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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비평을 쓰기 전에 한마디 말을 협회(*조선서화협회) 회원 제씨에게 드리고자 한다. 결코 예방선을 쳐 놓는 것은 아니다마는 미의 해석 내지 단안(斷案)에 상당한 비평을 보면 알 것이다. 평자의 비평에 너무나 청근(靑筋)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조선서 회화의 평은 더구나 쓰기에괴롭다. 그 이유는 화단에 유령 즉 자칭 노대가와 및 그들의 사제 관계로서 애매한 분파가 사산(四散) 분립하여 있기 때문이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무모한 독단과 가증한 전제적 견해는 ○하겠다. 그만하고 먼저 서양화부터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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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동 씨 이 분은 단지 한 점밖에 출품하지 않았다. 그만큼 나로서는 기뻐하였다. 대체로 동씨는 화가로서 장래가 대단히 위험한 분이다. 나는 년 전에 선전 일회에 출품한 동씨의 작품 (제목은 잊었다)을 보고서 환멸을 느낀 일이 있다. 서양화의 동양화화 (좋은 의미로) 이것이 동씨의 주장인 듯하다마는 대체로는 실패를 거듭할 뿐이다 이번 출품한 <만장봉의 추>를 가지고 보더라도 알 것이니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유채의 진열에 지나지 않는가. 그리고 인상적 화풍과 문인화적 필치의 불행한 결혼을 시킬 따름이다. 범화(凡化)된 구도와 멸렬한 수법은 보기에도 싫증이 나버린다. 뒤에 보이는 산과 앞에 있는 단애의 거리가 너무나 심하다. 바꾸어 말하면 양자의 수법과 취미에 거리가 심하다는 말이다. 결국 이 작품은 성공하지 못할 것만 큼 우작이겠다마는 동씨의 생각에는 그렇지 않을 터이니 참말로 씨의 화가로서의 장래는 위험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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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표 씨 이분은 10여 점을 출품하였다. 그 중에서 무난한 작품은 외 3, 4점일 것이다. 윤택한 자연을 친절한 필치로 반역(反譯)하였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마는 여하간 자연에 집착한다는 것만도 경의를 표하고 남겠다. 에 오른편 포플러와 천공(天空)의 관계 및 변화가 애매 단조하게 되었고 <흑석리>는 화면 전체에 여유가 없어 보이며 더구나 구름과 전면에 있는 풀[草]에 배열이 극히 조잡하게 되었다. <녹음>은 소품이지만 귀여운 작품이다. 그렇지만 가옥과 전부(前部) 초원의 필촉의 상반(相反)으로 화면 전부(全部)의 효과를 줄인 것은 가석(可惜)한 일이다. 이외에 <안감천 부근> 스케치 2호와 6호는 동씨의 달필을 반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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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철 씨 <한강에서>는 괴로운 취미에 붙잡히어서 뒤범벅이 되어 버리고 황당한 필촉 때문에 너무나 가까워 [근(近)]보인다. <○○>는 착상에 신선 미는 없지 않으나 전체로 보아 미완성품이겠고 <자화상>은 실내에서 가작에 좌○(左○)할 만하다. 대체로 동씨는 기교의 말초(末稍)에 사로잡히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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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섭 씨 <자화상>은 아미(雅味)가 있는 약간 반가운 맛이 있으나 두발의 빈약한 외평 모사로 실패된 작품이요(장석표씨 <자화상>참조), <풍경스 케치>는 가옥의 후부와 천공의 경니(境泥)에 너무나 무관심하였으나 전부의 얼마간 순화된 색채와 송간(松幹)의 충실한 묘사로 장내(場內) ○일(○一)인 율동이 강한 작품의 하나라고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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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씨 <계류(溪流)>는 내명(內明)과 여율(餘律)이 있는 내가 제일 좋아한 작품이다. 작자의 태도가 얼마나 침착 온아한지를 그림 속에서 볼 것이다. <정물>은 색채가 풍부치 못하나마(조선 사람의 그림은 통틀어 색채가 희약(稀弱)하다) 추구와 분석에 무던히 힘쓴 것은 고맙게 사주지만 실패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이외에 <원야(原野)의 설(雪) <동대문 외에서>는 재미있게 보았다. 동씨는 좋은 눈을 가진 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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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준 씨 <정물> <풍경> 의 두 개는 한마디에 말하기 여렵다. 기괴한 점으로 외형(모양화(模樣化)된 양식)에만 (더구나 이 분은 유희에 가깝다) 열중하면 아무 의의가 없어져 버린다. 공상적 (호의(好意)) 구체(構體)와 정신적 내용의 폭발이 아닐 것 같으면 일종의 유희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래 가지고 독특한 유의(流儀)(개성)를 가지고서 대상물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과 형식미를 주관화시켜야 된다. 동씨의 작품은 아무러한 정신적 활동이 없고 다만 저희와 도피와 외형의 불구한 난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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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로 붓을 옮겨놓자. 이도영 씨 이 분을 국보라고 부르는 사람까지 있다. 심전 이후 잔루(殘壘)를 삭히고 있는 원로다. 