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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미년 3월 1일 ◈
◇ 제 2 막 (1919년 1월 하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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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함세덕
1
기미년 3월 1일(전 5막)
 
2
제 2 막
 
 
3
인물:
4
강기덕 (康基德 ; 普成法律專門學敎[보성법률전문학교] 3년생, 31세)
5
한창완 (韓昌桓 ; 보성법률전문학교 3년생)
6
주 익 (朱 翼 ; 보성법률전문학교 卒[졸], 法科硏究部[법률연구부][재])
7
김원벽 (金元壁 ; 延禧專門學校[연희전문학교] 27세)
8
한위건 (韓偉鍵 ; 醫學專門學校[의학전문학교])
9
김문진 (金文軫 ; 세부란쓰 醫專生[의전생])
10
박희용 (朴熙容 ; 하숙 주인. 聖花女學校[성화여학교] 小使[소사])
11
최순천 (崔順天 ; 聖花女學校[성화여학교]교사)
12
손규철 (孫圭鐵 ; 형사)
13
손소복 (孫召福 ; 그의 딸, 聖花女學校[성화여학교] 3년생)
14
사이풀 (聖花女學校[성화여학교] 교장, 미국인)
15
향현(香峴) 어머니
 
 
16
1919년 1월 하순
17
강기덕(康基德)의 하숙
 
 
18
상세히 말하라고 하면 안국동(安國洞: 34번지 박희용(朴熙容) 방(方)이고, 하숙을 영업으로 했으되 거늠방(房)에 강기덕, 아랫방에 향현이가 있었다.
19
그러나 편의상 구조를 안채·바깥채로 노나 무대엔 주인의 거처를 내지 않고 아랫방·마루·웃방을 한일자로 나열시킨 바깥채의 학생들 하숙처만 내어서 진행시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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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담과 대문과 장독대와 세면소가 있을 것이다. 실내도 알려달라 하겠지만 지방서 부급상경(負笈上京)한 조선 학생들의 방이란 밧짝 구루마에다 싣고 전당포엘 간들 몇 푼을 주랴. 책상에 이불에 땀 배인 샤쓰 몇 벌이 고작이고, 시계가 있다면 지주나 부상(富商)의 아들이요, 없다면 소작 반 자작 반의 빈농의 아들이라 생각하면 될것이니, 여기는 두 방 다 시계가 없다는 것만 알아두라.
21
강기덕과 최순천의 이야기 도중에 막이 오른다.
 
 
22
최순천   그런데 제가 강선생님께 꼭 한 가지 물어볼 께 있어요.
 
23
강기덕   무언데요?
 
24
최순천   향현이가 카이젤에게 탄원설 낼 계획을 한 데 대해서 전연 강기덕 씨께 의론이 없었어요?
 
25
강기덕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 지금두 그 애 어머니께 여쭌 바와 같이 절대루 찬성할 수 없다고 했었습니다.
 
26
최순천   그건 그 애 어머님 말씀대루 혁명운동에 뛰어드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까?
 
27
강기덕   누구든지 자유를 찾는 정신을 막을 순 없겠지요. 마치 대지 속에서 솟아나는 자연의 생명을 막지 못하는 거와 같이.
 
28
최순천   그럼 어느 의미에서?
 
29
강기덕   전 첨부터 독일이 패할 것을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30
최순천   그럼 연합국의 승리를?
 
31
강기덕   네. 그 이윤 독일이 단독으로 세계 30여 개국을 상대 했다거니, 동원 군대와 무기의 비율에 있어 열세(劣勢)했다거나, 해군력을 못 가져 영국에서 해상봉쇄를 당했다거나 식량과 물자가 결핍했다거나, 군대내에 반전사상이 태동했다거나, 국민의 전쟁 결의가 동요했다거나, 의회가 주전론·화평론으로 싸우고 있었다거나 등등의 그런 직접·간접의 이유가 아니라, 지구상에서의 침략주의의 전면 퇴각을 예단했었기 때문입니다.
 
32
최순천   …….
 
33
강기덕   침략국과 피침략국, 제국주의와 민주주의, 군국주의와 평화주의의 금번 세계대전은 역사적 필연성에 있어 전자의 패배를 피치 못하게 하였었던 것입니다.
 
34
최순천   군국주의의 패배를 역사적 필연성으로까지 단정하셨다면 그 애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남의 일같이 불찬성이라구만 하실 께 아니라 웨 즉접 말리지 않으셨어요?
 
35
강기덕   그야 여러 번 말렸지요. 그리고 그 애 신념을 뒤집기 위하야 우리 서북친목회서도 여러 가지 수단도 써보았으나 그 앤 끝끝내 초지를 굴치 않았었든 겁니다.
 
36
최순천   설혹 독일이 그 애 말대루 이긴다구 하세요. 세계제패를 야망코 알랙산다 - 대왕을 꿈꾸는 카이젤이 조선을 독립시켜 줄 상싶어요? 그는 로 - 마 제국 같은 푸로시아 일대제국을 건설하야 게르만 민족 이외의 전인류를 노예로 삼고 독일 이외의 세계 전영토를 식민지로 삼을꺼에요. 웨 이 카이젤의 전쟁목적을 그 애에게 못 일러 주셨어요?
 
37
강기덕   그 말두 여러 번 일러줬지요. 독일에게 의탁할려는 사람이야 비단 향현이뿐이겠어요. 난 평화를 위한 국경 조정문제에만이 조선의 독립안이 상정될 것이고, 이 평화를 위한 국제기구의 재편성은 연합국의 손으로서만 수행할 수 있는 문제일 것이라구두 누누히 일렀었습니다.
 
38
최순천   저두 거기에 절대 동감입니다. 그런데 향현인 웨 그걸 못 깨달았을까요?
 
39
강기덕   그 앤 연합국측을 전적으로 증오했으니까요. 일본과 연합국은 한 구멍 속의 너구리니까 일본의 체면을 봐서라두 조선 문젠 일부러 회피하야 불간섭으로 나갈 꺼라구 늘 주장했었습니다.
 
40
최순천   전 그런 줄은 전연 몰랐어요. 그 애가 그런 착각을 일으키게 된 건 순전히 강선생 때문이라구, 속으루 여간 강선생을 원망한 게 아니에요. 그리구 ‘그이가 웨 자기 무식을 남에게까지 강요할까’ 하구 속으루 여간 화를 내지 않았어요.
 
41
강기덕   우리 친목회에선 또 친목회대루 향현이에게 비뚜룬 판단력을 넣준 건 최선생인 줄루만 오해했지요.
 
42
최순천   그러니 틀린 생각 때문에 고연히 희생들만 당했지 뭐에요. 향현이를 잡아가드니 그 다음날 형사대가 와서 즈이반 애들을 전부 잡아갔어요.
 
43
강기덕   그래 아즉도 안 내줘요?
 
44
최순천   30여 명은 나오고 아즉도 열두 명이 그냥 있어요.
 
 
45
이때 형사 손규철, 기척도 없이 쑥 들어온다.
 
 
46
손규철   뭐 그렇게 놀랄 거 없네.
 
47
강기덕   어서 오십쇼. (소개하며) 저 성화여학교에 계신…….
 
48
손규철   우리 딸 바루 담임이시라 잘 아네.
 
49
최순천   저, 나머지 아해들은 언제쯤이나…….
 
50
손규철   댁에 반 애들은 과장이 직접 취조하시니까 난 전연 상관 안합니다. (책들을 조사하며 강에게) 그런데 요새 학생들 공기가 어때?
 
