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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스트 이상[李箱]! 우리는 저항과 고역에 멍든 그의 비밀을 이렇게 부른다. 箱[상]에게 있어서의 모더니즘이란 箱[상]의 문학적 난해성이며 기발한 생활태도까질 동시에 표상하는 「존재이유」가 되므로 사뭇 모더니즘의 분석은 箱[상]의 문학과 箱[상]의 인간과를 이해함에 자연히 앞서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箱[상]에게 있어선 모더니스트로서의 성공보다 모더니스트로서의 쓰라린 참패가 짙게 남아 있다. “가장 우수한 최후의 모더니스트 李箱[이상]은 모더니즘의 초극이라는 이 심각한 운명을 한몸에 구현한 비극의 담당자였다.” <이는 1939년 「인문평론」에 기고한 김기림의 글(「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이다.> 당시 세상에 갖는 패욕을 무릅쓰고 시 「오감도」의 발표를 누구보담도 적극 지지한 「구인회」의 동인이었으며, 도일후 난경에 처한 箱[상]의 호소(서신)를 매양 따뜻한 정의로써 응대한 친구(K兄[형])였으며, 당시 1949년엔 『이상선집』을 간행하여 거기에 서문까지를 부쳤던 기림의 평언이야말로 가장 믿을만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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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20년대의 후반부터 30년대 전반에 거쳐 고조되었다가 40년대에 들어서선 거의 중동무이한 소위 모더니즘 운동(오히려 「경향」이라는 말이 적절하겠다.)에 있어서 기림은 箱[상]과 대조되는 존재로서 지용을 들었는데 과연 수법상에만 효용되고 생활면에서 아주 일탈되다 시피한 지용의 모더니즘이 상(箱)의 모더니즘과 우열로서 대조될 것인가에 관하여 의혹되는 바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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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불 箱[상]의 모더니즘은 箱[상] 독특한 고답적인 것으로서 거기엔 어떠한 비교도 대조도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들의 가정이다. 차라리 지용과 대조될 인물은 김기림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箱[상]과 교체를 함부로 터뜨렸으니 그의 말대로 「모더니즘」보다는 「모더니즘의 초극」이란 문제에 대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에 있어서 우리를 箱[상]의 모더니즘을 저들의 것과 동일시 할 수 없는 입지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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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지용과 기림의 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의 언어적 양식과 가치규준을 설정함으로써 모더니즘의 외면성을 강조한 반면에 箱[상]의 모더니즘은 어떠한 양식규준에도 구애됨이 없이 오로지 모더니즘적 혼미를 체험으로써만 수행하는 내면성에 일관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모더니즘을 위기의식의 실천으로서 간주한다면 위기의식의 도피라든가 해소를 목적하지 않고 끝까지 위기의식의 실천에 투기한 箱[상]의 모더니즘을 누구든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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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더니즘의 「 역사적 위치」에서 요약한 기림의 말로선 기왕의 신체자유시를 죄다 「쎈티멘탈 로맨티시즘」이라고 단정함과 동시에 편내용적인 경향파시에 반기하는데 모더니즘의 목표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러한 두가지에의 대립과 부정을 지양해 나가는 방법으로서 모더니즘은 시의 언어적 변혁과 문명에의 감수력 즉 가치규준의 설정이라는 두 가지 주장을 또한 내세웠던 것인데 언어적 변혁을 일삼은 대표자가 지용인가 하면 문명에의 감수력을 시작에 반영하려 한 것이 기림이었음은 두말 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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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30년대 말기에 이르러 이상과 같은 모더니즘의 두 가지 국면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났는가, 지용은 언어적 변혁을 시험하다 못해 청록파로써 계승된 「순수시」론을 양성하게 되었으며 기림은 어느 정도 변모한 경향파와 다시 합류케 되었던 것이다. 