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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새삼스럽게 선전에 출품을 다시 하기는 이제 3년째이다. 그러니 십 삼년 전에 한두 번 이 전람회에 출품을 하다가 이것을 버리고서 구본웅, 장기남, 양희문, ○○ 형에게 후사를 부탁하고 서북으로 ○○○ 부침하다가 급기야 돌아오니 선전 조각부도 나와 거의 같은 시절을 수면하고 있었으며 구본웅 형 등 제우(諸友)들도 스스로 새로운 길을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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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이번에 이 전람회 인상기를 써 보려는 데 있어 또한 옛날 나를 회고하여 보자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전람회라고 일년을 통틀어서 조선미술전람회와 서화협회 전람회의 두 곳밖에 없었으며 그것도 거의 동일한 작가가 두 곳에 출품을 하였음으로 하여서 따라서 미술 비평 내지 인상기 같은 것도 몇 사람의 출중한 작가의 개인 연구에 지나지 않아 결국은 화가론에 그치게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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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 보니 여기에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때로는 우정을 흔들어 놓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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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피차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려니 하였고 또다시 만나게 된다면 나로 서는 십여 년 전의 부질없는 관계를 하나씩 하나씩 정정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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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곡, 무호, 정재를 비롯하여서 양많은 선배는 이제는 이 전람회에서 찾 을 바 없으니 나의 소원을 풀 수가 없는 것이다. 전람회뿐만 아니라 어디서든지 신진대사의 작용은 있어야 할 것이나 그렇다고 하여서 의연 역량 있는 선배화가를 한 전전함장에 마저오지 못하는 것은 또는 출품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의 섭섭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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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나는 여러 방면으로 생각을 하게 되나니 현재의 조선에 있어서 선전과 대등하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이에 대비할 만한 전람회를 또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그리 생각할 바 아니나 그렇게 되지 못하는 한 퇴역하지 않은 많은 선배의 출진을 희구하게 되며 그렇게 됨으로써 곧 올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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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니 지금의 전람회장의 두어 배되는 미술관을 신축하고 명춘(明春)부 터 새로운 기운을 가지리라 한다. 이 기운의 가장 효과적 수확을 수확하기 위하여서 선배는 선배대로 ○○하는 모든 방법을 생각하여내서 새로운 출발을 비롯하여 졌으면도 하고 또 이런 전례로서 선진 지대에서는 주객 양면의 사태로 반복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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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의 생활이 모든 점으로 보아 질서가 있다면 각자 자기의 길로 직접적으로 갈 수가 있을 것이고 진행 중도에 다소의 곡절이 있다손 치더라도 거기에는 곧 자기의 반성이 뒤를 이어 올 것이니 재출발이 무난할 것이나 현재의 사정은 통틀어서 있어 한번 분위기를 벗어나서 좀처럼 원상 회복이 불가능하게 된다. 가령 이 전람회에 십여 년 간을 두고 연속 출품하다가 어느 시기에 만일 실패를 보면 이 화가로서는 그 다음부터 거의 이 전람회에 대한 흥미를 아니 가져지고 있으니 구경(究竟) 전람회는 연년이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게 하는 신인의 교대 출발을 거듭할 따름이며 다소 내력이 장구한 전문인은 형형(形形)을 감추어지게만 꼭 되어지는 느낌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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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배의 작품을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이곳에 보여지게 할 수 없을까. 이것이 나로서는 오래 떨어졌다가 대하게 되느니만치 많이 생각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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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건 씨 <시우적청(時雨適晴)>은 원산(遠山)과 가옥의 진정(眞情)을 찾지 못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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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기 씨 <망우리풍경>은 허건 씨의 작에 비하여 점재(點在)한 가옥의 묘법이 의당(宜當) 하며 색○(色○)의 ○조(○調)를 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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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창 씨 <하일(夏日)>은 시대와 주의(主義)를 압도하는 교묘한 작품 기교도 여기까지 이른 사람은 과연 드물지나 않을까 한다. 구도의 처리 사실 의 지경 더욱 작자의 근로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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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응노 씨 <동원춘사(東園春事)>는 안온하였던 고향(남화)를 버리고 새로운 모색의 길을 떠난 하나의 이민 나는 이렇게 생각하여 보았다. 