51
강기덕   나야 학교서 파하고 돌아오면 하루 종일 들앉었는 사람이라…….
 
52
손규철   이거 웨 이래? 강군이 거느리고 있는 서북친목회(西北親睦會)를 강군이 모르면 누가 안단 말야?
 
53
강기덕   또 심심하신 게군.
 
54
손규철   전쟁이 끝나구 구라파에서 만족자결주의가 제창되자 학생놈들이 그 문제에 주렸든 개새끼들같이 밧짝 달겨드는 모양이야. (순천에게) 최선생은 이 민족자결주의를 어떻게 보슈?
 
55
최순천   전 첨부터 총독정치의 절대 지지자니까요.
 
56
손규철   (돌연 비굴하게) 너무들 그렇게 괄세 말어요. 내가 비록 형사를 해먹을망정 나두 조선 사람이요. 날 낳준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조선 사람이요, 조상들이 조선 사람 아니요? 당신들하구 다 같이 조선옷 입구, 조선말하구, 김치·깍뚜기 먹구 자랐는데 낸들 어찌 조선독립이 하구 싶지 않겠소? 일본놈들 밑에서 인젠 정말 울화가 뻗쳐 못 해먹겠소. 그렇다구 어디 가 하소연을 할 곳이 있소, 의론 한마디 할 곳이 있겠소. 하두 답답해서 사실은 오늘 찾어온 거요. 헤헤헤.
 
57
강기덕   그래, 학생들이 민족자결문젤 상당히 관심들 갖는 모양이에요?
 
58
손규철   그런가 봐, 학생놈들뿐 아니라 선생자식들이 더 몸이 달아서 야단이라데. 조선의 화약고는 이눔의 학교들이거든.
 
59
강기덕   우리 보성전문에선 전연 거기에 대해서 아불관언이에요.
 
60
손규철   (위압하며) 거짓말 말어. 그 얘기가 신문에 나든 날 교장 윤익선(尹益善)이를 위시해서 최린(崔麟)이 김상옥(金商沃), 유억겸(兪億兼)이, 김병노(金炳魯) 등 선생자식들이 찻잔으루 간빠이했단 소릴 다 듣구 있어.
 
61
강기덕   직원실에서 일어난 일이야 우리들은 알 수 없으니까요.
 
62
손규철   간빠이한 걸 보면 이번 기회야말로 독립할 천재일우의 호기라구들 생각한 걸 추측할 수 있어. 선생자식들이 간빠일 했을 적에야 학생놈들은 어깨춤을 췄을 꺼 아닌가?
 
63
강기덕   …….
 
64
손규철   (음울하게 웃으며) 헤헤헤, 기덕이 혹 동경 소식 못 들었어?
 
65
강기덕   유학생에 친구가 있어야지요?
 
66
손규철   동경선 야단들이라는군. 상해서 지도잘 파견시켜 은밀히 독립운동을 일으킬 계획을 꾸미구 있다는 거야.
 
67
강기덕   …….
 
68
손규철   그리구 동경뿐 아니라 조선내에두 해외에서 그 혁명 운동한다는 자식들이 상당히 많이 들왔어. 그래서 동지들을 뫄가지구 일을 일으킬려구 맹활동을 한다는군.
 
69
강기덕   우리야 그 방면에 전연 백지라…….
 
70
손규철   기덕이가 말은 그렇게 시침을 떼구 하지만 속으룬 이눔 엿 좀 먹어라 하구 콧방굴 뀌구 있으실걸? 지금 내가 앉은 이 자리에 상해서 들온 독립단 자식이 앉어서 기덕이한테 작전 계획을 다 - 일러 주구 간 걸 내가 다 알어. 그걸 모르구 형살 어떻게 해먹게?
 
71
강기덕   손상, 그게 무슨 동에두 안 닿는 말씀입니까?
 
72
손규철   잡아떼지 말어. 상해뿐 아니라 동경서 유학생이 찾어 온 것두 다 알구 있어.
 
73
강기덕   유학생이요?
 
74
손규철   그래, 자네들하구 연락하기 위해서 말이야.
 
75
강기덕   아까두 말했지만 난 동경에 친구라군 한 사람두 없으니까…….
 
76
손규철   괜히 그렇게 잡아떼면 재미없어. 승화여학교 3학년 학생들을 충동이 시킨 건 강기덕이라는 걸 서에선 다알구 있어.
 
77
최순천   그건 제가 알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78
손규철   두 분이 어느 틈에 동지가 되셨군. 헤헤헤. 최선생, 강기덕 군이 독립운동 자금이 필요하다거든 얼마든지 취해 주십쇼. 민족을 위해서 쓰는 돈은 조선이 독립만 되는날이면 반드시 총리대신의 감사장과 함께 몇십 곱절 푸레미아가 붙어가지구 돌아오는 법입니다. 헤헤헤.
 
79
최순천   전…… 하숙비도 제대로 못 내고 있습니다.
 
80
손규철   그럼 난 그만 실례하겠네. 그 대신 앞으루 무슨 계획하는 일 있을 땐 잊지 말구 나두 계획동지루서 가담케 해주게. (하고 내려온다)
 
81
최순천   안녕히 가세요.
 
82
강기덕   (따라나가며) 안녕히 가십쇼.
 
 
83
손규철, “헤헤헤” 하고 나간다.
 
 
84
최순천   (바래다 주고 돌아오는 기덕에게)갔어요?
 
85
강기덕   네.
 
86
최순천   아이, 징그러운 녀석. 눈이 어떻게 그렇게 생겼어요? 이렇게 쳐다보는데 눈 속으루 그냥 겨들어갈 것 같군요.
 
87
강기덕   난 그눔 그 헤헤헤 웃는 소리만 들으며 자다가두 소름이 쭉쭉 끼쳐요.
 
88
최순천   그런데 그 녀석 말대루 상해서 누가 오셨드랬어요?
 
89
강기덕   넘겨잡구 하는 소리지요.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그런 수단에 넘어가구 맙니다.
 
90
최순천   경무국에서두 민족자결문제에 상당히 겁들을 집어먹구 있나부지요?
 
91
강기덕   겁내게두 됐지요. 한일합방 후 조선을 떠난 혁명가들이 상해에서, 북경에서, 해삼위, 우라지오스토크, 만주, 북간도 등 각지에서 이문젤 가지고 일제히 일어날려구 움직이구 있으니까요.
 
92
최순천   그럼 그 형사녀석 말대루 실지루 해외에서 사람이……?
 
93
강기덕   네. 그 저, 저희 학교 선생이시든 신익희 씨도 상해서 들어오셨다구요. 그리고 전 경신학교 학감으로 계시든 김규식 씨 부인과 남경의 금릉대학생 서병호 씨 등이 동경·북경·봉천·상해·서울을 연락하구 인편 연락으루 왕래하구 있다구 합니다.
 
94
최순천   그럼 동경서 유학생이 나왔다는 건?
 
95
강기덕   그 녀석은 넘겨잡구 한 소리지만 사실은 닷새 전에 와세다 대학의 우용구(禹用求)란 사람과 여자대학의 송복신(宋福信)이란 사람이 한위건(韓偉鍵)이란 제 친구 집에 왔었습니다.
 
96
최순천   그럼 동경선 벌써?
 
97
강기덕   네. 최팔용이란 학생이 대장이 돼가지고 조도전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상해와의 연락 밑에 독립을 선언키루 준빌하구 있다구 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우리들두 몇 사람 의론한 결과 동경과 보조를 같이하야 독립을 선언키루 결정했습니다.
 
