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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기관이 발달된 여덕으로서 조선 사람도 흔히 제법 세계 유람도 하고 혹은 미국 등지에서 공부도 한다. 그 사람들이 귀국하여서는 반드시 혹은 강연으로 혹은 문필로 소위 그 나라의 인정․풍속․가정 생활 등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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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와같이 신빙키 힘든 것도 쉽지 않으리니 수박 겉물핥기로 그 나라의 외면만을 보았다고 과연 인정․풍속 등을 넉넉히 알 수 있을까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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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으로서 동경에 오륙 년 이상을 유학한 사람은 수십만 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동경의 인정․풍속이며 가정 생활을 얼마나 아는가하면 제로에 가깝도록 아는 바가 없다. 영업적 하숙은 그만두고 素人下宿[소인하숙]에 오륙년 이상을 있는 사람도 그곳 가정 풍속을 똑똑히 모른다. 이것을 알려 하면 반드시 그곳의 한 시민으로 그곳 가정의 일 정원으로 그 곳에 생활 근거를 두고 생활하여 본 뒤에야 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끝까지 그곳 인정 풍속을 알지 못할 것이요, 안다 하면 허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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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상경한 향객같이 거리를 구경하고 가정을 기웃거리고 過則[과즉] ‘스쿨 보이’ 로 접시닦기나 하던 사람들이 그곳 인정 풍속이며 가정 생활의 내면을 알 까닭이 없다. 같은 조선 사람으로도 시골 사람이 서울의 가정 생활이며 제도를 똑똑히 모르는데 인정 풍속이 전혀 다른 외국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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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국인의 생활 양식이며 제도의 윤곽이나마 안다 하면 그것은 전혀 영화의 덕이라 할 수 있다. 舊露西亞[구로서아]의 인정 풍속을 막연히나마 안다 하면 그것은 전혀 사실주의 문학의 덕이다. 동경의 인정 풍속도 우리가 그곳에 유학하면서 實見[실견]한 바로는 안 것이 없고, 문학에 나타난 것으로서 비로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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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도 적지 않은 독일 유학생이 있고 그 사람들의 입으로 혹은 붓으로 소위 독일의 가정 생활이라든가 인정 풍속이 소개되었지만, 그래도 거기 대한 개념이 아주 막연한 것은, 독일에는 산문문학, 그 가운데서 더우기 사실 문학이 부족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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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며 불란서의 인정 풍속은 약간 짐작이 가지만 그 가정 생활이며 제도가 막연하여 머리에 그려지지 않는 것은 그 나라에 가정 생활을 취급한 문학이 적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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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이래로 조선과 친근하게 지내고 왕래가 빈번한 중국의 가정 생활조차 우리에게는 짐작도 가지 않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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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예술이라 하는 것은 예술 자체가 가지는 가치 이외에 부산물의 가치도 적지 않은데, 이것도 그 부산 가치의 하나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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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을 입고 생활한다고 양식 생활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서양을 구경하였다고 서양인의 인정 풍속이며 가정 생활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사실 그곳의 일 시민으로 생활을 하여보거나 그렇지 않으면 예술의 묘사의 힘으로써야 그것을 비로소 알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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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申報[매일신보]〉, 193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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