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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천하(曇天下)의 시단(詩壇) 1년(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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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12
임화
1
曇天下[담천하]의 詩壇[시단] 1年[년]
 
2
── 朝鮮[조선]의 詩文學[시문학]은 어디로? ──
 
 
3
우리 조선의 詩文學[시문학]이 지난 해의 잠자리에서 눈을 부비고 창문을 열었을 때 올해의 시대적 하늘의 빛깔이란 매우 심상치 않었다.
 
4
지난해 수십 명의 시인, 작가, 비평가의 一團[일단] 위에 내린 무서운 雷雨[뉘우]는 결코 물러가지 않았을 뿐더러, 안개와 구름은 이상 더 농도를 깊이 하고 거치른 바람은 비가 올지 눈이 올지 전연 판별키 어려웠다. 浦口[포구]를 향하여 배를 젔기에는 너무나 험한 天候[천후]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출항을 그만둘 수는 없는 것이다. 이곳에 우리들의 운명의 잔인함이 있고, 이 땅의 詩文學[시문학]의 눈물겨운 行路[행로]가 있다. 이 질풍과 노도가 물결치는 가운데서 지난 6월, 드디어 10년간의 苦鬪史[고투사]를 가진 이곳의 진보적 문학의 조직적 모체가 放棄[방기]되고, 그 압력은 파도와 같이 모든 종류의 양심 있는 문학에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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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는 드디어 우리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유일의 도구인 우리들의 언어가 危機下[위기하]에 서게 된다는 침통한 사실이 예술가의 앞에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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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시인은 모든 예술 가운데 가장 敏捷[민첩]한 시대 현실의 感知者[감지자]이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시대적 정신의 最良[최량]의 의미의 傳聲機[전성기]라는 데서 그들은 높은 명예를 차지해 왔다.
 
