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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행 일로(苦行一路)의 진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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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10.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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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 일로(苦行一路)의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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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여러 번 써 왔기 때문에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각도를 좀 달리하여 써 보려고는 하나 역시 전연 딴 이야기만은 나올 수 없는 성질의 글이라 결국은 다 써 놓고 보아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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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작가라는 이름만 한 번 들어 보고 죽어도 한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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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이 문학을 공부하던 어떤 한 친구는 한두 편의 소설을 발표해 보았으나 문단에서는 아랑곳도 아니 해 주고 월평(月評)은 취급조차도 아니해 줌으로 한숨과 같이 이렇게 탄식을 하면서 방바닥에 벌떡 뒤로 나가 자빠지던 것을 나는 본 일이 있다. 문학에 취하여 문학 공부만을 일삼고 학교의 일반 학과는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성적의 점수 부족으로 낙제를 해가면서까지, 그리고 낙제는 저도 좋다 나는 소설을 썼으면 그만이라는 오직 그런 생각 하나만으로 드디어는 학교도 집어치우고 10년을 닦은 공부가 이렇게도 반영이 없음을 보았을 때, 나로서는 기가 아니 막힐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의 그 태도로 보아서 그것은 실로 피가 어린 탄식에 틀림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붓대는 놓지 못하고 그 후에도 어떤 선배를 통하여 소설 한 편을 신문에다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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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나(나에게 그런 의미로 말을 하였다)이 작품 역시 아무런 반응 없고 월평은 또 묵살을 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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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드디어 붓대를 꺾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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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등용문을 지키는 수위는 이렇게도 냉정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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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가 꺾어 버린 붓대는 나에게도 적지 않은 큰 동요를 주었다. 내가 쓰는 소설이 결코 그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음을 내 자신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작품에 움직여지지 않는 그 등용문이 나의 작품에서 움직여질 리 없음은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 붓끝에도 차츰 힘이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나는 이미 발표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보통 어떤 선배의 알선으로서가 아니고 《조선문단》에 당당히 당선이란 명칭으로 발표가 되었던 일이다. 그러나 당선된 그 전호 사람들(그때《조선문단》에서는 호마다 작품을 모집하여 추천, 입선, 선외 가작의 세 부문으로 나누어 발표를 하였다. 그러다가 몇 호를 지나서는 추천이나 입선 정도의 작품은 그저 당선이라고만 하여 발표를 했다)의 당선작은 다들 그 《조선문단》의 ‘창작합평회’의 합평에서(그 임시 매호 합평회가 있었음) 어떤 의미에서는 이야기 자료들이 되고 있었건만(최학송 씨의 「고국」-추천, 채만식 씨의「세길로」-입선, 한모의「동경」-입선, 임영빈씨의「난륜」-추천 등) 유독 나의 작품이 당선(나의 작품이 당선되던 후부터 당선으로 변경하였음)되기 바로 직전 호의 당선작(입선)인 박화성 씨의 「추석 전야」와 이 두 당선작에 대해서는 평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역시 이것이 당선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합평은 내 실력을 말해 주는 것 같아서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 친구의 꺾은 붓대가 뒤미처 연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 실력을 의심하며 한참 붓을 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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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에 나는 박화성 씨의 「하수도 공사」라는 작품이 또《동광》에 춘원의 추천으로 발표가 되어 나왔는 것을 보았다. 당선을 하고도 그 같은 선자에게 또 추천받는 박화성 씨의 태도는 나에게는 큰 교훈과 자극을 주었다. 나도 좋은 작품으로 문단에 다시 물어야 한다! 마음을 돌려 먹고 놓았던 붓을 또 다시, 그리고 단단히 잡았다. 《조선문단》이 모집하는 현상(그때는《조선문단》 경영자가 바뀌면서 현상으로 작품을 뽑았다)에 응모하였다. 당선은 또 되었다. 이번에는 평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미지의 문학청년에게서도 재미있게 읽었노라는 편지도 2, 3통 받았다. 