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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사겸 평생일기 ◈
◇ 방사겸 평생일기 (제5권) ◇
카탈로그   목차 (총 : 7권)   서문     이전 5권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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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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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이 일어나더니 멀리 보이는 산 밑에서 일어나는 검은 구름은 청명하던 하늘을 순식간에 덮어놓고 모진 바람에 밀려오는 빗방울이 한참 내리더니 우박이 내리기 시작하여 한 십분 동안 내외간에 이 근경이 다 얼음 강산이 되고 말았다. 이 얼음 강산 밑에는 내가 농사하여 놓은 참외와 단감자 강냉이 헤이 알파알파 이 모든 농산물은 이 차디찬 얼음 밑에서 운명을 잠시간에 당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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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회사에서는 우박이 온 뒤에 자기네 농장들이 이번 우박에 손해가 얼마나 당한 것을 조사하기 위하여 내가 있는 농장에 왔다. 이 땅 회사의 농장이 이 벌판에 六十여 개가 있는데 한 二十개 농장이 우박에 손해를 내가 있는 농장과 같이 당하였다고 한다. 내가 금번에 우박보험을 하기만 하였다면 七, 八千元을 받아서 회사에 三分 一을 주고 二分은 내가 먹게 될 것을 너무 정밀한 예산만 믿다가 보험 돈 맛을 못보니 이것도 재수가 없는 연고라고 자탄을 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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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농사는 떡 다하고 굿 다하였으니 명년 농사를 다시 하겠다고 이곳에서 七, 八삭을 기다리고 지낼 수 없어서 나는 나성으로 가보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이 땅 회사에서 나를 금년농사를 시키는데 농비로 뒤를 보아준 돈이 二千五百元 가량이 손해가 났었다. 이것은 나의 실수가 아니고 천재로 이렇게 된 것이니 우리 양 편에서 누구를 수원수구도 할 수 없이 되었다. 나는 아직 농업에 실패한 농장에 있어서 장래에 일을 생각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가주로 나가서 무슨 기회를 엿보는 것이 상책이라고 작정을 하여 가지고 땅 회사를 찾아가서 금년 농사는 패농이 되었으니 우리 식구가 이곳서 지낼 수 없으니 가주같은 곳으로 나가야 지낼 수 있는데 나갈 차비가 없으니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한즉 이 회사 총무가 얼마면 가주에 나갈 수 있나 묻는다. 한 三百元이면 넉넉하겠다고 하니 회사 중요 임원 모이어 의논하여 가지고 알게 하여 준다고 하기로 나는 다시 농장으로 와서 기다리고 있는 중에 미스터 맥코이 부회장 되는 이가 은행표 三百元 짜리를 가지고 와서 주면서 가주로 나가 잘 지내라고 하면서 서로 손을 잡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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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수일 내로 가주로 나가려고 행장을 서서히 수습하는 중이다. 방금 편지 한 장이 왔기로 떼어보니 유홍도씨의 편지인데 나를 또 시카고로 오라고 하였다. 오라는 이유는 자기가 하는 일자리를 나와 하자고 하는 말을 앞세워 가지고 나를 시카고로 오게 하는 편지인 것을 모르고 나는 가주로 행하려던 것은 중지하고 유홍도씨를 찾아와서 보니 유홍도씨는 외촌에서 일하느라고 없고 뜻밖에 코라와 핼렌 형제가 유홍도씨가 오라는 집에서 나오며 반갑다고 한다. 우리는 짐짝을 가지고 들어가서 여러 해만에 서로 만나서 온갖 이야기를 하는 중에 유홍도씨는 언제쯤 우리가 만날까 하니 오늘밤에 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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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두 처녀가 있는 집은 상당한 사람이 상당한 세를 주고야 얻은 아파트다. 이 집세는 매주일에 四十元씩을 유홍도가 낸다고 하며 며칠에 한번씩 들어와서 먹고 쓰는 용비를 주고 간다 한다. 지금 이 두 여자가 어찌되어 여기 와서 유홍도의 경비로 있는가 한다면 한 이유가 있다. 이 큰 여자 코라는 우리 대동보국회의 영수 장경 선생의 따님인데 무려 내가 길러내다시피 六, 七세부터 내가 장경씨와 보국회의 발기인으로 한 집 한 사회 한 뜻 한 목적으로 동고동락과 환난상고를 같이하던 동지의 따님이다. 미국서 十二, 三세 때에 부모를 따라 상해로 나가서 중학을 마치고 지금은 다 큰 여자가 되었다. 불행히 장경 선생이 싱가포르에 가셨다가 객사하신 후에는 장부인께서 어린 자녀 삼남이녀를 데리고 외국인 상해에서 지내기 곤란하여서 나와 유홍도씨와 이따금 몇 십원씩 돈을 부쳐드리나 이것만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시 돈을 잘 벌지 못하는 때에 넉넉히 도울 수가 없었다. 이런 형편에서 코라가 미국에 다시 오겠다고 나에게 간청한다. 코라가 이 나라에서 자라서 이 나라 소학까지 마치고 상해로 갔지마는 미국 시민권이 없는 것은 대한서 나서 二, 三세 때 부모의 품에 안기어서 미국에 왔었다. 그래서 이 나라에 재입국할 권리가 없으므로 오기가 힘드는 가운데 또 선비가 없으니 이 여자가 도미하기에 여러 가지로 곤란하여 나와 엉클이라 하면서 엉클이 나를 도미하도록 주선하여 달라고 자주 편지가 온다. 그래서 하루는 유홍도씨를 만나서 장부인의 곤란한 형편과 코라 여자가 도미하겠다는 모든 정형을 말하고 나는 이렇게 유홍도씨한테 권고하기를 지금 상해서 곤란하게 지내시는 옛 동지 부인을 우리 두 사람밖에 도울 사람이 없고 또 그 따님 코라가 지금 근 이십삼세가 잘 되어서 미국을 오게 주선을 하여 달라고 자꾸 조르니 우리가 코라도 도와주어야 되겠다고 하였다. 유홍도씨는 그간 한 집에서 일을 여러해 하여 지금 수천 원 있는 듯하여 나는 이렇게 말하여 보았다. 지금 코라가 미국으로 오겠다고 하기로 내 편지 하기를 유홍도씨와 약혼할 마음이 없나 물었더니 허락을 하면서 선비를 부쳐달라고 하였으니 홍도씨 생각은 어떠합니까. 만일 생각이 있으시면 선비를 부쳐 주시오. 내가 코라를 왜 유홍도씨에게 소개를 하냐하면 장부인의 문제가 해결이 될까 하고 지금 하는 말이외다. 우리가 아무래도 장부인의 뒤를 도와야 될 관계가 있는데 이와 같이 옛 동지의 딸과 혼인하고 장부인을 도와주는 것이 조금도 잘못이 아닌 듯하여 내가 홍도씨에게 이 코라를 소개한다고 한즉 홍도씨가 코라를 데려 오라고 三百元을 준다. 그러나 돈만 가지고서는 들어올 수 없다. 코라가 외국 시민으로 이 나라에서 살다가 동양으로 나간 지가 여러해 되어 재입국할 기회를 잃었다. 그래서 나는 김기선씨를 찾아가서 김씨 주인 미스터 업햄한테 코라의 도미할 주선을 좀 하여달라고 청구하니 김씨는 그러마고 허락을 한다. 이 김씨는 나와 같이 대동보국회 회원으로 친절한 친구이다. 이 분이 일하는 주인은 유력한 정치가요 또 자본가요 사업가로 시카고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가운데 첫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연고로 시카고 공화당 대통령 선거할 때마다 회장으로 오래 있는 미스터 업햄이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힘으로 코라가 미국으로 올 주선이 되었다는 즉시 코라한테 편지하여 곧 떠나오라 하였더니 미국 상항에 하륙하였다가 나성으로 가서 병원에 들어가 콧병을 수술하고야 시카고로 온다는 기별을 듣고는 나는 카덴시티에 와 농사하는 동안에 코라가 헬렌을 데리고 시카고 지금 온 것인데 유홍도씨가 늙었다고 메리를 안 하겠다고 거절하니 자기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어서 나를 또 이같이 오라고 한 것이다. 