣」(王城)의 借字이며, 「險瀆」(後漢書)은 「검터」(王址)의 借字이다. 「樂浪」은 특히 大同江 南岸 波頭 일대의 칭으로 「」(나리)의 借字이니 「津. 川」의 義이다. 牡丹峯은 후세에 그 原義를 몰라 혹 峯上에 목단 꽃이 있었다, 혹은 峯狀이 목단과 같다 云謂하나 모다 한자 義에 拘泥된 謬說이오, 그 원명은 「한뫼」(大白. 大朴)이니, 「永明寺」는 바로 「한뎔」의 의역이다. 「한뫼」가 음운적으로 「한박뫼」(含朴山)로 音轉된 결과 「함박곳」(작약)과 혼동되야 목단으로 대역한 것이다. 이에 의하야 「錦繡山」도 실은 「검수리」(神峯)을 후세에 그럴 뜻이 한자로 雅譯한 것이오, 大同江 상류의 「酒岩」은 古者에 술이 岩間에서 용출하였다는 전설까지 생겼으나 그 원의는 단순히 「수리재. 수리바회」(車峴. 鵄述嶺. 鷲岩. 「峯岩」의 義.)의 의역이다.
 
49
「白銀灘」은 말할 것도 없이 「핸여흘」(白灘) 또는 「한여흘」(大灘)의 아역. 乙密臺의 칭은 俗에 乙密이란 古仙人의 유적으로 解하나 그곳은 원래 麗. 璿宗 시대 所築인 「龍堰宮」의 遺址로서 「龍堰」의 원칭은 「미르터」인 바 該宮은 상하 이부가 있엇음으로 「上龍堰」 곧 「우흿미르터」(웃밀터)가 「乙密臺」로 음역된 것이다.
【원문】紀行 大同江, 初夏의 浿江을 禮讚하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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