이 연유로 국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당송(康宋 )의 송류(宋流)를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데는 감심하지만 사회성의 결여된 희묵(戱墨)에 찬동하는 사람이 자꾸만 줄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동씨를 위하여 통한하는 바이다. 동씨의 작품은 문인화로서는 운필이라는 착상의 평범한 것과 운필의 인습화와 더구나 구도가 조잔(個殘)하기 때문에 (문인화파 화가에 통유병(通有病)이지만) 동씨의 장래를 주목할 필요가 별로 없다고 안다. 이번 출품한 폭 대작이야 말로 호례(好例)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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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원 씨 <목단○ 석류>는 작품은 아무러한 감흥 주지 않는 범화(凡畵)에 지나지 않는다. 반숙(半熟)한 사실적 수법의 차용에는 외면을 아니할 수 없다. 2편 대작을 출품한 데는 감복하여 주지만 저회(低個) 애매(曖味) 에는 조소의 전반분(前半分)을 보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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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복 씨 이 분은 내가 제일 장래를 촉망하는 화가이다. 따라서 그만큼 기대를 하여왔었다마는 이번 작품을 보고서는 낙망을 아니 할 수 없게 되었다. <금강전경> <우후>를 가지고 보더라도 직수입한 소화되지 않은 기교를 고집, 배열한 데 지나지 않는다. 동씨의 작품은 대체로 이러한 비판을 받게 된다 (예는 들지 않겠다) 대가급의 침체된 미온적 화풍을 지금부터 흔구 (欣求)할 필요는 추호도 없을 것이다. 불건전한 직수입적 표현 수법을 버리고 개성의 창조적 활동 집요(執拗) 선의(善意)한 의력(意力)으로 선천적인 풍속 토지(風俗土地) 분위기가 다른 향토미 있는 화작(畵作) 천분을 발휘하기만 바란다. <비파> 외 2,3점은 불손한 말이지만 희화로 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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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범 씨 이분의 출품한 작품 중에 <만추>가 가장 보기 좋았다. 농미(濃味)가 있는 작품이나 좀 더 자연에 부딪치지 못한 게 유감일 것이다. 결국 이 분은 유전적 기교에다 평탄한 정서를 되풀이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는 작자의 태도와 주장을 명시하여 달라고 주문이나 하여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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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씨 <귀범(歸帆)><모설(暮雪)><무기(舞技)> 어떤 것을 보든지 화폭 전면에 지○(支○) 한○○이 너무나 크게 보인다. 귀범 의 우측 일부에는 발칙한 재기를 보이지만 후산(後山)의 윤곽과 범주(帆舟)에 무모한 가필과 구상의 결함으로 실패하였고 <모설><무기>는 새로운 시험이나마 색채에 불행한 상호결합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동씨의 태도에는 경의를 표한다. 조그마한 조선에서 공상적 야모(野幕)한 추구성을 보이고 고식(始息) 된 전통에서 벗어나려 하는 데는 머리를 숙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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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석씨 <기한(飢寒)에 동정> 이것은 할 수 없는 최우작(最愚作)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대체로 제목부터 분개할 만하다. 그러나 단지 일 점 밖에 출품하지 아니하였으니 두어 곳 결점이나 지적하여 보자. 전체로 겨울의 기분이 나오지 아니하였고 눈송이를 그린 것은 이 그림에 있어서는 무의미한 효과 없는 설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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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금 구(求)하여 볼 수 없이 망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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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호 씨 <금어(金漁)> 일 점밖에 없다. 그런데 이분의 그림은 미세한 운필과 공리적 묘사에 신경의 전부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 때문에 화면 전체에 흐르는 무드가 반○(半○)이나 된다. <금어>에도 금어를 가혹한 피상묘사로 말미암아 죽여버리었고 파문은 안가(安價)한 개념 서술로 말미암아 효과가 희소하게 되어버렸다. 다만 동씨의 장래는 우리 화단에서 주목할 만한 화가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언하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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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현 씨 <소사귀승(蕭寺歸僧)> <송풍환절(松風還節)>은 화제부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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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영 씨의 <모옥○서(茅屋○書)>와 호일대(好一對)이다. 회고적 내지 전통적 질식되는 미의 영역에서 모반을 하더라도 과히 중죄는 아닐 것 같다. 동씨에게는 요만한 충고는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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