하여간 하루는 코라를 조용히 불러가지고 유홍도 하고 혼인하고 살라 한즉 나에게도 거절하니 나도 할 수 없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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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코라가 유홍도씨의 돈을 벌써 수천원 쓰고 오늘 와서는 혼인을 안 하겠다고 젓는다. 지금에야 우리가 이 코라의 내용을 잘 알게 되었다. 이번 미국에 오기 전에 상해서 미국 수군과 상관이 있어서 아이를 배었다. 아이를 미국 병원에 와서 순산하려고 나성 병원에서 코를 수술한 것이 아니고 아이를 낳은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모르고 돈을 여러번 보내주었다. 유홍도씨가 친히 나가 보고야 아이를 낳아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으나 그래도 유홍도씨는 용서하고 살아주려고 하여도 코라가 말을 안 듣고 있다가 두 형제가 다 어디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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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세상 인심이 이렇게 진실치 않아서야 누구를 믿고 살며 또 살 재미가 무엇인가. 이같이 어린 여자가 나를 중간에 세워가지고 나에게 도미할 주선과 선표 살 돈을 주선하여 달라는 것을 나의 힘껏 주선하여 데려다 놓으니 들어오기 전에 약조한 것을 배약하고 어디로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다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세상사가 이와 같이 난측하구나 하고 잊어버리자는 결심을 가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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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나는 또 유홍도 말을 듣고 이곳에 온 것이 또 잘못이라고 한탄을 안 할 수 없이 형편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시카고에서 떠나 유홍도씨 일하는 집으로 나가서 나를 준다는 일자리를 가지려고 나갔다. 살림할 집은 사업하는 집 맞은편인데 여기다 우선 짐짝을 끄르고 임시적으로 정돈하고 한 三日간으로 일을 시작하기로 하였는데 불행히 또 병이 나서 꼼짝할 수 없이 고통을 한다. 주인과 유홍도씨가 와서 병원으로 실어왔다. 나는 얼서가 다시 발동하여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하는 중에서 의사한테 해부를 하여 달라고 간청하나 의사의 말이 나의 위병은 분명한 얼서니 해부하면 죽는다고 약으로 고쳐보는 수밖에 없다고 하여 세 주일 동안 우유와 씨피 가루약으로 치료한 결과로 좀 차도가 있어서 병원에서 나오게 되었다. 주인은 내가 앓는 사람이라고 일을 안 주려고 하는 가운데 유홍도 역시 그 일을 내놓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러니 내가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그마한 농장을 사가지고 병을 고칠 때까지 농촌생활을 하여 볼까 하고 유홍도한테 돈을 한 칠, 팔백원 대어주면 미시건주로 나가서 농장을 하나 사가지고 병이 나을 때까지 있어 보는 수밖에 없다고 하니 七, 八百元 돈을 주기를 아주 싫어하는 모양으로 대답을 한다. 내가 이 돈을 거저 달라는 것이 아니고 취하여 달라는 것인데 이와 같이 의심하는 표정을 가진다. 내가 누구 때문에 가주에서 매월 사, 오백 원씩 벌던 농장 일을 그만 두고 사우드 밴에 와서 아무 실효가 없는 자리 때문에 고생을 하였고 지금 가주로 나가기로 잘 작정하고 떠나려 하는 때에 또 이곳으로 오는 것이 좋다고 하여 끌어들여 가지고 병까지 나서 어찌할 수 없는 처지에 돈 七, 八百元 취하여 달라는 것을 꺼리고 의심이 나서 응낙을 안 하니 이것이 수십년 알아온 친구라고 할 수 없다. 하루는 내 아내가 홍도씨한테 돈을 주겠는가 안 주겠는가 분명히 결정하라 하니 七百元 은행표 써서 공손히 주지 않고 걸인에게 동정이나 주는 듯이 집어던져 준다고 아내되는 사람은 지금까지 두고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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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귀여운 돈 七百元을 구구이 얻어가지고 미시건주 토아잭이라는 한 일만 명 사는 타운으로 나와서 이십 에이커 농장을 二千元에 사 가지고 농촌생활을 하면서 나의 위병을 고쳐볼까 하고 적막한 농장에서 지내게 되었다. 동삼에 눈은 내려붓고 촌길은 강산같이 온 눈이 덮여서 어디가 어딘지 찾아갈 수가 없이 되었고 먹을 식물은 타운에 가야 사다 먹겠는데 버스나 화차는 없고 二, 三 마일을 걸어가야 된다. 아이들 학교에 가려면 눈 속으로 한 二마일쯤 걸어가야 되니 농촌생활이 더욱이 곤란한 것을 지금에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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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농촌생활이 이같이 곤란한 것을 깨닫고 토아잭 타운으로 나 혼자 들어와서 일을 얻어 보려고 이왕에 두어 주일 우리 식구가 이 농장으로 나오기 전에 호텔에서 있을 때에 주인을 잘 알게 되었기로 나는 지금 이 호텔 주인을 찾아와서 일을 하나 좀 소개하여 달라고 구청하였다. 호텔 주인이 쿡 할 줄 알면 지금 당장에 일자리가 있다고 하기로 쿡을 잘 한다고 하니 같이 가자고 하여 한 두어 블록 걸어가서 찬관으로 들어가서 주인과 나를 소개하고 일을 줘서 시험하여 보라고 한다. 주인은 월급을 얼마나 원하는가 하기로 나는 매주일 五十元을 받고는 일을 어디서든지 하지 않았으나 지금 나의 형편이 월급 다소를 관계할 수 없으니 지금 당신이 쓰는 쿡을 얼마나 주느냐고 하니 여인 쿡인데 매주일 二十五元씩 준다고 하면서 나는 남자니 三十五元씩 주마 한다. 그래서 나는 일하기로 작정하였으나 나는 한마디 말하여 주는 것이 필요할 줄 알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일을 하여 사업이 증진된다면 월급을 올려주겠는가 하니 사업이 잘될 지경이면 매주일 十元 하나를 더 준다 하기로 일을 시작하였다. 이왕 있던 여자는 갔고 파이 만드는 여인 하나와 그릇 씻는 처녀 하나, 주인 부처가 같이 일을 하는데 사업이 일취월장 하니 주인이 나를 좋아한다. 주인이 나를 좋아하니 나는 더욱 이 사업에 이익을 내어줄 생각이 있어서 모든 물자를 경제적으로 써주는 것을 주인이 잘 알고 내가 이 일을 그만 두고 갈까 봐서 매사에 친절히 군다. 내가 일을 한 삼삭 동안 하여 수입이 갑절이 되니 十元 하나씩 더 준다. 지금은 나의 월급이 매주일 四十五元씩이다. 나는 四十五元씩을 받아가지고 식구가 먹을 식물을 사 가지고 주인의 자동차에 싣고 주인과 같이 한 주일에 한번씩 나가서 아내와 아이들을 반가이 만나보고 두어 시간 후에는 업소로 와서 일을 하게 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책임이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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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일하는 부처는 어떤 사람들인가? 이 사람들은 나를 이 일을 소개하여 준 호텔에서 일을 하던 젊은 사람들인데 법적으로 성혼하고 살지 않고 위법으로 부부와 같이 사는 사람인데 다 순직하고 상당한 집 자녀들이라고 한다. 이 남자의 이름은 이스톤이라 하며 이 사람의 머지 않은 친척은 이 타운의 시장을 지내었다 한다. 또 이 사람의 사촌 누이라는 과수 여인은 노모 한 분을 데리고 이 찬관 옆에서 사는데 이 집에 공방 한 칸이 있다고 주인이 소개하여 주기로 매주일 五元씩 내가 주고 있다. 얼마 후에는 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여 오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주인이 나의 방세까지 물어주니 나는 지금 매주일 五十元씩 받는 것을 만족히 생각하고 한동안 있어주려고 외딴 농장에 있는 식구를 이 타운으로 옮겨 올 주선을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중이다. 마침 타운 안 집과 나의 농장과 바꿀 기회가 생겨서 바꾸게 되었다. 