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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수집(屑穗集) ◈
◇ 맨발 ◇
카탈로그   목차 (총 : 9권)     이전 9권 ▶마지막
1961. 2. ~7.
계용묵
1
설수집(屑穗集)
 
2
맨발
 
 
3
하루는 다방 동백에 앉아 있노라니까, 왕군이 불쑥 들어오더니 아무 인사도 없이 나의 맞은짝 빈 의자에 와서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소가 하품을 하듯이 허어엄 하고 이상한 한숨을 길게 내쉰다.
 
4
하도 태도가 이상해서 나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없이 한참이나 바라만 보고 있다가
 
5
“왕군, 왜 무슨 일인가?”
 
6
하고 물었다.
 
7
그러나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그냥 그대로 씨익씩 하고 한숨만 쉬고 앉았더니
 
8
“선생님 댁 주소가 어디지요?”
 
9
하면서 고개를 반쯤 들고 힐끗 곁눈으로 한 번 나를 흘겨본다. 하는 태도가 필시 나에게 무슨 불쾌한 감정이 있는 모양 같았다.
 
10
그래 그건 왜 새삼스럽게 묻느냐고 하니까
 
11
“찾아뵐 일이 있습니다.”
 
12
딱 잘라서 하는 대답이 심히 불순한 것 같은 어세였다.
 
13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나 나에게 불쾌한 감정을 품은 그를 어쩐지 나는 딴 자리에서 만나기는 싫었다.
 
14
“나를 만나자면 아마 내 집에서보다는 이 다방에서 만나는 것이 더 쉬울 겁니다. 밤에 잘 때밖에 집에 붙어 있지 않는 것을 군도 미상불 알 건데. 위선 콧구멍만한 방이 누추해서 친구들한테 뵈기두 싫구, 또 불이라곤 내가 든 뒤로 한 번도 넣어 본 적이 없이 차기가 이만저만한 냉돌이 아니니, 이런 방에다 누굴 오라고 하겠소. 실은 내 자신도 방에는 들어앉았을 수가 없어서 밤낮 이 다방 신세만 지고 있는 형편인데.”
 
15
하고 가정 방문을 은근히 거절하였다.
 
16
이것은 그의 심상치 않은 불순한 태도에 대한 방비이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또 사실이기도 했다. 피난 첫 해의 나의 숙소는 실은 그랬고, 또 생활도 사실 그랬다. 그러한 숙소요, 그러한 생활인 줄은 이 친구도 미상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친구에게 농담 아닌 나의 이러한 대답이 물론 상대방에게 불쾌한 감정을 자아 주었으리란 것은 미리 나도 짐작하고 한 대답이다.
 
17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대답을 하면서도 앞으로의 나의 태도를 취하기 위하여 그의 태도를 예리하게 살피었다. 그러나 항상 술에 취해 있는 것 같은 그의 표정에서는 용이하게 그 무슨 별다른 표정을 지찰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흥분이 되면 먼저 그 눈의 충혈에서 그것을 추찰할 수가 있을 것이나, 이 친구는 본시가 흰자위에 붉은 줄이 서리어 있는 것이어서 그것으로는 추찰이 가지 않았다. 그래 언사에서나 그의 태도를 찾아보려고 거듭 그에게 방문 거절의 뜻을 강조해 보였다. 그랬더니
 
18
“아닙니다. 꼭 선생님을 댁으로 찾아 가서 조용히 만나뵈어야 할 일입니다. 여하간 선생님이 댁에 계시는 시간을 그럼 제가 알아 가지고 찾아뵙기로 하겠습니다.”
 
19
하고 그도 방문에 대한 초지를 굽히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또 인사도 없이 불쑥 다방을 떴다.
 
 
20
그와 나와는 이 다방에서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 처지요, 또 만나서는 얼마든지 조용한 이야기도 해 왔다. 지금이라고 이 다방에서 조용한 이야기를 못 할 이치도 없는 것이다. 구태여 버적버적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심사, 그 심사가 어데 있는 것인지, 하도 어수선한 세상이라 나는 궁금 정도를 넘어서 은근히 불안한 생각까지 들었다.
 