바야흐로 전향기에 섰으니 절충의 파종은 피할 수 없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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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현 씨 <춘일(春日)>은 화폭이 적은 탓으로 머리에 오는 것이 약하니 앞날의 대작을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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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화 씨 <원유(原遊)>는 ○욱(○郁)한 결구(結構)인데도 불구하고 억세인 느낌을 갖게 하니 세련되지 못한 까닭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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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림 씨 <전가(田家)>를 보고서 나는 나 자신에게 이런 것을 말하였다. 정로(正路)는 때로 형극의 길이나 그렇다고 하여서 방도를 찾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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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중현 씨 <웅시(雄視)> 장내에서 오직 한 점의 익모(翊毛)를 전람회 공 기를 과히 호흡하여서 뇌동성(雷同性)을 가지게 된 수많은 화가들에게 시사가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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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찬 씨 <여아(女兒)>는 화가로서의 청명(廳明)이 부족하지나 않을까 가 령 치마주름의 산만한 것과 하나하나의 선조(線條)에 의혹이 가득찼으니 이것을 버리어 주었으면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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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구 씨 <춘경(春耕)>은 앞으로 다작을 바라며 피차에 같이 생각할 것은 ‘예술가는 자기의 결점을 살리라는’말을 다시 한번 뒤집어 생각할 바 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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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녀 씨 <산촌수성(山村水聲)>은 출진 남화 중에서 뛰어나 일품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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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호 씨 <향로>를 보고서 나는 이것을 느낀다. 일년 중 다만 몇날이래도 좋으니 잡용(雜用)의 세사(細事)에서 초탈하여 지낼 수 없는가. 씨를 잘 아는 나로서는 연속되는 가우(家愚) 속에서 촌시를 엿보아 집필하던 씨의 책임감과 늘 낼 만한 이만한 것을 단시일에 완성하여 넣는 씨의 숙련이 부러워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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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일 씨 <산양도(山羊圖)>는 전람회 전체를 통하여서 무감사급의 무책임한 출품 중에서 빛나는 존재이라고 생각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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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범 씨 <모운(暮韻))은 솔직히 씨의 진경(進境)을 말하지 않는다. 씨의 화격은 여기에 그치고 말 것인가는 씨의 주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화가는 창조만이 일이 아니고 때로는 파괴의 일도 하여보는 것이니 씨로서는 기성의 자기 체계를 부시어 보는 모험을 하여 주었으면 한다. 모험으로부터 오는 고난이야말로 화가로서의 생애를 두고 미각(味覺)할 오직 하나의 ○감일 것이다. 하므로 <모운> 역시 장대한 구도인데 불구하고 감수성이 그리 둔하지 않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감미를 주는 바이므로 씨를 위하여서 자진하여서 자기 체계를 파괴하여 달라는 바를 말하는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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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희 씨 <촌경>도 이상범 씨에게 보낸 충언을 그대로 올리고저 하나 여기에는 한 장의 부연이 또한 필요하니 이상범 씨는 씨대로 자기 독특한 화풍을 아로새겨 내었거니와 이상 제씨는 이상범 씨의 풍도를 그대로 전수하여서 안일을 읊조리고 있다는 점이 더욱 생각거리이다. 지금 이상의 제작을 가지고 그 화가의 성명을 바꾸어 놓는다 치더라도 누가 그 우열을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씨 등은 현재에 있어서 이상범 씨의 부록적 활동을 하고 있다고 극언을 할 수 있는 만치 반성의 뒷길이 열리어 있으며 우리들은 화가가 되려 하며 결코 화사가 되고 싶지 않음으로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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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근 씨 <등화가친(燈火可親)>은 우선 형태의 연구가 미개척 그대로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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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우성 씨 <연춘(軟春)>은 유창에 그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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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호 씨 <신선(新鮮)>은 씨의 노력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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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달석 씨 <가두 예원(街頭藝園)>은 외광파 초기의 점묘법으로 정리하였으나 강건한 소묘의 힘이 없어서 공허를 갖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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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승 씨 <습작> <지생(芝生)> <나부>의 거대한 삼폭은 장내를 위압하고 있다. 