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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春園硏究 (춘원연구) ◈

◇ 1. 緖言 (서언)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938.1~4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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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過去[과거] 우리는 과거에 있어서 자랑할 만한 국가를 역사적으로 가져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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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鼎立[삼국정립]의 이전 시대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니 자세히 알 길이 없으나 삼국시대부터 벌써 우리의 祖先[조선]의 비참한 역사는 시작되었다. 북으로는 唐[당]이며 오랑캐들의 끊임없는 침노와 남으로는 왜의 건드림을 받으면서 안으로는 삼국 서로 끼리끼리의 싸움의 계속- 한때도 편안히 베개를 높이하고 잠을 자 본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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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서로 뭉쳐져서 이천만이라는 수를 이룬 조선 민족이라는 것은 삼국시대에 있어서는 오륙 개에 나누어진 적국이었다.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구전에 의지한 기록으로 상고하건대 삼국 분립과 삼한의 이전에는 한 뭉치에 뭉쳐진 민족이었다. 그것이 어떤 경로를 밟았는지 여러 국가로 분립되면서 이제까지는 형아! 아우야! 하던 동족끼리 서로 다투고 싸우고 그 싸움의 승리를 얻기 위하여서는 이족인 외국의 세력까지도 빌기를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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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신라]의 三國統一[삼국통일]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 그 뒤를 그대로 앗은 고려조를 지나서 이조의 소멸을 보기까지 한때도 외국을 굽어보거나 넘겨본 역사가 없이 전전긍긍히 지냈다. 元[원]을 흉보면서도 머리를 숙이고 절한 고려조며, 왜를 업수이 여기면서도 왜군에게 전국을 짓밟히며, 胡[호]를 더럽게 보면서도 그 正朔[정삭]을 받들지 아니치 못한 이조에까지 - 과거의 우리의 역사는 그들의 후손인 금일의 우리들로 하여금 분만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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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가운데서도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선조에게 존경과 애모의 염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즉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祖先[조선]의 훌륭한 예술 유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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藝術[예술] 遺產[유산] 만약 이 예술 유산만 없었더면 우리는 이 우리의 빈약했던 조선의 무덤에 침을 뱉기를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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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기복이 자심했으며 그런 때마다 前[전] 국가의 국민으로 하여금 조국을 회상하는 길을 막는 수단으로서 전대의 유산을 모두 없애 버렸으매, 예술 유산이라야 풍부하지는 못하다. 심산에 있는 사원, 그 사원에 잔존한 약간, 혹은 능묘에 감추인 고인의 소지품, 또는 지중에 매몰된 것 약간- 이런 것이 우리가 예술 유산으로서 우리의 조선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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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으로는 빈약키 짝이 없는 것이다. 몇 번의 국체의 변동에 혹은 파괴되고, 혹은 소실되고, 또는 유실, 被盜[피도], 온갖 파란을 겪으면서 그냥 잔존되어 있는 수개의 예술- 그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커다란 긍지로써 異民族[이민족]에게 우리의 조상을 자랑할 만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양의 다소를 말함이 아니라, 그 질로써 우리의 조상은 그 당시의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빼어난 문화 생활을 하였다는 증거가 넉넉히 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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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에 있어서, 회화에 있어서, 또는 공예에 있어서, 우리 조상은 가장 높은 문화 생활을 경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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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최고 수준의 문화 생활을 경영한 우리 조상이 후세에 남길 만한 문학 예술은 왜 창조하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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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치 못했을 것이 아니라, 창조는 하였지만, 후인이 잃어 버렸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지나의 문자가 수입되고 또 吏讀[이두]가 발명된 이상에는, 문학을 창조치 못하였을 까닭이 없다. 인생 감정의 고등 표현 방식인 미술과 음악을 가졌던 민족이, 비교적 단순한 표현 방식인 문학을 못 가졌을 까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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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에 와서 저작된 金富軾[김부식]의 「三國史記[삼국사기]」와 一然[일연]의 「三國遺事[삼국유사]」를 보면 거기는 역사적 사실보다 전통적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바보 溫達[온달]의 이야기라든가, 官昌[관창]의 이야기라든가, 百結先生[백결선생]의 이야기라든가, 이 밖에도 이와 근사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실재한 사담이라기보다 삼국시대의 소설이 아닐까 추측된다. 삼국시대의 소설이 전하고 전해서 고려조에 와서는 史上[사상]에 실재화하여 올리지 않았나? 이렇게 추측되는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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暗澹[암담]한 高麗朝[고려조] 조선 민족의 예술사상에 있어서 가장 암흑한 시대가 고려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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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장의 상품으로 화해서 비싼 값에 매매되는 고려자기가 고려조 예술을 자랑하는 유일의 증거품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밖에는 어떤 예술을 가졌었는지 상상도 허락하지 않는 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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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太祖[이태조]가 이씨 조선을 건국한 뒤에 가장 고심한 것은 고려 애국자의 박멸이었다. 