그러나 집값은 三千五百元이요 나의 농장은 二千元이니 一千五百元을 지고서 바꾸어 가지고 식구를 다 타운으로 데리고 나와서 나의 집에서 살림하게 되니 다 즐거워한다. 나도 방세를 주고 있던 데서 떠났다. 내가 근 일년 동안이나 방을 잡고 있던 집주인 과수 여인은 이곳 시장의 따님이요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적적하게 지내는 사람들인데 나에게 퍽 고맙게 굴기로 나도 이 늙은이들을 도울 수 있는대로 도와주었다. 겨울에 석탄도 들여다 주고 불 피울 나무도 찬관에서 모아두었다 갖다주고 나 지내는 방은 내가 건사할 터이니 일절 건드리지 말라 하고 또 무엇이고 무거운 것은 내가 다 도와주니 나를 친자식 같이 사랑한다. 이러는 중에서 내가 집을 사고 자기 집을 떠나게 될 때에 이 늙은 모녀는 매우 섭섭하다고 하면서 자봉침을 내 아내에게 기념으로 주라고 준다. 나는 고맙다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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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반 년 동안이나 서로 갈려 살기에 서로 그립고 외로웠던 우리 식구는 지금 한 곳에 다시 모이어 살게 되니 우리는 즐겁기 한량없는 중 새로 산 집도 방이 다섯 칸이요 바깥 텃밭이 커서 내가 온갖 채소를 심어서 먹는 가운데 수박 참외 물외가 어떻게 잘 되었는지 다 먹을 수 없이 되었다. 나는 이곳 와서 이렇게 지내는 중에서 이곳 올 때 유홍도한테 취하여 가져온 七百元을 다 갚고 이 三千五百 짜리 집이 온전히 나의 소유가 되었으나 아직 현금은 몇 푼 없다. 그래서 이 찬관 일을 한 一年 더 계속하여 가지고 무슨 사업을 경영키로 하고 있는 때에 불행히 또 얼서병이 발동하여 일을 하는 수 없어서 이 일을 그만 두고 집에서 일년이나 치료를 하여도 별로이 차도가 없다. 수중에 있던 현금은 거의 다 가용에 다 쓰고 몇 푼이 남지 않아서 걱정이 된다. 동네 여인들은 오고 가면서 내 아내한테 구제부에 가서 말하면 구제를 받을 수 있는데 왜 이와 같이 병들은 가장을 두고 가만히 있을 필요가 없다고 권고하여 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 온지도 몇 해가 되지 않고 또 시민권도 없는 우리가 이 타운에 괴로움을 줄 필요가 없다고 누누이 거절하였다. 이곳서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여 주는 것이 정부 돈으로가 아니고 이 타운에서 우라운욱이라는 화덕을 제조하는 공창 주인 미스터 리의 부인으로 비롯한 쏘사이티에서 이곳 부가의 구제금을 걷어가지고 어려운 가정을 도와주는 것이다. 하루는 어떤 점잖은 부인이 큰 자동차를 타고 우리집 앞에 멈추고 우리집 포취 안에 들어와 문을 두드린다. 아내가 문을 열어주니 이 부인이 들어와서 우리의 지내는 형편을 다 물어보고 앉아 있는 동안에 한 남자가 여러가지를 갖다 준다. 이 부인이 화덕회사 주인의 부인 미세스 리라는 이다. 듣노라니 남편이 앓은 지가 오래였고 자식들이 많다하여 우리 구제부에서 도와주려고 무엇을 좀 가지고 왔으니 이것을 다 쓰고 더 원하는 것이 있어 기별하면 반가이 도와주겠다 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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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부인이 갖다 준 것을 다 조사하여 보니 밀가루 二十五근 한 부대 감자 한 부술 돼지기름 五근 실과 한 바스켓 아이들 동삼내복 네 벌 눈 위에 신는 울오버 덧신 네 켤레를 우리는 뜻밖에 받고 기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우리가 이같이 남을 도와주지 못하고 남의 도움을 받아 하루라도 더 살겠다고 하는 것이 나의 양심의 불평을 준다. 그래서 아무리 부족한 것이 있을지라도 다시는 구제받기를 원치 않았다. 나는 이러는 중에서 자급자족할 생각이 더 단단히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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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급자족을 하자면 내가 평안이 드러누워서 아무 것을 경영치 않고 말로만 한다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 가지고 나는 앓는 중에서도 무엇을 하나 하여 볼 생각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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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무엇인가? 자본도 요구되지 않고 육신으로 힘드는 노동도 아니고 다만 정신상 수고만 꾸준히 하고 나가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영어도 그리 능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간신히 영어 신문을 보고 그 뜻을 알게 되리만큼은 일찍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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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 사람은 청인의 찹수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고 안 먹어본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이 찹수이가 중국인이 이 나라에 와서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는 미국인의 보통 먹는 스튜나 별로 다르지 않게 이 나라 사람들의 보통 음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미국인 가정에서 자기들이 그 감을 사다가 만들어 먹고 그러하다. 그러나 만드는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청인 찬관에 가서 상당히 돈을 쓰고야 찹수이 맛을 보게 되는 사정을 잘 알고 나는 지금 찹수이 만드는 쿡북을 하나 써서 미국인 가정에 팔아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부족한 영어로나마 이 책 한 권을 써 놓기로 작정하고 지금 쓰기를 시작하였다. 이 책은 한 二百장 가량인데 첫 一, 二장에는 음식이라는 것이 인류 생존에 어떻게 중요한가와 음식 만드는 법은 과학의 일종인데다가 미술적 색채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자면 좋은 식을 가지고도 그 만드는 법을 모르고 음식을 만든다면 맛도 없고 모양도 흉하다면 먹는 사람의 구미를 잃게 할 것이니 만드는 방법을 마침 알아야 맛도 있게 할 수 있고 보기에 아름다워서 음식을 맛보기 전에 구미부터 끌만한 미술적 색채를 사용할 줄 알아야 되겠다는 서문을 기록하였고 그 다음 장에는 이 책에서 각종 음식 가운데서 내가 원하는 것을 속히 찾아낼 인덱스 목록 호수를 적어놓았으니 누구 이 책에서 무슨 음식을 찾아서 만들기에 간편하게 차서로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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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는 二百여 종류의 찹수이와 온갖 종류의 국과 온갖 종류의 달걀로 만드는 것과 생선 닭 새우 가재 소고기 돼지고기로 만드는 온갖 종류를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어떤 모양으로 썰어서 어떻게 지지고 볶아서 어떻게 그릇에 담아가지고 어떻게 무엇으로 단장한다는 것을 자세히 분명하게 기록한 이 책 한 권을 근 삼삭 동안에 마쳐가지고 시카고 큰 인쇄소 여러 곳을 찾아가서 이 책을 한 二十萬 권 가량 발간하기로 교섭하여 보니 선금으로 사, 오천 원을 줘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형편은 사, 오천은 그만 두고 사, 오백 원도 낼 수 없다고 하니 그러면 커미션 패스로 매 권에 二錢 구문을 먹고 책을 발간하여 파는 권리를 자기에게 완전히 양여하라 한다. 그래서 시카고에서는 나 원하는대로 할 수 없기로 줄리엣이라는 곳에 유명한 인쇄소가 있다고 하기로 찾아갔다. 과연 크고도 잘 차려놓은 인쇄소다. 이 인쇄소는 Valand Printing Co. 발랜드 프린팅 컴퍼니라 한다. 