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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수집(屑穗集) ◈
◇ 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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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2. ~7.
계용묵
1
설수집(屑穗集)
 
2
 
 
3
겨울 밤에 국수 추렴이란 참 그럴듯했다. 게다가 양념이 닭고기요, 국물이 동치미일 때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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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에도 마을 앞 주막에서 국수를 누르게 되자부터 욱이네 사랑에서 일을 하던 젊은 축들도 이 국수에다 구미를 또 붙이게 되었다. 자정이 가까워 배가 출출하게 되면 국수에 구미가 버쩍 동해서 도시일이 손에 당기지 않았다. 참다참다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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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또 한 그릇씩 먹구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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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걸핏 말만 꺼내도 이런 제의가 나오기를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이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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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라, 제길 먹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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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일하던 손을 일제히 떼었다. 그리고는 우르르 주막으로 밀려 나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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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마니 닢이나 치고, 새끼 발이나 꼬는 것을 가지고 밤마다 국수 추렴이란 따지고 보면 곤란한 일이었다. 외상이라고는 하지만 섣달 그믐까지는 세상 없어도 깡그리 갚아야 하는 것, 힘에 넘치는 부담인 것이다. 웃을 노릇이 아니었다. 그냥 계속하잘 수가 없어서 다시 건명태개와 오징어 마리로 환원을 하자는 축도 있었으나, 국수에 맛을 붙인 그들의 구미엔 그까짓 오징어 마리나 명태개로서는 인젠 구미의 대상으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국수를, 하고 국수 먹을 방도만 강구해 오던 그들은 결국 이러한 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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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 동치미는 누구의 집에도 있는 것, 국수는 사리로만 사다가 손수 말아 먹는 방법, 그것은 값으로 따져 보아도 오징어나 명태 마리의 비용에 비해 별로 대차도 없었던 것이다. 진작 이런 생각에 옹색하였음을 못내 한탄하면서 그날 밤부터 그들은 그 안을 실행하기로 하였다. 국수는 사리로만 주막에서 사다가 욱이네 집에서 말아 먹자, 밤마다 한 사람씩 돌림차례로 국수 여덟 사리에 김치 한 통, 닭 한 마리씩을 가져오면 된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문제거리인 것이 욱이었다. 욱이는 집 주인이니 욱이 몫은 빼어야 옳으냐 빼지 않아야 옳으냐 하는 데 있을 뿐이었다. 욱이 어머니는 밤마다 국수를 마는 시중을 들어야 할 것이니까 공몫이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욱이의 경우는 그와는 달랐다.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같은 사랑방의 일꾼이요, 또 같은 친구들의 노름꾼이다. 도의로 해도 빠져서는 안 될 것인데 욱이 어머니는 여기에 반대였다. 욱이는 일터인 사랑방을 제공한 주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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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랑방을 제공한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욱이 어머니가 사랑방을 자기네들에게 일터로 제공하게 된 것은 무슨 자기네들을 위하여서라기보다는 제 아들인 욱이를 위해서였음은 잘 아는 사실이다. 욱이는 일을 싫어했다. 손바닥에서 번갯불이 일도록 일을 해도 시원치 않을 가정 형편인데 이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괜히 남의 일터에 가 앉아서 담배만 피우며 시시덕거리다가 밤이면 자정을 훨씬 넘어서야 돌아오곤 했다. 이런 욱이의 손에다 일을 붙잡혀 주기 위하여 마을돌이를 하지 못하게 하는 방편의 하나로 사랑방을 수리해 놓고 욱이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마을의 여덟 사람을 변동 청탁이나 하다시피해서 모아 왔던 것이다. 생각하면 자기네들이 저희네 사랑으로 와서 욱이와 같이 일하는 것을 도리어 감사해야 할는지 모른다. 또 사랑방에 밤마다 불을 넣는다고는 해도 그것은 자기네들의 일감에서 나오는 짚검부러기로도 충분함을 안다. 아니, 어떤 때에는 사랑방에는 넣고도 남아서 소죽을 끓이는 안방의 시량에까지 도움이 됨을 안다. 자기네들이 사랑방으로 밤마다 모인다고 해도 욱이네에게는 결코 손해 되는 일이 없다. 욱이 자신도 그것은 잘 안다. 그러나 모든 권한이 어머니의 손에 달린 욱이다. 욱이의 마음대로는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욱이의 사정을 그들도 또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욱이 어머니의 소행이 불쾌한 게 문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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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욱이 어머니의 소행이 불쾌함을 참기만 한다면 그까짓 욱이 한 사람으로 해서 약간 부담이 더 돌아가게 된다는 것으로 실행을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들은 결국 그 어머니의 소행이 미운 대로 욱이의 몫은 빼기로 하고 즉좌에서 여덟 사람이 턱을 낼 돌림 순서의 제비를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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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성이가 첫 차례였다. 박수로 환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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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국수턱은 순차로 돌아갔다. 