그러나 나는 이 당선뿐이 아니라, 내가 써 온 그 동안의 작품이 늘 불만하였다. 그것은 외국의 작품들과 비해 볼 때에 그 수준을 따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너무도 깊이가 없는 겉으로 줄줄 핥아 놓은 것 같은 그것이 무엇보다의 불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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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좀 깊이가 있는 그런 작품으로 문단이 한 번 놀래일 정도로 다시 한 번 문단에 물어보리라는 야심이 생기었다. 세계명작이라는 작품을 한 번 통독하여 보자. 그리하여 수양을 한껏 쌓아가지고 그때에 붓대를 들자. 이를 사려물고 마음과 타협을 하였다. 그때 한참 문단에서 유행하던 원본전집(일원 균일의 전집)을 자력(資力)이 허락하는 한 모두 예약을 하였다. 신조사의 『세계문학전집』을 위시하여『신흥문학전집』, 개조사의 『현대일본문학전집』, 춘양당의『명치대정문학전집』, 제일서방의『근대극전집』, 근대사의『세계희곡전집』,『노벨상문고』등이 그것이었다. 게다가 춘추사의 『세계대사상전집』까지 예약을 해 놓고 건강이 허하는 한, 밤일지 낮일지 그저 이 책 속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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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달에 한 권씩 배본이 되는 이 전집 6, 7종을 제 달 안에 독파해 내리라던 결심은 어림도 없는 욕심이었다. 책을 읽는다고 하기보다는 어루만지고 지나지 않아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나 놓고 보면 어루만지는 것도 역시 독서였다. 그 작품의 내용과 성질은 대개 짐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책이란 어루만지는 책도 있게 될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비위에 맞지 않는 책은 어루만지는 정도로(자연히 어루만져졌다) 넘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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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책을 보기도 하고 어루만지기도 하고 지나노라면 창작 의욕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자연히 책은 던지게 되고 원고지를 대하고 펜을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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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독서에는 큰 방해였다. 그대로 붙들고 앉았으면 끝까지 독파해 낼 것을 도중에서 2, 3일을 쉬어 놓고 보면 그것이 여간 재미있는 책이 아니고서는 다시 그 책이 손에 들리지 않았다. 그 책은 또 결과적으로 어루만지고 지나는 데 그치고 말게 된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창작 충동을 억제해 가면서 독서에만 전심을 하였다. 실력만 길러 놓으면 그것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것이 소위 문단 등용에는 큰 오산임을 그 후에야 알았다. 문단은 그 작가의 작품을 통하여 하등의 관계가 없을 것인 데다가 한참 상승일로에 있는 문단의 수준은 자꾸만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작품 제작이란 하나의 기술이기 때문에 그것을 단련시키어 방법을 체득하고 표현 기술을 연마시키지 않아서는 상승하는 문단의 일반 수준을 따를 길이 없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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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또 책을 놓고 붓을 들었다. 3년 동안 이나 놓았던 붓에는 살룩이 앉은 데다가 신병까지 겹치어 도저히 집필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책도 붓도 다 놓고 정양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되게 되는 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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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3, 4년을 또 지나다 보니 문단에는 신진작가가 자꾸 쏟아져 나왔다. 문단은 참 흥성했다. 나는 그 흥성거리는 문단을 멀거니 방관만 하면서 낚시질로 세월을 보냈다. 여기엔 건강을 위한 의미가 반은 더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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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나면서도 내가 붓대를 꺾지 않고 가끔 작품을 발표해 오는 것을 본 예의 붓대를 꺾은 그 친구는 나의 꾸준한 노력과 인내에 감탄을 하노라고 하면서 찬사를 보내던, 그리하여 그 이야기를 듣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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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같은 문학을 공부하던 사람으로서 다만 붓대를 꺾은 친구 하나만이 다시는 소설에 붓을 대지 아니하고 화필로 그것을 바꾸어 들었을 뿐, 그 이외의 세 사람은 모두 소설로서 문단의 문을 열었다. 나도 붓대를 꺾지 않고 천대를 받으면서 굴러다니다 보니 어느새 그들과 같이 문단의 문 안에 서있게 되었던 것이다. 고행 일로(苦行 一路)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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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지〕《자유문학》(1958. 10.)
【원문】고행 일로(苦行一路)의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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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용묵(桂鎔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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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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