7
그러므로 우리들이 시인인 명예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들이 인간생활의 역사적 창조상의 한개 정신적 협동자인 자격을 잃어 버리지 않은 데서 성립하며, 또 시인의 명예는 항상 전 인류적 명예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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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나는 시인인 명예를 전 인류적인 모든 명예 가운데 최고의 것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者[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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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길을 통하여서 한개 미미한 시인의 명예는 全[전] 계급적일 수가 있으며 계급적 명예는 全[전] 민족적, 국민적일 수가 있으며 그것은 곧 전인류적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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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외에 지금 또 별개의 詩人[시인]인 명예가 있을 수가 있다면 그것은 의심할 것도 없이 허위의 명예일 것이며, 진실한 시인적 영예로부터는 훨씬 먼 거리의 것이 아니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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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들의 시인의 명예 가운데 얼마나 이 허위의 명예가 많은 것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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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으면 시인인 것은 何等[하등]의 명예일 것이 없는 것이다. 시인이란 어떤 의미에서 다른 사람보다 가장 잘 모든 것을 알 수가 있고, 또 가장 잘 이야기할 줄 아는 그것으로 범속한 인간으로부터 구별되는 하나의 ‘理想的[이상적] 人間[인간]’에 가까울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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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다른 사람보다도 잘 알지 못하고 잘 이야기하지 못하든지 혹은 알기만 하고 이야기할 줄을 모른다든가, 또는 알지는 못하고 이야기할 줄만 안다면 한의 평범한 인간이나, 혹은 벙어리 웅변가나 또는 단순한 代書家[대서가], 代辯人[대변인]과 다를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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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시인일 수 있는 명예와 그 자격은 그가 시대현실의 본질이나 그 각각의 세세한 転移[전이]의 가장 민첩하고 정확한 認知者[인지자]이며, 그 시대가 역사적 전진을 위하여 體現[체현]한 바 시대적 정신의 가장 솔직 대담한 대변자인 데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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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一文[일문]에서 나는 우리 조선의 영예 있는 시인들이 얼마나 정확히 이 침통하고 심각한 시대적 현실을 감수하고, 그 중후한 기압 속에서 묵묵히 흘러가고 있는 시대정신의 물결 소리를 어떻게 자기의 시적 언어를 통하여 반영, 표현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봄이 주요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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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히 지내간 1년 간이란 여하히 두터운 皮膚[피부]에 의하여 신경과 外界[외계]를 절단 당한 인간일지라도 능히 그 육체의 奥處[오처]에까지를 뚫고 들어갈 만치 時代的[시대적] 曇天[담천]의 열풍은 날카로웠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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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는 금년에 들어와 일반 문학계가 취급한 가장 큰 테마의 하나로 ‘古典文學[고전문학]의 再吟味[재음미]’ 혹은 ‘古典復興[고전부흥]’ 등의 구호하에 환기된 복고주의의 시끄러운 抬頭[대두]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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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주의에 대하여는 벌써 2,3년 전 우리들 과학적 文藝批評[문예비평]이 그 抬頭[대두]의 한개 蓋然性[개연성]을 지적한 일이 있는 것으로, 우리 朝鮮文學[조선문학]의 가장 보수적인 一郡[일군]에 의하여 신문학 抬頭[대두]의 시기인 20년 전후부터 문학계의 一偶[일우]에 잔존해 오던 것이다. 그러나 신문학이 치열한 근대적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한개 봉건적 문화의 유물로서 아무에게서도 顧廬[고려]되어 오지 않었다. 新詩[신시]에 대하여 時調[시조]는 완전한 한개의 보수적인 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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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新詩[신시]가 그 내적 모순의 발전으로 인하여 그 예술적, 정신적인 생명을 새로운 계급의 詩歌[시가] 위에 傳承[전승]하고 말었을 때 新詩[신시]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시조 등의 敵[적]임을 그만 두었다. 新詩[신시]와 시조, 舊調[구조]의 가요 등은 사실상 예술적, 사상적인 同棲者[동서자]로서 和睦[화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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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순하고 雜然[잡연]한 新世代[신세대]의 詩歌[시가]와의 계급적, 적대적 관계가 발전하면 할수록 반대로 접근되고, 심화되어 復古主義[복고주의]라는 한개 統一的[통일적] 潮流[조류] 가운데 융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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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복고주의가 일반화 하는 것은 우리들이 역사상에서 잘 보는 것과 같이 그 계급에 의하여 대표되는 시대와 문화와 예술이 임종을 당할 때에 나타나는 고유의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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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반드시 황혼이 되면 飛翔[비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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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 미네르바의 부엉이의 노래에서 우리는 新詩[신시]와 봉건적인 가요, 시조와의 사이에 본질적인 구별을 설정할 수는 전연 불가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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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지난해의 詩評[시평] 가운데서 우리 詩壇[시단]의 어떤 젊은 시인이 ‘요한에게서도 巴人[파인], 月灘[월탄], 素月[소월]에게서도 저 옛날의 그렇게 고혹적이든 「아름다운 새벽」의 朝鮮[조선]도, 「國境[국경]의 밤」의 覇氣[패기]도 「僧房秘曲[승방비곡]」의 심오도, 「금잔디」의 서정도 찾어볼 길이 없다’고 지적한 것은 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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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시인도 지적한 바와 같이 그들이 이렇게 ‘답보로’를 할 뿐더러 ‘뒷걸음’을 치는 그것이 본질적임을 지적치 않음은 유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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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1년 간의 그들의 詩的[시적] 業蹟[업적]을 회고한다면 누구의 눈에도 명확한 바와 같이 그들도 과거를 향하여 일직선적으로 다름질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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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逆行[역행]은 그들이 전진하는 문학적 발전의 大途[대도]에서 停止者[정지자]로 자기를 轉地[전지]시켰을 때 벌써 시작된 것으로 언제나 전진으로부터 ‘답보’로는 곧 뒷걸음질의 출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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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히 이 문학적 퇴보의 대표적인 範例[범례]로서 우리는 岸曙[안서]의 韻文化[운문화]한 「洪吉童傳[홍길동전]」, 巴人[파인]의 「新靑年歌[신청년가]」 「中學生歌[중학생가]」등을 볼 수가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도저히 新詩[신시]와 舊調[구조]의 창가나 유치한 가요와의 구별을 찾기는 어려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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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灘[월탄], 春園[춘원]까지 맑은 시조로 돌아가고 李秉岐[이병기], 기타의 고색창연한 시조가 一流新聞[일류신문] 잡지의 詩歌欄[시가란]을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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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어즈워드’와 같이 아름다운 俗語[속어]의 驅使者[구사자] 素月[소월]은 죽어가고 가장 민주적 시인이었던 ‘石松[석송]’, ‘요한’은 침묵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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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퇴색한 중세적 餘音[여음]이 구슬프게 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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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우리가 이 潮流[조류]를 평가함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모른 爾餘[이여]의 뿌르조아적 詩歌[시가]에 비하여 가장 명확한 사상성 위에 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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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知[주지]와 같이 우리 조선의 뿌르조아적 문학, 그 중에도 이 금일에 있어서의 중세적 詩歌[시가]의 생산자들은 일찌기 신경향파의 시인들의 생활과 詩歌[시가]의 종합, 시의 사상성을 강조하였을 때 그들은 시의 순수성의 주장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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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들이 주장하는 바 시의 無思想性[무사상성]의 주장, 그것이 한개의 사상성이라고 비평하였을 때 그들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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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과 10분의 1세기를 지내지 못하여 그들은 자기의 詩歌[시가]를 가장 철저한 사상성을 가지고 투철시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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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는 한개 근원적인 변화가 내재한다. 허나 이 변화라는 것은 결코 이해키 어려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前述[전술]에서 前進[전진]의 停止[정지]가 곧 역행의 출발점이라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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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新詩[신시]의 창조자이었을 때, 다시 말하면 역사적인 진보의 體現者[체현자]이었을 때, 그들은 봉건적인 時調[시조]와 舊歌謠[구가요]에 대하여 격렬히 思想的[사상적]이었다. 이 진보적 시민정신의 불타는 열정 가운데서 그들은 자기들의 새로운 詩的[시적] 言語[언어]의 창조적 가능성을 획득한 것이다. 요한, 岸曙[안서], 巴人[파인], 月灘[월탄], 素月[소월], 石松[석송] 등이 現代詩[현대시]에 주는 바 가치있는 모든 詩的[시적] 遺産[유산]이 이 시대에 생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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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단 그들이 詩[시]에 있어서 예술을 위한 예술의 사상, 즉 詩[시]의 순수성의 수호자이었을 때 그들은 그들이 버금하는 역사적 세대의 내용이 되는 진보적 사상의 반대자로서 전진을 정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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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그들이 다시금 공연한 사상성에 의거함은 그들이 단순한 停止者[정지자]가 아니라, 사실은 과거에의 逆行者[역행자]로 轉化[전화]됨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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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그들 20년대 詩人[시인]들의 사상이 미래로는 물론, 현대로부터도 이탈하여 완전히 과거에의 意志[의지], 그것인 근본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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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단순히 詩[시]의 내용이라든가 사상에만 머무른 현상이 아니라 그 예술로서의 詩[시]의 形象性[형상성] 위에 날카롭게 작용한다는데 보다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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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由詩型[자유시형]으로부터 진부한 定律詩[정률시]에로의 후퇴는 일반적인 특징이며, 이 현상은 그들의 ‘新詩[신시]’와 時調[시조]와의 접근, 융합을 자연한 현상으로서 성취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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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全運動[전운동]의 핵심에는 한개 思想傾向[사상경향]으로서 낭만적인 민족주의가 위치해 있는 것으로, 예술적으로는 現代語[현대어]의 모든 新鮮美[신선미]로부터, 또 현대호흡을 전하는 생생한 音律[음률]로부터, 완전히 離去[이거]하여 무의미, 난해한 古語[고어], 死語[사어]의 발굴과 부자유하기 짝이 없는 時調[시조]나 그와 類似[유사]한 定律詩[정률시]로 퇴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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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들이 현대와 교섭하고 있는 단 한개의 방법은 현대의 人民[인민] 가운데 있는 가장 진부하고 卑俗[비속]한 思想[사상]과 情緖[정서] ── 그들의 역사적 전진의 장해물이 되어 있는 ── 와 연결하여 그것을 긍정, 조장케 할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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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들이 예술로서의 詩[시]에 주력을 경주하는 대신 가장 비속한 유행가, 雜歌謠[잡가요]에 힘을 쓰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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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現詩壇[현시단]에서 볼 수 있는 잡다한 潮流[조류] 가운데서 이 보수적 낭만주의란 우리 새로운 世代[세대]의 발전상에 있어서 가장 큰 桎梏[질곡]의 하나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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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의 모든 경향의 반진보적인 詩歌[시가]가 생활적인 진보대신에 중세적 과거에 대한 낭만적 감상과 결합한 것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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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이 보수적 낭만주의의 主流[주류]는 소위 新人[신인]이란 사람들 가운데서 차차 상당히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오오! 民衆[민중]이여!’ ‘朝鮮[조선]의 마음이여!’하는 이른바 ‘民衆詩[민중시]’派[파]라는 것이 역시 이것의 현대적 亞流[아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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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 성격적 특징은 ‘志士[지사]’와 옛날 ‘遊吟詩人[유음시인]’적인 생활적 무관심과 그와 같은 超然[초연]함이며, 공연한 大言壯語[대언장어]가 그 언어적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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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우리는 詩壇[시단] 一方[일방] 가장 왕성한 主流[주류]로서 수 3 년내 번영하고 있는 소위 ‘技巧派[기교파]’의 詩[시]를 발견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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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傾向[경향]이란 10년 전 낡은 ‘新詩[신시]’의 대표자들이 예술을 위한 예술의 이론을 가지고 신흥하는 傾向詩[경향시]와 다투던 이후 오랫동안 蟄伏[칩복]하고 있던 市民詩[시민시]의 현대적 후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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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6년부터 자기를 文壇的[문단적]으로 건립키 비롯한 신흥경향은 1926년 이후에 와서 고조된 政治主義[정치주의]와 圖式主義的[도식주의적]인 고개를 넘어 점차로 그 사회적 활동의 水面[수면]이 옹색하게 되는 틈에서 성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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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詩[시]는 言語[언어]의 技術[기술]이다!라는 ‘純粹詩[순수시]’ 운동이 그 명칭으로부터 명확한 至上主義的[지상주의적] 본질을 띠인 이 潮流[조류]가 1930,1년 이후 점진적으로 세력을 가진 것으로서 발전한 데는 대개 두개의 이유를 들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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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그들의 문학적 발전의 年代的[연대적] 路順[노순]이 스스로 설명하는 것과 같이 그들은 신흥문학의 衰微過程[쇠미과정]과 반비례하여 성장한 것으로 진보적 詩歌[시가]에 대한 부자유한 객관적 분위기의 확대는 그들의 활동에 있어서 자유 천지의 전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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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으로나마 문학계의 표면과 독자 가운데로부터 위축되는 新興文學[신흥문학]이 남긴 공간을 그들은 교묘히, 그야말로 기교적으로 자기의 排泄物[배설물]로서 채워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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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退朝[퇴조]를 따라 물러 가는 海水[해수] 뒤, 차차로 넓혀 노출하는 地面[지면]에 조개 줍는 아이들이 자기의 영토를 널펴가듯 그들은 진보적 문학의 불행 위에 자기의 행복을 심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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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그들의 발전을 조장한 문학사적인 이유로서 이것은 곧 그들로 하야금 詩壇[시단] 위에 저만치 많은 亞流[아류]를 인솔케 한 이유이며, 동시에 적지 않은 독자 가운데 그들의 詩[시]가 전파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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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의 詩[시]는 본질적으로는 1927,8년대에 신경향파 詩[시]에게 격렬히 저항하는 至上主義[지상주의] 詩歌[시가]와 同系列[동계열]의 것이면서도, 그들은 과거의 新詩[신시]와 新興詩[신흥시]의 약점상에 자기의 출발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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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知[주지]와 같이 新詩[신시]의 기본적인 특징은 낭만주의이었다. 1921년 전후 新詩[신시]의 초창기에 있어 그것은 대부분 감상주의의 색채를 띠웠었으며, 그 원숙기라고 볼 수 있는 1923,4년 대는 잡지 「白潮[백조]」가 말하는 것과 같이 낭만주의 그것이었다. 물론 이곳에는 역사적 이유도 있는 것이나, 그들은 대체로 粗荒[조황]한 언어상의 달성을 획득하고 1934,5년대에는 벌써 그들이 내포한 진보적 정신의 퇴거와 경향의 擡頭[대두]와 함께 그들은 역사 과정 가운데서 탈락되고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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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짜른 동안 또 이만치 통렬한 패배 하에 그들이 자기의 시적 언어를 整備[정비]할 수는, 그들의 문학사상의 지위가 허락지 않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다음 세대 문학인 傾向詩[경향시]의 오랜 지배가 계속하였다.
 
