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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소설 수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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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2.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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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설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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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설 수업은 《창조》지에서 이동원의 「몽영(夢影)의 비애」를 읽으므로 시작이 된다. 그때 내 나이 16,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당에서 「대학」을 펴 놓고 ‘대학지도재명명덕지어지선(大學之道在明明德至於至善)’을 찾고 있을 때다. 「치악산」이니 「심청전」이니 하는 구소설을 보아오다가 그 「몽영의 비애」에서 조금도 헛놓으려고 하지 않은 진실한 묘사, 산뜻한 표현에(그때는 그렇게 보았다) 크게 감동을 받고 나도 소설을 한번 써 본다는 엉뚱한 마음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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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불시에 백로지를 사다 책을 매어 한 편의 소설을 써 보았다. 그리고는 내 역량을 저울질하여 보고 싶은 생각에 당시 나와 같이 《창조》지를 애독하는 벗에게 그것을 내놓으며 이것은 춘원의 작을 내가 신문에서 베낀 것인데 썩 잘 썼으니 한번 읽어 보라 하였다. 그랬더니 이 벗이 그것을 춘원이 썼다는 바람에 정독을 하고 나서 과연 선생이라고 우리는 언제나 한번 저렇게 써 볼까 한탄을 하며 혀를 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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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는 내 역량도 소설을 쓰기에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라는 철없는 자부심이 잔뜩 부풀어 올라, 나도 쓰면 춘원이 부럽지 않다는 생각으로 서당에서 읽는 「대학」은 훈장의 초달이 무서워 형식적으로 읽는 체 입만 너불너불거리며 머릿속으로 소설 구상에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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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낮이면 서당으로 가서 「대학」을 안고 소설을 구상해 가지고는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선 밤이야 깊거나 말거나 소설을 쓰는 것이 나의 하여야 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이라고 소설을 구상 아니하는 날이 없었고, 그것을 쓰지 아니하는 밤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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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당시 동경의 《창조》와 같이 발간되던《녹성》《현대》《삼광》《여자계》《학지광》등을 위시하여 조선내에서 나오는《수양》이니 《개척자》니 《근화》니 《서광》이니 《삼우》니 잡지란 잡지는 어떠한 종류임을 물론하고 발간이 되는대로 나오는 족족 모조리 구입을 해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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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읽고 쓰기를 한 1년을 하니 그전에 써 놓은 글이 발표가 하고 싶어 이들의 잡지에다 투고를 하여 보았으나 창간호가 종간호로들 되는 바람에 밤을 새우면서 쓴 원고를 발표도 못하고 찾지도 못하고 모조리 잘리우고 말았다. 그렇게 되니 발표를 못 보는 글을 찾기에 맥이 떨려 한동안 붓을 쉬고 있다가 《개벽》《서울》《학생계》 등이 또 쏟아지며 제법 그것은 매월 계속하여 발행이 되므로 이것들에 또 투고의 흥미를 느끼고 다시 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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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벽》과 《서울》은 어쩐지 좀 엄엄한 것 같아 거연히 투고를 못하고《학생계》의 학생문단에 투고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처음의 그 학생문단 규정에는 소설이 없었으므로 주로 논문을 투고 발표하게 되니 논문에 맛이 들리어 그 후 소설이 모집이 발표되었을 때에도 소설은 쓰지 않고 논문만 자꾸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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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와 같은 투고객으로 현문단에 중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김동환, 이태준, 김상용 제씨는 지금껏 지면이 없어도 어쩐지 사이가 가까운 것 같고 씨 등의 이름을 지상으로 볼 때마다 옛날 그 시절 《학생계》의 학생문단 페이지가 눈앞에 선히 나타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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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동안 학생문단에 발표를 하고 나니 그 무대가 학생이나 하는 유지(幼遲)한 자리인 것 같아 무대를 신문으로 옮기어 《조선일보》개방란이라는 데 한동안 맛을 들여오다 《조선문단》이 이광수 씨의 주재로 창간이 되면서 소설을 모집하되 그 규정에 추천 2차면 문단에 소개 한다는 것이 부쩍 내 마음을 흔들어 다시 소설의 붓을 들었다. 그리하여 그 한 편이 써지기까지에는 벌써 제1호로 최서해가 「고향」의 추천으로 나오고, 채만식 씨의 「세길로」의 입선, 한병도(雪野(설야)), 박화성 이렇게 자꾸 쓸어 나오는데 어떻게도 응모가 급하던지 그 소설 「상환(相換)」이 끝나기가 바쁘게 점심도 못 먹고 오리 밖의 우편통을 달려가 쓸어넣었다. 그리하여 그것의 발표를 보게 된 것이 해지 제7호(5월호)로 어떻게도 기쁘던지 지금도 그 호수(號數) 월수(月數)까지 잊히지 않고 똑똑히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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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주로 써 오던 논문과 시는 집어치우고 소설에만 전심을 하려고 결심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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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이 당선은 되었으나 그 다음날 해지(該誌) 창작합평회에서 염상섭, 나도향 두 분의 평이 시원치 않아 좀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다시 붓과는 인연을 끊고 오직 독서에 열중하여 보려고 별러 오던 외국의 명작이란 명작 모조리 사다 쌓아 놓고 침식을 아껴 가며 책과 씨름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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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에 이태, 문단에는 경향의 바람이 일기 시작하여 《조선문단》을 위협하는 데다 경영난에까지 빠져 죽었다 살았다 하다가 그 경영자가 바뀌면서 소설을 현상(상 안 주는)으로 모집하였다. 