사방 한 블록 안에 수십층으로 건조한 집안에서 일하는 일꾼이 사, 오천 명이 한다. 나는 이 큰 집안에 차려놓은 사무실로 들어가서 매니저를 보자고 하였으나 분주하여 오늘은 볼 수 없으니 명일에 다시 오라 한다. 할 수 없이 나와서 명일을 기다려서 다시 찾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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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다시 찾아가서 매니저를 만나서 쿡북을 하나 써가지고 온 것을 말하니 자기는 이런 것은 간섭치 않고 출판물을 관할하는 미세스 마가렛이라는 부인을 찾아가보라 하고 나와는 교섭을 아주 단절하여 버린다. 나는 이리저리 물어서 마가렛 부인을 찾아가서 청찬관 만드는 쿡북 한 권을 써가지고 왔으니 이것을 무슨 계약상으로든지 출판하여 줄 수 없는가? 한즉 이 부인이 나의 기록한 글을 보고 지금 시대에 적당한 책자가 되어 출판만 하면 많이 팔 줄 안다마는 우리 회사에 이런 책자를 출판하여 달라고 들어와 써온 것이 적여구산이라 한다. 그러나 당신 써 가지고 온 이런 종류는 이 글 하나밖에 없으니 커미션 패스로 원할 것 같으면 한번 시험하여 보려고 한다. 커미션은 책을 발간하여 가지고 팔리는 수효대로 매 권에 三錢씩을 준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천년세월 하고 이것을 기다려 찾아먹을 형편이 못되어 커미션 패스로는 원치 않고 차라리 로얄티로 얼마를 받기를 원한다고 한즉 얼마나 원하는가? 二千元을 원한다고 하였더니 三百五十元에서 더 줄 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나의 생각에 三百五十元이 적다고 좀 더 줄 수가 없나 하니 자기는 여기 더 줄 수 없으나 매니저한테 물어보아서 五百元이 되면 하겠는가 묻는다. 그래서 五百元만 받아달라고 하고서는 집으로 돌아와서 수 주일을 기다려도 회답이 없어서 다 틀리는 줄 알고 있었더니 세 주일만에 마가렛 부인이 편지하기를 三百五十元에 더 줄 수가 없다 하였기로 나의 형편이 몇백 원 더 받으려고 오래 기다릴 수 없는 형편이기로 허락을 하여 보냈더니 수일 후에 三百五十元 은행표와 또 내 이런 쿡북을 다시 만들어 팔지 않는다는 약조기까지 만들어서 동봉하여 왔다. 나는 이 약조기에 나의 이름을 써서 부치고 은행표 三百五十元은 이곳 은행에 가서 찾아왔다. 이 돈이 비록 많지는 않으나 한동안 가용에 도움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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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돈 三百五十元을 다 써버리기 전에 조그만 커피숍이라도 하나 차려가지고 벌어먹을까 하나 三百五十元 가지고는 차려놓기에 부족하여 유홍도한테 二, 三百元만 취하여 달라고 편지하였더니 돈이 한 푼 없다고 냉랭히 거절한다. 그래 나는 별 수 없이 이 돈을 가용에 쓰고 있는 중이다. 나의 속병은 완전 차도는 안 되었으나 일을 할 만한 형편은 되니 무슨 사업을 하나 하여볼 생각은 있으나 자본을 변통하는 수 없으니 불가불 이 집을 다만 반값이라도 받고 팔아가지고 무슨 장사를 하여 돈을 버는 것이 집에 돈이 三千五元이 들어간 이것을 한 푼이라도 잃고는 팔지 않는다면 나의 금같은 시간만 허비하고 이 조그만 타운에만 있을 수 없다 하고 값은 고하간에 이곳 집을 팔아치워야 앞에 이보다 좋은 기회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이곳서 한 사십 마일 밖에 있는 벤톤하버라는 타운에 가서 집 거관을 찾아가서 집 팔 말을 한즉 지금 세월이 좋지 못한 때에 조그만 타운의 집을 팔기가 어렵다고 하며 이곳 실과농장 一百 에이커와 바꾸자고 한다. 그래서 농장을 나가보자 하여 거관과 나가보았다. 때는 七月 초상인데 포도밭 二十 에이커에 포도가 참 잘 열렸고 복숭아 열 에이커도 잘 되었고 후레쉬베리가 七, 八에이커나 되고 헤이와 콩 심은 땅이 수십 에이커 있는데 밭머리로 벤톤하버 내왕하는 전차가 있어 농산물을 이 전차로 이운할 수 있다. 그러나 농장 값은 一萬五千元이요 내 집은 三千五百元을 때우고 이것을 감하여 내더라도 아직 一萬一千五百이 남는다. 이 남는 돈을 五分변을 하여 줘야 되고 또 매년 오백 원씩 물어줘야 되고 이 농장을 나의 이름으로 옮겨놓은 날부터 정부세납 근 이백 원을 내가 물게 될 것이 이 농장을 집과 지금 바꾼다 하더라도 이 농장을 내해를 만들자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나가는 것과 같으니 만일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정말로 나갈 수가 있다면 나도 이 농장을 내해를 만든다고 하겠다. 그러나 나는 이 농장에 한 가지 보는 것이 있어서 바꿀 생각이 있다. 지금 이 농장에 실려 있는 실과가 나보기에 수삼천 원 어치가 잘 있다. 나는 집도 원치 않고 농장도 원치 않고 오직 무슨 사업을 하나 시작할 자본 돈 천 원이나 이 농장에 열린 실과에서 얻게만 된다면 나는 이 농장을 버리고 갈 작정이니 농값을 감하여 보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나의 三千五百元짜리 집과 이 농장에 열린 실과와 맞바꾼 셈이다. 그러나 농주는 명년 일년만 이 농장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五百元 매년 무는 것을 받아먹고 또 정부세납 근 二百元을 내가 물게 되면 나의 발이 점점 깊이 들어가서 이 농장을 떠나지 못할 것을 희망하는 것이 마치 어리석은 포수가 범을 잡으려다가 범한테 물리는 것과 (같다고-편집자주) 나는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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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농주는 어떤 사람인가? 벤톤하버에서 패물상점 보는 유태인이다. 유태인 천성이 총명하고 상업의 이해를 잘 내다보는 사람인 것은 나 혼자만 알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 사람이 다 이와 같이 동일하게 말하니 희한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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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과실 농사는 실과나무 밑동은 회칠을 매해 이른 봄에 하고 여름에 과실이 맺히면 화학물을 기계에 넣어가지고 실과나 실과나무 전신을 뿌리는 것은 독기를 가진 흰파리를 제외하여 실과에 영향이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연년 이와 같이 하는데 이 농주 유태인은 이 농장에 과목을 위하여 금년에 이와 같이 약물을 포도밭에 뿌리지 않은 관계로 그 잘 열린 포도밭에 독기를 가진 흰파리떼가 수수 千萬이 와서 자라나는 포도를 쏘아서 썩기 시작한다. 동네에 사는 농부들이 우리 포도가 썩는다고 지금이 늦기는 늦었으나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듯하니 빨리 약물을 뿌리라고 일러 주길래 사람과 기계를 얻어다 한 五十元 허비하고 다 뿌렸다. 이미 독파리가 터치한 포도 알이야 약을 뿌려서도 썩을 것이나 아직 독파리가 터치 안 한 것은 구할 수가 있다고들 한다. 이것이 다 나의 운 불길하여 하필 이런 유태인의 농장을 만나서 실과가 다 썩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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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후레쉬베리를 따서 시카고 커미션 하우스로 부친다. 그럼 이 커미션 사람은 나는 모르고 다만 이 동네에 농군들이 부치니 나도 이 번지로 베리와 포도를 따서 상자에 놓고 회사와 그 번지만 써서 밭머리의 전차길 옆에 갖다놓으면 전차가 지나가다가 집어 싣고 가서 철로로 시카고로 보내주면 한 삼일 후면 우리 농장 우체통에 은행표가 온다. 이것이 좀 싱겁고도 이 커미션한테 많이 잘린다. 그러나 달리 하는 방책이 별로 없어서 이 약은 농부들은 다 이같이 하니 나도 따라갈 수밖에 없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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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따서 실어서 보내면 책이 오는 것을 모아놓은 것이 한 一千元 잘 된다. 