61
그러나 新興詩[신흥시]는 너무나 幼少[유소]함과 또 전 시대로부터 받는 數多[수다]한 언어상의 유산이라든가, 또 그 문학 전체를 지배한 정치편중적인 圖式主義[도식주의]의 경향때문에 그 사상적, 예술적 달성에도 불구하고 傾向詩[경향시]의 가장 약한 부분은 역시 언어적인 그것이었다.
 
62
이러한 역사적인 조건 하에서 우리 詩壇[시단]의 거의 횡포에 가까운 지배자이었던 傾向詩[경향시]가 통렬한 부자유 가운데서 일시적으로 남아 그 氣熄[기식]이 미약해 갈제, 詩[시]는 언어의 기교다 라는 태도를 조선적인 방법으로 번역해 가지고 나오는 狡猾[교활]한 潮流[조류]가 점차적으로 나와 ‘번영’한 것은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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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결코 자기를 한번도 技巧主義[기교주의]라고 부른 일이 없으며, 또 낡은 藝術至上主義[예술지상주의]와 同列[동렬]에 놓은 일이 없다.
 
64
우선 그들은 詩歌上[시가상]의 朝鮮的[조선적] 言語[언어]의 애호자로서 등장한 것이다. 사실 1921년대의 新詩[신시]나 傾向詩[경향시]가 數多[수다]의 언어상의 공헌을 不顧[불고]하고, 그들이 적지않게 외국의 傾向下[경향하]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또 능숙한 언어의 驅使者[구사자]이지 못했다는 점은 일부분의 후진한 독자층에서나 또 문학청년 간에 그들의 이러한 주장이 용인될 餘地[여지]를 만들었다.
 
65
그러므로 그들은 외국의 技巧派[기교파]나 純粹詩人[순수시인]들과 같이 시는 언어의 기교라고 하는 대신, 新詩[신시]와 傾向詩[경향시]의 언어적 결함을 공격하고 똑바른 朝鮮語[조선어]를 쓰라는 데서 출발한 것이다.
 
66
이것이 鄭芝鎔[정지용], 辛石汀氏[신석정씨] 등의 주장이다.
 
67
다음으로 그들은 ‘新時[신시]’가 傾向詩[경향시]와의 투쟁에서 사용한 낡은 무기(그것으로 패배한!)인 예술을 위한 예술의 思想[사상]을 借用[차용]하지 않었다.
 
