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심생(沈生)은 서울의 양반이다. 그는 약관(弱冠)에 용모가 매우 준수하고 풍정(風情)이 넘치는 청년이었다.
3
어느날 그가 운종가(雲從街)에서 임금의 거둥을 구경하고 돌아오던 길에 어떤 건장한 계집종이 자주빛 명주 보자기로 한 여자를 덮어씌워 업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 뒤를 한 계집애가 붉은 비단신을 들고 따라가고 있었다. 심생은 겉으로 그 몸뚱이를 겨냥해보고 어린애가 아닐 줄 짐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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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바짝 따라붙었다. 그 뒤꽁무니를 밟다가 더러 소매로 스치고 지나가 보기도 하면서 계속 눈을 보자기에서 떼놓지 않았다. 소광통교(小廣通橋)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개바람이 앞에서 일어나 자주 보자기가 반쯤 걷히었다. 보니 과연 한 처녀라. 봉숭아빛 뺨에 버들잎 눈섭, 초록 저고리에 다홍 치마, 연지와 분으로 가장 곱게 화장을 하였다. 얼핏 보아서도 절대 가인임을 알 수 있었다. 처녀 역시 보자기 안에서 어렴풋이 미소년이 쪽빛 옷에 초립을 쓰고 왼편이나 오른편에 붙어서 따라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마침 추파(秋波)를 들어 보자기 사이로 주시하든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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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가 걷히는 순간에 버들 눈, 별 눈동자의 네 눈이 서로 부딪쳤다. 놀랍고 또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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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는 보자기를 걷잡아 다시 덮어쓰고 가버리었다. 심생은 어찌 이를 놓칠 것인가. 바로 뒤좇아서 소공주동(小公主洞) 홍살문 안에 당도하자 처녀는 한 중문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7
그는 머엉하니 무언가 잃어버린 것처럼 한참을 방황했다. 그러다가 어떤 이웃 할멈을 붙들고 자세히 물어보았다. 호조(戶曹)에서 계사(計士)로 있다가 은퇴한 집이고, 다만 16,7세 된 딸 하나를 두었는데, 아직 혼사를 정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 딸이 거처하는 곳을 물었더니 할멈은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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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그만 네거리를 돌아서면 회칠한 담장이 나오고, 담장 안의 한 골방에 바로 그 처자가 거처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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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말을 듣고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 저녁에 집안식구에게 거짓말을 꾸며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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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 아무가 저와 밤을 같이 지내자고 하는군요. 오늘 저녁에 가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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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행인이 끊어지기를 기다려 그 집 담을 넘어 들어갔다. 그 때 초승달이 으스름한데 창 밖으로 꽃나무가 썩 아담하게 가꾸어졌고, 등불이 창호지에 비치어 아주 환했다. 심생은 처마 밑 바깥벽에 기대 앉아서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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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안에 두 매향(梅香)과 함께 그 처녀가 있었다. 궐녀는 나지막한 소리로 언문 소설을 읽는데 꾀꼬리 새끼 울음같이 낭랑한 목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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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경 쯤에, 계집애는 벌써 깊이 잠들었고, 궐녀는 그제야 등불을 끄고 취침하였다. 그러나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뒤척 무언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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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생은 잠이 올 리가 없거니와 또한 바스락 소리도 내기 못하였다. 그대로 새벽 종이 울릴 때까지 있다가 도로 담을 넘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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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이것이 일과가 되었다. 저물어서 갔다가 새벽이면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20일 동안 계속하였으나, 그래도 그는 게을리 아니하였다. 궐녀는 초저녁에는 소설책을 읽기도 하고 바느질을 하기도 하다가 밤중에 이르러 불이 꺼지는데, 이내 잠이 들기도 하고 더러 번민으로 잠을 못이루기도 하는 것이었다. 6,7일이 지나자 문득 '몸이 편치 못하다'고 겨우 초경(初更)부터 베개에 엎드려 자주 손으로 벽을 두드리며 긴 한숨 짧은 탄식을 내쉬어 숨결이 창 밖까지 들리었다. 하루 저녁 하루 저녁 갈수록 더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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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날 째 되는 밤이었다. 궐녀가 갑자기 마루로부터 내려와 바깥벽을 돌아 심생이 앉아 있는 처소에 당도하였다. 심생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불끈 일어서 궐녀를 붙잡았다. 궐녀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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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은 소광통교 변에서 만난 분이 아니세요? 저는 이미 스무날 전부터 도련님이 다니시는 줄 알았답니다. 저를 붙들지 마셔요. 한번 소리를 내면 다시는 여기서 못나갑니다. 절 놓아주시면 제가 뒷문을 열고 방으로 드시게 할께요. 