실과 외에는 헤이가 한 수백 원어치 있다. 이것만 다 팔면 우리는 농장을 떠난다는 기별만 하고 우리는 콜노마라는 곳으로 가기로 다 준비를 하여 놓고 농주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다가 농주가 나오기로 우리는 떠나려 하는 때에 농주 유태인은 우리를 한 일년 더 있어서 시험하여 보지 않고 속히 떠난다고 감언이설로 주저앉히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떠나는 길을 막지 못한다 하고 우리는 떠나서 콜노마라고 하는 인구 六百명 사는 타운으로 왔다. 지금 떠나온 농장에서 애나라는 딸을 낳아가지고 이곳에 일곱 식구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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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콜노마는 인구도 적고 타운도 보잘 것 없는 한 조그마한 농장 타운이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조그마한 찬관을 五百元에 사 가지고 왔다. 이곳 타운은 아주 볼 것이 없으나 자동차 탄 행객이 연락부절하는 큰 하이웨이 두 대로가 걸쳐놓은 그 옆에 스탠다드 오일 스테이션 마당을 연접하여 여기 멈추어 가지고 기름을 자동차에 넣을 때에 우리집에 들어와서 음식도 먹고 담배와 소다 캔디 껌 온갖 것을 사 가고 또 이 근경에 파우파우라는 유명한 호수가 있어서 여름철이면 피서하러 오는 사람이 사처에서 들어와서 돈을 쓰는 곳이요 또 타운에서 수삼 마일 밖에 나가면 크리스탈 팰리스라는 댄싱홀이 있어서 사람이 밤낮으로 복작 복작하는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업을 큰 도시에서 하는 것보다 흥성하게 잘하여 수천 원 잡았다. 이곳서 영팰러라는 아들을 낳아서 잘 자라나고 사업이 잘되어 유족하게 다시 살게 되었다. 시카고 있는 한인들이 내가 이곳 와 사업을 잘하여 여러 천원 자본을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이 수삼백 마일을 찾아와서 돈을 취하여 달라고 성가시게 군다. 그러나 멀리 찾아와서 사정하는 것을 몇십 원씩 안 취하여 줄 수 없어서 수백 원 취하여 줄 때뿐이지 받을 수는 없다. 이곳 오기 전에 쿡북을 써서 三百五十元 얻은 그 돈을 다 써버리기 전에 무엇을 하나 차려놓고 벌어먹으려고 유홍도 한 二, 三百元만 취하여 달라 하였으나 일푼 없다고 냉랭히 거절하던 유홍도는 그때에 없다고 하던 돈이 어디서 갑자기 나서 써비아 사람과 끼리에서 찬관업을 하다가 불과 반년 동안에 실패를 당하고 나를 찾아와서 지금 시카고 정태은 김흥기 몇 사람이 찹수이 홀 세일을 시작하는데 고본을 내고 사면 그 회사에서 일을 얻어 할 수 있다고 하기로 나는 두 말 안하고 五百元을 내어주었다. 유홍도가 나에게 어떻게 한 것을 생각한다면 좀 의심이 불안할 것이나 나는 아무 말 안 하고 공손히 주었다. 이 돈을 받아가지고 시카고로 간 유홍도는 정앤회사에 고본주가 되고 또 여기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편지를 하면서 지금 사업이 잘되니 나도 한 一千元 고본 내라고 자주 편지가 온다. 그래서 나도 一千元어치 고본을 사라고 돈과 편지를 하였다. 얼마 후에 유홍도씨가 편지하기를 지금 이 회사 간부들이 문제로 고본주들을 속속히 들어와서 문부도 조사하고 고본주들이 서로 싸우는 것도 잘 정돈시키라고 자주 편지를 한다. 그래서 한번 들어가 보았다. 고본주로 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무식하여 문부 같은 것이 어찌되는지 알지 못하나 유홍도는 밤일을 혼자 하면서 문서책을 밤마다 상고하여 본 결과로 희미한 것과 수입 지출이 맞지 않는 것을 가지고 여러 고본주들에게 하여 이 사람들이 회사 간부들을 도적놈이니 죽일놈이니 하고 떠드는데 이 사람들은 내가 이 회사의 그 중 고본을 많이 내었으니 내가 와서 다 정돈시키고 나갈까 고하고 나한테 온갖 부정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 회사의 사장은 정태은이요 서기와 재무는 김홍기다. 이 두 사람이 배가 맞아서 고본주들을 속인다고들 하나 나는 이 두 사람 다 오랜 친구가 되어 시비쟁탈하기 원치 않으므로 이 불합한 회사에서 고본을 찾아가지고 나오는 것이 상책인 줄 알고 사장 정태은씨 하나는 이 회사에서 나갔으니 나의 고본을 내어줄 수 있는가 한즉 지금 현금 없으나 한 六삭 후에 찾아 쓸 은행표로 준다고 하기로 좋다 하고 받아가지고 콜노마로 돌아와서 여전히 사업을 하면서 六삭 동안을 지내서 다시 시카고로 들어가서 이 돈 一千元을 찾으려고 여러날 호텔에서 묵으면서 정태은 김홍기를 매일 교섭하나 돈을 찾을 수 없어서 근 백원 경비만 없애고 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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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千九百三十年은 미국에 경제공황이 와서 각양 사업이 대 타격을 당하는 때에 이 잘되던 사업이 경비를 지탱할 수 없어서 큰 타운 센조셉으로 옮겨와서 근 일년 시험하여 보았으나 경제공황은 점점 더하여 콜노마서 七, 八千元 잡았던 것이 양년 동안 경제공황이 다 가져가고 근심과 고생만 남겨 놓았다. 이런 형편에 처한 나는 돈을 다시 잡을 만한 신개척지를 구하지 않을 수 없이 되는 때에 시카고 정앤컴퍼니에서 인디애나폴리스에 찹수이 지점을 두었던 것을 나의 고본 一千元 대신에 받고 말라 하기로 나는 정태은 김홍기 양인과 같이 가 보았는데 이것은 찬관같이 차려놓지 않고 문 안에 사무 보는 테이블 한 개와 교자 네 개가 있고 주방에는 아이스박스 한 개와 청찬 만드는 가마 두 개 걸어놓은 것 뿐이니 이것이 어찌 一千元어치가 될까. 사업도 없으니 팔아먹을 물건도 비로 쓴 듯하게 없다. 그러면 이곳 이것이 단 二百元어치가 못된다. 그러나 시카고 정앤회사는 불원간 거판하게 된다고 하니 이것이라도 안 받는 것보다는 나을까 하고 이것을 부득이 받고 一千元 은행표를 다시 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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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센조셥에서 하는 찬관은 오늘 낼 문을 닫게 되는 고로 쿡 하나와 상 심부름하는 처녀를 얻어두고 아내와 관할하라고 하고 나는 인디애나폴리스로 혼자 와서 한인 세일즈맨 한 분을 두고 이 사업을 개시하였다. 어떤 날은 十元도 어떤 날은 五元도 어떤 날은 한 푼도 사지 못하는 날이 종종 있어서 문서책에 기록할 것이 없었다. 나는 이 나라에 와서 각양 사업을 수십 년 하여 보았으되 이와 같이 사업이 안 되어 한 푼 못산 날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사업을 문을 닫고 그만 둘 생각은 없어서 그냥 끌고 나간다. 전기 가스 전화 집세를 주지 못하여 수백 원 걸머졌다. 그러나 공황이기 때문에 독촉은 안 하고 장차 물어줄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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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황은 차차 풀리기 시작하여 각양 사업이 전과 같이 소비량이 올라감을 따라 제조량도 높아지니 자연 무직업자가 직업을 얻게 되어 돈을 벌게 되니 온갖 물건 매매고가 올라가서 공황이 풀리고 옛 상태를 다시 가지게 되는 때에 나의 사업도 지금은 경비 염려가 없이 되고 차차 조금씩 여재가 넘어선다. 이곳은 三十萬 명 인구를 가진 과히 적지 않은 타운에서 찹수이홀 세일하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으므로 값도 상당히 받고 큰 회사와 병원과 사가에서들 와서 사 가기를 시작하여 매일 五, 六十元으로 七, 八十元씩 수입이 되어 공황 때에 졌던 빚을 다 갚고 사업 처소를 일층 확장하여 놓고 잘하는 때에 뉴욕에서 찹수이홀 세일을 하는 친찹스컴퍼니에서 큰 도시마다 지점을 두기 시작하여 이곳까지 왔다고 소문이 난다. 그러나 친컴퍼니 사람은 아직 만나보지 못하였다. 이곳에 친찹스 지점을 둔 것이 아니고 친찹스 팔아주는 세일즈맨 하나를 두고 클리블랜드에서 만들어서 매일밤 철로로 부쳐 보내는 것을 이곳에 있는 세일즈맨이 아침마다 나가 찾아서 제 자동차에다 싣고 다니면서 팔아가지고 제 커미션 10%를 제하고는 클리블랜드로 매일 부치는 것이다. 