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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人[동양인]은 자고로 산을 좋아하얏다. ‘무거움’과 ‘깊은 맛’을 좋아하는 동양인에게 산악의 ‘무거움’과 ‘깊은 맛’이 못내 그리웟든 것 같다. 그들이 부르는 詩歌[시가] 쓰는 文[문]의 태반은 산과 산을 흐르는 물이 차지하얏고 그들의 그리는 그림의 七分[칠분]을 峰[봉]과 봉을 싸고 도는 구름이 맡앗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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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족속 중에서도 특히 朝鮮族[조선족]은 남달리 산을 애호하는 것 같다. 어듸던지 秀美[수미]한 峰巒[봉만]과 深邃[심수]한 洞壑[동학]없는 곧이 없는지라 자연 山岳[산악]에 대한 정이 남달리 깊어젓나 보다. 조선족과 조선의 산악의 관계는 새에 대한 보금자리래도 좋고 고기에 대한 물구비래도 가할 것이다. 조선족은 더없시 산을 사랑한다. 사랑하다 못하야 이를 숭배해 온 것이다. 어떤 산은 神山[신산] 어떤 岳[악]은 聖岳[성악]이라 하야 감히 그 境域[경역]에 발 드려놓기를 주저하고 또 혹 그 경역에 드러가게 되면 재계와 지성을 至恭[지공]하게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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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정은 우리의 산악에 대한 경건의 발로라 그 정이 잇슴으로 수미한 조선의 산악에 신성한 그 맛 조차 겸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나 생각하면 조선의 산악은 조선족의 소유한 보화가 아인가? 놀 노리터가 아닌가? 이것이 우리의 보화이니 앗기는 것도 좋다. 이것이 우리의 노리터이니 깨끗하게 다스리는 것도 가하다. 그렇나 우리의 보화 우리의 노리터를 다만 멀리서 瞻仰[첨앙]하고 숭배하고 경모함으로 그 재화의 소유자 그터의 주인의 할바를 다하야 왓다 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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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화의 참 소유자 이 터의 참 주인일진댄 모름직이 그 보화의 갈피를 삺이고 그 노리터의 구석구석을 찾아 한없이 그 보화의 功効[공효]와 그 터의 덕을 누리는 그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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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이미 만고의 빙설을 인 ‘앨프스’를 정복하야 ‘몬, 브랑’‘메텔호-ㄴ’을 그 무롭 앞에 꿀리지 아니하얏는가? 남들은 이미 세계의 天蓋[천개]‘히말라야’連峰[연봉]을 그 턱및까지 기어오르고 그 정수리 우를 나라다니지 아니하얏는가? 남들은 이미 ‘피레네’를 짓발고 ‘락키-’를 답파하얏는데 유독 우리만이 높다해야 萬尺高[만척고]가 차지 못하는 우리의 산악을 바라만 볼 것이 무엇인고? 산에 오르자. 조물옹이 우리를 위하야 일부러 곱게 만드러준 우리의 산에 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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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거든 봄에 올라 그 나즌 모루 높은 등 말게. 혹은 일즉 푸르고 혹은 늣게 붉는 조선의 초목과 화훼를 사랑하자. 여름이거든 여름에 올라 발밑에 도는 안개와 머리 우에 싸인 雲鷄[운계]를 사랑하자. 瀑流[폭류]의 소리 鳥禽[조금]의 노래로 우리 귀를 위로하고 草花[초화]의 향으로 우리의 코를 고이자. 가을에 산에 오르라. 만산한 홍엽의 경 錦繡[금수]에 비한 그 어리석음을 알 것이오. 겨울에 산에 오르라. 그 결백 숭엄한 맛이 영혼의 갈피갈피를 씻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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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라. 조선의 산에 올라 얼마나 큰 부가 잇는 것을 아는 이 적되 그대 둘레에 둘러잇는가를 알라. 혹 산에 오르랴면 먼저 ‘어느 산을’할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악의 선택을 그리 쾌념할 것이 없다. 