얼른 놓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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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생은 곧이 듣고 물러서서 기다렸다. 궐녀는 홱 돌아서 들어가 버렸다. 방에 들어가서는 계집애를 부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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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엄마한테 가서 큰 주석 자물쇠를 주시라고 하여 갖고 오너라. 밤이 깜깜해서 사람이 겁이 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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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계집애가 웃방 마루로 건너가서 금방 자물쇠를 들고 왔다. 궐녀는 열어주기로 약속한 뒷문에다 아귀진 쇠꼬챙이를 분명히 꽂고 다시 손으로 자물쇠를 채웠다. 일부러 쇠를 채우는 소리를 찰카닥 내었다. 그리고 곧 등불을 끄고 고요히 잠이 깊이 든 듯하였으나 실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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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생은 속임을 당하여 분통이 났다. 한편 생각하면 그나마 만나본 것만도 다행이다 싶었다. 여전히 쇠를 채운 방문 밖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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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음날에 또 가고, 다음날에도 갔다. 방에 쇠가 채워져 있어도 조금도 해이해짐이 없이, 비가 오면 유삼(油衫)을 둘러 쓰고 가서 옷이 젖어도 관계하지 않았다. 이렇게 다시 열흘이 지났다. 밤중에 온 집안이 모두 쿨쿨 잠들었고, 궐녀 역시 등불을 끄고 한참이나 있다가 문든 발딱 일어나서 계집애를 불러 얼른 등에 불을 붙이라고 재촉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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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너희들 오늘 밤엔 웃방으로 가서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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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두 매향(梅香)이 방문을 나가자, 궐녀는 벽에 걸린 쇳대를 가지고 자물쇠를 따고 뒷문을 활짝 열었다. 심생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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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생은 얼떨떨하여 자기도 모르게 몸이 벌써 방에 들어와 있었다. 궐녀는 다시 그 문에 쇠를 채우고 심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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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웃방으로 가서 자기 부모를 모시고 나왔다. 그 부모는 보고 어리둥절하였다. 궐녀는 말을 꺼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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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지 마시고 제 말을 들어보셔요. 제 나이 열일곱으로 발걸음이 일찍이 문밖을 나가지 못하옵다가, 월전에 우연히 임금님의 거둥을 구경하고 돌아오던 길에 소광통교에서 덮어쓴 보자기가 바람에 발려 걷히었습니다. 마침 그 때 한 초립 도령과 얼굴이 마주쳤어요. 그날 밤부터 도련님이 안 오시는 날이 없이 이 방문 밑에 숨어 기다린 지 이제 이미 30일이 지났답니다. 비가 와도 오시고, 춰워도 오시고, 문에 쇠를 채워 거절해도 역시 오시었어요. 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소문이 밖으로 퍼져서 동네 사람들이 알게 되면 밤에 들어왔다가는 새벽이면 나가는데 자기 홀로 창벽 밖에서 있은 줄을 누가 믿겠습니까. 사실과 다르게 누명을 뒤집어 쓰지요. 제가 필야 개에게 물린 꿩이 되는 셈이예요. 그리고 저분은 양반댁 도령으로 지금 바야흐로 청춘이라 혈기가 아직 정치 못하여 다만 나비와 벌이 꽃을 탐낼 줄만 알고 바람과 이슬에 맞음을 돌보지 않으니 며칠 못가서 병이 나지 않겠습니까. 병들면 필야 일어나지 못하리니, 그렇게 되면 제가 죽이지 않았어도 제가 죽인 셈입니다. 비록 남이 모르더라도 반드시 음보(陰報)가 있게 됩니다. 또 제 몸은 한낱 중인(中人)집 딸에 불과합니다. 제가 무슨 절세의 경성지색(傾城之色)으로 꽃이 부끄러워할 만한 용모를 지닌 것도 아닌데, 도련님께서 솔개를 보고 매로 여기시어 제게 지성을 바치되 이토록 부지런히 하옵십니다. 제가 만일 도련님을 따르지 않으면 하늘이 반드시 싫어하시어 복을 제게 주시지 않을 거예요. 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근심하지 마옵소서. 아! 저는 부모님께서 연로하시고 동기간이 없으니 시집가서 데릴사위를 맞아 살아계실 때에 봉양을 다하다가 돌아가신 뒤에 제사를 모시면 제 소망에 족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일이 뜻밖에 이렇게 되었으니, 이 역시 하늘이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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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녀의 부모는 어안이 벙벙했으나 달리 할 말이 없었고, 심생 더욱 아무 말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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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같이 동침을 하게 되었다. 애타게 사모하던 끝에 그 기쁨이야 오죽하였으리오. 그날 밤 방에 들어간 이후로 저물게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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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녀의 집은 본래 부유했다. 그로부터 심생을 위하여 산뜻한 의복을 정성껏 마련해 주었으나, 그는 집에서 이상하게 여길까 보아서 감히 입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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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심생은 아무리 조심을 하여도 집에서는 그가 바깥에서 자고 오래 돌아오지 않는데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절에 가서 글을 읽으라는 명이 내리었다. 심생은 마음에 몹시 불만이었으나, 집의 압력을 받고 또 친구들에게 이끌리어 책을 싸들고 북한산성(北漢山城)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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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禪房)에 머문 지 근 한 달 가까이 되었다. 