이 사람이 다니면서 파는 찹수이는 나보다 매 갤런 二十五錢으로 三十錢씩들 받는 고로 나보다 갑절 사업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 친찹수이 때문에 근심이 안 된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친찹수이 세일즈맨을 한번 만나보고 내가 이 사람에게 커미션을 좀 더 주고라도 이 사람 이용하는 것이 나의 사업에 영향도 받지 않고 큰 이익이 될 것을 분명히 내다보고 이 사람을 만나려고 사방에 주선을 하여본 결과로 하루는 만나게 되었다. 이 사람은 젊은 유태인이요 이름은 랭이라는 사람인데 세일즈맨 자격이 잘 되어 보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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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기를 시작하였다. 당신이 이곳 사람으로서 이곳서 만드는 찹수이를 두고 먼 지방에서 만드는 찹수이를 팔아줄 필요가 무엇이오. 내가 지금 당장에 세일즈맨을 원하니 나의 찹수이를 좀 팔아주는 것이 어떠합니까. 또 친찹수이 회사에서 커미션을 얼마를 받습니까? 한즉 이 미스터 랭의 대답이 10%를 받는다 하기로 나는 15%를 줄 것이니 내 찹수이를 팔아줄 수 있는가 한즉 수일 후에 와서 알게 하여 준다고 하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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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사람이 수일 후에 와서 나의 찹수이를 팔아주기를 고대 고대하고 기다렸다. 三日 후에 이 사람이 찾아와서 친찹수이 팔기를 그만 두고 우리의 일을 보아준다고 하기로 나 대희하였다. 내가 지금 이 랭이라는 사람이 우리 일을 보게 되는데 대하여 대희하는 것은 이 사람이 친찹수이 팔던 커스터머를 많이 갖고 나한테 들어오는 것이 우리의 커스터머보다 많다. 매일 四, 五十 갤런을 더 팔게 된다. 이 랭이 들어오자 사업은 삼 갑절 되어 매월 칠, 팔백원에서 팔, 구백원 이익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일을 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알고 이 사람에게 상당히 대우를 한다. 그래서 이 사람도 만족하여 만 일년 동안을 우리와 같이 있는 동안에 이 사람도 수三千元 벌었고 나도 六, 七千元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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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원리는 무엇이고 그대로 있지 않고 바뀌는 변동이 있는 것은 천연한 이치인 줄 안다. 사람은 젊어서 늙어지고 아름다운 꽃도 피면 떨어질 때가 있고 부자가 가난뱅이가 되고 가난뱅이가 부자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 원리원칙으로 되는 것이니 나도 이 원리원칙에서 살아가야 될 줄 아는 동시에 나의 사업을 도와주던 랭이라는 세일즈맨 일을 그만두고 이곳에 있는 폭스자동차 회사로 들어가서 세일즈맨 일을 얻었다고 우리 집일은 그만 두고 갔다. 그러나 랭이 가지고 들어왔던 그 커스터머들은 다 그냥 찹수이를 그냥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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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 사년 동안을 있는 동안에 이곳서 공부하는 학생 두어 사람을 사귀었는데 장기영 김창수 이 두 학생은 매일 만나게 됨으로 매우 친절하게 되었었다. 학생 두 분은 고학을 하는 때에 물론 부족할 것이 많아서 나한테 돈도 취하여가고 시장할 때에 음식도 내 집 같이 와서 자시는 것을 우리는 조금도 괴롭다고 한 적이 없고 三年 동안을 한결같이 공급하고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도왔었다. 장기영씨는 학교를 그만 두고 한 일년 동안 세일즈맨으로 타지방으로 갔다. 지금은 임병직씨라는 분이 오셔서 찹수이 세일즈맨 잡을 달라고 하여 주었다. 이때는 하절이라 사업이 저락되는 때이므로 한 서너 달 하다 그만 두고 가셨다. 김창수씨는 의학을 마치고 나와서 있는 때에 셀루이스 에만(반?-편집자주) 호스피탈에 가서 에리테순이라는 오줌통에 병든 것을 특별히 공부하려 하나 이곳 올 경비도 없고 와서 기숙할 경비가 없어 할 수 없다고 걱정을 하기로 셀루이스에 내 친구 한 분이 있으니 기숙할 걱정은 없고 갈 차비는 내가 줄 터이니 가서 원하는 공부를 하라고 하였다. 나는 셀루이스에서 찬관 하는 친구 유홍도씨한테 편지하기를 지금 이곳서 학생 한 분이 귀처로 가니 사업에 무엇을 좀 보살펴 달라고 하고 기숙을 그 학생에게 무료로 시킬 수 있는가 물었더니 반가이 응낙하기로 김창수 의사를 셀루이스로 보내고 보니 이곳에는 매일 만나보던 학생은 한 분도 없이 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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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센트루이스에 있는 유홍도 찬관 셋이 다 재판에 걸려서 율사를 사 가고 재판을 하는 중에 돈이 없다고 五百元만 보내달라고 하여 보내주었다. 그 다음에는 나에게 와서 이 재판사건을 와서 맡아가지고 처리하여 달라고 편지가 자주 온다. 그러나 나의 찬관을 문을 닫고는 갈 수 없다. 이러는 때에 한인 가운데 일도 안 하고 이리저리 다니는 어중이떠중이가 하나둘 몰려와서 유홍도 일을 도와준다고 뜯어먹고 속여 먹는다는 기별이 자꾸 온다. 내가 보낸 학생 김창수 의사도 내가 와야 이 일을 바로 잡겠다고 빨리 오라고 한다. 그러나 나의 사업을 그냥 두고는 갈 수 없다고 회답하고 이 사업을 조치되는대로 간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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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년 동안 헤어졌던 장기영씨가 왔다. 나는 반가웠다. 내 생각에 돈을 좀 벌어가지고 온 듯하여 나의 찬관을 사서 하여 보라고 하였다. 장기영씨는 마음은 있으나 할 줄 모르니 사면 어떻게 합니까 한 다음 만드는 것은 내가 얼마동안 가르쳐 줄 것이니 염려 말고 사라고 하니 값을 묻는다. 그래 내가 값을 많이 받으려고 장한테 팔라는 것이 아니고 장형께 사업할 기회를 드리려고 하니 값을 많이 달라지 않고 二千元 주면 이 안에 있는 온갖 물건을 다 준다고 하였다. 장형은 사기로 허락하고 현금으로 三百元만 주고 여재 一千七百元은 매월 七十元씩 벌어 문다고 하니 나는 좀 불만하다. 그러나 이미 이 분을 도와주려고 하고 이 잘되는 찬관을 二千元에 내어놓는 때에 현금이나 페이먼트가 적다고 안 팔 수 없어서 장형의 원대로 다 허락을 하고 나는 장기영씨에게 찹수이 만드는 법을 근 일삭 동안 실제적으로 가르쳐서 이 분이 넉넉히 할 만하기에 나는 어서 유홍도씨의 찬관 셋에 대한 재판사건을 도와보려고 셀루이스로 오게 되는데 장기영씨는 아직 어떤 값 많이 받는 찹수이는 아직 서투르니 내 아내가 한 주일 떨어져 있어서 도와 달라고 또 중학교를 방금 마치고 있는 딸애가 문서를 맡아보던 그것을 다시 맡아서 도와달라고 하기에 내 아내와 같이 떨어져 있어서 얼마동안 도와주다 나와 같이 셀루이스로 다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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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유홍도씨 사건을 내가 맡아가지고 이 일을 정돈하기에 전력하게 되었다. 유홍도씨가 자기 찬관 셋이 무슨 사건으로 재판에 걸리어 가지고 일년 동안이나 끌고 나오는 것이 무슨 일인가? 지금으로부터 二年 前에 유홍도는 이곳에 청찬관을 하나 열 때에 청인 둘을 갖다 두고 얼마동안 하여 나가는 때에 사업이 괜찮게 잘 되어 여기서 돈을 좀 잡게 되니 이 두 청인한테 이 사업이 더 잘되면 월급 외에 이익을 나눠주마 한 언약이 있었고 또 이 찬관 시작할 때에 이 두 청인의 돈을 한 五百元 취하여 쓴 일이 있었는데 아직 갚지 않고 있다가 지금 이 찬관에서 이익 난 돈을 가지고 나와서 다른 위치에다 찬관 하나를 또 내고 이 찬관에도 청인 둘을 두고 또 이익이 있으면 월급 외에 이익을 나눠준다는 언약이 있었다. 얼마 후에 이 찬관 두 곳에서 얻는 이익을 뽑아가지고 나와서 또 다른 위치에다 第一, 二보다 크게 내고 청인 매니저를 두고 하여 나간다. 