나로서 씨의 화업을 대할 때마다 선전 초기에 있어서의 고 강신호 형과 다음으로 고 김종태 형으로 추억하나니 강, 김 양씨가 타계한 후 일 말의 애수를 가졌던 우리네에게 김인승 씨의 출현은 과연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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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의 냉○(冷○)을 거쳐서 <습작>의 온정은 그대로 꿈을 주고 있다. 더구나 <습작>을 보면 화가 자신이 얼마나 자연 관조에 친절한가 읽어지나니 의복의 하나하나가 인생의 부드러움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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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생>에는 구구한 세평이 있으나 씨를 잘 알고 있는 나로서 말하라고 한다면 지금으로부터 십오륙 년 전에 저작권 문제로 하여서 세계의 대 표자가 이태리 수도에 회합하였을 때 미술에 있어서의‘포즈’ 문제가 문제 되어서 한동안 신문지를 시끄럽게 한 일이 있었던 것이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국 하등의 새로운 결정을 보지 못하고 그 후 지금껏 여기에 대하여 새로운 토의를 기획하지 않고 있으니 그 까닭은 만일 소설이나 시가에 있어서는 번역 내지 번안이 곧 원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일지나 회화 내지 조각에서는 이것의 사정이 다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니 동일한 초목,동일한 과실, 동일한 장소를 회화화한다고 하여서 선(先) 작자의 우선 권(?)을 침해하였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며(이 점만은 문학에서도 동일하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구도,색채가 총체로 동일하지 않은 바에야 부분적으로 유사한 것을 문제로 등장시키는 것은 다시 한번 문제 삼는 자기를 회고할 바 있지 않은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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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우연의 일치’ 를 볼 수도 있고 또는 의식적 모방도 할 수 있으니 그 모방이 모방에 그치지 않고 얼마 만한 정도로 소화하여서 자기의 물건을 만들어서 있는가 하는 데에 문제의 요령은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된다. 하므로 나는 씨를 대신하여 수많은 종교화와 동양 전래의 남화에 그 예를 일일이 지적하여서 문제를 제기한 인물들에게 보내고 싶으며 더욱 목적에 있는 이 전람회 양화실에서도 분명한 표본을 두어 개 골라서 계몽을 시키어 보고 싶은 생각까지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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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수룡 씨 <풍경>은 유창한 가작이나 부드럽기만 하여 골격이 가는 것이 앞으로 불건강의 전징(前徵)인 듯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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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영제 씨 <소녀습작>은 분석적 연구가 필요할 듯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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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근씨 <농가의 여>는 백흑조의 ○음(○音)이 적절하나 이와 같은 습작은 안이(安易)한 듯하면서 곤란할 것이라 생각되니 작가의 대성을 위하여 변화를 진정한 의미에서 더욱 크게 보아주었으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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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룡 씨 <풍경>은 다같이 무난한 작품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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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연해 씨 <여인상> <풍경> 중에서 나는 <풍경>을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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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노 씨 <정물>은 통틀어 이품을 합하여 가지고 다시 이분한다면 절장보단(折長補短)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하여보았다. 장경환 씨의 <정물>은 특이한 필선에 노심한 까닭인지 질감 표현에 용의가 부족하였고 서태노 씨의 <정물>은 광감(光感)의 무질서로‘토-ㄴ’이 쪼각쪼각 흩어져 있어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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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홍 씨 <기-타> 수채화로서 부채(賦彩)와 운필이 자재하여 포국(布局)의 파종을 가리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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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동씨 <인물>은 사의가 분위기 표백에 집중되어 보이나 그렇다고 하여서 인물(아동)과 상과 교자의 실감 포착을 등한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여 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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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승각 