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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春園硏究 (춘원연구) ◈
◇ 12. 「無情(무정)」에서 「麻衣太子(마의태자)」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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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1~4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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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園硏究 (춘원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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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無情(무정)」에서 「麻衣太子(마의태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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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에서 「마의태자」까지 춘원이 걸어온 발자취― 그것은 연락과 계통이 없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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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동성이 너무도 풍부하기 때문에 매 작품마다 작풍이 다르고, 만약 자세히 조사를 한달 것 같으면 그 작품이 다른 每個[매개] 작품, 아직 그 작품을 내어놓기 전에 춘원이 읽은 책자와 공통점이 많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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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과 「개척자」가 그 작풍이 전혀 다르고, 「일설 춘향전」과 「허생전」은 비슷한 곳이 많으되 그 양자와 「재생」은 다른 사람의 작품인 듯이 풍이 다르고, 「마의태자」에는「일설 춘향전」의 流[류]를 품은 흔적이 많이 있지만 또한 근본적으로는 상위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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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의 단편에 있어서도 작품의 개개가 모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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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모두 뇌동성과 피감화력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시시로 변하는 춘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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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는 동안 춘원의 생활은 사회적으로와 가정적으로 든든히 자리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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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한 재주 있는 고아로서 표랑하던 시대와 달라 가정과 가족이 생기고 지위가 굳어 가고 생활의 근거가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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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춘원을 遇[우]하기 厚[후]하였다. 상해에서 춘원을 데려 내온 뒤부터 꾸준히 그의 뒤를 보아 주었으며 춘원이 병상에 넘어져서 사무를 못 볼 때에 춘원의 의자는 비워 두어서 후일 다시 나올 날을 기다리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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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라 만약 춘원의 편에서만 동아일보를 배척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든 동아일보는 춘원을 즐겨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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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서로 굳게 맺어진 동아일보가 점점 장성하였다. 다른 온갖 신문의 위에 군림하듯이 되게까지 되었다. 이 동아일보의 대성이라 하는 것이 춘원의 사회적 대성과 떼지 못할 큰 관계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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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은 동아일보 지상에 소설을 쓸 의무를 社[사]에서 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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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 춘원의 새는 물론 소설을 쓰는 것이 ‘춘원의 의무’일 것이다. 그러나 한 개 문학자로서의 입장으로 볼 때에는 그것은 무엇에 비기지 못할 한 개 커다란 권리라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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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조선과 같이 출판계가 빈약한 곳에서는 자기의 작품을 활자화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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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가운데서 무한히 활자화할 의무를 지게 된 춘원은 바꾸어 말하자면 무제한으로 창작을 발표할 기관을 얻은 것이나 일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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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춘원은 쓰고 또 썼다. 연달아 동아일보 지상에는 춘원의 작품이 나타났다. 그리고 가장 세력 있는 신문 지상에 가장 많이 쓰기 때문에 가장 널리 알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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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절호의 환경에 있어서 춘원이 좀더 힘들이어 쓰기만 하였으면 그는 조선 신문학의 개척자로뿐 아니라 그의 작품의 예술적 가치로까지 末代[말대]까지 빛이 났을 것이어늘 그는 이 좋은 기관을 너무도 허술히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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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는 무론 여러가지의 까닭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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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원인은 동아일보의 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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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문예를 모른다. 이순신 사당을 중수할 기금을 얻기 위하여 그 인기를 높이고자 춘원에게 이순신전을 쓰기로 명하며, 만주사변이 일어날 때에 인기를 얻기 위하여 만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 제조를 명하여(이 일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중지는 되었지만)― 이렇듯 소설이라는 것을 단지 한낱 기회적 이용물로 여기고 또는 일본의 大每[대매], 大朝[대조] 등 대신문에 학예면이라는 것이 없다 하여 일시 학예면까지 폐지하였던 동아일보니만치 동아일보는 문예에 無理解[무이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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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아일보의 사원으로 앉아서 동아일보 지상에 소설을 쓰는 춘원이매 거기 얼마간 구속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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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너무 低頭平身[저두평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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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호인인 춘원은 자기 주장을 강조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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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생활의 안정을 따라서 차차 침착은 생겼다. 이 침착 하에서 집필한 「端宗哀史[단종애사]」「群像[군상]」이하의 오늘날까지의 작품을 이하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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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것도 주로 춘원의 작품 비평에 치우쳤다. 그 작품의 사회성이며 사회 영향에 관해서는 의식적으로 피하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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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도 무론 그렇게 하겠다. 그리고 작품 비평 이외에 관한 부분은 죄몰아서 마지막에 한 묶음으로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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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하 「단종애사」를 보기로 하자. 이 글을 쓸 때 어떤 날 춘원 자신이 “단종애사만은 욕하지 말라”고 웃으면서 말한 일이 있느니만치 춘원의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요, 겸하여 이 작품이 동아일보에 연재되는 당시 누계 수천 통의 투서가 들어오니만치 독자군의 인기가 굉장하였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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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종애사」를 소설 성과상으로 검토하여 보자.
【원문】12. 「無情(무정)」에서 「麻衣太子(마의태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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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金東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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