68
이곳에도 그들의 機智[기지]가 있다. 즉 그들은 新詩[신시]의 패배에 의하여 그 효용가치가 널리 알려진 至上主義[지상주의]로부터 자기들의 至上主義[지상주의]를 구별하였다.
 
69
‘藝術至上主義[예술지상주의]는 차라리 논리상의 문제이고 技巧主義[기교주의]는 완전히 美學圏[미학권][내]의 문제이다’(金起林[김기림] 「詩[시]에 있어서의 기교주의의 반성과 발전」 朝鮮日報[조선일보] 2, 14)
 
70
보는 바와 같이 이곳에는 완전한 同義語[동의어]를 논리상의 기교로 二分[이분]하고 있다. 그리하여 기교주의란 예술지상주의와 같이 그렇게 진부한 것이 아니라 아직 무슨 방법으로이고 현실과 관련하고 또 예술적으로 구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어 있는 것과 같은 암시를 주고 있다. 그리하여 이것을 前前代[전전대]의 모든 詩歌[시가]로부터 구별되는 하나의 예술상의 진보적 성질의 反抗[반항]으로서 적극적인 의의를 부여한다.
 
71
이러한 사상은 그들의 작품에만 아니라, 金起林氏[김기림씨]의 上記[상기] 引用句[인용구]를 가저 온 논문에도 명확히 논리화 되고 있다.
 
72
起林氏[기림씨]는 기교주의를 비판하면서 결코 그것의 본질적인 비판을 가한 것이 아니라, 그의 時論[시론] 「午前[오전]의 時論[시론]」 제1부에서도 명확히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입체파나 ‘따따’ 쵸현실파의 시로부터 기교주의를 동 계열상에서 한개의 혁명적 예술로 취급하고 있다.
 
73
뿐만 아니라 보다 완전한 전체적인 詩[시]로 발전키 위한 한개 진화의 과정으로서, 다시 말하면 원래의 시의 적극적인 先祖[선조]로서 모시고 있는 것이다.
 
74
그러므로 氏[씨]는 사실에 있어 순수시와 기교주의의 옹호자로서 좀더 ‘前方[전방]’의 자기를 구별하려는데 불과하다. (이 차이는 별항에서 이야기 하기로 한다!)
 
75
그리하여 技巧主義[기교주의] 시는 마치 10年代[년대]의 ‘新詩[신시]’가 중세적 時調[시조]나 漢詩[한시]에 대하여, 또 傾向詩[경향시]가 ‘新詩[신시]’에 대하여 혁명적이었던 것과 같이, 그들 이전에 모든 詩歌[시가]에 대하여 新時代[신시대]를 體現[체현]하는 시적 반항자인 것과 같은 관념적 환상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故意[고의]의 논리적인 기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지식계급의 완전한 주관적 환상이다.
 
76
戰後[전후]의 詩壇[시단], 美術界[미술계]를 장식한 입체파, 표현적 미래파, ‘따따’ 등등의 주관적 환상을 상기하라!
 
77
이곳에서‘인테리겐차’적 환상이라 함은 근본적으로는 지식이나 관념상의 변혁이 현실생활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인테리겐차’의 자기에 대한 과신이며, 戰後[전후]의 新興藝術[신흥예술]이 가지고 있던 예술상의 환상이란 이 환상의 예술상 반영으로, 신 시대의 예술적 창조자는 ‘인테리겐차’ 自己[자기]이며, 그들의 급진적인 예술이 곧 혁명의 예술이라고 오인하는 그것을 말함이다.
 
78
이러한 傾向[경향]은 구라파의 戰後的[전후적] 혼란, 러시아의 內亂時代[내란시대]의 무질서 가운데서 역사과정의 合法則性[합법칙성]을 인식치 못하는 급진적 소시민의 주관적 환상의 산물이었다.
 
79
그러나 이러한 환상의 今日[금일]의 발전이란 戰後[전후]에 新興藝術[신흥예술]과 같은 그러한 급진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오직 모든 思想性[사상성]을 거세한 양식상의 점차적 변형만이 남어 있음이 그 특색이다.
 
80
그러므로 戰後[전후]의 新興藝術[신흥예술]의 행진이 다이나믹했다면 今日[금일]의 그것은 심히 스타틱한 것이다.
 
81
이러한 시대적 차이란 우리 조선의 예에서도 찾기 어렵지 않은 것으로 10년 전에 ‘따따’나 ‘表現派[표현파]’의 모방자들은 詩[시]의 사상과 내용에 있어서 同一的[동일적]인 반항자이었다.
 
82
그러므로 朴八陽[박팔양], 金華山[김화산], 혹은 필자까지가 일시적으로나마 그 급진적 정열로 말미아마 프로문학에까지 도달했던 것이다.
 
83
그들에게 본질적인 것은 様式上[양식상]의 과거 부정일 뿐만 아니라 生活[생활] 世界觀[세계관] 그것에 있어서 보다 더 큰 반항의 열정이었다.
 
84
그러나 현대의 革命詩人[혁명시인]일려는 이들 기교파의 詩人[시인]들은 詩[시]의 내용과 사상을 放棄[방기]하고 있다. 다만 있는 것은 언어의 표현의 기교와 현실에 대한 비관심주의 그것이다.
 
85
이들에게서 특유한 것은 詩的[시적] 熱情[열정]의 全無[전무]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률로 낭만주의의 무조건적인 否定者[부정자]이며, 고전주의의 질서와 지성의 讃美者[찬미자]인 것이다.
 
86
그들의 지성이란 우선 冷質[냉질]한 것으로 그들의 예술을 통하여 생활상의 어느 편의 지지자로도 熱中[열중] 傾倒[경도]함을 免[면]케 하는 실로 편의한 것이다.
 
87
그러므로 그들은 감정을 노래함을 멸시하고 감각(감정이 아니라!)을 노래한다. 감정이란 곧 사상에 통하는 것으므로…….
 
88
따라서 그들은 사상없는 詩[시], 즉 그들은 詩[시]의 대상인 자연이나 인간생활이 思惟[사유]를 통하여 시적 표현의 길을 밟는 것이 아니라, 감각된 현상을 神經部[신경부]를 통하여(두뇌로 가저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末梢部分[말초부분]에 積載[적재]해 두고 詩[시]의 제작만을 위해서 思惟[사유]한다는 것이다.
 
89
그들의 이론대로 하면 사람의 신체 구조는 두뇌와 신경이 전연 분리되어 있어 양자의 사이에는 그것을 연결하는 중추신경이 없는 셈이다. (金起林氏[김기림씨]의 「午前[오전]의 詩論[시론]」, 「詩[시]의 製作道程[제작도정]」등 참조)
 
90
다시 말하면 그들은 생활자가 아니라 활자 제조기에 불과하다.
 
