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안쿠…… 아이구 이걸 어쩌면 졸까…… 저년을 목을 바짝 눌러 죽여 버릴까 보다…… 그리곤 감쪽같이 씻어 덮어버리면 그만이지…… 그렇지만, 그렇지만 차마 내 손으로 죽일 수가 있어야지…… 차라리 병이나 들어 저절로 죽어나 버렸으면 좋으련만…… 그러면 저도 고생을 면하고 나도 그 덕분에 한평생 잘 살련만…… 그렇지만 저 따위가 곧 죽지도 않아…… 눈치 먹는 아이 오래 산단 푼수로 한 오백 살이나 살 게야. 아이구, 이걸 그저…… 내가 인제 어린 놈이 이것이 무슨 죄야…… 이것이 모두 뉘 잘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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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짜증이 나고 그를 따라 자기의 안해가 얄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5
밤은 이미 훨씬 깊었고 창 밖에서는 거친 바람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6
때는 아직 삼월 초생이라 문틈으로 스며들어오는 바람끝이 몹시 싸늘하였다. 방안은 등불을 꺼버렸으므로 굴속같이 컴컴하여 서로서로의 얼굴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7
봉우는 찬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느라고 덮었던 이불을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똘똘 말아 덮었다. 한즉, 한참만에 방바닥에서는 따스한 기운이 다시 찬 이불 속으로, 스며올라와 그는 포근한 쾌감을 느꼈다. 이 포근포근한 쾌감에 싸인 그의 육체는 다시 자기의 아내인 이성의 불안스러운 숨소리, 그윽한 살 냄새, 더우기 머리털에서 우러나는 기름 냄새의 자극을 받아 산뜻한 성욕의 충동을 일으켰다.
8
그 숨소리, 그 살냄새, 그 머리털에서 우러나는 기름냄새 ─ 는 모두 봉우가 예전에 자기 안해에게서 육욕을 일으키던 꼭 그것이었으므로 봉우 자신은 그것을 설령 의식치 못한다 하더라도 제삼자의 눈으로는 그것이 역사적으로 인연이 깊어 그리운 감상을 머금은 듯한 것이었었다.
9
봉우는 덥석 달려들어 자기 안해를 껴안고, 밉고 싫기는 하나마 눈을 질끈 감고 춘정을 풀 생각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욕망을 견뎌내느라고 몸을 비비 틀며 혼자 속으로 자기를 나무라고 이혼할 생각을 또 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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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 내가 이래선 안될걸…… 내가 이걸 이 자리서 이겨내야지, 만일 그렇지못하면 이혼을 한다구 말할 면목이 있나. 이번엔 꼭 이혼을 해버릴 작정으로 얼마 아니 되는 휴가에 동경서 집엘 왔으면서…… 그래그래…… 내가 참아야만해…… 그리고 이혼을 꼭 해버려야지. 그렇지만 무슨 조건이 있어야지…… 물론 협의론 못할게구, 그러면 재판을 해야 할 터이니까 상당한 조건이 없인 안될건데. 그리고 또 집안에서도 생성화만 대고 들어먹어 주질 않을 게야. 아이구…… 이걸 글쎄 어쩌나…… ’
11
이처럼 그는 생각을 하며 그 욕망을 억제하느라고 '하마터면’ 하는 위태로운 적도 몇 번을 겪고 기어코 그는 그 꾀임을 이겨내다가 필경은 잠이 슬며시 들어 버렸다.
12
봉우는 지금부터 아홉 해 전, 즉 그가 열네 살이고 그의 안해가 열다섯살 나던 해에 부모가 시키는 대로 아무 철도 없이 장가를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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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봉우는 차차 나이 들어감을 따라 그 건조하고 멋없는 자기 아내를 싫어하고 괄시하기를 시작하였다. 그러는 반면으로 그는 '나이도 자기보다는 훨씬 더 어리고 신지식이 넉넉하고 아양이 족족 흐르는 활발스럽고도 온순한 미인’을 일상 그리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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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는 열다섯 살 나던 해로부터 자기 집에서 나가 군산으로 가서 보통학교를 다니다가 다시 서울로 가서 중학을 마친 뒤에 일본 동경으로 갔으므로 지금껏 객지로만 돌아다니고 별로 자기 본집에 있은 적이 없었다. 다만 학교에 휴가가 있는 틈을 타서 일 년에 몇 번씩, 그렇지 않으면 일 년에 한 번쯤 집에를 다녀갈 뿐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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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가 자기 아내에게 쌀쌀하게 구는 태도는 그가 집에 다니러 올 때마다 더하여 갔다.
16
그리하여 지금 와서는 아주 길에서 서로 보고 지나가는 행인을 대하는 것이나 진배 없고 미워하기는 원수보다도 더 미워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봉우가 그의 아내를 지금까지 처녀로 온전히 두어온 것은 아니었다.