98
최순천   (동요하며) 그럼 선생님들두?
 
99
강기덕   네, 그래서 우선 선언문 기초를 한위건 군의 선생이든 중앙고보 현상윤(玄相允)씨한테 부탁했습니다.
 
100
최순천   그럼 선언서는 누구의 일홈으로?
 
101
강기덕   정치계 귀족계를 위시하야 각계각층을 망라한 민족대표를 소집한 후 그들 대표의 일홈으로 일천육백만 민족의 의사를 대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순천씨, 우리들 일에 가담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102
최순천   제가요?
 
103
강기덕   네, 전 향현이를 통해서 순천씨의 사상으로부터 일상 생활까지도 듣고 있습니다.
 
104
최순천   허지만 저 같은 게 이런 민족적인 큰 일을…….
 
105
강기덕   동지에게 필요한 건 신약이지 자격은 아닙니다. 동무들한텐 벌써 순천씨가 가맹키로 하셨다고 해놨습니다. 모두들 대환영입니다.
 
106
최순천   (묵고(默考)의 표정. 이때 멀리서 전승축하행렬의 ‘고고와 미쿠니노 남봐쿠리’ 악대와 제창 소리) 축하행렬을 하나보군요?
 
107
강기덕   성서에 보면 하날은 가난한 자의 편이라고 허지만 사실은 부하고 강한 자의 편이에요. 청국을 넘어트리고, 노서아를 동양에서 구축하고, 조선을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통째 삼키고, 거기다 또 독일을 이겼으니 저놈들 국력은 날로 강해지고 우리 기력은 날로 쇠잔해가고 있을 따름입니다.
 
 
108
김원벽(金元璧), 혼자 분주해가지고 떠들며 들어온다. 뒤따라 한창환(韓昌桓), 주익(朱翼), 김문진(金文軫).
 
 
109
김원벽   (돌아다보며 돌아다보며 매도한다) 개자식들……개자식들…….
 
110
한창환   자네가 그렇게 흥분할 이유가 도무지 없네.
 
111
김원벽   뭣이 어쨰?
 
112
강기덕   무슨 일이 있었나?
 
113
김원벽   옆집 강아지가 죽어두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게 인류의 도덕이구 예의이거늘 하물며, 일국의 황제께서 승하하셨음에랴. 그런데 그 자칭 일등 국민이란 놈들이 상청을 모신 덕수궁 대한문 문전에다 등불을 내휘두루면서 ‘고고와 미쿠니노 남봐쿠리’를 불러야 옳단 말인가?
 
114
한창환   그 울분을 아무 반응도 없는 공간에다 터트릴 게 아니라 우리 《독립신문》에다 쓰란 말이야. 차라리 산곡에 고사리를 캐되 누가 망국에 왕 되기를 원하랴. 어때 이 미다시?
 
115
김원벽   자네가 누굴 약을 올리는 셈인가?
 
116
한창환   허지만 자네가 개자식 소릴 만 번 던지는 것보담 국상과 왜놈들에 의한 등행렬이란 논설을 써서 학생들의 피를 끓게 하는 게 훨씬 혁명적이란 말일세.
 
117
김원벽   이 문제가 그까짓 글 몇 줄로 해결될 줄 아나?
 
118
강기덕   그리게 근복적 해결을 할려고 모인 게 아닌가. 빨리 들어들 오게.
 
 
119
일동, 방으로 들어온다.
 
 
120
강기덕   (순천을 소개한다) 요전 얘기한 승화여학교…….
 
121
최순천   최순천이라구 합니다.
 
122
강기덕   (제각기 다토아 인사할려는 것을 막으며) 자네들은 다 아시니까……. 그런데 한위건 군은…….
 
123
김문진   오다가 현상윤 씨한테 들렸네. 요전 부탁한 선언문 때문에…….
 
 
124
이때, 한위건 달려온다.
 
 
125
강기덕   선언선?
 
126
한위건   (방으로 들어오며) 선언서가 문제가 아닐세. 일은 아주 커지고 말았네.
 
127
일 동   일이 커지다니?
 
128
한위건   현상윤 씨가 우리들 계획을 중앙고보 교장인 송진우(宋鎭禹) 씨한테 얘기했다나봐. 그랬드니 송진우 씨가 신문관 최남선(崔南善) 씨하구 보성고보 교장인 최린(崔麟) 씨한테 얘기해서 네 분이 송진우 씨 집에서 모여서 회의를 한 결과 자기들두 독립선언을 하기루 결정했다데.
 
129
일 동   (흥분하야) 그럼 그쪽에서두?
 
130
한위건   응. 그래서 둘째번 회합엔 중앙학교 교주 김성수(金性洙)씨두 참가해서 일사천리격으로 진행을 시키구 있다는 거야. 동경유학생하구 우리 학생들한테 이런 큰일을 앞찔린다는 건 크나큰 수치라구 아주 서둘르는 모양이래.
 
131
김원벽   방식은?
 
132
한위건   거기도 우리처럼 민족대표의 일홈으로 독립선언을 하기로 한다데. 동경서 가지고 나온 이광수가 기초한 선언서는 너무두 문학적이고 문맥이 격문(檄文)으로선 약하다구 최남선 씨가 새로 기초하기로 했대.
 
133
한창식   그럼 우리 건?
 
134
한위건   현상윤 씨가 최남선 씨 것으로 통일했으면 어떠냐구 그러드군. 그래서 우린 역시 우리끼리 초안해서 쓰겠다구 하구 왔네.
 
135
일 동   그거 잘 대답했네.
 
136
김원벽   허지만 아무 집단두 못 가진 자기들 넷이서 어떻게 할려구?
 
137
한위건   천도하고 기독굘 동원시킬 계획을 하고 있대. 그래서 천도굔 최린 씨가 맡구 기독굔 최남선 씨가 각각 맡았다는 거야.
 
138
김원벽   대표자 선거는?
 
139
한위건   아직 못 했나 봐.
 
140
강기덕   거긴 어떻게들 하건 상관 말고 우리들이 내세울 대표나 선거하세. 자칫하면 혁명운동이 아니라 경쟁심리가 되기 쉽겠네.
 
141
김원벽   그럼 종전대로 의장은 강기덕, 서기는 카미유 데무랑으루 하고.
 
142
일 동   좋습니다.
 
143
한창완   카라일 밀라보 - . 카미유 데무랑의 붓에 불란서 혁명의 서사시가 엮어졌다면 이 《독립신문》 주필 한창환이 붓에 웅곤하고도 찬란할 우리 기미년 독립혁명사는 지금부터 기초돼 가겠습니다. (하고 기록준비를 한다)
 
144
강기덕   새로 참가하신 최순천 씨가 계시니까 현재까지 우리가 내정한 각계 대표를 다시 한번 반복하고 하겠습니다. 사회운동가 대표로 기독교청년회관의 윤치호(尹致昊) 씨, 리상재(李商在) 씨, 종교계 대표로 천도교에 교주 손병희(孫秉熙) 씨, 최린 씨, 기독교의 장로파에서 리승훈 씨, 감리파에서 리필주(李弼柱) 씨, 문화계 대표로 신문관(新文館) 최남선 씨, 광문회(光文會)의 주시경(周時經) 씨, 교육계 대표로 보전교장 윤익선 씨, 중앙교장 송진우 씨가 각각 피선됐습니다.
 
145
최순천   불교계와 유교계에선?
 