91
그들의 詩[시]는 두뇌의 詩[시]가 아니라 신경의 詩[시]인 셈이다.
 
92
金起林氏[김기림씨]의 초기로부터 최근까지의 작품을 위시하여 朴載崙[박재륜], 李瑞海[이서해], 柳致環[유치환], 기타의 有象無象[유상무상]의 신인이란 이들이 부끄럼도 모르는 亞流者[아류자]들이다.
 
93
잠간 이곳에 주의할 것은 얼른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오, 또 민감한 독자는 곧 반문하리라고 생각하는 사실로 그것은 鄭芝溶[정지용], 辛夕汀氏[신석정씨] 등과 金起林氏[김기림씨] 등 일견 그 作詩傾向[작시경향]이 상당히 다른 두 詩人[시인]들을 筆者[필자]가 동일 계열하에 취급하는 그것일 것이다.
 
94
이 의문을 풀기 위하여 사실로 여태까지 이 두 경향 다른 詩人[시인]들은 같은 技巧主義者[기교주의자]로 취급해 온 것인데 이 근본 이유로서 나는 그들의 作詩上[작시상]의 근본입장인 思想上[사상상]의 동일성을 가지고 이 점의 해답에 충당코저 한다.
 
95
첫째 그들은 詩的[시적] 내용에 대하여 詩的[시적] 技巧[기교]를 上位[상위]에 놓는 것으로 동일한 至上主義者[지상주의자]들이다.
 
96
둘째로는 그들이 다같이 현실생활에 대한 관심의 廻避者[회피자]로서 현실이나 자연의 斷片[단편]에 대한 감각! (결코 감정의 정도에 오르지 않는!)을 노래하는 데 있다.
 
97
다음으로는 그들은 이러한 결과로서 현실이나 자연에 대하여 단순한 觀照者[관조자]의 냉철 이상을 詩[시]에서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98
靜觀[정관], 締觀[체관], 虛無[허무], 信仰[신앙]이 그들의 詩的[시적] 발전의 순서로, 최대의 靜觀者[정관자]로 辛夕汀氏[신석정씨]를 들 수가 있고, 最大[최대]의 신앙자로 ‘카톨릭’ 교도 鄭芝溶氏[정지용씨]를 들 수가 있다.
 
99
後者[후자](金起林氏流[김기림씨류]의 詩[시]에서 우리는 현실생활의 소비적 反面[반면]에 대한 印象[인상]의 감각적 點擁[점옹](하등 실생활의 체질을 띄지 않은)인, 自然[자연]이 동양화적 静謐[정밀]함을 가지고 노래되고 있다.
 
100
「바다의 獨愁[독수]」, 「바다의 演壇[연단]」, 「季節[계절]의 愛人[애인]」등의 詩[시]의 제목은 그 내용을 窺視[규시]하기에 족한 것으로, 그들은 자연에 대해서까지 흥분하기를 두려워 하고, 오직 조심성스럽게 가벼운 ‘物[물]’에 대한 ‘獨愁[독수]’ 쯤을 노래하고 있다.
 
101
오직 유일의 目的[목적]은 언어적 질서의 정리 그것이다.
 
102
이들의 경향은 본질적으로는 新古典主義[신고전주의] 그것에 속할 것으로 言語上[언어상]에까지 그 공통된 특색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감정의 詩人[시인]이 아니라, 감각의 詩人[시인]이라는 것이다.
 
103
그러나 사실상에서 그들은 현실로부터의 소극적인 ‘廻避[회피]의 感情[감정]’의 詩人[시인]들인 것이다. 감정 없이는 詩[시]가 형성될 수가 없는 것임으로…….
 
104
허나 이러한 감정은 진실한 감정의 이즘에 해당치 않는 것이다. 이러한 詩[시]의 ‘隆盛[융성]’은 결국 今年代[금년대]의 문화적 암흑을 말하는 가장 좋은 사실일 것이다.
 
 
105
그러나 이러한 潮流[조류] 가운데서 한개의 색다른 ‘進歩[진보]’를 우리는 간과할 수가 없다.
 
106
다른 것이 아니라 전술한 기교파 一方[일방]의 지도적 詩人[시인]인 金起林氏[김기림씨]의 최근작 「氣象圖[기상도]」나, 또 그의 논문 〈現代詩[현대시]에 있어서 技巧主義[기교주의]의 反省[반성]과 發展[발전]〉 〈客觀[객관]에 대한 詩人[시인]의 포즈〉와 詩論[시론] 〈午前[오전]의 詩論[시론]〉 등에서 作詩上[작시상]에나 理論上[이론상]에 披攊[피력]한 한개의 反技巧主義的[반기교주의적] 사상이다.
 
107
그는 近代詩[근대시](그는 이것이 시민의 詩[시]인 것을 沒却[몰각]하고 있다!)의 순수성과 기교주의적 방향을 걸어온 것을 한개 불가피한 필연인 과정이라고 평가하면서, 그러나 이것은 詩[시]의 위기, 詩[시]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결론하여 詩[시]의 기교와 내용의 새로운 전체성에로의 融合[융합]을 주장하였다.
 
108
그리하여 氏[씨]가 詩[시]에 있어서 ‘그 음악성이나 外形[외형]같은 것은 각 詩[시]의 기술의 일부분이 아닐까? 그 중의 어느 것만을 추상하여 高調[고조]하는 것은 詩[시]의 純粹化[순수화]가 아니고 차라리 一面化[일면화](偏向化[편향화])가 아닐까?’라고 지적한 것은 甚[심]히 정당한 것이다.
 
109
그러나 이 ‘正當性[정당성]’이란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전연 다른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이것은 近代詩[근대시]가 純粹化[순수화]의 방향을 꾸준히 더듬어 왔다는 것을 십분 정당하다고 평가하는 곳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110
[씨]는 소위 近代詩[근대시](市民[시민]의 詩[시])가 ‘데카당스’의 동굴을 지나고 戰後[전후]의 光風[광풍]을 통과하여 純粹詩[순수시]의 운동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하여 전연 반역사적 견지에서 관찰하고 있다.
 
111
이 그릇된 관찰은 또 ‘近代詩[근대시]’의 개념에 대한 전혀 추상적인 해석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나는 일찌기 작년도 時評[시평]을 쓸 때 氏[씨]가 巴人[파인]의 ‘民衆[민중]’의 개념의 汎博[범박]함을 비평한 동일한 말로 氏[씨]를 역시 비난치 않을 수가 없다.
 