21
그래 그를 보내 놓고 혼자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그와 나 사이에 무슨 이렇달 감정이어서, 또 꼭 둘이서만 마주앉아서 담판을 지어야 할 그런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22
그도 피난민이요, 나도 피난민, 사고무친한 이 남해의 절해고도에 떨어진 피난민끼리의 의분이란 참으로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들 친척이나 매일반으로 두터웠다. 그런 데다가 그와 나는 글을 좋아하는 처지에서 누구보다도 좀더 각별히 지나는 사이였다. 다만 좋아하는 그 글의 분야가 다를 뿐으로 그는 시, 나는 소설, 그래서 글을 쓰는 형식이 다를 따름이었다. 그리고 문단적인 지위에 있어서, 선후배의 관계가 있었을 뿐, 그리하여 나에게는 문단적인 지반이 있었고, 그에게는 지반이 없었다. 흔히 이런 관계에서 오해를 가지는 수가 있듯이, 혹 이 선후배 관계의 지위에 무슨 오해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될 때, 그가 나에게 시를 가끔 제시하고 비평을 요청하여 왔을 때, 그는 싫어하든 좋아하든 나는 내가 본대로 솔직히 비평을 가해 오곤 한 것이 비위에 틀려서 참다참다 폭발이 되는 감정은 아닐까도 생각을 해 보며 그날의 해를 그 다방에서 예전이나 다름없이 보내고 저녁 식사를 위하여 또 마지못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23
용하게도 그는 내가 집에 있을 만한 시간을 잘 파악했다. 저녁 식상을 필물려 놓자마자 숨을 헐떡이며 찾아왔다. 열다섯은 역력히 되었으리라, 양쪽 팔고비 부근이 여지없이 해어져서 너불거리는 거무스름한 뀌어진 쉐타에, 역시 무릎마디가 들창이 난, 무슨 빛깔인지도 알 수 없이 변색이 된 흙빛에 가깝다고 해야 할 쓰봉을 그래도 옷이라고 꿴 허름한 웬 아이 하나를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서더니 아까 낮에 다방에서와 마찬가지로 내 앞으로 바틈이 마주 앉아선 또 소처럼 긴 한숨을 씨익 내쉬면서 고개를 푹 숙인다. 그리고 한참이나 그대로 묵묵히 앉았더니,
 
24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25
하고 어덴지 이번에는 아까 다방에서와는 딴판으로 진정이 담긴 듯한 어조로 눈시울부터 적신다.
 
26
대체, 이 친구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정말 알 수가 없어서 그저 그의 태도만 나는 또 살피고 있노라니
 
27
“선생님, 저는 요 몇 시간 전까지라도 선생님을 여지없이 원망했습니다. 사람을 무시해도 분수가 없는 것 같애서 선생님과 저 사이에 맺은 우의에 있어서 일대 담판이라도 짓고 망신이라도 좀 톡톡히 주어서 제 참을 수 없는 분을 풀어 보려고 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 잘못인 것을 바루 조금 전에야 알았습니다. 선생님에게 제가 이런 불순한 생각을 품게 되었던 무지를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제가 아까 낮에 다방에서 선생님을 댁으로 찾아뵙겠다고 부득부득 고집을 부릴 때, 저의 무지한 태도에 선생님은 응당히 불쾌하셨을 것입니다. 아니, 그런 기미를 저는 역력히 추찰하면서도 고집을 피웠던 것입니다. 선생님, 용서해 주십시오.”
 
28
하고 그는 들었던 고개를 다시 또 푹 숙이며 긴 한숨을 뺀다.
 
29
처음엔 무엇을 잘못했고, 또 지금 와서는 무엇을 사과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아는 수가 없어, 나는 그저 그대로 멀거니 앉아서 그를 바라만 보며 그의 말을 듣고 있을 밖에 없었다.
 
30
“실은 제가 바루 요전 크리스마스 날 제가 근무하는 고아원에 이번 크리스마스를 기하여 구제품으로 똑똑한 옷가지가 여러 점 배급이 되었기에 선생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걸 몇 점 - 양말, 쉐타, 쓰봉, 그리구 넥타이 두 개에다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우리나라 인절미를 조금 사서 거기다 동봉을 하여 댁으로 보내 드렸던 것인데, 구제품이라 선물로는 예의가 아니었을는지 모릅니다만, 선생님도 군색한 피난살이라 형편을 잘 알고 있으므로, 그래도 제 딴에는 선생님 생각이 나서 정말 선생님을 좀 도와 드리고 싶은 생각에서 보내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 저로서는 선생님에게 제 정성을 다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삼차 만나서도 이렇다 인사말 한마디 없으신 선생님을 대할 때, 저는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자식이 사람을 어떻게 보고 구제품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내다니!”
 