146
한위건   (낙뢰(落雷)같은 소래로) 고려는 중 때문에 망했고 이조는 그놈에 유림들 때문에 망했어요. 불굔 그래두 말이나 없지만 유굘 넣보세요? 독립선언 글자 한 자, 어휘 하나 가지고 옳다 긇다 좋네 나뿌네 하고 캐고 따지고 논할 테니 또 논쟁하다 일두 못 하고 판칠까봐 미리 뺐습니다.
 
147
김문진   사알 사 - 알 얘기하세. 귀창 떨어지겠네.
 
148
강기덕   전조선 민족의 총의로 발표하자는 이 마당에 누굴 넣고 누굴 빼고 하는 건 옳지 못하지만, 불교는 지방조직이 약하고 이조 오백년 역사에 오점이 유교의 파벌당쟁에 중심한 것이라 나중에 다시 추가 하드라도 이번엔 빼기로 했습니다.
 
149
최순천   그럼 학생 대표들은?
 
150
김원벽   강군이 보전, 제가 연전, 한위건 군이 의전, 김문진 군이 세전, 모두 학생회 대표입니다. 허지만 저희들은 어데까지든지 한 혁명의 일 병사로서 한 초석으로서 만족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발표치 않기로 했습니다.
 
151
최순천   절대 저두 동감입니다. 그럼 그중 중요한 정치계와 귀족계가 남았습니다. 여기에 피선될 사람은 명실공히 민족의 신뢰와 총의를 일신에 지니고 있는 분이라야 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겨레와 역사와 강토를 위하야는 언제든지 자기들의 지위와 명망과 부귀를 파리같이 버릴 수 있는 희생 정신의 소유자래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때까지 내정한 어느 대표보다도 냉정한 비판과 준엄한 검토로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주기 바랍니다. 정치계와 귀족계는 민족의 대표일 뿐 아니라 여기 망라된 각계각층의 대표자들에 또 대표래야 할 것입니다. 그럼 우선 정치계부터…….
 
152
한창환   김윤식(金允植)씨 어때? 김홍집(金弘集) 내각 때 외무대신이 된 후 총리대신을 지냈구 중앙추천의장으로 국가의 원로이든 분이니까. 뿐만 아니라 유학의 권위로 현재 경학원 대제학으루 계시니까.
 
153
한위건   (과격하게) 허지만 결국 나라 팔아먹은 자가 아닌가?
 
154
김문진   살살 해도 다 들리네 -.
 
155
한창환   을미사변에 연좌해서 제주도에 종신 귀양가 절해고도의 배소에 20년 동안 울든 걸 생각해줘야지.
 
156
한위건   한일합방을 누가 했기에? 물론 리완용·송병준·리용구 놈들이 팔아먹었지만 최후의 어전회의를 마춘 왕께서 황족대표자 리재면(李載冕), 원로 대표자 김윤식을 부르셔서 최후의 자문을 하셨을 때 김윤식 씨가 절대루 합방해선 안 된다구 했으면 오늘날 우리 조선이 이렇게 안 됐을지도 몰라.
 
157
김원벽   그건 억설일세. 김윤식 씨가 우겼다구, 합방이 안 됐겠나? 총리대신 리완용, 내무대신 박제순(朴齊純), 농상공부대신 조중응(趙重應), 탁지부대신 고영희(高永喜) 눔들이 사내(寺內) 총독놈, 대동일진회 송병준·리용구 등 하구 꽉 짜가지구 그냥 강제적으로 왕께 도장을 찍으시라구 했는데, 그 내막을 아는 그이가, 해두 이미 소용 없는 반댈 해서 뭘 하겠나?
 
158
김문진   당시 원로대신들 중에 그래두 나라를 애낀 사람의 한 사람이지.
 
159
강기덕   삼대일루 김윤식 씬 추대하기로 합니다. 각계에 두명씩이니까 또 한 분……?
 
160
김원벽   전 참정대신(參政大臣) 한규설(韓圭卨) 씨 어때?
 
161
한창완   이의 없지 뭐.
 
162
김원벽   이등박문(伊藤博文)이 놈이 한일합방의 기초공작으로 우리나라에 외교권을 저희놈들한테 무조건하구 위양하라구 강제적으로 공갈한 을사년 조약에 법무대신 리하영(李夏榮), 탁지부대신 민영기(閔泳綺)하구 셋이서 ‘부’(否)자를 쓰구서 절대 반대한 분이니까.
 
163
강기덕   그럼 만장일치로 한규설 씨를 추거하기로 합니다. 그 다음은 귀족계에서…….
 
164
한위건   귀족이란 게 대체 뭐야? 나라 팔아먹구 현금 몇 만 원씩하구 작위 받아먹은 놈들 아닌가? 그자들은 모조리 빼버릴 뿐 아니라 아주 죽여버려야 하네.
 
165
김원벽   귀족도 귀족 나름이지. 을사조약엔 반대하고 목을 찌르고 자살한 보국(輔國) 민영환(閔泳煥) 씨두 매국노란 말이야? 후작의 영전날 독을 먹구 자살한 신남작 김석진(金奭鎭)과, 역시 목을 찌르구 자살타 미수한 신남작 조정구(趙鼎九) 같은 사람두 있지 않나?
 
166
한위건   허지만 현재 살아 있는 사람으루 지졸 지킨 사람이 있어야지?
 
167
김원벽   웨 없어. 윤용구(尹用求)씨가 있지 않나?
 
168
한위건   윤용구 씨?
 
169
한창환   자네가 졌네. 그분은 작위 주는 것 싫다구 퇴한 양반이야…….
 
170
한위건   그런 이가 있었든가?
 
171
강기덕   그럼 윤용구 씨를 추거하기로 함. 다음 또 한 분은?
 
172
김원벽   박영효(朴泳孝) 씨루 하지.
 
173
한위건   그인 백작을 받구 은사금이란 나미다낑까지 받은 치 아닌가? 철두철미 처음부터 친일파구.
 
174
김원벽   친일파라두 그건 어디까지든지 조선을 살리기 위해서 취한 방법으로서의 외교수단이였다구 나는 보네. 그 증거루 그가 양위(讓位) 문제에 취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네. 헤이그(海牙) 밀사사건을 빙자해가지구 이등박문 이놈은 전후 15회에 이른다는 죄명을 나열하야 폐하를 문책하고, 장곡(長谷)의 사령관 놈은 대한문전에다 대포를 나열하여 놓고 위협하며 양위를 재촉했을 때 왜놈들의 끄나풀이 돼가지구 도장을 찍으시도록 박차를 가한 그 리완용 외 6대신, 7적(七賊) 틈에 끼어서 그래두 끝까지 도장을 감추고 서리에게 내주지 않은 인, 당시 궁내대신 박영효 씨였네. 그뿐 아니라 군부의 양위 반대파인 태장(泰將) 리희두(李熙斗), 부령(副領) 환담(奐潭) 등과 짜가지고 양위식날 리완용이 일팔, 모조리 학살할 계획을 세웠다가 탄로가 나서 일본놈들 군인에게 포위가 되구 말었든 걸세. 이등박문이눔이 군대루 궁성을 둘러싸구 황태자의 즉위식, 즉 리태왕의 퇴위식을 거행하구 말았을 때 박영효는 이것은 서정대리(庶政代理)지 진실한 양윈 아니라구 주장했고, 동지들에게 결사대를 조직시켜 비양위의 선언서를 배포케 하고 리완용의 집에다 불을 질르고 경찰소, 파출소를 습격해서 막 부시지 않았나? 그것때문에 치안 방해법으루 제주도에 1년 동안 귀양을 살았었지.
 