심생에게 궐녀의 언문(諺文) 편지를 전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편지를 펴보니 유서(遺書)로 영영 이별하는 내용이 아닌가. 궐녀는 이미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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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추위가 아직도 쌀쌀하온데 절간의 글공부에 옥체 평안하시옵니까. 항상 사모하옵는 바 어느날이라 잊으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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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도련님께옵서 떠나신 이후로 우연히 한 병을 얻어 점점 골수에 사무쳐 백약이 무효하온지라 이제 필경 죽음밖에 없는 줄 알았사옵니다. 소녀처럼 박명한 몸이 살아본들 무엇하로리까만은, 우선 세 가지 큰 한(恨)을 가슴에 안고 있으니 죽음에 당해서도 눈을 감지 못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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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본래 무남 독녀로 부모님의 사랑하옵심을 받자와 장차 부모님께서는 적당한 사위를 구하여 만년(晩年)의 의지를 삼고 후일의 계책을 마련코자 하였더니, 호사 다마라 뜻밖에 악연(惡緣)에 얽히었군요. 여라(女蘿)가 외람되게 높은 소나무에 붙었으나 주진지계(朱陳之計)가 이제 단망(斷望)이옵니다. 이는 소녀가 아무 낙이 없이 시름하다가 마침내 병으로 죽음에 이른 까닭이옵고, 이제 고당학발(高堂鶴髮)은 영원히 의뢰할 곳이 없게 되었사오니, 이것이 첫째 한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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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출가하면 비록 종년이라도 문에 기대어 손님을 맞는 기생의 몸이 아닌 다음에야 남편이 있고 또 시부모가 있겠지요. 세상에 시부모가 모르는 며느리가 있사오리까. 소녀 같은 몸은 남의 속임을 받아 몇 달이 지나도록 일찍이 도련님 댁의 늙은 여자 하인 하나도 보지 못하였사오니, 살아서 부정한 자취를 남겼고, 죽어서 돌아갈 곳 없는 귀신이 될 것이라 이것이 둘째 한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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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남편을 섬기매 음식을 장만하여 공궤하고 의복을 지어서 입으시도록 하는 일보다 큰 일이 있을까요. 도련님과 상봉한 이후 세월이 오래지 않음도 아니요, 지어드린 의복이 적다고 할 수도 없는데, 한 번도 도련님에게 한 사발 밤도 집에서 자시게 못하였고, 한 벌 옷도 입혀드리지 못하였으며, 도련님을 모시기를 다만 침석(枕席)에서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셋째 한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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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상봉하온 지 얼마 아니되어 문득 길이 이별하옵고, 병으로 누워 죽음이 다가왔으나 대면하와 영결을 못하옵니다. 이러한 여자의 슬픔을 어찌 족히 군가에게 말씀드리오리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러 창자가 이미 끊어지고 뼈가 녹으려하옵니다. 비록 연약한 풀이 바람에 쓰러지고 시들은 꽃잎이 진흙이 된다 하온들 끝없는 이 원한은 어느날이라 다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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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嗚呼)라! 창 사이의 밀회(密會)는 이제 그만입니다. 바라옵건대 도련님은 소녀를 염두에 두시지 마옵시고, 더욱 글공부에 힘쓰시어 일찍이 청운(靑雲)의 뜻을 이루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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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체를 내내 보중하옵기 천만 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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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생은 이 편지를 받고 자기도 모르게 울음과 눈물을 쏟았다. 이제 비록 슬프게 울어보나 무엇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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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심생은 붓을 던지고 무변이 되어 벼슬이 금오랑(金吾郞)에 이르렀으나 역시 일찍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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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외사(梅花外史) 가로되, 내가 열두 살 때에 시골 서당에서 글을 읽는데 매일 동접들과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였다. 어느날 선생이 심생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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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생은 나의 소년시 동창이다. 그가 절에서 편지를 받고 통곡할 때에 나도 보았더니라.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듣고 지금까지 잊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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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들에게 이 풍류 소년(風流少年)을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일에 당해서 진실로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뜻을 세우면 규중의 처자라도 오히려 감동시킬 수 있거늘, 하물며 문장이나 과거야 왜 안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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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그 당시 듣고 매우 새로운 이야기로 느끼었다. 뒤에 정사(情史)를 읽어보니 이와 비슷한 이야기도 많았다. 이에 이를 추기(追記)하여 정사의 보유(補遺)를 삼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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