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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歷代)의 이인(異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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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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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代[역대]의 異人[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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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다가 燕山王[연산왕] 代[대]에 戊年[무년]·甲子[갑자]의 두 번 士禍[사화]가 나오고, 이 빗나간 세상을 바로잡는다는 中宗朝[중종조]에 역시 己卯士禍[기묘사화]가 있어, 士禍[사화]로부터 士禍[사화]로 딩굴딩굴 굴러나가는 조선에는 항상 검정 구름이 떠돌고, 明宗朝[명종조]에는 乙巳士禍[을사사화], 宣祖朝[선조조]에는 동서 分黨[분당]과 같이 세정의 소연함은 갈수록 박차를 더할 밖에 없으며, 정히 이 때에 북방에는 女眞族[여진족]의 되놈이란 것이 와짝 세력을 늘여서 사나운 말의 닫는 형세를 걷잡지 못하게 되고, 남방에는 오래 내부 분열·自相攻伐[자상공벌]에 휘감겨서 다른 변통이 없던 일본이 織田信長[직전신장]·豐臣秀吉[풍신수길] 등 영웅의 손에 한층 국내의 통일을 완성하고, 그 나머지 힘이 밖으로 넘쳐나올밖에 없는 형세를 보이니, 앞문 뒷문에 사나운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一代[일대]의 인심이 커다란 공포에 붙들리고 깊은 조심에 빠질 것은 진실로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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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외의 형세는 날로 급박하건마는, 조정에나 민간에나 아무도 이 난국을 담당하리라고 믿을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살고 죽는 모든 일을 다 잊어버릴 수도 없으매, 여기서 현실을 떠나서라도 어디다가 마음을 붙여 볼까 하여 생각해 낸 것이 이인이란 것인 양합니다. 심상한 사람으로는 이미 도리가 없으니 비범 특이한 인물이나 나와야지 하는 관념이 어느 틈엔지 구체적 우상으로 변한 것쯤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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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구차해지면 어진 아내를 생각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정승을 생각하는 셈이라 할지, 세상 형편을 보는 바에 이인이나 나와야 어떻게 되지 하는 생각이 만인의 가슴 속에 기약치 않고 일치해서 떠오르게 되었겠지요. 하늘이 우리 백성을 아직 못 살게 하실 리가 없으니까, 언제고 이인이 나와서 이 형편을 피어 놓겠지 하는 생각도 하였겠지요. 이러나 저러나 이인아 나오너라! 하는 소리 없는 부르짖음은 아마 明宗[명종]으로부터 宣祖[선조]·光海主[광해주] 때에 걸쳐 반도의 산하에 가득히 찼었을 것을 생각할 수 있읍니다. 이것은 공연히 이론상으로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 있어서, 우리에게 이러한 추리를 시키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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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다 아는 바거니와, 조선에서 이인이라고 하면 아마 누구든지 얼른 연상할 이가 鄭北窓[정북창]·李土亭[이토정](一五一七[일오일칠] ∼ 一五七八[일오칠팔])·楊蓬萊[양봉래] (一五一七[일오일칠] ∼ 一五八四[일오팔사])·南師古[남사고]·尹君平[윤군평]·朴枝華[박지화]·田禹治[전우치] 등일 것입니다 . 그런데, 이 여러 사람은 죄다 明宗朝[명종조] 전후에 거의 시대를 한가지하여 세상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正史[정사]와 行狀[행장] 같은 것으로 보면 그네들은 대개 명문의 子姪[자질]로 어려서부터 才名[재명]이 있고, 또 뜻이 고상하여 벼슬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였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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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네들은 어느 틈엔지 민중의 이야기판으로 끌려 나와서 차차 초인간적 능력의 소유자가 되어 버리고, 마침내 안광이 千古[천고]를 照破[조파]하는 일대 예언자로서 신앙하게 되었읍니다. 