175
한창환   이건 바루 논문일세. 원벽이의 양위론을 학회에 통과시키기 위해서두 단연코 박영효 씬 귀족대표로 선거하기를 제의하네.
 
176
강기덕   그럼 이상 네 분을 추거하기로 하고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177
      정치계 김윤식ㆍ한규설
178
      귀족계 윤용구ㆍ박영효
179
      사회운동계 윤치호ㆍ리상재
180
      교육계 윤익선ㆍ송진우
181
      천도교 손병희ㆍ최 린
182
      기독교 리승훈ㆍ리필주
183
      문화계 최남선ㆍ주시경
 
184
     이상 7계 14명입니다.
 
185
일 동   (박수)
 
186
강기덕   쉬 ―. (하고 밖을 살펴본다)
 
187
최순천   현재 선출된 대표 중에 빠진 게 하나 있습니다.
 
188
강기덕   뭔데요?
 
189
최순천   경제계란 사회의 중요한 일 구성이니까 역시 거기서 두 대표를 선출하는 게?
 
190
강기덕   일본놈들의 침략으루 제일 먼저 우리 조선이 뺏긴 것이 상권과 광업권이라 실업계라면 구멍가게요. 공업계라면 수공업뿐 민족의 대표될 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191
최순천   그중에서두 한 분은 있어요. 마땅히 내세워야 할 사람이…….
 
192
김원벽   누군지 최선생께서 천거하십쇼.
 
193
최순천   한상룡(韓相龍)씨요.
 
194
일 동   (가느다란 경탄소래)
 
195
김원벽   (잘못 들은 줄 알고) 한상룡이라니 어느 한상룡이 말입니까?
 
196
최순천   한상룡씨가 또 있나요? 한성은행(漢城銀行) 두취 말구두?
 
197
김원벽   아 - 니, 그럼 바루 그 총독 아들을?
 
198
한위건   최선생, 이게 무슨 농담이십니까?
 
199
한창환   오늘은 적어두 민족을 좌우할 중대 회담입니다.
 
200
김문진   좀더 경건한 맘으루 우리 회담에 참가해주십쇼.
 
201
최순천   전 농담두 아니구 허튼 소리두 아니예요. 제 신념에서 하는 의견이예요.
 
202
김원벽   (격양하여) 신념에서요? 일본 옷에 일본 말만 쓰고 다니는 그 친일파를 신념으루서 추천하신단 말이예요? 그런 불순한 자를 민족 대표의 일홈 속에 넣어 우리의 영광을 더럽히겠단 말이예요? (벌덕 일어나며) 나가십쇼.
 
203
강기덕   (그를 붙들며) 원벽이 원벽이, 이게 무슨 짓인가? 앉게.
 
204
김원벽   당신이 안 나가시면 내가 나가지요, 당신과 그런 허튼소릴허구 앉었기엔 우리의 정렬은 너무도 크고 우리의 반항심은 너무도 세차고 우리의 결의는 너무두 엄숙하오. (문을 박차고 나간다)
 
205
강기덕   (쫓아가 껴안으며) 원벽이, 이게 무슨 점잖지 못한 짓 인가?
 
206
김원벽   (냉소하며) 자네가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구 천거한 애국자가 그래 고작 저 위인인가?
 
 
207
한위건·김문진·한창환도 따라나와 그를 달래서 억지루 끌고 다시 들어온다.
 
 
208
최순천   김선생, 한 사람이 자기의 의견을 발표할 땐 반드시 거기에 이유가 있을게 아니예요. 좀 경솔하시다구 생각합니다.
 
209
강기덕   (옹호할려고) 순천씬 한상룡일 잘 모르고 하신 소리야.
 
210
최순천   강선생님…….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전 그사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구 있습니다. 제가 그사람을 천거 하는 것은 그사람이 아까 김선생 말씀대루 극도의 친일파구 총독부의 충실한 머슴이기 때문이에요. 그인 사내(寺內) 총독의 쉬영아들이란 말까지 있어요. 그러므로 이사람을 리승훈 씨하고 어깨를 나란히 적어놓면 재미있는 대조일 꺼예요. 한 사람은 총독을 암살하려든 사람으로, …… 한사람은 그의 쉬영아들로 이 선언서를 받아보는 외국공사, 영사들이나 국제연맹의 전권 대사와 윌슨은 혼자서 속으로 중얼거릴 꺼예요. ‘한상룡이 같은 친일적인 사람이 다 이 독립운동의 선두에 나섰을때야 일본놈들이 얼마나 악착하게 해먹었을까…….’ 그뿐 아니라 이 선언서를 받는 사내(寺內)는 ‘우리 쉬영아들까지가 독립을 갈망할 때야 내 무단정치가 확실히 지나친게 분명해……’ 하구 반성할 거예요.
 
211
일 동   (포복절도(抱腹絶倒)한다.)
 
212
한위건   원벽이 사과하게 사과해 -.
 
213
김원벽   최선생, 너무두 제가 경솔했습니다. 그렇게 신중한 고려 끝에 내신 의견인 줄은 모르고…….
 
214
최순천   실롄 제가 한 셈이에요.
 
215
강기덕   (일동에게) 어떡했으면 좋겠습니까?
 
216
일 동   넣두룩하지.
 
 
217
이때 노소사의 안내로 사이풀과 향현어머니 들어온다. 향현어머니는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다. 마루에 기계적으로 올라오드니 딸의 방 문지방에 얼골을 묻고 오열한다.
 
 
218
강기덕   벌써 다녀오세요?
 
219
사이풀   (악수하며) 강기덕 씨 차입 정향현한테 전했습니다. 그리고 최선생 털짜껫도……. 정향현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220
기덕ㆍ순천  수고하셨습니다.
 
221
노소사   그래 매는 맞지 않었답디까?
 
222
향현어머니  (울분을 퇴적을 쏘을 길을 발견한 듯) 어째서 매를 맞질 않었겠소? 그 무지한 놈들이 때려두 이만 저만 모질게 때렸겠소? 얼굴이 개고리 뱃바닥같이 시퍼렇게 부풀어 올랐습디다.
 
223
최순천   그래, 말이나 해보셨어요?
 
224
향현어머니  말할 새가 있습디까, 어디? 동물원 철창 같은 속에서 얼굴만 잠깐 내미는데, 대하구 보니 혓바닥이 입창에 가 딱 붙어가지구 말이 영 나와야지. 갈 때 교장 선생님이 향현이 앞에서 울면 그 애가 가슴 아퍼할 테니 결단쿠 울어선 안된다구 신신 다지기에 나두 이를 악물구 울지 않을려구 했었소. 그런데 그애 그 종잇장 같은 얼골을 대하구 보니 그냥 눈물이 쏟아져서 견딜수가 있어야지. 그 애가 “어머니 울려구 여기 왔소? 그럴려거든 다시 오지 마오” 하기에 정신을 차리고 말을 한마디 걸랴구 하니까 형사놈이 와서 시간 됐다구 하구 그냥 문을 철그렁 내립디다.
 
225
노소사   어쩌면 아주먼네 집안은 하나같이 다 그렇소?
 