그런즉 箱[상]의 경위는 어떻게 해석되었으며 더욱이나 箱[상]의 모더니즘에 대하여 기림은 전혀 외관(外觀)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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箱[상]의 모더니즘이 모더니즘으로서 믿어지지 못한 이유와 은근히 배제당한 이유 같은 것은 제쳐 놓고라도 두 가지에의 대립과 부정이 두 가지의 주장을 대신으로 내세웠으며 끝내는 두 가지의 분열로써 결과되었음은 소위 모더니즘의 이해와 실천이 지극히 부조화로 왔으며 편협하였다는 기술 밖엔 될 수 없다. 왜냐면 「백록담」의 유림으로 흘러간 지용의 감상벽과 “영구한 모더니즘이란 듣기만 해도 몸서리 치는 말이다”라는 기림 자신의 발성에서 우리는 모더니즘의 본질적 내용에 이미 상당한 회의와 부정적 해소가 넘치도록 침투되어 있었음을 쉽게 암시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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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더니즘의 분렬상은 다음과 같은 글에서도 넉넉히 엿볼 수가 있다. “그(李箱[이상])의 말대로 현실에 다소 지각하였거나 그렇지 않으면 현실이 그보다 늘 몇시간 뒤떨어졌던 것이다.” 「李箱[이상]의 모습과 예술」이라는 기림의 회담 속에는 어느듯 李箱[이상]의 모더니즘이 즉시대적이며 문명 사회적인 관심으로 집결된 자기의 모더니즘과 상당한 차이를 느끼게 하였다는 솔직한 실토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반대로 1936년 《여성》지에 발표된 기림에의 서신 속에서 李箱[이상]은 무엇이라 적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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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切誓[일절서]우나><一切[일절]오信[신]지니이또誓[서]에>의 두 마디 말이 발휘하는 다채로운 파라독스를 농락하면서 혼자 미소를 하여 보오. 형은 어디 한번 크게 되어 보시오. 인생이 또한 즐거우리다.” 시집 『기상도』의 교정을 맡아보면서도 거기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이렇게 서로 다른 심리작용만을 피력한 箱[상]의 서신은 이윽고 가열한 씨니시즘으로써 맺어진 것이었다. 즉 “내 고독과 울적을 동정하고 싶지는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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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것들을 단순히 기질상의 오해로서만 용인할 수 있겠는가. 箱[상]의 역설이며 「씨니시즘」에 대하여 진실한 공명을 억제하였던 기림의 모더니즘이 엄청난 독선에 빠졌다면 이것은 또한 나만의 혹평이 될 것인가. 무엇보다도 영구적이 아닌 현상적 모더니즘을 표방한 기림 자신에게 있어서 「가치규준의 설정」이며 「변성의 창조」라는 어투가 의미하는 바 철저한 현실주의가 암암리에 시인된 것으로서 알려진다. 그것은 바로 기계문명의 발달을 경악으로서만 상대한 그의 감각성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다. 물론 이러한 현실주의의 근원엔 대현실적인 비판보다 앞서서 대과거적인 비판이 주가 되었음은 그가 늘어놓은 「새로운 시」와 「과거의 시」라는 이원적 분류표에서도 대략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대현실적인 비판이 다만 메카니즘에의 경악으로 시종될 수 있었다는 것은 잉글랜드의 촌색시가 와트의 증기차를 처음으로 보고 당하였던 경악과 비하여 다르다면 얼마나 다를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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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반하여 箱[상]은 눈앞의 현실을 무비판으로 시인하려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역설로써 이와 대항하려 한 까닭에 기림의 모더니즘 이론에서 저만치 빗맞는 것이 억울하지 않았다. 기림의 모더니즘이 낙관적이면 낙관적일수록 箱[상]이 초낙관적인 모더니즘에의 이해와 상통할 수 있었음이 스스로 명백하다. 김광균의 「와사등」을 찬상한 기림으로선 “공간적 내지는 회화적인 「이메이지」의 색다른 구사에 매혹된 것이 사실이나 회화적인 것 그것은 영속하는 것 고정하는 것이라”는 1940년의 시단평에 접해보면 그의 「이메이지」론이 얼마나 천박한 현실주의와 직결되었는가를 거듭 짐작하게 된다. 역사와 전통에 목마른 우리들의 사고방식이 자칫하면 시간성을 무시한 횡적인 공간성에로만 퍼져가는 절실한 한계가 여기에 있다. 「이메이지」에 있어서의 시간성이란 음악적 요소만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초월하며 시의 본질과 시인의 「존재이유」를 환기하는 기교 이상의 것으로서 이해되어야 했음에도 민감한 그의 성미엔 짐짓 구차스럽게만 여겨졌던가 보다. 