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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담(女人譚) ◈
◇ 제1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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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김동인
1
여인담(女人譚) - 제1화
 
 
2
얼마 전의 신문은 우리에게 〈여인〉의 가장 기묘한 심리의 일면을 보여 주는 사실을 보도하였다.
 
3
장소는 어떤 농촌— 거기 젊은 부처가 있었다. 아내의 이름은 순이라 가정하여 둘까.
 
4
무론 시부모도 있었다. 시동생도 있었다.
 
5
그것은 남보기에도 부러운 가정이었다. 늙은이와 젊은이는 모두 화목하게 지냈다. 제 땅은 없으나마 그들은 자기네의 지은 농사로써 아무 부족함이 없이 지냈다. 동생끼리도 화목하였다—간단히 말하자면 농촌의 화목한 한 모범적 가정이라면 그뿐일 것이다. 아무 불평도 불안도 없이 지내는 집안이었다.
 
6
순이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그의 남편은 스물 다섯이었다. 부처 새의 의도 좋았다. 아니 부처의 의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7
순이는 자기의 남편이라는 사람에게 대하여 자기가 품고 있던 기괴한 애착심을 오히려 이상한 마음으로 보았다. 시집온 지 2년. 시집오기 전에는 듣도 보도 못 하던 사내에게 아직 부모들께까지 감추어 오던 자기의 젖가슴까지 내어맡기고 거기서 불유쾌를 느끼기는커녕 일종의 쾌감까지 느끼는 자기를 기이한 마음으로 보았다. 밤마다 자기를 힘있게 품어 주는 사내— 자기의 온몸을 소유할 권리를 가진 사내—이러한 꿈과 같은 사내에게 대한 첫 공포심이 사라진 다음부터는 차차 자기의 마음에 일어나는 그 사내에게 대한 애착심 때문에 순이는 때때로 스스로 얼굴까지 붉혔다.
 
8
「여보.」
 
9
처음에는 몹시도 수줍던 이런 칭호가 차차 익어 오고 그의 말소리를 듣기만 하여도 분간할 수 있을이만큼 남편에게 익은 뒤에는 그의 눈에는 이 세상에 남편 한 사람밖에는 없었다. 그의 슬하를 떠나서 알지도 못하는 사내에게 안겨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 같은 부모조차 지금은 남편의 손톱만큼도 귀하지 않았다. 남편은 그에게는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였다.
 
10
밭에서 곤하게 일하는 남편의 점심 광주리를 이고 나갈 때의 즐거움이며 늦게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 고 고대하는 쾌미는 나날이 맛보는 것이지만 나날이 새롭게 즐거웠다. 때때로 그는 생각하여 보았다.
 
11
—저게 웬 사람이람. 2년 전까지는 듣도 보도 못 하던 사람. 꿈에도 못 본 사람. 이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르던 사람. 나를 부모의 슬하에서 떼어 낸 사람. 하루 세 끼의 조밥을 먹이는 뿐으로 마음대로 나를 부려먹는 사람. 때때로 성나면 내 따귀도 때리는 사람. 발길질까지도 사양치 않는 사람. 그 사람이 곁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히 놓이고 밭에라도 나가면 적적하고 장에라도 가면 기다리고— 이렇듯 말하자면 원수 같으면서도 또한 끝없이 알뜰한 저 사람이 대체 누구람.
 
12
그리고 빙긋이 웃으면서 다시 잡았던 바느질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13
어떤 봄날 그 순이네 동네에 베장수가 왔다. 베장수도 젊은 사내였다.
 
14
베장수는 순이의 집에도 왔다. 그러나 베실만 사면 손수 짜는 순이의 집에서는 베를 사지 않았다. 베장수는 억지로 권하지도 않고 돌아서 나갔다.
 
15
우물에 불을 길러 나갔던 순이는 집 앞에서 베상수를 만났다 베장수는 순이를 보았다. 순이도 베장수를 곁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베장수와 눈이 마주친 순이는 얼른 눈을 도로 바로하였다. 그러나 순이는 베장수의 눈이 자기를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16
순이는 얼른 물을 항아리에 부은 뒤에 방안으로 뛰어들어가 거울을 보았나. 그러나 얼굴에는 흙도 먼지도 아무것도 없었다.
 