씨 <청사(廳舍)>는 판재에 속취가 있는 것이 반갑지 않으며 인물의 안면의 표현 수법 동체의 표현이 화협되지 못한 것은 소묘력의 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며 축음기 배경의 색조는 혼탁하여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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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성 씨 <무(舞)>를 보고 씨의 기품과 정열을 아는 나로서는 창의의 일단을 말하는 <무>에서 불일간 완성되리라는 대작을 꼭 미각(味覺)하고 싶은 의욕을 가지게 하며 또 동시에 씨의 패기를 호흡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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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원 씨 <파밭>은 강조된 색채와 흥분된 야취를 나는 무척 사랑하여 보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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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지 씨 <해녀>는 다시 가감을 허락하지 않을 만치 통합된 가작이라고 생각되어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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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건 씨 <풍경>은 일견 무난하나 기백이 없어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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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석 씨 <정오의 우사(牛舍)>를 보고서 이개월 전 동경미술학생전람회에서 처음으로씨의 작화를 대할 때의 나를 곧 회고하여 보았다. 씨의 독특한 색감 신경에 많은 시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에서는 그러한 깊은 인상을 가져지지 못한다. 그것은 인물과 우(牛)와의 필치의 무정리에서 오는 것일까 또는 닭의 지나친‘리얼’한 탓일까 씨의 전용색(專用色)에 씨 자신이 도리어 끌려들어간 탓일까 하다면 무저항의 미를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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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홍 씨 <희의 친구> <기-타를 가진 남자>는 고심의 자취는 보이나 선에 자신이 없고 제복색의 단조와 <기-타를 가진 남자>의 창외 풍경은 작자와 더불어 다시 한번 생각하여 볼 점이라고 말하고 싶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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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진 씨 <추억>은 작화상 긴요한 점 그러나 초보적인 점을 알리고 있으니 그것은 청황적백의 색채를 바르기 전에 솔직한 자연 경관의 태도를 요청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조선 의복의 ‘동정’ ‘깃’ 이 좌우 어느 편으로 여미는 것일까 하는 것부터라도(물론 중대한 일은 아니나) 친절하게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이다. ‘마티스는 미소를 하면서 말하되 일개의 구체를 제대로 그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제법 화가라고 자처할 수 있다. 색채 같은 것 은 그 다음으로 오는 것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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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조 씨 <어선>은 그림을 만드는 데 매우 교묘한 작가는 유쾌하게 색채를 배열하였다고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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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삼 씨 <농촌 학동>은 일종의 별다른 의도는 인정하나 거기서부터 정말 승부가 있어질 텐데 왜 붓을 놓았는지 불가해의 하나이며 왕년 씨의 조각을 보고서도 이것을 느끼었던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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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형구 씨 <수변><전복>은 그 노력을 먼저 장하다고 생각되며 전 화면을 평소의 노력으로 묘파한 데 씨의 정직한 것이 표백되었다. 그러나 씨의 과 도한 정직은 <전복>에 와서 관람하기에 괴로운 부분을 만들어 주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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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갑향 씨 <휴식>은 씨의 진경을 보여준다. 현재 선전 양화부에 오직 하나인 규수화가이므로 씨의 전정(前程)에는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예년에 비하여서 <휴식>은 회화 대상을 씨가 구사하게 되었다는 것이 비로소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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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현 씨 <춘완(春緩)> <왕십리 풍경>은 만일 백호 이상의 대폭으로 그대로 옮기어 놓는다면 그 중후한 체감이 더욱 뚜렷하였으리라고 나는 생각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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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고나시’ 의 문제이니 씨의 금번 작품에서는 ‘고나시’가 부족하지나 않을까 한 바이며 이 정도로 한다면 화폭이 컸더라면 하였다. 이것은 나의 무지 또는 착각일지 모르나 색층과 색층의 중간이 너무 격변한 데 원인이 복재하여 있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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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순 씨 <교외 스케치>는 씨가 새로운 경지를 찾아낸 것이 나로서는 유쾌한 일의 하나이나 왕년의 씨의 화업에서 보던 목가를 들을 수 없는 것이 일편 적막하다. 