이네들의 갸륵하다는 이야기는 한이 없읍니다. 〈眉叟記言[미수기언]〉에 ── 鄭北窓[정북창]이라는 이는 어려서부터 神通力[신통력]을 가지고, 앉아서 남의 집 골방 속 일로부터 천리 만리 밖 일을 죄다 알며, 十四[십사]세에 중국을 들어가니, 琉球國[유구국]의 望氣[망기]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재배하여 가로되, 제가 본국에 있어서 推數[추수]를 하여 보니, 某年月日[모년월일]에 중국으로 들어와서 마땅히 眞人[진인]을 만나리라 하였더니, 당신이 과연 그 어른이십니다 하고 가르침을 청하매, 이로부터 모든 외국 사람이 다투어 와서 만나보는데, 北窓[북창]이 어느 나라 사람을 대하든지 죄다 그 나라 말로 수작을 하니, 말끔 경탄함을 말지 아니하여, 이름하여 가로되 天人[천인]이라 하니라 하였읍니다. 眉叟[미수]로 말하면 점잖은 양반이지마는 이것을 확실한 사실로 믿고 적었으니까, 일반 민중의 사이에는 그의 신통한 능력이 얼마나 과장되어 일컬었을는지 모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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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의 心靈學上[심령학상]에 Telepathy라 하는 현상 ── 정신 감응·隔感現象[격감현상]·이심전심 작용이라 하는 것이 있어서 원방의 일을 감동하여 아는 법이 있다 하고, 또 잠재의식의 발동을 말미암아서, 평시에는 까맣게 잊어버렸던, 그 전에 들어 두었던 글귀나 외국 말을 어떠한 상태하에서 저도 모르게 생각해서 내 입으로 옮기는 일은 있다고 하니까, 鄭北窓[정북창]에게도 얼마만큼 이러한 능력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마는, 천하 외국말을 배우지 않고 능히 옮겼다는 말은 좀 너무 엉터리없는 허풍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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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만이면 오히려 가하지마는, 鄭北窓[정북창]은 자기의 생전뿐 아니라 미래에 관하여도 미리 앎이 귀신과 같다고 하게 되어서, 종종의 비결이 그의 이름으로써 행하게 되었읍니다. 그뿐 아니라, 北窓[북창]의 아우 古玉[고옥](碏[작]), 또 그 아우 十竹軒[십죽헌](䃫), 종형 礎[초], 十竹軒[십죽헌]의 아들 叢桂堂[총계당](六升[육승]), 一門[일문] 四[사]종형제 五[오]숙질이 다 신이한 境界[경계]에서 놀아서, 一門[일문]이 온통 이인이었다고 말합니다. 〈天倪錄(천예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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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北窓[정북창]이 한번은 고모 되는 아무 부인을 가서 뵈온즉, 고모부인이 걱정으로 있다가 말씀하기를, 경상도 어느 지방에 나가 사는 종의 곳으로 추렴을 거두라고 하인 아무개를 내려보냈는데, 돌아올 限[한]이 벌써 지났건마는 아무 소식이 없으니, 암만해도 水火[수화] 도적간에 무슨 탈이 있는 것이야 하시거늘, 北窓[북창]이 가로되 「아주머님, 궁금해 하실 것 없읍니다. 제가 알아 보지요」 하니 부인은 장난의 말로 알았다. 北窓[북창]이 그 자리에서 눈을 꽉 감고 한참 정신을 모으고 앉았다가, 홀연 눈을 뜨고 고하여 가로되 「아무개가 이미 鳥嶺[조령]을 넘어오고, 아무 다른 걱정은 없읍니다. 다만 그놈이 시방 어느 선비에게 얻어맞고 있는데, 이것은 제가 잘못하고 맞는 것이매, 원통하달 수 없읍니다」하므로, 부인이 웃으면서 곡절을 물은대, 北窓[북창]이 가로되, 「한 선비가 신행을 거느리고 가다가 노상에서 쉬는데, 그 놈이 말을 타고 그냥 앞으로 지나니 선비가 大怒[대노]하여 저의 하인을 시켜 붙들어 내려서 짚세기로 뺨을 너댓 번 갈겼읍니다」 하는지라, 부인이 혹시 맞아도 하고 그 연월일을 벽상에 적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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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에 하인이 돌아오거늘, 묻되 「嶺[령]을 넘어오다가 왜 양반에게 매는 맞았느냐?」 한대 하인이 깜짝 놀라서 전후 이야기를 하는데 죄다 北窓[북창]의 말하던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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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이야기는 분명히 隔感現象[격감현상], 천리안의 유에 속할 것으로 이만한 능력은 혹시 어떠한 소질을 가진 사람에게 더러 있는 바이니까, 이미 이야기는 반드시 허망한 말로만 볼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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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8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