226
향현어머니  내가 오면서 교장선생님께 그 얘길 다 했소. 내 반생은 유치장하구 감옥 속에 차입벤또 날르다가 늙었다. …… 즈 할아버지가 나라 뺏기는 꼴 보기 싫다고 자결하신 후 즈 아버지, 즈 작은아버지, 두 형제분은 강원도에 가서 의병 일으켜가지고서 일본 군대하구 싸우다가 그놈들 총에 돌아가셨으니 그 필 받은 자식들이 어째 그냥 있겠소? 그래서 난 애당최 아들애 셋 있는건 언제구 나갈 사람이거니 하구 믿지두 않구 의지할 맘두 안 먹구 있소. 허지만 향현인 계집애라 그렇지 않을 줄 알구 데릴사위를 얻어서라두 의지할까 했드니……. 그 애마저…… 그 애마저…….(하고 오열한다.)
 
227
사이풀   향현어머니, 우지 마십쇼. 향현어머닌 누구보다 똑똑한 따님 가지셨습니다.
 
228
향현어머니  동리 사람들 말대루 공부나 시키질 말걸. 서울 가 공부시켜놓면 집에 안돌아오구 감옥으로 곧장 간다구 모두들 시키지 말래는 걸 기덕이가 있기에 믿구서 보냈드니……. (하고 운다)
 
229
사이풀   (강에게) 입회한 형사가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라 정향현에게 어머니 우시는 동안 많은 이야길 했습니다. 지난 1월 18일 파리강화회의에 우리 미국 대통령 윌슨이 14개조를 제출하야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한 이야기도, 강기덕 씨가 동지들과 자주 독립을 선언할 계획을 진행하구 있다는 것도, 또 그 선언서를 오는 6월에 파리의 뵐사이유 궁전에서 개최할 국제연맹에 독립선언서와 함께 제출할려고 한다는 것도 다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미약하나마 나도 거기에 협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230
최순천   (상기가 되며) 그래 향현이는 뭐라지요?
 
231
사이풀   아주 실망하는 얼골이었습니다.
 
232
학생들   (의아하야) 아 - 니 웨요?
 
233
사이풀   정향현, 우리 윌슨을 절대로 의지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제연맹에 청원을 해도 아무 효력 없으니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고 합니다. 나는 그의 그릇된 신념을 고쳐 줄려고 했으나 벌써 그땐 시간이 없습니다.
 
234
노소사   그만 우시고 들어가 저녁이나 잡숩시다.
 
235
향현어머니  그 앨 거기다 두고 밥이 내 목구멍을 넘어가겠소?
 
236
사이풀   향현어머니 걱정마십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당신 따님과 그외 학생들 내오두룩 노력하겠습니다. 경무국장 나하구 대단 친합니다. 그사람한텐 정향현 외 열두 명 단단히 부탁했습니다. 불일간 나오게 될 껍니다.
 
237
노소사   교장선생님두 찬은 없지만…….
 
238
사이풀   난 바빠서 가봐야겠습니다. 향현어머니나 모시고 들어가십쇼. (학생들에게) 그럼 잘들 계시오.
 
239
학생들과 순천  안녕히 가십쇼.
 
 
240
노소사와 향현어머니는 안으로, 사이풀은 밖으로 각기 나간다.
 
 
241
주 익   (이때까지의 침묵을 깨틀고 비로서 입을 연다) 자네들은 향현이의 지금 그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
 
242
강기덕   어떻게 생각하다니? 그앤 우리 서북친목회에서도 유명한 고집불통 아닌가? 자기가 믿었든 독일이 참패했기 때문에 의지로라도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을려는 발악밖엔 아무 것도 아닐세.
 
243
김원벽   참, 암소 곧다림이지.
 
244
한위건   자넨 지금 와서 세계 신사조에 뒤떨어진 향현이 말을 믿어 민족자결주의를 또 부정할 작정인가?
 
245
주 익   국제정세의 착각은, 사실은 자네들이 일으키고 있는 것이고 향현이는 옳은 노선을 걸어가고 있는 걸세.
 
246
     제1조 비밀외교 및 비밀조약의 금지
247
     제2조 경제적 장벽의 철거
248
     제3조 해양의 자유
249
     제4조 군비의 축소
250
     제5조 식민지 요구의 공평한 조정
251
     제6조 노서아(露書亞) 국민생치(國民生治)부흥의 원조
252
     제7조 백이의(白耳義)의 회복
253
     제8조 불란서 내에서의 동맹군의 철병 및 알싸스 로렌 양주(兩州)의 회복
254
     제9조 이태리 국경의 조정
255
     제10조 오지리(墺地利), 홍아리(洪牙利), 제국(帝國) 내 제민족의 자치
256
     제11조 빨칸 제국가(諸國家)의 부흥
257
     제12조 토이기제국(土耳其帝國)내에의 비 토이기민족의 자치 및 다 - 다넬쓰의 해협의 통과
258
     제13조 파란(波蘭)의 독립
259
     제14조 국제연맹의 설립
 
260
    이것이 왈 14개조일세. 여기 여기 어느 조항에 민족자결이란 어구가 씌여 있나?
 
261
김원벽   그런 추상적인 문자보다 벨기 -, 최코슬로봐키아, 빨칸, 폴랜드를 독립시키고자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나?
 
262
주 익   내 말은 거기 어디에 조선의 자치나 독립을 요구하는 조목이 있냐 말일세.
 
263
김문진   14개조에 들어 있는 건 이번 대전 직접 참가한 나라들에 한해 있네.
 
264
주 익   그러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김칫국 마시는 격이지 뭔가?
 
265
김문진   달라지도 않는 떡을 줄 사람은 또 누군가? 그들이 우리 조선문제에 등한하면 등한할수록 무관심하면 무관심할수록 우리는 국제연맹에게 조선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할 기회와 인식을 새롭게 할 재료를 제공할 의무가 있을 꺼야.
 
266
한창환   사실은 윌슨이 15개조를 맨들었었는데 파리에 들어가 너무도 열광적 환영을 받는 바람에 조선의 즉시 독립이란 제15조를 깜박 잊어버린 것이 분명해. 그러니 새로 일 조목을 추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단연코 독립을 선언하고 또 청원할 필요가 있을 줄 아네.
 
267
강기덕   14개조에 빠진 거야 어디 조선뿐인가? 휜랜드가, 아일랜드가, 휠립핀이, 인도가 난령(蘭領) 인도네시아가, 큐 - 바가, 불인(佛印)이, 삘마가 다 빳지 않았나? 허지만 이들 약소민족들도 금번의 민족자결주의의 여론에 호응하야 일제히 자유와 독립을 부르짖고 일어섰네. 그러니 우리도 이들 피압박 민족과 보조를 같이하고 어깨를 겨누어 우리들의 잊었든 민권과 자주성을 부르짖자는 걸세. 여기에 무슨 김칫국을 마시는 어리석음이 있단 말인가?
 
268
한위건   민족자결이란 금차 세계대전의 가장 중요한 전쟁 목적의 하나일 뿐 아니라 강화목적의 전부일세. 처음 연합국이 강화를 제안했을 때도 민족주의의 승인과 약소민족의 자유한 존재에 대한 보장을 주장했었고, 그 다음 중립제국이 강화를 알선했을 때도 모 - 든 인민에 대한 보장을 제안하지 않았나? 그 다음 로 - 마 법왕 벤네틔크 15세가 강화를 시킬려고 출마했을 땐 경계문제에 있어선 민족자결주의를 적용할 것이라고 확실히 제안했고. 그러니 윌슨의 14개조에 조선의 독립이 씌여 있건, 안 씌여 있건 문제가 아닐 줄 아네. 일체의 구시대의 질서는 도괴되고 새로운 항구적 평화를 위한 신질서가 건설되려고 하고 있네. 이 크나큰 변동기에 있어서 웨 우리 민족이 자주독립의 보장을 받을 권리가 없단 말인가?
 
