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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4
백신애
1
울음
 
 
2
내가 어렸을 때 숙부(叔父) 한 분이 죽었다. 그때 숙모 되는 분은 아직 스물 자리를 한 젊은 여인이었고 그의 단 하나 혈육은 어린아이였었다. 나의 아버지는 맏형이었으므로 할아버지가 없는 까닭에 일가에 으뜸가는 어른이 었었다. 그때 아버지는 개명꾼(開明軍)이라고 남들에게 존경도 받고, 비난도 받아오느니 만큼, 재래의 인습을 타파하기에 노력하였었다. 그러므로 숙부가 죽었어도 일체 소리를 내어 우는 것을 엄금하였으므로 누구 하나 감히 울음소리를 내지 못했었다.
 
3
더구나 제일 많이 울어야 할 숙모는 현숙한 부인이었으므로 젊은 여인이 제 남편을 죽이고 소리를 내어 울기가 방정맞고, 요물스러워 보일까 하여 조금도 소리를 내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그 초상은 울음소리 없는 초상이었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가만가만 제 가슴 속으로만 느껴 우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늘 숙부 생각이 나면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숙모는 남들 모르게 가만히 혼자서 책상에 팔을 얹고 입술을 다문 채 두 눈을 바로 뜨고 얌전한 여인상(像)을 조각해 논 것 같이 움직이지도 않고 앉아서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것을 나는 여러 번 엿보았었다. 이렇게 소리끼 없이 우는 것을 가만히 엿보는 것이 철없는 나의 가슴에 참 슬픔을 엿보았었다.
 
4
“아이고 아이고 나를 두고 어데 갔나. 나는 혼자 어찌 살고.”
 
5
하며 소리쳐 둥글며 우는 것보다 몇 갑절 더 슬퍼 보이고 또 아름다워 보였었다. 그러나 그 초상을 친 후 이웃 사람들은
 
6
“그 집에는 사람이 죽어도 우는 사람이 없더라. 죽은 개새끼나 끌어내듯이 잠잠하니 참 쓸쓸하더구나.”
 
7
하고 울음소리 없었음을 욕하였다. 그러나 나는 누구가 무어라고 하던지에 소리 내어 우는 것은 싫었다. 남에게 보이고저 슬퍼하는 것이 아니고 내 스스로가 슬픔에 못 이겨서 우는 것이라면 구태여 소리 내어 울어야만 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8
눈물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기는 하지만, 나로서는 눈물의 정의를 내리라면
 
9
“눈물이란 슬픔이 극에 달하였을 때 흐르는 것으로, 사람이 울 때는 선악인임을 구별치 않고, 가장 슬프고, 또 참된 순결할 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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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서투르기는 하나 이렇게 말하겠다. 그러나 나는 좀처럼 울지 않는다. 아니 울 줄을 모른다. 사람이 울 때는 그 맘이 가장 아름답고 순결하다 하고 하였으니, 나는 울지를 못하느니만큼 아름답고 순결한 맘을 가져보지 못함이 된다고 하겠다.
 
11
그러나 비록 울지는 못하지만, 우는 그것에 대하여는 무한히 동경한다. 내 맘에 드는 장소와 시간에 내 혼자서 내 맘에 드는 경치를 바라보며 두 눈에 슬픔을 가득히 고여 입술을 다문 채 소리끼 없이 울어보고 싶다. 아니 소리끼 없이 눈물만 흘려보고 싶다. 그러나 이것은 내 맘이요, 실제로는 눈물이 임의로 흘려지지 않으므로, 남이 우는 것을 볼 때는 내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동정하고 싶어진다. 이 세상이 허위와 죄악으로 충만해 있는 것이면 오 ─ 직 그 눈물만은 누구가 흘린 것이든 간에 진(眞)과 선(善)과 미(美)를 갖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할 때가 많다. 만일 내가 눈물에 속아서 나에게 큰 해로움이 있더라도 나는 조금도 후회하거나, 그 눈물이 거짓으로 흘린 것이로구나 하고 원망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 맘이 아주 순결하고 아름답고 슬프고 할 때가 있는 줄 스스로 느낄 수는 없지만 눈물이 흐르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이 울 때는 내 맘의 순결과 슬픔의 몇 백 배에 달했음을 믿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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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나는 일생을 눈물을 흘리지 못 해보고 죽는가 했었다. 그러나 지난 십이월(十二月)에 내 아버지가 죽었을 때, 비로소 눈물이 났다. 눈물 뿐 아니라 내가 가장 싫어하던 소리를 내어 울었다. 예의도, 염치도, 이지도, 교양도, 다 ─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디서인지 소리가 터져 올라 내 입으로 거쳐 나오고 내 눈에는 폭포같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의 내 울음은 세상의 무엇으로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울음이 진정될 때 나는 문득 생각하였다. 숙부가 죽었을 때 울음소리 없음을 욕하던 것도 일리가 있는 것이며, 조용히 소리끼 없이 우는 것도 보통 슬플 때일 것이다. 그리고 순결이라든가 참되고 선함이라든가 하는 것도 이러한 때 솟아나는 감정일 것이다. 슬픔이 극에 달하여 다시 한 걸음 넘어서면 슬픔에 자아를 잃어버리고 슬픔이 슬픈 것이라고 슬퍼할 줄도 모르고 그저 울게만 되는 것이다 ─ 라고 느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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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1936. 4)
【원문】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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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애(白信愛) [저자]
 
  중앙(中央) [출처]
 
  1936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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