112
[씨]는 정당하게도 巴人[파인]의 ‘民衆[민중]’의 개념을 가르처 ‘朝鮮[조선]의 民衆主義者[민중주의자]의 머리 속에는 階級分化[계급분화] 이전의 민중이 18세기의 옷을 입은 채 偶像[우상]이 되어 있다!’고 정당히도 비판하였다.
 
113
그러면 반문하건대 ‘金起林氏[김기림씨]의 머릿속에는 階級分化[계급분화] 이전의 近代詩[근대시]가 18세기의 옷을 입은 채 偶像[우상]이 되어 들어 있지 않습니까’?
 
114
[씨]여! 당신은 남을 보기에 明敏[명민]하였으며 자신을 보는데 어두웠읍니다.
 
115
‘近代詩[근대시]’가운데의 階級分化[계급분화]도 ‘民衆[민중]’ 가운데의 階級分化[계급분화]와 마찬가지로 일어난 것입니다. 大戰[대전] 前後[전후]의 近代詩[근대시]는 한개의 폭풍적인 과정을 지나면서 격렬한 ‘階級分化[계급분화]’를 경험하였다.
 
116
불란서 浪漫主義[낭만주의]의 최대의 계승자의 한 사람인 ‘로만·로랑’과 ‘앙리·바르뷰스’는 불란서 노동자의 깃발 밑으로 갔고, ‘마야코호스키’를 비롯하여 ‘러시아’의 市民詩[시민시]에 있어 이 과정은 한층 전형적이었읍니다.
 
117
일본은 또 조선은 八峰[팔봉], 相和[상화], 八陽[팔양], 懐月[회월] 등 조선 近代詩[근대시]의 최고의 대표자의 일부분이 공연히 이곳 노동계급 예술의 창시자의 영예를 갖지 않었는가?
 
118
[씨]는 단지 階級分化[계급분화] 이전의 近代詩[근대시]의 개념을 가지고 모든 것을 尺度[척도]하기 때문에 大戰[대전]을 前後[전후]로 한 방대한 계급적 기초에 의한 역사적인 詩[시]의 세대 교체를 没却[몰각]하였고, 그 교체 이후 즉 예술적 사상적으로 新世代[신세대]의 詩歌[시가]가 孵化[부화]한 껍질 ── 찌꺼기를 아직도 近代詩[근대시]의 진정한 계승자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다.
 
119
近代詩[근대시]의 진정한 후계자는 각국의 푸로레타리아 詩[시]일 것으로서 ‘베즈미용스키’ ‘떼미얀·베트느이’ ‘에른스트·베헬’, ‘에른스트·토올러’ 등에서 近代詩文學[근대시문학]의 그 후의 발전을 보지 않고, 氏[씨]는 아주 한눈을 가리고 ‘발레리’ ‘뿌레봉’ ‘지드’ ‘春山行夫[춘산행부]’ 등에서만 近代詩[근대시]를 본 것이다.
 
120
그러므로 마치 暗夜[암야]에는 흰 소도 검은 소로 보인다는 격언처럼 詩[시]의 순수화 운동이나 技巧主義[기교주의]가 그렇게 명확히 예술지상주의적인데 불구하고 近代詩[근대시]의 영예 있는 발전으로 보인다.
 
121
‘民衆[민중]’ 가운데서는 벌써 18세기 即後[즉후]에서 新興階級[신흥계급]을 발견한 사람이 詩歌上[시가상]에서는 어째 20세기의 今日[금일]에 있어서까지 新興階級[신흥계급]과 그 대립자를 발견 못했는지 암만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후일 氏[씨]의 현명한 해답을 듣고 싶다!)
 
122
그러므로 氏[씨]는 ‘純粹化[순수화]’를 詩[시]의 一面化[일면화]라고 정당히 지지하면서도 정당히 이해치 못하고 있다. 이것은 詩[시]의 일면화일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역사성을 상실한 市民[시민]의 詩[시]의 퇴화된 様態[양태]의 하나라는 것을 이해치 못하였다.
 
123
동시에 詩[시]의 상실, 詩[시]의 위기라는 것이 결코 近代詩[근대시] 그 전체의 위기가 아니라, 이미 역사적으로 反近代化[반근대화]한 市民[시민]의 詩[시] 그것의 危機[위기][급] 喪失[상실]이며, 자본주의의 세계적 지배의 위기의 반영인 것을 전연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124
그러므로 역사적 발전의 다른 일면에 대하여 전연 한눈을 감은 氏[씨]에게는 今日[금일]의 ‘文明[문명]의 合則的[합칙적] 活路[활로]’가 보이는 대신에 ‘文明[문명]’ 그것의 否定[부정]에 끝나고, 詩[시]의 내용과 기교와 의 분열을 ‘文明[문명]’에 대한 批評的[비평적] 知性[지성]란 것으로 통일할려고 하는 것이다.
 
125
그러나 이 통일도 氏[씨]의 근본적 견해의 결함에 의하여 결국 진정한 의미의 통일이 아니라 단순한 詩[시]의 기술적인 ‘질서화’의 企圖[기도]에 始終[시종]시키고 만다.
 
126
이 ‘秩序化[질서화]의 意志[의지]’의 根底[근저]에는 곧 汎博[범박]하기 짝이 없는 인간정신! ‘휴매니즘’이 가로 놓이게 된다.
 
127
이것이 氏[씨]의 文學思想[문학사상]이다. 그러면 다시 氏[씨]의 論法[논법]에 의하여 반문코저 한다.
 
128
만일 민중의 개념이 계급분화 이전의 18세기적 衣裝[의장]을 입은 偶像[우상]이라면! 人間精神[인간정신] 〓 ‘휴매니즘’의 개념은 계급분화 이전의 18세기적 ‘人間[인간]의 衣裝[의장]을 입은 偶像[우상]이 아닐지?
 
129
起林氏[기림씨]여! 당신의 思惟[사유]는너무나 詩的[시적]입니다. 氏[씨]의 다른 것에 대한 과학적인 관찰은 문학, 詩[시]에 이르러서는 한없이 무디어진다.
 
130
[씨]의 思惟過程[사유과정]은 무척 단순하여 전혀 일직선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131
技巧主義[기교주의]에 대한 反省[반성], 그 발전으로서의 새로운 內容性[내용성]의 설정, 즉 文明批評[문명비평]의 의식을 주입한다, 이곳에 반성은 발전한다. 그리하여 한개 批判的[비판적] 知性[지성]의 획득의 지점에 安心[안심]하고 상륙한다.
 