그 수단으로써 ‘고려’를 상기할 만한 물건은 모두 파괴하고 燒棄[소기]하였다. 고려조의 문화의 기념품은 이씨의 손으로 모두 부숴버렸다. 善竹橋[선죽교]가 남아 있는 것이 웬 까닭인지 의심될 만치 고려 냄새를 이 세상에서 소멸시켜 버렸다. 금일의 소위 고려 그릇은 모두 이씨 조선 건국 이전에 흙 가운데 묻혔던 물건이지 地面上[지면상]에 있는 고려 물건은 이씨의 손에 잔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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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미술, 문학 등도 이때에 이 진시황 아닌 조선 시황의 손에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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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고려조는 조선 예술사상에 ‘암흑 시대’라는 넉 자를 적어 놓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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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氏[이씨] 朝鮮朝[조선조] 「龍飛御天歌[용비어천가]는 이씨 조선을 찬송하기를 강제하는 한낱 정략적 시가에 지나지 못하다 하나, 정략적으로 미루어 그 뒤에 숨은 예술적 가치는 거부할 수 없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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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암담키 짝이 없는 이씨 조선이었다. 이조의 문헌이며 제작품 등은 (兵火[병화] 몇 번에 다소간의 유실은 있다 하여도)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오백 년간에 겨우 이것이었던가? 오백 년이라는 세월은 짧지 않은 세월이다. 그동안에 겨우 이것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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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時習[김시습]의 저작 수편, 許筠[허균]의 저작 수편, 金萬重[김만중]의 저작 수편, 朴趾源[박지원]의 저작 수편, 그 밖에 몇 가지- 이것이 이씨 조선 문학의 전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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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예술에도 특필할 만한 것을 몇 개 남기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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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는 평민 압박하기와 양반 끼리끼리의 싸움과 주자학의 말단 연구로 오백 년간을 무위히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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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국시대부터 벌써 문장 예술의 도취경을 맛본 이 민족은 이러한 빈약한 문학만으로는 만족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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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本[정본]이며 그 작자까지도 알 수 없는 많고 많은 평민문학이 애독되고 애청된 크나큰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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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록, 춘향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금송아지전, 흥부놀부전, 토끼전, 숙영낭자전, 그 밖의 헬 수 없을이만치 많고 많은 문학 작품이 귀로, 눈으로, 이 민족의 새를 끼여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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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에 대한 욕구심은 가지고 있으나, 정치적 결함 때문에 문학의 지도자를 못 가지고, 문학의 제공을 받지 못한 이 민족의 새에는 정본도 알 수 없고 작자의 氏名[씨명]도 알 수 없는 평민문학이 흘러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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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배우기 쉬운 문학을 가지고, 그 위에 활판까지 아는 이 민족이, 그들의 애독하는 춘향전이며, 흥부전의 원본에 의지한 사본이나, 활판본을 가지지 못하고 그 원작자의 씨명까지 잃어버렸다 하는 것은 얼마나 참담한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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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구러 이씨 조선도 그 종말이 가까왔다. 세태가 차차 복잡하여 가면서 外事多端[외사다단], 외국(서양) 문화의 수입 등, 차차 어지러워 가서 민간사에 일일이 양반들이 간섭키가 힘들어 갔다. 아직껏 인생의 末技[말기]로서 수모받던 예술도 차차 그 날개를 자유로이 펴도 간섭할 사람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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菊初[국초] 李人稙[이인직] 한 개의 혜성이 나타났다, 국초 이인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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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혜성이었다. 황량한 조선의 벌판에 문학이라는 씨를 뿌리고자 나타난 국초는 「鬼[귀]의 聲[성]」, 「치악산」, 「血淚[혈루]」 등 몇 개의 씨를 뿌려 놓고는 夭逝[요서]하였다. 혜성과 같이 나타났다가 혜성과 같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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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에 피었던 한 개 名花[명화], 그러나 樵夫[초부]들은 이 명화를 알지 못하였다. 남이 알지 못하는 새에 피었다가 알지 못하는 새에 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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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를 맡아 가지고 일어선 사람이 春園[춘원] 李光洙[이광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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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년의 호는 孤舟[고주]-외배, 그 뒤에 春園[춘원], 長白山人[장백산인] 등, 여러가지의 이름을 가진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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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참조
▣ 기본 정보
◈ 기본
김동인(金東仁) [저자]
 
1938년 [발표]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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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04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