하여 기림의 모더니즘이 범한 최대의 과오는 음악적 요소에만 국한시킨 시간성의 착각에 기인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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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箱[상]은 대과거적인 비판에서 우세하는 기림의 현실주의를 떠나 대현실적인 비판에서 고독하는 초현실주의를 선택한 것이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기림은 「쎈티멘탈 로맨티시즘」에 대항하는 「리얼리즘」을 인식하였으나 箱[상]은 그 「리얼리즘」에 다시 대항하는 「쉬르 리얼리즘」을 인식한 것으로 되어 「모더니스트 이상!」이 「모더니스트 김기림!」또한 「모더니스트 지용!」과 좀체로 혼동될 수 없다는 것을 헤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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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의 본질적 내용에 온전히 투기할 것을 거부한 저들의 「오프티미스틱」한 안이성에는 미구에 돌아올 자신에의 위기가 더욱 더 누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위기 의식의 실천에 비겁한 저들이 어찌하여 「현대적 상황」의 전부를 실천하였다 하겠는가. 지나치게 탁월한 결정론자들은 냉소해 마지 않던 箱[상]의 뼈저린 자학적 반항 속에서 우리는 보다 더 성실한 인간성의 뿌리를 포착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모더니스트로서의 실천을 애오라지 침묵으로만 수행한 인간 이상에게서 역설적인 「건강」과 역설적인 「새로운」을 발견하려는 나와 우리 세대의 희망이란 차라리 모더니즘의 극복을 동시대적인 것으로 분담하려는 의지와도 일치될 것이다. 속성을 상실한 모더니즘의 보편화란 믿어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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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림은 방대한 보조과학의 적용으로써 시의 현실적 가치규준을 세우노라 분망하였지만 리챠즈와 같은 시론가들이 궁극으로 내세운 소위 「신념」의 문제 등을 어떻게 자기소화 하였는지 도시 알 길이 없다. 초월적인 「신념」이 막연한 정치신조에 의하여 도색되었다면 개인으로서나 모더니즘 운동(?) 자체에 있어서 그 이상 슬픈일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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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의 모더니즘이 다분히 합리성에의 기탁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대하여 箱[상]의 불합리적인 모더니즘은 여내 그것과 상극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넘겨보지 못할 일이다. 하여튼 모더니즘이 선풍하는 위기의식을 재빨리 수습하여 가지고 어느 문명 질서에로 동화하려던 기림의 비평양식에서 우리는 소위 「과거의 시」가 지녔던 현실 도피의 태도를 극복할 순 있어도 이상 시에서 느끼는 현실증오의 태도를 합리적인 현실옹호의 태도로써 쉽사리 극복할 수 없었던 그의 논리적인 비약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테면 그의 모더니즘은 대과거적인 현실성의 우세를 대현실적인 본래성의 우세와 매하나로 착각한데 불과하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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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에의 감수력이며 현실적 「가치규준의 설정」이 막연한 「보편성의 창조」로서 타당될 수 없다는 초현실적인 각오가 보다 더 착실한 문명에의 감수력이 되며 「가치규준의 설정」의 비판이 되는 것을 기림은 이해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바로 여기서 처절한 이상의 모더니즘이 재림하게 되는데 箱[상]의 절대적 반항이며 형이상적인 실재의 자유가 비록 불완전한 것이였다 할지라도 이를 옹호하기는 커녕 지독한 멸시와 모독으로서 가장한 장본인이 바로 김기림이었다는 사실에 있어선 우리들의 무자비한 판단이 내려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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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적인 기림의 모더니즘은 드디어 합리적인 「리얼리즘」에 예속됨으로써 「푸로파겐더」하는 정치주의에로 차차 침퇴하였으나 불합리적인 「쉬르리얼리즘」의 영원한 저항 속에 일신마저를 찢어버린 箱[상]의 모더니즘은 멀건 심연의 빛깔을 내다보면서도 「<一切誓[일절서]우나><一切[일절]오信[신]지나이또誓[서]에>」라는 역설에서와 같이 한결 순수하며 결백하게 되살아 났다. 그러나 「모더니즘」 아닌 「모더니즘의 초극」을 비극과 죽음으로써 담당한 箱[상]의 실재의식이 30년대의 모더니즘 속에 비밀처럼 영글어졌던 우리들의 꿈은 아직도 멀고 아득한 뿐인가. 최후의 모더니스트가 아니라 최초의 모더니스트였던 시인 李箱[이상]에의 비판과 반성에서 우리는 모더니즘의 보다 새로운 출발을 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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