그러나 사업이 잘 되지 않는 중 청인 매니저한테 속고 잘리기 시작하여 빚을 지기 시작하는 동시에 먼저 선 두 곳에서 이익이 있던 이 두 곳도 밑진다고 주인 유홍도한테 물건 값을 물어주라고 보낸다. 실상 처음 연 두 찬관에 이익이 나지 않아서 물건 값을 못 갚는 것이 아니고 유홍도를 속여먹기 위하여 일부러 이렇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청인만 잘못이라고 할 수 없이 경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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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찬관 셋이 다 유홍도의 것인데 청인 일꾼을 한 곳에 둘씩 두고 한 주일에 한번씩도 가서 문서와 사업 되는 형편을 조사하여 보지 않고 한 달에 한번도 가지 않고 청인들에게 그냥 맡겨두고 본즉 부처님이나 성인군자가 아니고 사람인 이상에야 죽어서 무슨 부처가 되겠다고 속여먹을 기회를 주는 이것을 안 속여 먹을 어리석은 놈이 없다 하고 속여먹을 수 있는대로 속이는 것을 유홍도도 모르는 바가 아니니 분이 나고 마음이 상하였을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유홍도는 율사를 사 가지고 이 두 찬관에 가서 청인을 다 내몰고 문을 걸어 맸다. 이 두 곳에서 쫓겨나간 청인 넷이 분하여 유홍도를 걸어서 재판을 하게 되었다. 이 청인들의 재판하자는 이유는 그 찬관 셋이 다 같이 이익 보자는 약조가 있으니 우리를 이같이 쫓아낼 권리가 없고 유홍도가 우리의 돈을 취하여 가지고 시작한 찬관에서 이익을 많이 얻은 그것을 나눠주지 않고 혼자 다 가졌으니 이것을 오분파 하여 나눠달라는 것이 청의 지금 정장하는 이유라고 한다. 그러나 유홍도는 이 청인의 이유가 다 거짓이라고 한다. 하여간 청인의 율사는 유력한 사람이요 유홍도가 산 율사는 나이도 어리고 쿠룩질이나 하여 먹는 율사가 되어 재판도 하기 전에 이렇게 저렇게 벌써 돈을 五, 六百元 갖다먹고 일년이 잘 되어서 아직 재판은 끝이 안 나고 이 율사 놈은 매일 계집을 데리고 와서 三, 四元어치씩 먹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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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도는 병까지 나서 찬관 윗층에 누워서 앓고 찬관 사업과 이 재판 사건은 내가 전부 다 맡아가지고 정돈시키려고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여 본 바 우리의 율사를 무슨 모양으로든지 쫓아내고 우리끼리 해야 이 사건이 빨리 해결이 날 줄 알고 율사 냉글을 만나서 지금 유홍도는 돈이 일 푼도 없이 되어서 재판을 이긴다 하더라도 한 푼 찾을 케이스가 못되는 것을 가지고 율사를 고용하여 율사 비를 더 낼 수 없으니 당신은 오늘부터 이 케이스를 놓고 물러나라고 하니 나를 불량한 태도로 건너다보며 내가 와서 이 사건에 율사 없이 정돈시키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이해를 설명한다. 그러나 내가 율사 없이 이 사건을 넉넉히 정돈시킬 수 있으니 당신은 물러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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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 오기 전에 청인을 내몰고 문을 닫던 찬관 두 곳은 하인을 한 곳에 하나씩 보내어 사업은 한다. 그러나 유홍도에게 무슨 이익이 있나. 한 곳에는 강정근이요 한 곳에는 유재익이가 매니저라고 하면서 청인들 있을 때보다 더 쿠룩질 하니 이익이 있다 하더라도 주인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이 강정근이라는 자는 미국 온 지 사십여 년 동안에 하루도 노동을 안 하고 잘 먹고 잘 입고 서양여자에게 수삼차 장가를 들었던 사람이다. 이곳 올 때에 一分 없던 사람 지금 매일 저녁에 우리 로이 부처를 데리고 반반한 나이트클럽으로 다니며 우리 로이의 마음을 사 가지고 자기에 무슨 양탁을 채워보려고 우리 로이와 아주 친절하게 되는 때 유홍도 찬관 셋을 다 제 이름으로 옮겨놓고 이것을 다 자수어인지공을 하려고 다 만들어 놓은 것을 나는 알고 먼저 우리 로이를 물리친 것이 강정근과 우리 율사 사이에 이런 음계를 꾸미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한 것이었다. 며칠 후에는 강정근도 가라고 월급을 다 회계하여 주어서 보내었다. 아직 한인 한 분이 있어서 겉으로는 유홍도를 도와주는 척 속으로는 제 망태 속만 채우고 있는 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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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러한 형편에서 청인 네 사람도 손해가 는다. 이 네 사람은 서양인 호텔에서 여러 달 묵으면서 이 재판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전화로 이 청인 있는 호텔을 불러가지고 청인과 말좀 하자고 하니 청인이 대답하기로 나는 유홍도의 친구로 이곳 와서 당신네들 재판사건을 평화적으로 당신들과 정돈하려고 하니 오늘 나 있는 찬관 윗층으로 올 수 없겠냐고 물으니 저희는 오기를 원치 않으니 나에게 저희 있는 호텔로 오라고 하기에 간다고 하였다. 나는 이 청인을 찾아가서 서로 인사하고 앉아서 나는 말하기를 시작하였다. 우 한·청(한국·청국) 양국인은 무여 형제와 같은 처지를 가지고 외국법정 등장하는 것이 우리 양편 율사만 좋게 하고 우리 양편은 다 손해밖에 날 것이 없으니 왜 우리끼리 이만한 일 조치를 못하리까. 나는 벌써 우리 율사를 물리치고 당신들과 친히 교섭하려고 내가 지금 찾아왔으니 당신들이 유홍도한테 요구하는 조건이 무엇이오. 말씀하시면 내가 할 수 있으면 하여 보려고 찾아왔노라 한즉 이 사람들이 말하기를 취하여 준 돈 五百元과 월급으로 지난 두 달치 못 찾은 것 四人에 六百元, 우리 넷이 오, 육삭 호텔비와 율사비 하여 一千二, 三百元이 되니 우리는 三千元 하나를 받지 않고는 쌔틀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유홍도는 지금 일 푼 전이 없으니 당신들이 지금 말하는 三千元을 돈으로는 받을 수 없는 것만은 사실인즉 돈으로 받으려고 집을 쓰고 시간만 허송하는 것보다 능히 될 수 있는 것을 요구하면 당장에 내가 허락할 터이니 당신들이 내 말을 들을 테요 한즉 말을 하라고 한다. 당신들이 잘 아는 유홍도 찬관 셋이 있으니 이 셋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가지고 이 케이스를 쌔틀하려면 내가 당장에 허락할 터이니 셋 중에 어느 것을 가지려 하오 하니 탤마에 있는 것을 원한다고 하기로 나는 허락을 하고 청인의 율사한테 가서 법적으로 후폐가 없이 잘 쌔틀하자고 하여 청인들은 이곳에서 큰 사업하는 청인을 데리고 율사에게 갔다. 이 청인, 이곳에 있는 청인의 시장이라고 백인들이 알아주는 사람인데 성명은 죠린이라 하면 이곳서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우리는 지금 율사한테 와서 모든 일을 다 법적으로 만들어 가지고 청인 네 사람의 사인과 나의 사인을 한 조약서를 각기 한 장씩 가지고 서로 웃는 낯으로 손잡고 인사를 피차에 교환하고 헤어지니 이때에 오래 승강하고 나오던 사건이 결말을 보게 되었다. 나는 이 길로 유홍도한테 와 이와 같이 쌔틀하고 온 것을 다 설명하니 유씨도 이제야 마음을 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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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찬관 둘이 아직 있으나 큰 것은 매월 수백 원씩 밑지고 적은 찬관은 잘만 하면 이익을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재판사건으로 근 일년 동안을 불신용한 사람들을 갖다 두고 사업을 하느라고 남의 빚을 이천여 원을 걸머졌다. 이 사람들이 빚 받으려고 찾아오는 사람이 매일 몇인지 알 수 없고 빚달년에 사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빚들을 청산하여 버리려고 빚 받으러 오는 사람에게 이왕 주인은 이 사업을 거판하고 그만 두는 것을 내가 하여 보려 하나 빚을 청산하기 전에는 나도 원치 않는다 하면서 이 빚을 25%로 받아가기를 원하면 내가 매월에 二十五錢 내준다고 하니 통째 잃는 것보다 낫다고 다 찾아간다. 