어듸를 가던지 산 없는 곳이 없는 우리나라다. 또 어느 산 치고 올라 무미한 산이 없다. 그럼으로 처음부터 구지 명산을 택해 오를 것이 없다. 우선 집 뒤 봉을 오르라 내 고을의 큰 산에 오르라. 그리고나서 차차 내 도의 명산에 오르고 내 나라에 명산에 오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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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京城[경성]을 중심으로 그 부근을 둘러보자. 北[북]에 白雲[백운]仁壽[인수]萬景[만경]의 삼봉을 主峰[주봉]으로 대소 수십봉을 거느린 北漢一帶[북한일대]가 잇고 南[남]으로 漢水[한수]를 隔[격]하야 戀主[연주]를 주봉으로한 冠岳[관악]과 그 東[동]으로 별로운 奇勝[기승]은 없으되 일일의 淸遊[청유]는 할 만한 南漢[남한]이 버려잇다. 東[동]에 萬丈[만장]의 諸峰[제봉]에 솟고 그 南[남]으로 水洛[수락]佛岩[불암]의 兩石山[양석산]이 聳立[용립]하야 잇다. 兩三[양삼]의 좋은 벗을 엇고 한 때 먹을 것만 메고 나서면 하로 등산에 더없이 좋은 곧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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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멀리 떠러져 북으로 백여리만 가면 朴淵[박연]의 勝[승]을 감춘 大興[대흥]天磨[천마]의 연맥 그리로서 더 北[북]으로 수백리허에 九月 長壽[구월 장수]에 美[미]와 妙香[묘향] 狼林[낭림]의 秀壯[수장]이 잇다. 南[남]으로 떨어지면 俗離[속리]鷄龍[계룡]의 忠淸[충청] 명산을 비롯하야 慶尙道[경상도]太白山[태백산]全羅道[전라도]智異山[지리산]이 잇다. 다시 南[남]으로 바다를 건너 天際[천제]에 兀立[올립]한 것이 조선에서 白頭[백두]의 다음이 된다는 濟州[제주]의 漢羅[한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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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동]에 金剛[금강]의 天下奇絶[천하기절]이 잇되 너머 속화된 오늘의 그 靈味[영미]의 7분이 멸한 것은 애닯은 일이다. 이 奇勝[기승]을 드럽힌 俗味[속미]에 구역이 나거든 모름직이 남으로 2백리허의 麟蹄[인제]雪岳[설악]을 찾으라. 三淵 梅月堂[삼연 매월당]의 양 선생이 이미 그 은일을 사랑하사 餘年[여년]을 이곧서 보냇거니와 수석의 아름다움 峰巒[봉만]의 峭奇[초기]함 主峰[주봉](靑峰[청봉]이라 하야 셋이 잇다)들의 웅위함이 금강보다 나을 지언정 못할 것이 소호도 없다 한다. 今夏[금하]에 이 못을 답파하고 나서 이런 절승을 발앞에 두고 아즉 그 진가를 아지 못한 내 태만과 협견을 붓그러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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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의 奇壯[기장]을 보고 또 남으로 180리를 나려 五臺[오대]의 중후를 찾으면 일층의 韻味[운미]를 맛불 것이다. 寂滅室宮[적멸신궁]의 영미와 毘盧峰上[비로봉상]의 위관은 등산가의 可愛[가애]할 특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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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민족으로 또 조선의 등산가로 마즈막 白頭山[백두산]에 오를 의무가 잇다 한다. 天坪 千里[천평천리]의 가도가도 끛…모를 대처녀림 無頭峰[무두봉]야영의 맑은 새벽 將軍峰上[장군봉상]올라 발아래 天池[천지]를 두고 멀리 서으로 長白山脈[장백산맥]이 벋은 滿洲一版[만주일판]東[동]으로 北間島[북간도]일대 다시 南[남]으로 조선의 북진을 바라보는 대관 天池邊[천지변]의 月夜[월야] 그 엄숙함 그 장중함 그 皓潔[호결]함 그 묘막함 그 신비함을 엇지 말로 다하랴. 조선의 大小諸山[대소제산]을 찾고 마즈막으로 이 聖岳[성악]에 오른 뒤에 조선의 산악을 말하랴던 말을 하고 자랑하랴던 자랑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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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央[중앙]」2호,1933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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