269
김문진   우리가 이때 안 일어서면 또다시 일어설 기회는 오지 않을거야. 독립을 한다면 이번에 하는 거고 못 한다면 영영 못하는 거지.
 
270
주 익   금번 강화회의의 언권자가 누군가? 윌슨이 조선독립을 제안한다면 일본은 휠립핀을, 큐 - 바를 주장할 것 아닌가? 영국이 아일랜드를, 인도를, 호주를, 카나다를, 남부 아프리카를 독립시킬 용의가 있겠나? 불란서가 불인을, 사하라를 내놀 수 있겠나? 그들이 그 광대한 식민지를 내놀 수 없는 한 일본에겐 불간섭주의로 나갈 수밖엔 없을 걸세. 원체가 미국은 몬로 - 주의를 제창치 않나? 윌슨이, 로이드 쬬 - 지가, 크레만소 - 가 조선의 독립을 주장치 못할 것을 사이풀 씨도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에 향현이 말에 답변을 못하고 그대로 돌아왔든 걸세.
 
271
강기덕   그러니 결론은 뭔가?
 
272
주 익   우리가 할려는 독립선언이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세.
 
273
강기덕   그럼 자넨 어떻게 했으면 좋겠단 말인가?
 
274
주 익   흥개호(興凱湖)로 모두들 가세. 그래서 고기를 잡을 그물을 뜨잔 말일세.
 
275
일 동   흥개호로?
 
276
주 익   흥개호란 노서아, 만주, 북간도의 국경에 있는 일대 호수일세. 그 주위는 광도 만리의 미개지이고. 안창호(安昌浩), 리동휘(李東輝), 리갑(李甲), 류동열(柳東說)씨 들이 거기다 둔전병(屯田兵)을 양성하고 있으시네. 자기 손으로 이 땅을 개간해서 자급자족을 하고 군대를 훈련하야 무기를 들고 일본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으시네. 사방에서 상당히 혁명 청년들이 모여들어 일대 낙토가 건설되려고 하고 있네. 우린 거기 가서 군사훈련을 받세. 여기서 독립선언에 우리가 동원할 학생들을 전부 그리로 끌고 가잔 말일세. 그래서 무력으로써 당당히 그 왜놈들을 무찔르고, 잊었든 우리나라를 찾을 준비를 하잔 말일세.
 
277
강기덕   너두 나두 해외로만 달아나면 이 해내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 가려거든 자네 혼자 가게. 우린 자네 말대로 나무에 올라서서 고기를 낚는 어리석은 짓을 그대로 진행시키겠네.
 
278
주 익   그럼 끝까지 선언을 해야만 하겠단 말인가?
 
279
강기덕   초지를 휠 수는 없네.
 
280
주 익   그럼 성사를 빌고, 난 나대로 조선의 행복을 위할 장을 찾아가겠네. (하고 밖으로 나간다)
 
281
강기덕   사실 우리가 하려는 이 선언은 타력비원(他力悲願)일세. 그러나 우리에게 칼 한 자루가 있나? 총 한 자루가 있나? 있는 건 영양 부족의 쇠퇴한 얼골과 개 백정에게 위협당한 강아지의 공포와 불안과 억겁이 있을 따름일세. 신문이 스물이 있으되 열여덟은 일본말이요, 하나는 영문이요, 하나가 국문이되 주인이 일본놈이 아닌가? 언론이, 집회가, 신앙이, 억제돼도 우리는 반박을 못 해봤네. 혁명가들을 소탕하기 위하야 사내총독을 암살할 계획을 했다고 일백이십 명을 잡아다 두들겨 범죄를 날조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부인할 입을 못 가졌었네. 동양척식이란 괴물을 황금정에다 세워놓고 조선 사람의 토지를 강제적으로 매수하고 남조선의 따뜻한 곳에 저희놈들을 이주시키기 위하야 우리 동포를 만주벌판으로 내쫓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한번도 항의를 못했었네. 우리의 눈엔 수건이 감기였고 우리의 입엔 자개가 물렸고, 우리의 수족엔 자물쇠가 채여 있네. 우리가 독립을 선언하자는 건 이 갬긴 눈으로 한번 그놈들을 쏘아보자는 것이요, 자개 물린 입으로 한번 말을 해 보자는 것일세. 독립이 되고 안 되고 나는 그게 문제가 아닐세. 이 가슴 속에 든 분통을 전세계에 한번 외쳐보는 것, 그것으로서 만족하네.
 
282
최순천   그렇습니다. 우리가 맨주먹으로 세계 3대강국의 하나인 일본놈들에게 독립을 선언한다는 것은 병아리가 수리를 향해 조전을 개시하는 것처럼 어리석다는 것을 제 자신 누구보담두 잘 압니다. 그러나 지랭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선언하는 것은 고작 꿈틀거리는 것에 불과할 거에요. 허지만 전세계가 일본놈의 악선전으로 말미암아 조선 민족은 죽은 줄만 알고 있는데, 아즉도 꿈틀거리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의의가 있을 거에요.
 
283
김원벽   쥐가 바뿌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야. 개가 바뿌면 백정을 향해 뛰어오르는 법이구.
 
284
한위건   우린 지랭이도 아니고, 병아리도 아니고, 쥐도 아니고, 그리고 개도 아니야. 두 눈이 멀뚱멀뚱 떠 있는 사람이야. 수효는 일천육백만이나 되구.
 
 
285
이때, 밖에서 무엇이 쿵 하고 쓰러지는 소래
 
 
286
김원벽   (소스라치며)무슨 소릴까?
 
287
한위건   (밖을 향하야) 누구요?
 
 
288
어둠 속에 무엇이 휙 지나가는 그림자.
 
 
289
최순천   누가 지금 휙 지나갔어요.
 
290
김원벽   사람이에요?
 
291
최순천   확실히 여학생이에요. 판장에 지금 그림자가 어렸었어요.
 
292
한위건   그럼 아까 들올 때 문깐에서 기웃기웃하는 그 기집앤가?! (하고 신발을 끌고 쫓아나간다)
 
293
김문진   스파이 아닐까?
 
294
한창환   그럼 우리 계획은 허탕방이게?
 
295
김원벽   쫓아가 잡아보세. 내려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하고 달려가니 순천만 남기고 일동 뒤따른다)
 
 
296
       [간]
 
 
297
이윽고 학생들, 손소복의 팔을 잡고 끌고 들어온다.
 
 
298
최순천   (비명을 치듯) 너 소복이가 아니냐?
 
299
학생들   (일제히) 그럼 향현이를 찔른?
 
300
최순천   바로 그 애에요.
 
301
한창환   우물에다 거꾸로 틀어넣버려. 빌어먹을 년.
 
302
한위건   (안을 향하야) 향현어머니, 향현어머니, 향현이 일러 바친 기집애 잡았습니다. 빨리 나와보십쇼.
 
 
303
향현어머니와 노소사 달려 나온다. 향현어머니, “그럼 저년이 바루 내 딸을” 하고 달려가 붙들고 늘어진다.
 
 
304
향현어머니  이년, 애비가 형사질 해먹으면 딸년두 해먹으란 법 있든? 다신 네년이 그 따우 버르장머리 못 하게 그 아가릴 찢어놔야겠다.
 
305
손소복   (때리는 대로 맽기고 저항치 않는다)
 
306
최순천   (뜯어 말리며) 놓세요. 이 팔 놓세요. (억지로 향현 母[모)를 떼친 후 노소사에게) 모시고 들어가세요.
 