여드레가 지나니 전원이 한 차례씩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또 재성이 차례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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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재성이는 자정이 가까워 와도 여느 때와 달리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잠자코 새끼만 꼬고 있었다. 사실 재성으로서 오늘밤의 턱은 사정이 딱했다. 외상으로 가져오것다, 국수 열 사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금년에는 동치미도 넉넉히 담았다. 문제는 닭에 있었던 것이다. 예년만 하더라도 그렇지는 않았는데 금년에는 병아리 적에 족제비가 축을 많이 낸 데다 계역을 겪고 나서 여섯 마리밖에 통 닭이 없었다. 그런 걸 전차에 한 마리 잡아오고 이제 남은 것이 수탉 한 마리에 암탉이 꼭 네 마리, 오는 봄에도 네 배는 안겨야 그 한 해의 가용 닭이나 될 형편이다. 그래서 재성이 말이라면 무어나 거역하는 일이 없던 어머니까지도 요 전날 밤 닭을 잡아 주면서 더는 축내지 말라고 당부까지 하던 것을 재성이는 똑똑히 들었던 것이다. 닭을 한 마리 어디 근처에서 사 볼까도 했으나, 외상으로 닭을 사기는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처리 방법에 재성이는 밑이 무거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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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은 주위의 독촉을 받고야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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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는 사리로 미리 낮에 부탁을 해 뒀던 것이다. 시간도 지체 없이 곧 날라왔다. 그리고 동치미 한 통을 날라오고는 시간이 좀 뜸해서야 암탉 한마리를 안고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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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날은 꽤 추운 모양이다. 재성이 코끝에는 콧물이 다 맺혀서 대룽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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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를 찢어서, 썬 동치미와 뒤버무려 가지고 짓이긴 마늘과 빨간 고춧가루를 끼얹은 윗덮기에, 기름이 동동 뜨는 닭 국물에다 동치미 국물을 쥐 탄 싱싱한 국이 양은 대접의 가장자리가 늠실거리게 담겨서 저마다의 앞에 한 그릇씩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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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외양간에서 새김질을 하던 암소의 하품 소리가 꺼지게 들리는가 하면, 울파주 엮음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을 헤여 나느라고 또 쉿대잎이 떨리며 새삼 소리를 낸다. 방안에서는 국수사리를 국물과 함께 입안이 붕긋하게 베어물고 당기며 마시는 소리, 정취도 정취려니와 맛도 맛이었다. 사실 산촌의 농민들은 이러한 밤 이러한 정취 속에 국수와 같이 살이 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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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이 어머니는 국수 그릇에보다 뼈다귀 바가지로 먼저 손이 갔다. 살코기가 붙은 뼈다귀를 그저 버리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이것저것 뼈다귀를 골라서는 이빨로 깎고 혀로 핥고. 양쪽 쭉지까지 다 깎고 핥고 난 욱이 어머니는 닭의 다리를 또 더듬어 들었다. 그리고 입가로 가져 가다가 문득 눈이 둥그레진다. 그 닭의 다리에는 가운데 장발가락이 한 가락 반이나 나가 짤리어서 뭉틀한 것이 자기네 씨암탉의 발가락과 흡사히도 같았던 때문이다. 한참이나 우두커니 들여다보던 욱이 어머니는 관솔가치에 성냥을 켜 대더니 부르르 바깥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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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성이 쌔끼 도죽놈으 쌔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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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들어온 욱이 어머니는 들어서기가 바쁘게 재성이를 향하여 욕을 들입다 퍼부었다. 그것은 병아리 적에 쥐한테 물려서 발가락이 잘라졌던 자기네 씨암탉에 틀림이 없었다. 아무리 찾아 보아야 그 닭은 홰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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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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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니, 이 도죽놈으 쌔끼 너 우리 닭 잡아 들여온 게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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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즈마니, 그럼 경위가 됐단 말이오? 욱이두 닭이나 한 마리 내야 경위가 옳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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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야 이 도죽놈의 쌔끼, 악지가리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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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즈마니, 거 무슨 말을 그렇게 하우, 도죽놈이라니오! 아즈마니 손으루 닭의 멱을 따서 아즈만네 솥에다 삶아서 아, 아즈마니 손으로 손수 날라다 주시군 날 도죽놈이래요”
 
29
딴은 그렇다. 욱이 어머니는 창졸간 더 할 말을 몰랐다. 한참이나 머뭇거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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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욱이 쌔끼 넌 귀때기가 썩어졌네? 족제비가 좀 와서 어르다니기만 해두 닭이 홰에서 붓는 법인데 그걸 잡아낼 땐 끽소리라두 질렀을 텐데 -.”
 
31
“아즈마니 건 모르는 소리웨다. 손바닥을 쩍 벌려가지구 허리춤으로 쑤서 넣어 뜻뜻한 배때기에다 한참 대고 있다가 그 뜻뜻한 손을 닭의 면두에다 가져다 대면 얼었던 면두가 개완해서 그저 꾸둑꾸둑 하고 도리어 목을 쓰윽 내뺀답니다. 그럴 적에 모가지를 덤석 잡아당기어서 가슴에다 끌어 안으면 끽소릴 한마디 어디 질러 보기나 하나요, 아즈마니두 원 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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