너무나 미묘한 것이 위기를 부르지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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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중복하여 말하고 싶은 것은 선배 제씨의 출품 문제이다. 선배 한 사람의 동향 여하로 진실한 많은 신인을 발견하게 된다. 가령 이당 김은호 씨 등의 ○○로 말미암아 씨의 고제 김기창 씨 등의 천재적 화작(畵作)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우리가 가져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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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므로 나는 이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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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술전람회에 가기 전에 덕수궁내 이왕가 미술관을 먼저 보았다. 이왕가 미술관이 신축되고 오늘만이 문외불출의 허다한 비품(秘品)을 관람시 킨다 하므로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다리를 끌고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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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 조선의 아름다운 공예를 대할 때마다 무척 옛날이 그리웁다. 각장화장상(角張花粧箱)(이층 칠기부) 앞에서 곱게 단장하던 ‘작은아씨’ 를 생각해낼 수도 있고 ‘상감청자매죽조문서판’ 을 가지고서 왕희지의 필법을 공부하던 부지런한 도련님을 그려볼 수도 있고 ‘상감○○수금모란지과형병’ 을 손쉽게 어루만지던 마님들의 속○(俗○)하였던 생활이 무척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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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나는 것을 잊어버리고서 과거 조선의 방방곡곡을 헤매니 그만큼 한탄적이며 감정적으로 기울어진다. 부질없는 문학적 상상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 자리를 떠나서 선전 회장에 들어 서니 이것이 더욱 느껴진다. 이것을 어찌하랴. 선전 공예부에 배열된 칠십 여 점의 공예품이 근대 조선의 어떤 것을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어떤 것은 치밀한 것도 있기도 하며 어떤 것은 깨끗한 것도 있기는 하나 그러라고 하여서 여기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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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 공예품의 무○한 맛이라든지 이조시대의 공예품이 가지고 있는 고뇌의 정은 지금의 우리에게 무한한 매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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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오직 바랄 것은 선전 회장에 가득 찬 이 모든 공예품이 앞날의 세계에서 참된 의미를 찾아낼 사람이 생겨지라는 것이니 그것은 지금의 우리로서 도시 알아지지 못하는 연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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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승욱 씨 <풍윤(豊潤)>은 골반 이하에 난점이 많고 제작 시일의 관계인지는 알 바 없으나 수족의 무경(無經)론으로 총체의 양감이 줄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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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상환 씨 <학도>는 여기서부터 무엇을 할까 하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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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일 씨 <흉상>은 안면과 경부(經部)의 연속에 파정이라느니보다 전연 무리수가 눈에 띄어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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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갑수 씨 <자작상>은 착색의 혼탁으로 감상에 곤란한 바 많으나 대체로 무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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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성각 씨 <젊은 여자>는 의복의 질감이 박약(薄弱)하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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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조군의 머리>는 눈썹[眉(미)]의 연구를 권하고 싶으나 두상으로서는 가장 박진력이 있어 보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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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승욱 씨 <한일(閑日)>은 조선에서 처음 구경하는 대리석 조각이니만치 미완성품이나마 큰 기대를 가져진다. 명년 학교를 마치고 이 땅에서 만날 것을 나는 반가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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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익달 씨 은 ○○과 견부(肩部)와 모발에 재고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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