132
이곳에서 詩[시]의 제작과정은 비판적 지성에 의한 질서에의 의지로부터 시작하여 詩的[시적] 對象[대상]인 自然[자연][급] 社會[사회]의 질서는 詩的[시적] 질서로 번역되며, 그것은 최후적으로 언어의 질서화를 過程[과정]하여 한개의 완성된 詩[시]에 도달한다.
 
133
이것이 氏[씨]의 思惟[사유][급] 詩的[시적] 創造過程[창조과정]이 全路程[전노정]으로서 정서와 감정이 존재할 위치는 1分[분]도 없고 감각까지도 비판의 지성에 의하여 驅逐[구축]된다.
 
134
그럼에도 氏[씨]가 技巧詩[기교시]나 純粹詩[순수시]가 상실한 詩的[시적] 감격의 원천을 인간정신 위에서 찾는다는 것은 氏[씨]의 知性[지성] 그것과 함께 한개의 모순된 奇蹟[기적]이다.
 
135
人間[인간]은 情感[정감]하지 못하면 知覺[지각]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비판할 수도 없고 또 氏[씨]의 論法[논법]대로 정서, 정감을 거세한 知能[지능]이란 것이 성립한다면 더한층 詩的[시적]으로 감흥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때문이다.
 
136
[씨]의 이론은 지성과 감성의 절대적 분리, 또 思惟[사유]하는 두뇌와 감각하는 신경을 기계적으로 절단한, 바꾸어 말하면 A氏[씨]는 신경과 B氏[씨]의 두뇌에 의하여 생산된 사상이다.
 
137
허나 감정이 없는 곳에는 詩[시]도 文學[문학]도 없는 것이다. 동시에 감정이 감상주의로부터 구별되는 것은 後者[후자]가 静觀的[정관적]인 대신에 前者[전자]가 능동적인 것, 즉 감정이란, 静觀的[정관적] 感傷[감상]이 아니라 행동에의 衝動[충동]인 것이므로 행동하지 않으려는 인간에게는 감정(진실한 의미의)은 없는 것이다.
 
138
또한 詩[시]란 결코 단순한 思考[사고], 혹은 지식의 소산이 아니라 생활의 産物[산물]이다.
 
139
그러므로 氏[씨]의 지성이란 非行動性[비행동성]의 산물이며, 感情[감정], 情緖[정서]에의 기피는 곧 행동에의 기피인 것이다.
 
140
동시에 지성적 비판성이란 것도 현실에 대한 지적 판단을 통한 행동적 格闘[격투], 즉 비판하는 행동이 아니라 비판하는 思考[사고]에 불과하다.
 
141
그러나 항상 진정한 비판은 반드시 행동에로 통한 것이며, 오직 思考[사고]로만 비판한다는 것은 衷心[충심]으로 부터의 비판자이지 못한 유일의 表幟[표치]이다.
 
142
그러므로 氏[씨]의 詩的[시적] 감격의 源泉[원천]으로서의 人間精神[인간정신]이란 無力[무력]에 대한 한개의 理論的[이론적] 彌縫[미봉]이며 ‘인테리겐차’의 과분한 주관적 自信[자신]의 결과이리라. 그러므로 그들은 단순한 지성의 信徒[신도]인 것이다.
 
143
[씨]의 새로운 경향을 대표하는 역작 「氣象圖[기상도]」가 보여 주는 文明批評[문명비평]이라는 것은 얼마나 미미한 것인지를 우리는 이미 발표된 부분만을 가지고도 능히 알 수가 있다.
 
144
오히려 이「氣象圖[기상도]」에는 비판 정신, 그것보다도 自然[자연], 器物[기물], 人間[인간] 등의 対象[대상]을 ‘인테리겐차’ 류의 소비적 취미에 의하여 詩的[시적]으로 ‘秩序化[질서화]’하고 있는 한개 감각적인 審美性[심미성]이 보다 더 강하게 露現[노현]되어 있는 것이다.
 
145
그들은 이 문명의 사실을 본질로부터 받아들이지 않고, 마치 軍艦[군함]을 그 性能[성능]에서가 아니라 그 外形美[외형미]에서만 찾는 頹廢的[퇴폐적] 軍人[군인]과 같이 문화의 번지르르한 외면만을 感受[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새로운 언어는 합리성을 떠난 語感重心[어감중심]의 연락이오, 비판의 지성이란 것도 전연 명확히 찾어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氏[씨]와 더불어 우리 독자에게도 한개의 교훈이 아니면 안된다.
 
146
여기서 이상 더 氏[씨]와 더불어 이야기하지 못함이 유감이나 다음을 기약하자.
 
 
147
이곳에서 우리는 과거의 詩[시]의 사상적 또 예술적인 후계자로서 起林氏[기림씨] 등이 우려하고 있는 詩[시]의 내용과 형식의 위기를 벌써 옛날에 통일하여 한개의 역사적인 의미의 전체적인 詩[시]로 발전해 온 푸로레타리아 詩[시]의 근황을 一瞥[일별]코저 한다.
 
148
우선 무엇보다 지난 1년간에 과연 푸로레타리아 詩[시]는 이 땅에 在續[재속]해 있었는가를 의심케 할만치 그것 위에 내린 타격은 심했고 그 영향은 深大[심대]하였다.
 
149
이 영역에 있어 창조적, 비평적인 활동가의 대부분은 참담한 육체적 운명에 있고, 조직적 모체의 붕괴는 심히 아프게 영향하였다.
 
150
그러나 이러한 침통한 속에서도 가장 냉정히 자기의 지난날과 현재, 그러고 미래를 내어다 보는 것은 역시 이 ‘그룹’의 詩人[시인]들이이었다. 또 이 시대적 압력을 가장 민첩히 感知[감지]하고 그것을 육체적인 감각을 가지고 예술 위에다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노래한 것도 이 詩人[시인]들이었다.
 
151
李燦氏[이찬씨]는 이 ‘그룹’중 가장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고, 梁雨廷[양우정], 李貞求[이정구], 安龍湾[안용만], 筆者[필자] 등이(그것이 비록 초래했을망정) 오래인 영예 있는 예술의 전통 위에서 노래한 詩人[시인]들이다.
 