17
봉우는 성욕가(性慾家)였었다. 그러므로 그가 열일고여덟 나던 해로부터 스물하나 둘까지 이르는 동안, 즉 그의 춘기가 발동되는 동안에 일어나는 성욕의 충동은 매우 격렬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고향에 다니러 올 때마다 자기 안해를 미워는 하면서, 싫어는 하면서 그래도 하는 수 없이 그 타오르는 성욕의 불길을 자기 안해에게 풀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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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봉우는 그 순간만이라도 자기 안해에게 대하여 조그마한 애착심도 생기지 아니하였다. 도리어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밉고 싫은 감정이 전보다 한층 더할 따름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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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할 것 없이 그의 안해는 그에게 대하여 성욕의 기능을 가진 기계와 다름이 없었다. 아니, 차라리 기계나 같았으면 애착심은 없다 하더라도 미워하고 싫어하지는 아니할 것이다.
20
봉우의 안해는 아주 순박한 시골 부인이었다. 키는 봉우보다도 ㅡ 봉우도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ㅡ 더 커 보이고 몸과 얼굴은 썩 부대하여서 보기에 매우 복성스러웠다. 그러므로 봉우가 자기 친구나 누구에게 자기 안해의 말을 하려면 '뚱뚱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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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얼굴이 사실 밉고 보기 싫지는 아니하였다. 그의 성질은 매우 온순하고 다정하여 봉우의 집안에서는 봉우를 빼놓은 외에 누구나 한 사람도 그를 귀여워 아니하는 사람이 없고, 심지어 동리 사람들도 모두 '남편에게 그다지 괄시를 받으면서도 아무 티색이 없이 시집살이를 잘하는 것이 참말 얌전하다’고 칭찬을 하고 널리 소문이 퍼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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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한 장점을 그가 가지고 아니 가진 것이 그의 남편인 봉우가 그에게 대한 냉랭한 태도를 낫기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아무리 부처님 같은 봉우의 아내일 망정 가끔 그 동서(봉우의 형수)와 마주 앉으면 하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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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같은 이는 참 좋겠소…… 부부간에 정이 깊어서 아들두 낳구 딸두 낳구 세상을 재미있게 살아가시니 참으루 부럽소…… 나는 세상에 무슨 죄가 그리두 많아서 이 모양이라오? 무엇을 바라고 세상에 살 재미가 있어야지요…… 차라리 날 같은 년은 진즉 죽어나 버렸으면 좋으련만 모진 목숨이 잘 죽지두 않구…… 지금은 그래두 부모두 계시구 형님두 계시니까 그렁저렁 아모데나 의질 하구 살지만 인제 좀 있다가 부모두 돌아가시구 형님하구두 흩어지면 그땐 누굴 믿구 어델 가 살아요! 그러나마 자식이나 하나 생겼드라면 그것이나 믿구 살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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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그 왕방울같이 큼직한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한숨을 거듭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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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서러워하기를 작년 올로 들어서 갑자기 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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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봉우가 작년 여름방학에 집에 돌아왔을 적에 자기에게 대한 태도가 말할 수 없이 더 참혹하여진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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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봉우는 작년 여름에 돌아왔을 적에 자기 안해가 지어 주는 옷은 입지도 아니하고 박박 잡아 찢어버리며 그가 가져다 주는 밥상은 박차 버리고 밥을 아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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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자기 안해가 자는 안방에는 발걸음도 들여놓지 아니하고 날마다 자기 모친을 조르면서 자기 안해를 그 친정으로 쫓아보내 버리라고 성화를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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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봄방학에 봉우가 갑자기 돌아온 것을 보고 봉우 모친은 지성스럽게 봉우가 밥을 먹는 밥상머리에 가 앉아 달래듯이 말을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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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 개똥(개똥이는 봉우의 어렸을 때의 이름)아! 너두 인젠 그 공분지 무엔지 좀 제발 그만해 두구 살림살이 좀 안해 보련?…… 넌 그저 한평생 공부만 하기로 작정이니? 그리구 너 왜 글쎄 네 아내한테 그리 몹시 구니? 그리질 말구 좀 곰살갑게 굴어보렴…… 다른 사람 같으면 이애 벌써 사위라두 며누리라두 네 낫세에 보았겠다…… 내가 답답하구 속이 상해서 못살겠구나! 그애(봉우 아내) 가 무얼 조금치나 잘못하구 그리는 게 있어야 미월 하든지 쫓아보내든지 그리지……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런 안해만 얻었으면 참말이지 세상 살기 근심도 없겠다…… 제발 덕분 그리지 좀 말구…… 오늘 저녁엘랑은 곰살갑게 말두 해주구 잘 풀어 일르기두 하구 그래라…… 그 앤들 맘에 좋겠니? 내 안이 남의 안이란 말처럼 너두 좀 생각을 해보렴…… 오늘두 네가 오든 멀로 좋잖은 낯으로 절 흘겨보구 그리니까 제 방으루 들어가서 울기만 하더구나…… 밥두 먹질 않구…… 네가 그리니까 난 인제 죽어두 눈을 감구 죽질 못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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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봉우는 이 말을 듣고 자기 모친을 한번 흘긋 치어다보더니 다시 밥을 퍽퍽 퍼먹으며 업수이 여기듯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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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왜 어린 자식을 장간 들이랍디까? 