그러나 시카고 청인 탐챈회사에 진 빚 八百여 원은 25%에 받지 않겠다고 거절을 한다. 그래서 마음을 놓을 수 없어서 청인의 율사를 찾아가서 그린 스트리트에 있는 유홍도 찬관을 내가 모게지 전당을 잡아야 되겠으니 모게지를 내 이름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면 시카고 청인 탐챈이 이 찬관을 법률로도 앗을 수 없이 만들어 놓고는 이 모게지 페이퍼는 유홍도한테 갖다 주고 나는 아무 상관치 않았다. 이 잘 되고 적은 찬관은 유홍도가 하고 나는 사업이 잘 안 되어 밑지는 큰 집을 맡아가지고 한 삼삭 시험하여 보아야 별 수가 없어 八, 九百元 버리고 유홍도한테 문을 와 닫든지 와서 친히 하든지 나는 내 돈을 여기다 더 집어넣지 않겠다고 하니 문을 닫고 물건은 다 우리집 그라지에다 다 갖다 적재하여 두라고 하여 나는 이것을 옮기느라고 죽을 애를 다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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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선 살림할 집을 하나 사고 한동안 쉬기로 작정하고 좀 한가하게 쉬고 있다. 그러나 사업에서 수십 년 밤낮 분주히 노력하다가 이같이 아무 것 안 하고 들어앉으니 별 취미도 없고 갑갑하기 짝이 없으므로 무엇을 다시 경영하고 있는 중에서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백만금 부자가 잠시간에 오고 가는 스톡 마켓 노름을 한번 하여 볼 생각이 나서 신문을 매일 사다 놓고 수만 종류의 스톡 가운데서 어느 놈을 택하여 사야 돈을 남길까 하고 궁리를 하고 또 하다가 U. S. Steel을 택하여 가지고 一百 고를 四千五百元을 주고 사니 정부 세납과 사주는 구전을 다 병하면 四千六百元 가량이 들어간다. 이 스톡을 사 놓고 집에 와서 신문을 사다 놓고 각양 스톡 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을 살피고 있다. 내가 산 스톡이 매일 오십 전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한 주일 잘 지내서 내가 산 스톡이 매 고에 五十元이 올라갔다. 매 고에 四元씩이 올랐으니 四百元이 남는다. 나는 팔까 말까 하다 만일 내려가면 팔 기회를 놓칠까 하고 얼른 샀던 은행에 가서 빨리 팔아달라고 하니 벌써 뉴욕에서 우리 전보를 받고 벌써 팔았다고 하는 회전이 왔다. 이 판 스톡 값을 은행에 맡기고 집으로 돌아올 때 기쁘기 한량없고 백만 원 그림자가 내 눈앞에 어른어른하니 용이하게 잡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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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샀던 스톡을 팔고 와서는 이 스톡이 훨씬 내려가기를 기다려서 퍽 내려가면 또 사려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한 주일 동안을 기다려도 별로 변동이 없다가 두 주일이 되자 四十一元에 떨어진다. 나는 빨리 은행에 가셔 U. S. Steel 一百五十 고를 사 달라고 하고 그 은행에서 한 반 시 기다리고 있노라니 四十一元에 샀다고 하기에 돈을 다 쳐주고 집으로 돌아와서 매일 신문만 들여다 보고 있다. 근 세 주일을 기다리고 있노라니 五十二元에 올라갔다. 그러나 은행은 벌써 닫았다. 할 수 없이 명일을 기다려 은행에 가서 팔아달라고 하니 밤새에 五十錢 내려가 五十一五錢에 팔아가지고 그 돈은 또 은행에 맡기고 왔다. 이번에 一千五百元을 남기었으니 나는 사업을 고생스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이 해 一年 동안에 일곱 번을 맞추어서 三千七百여 元을 벌었다. 그 이듬해에는 찬관 사업 또 하게 되어 시간도 없어서 이 노름을 칠, 팔삭 그만 두고 사업에만 종사하고 나가는 동시에 스톡 노름을 한번 크게 하여볼 생각이 늘 심중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스톡 노름을 바로만 하면 돈을 꼭 잡는 것인데 이것도 한 잡기와 같아서 실수 없는 편으로 하다가도 허욕이 나서 속히 큰 돈을 잡으려고 하다가 실패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스톡 노름을 실수 없이 하려거든 우선 좋은 스톡을 골라서 살 것이요 둘째로 주의할 것은 내 자본이 적으면 적게 살지언정 많이 사서 이익을 많이 얻으려고 은행에 변을 얻어서 사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나의 자본이 적으면 적게 사서 시세가 올라가면 팔고 내려가면 팔지 않고 어느 때까지라도 쥐고 있으면 올라갈 때가 있어서 다소의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마는 나의 자본이 적다고 은행에서 변을 얻어 사는 것은 위험하기 한량없다. 가령 내 돈이 四千元이 은행 있다면 60% 六千元을 은행에서 얻어 一萬元 어치를 살 수 있다. 만일 스톡이 올라가는 경우이면 돈을 많이 잡지마는 시세가 내려가는 경우에는 마음이 초조하고 겁이 나서 사람의 양심까지 흐려놓을 수 있는 동시에 스톡도 연일 내려가서 一百元 주고 산 것이 五十元이나 四十元에 고개를 숙이고 내려간다면 은행에서 빌려준 돈에 손해가 날까 하여 위협적으로 팔아서 저희의 돈은 건지나 고본을 샀던 사람의 자본은 한 푼 남지 않고 잃어버리고 마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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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구주에서 쳄벌린과 히틀러 사이에 번익조약한 것을 히틀러가 배약함으로 구주 각국은 第二次세계전이 일어난다고 떠드는 판이다. 나는 이런 소문을 듣고 전쟁이 불원한 장래에 올 줄 알고 공기선 보잉 스톡 一百 고와 컷티스 一百 고를 샀는데 내 자본은 五千元에서 더 없는 것을 가지고 은행에서 三千元을 얻어서 도합 八千元 어치를 샀다. 내가 이왕에 사서 재미를 본 U. S. 스틸을 안 사고 이번은 공기선 고본만 산 것은 第二次세계전쟁이 꼭 올 줄 알고 또 전쟁이 일어나면 공기선 스톡이 평시보다 무척 올라갈 줄 알고 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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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상대로 구주에서 전쟁은 벌써 일어나서 적군이 룩셈부르크, 홀랜드, 벨기에 이 모든 소약국들을 돗자리 말 듯하여 가지고 앨사스-로렌으로 나가서 불란서 파리성을 점령한 후에는 덕국의 유력한 공군은 매일 영국 런던과 각 도시들을 함락하여 그 화려하던 도시들이 잿밭이 되는 것을 보는 세계는 이번 전쟁에는 영국이 별 수 없이 망한다고 만구동성으로 떠들게 되는 동시에 뉴욕 스톡 마켓 값은 고개를 푹 숙이고 내려만 간다. 영국이 덕국 폭탄에 위협을 당하는 그것이 왜 미국에 스톡 마켓 값이 저락될 까닭이 무엇인가? 이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고 영국은 상공업이 일찍이 발달된 나라가 되어 세계만방 어디를 가든지 영인의 자본이 머무르지 않은 곳이 없고 또 영인의 상공업의 세력이 확장되지 않은 곳이 별로 없으므로 월스트리트 스톡 마켓과 은행에 영인의 자본이 없는 데가 없는 이 사람의 나라 영국이 히틀러 폭탄에 망하게 된다면 세계적으로 널려서 상공업자나 은행가나 다 일체로 망할 것이라고 할 것은 이번 전장에 전패한 독일을 보더라도 확실하다고 안 할 수 없다. 불행히 나는 이러한 현상이 올 줄 모르고 마진 스톡을 샀다가 실패를 당하게 되었으니 수원수구할 곳도 없고 다만 나 혼자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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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면; 49쪽 원문 영인 누락)
【원문】방사겸 평생일기 (제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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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0년 11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