이것을 보니 독서를 위하여 눌러 오던 창작욕이 눌리우지 않고 맹렬히 끓어올라 마침내 붓을 들어 「최서방」한 편을 응모하여 당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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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선후언(選後言)을 보았을 때 나는 어떻게도 놀랐는지 모른다. 그 선자(選者)가 「고향」의 추천으로 나와 해지(該誌) 기자로 있으면서 「탈출기」「십삼원」등으로 약간 문단에 명성은 얻었다고 해도 선자라는 사람이 같은 그 《조선문단》에 투고를 하는 최서해인 것이 어째 권위가 없어도 보이고 어처구니도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한 끝으로는 모욕을 당한 것도 같아 다시는 이런 데 투고를 아니 하리라 마음을 먹었으나, 발표의 자유는 없고 창작욕은 갈수록 성하여 하는 수 없이 독서의 여가에 「인두지주」라는 것을 또 한 편 만들어 《조선지광》에 보냈더니 이것은 또 편집자 자기의 멋대로 분성덕을 시켜서 발표를 해 놓았다. 그것도 약간의 문구를 고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는 전연 무시하고 편집자 자기의 주장대로 주인공을 행동시켜 놓았으니 나는 여기서 또 한 번 어처구니없어 웃고 그 후부터는 일절 투고에는 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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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동(渡東)하야 다시 학생 모자를 쓰고 독서와 씨름을 몇 해 하고나니 내가 그동안 쓴 소설이라는 것이 우습게 보일 뿐 아니라, 도대체 무슨 수준이라는 것이 우습게 보였다. 그래서 이 수준을 넘어서야 그것이 비로소 소설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시골 집에 두문불출하고 들어박혀 붓끝을 닦기 위하여 장편을 하나 시작해 가지고 축일하야 쓰며 짬짬이 단편을 시험하여 보기도 했다. 그 시절에 된 것이 「임종」「준광인전」「제비를 그리는 마음」「고절(苦節)」「마을은 자동차 타고」「신사 허재비」「장벽」「연애 삽화」「병풍에 그린 닭이」「오리알」「마부」등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어느 정도까지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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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들이 소설이 되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데가 많음이 차츰차츰 깨닫기었다. 그러니 소설이라는 것이 무척 어려워지며 거연히 손에 붓이 잡히지 않았다. 표현 기술로부터 묘사, 구성 어느 것 하나 된 데가 없을뿐더러 소설의 소재부터가 그런 것으로는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소설이란 이래야 된다고 써오던 종내의 그 소위 리얼리즘의 필법이 마음에 붙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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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야 첫째 이것을 고치며 시험하여 본 것이 「백치 아다다」였다. 이것을 보고 어떤 친구는 그게 무슨 기문(奇文)이냐 그린 문장식은 감상시절에 있는 문청(文靑)이 쓰는 체지 하고 비웃으나, 소설의 문장은 리얼리즘에서 다시 이 시대로 돌아와야 되는 것이라고 속으로 대답을 하며 종내의 필법을 버리고 지금의 필법을 가지는 데 만족하려 하며 이것을 비웃는 사람을 비웃어 왔고 지금도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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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다시 재시험을 하여 본다고 붓을 들게 된 것이 「청춘도(靑春圖)」로 이 한 편을 붙들고 애쓰기 실로 8개월 동안이나 하였다. 지금은 어떠한 작품을 써도 그렇게 쓰거니와 몇 달을 두고 고친다. 그러면 원고지 여백까지 가득 차서 다시 불만한 구절이 눈에 띄어도 고칠 자리가 없어 그적엔 그것을 또 다른 종이에다 전부 옮겨 써가지고 또 고치고 고치고 하여 이렇게 옮겨 써 보기를 3, 4차씩이나 하여 본 적이 있다. 이래 이렇게 하여 된 것이 「부부」「붕우도」「유앵기」「캉가루의 조상이」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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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힘을 들여 보아도 불만은 여전이 있고 힘을 들일수록 쓰기는 어려워져 근자에 와서는 또 붓을 못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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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생각하면 소설이란 무엇인지가 좀더 좀더 알려지는 현상 같아 애쓰는 공적이 날아나는 것 같음이 한껏 반갑기는 하면서도 쓰기가 그렇게 어려워만지니 손에 붓이 잡히지 않는 데 고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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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잡으면서 금년 안으로 열 편은 꼭 써 본다고 복안에 있는 제목들을 벽에다 즈른이 써 붙이고 우선 착수를 하였으나 구절마다 잘못만 되는 것 같아 붓끝이 졸연히 내키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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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도 소설이란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근자에야 체험하고 그런 것을 지난날엔 앉은 자리에서 잡은참 4, 5십 매를 내려쓰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 시절이 너무도 어처구니없어 혼자서 웃어 보는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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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지〕《문장》제2권 2호(194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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