말을 아니하려니까 말이지…… 아이구, 참……어머니 아부지가 절 장가 일찍 들여주셨기 때문에 남의 자식(봉우의 안해) 이나 내 자식 (봉우)이나 신세 망쳐 주신 줄은 모르시우? 어 !…… 답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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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봉우 모친은 봉우의 하는 말에 기가 막히는 듯이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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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이애야…… 사람마다 자식 낳아가지구 남혼여가(男婚女嫁)시켜서 저희끼리 오손도손 잘 살구 자손 많이 퍼져서 번족하게 되는 걸 보는 게 늙어선 제일 큰 재미란다…… 그래 넌 부모 생전에 장가 아니 들구 총각으로 한평생 살렸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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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어머닌 참 답답한 말씀두 다 하시지…… 그래 제가 지금 오손도손 살어 갑니까? 그리구 어머니나 아부지께서 안 여워 주셨으면 한 평생 장간 못 갈 줄 아십니다그려? 어이구, 어머닌 참 …… 지금 버젓하게 장갈 가구 싶어두 어머니 아버지께서 미리서 장갈 그 따위로 들여주셨기 때문에 저 혼자 지금 속으로 꿍꿍 앓기만 해요…… 아시우? 어머니, 그리구 또 부모가 재미있어 하는 노릇이면 자식을 아무렇게라두 해서 재미만 보면 그만이겠읍니다그려? 자식은 어찌 되던…… 그리구 자식은 아무 말두 못하구 부모가 시키는 대루만 따라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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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봉우는 경멸하듯이 자기 모친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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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봉우 모친은 퀄퀄히 대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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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길 이르겠니 ?…… 부모의 뜻을 거슬리잖는 게 효자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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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요 그러면 어머니…… 부모가 자식을 칼이나 총으로 놓아죽이는 것이 재미라면 자식을 죽이기라두 하겠읍니다그려? 글쎄 말씀을 마세요…… 제가 조곤조곤 말씀을 해 드리려두 어머닌 제가 하는 말을 깨닫지 못하실게니까 말씀을 아니 해요…… 어머니두 그만해 두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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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몹쓸 어미아비가 자식을 죽인다던?…… 널 장가들인 것두 다 널 위해 그런 게지. 어미 아빈 다 너희 잘 되라구 그랬건만 너흰 그 공두 모르구 그러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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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봉우 모친은 봉우의 하는 말이 노여운 듯이 풀이 죽어가지고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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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어머니…… 그만 좀 해두세요. 참 답답해 못견디겠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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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이나 무에나 난 모르겠다…… 네 안해한테 그리 몹시 굴지나 말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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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두 그런 걱정은 마시우…… 내가 저한테 몹시 굴건 다른 놈한테루 시집이라두 가서 제 맘대루 살잖구 왜 육신이 멀건 게 구구하게 내 집에 들어 붙어서 제 고생하구 나까지 속상하게 굴어 ! 못생긴 것이 못생긴 구실을 하느라구 그리나? 어머니! 아따 그렇잖아두 이번엔 꼭 조철해버릴랴구, 그 일 때문에 왔으니까 염렬 마시우…… 오늘 저녁에 말이나 잘 일러서 다른 곳으로 가서 살게 하겠 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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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 모친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고 말없이 금시에 울기라도 할 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밖으로 나아갔다. 봉우는 혼자 속 맘으로 '오늘 저녁 어디 말이나 좀 해보아야지…… 될 수만 있으면 협의로 하는 게 좋으니까......’ 라고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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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그날 밤에 자기 안해를 데리고 앉아 이혼에 대하여 맘먹은 말을 하여 보려고 안해가 있는 안방으로 들어가기는 하였으나 마주 앉아 말을 하려고 한 즉 무어라고 말을 꺼내야 좋을지, 또 그동안 않던 말을 섬뻑 하기가 어째 계면 쩍은 듯하여서 여러 번 망설이다 필경 말을 하지 못하고 딴 생각만 하다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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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처럼 이혼에 대하여 혹 다른 필요한 말을 봉우가 자기 안해에게 말 하려다가 그만 못하기는 이번 뿐이 아니라 예전에도 그렇듯한 일이 가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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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봉우의 아내는 봉우 말대로 하면 '무식장이’ 이었으므로 봉우의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터이었다. 말하자면 그저 우리 나라 농촌에 파묻힌 소위 '아무 것도 모르는 시골 부인’에 꼭 알맞은 형전(型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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