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무명 작가(無名作家) 목군(木君)에게 ◈
카탈로그   본문  
계용묵
1
무명 작가(無名作家) 목군(木君)에게
 
2
군(君)은 언제인가 노상에서 나를 만났을 때 발표한 작품을 내가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그것을 말, 말끝에 은근히 경위 떠 보고 아직 보지 않았으면 한번 보아 달라는 그런 의미까지 포함된 태도를 가지더군요. 그래서 나는 군이 아마 그 작품에 자신을 가졌나,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작품이 활자화된 것을 자랑하는 철없는 자부심에선가 그 어느 것일까에 흥미를 느끼고 그 후 나는 군의 작품을 주의해 보았소.
 
3
그러나 보고도 나는 군의 그때 태도가 어디 있었던 것인가는 지금도 모르오. 자신을 가졌던 것이라고 보자면 군은 소설을 너무도 모르는 사람이 될거요. 자부심에서라고 보자면 도리어 위신이 떨어질 정도니 대체 그때의 군의 태도는 과연 어디 있었던 것이오?
 
4
군 이제 스스로 한번 다시 생각해 보시오. ‘나는’‘나는’하고‘나는’ 소리가 한구절이 끝나고 다음 구절이 시작될 때마다 정성스러히도 달려다니더군요. 일인칭으로 글을 꽉 잡고 시작한 소설이 ‘나는’‘나는’소리를 넣지 않는다고 무어 삼인칭으로 달아날 염려가 있어 그랬소? 왜, 이런 말의 낭비가 절대로 필요했던 것이오?
 
5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러자’‘그래서’‘그리고’하는 문구가 말이 접속될 때마다 충실히 붙어 다니기에 대체 얼마나 이놈이 붙었나 보자 하고 세어 보았더니 놀라지 마시오, 무려 오십여 처이더군요. 군의 그 작품에 내가 진정으로 흥미를 잃었다고 한다고 나를 결코 나무라지 마시오.
 
6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군은 혹 “아니 내 글만 그렇소, 소위 기성층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안 할 말로 너는 그래 무얼 잘 쓰길래…….” 하고 대항을 한다면 실로 버젓이 대답할 면목은 없소.
 
7
그러기에 무슨 누구를 시비하자는 그런 데서가 아니고 내가 남이나 다들 주의해서 잘 쓰기로 힘쓰자는 말이니 군도 그런 줄 알고 어떤 친지의 작가나 평론가가 군의 그 작품을 칭찬하는 일이 설사 있다 하더라도 군은 군 자신이 글을 모르고, 글을 모르는 친지의 작가나 비평가니까 내 글을 칭찬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조금이라도 이런 생각으로 의심해 보는 그런 자존심을 가져 보는 용기가 필요할 것이오. ‘나는’과 ‘그러자’‘그래서’가 아니면 말의 시작을 내지 못하고‘하는 것이다’하고 ‘것이다’이라야만 말끝이 맺혀지는 줄 아는 작문과(作文科) 제일과(第一課) 일장(一章) 이전의 실력에 소설이란 것이 만들어졌을 턱이 없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작품이 되었느니 안 되었느니 하는 이 얘기는 여기서는 섭섭하나 하지 못하게 되고 우선 소설을 쓸 만한 힘을 기른 후에라야 하게 될 것으로, 부득불 군의 작품은 한 십 년 간 숙제로 두었다 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오.
 
8
군 이런 이야기에 찬성이오? 불만이오? 듣자니 군은 그 작품을 발표하고 이즘 기성 문단에 작가적 지위를 안 준다고 항의를 한다는 풍설이 있는데 그건 사실이오? 사실이라면 군의 용기 참 무던하오. 그게 조급증의 소행이라고 해도 나는 그 용기를 치하하면 했지 조금도 나무라진 않소. 반항을 안하는 것도 좋지만 반항을 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오. 나는 군의 항의를 하는 소문에 어떻게 반가웠는지 모르오. 기성을 눈 아래로 보고 코웃음을 치는 그 패기는 그게 실로 문학에 대한 참을 수 없이 끓어 오르는 귀한 정열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이러한 정열이야말로 오르면 오를수록 군의 문학에 전진을 말하는 것이 될 것이오. 참말 그 정열 귀하오.
 
9
그러나 말 한 마디 글자 한 자 쓰는 데 현저한 차이는 없어도 조금 나으나마나한 고만한 알 듯 말 듯한 그렇게 미미한 차라는 것이 실로 작품에 있어선 십 년 이십 년의 세월로 된다는 것임을 이제 십 년(혹은 이십 년)후이면 자연 알아지겠지만 우선이라도 “그럴까?”하는 의문이라도 염두에 두고 항의할 필요가 있다고 아오.
 
10
만일 이런 줄을 모르고 항의를 하였다가는 결국은 조급증의 발악에 지나지 못하게 될 우려가 혹 있을지 모르게 될 것이니까 군의 그 모처럼의 패기는 만용이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오해를 받기가 촉각 세울 것이라 알기 때문이오.
 
11
불만이라면 다시 더 말할 필요도 없겠으나 만일 찬성이라면 이렇게 한번해 볼 아량이 없겠소? 군이 이후에 쓰는 작품은 하루 종일 앉아서 꼭 한 장만 죽을 힘을 다 들여 쓸 작정을 하고 한 달에 삼십 장짜리 한 편을 만들어 가지곤 그 놈을 그적엔 또 한 보름 두고 열다섯 장쯤으로 부쩍 줄여 보시오.
 
12
이렇게 해 본다면 필요한 말은 깎을래야 깎을 수가 없으니까 자연히 남아질 거요. 필요치 않은 말은 체 밖으로 깎여 나가게 된 것이니 ‘나는’‘나는’하는 군더더기와 ‘그러자’‘그래서’ 따위의 불미한 접속사도 따라서 말쑥하게 형체를 감추게 될 것이오.
 
13
그런데 이렇게 줄이는 게 그게 말로만은 간단히 될 것 같아도 손을 대어보자면 제법 시일을 요하게 되어서 아마 재질에 따라서 1, 2년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보통은 한 십년 걸려야 그래도 그 취사 방법의 묘리를 다들 얻나 보더군요. 문단 생활 이십 년 삼십 년에서도 이런 티를 못 벗은 분들이 간혹 있는 걸 보면 혹은 군도 십 년 이상이 걸려야 될지도 모를 것이오.
 
14
그러니까 소설 쓰는 데 있어 조급증이란 육팔미에 무와 같은 금물인 것을 먼저 알고 마음을 비위 좋게 늦먹어야 될 것이오.
 
15
그럼 우리 있다가 몇 해 뒤 다시 작품을 보기로 하고 우선은 줄이는 공부에만 힘써 주시오. 그래 가지고 발표 전에 일단 한번 사사로이 보고 논의를 해 주기로 약속해 주시오.
 
 
16
〔발표지〕《구국(救國)》
【원문】무명 작가(無名作家) 목군(木君)에게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평론〕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4
- 전체 순위 : 6527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1495 위 / 179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계용묵(桂鎔默) [저자]
 
  평론(評論) [분류]
 
◈ 참조
  # 창작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무명 작가(無名作家) 목군(木君)에게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0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