307
노소사   들어가십시다 우린. (하고 향현 母[모)를 붙들고 들어 간다)
 
308
최순천   (조용히) 문깐엔 웨 섰드랬냐?
 
309
손소복   (시선을 피하며 무언)
 
310
최순천   웨 디려다보구 있었드랬어? (쏘는 듯이 날카롭게) 우리들이 무슨 계획 하구 있나 봐가지고 또 향현이 식으로 일러바칠려는 게지?
 
311
손소복   …….
 
312
최순천   너 때문에 우리 학교서만 희생당한 학생이 몇 명이냐? 선생이 또 몇 명이구? 내가 이때까지 안 들어가구 있는 게 사실은 기적이라구 모두들 그런다.
 
313
손소복   …….
 
314
최순천   네가 판장 새로 디려다본 대로 우린 독립운동을 일으킬 계획이다. 어서 가서 일러라. 한 발도 움직이지 않고 있을 테니, 어서 가서 너희 아버지 더리고 오너라.
 
315
김원벽   형사대 오 - 도바이로 싣구 와서 이 집 뺑 둘러싸구 붙들어 가게 어서 가서 일러.
 
316
손소복   (돌연 소래를 낮춰 운다)
 
317
강기덕   웨 우니? 동족을 팔어 너희 아버지가 출세할 수 있고 네가 부귀를 누릴 수 있는데 웨 그 미끼를 앞에다 두고 우니? 응, 뭣이 답답해서 우는 거야?
 
318
최순천   (규환을 치며) 어서 빨리 가서 일러.
 
 
319
손소복, “선생님” 하고 그의 가슴에 엎더진다. 최순천, 무슨 징그러운 동물을 대하듯 그를 휙 뿌리치니 손소복 그대로 땅바닥에 엎더져 흐느껴 운다.
 
 
320
손소복   (목 메인 소리로) 아버진 날더러 최선생님이 서북친목회 회장집에 나타난 것을 보면 필경 무슨 음모가 있는 것 같으니 가서 탐지해보라구 하셨어요. 허지만 난 선생님들의 계획을 탐지하러 온 건 아니에요.
 
321
최순천   (폐부를 찌르는 듯이) 아닌데 웨?
 
322
손소복   사실은 향현이 소식을 좀 들을까 하구 왔어요. 향현어머니께서 교장선생님 하구 면회가셨단 얘길 반 애들 한테 듣구, 여기 오면 소식을 좀 들을 것 같기에 왔든거에요.
 
323
최순천   향현이 얘길?
 
324
손소복   네. 선생님 말씀대로 전 우리 학교에서 불온한 사상 가진 선생과 애들은 모주리 밀고를 해왔어요. 그렇지만 이번같이 가슴이 에어지는 것같이 괴로운 적은 없었어요. 밤에 드러누면 천정에, 벽에, 창문에 향현이가 붙들려 가든 광경이 떠올라요. 제가 고등과장한테 막 이름을 댈려고 할 때 말없이 들어와 나를 쏘아보든 그 눈, 그럴 쩍마다 난 물푸레로 두들겨 맞는 듯 가슴이 아펐어요.
 
325
최순천   …….
 
326
손소복   향현이가 카이젤에게 탄원서를 내려는 것이 선생님이 언젠가 저희들한테 들려주시든 쨘다 - 크같이 승스럽게 생각되여지기 시작했어요. 그 애의 용기와 그 애국심이 나 같은 옹졸한 계집애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크나큰 존재로 보여지기 시작했어요. 동시에 이 조고만 구세주를 찔러바친 내 자신이 이스카리온의 유다같이 몹쓸 년이라는 가책이 나를 괴롭혔든 거에요.
 
327
일 동   …….
 
328
손소복   (오열과 함께) 향현어머니께서 이리 들어가실 때 전 쫓아가서 붙들고 용서를 구할까 했지만 차마 그 용기가 안 났어요. 그래서 향현이…… 소식이나 들을까 하고 구멍으로 디려다 본다는 것이 그만 나도 모르게 선생님들의 계획을 다 듣고 말았어요.
 
329
일 동   …….
 
330
손소복   흥개호로 가서 싸울 준비를 하자시는 아까 나가신 그분의 말씀도, 자개 물린 입으로 한번 외쳐나 보자시는 강선생님의 말씀도 유난히도 오늘은 내 가슴에 화살같이 한마디 한마디가 콕콕 백혔든 거에요. 그리고 향현이보담 더 크나큰 존재들이 또 한 곳에 계신 것을 알았어요. 동시에 이 조선의 방방곡곡엔 혹은 해외엔 선생님보담도 더 훌륭한 분들이 독립을 위하야 노력하고 계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자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주위에 찬바람이 휙 부는 듯 허전해지고 무서워졌어요. 이때까지 세력을 쓰든 모 -든 지배자들이 다 물러나고 향현이와 선생님, 그외 보지도 듣지도 못하든 분들이 일제히 나타나서 불시에 조선 천지가 뒤바뀌어지는 환상이 떠올라오자 아찔해지고 정신을 잃어 쓰러졌든 거에요.
 
331
일 동   …….
 
332
손소복   선생님은 나의 밀고로 우리 아버지가 출세하고 우리집이 부해간다고 하시지만 그건 오해십니다. 저의 아버진 첨부터 형사는 아니였어요. 선량한 농사꾼으로 대동 일진회 회원이었어요. 한일합방만 되는 날이면 군수나 주사는 고사하고 도지사도 된다는 바람에 소 팔고 땅 팔고 나머지 집까지 팔아 일진회 회비를 대오셨어요. 허지만 정작 합방이 되고 보자 아버진 겨우 순사자리 하나밖에 못 얻어 하셨든 거에요. 아버진 출세를 해보려고 갖인 짓을 다 하시다 끝에 가선 나를 끄나풀로 쓰시기 시작했든 거에요. 나는 그짓이 얼마나 천하고 악한 짓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아버지가 불쌍해서 끌려서 했든 거에요. 내밀고로 이번 향현이 사건을 빼놓고 학생이 100여 명, 선생이 세 명이나 체포됐지만 우리 아버지는 여전 부장도 주임도 아니고 히라형사에요. 나는 밤낮 내일 내일하고 이용만 당하고 있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어요. 난 이 이상 그 일본놈들에게 이용은 안 당할 결심이에요. 선생님들을 찔러바쳤댔자 아버지 어깨에 별이 안 늘고 조곰도 월급은 안 올라가는데 내가 웨 또 이 어리석은 개짓을 되풀이하겠어요?
 
333
일 동   …….
 
334
손소복   선생님, 저도 선생님들의 하시는 일에 가담해주실 수 없겠어요? 동지로서가 아니라 리승훈 씨 대조로 한상룡이를 뽑으시듯 향현이와의 대조로 말입니다. 형사딸, 스파이, 끄나풀, 세파 - 트인 손소복이도 여러분의 독립운동에 가담했을 쩍에야 일본놈들이 조선 사람을 얼마나 이용만 해먹었기에 그랬을까 하고 외국인들이 항복할 것입니다.
 
335
최순천   그 말이 진심에서 하는 소리냐?
 
336
손소복   네.
 
337
학생들   (일제히) 정말로 진심에서?
 
338
손소복   네.
 
339
최순천ㆍ학생들  (그의 팔을 붙들며 격하야) 고맙다.
 
340
강기덕   우리가 이렇게 하구두 독립이 안 된다면 그것은 천운이니 할 수 없겠지.
【원문】제 2 막 (1919년 1월 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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