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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경후(上京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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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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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京 後[상경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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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생활이 몸에 좋지 못한 것을 절절히 느끼겠다. 서울로 도로온 지 불과 한 달 남짓한데 몸의 컨디션이 그동안 벌써 여간만 나빠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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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이 완구히 떨어졌다. 해가 짧은데다 조반이 늦고 저녁이 이르고 하여 항용 2식(二食)인데, 전체의 분량이 시골서 먹던 절반밖에는 아니 되는 성부르다. 실상 시골서야 정한 3식(三食) 외에 감이니 고구마니 또 종종 떡같은 것이 있어 간식도 풍부히 하였었다. 그런 것까지 친다면 시골서 먹던 양이 넉넉 3배는 되었으리라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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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분량도 분량이려니와 도대체 입맛이 없다. 시골서는 된장찌개에 쓴 김치만 오른 밥상이라도 밥상을 받으면 우선 구미가 돌고 밥먹기가 이상히 달고 하였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먹되 세 끼가 다 그러하였다. 그러던 것이 서울로 와 있으면서부터는 비교적 찬이 푸짐한 밥상을 대하여도 와락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줄을 모른다. 억지로 먹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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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걸어다니고 한 날은 오후 한 세 시쯤 되면 시장기가 든다. 그 시장기 드는 것이 반가와 거리의 음식집에 들러 간단한 요기를 한다. 또 친구와 어울려 점심을 먹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이면 저녁은 아주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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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시골서 지날 때처럼 열량을 소모치 아니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전차가 타기가 힘이 들고 성가시어 대개는 도보를 한다. 그것은 거리를 친다면 하루 3,40리 4,50리는 족히 될 것이다. 시골서 채전에 나가 풀을 매고 고구마를 캐고 하던 하루의 열량의 소모에 비하여 노상 못하지는 아니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칼로리의 보충은 전만 못하니, 아마 모르면 몰라도 체중이 1관은 줄었으리라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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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이 다시 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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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면증은 20년의 고질이다. 하도 오랜 고질이어서 이 근래는 잠아니 오는 것, 늦게 자는 것이 차라리 상태(常態)같이 여겨지고 별반 고통스런 줄을 모를 지경이었었다. 그러다가 지나간 4월 위지왈(謂之曰) 소개(疎開)를 구실삼아 시골로 현실을 피해 가 있으면서 불기(不期)한 부소득(副所得)으로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잠을 도로 찾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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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시나 아홉시면 자리에 눕는다. 누우면 오래도록 삐대지 아니하고 이내 잠이 든다. 그래도 푸욱신 자고는 다섯시면 깬다. 깨면 양치를 하고는 밭으로 나간다. 삼시 밥 먹는 외에는 하루 종일을 밭에서 지운다. 씨를 뿌리고 매가꾸고 벌레를 잡고 거둬들이고 하느라고 골몰하여 있느라면 온갖 생각을 죄다 잊어버린다. 비가 온다든지 혹은 밭에 일이 너끔하여 시간이 있을 때에도 새로이 일거리를 장만할지언정 사색을 한다거나 독서하기를 힘써 피하였다. 집필 물론 아니하였다. 한 것이 있다면 그날 그날의 가사일기를 적기와 최군(崔君)·은군(慇君) 두 곳에 서신을 초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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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그렇게 지우고 일찌거니 자리에 든다. 단 1분이 못하여 잠이 들고 만다. 그, 잠이 솔깃이 들려는 즉 생시(生時)의 마지막이요 잠의 시작인 바로 순간의 쾌감…… 그것은 능히 천금에 값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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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납고도 추한 현실을 도망해 나온 것도 크거니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잠을 도로 찾은 것도 즐거운 노릇이라고 스스로 기뻐하였었다. 그랬던 것이 단잠을 자기 겨우 10개월, 또다시 잠을 잃어버리고 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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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두어 개씩 때로는 너댓 개씩 머리속에서 두서없이 꿈틀거린다. 그것을, 요샛날 정거장의 군중이라도 정리하듯이 갈피를 차리느라고 연방 담배를 피우면서 궁리하고 앉았느라면 어느덧 자정이 넘는다. 잠은 멀리 달아나고 아무리 자리에 누워서 잠이 들자고 애를 써도 무가내하(無可奈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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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일 전부터「미스터 방(方)」이라는 단편을 하나 시작하여 보았다. 그러나 하룻밤 7,8시간씩 앉아서 삐대는 것이 2백자 석 장을 1주일 동안에 겨우 썼다. 그러고는 뜬눈으로 밤을(누워서) 샌 것이 두 차례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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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무겁고 간밤에 계속하여 귀가 운다. 온종일 몸이 매맞은 것처럼 나른하다. 하되 그 피로란 결코 시골서 일을 함으로써 오던 그런 유쾌감이 따르는 피로가 아니라 지극히 불쾌한 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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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11월초 해방 후 비로소 서울 행보를 하느라고 오랫동안 입지 아니한 와이샤쓰를 입는데 칼라가 작아서 단추를 낄 수가 없었다. 금년 봄 까지도 오히려 커서 손가락이 둘씩이나 들어가던 여러 번 빤 와이샤쓰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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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가 어째 이리 줄었느냐고 하였더니, 안해는 대답이, 줄면 첫물 두물에 줄지, 그새 벌써 대여섯물도 더 빨았는데 인제 별안간 주느냐고, 그러면서 다른 걸 입어보라고 한다. 네 벌 있는 것을 차례로 다 입어보았다. 네 벌이다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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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가 주는 게 아니라 목이 불으셌나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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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해가 그러는 것을 나는 “그새 겨우?” 하고 말았으나 어심(於心)엔 짐작가는 것이 없지 아니하였었다. 그러고는 서울로 올라왔는데, 아닌 것이 아니라 만나는 친구마다 한다는 말이 얼굴이 퍽 좋아졌구료 하는 인사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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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불고 얼굴이 좋아졌다는 인사를 받고 하기도 인제는 지나간 이야기요 앞으로 얼마 아니 있으면 반드시“요새 어디 몸이 편찮았소?”하는 인사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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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가서 무얼 하고 지냈느냐고 묻는 친구에게 웃음삼아 내어보이던 손바닥의 옹이도 나날이 희미하여져 간다.
 
 
21
<白民[백민] 1946년 1월호>
【원문】상경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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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 백민 [출처]
 
  1946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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