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내가 사는 주변 ◈
카탈로그   본문  
1957. 5.
계용묵
1
내가 사는 주변
 
 
2
버스를 타고 미아리고개를 터덕이며 넘다가 길음교를 접어들 때 시선이 왼편으로 쏠리게 되면 바로 눈 아래 시멘트 기와를 인 무슨 목장지대 같은 납작한 건물들이 산으로 둘러싸인 오목한 골 안 일대에 지질펀펀하게 깔려있음을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이다.
 
3
그리고 그것이 판에다 찍어낸 듯한 그 집이 그 집 같은 꼭 같은 것을 무더기로 쏟아 놓은 그래서 인가(人家)는 아닌 것 같은 생소한 건물임이 쏠린 시선에 좀더 주의를 깊게 만들 것이다.
 
4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이 인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환도 후에 집 잃은 전재민들에게 우선적으로 베풀어진 그 수 삼백칠십이나 나마 세이는 소위 아홉 평짜리의 정릉 재건 주택이다.
 
5
이 목사(牧舍) 같은 아홉 평짜리의 집이나마 집이 그립던 전재민들에게는 궁궐보다도 소중하다. 게다가 명색이 양옥이라 입주자들은 이 양옥에 상부한 생활이어야 한다고 마치 경쟁이나 하는 것처럼 내 집의 미화에 저마다 여념이 없다. 제멋대로의 취미에 장단이 되어 파아란 뺑키를 뒤집어쓰는 집, 하얀 뺑키를 뒤집어쓰는 집, 온갖 빛깔을 뒤집어쓰고 색채가 된 이 건물에다가 또 꽃이요, 상록수요, 기암 괴석까지 끌어다 정원을 꾸미는 등, 보기 드문 색다른 집으로 색다른 한 촌락을 이루었다.
 
6
나도 이 풍속에 휩쓸려들어서 하늘빛 뺑키로 대문을 단장하고 뜰에다는 라일락 한 그루와 장미 한 그루로 이 미화의 공동 보조에 인색하지는 않았으나 내 마음은 울타리 안에보다는 울타리 밖으로 늘 쏠린다.
 
7
바로 집 뒤를 끼고 흐르는 개천, 이 개천가에서 날이면 날마다 진종일을 연이어 가며 후닥거리는 여인네들의 빨래방망이 소리, 이 소리가 풍기는 민족혼의 고유한 정서 이 정서에 나는 살이 지고 싶었고……….
 
8
이 개천을 끼고 한 발자국만 산으로 더 내디디면 약수가 또 있다. 약수라도 신선한 새벽물은 더 효험이 있으리라 해도 뜨기 전 자욱한 안개 속에 모여드는 수객들, 이 수객들이 모여들면 물할머니의 푸념이 정성스럽게도 그들의 건강을 빌어 준다.
 
9
이 물할머니는 처녀 시절에 신령이 내리어 이 약수를 맡게 되었다는 것으로 백발이 흩나는 오늘까지 하루도 쉬임없이 연일 연성으로 수객들의 건강을 위하여 빈다. 이 물로 병을 낫게 하고 자손 만대에 복을 주라고 산신에게 빌고 또 강씨마마―정릉의 유래를 말하는 태조고황제계후신덕성강씨(太祖高皇帝繼后神德星康氏)로 정릉이라는 것은 정동(貞洞)에서 옮겨온 능이라는 이름 이 약수터 너머의 봉국사 보살에게도 빈다.
 
10
그리고 좀더 산골짜기로 올라가자면 산의 배를 가르고 바위를 차며 흐르는 맑은 물에다 하반신을 늘리 잠그고 겨울난 무거운 몸을 헤우며 초여름 하루를 즐기는 젊은 남녀의 벌거벗은 몸에 벌거벗은 마음이 좋았다. 난잡을 욕할 리 없지 않을 것이나 삶이라는 속박에서 이 하루를 저대로 아무렇게나 놀아도 구속이 없고 자유의 풍속이 실로 진실한 그들의 것일 것임으로써다.
 
11
이 골짜구니에서 마음대로 터져 나오는 벌거벗은 마음 소리, 이 개천가의 빨래방망이 소리, 이 약수터의 물할머니의 푸념, 이 소리들이 내 귀에 멀었던들 나는 이 아홉 평짜리 울 안의 소꿉장난 같은 어른들의 흉내로 아름다움을 만들려는 아름다움으로 정릉을 상 주고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12
(1957. 5.)
【원문】내가 사는 주변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수필〕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8
- 전체 순위 : 4886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1007 위 / 1803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내가 사는 주변 [제목]
 
  계용묵(桂鎔默) [저자]
 
  1957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 참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내가 사는 주변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9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