31
하고 선생님이 고집하시는 자존심만으로 저의 정성은 여지없이 묵살해 버리려는 처사만 같아서 실로 저는 눈물을 흘리면서 분해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연 저의 오해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32
하고 옆에다 앉힌 아이를 힐끗 돌아다보며
 
33
“이 망할 자식이 선생님 댁으로 전해 드리라는 그 옷가지를 전해 드리지 않고 가지고 가다가 도중에서 다 팔아먹지 않았겠습니까. 인절미는 제 입에다 처넣구요,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딴 친구에게도 그런 옷가지를 이 자식에게 같이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만 그 친구 역시 만나서도 이렇다 인사말 한마디 없기에 그적에야 이상해서, 그 친구와 저와는 너나들이를 하고 지나는 처지이므로, 왜 인사도 없느냐고 따졌더니, 무슨 농담을 정색으로 하느냐고 도리어 눈이 둥그레서 반문을 해 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적에야 저는 그 옷가지가 선생님에게 보낸 것이나, 이 친구에게 보낸 것이나 그것이 모두 심부름을 시켰던 이 자식이 전해 드리지 않고 장난질을 했던 것임을 알았겠지요. 그래서 조사를 해 보았더니 글쎄 이 망할 자식이 그 옷가지를 온통 동문통시장 양복장수한테 가져다 팔아 처먹었던 것입니다. 그래 너무도 약이 올라서 이 자식을 잡아 죽일까 하다가 위선 선생님에게 사과나 시켜놓고 보려고 붙들고 왔습지요. 제가 변명을 하느니보다 이 자식의 입으로 직접 선생님에게 사과를 시키려고요.”
 
34
이 말에 비로소 그 알 수 없던 수수께끼가 풀리었다. 그러면 그렇지, 왕군이 나에게 무슨 원한을 품을 그러한 일은 숫제 없을 것이다. 듣고 보니 왕군은 나를 건방지다고 원망도 했을 법하고, 또 지금 와서는 미안함을 느낄 법도 한 일이다. 그 고아에게 대하여 약이 오를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것 같다. 한참이나 그냥 정면으로 그 아이의 낯짝을 흘기고 있던 그는
 
35
“이 자식아, 죽을 죄로 잘못했습니다 하고 이 선생님에게 사과 드려라.”
 
36
하고 그 아이의 팔목을 끌어서 내 앞으로 한 물팍걸음 가까이 앉힌다.
 
37
그러나 그 아이는 끄는 대로 끌리어서 내 앞으로 나앉을 뿐, 처음 방으로 들어와서 앉았던 그런 자세 그대로 그저 맞은편 벽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38
“이 자식아! 잘못했다고 선생님에게 사과를 드리라는데, 입이 붙었니? 이 자식!”
 
39
하고 주먹을 그의 앞으로 한 번 불쑥 내민다.
 
40
그래도 그 아이는 움직이지도 안하고 그대로 앉아서 그 무엇을 못 참는 듯이 얼굴에서 퍼런 물이 젖어들며 광대뼈 언저리를 푸들푸들 떨었다.
 
41
“야, 이 자식아! 선생님 앞에서 네 입으로 잘못했습니다 하고 사과 드리는 것을 보아야 내 면목이 설 게 아니냐? 이 병신 같은 자식아! 입이 붙었어?”
 
42
하더니 왕군도 참을 수 없는 듯이 그 아이의 뺨을 손바닥으로 소리가 요란하게 한 대 후려친다.
 
43
“왜 때리세요? 선생님!”
 
44
그 아이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45
“무엇이! 왜 때려? 모르겐 이 쌔끼!”
 
46
“아니 그럼 고아원으루 나온 구제품을 고아들에겐 안 노놔 주구…… 전 양말 한 켤레도 못 얻어 신었어요. 보세요 전 맨발이에요.”
 
47
하고 그 아이는 무릎 아래다 깔고 앉았던 맨발을 들썩 하고 드러내 보인다.
 
48
“이 쌔끼가! 이 버르장머리가!”
 
49
하고 다시 왕군이 손은 그 아이의 뺨으로 한층 더 힘차게 건너가 부딪쳤다.
 
50
“때리긴 왜 자꾸 때레요. 사실이 안 그래요 그럼”
 
 
51
- 이 이야기는 언젠가 수필 형식으로 썼던 것을 창작화하여 본 것이다.
 
 
52
〔발표지〕《현대문학》통권 74. 75. 77. 78. 79호 (1961. 2. ~7.)
53
〔수록단행본〕『신학국문학전집』제6권 (어문각.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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