152
우선 우리들의 詩[시]의 특징은 작금 이래로 강화된 시대적 重壓[중압]을 가장 명확히 반영하고 있는 점이다. 진화적인 諸勢力[제세력]의 일체적인 후퇴의 그림자가 이들의 詩[시]에는 역력히 반영되어 있다. 이 반영은 대부분 비극적 패배에 대한 아픈 육감과 그 가운데서도 아직 모든 것을 放棄[방기]하지 않고 자기의 약점을 추구하고 그것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다시 역사적 전진의 大道[대도]로 일어서려는 비장한 격투가 그 기본적 성격이 되어 있음은 불가피한 일이다.
 
153
물론 이 가운데는 깊은 암흑과 절망 가운데서 죽엄과 같은 패배의 슬픔을 노래한 것도 없지 않다. 그러나 자기의 약점에 대한 무자비한 추구는 그들을 未來[미래]에로의 용기를 가진 ‘히로이즘’을 환기치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154
그들은 역사 과정 중에 자기(인테리)의 위치를 잊어버리거나 過信[과신]치는 결코 않는다. 반대로 그 약점을 대담히 인식하고 그것을 시정할려는 불같은 노력이 표현되어 있다.
 
155
그러나 우리들의 詩[시]의 대부분이 개인적, 내성적인 자기 추구로만 향하고 있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하나의 위험이다. 이것은 곧 歎息[탄식]과 詠嘆[영탄]에로 통하기 쉬운 것이며, 또 一方[일방] 이러한 가운데서도 역시 전진하고 있는 객관적 과정을 과소평가하기 쉬우며, 또 개성을 사회적 전체 위에서 노래하는 우리 詩[시]의 최대의 전통으로부터 離脱[이탈]키 쉬운 것이다.
 
156
우리는 내성적인 방면으로부터 객관화의 방면으로 그 노래의 총뿌리를 시급히 돌려야 할 것이다.
 
157
또 하나는 이 內省的[내성적] 경향의 나머지 잘못하면 한개 懐古的[회고적] 감상주의로 逸脱[일탈]하기 쉬운 위험, 그것이다. 이것은 이미 李燦君[이찬군]의 詩[시]에서 보는 詩的[시적] 영역의 身邊雜事的[신변잡사적] 한계로의 退却[퇴각]과 詠嘆的[영탄적] 韻律[운율]에 의하여 표시되고 있다. 이곳에는 진실한 낭만주의 대신에 감상주의가 자리잡기 쉬운 것이다.
 
158
이 경향은 곧 今日[금일]의 시대적 암흑의 過重評價[과중평가], 詩的[시적] 誇張[과장]과 관계하는 것으로 필자의 몇개의 詩[시]는 이러한 주관적 과장의 한개 전형적 결함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한다.
 
159
그러므로 이곳에서 過分[과분]의 內省化[내성화], 또 身邊雜事的[신변잡사적] 경지에서의 회고적 詠嘆[영탄]이 일어나기 쉬운 것이다. 회고하고 영탄하기에는 우리들은 너무나 젊고, 또 시대의 물결은 너무나 험하다.
 
160
이러한 가운데서 詩的[시적]으로는 낭만주의의 과장적 수법이 무비판적으로 우리들의 詩[시]에 잠입하여 우리들의 언어를 무가치한 것으로 바꾸기 쉬운 것이다.
 
161
그러나 이러한 괴로운 모색의 혼돈 중에서 安龍湾氏[안용만씨]의 詩[시] 「江東[강동]의 품」(中央日報[중앙일보] 新年[신년] 當選詩[당선시]) 은 찬연히 빛나는 것이었다.
 
162
나는 이 작품 一篇[일편]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 1년을 무단히 보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163
이 詩[시]에서 여태까지의 조선 푸로레타아 詩[시]의 최초의 발전을 볼 수가 있다.
 
164
그리고 진실한 낭만주의의 전형적 一例[일례]로서 나는 이 詩[시]를 생각한다. 自然[자연], 人間[인간], 感情[감정], 모두가 骨髓[골수]에까지 밴 생활의 냄새로 溶解[용해]되고 詩化[시화]되어 있다.
 
165
이 詩[시]에는 우선 진정한 민족성, 그 가장 큰 것으로 향토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 표시되어 있다.
 
166
그러나 동시에 그는 東京湾[동경만]내의 공장지대, ‘아라가와’의 탁류를 단풍 든 武野[무야]보다도 사랑한다 했을 때, 그 자연을 생활을 통하여 생생한 자태로 노래한 것이다.
 
167
자연을 이만치 생활적으로 노래한 예는 우리 땅의 詩[시] 가운데서 그 比[비]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는 感傷家[감상가]는 아니었다. 그들의 ‘事業[사업]’의 위대한 명령을 그들이 이곳에서 떨쳤을 때 그는 決然[결연]하였다.
 
168
‘나는 너를 버리었다!’ 이 一句[일구]는 최대의 適確性[적확성]을 가진 언어이다.
 
169
그리고 또 그는 감정의 機械家[기계가]는 아니었다. 그는 고향에 와서도 ‘아라가와’ 沿岸[연안]을 그가 東京[동경]서 ‘얄루江畔[강반]’을 사랑했던 그것에 못지않게 회상하고 사랑한다.
 
170
그가 노래한 ‘얄류江[강]’은 이 땅의 운명과 같이 슬펐고 ‘아라가와’의 거세인 물결은 그의 계급의 ‘히로이즘’과 같이 약동적이었다.
 
171
그러나 그는 이 불행한 고향을 문명인과 같이 버리지 않고 무엇보다 큰 슬픔의 감정을 가지고 노래한 것이다.
 
172
이것이 진실한 詩[시]의 민족성이고, 또 그가 노래한 소년의 슬픔이 진실한 민족의 감정이며, 그의 낭만주의야말로 참말의 ‘로만치카’이다.
 
173
우리는 이 詩人[시인]에게 커다란 기대를 두면서, 오는 해에도 우리의 詩的[시적] 명예의 최대의 건설자이기 위하여 정진할 것을 바라며 붓을 놓는다.
 
174
의심할 것도 없이 이 시대적 暗雲[암운]이 우리들의 마음에 찍은 지울 수 없는 감정으로 언어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만이 정말 詩人[시인]의 명예이다.
 
175
그것을 위하여는 詩人[시인]은 최대한으로 사랑하고 또한 미워할 줄을 알아야 한다.
 
176
(1937. 12)
【원문】담천하(曇天下)의 시단(詩壇) 1년(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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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천하의 시단 1년 [제목]
 
  임화(林和) [저자]
 
  1935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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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천하(曇天下)의 시단(詩壇) 1년(年)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10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