17
순이가 동이에 물을 길어 가지고 머리에 이려 할 때에 뒤에서 딱 하니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 보니 거기는 베장수가 얼굴에 웃음을 담아 가지고 서 있다.
 
18
(귀찮은 녀석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순이도 조금 웃어 보이었다. 그런 뒤에 못할 짓을 한 듯이 황망히 동이를 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19
그의 집 뒤뜰에는 세 그루의 복숭아나무에 꽃이 만개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순이는 동이의 물을 처분한 뒤에 정신나간 사람같이 뒤뜰로 나가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20
(봄날도 좋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때때로 그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21
그러나 그 생각이 그로 하여금 이렇듯 뒤뜰에 서 있게 한 바가 아니었다.
 
22
그러면 그의 마음을 지배한 것은 무엇? 그것은 순 이로도 몰랐다. 그것은 봄날의 탓일까. 그것은 젊음의 탓일까. 그것은 베장수의 탓일까. 그것은 나무에서 재재거리는 새들의 탓일까. 순이는 알 수는 없었지만 몹시도 근심스러운 듯하고도 상쾌한 듯한 생각이 그의 마음을 이리 주무르고 저리 주물렀다.
 
23
「저녁 안 짓나?」
 
24
남편이 그의 등뒤에 와서 어깨를 툭 칠 때에도 그 는 한순간 깜짝 놀랄 뿐 더 움직임이 없었다. 이전과 같으면에쿠 깜짝이야, 하면서 정도 이상의 노적과 애교와 원망을 남편의 위에다 던질 그였지만 이번에는 억지로 조금 웃음을 얼굴에 나타내일 따름이었다.
 
25
남편이 그의 얼굴을 굽어보았다.
 
26
「저녁 어서 지어야지.」
 
27
「봄날도 좋기는 하다.」
 
28
순이는 치마를 손으로 한 번 탁탁 턴 뒤에 돌아서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29
남편은 열쩍은 듯이 저편으로 가 버렸다.
 
30
「봄날도 좋기도 하다.」
 
31
몹시 근심스럽고도 상쾌한 듯한 이 한 마디의 말은 저녁을 짓는 동안 순이의 머리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때때로 저녁 짓던 손이 뜻 없이 멈추고 정신 나간 듯이 먼 산을 바라보고 하였다.
 
32
그날 저녁같이 맛없는 저녁을 순이는 아직껏 먹어 보지 못하였다. 억지로 두어 숟갈 먹어 보고는 숟갈을 내어던지고 부엌으로 나갔다.
 
33
밤이 왔다.
 
34
아랫간에서는 시부모와 시동생이 잤다. 웃간에서는 젊은 내외가 잤다. 아랫간과 웃간의 사이에는 문턱이 있을 뿐 문은 없었다.
 
35
피곤한 아이들과 늙은이는 곧 잠이 들었다. 코로 들이쉬어서 입으로 내어부는 시아버니의 코고는 소리와 벼락같이 요란한 시어머니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젊은 내외는 잠시 속삭였다. 그러나 마음이 이상히도 들뜬 순이는 이날의 속삭거림만은 왜 그런지 이전과 같이 달갑지 않았다.
 
36
「봄날은 좋기도 하다」
 
37
이 한 마디의 괴상한 말은 끝끝내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38
남편도 어느덧 팔을 아내의 가슴에 얹은 뒤에 잠이 들었다. 그러나 젊은 아내는 잠이 못 들었다.
 
39
「봄날도 괴상하기도 하다.」
 
40
밝을 때가 거의 되었다. 문득 밖에서 사람의 기척이 들렸다. 그들의 집은 길을 향하여 있는 집. 문 밖을 나서서 토방만 내려서면 길이 있다. 그 길에 사람의 기척이 들렸다.
 
41
「딱!」
 
42
혓줄 차는 소리였다.
 
43
순이는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무서운 것을 본 듯이 순이는 몸을 훔쳤다. 그리고 보호를 청하는 듯이 양팔을 남편의 목에 걸면서 꼭 남편의 가슴에 안겼다. 가슴에서는 무서운 방망이질을 하였다.
 
44
「딱! 딱!」
 
45
길에서는 채근하는 듯이 또다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순이는 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하여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그리고 얼굴을 깊이 남편의 가슴에 묻었다.
 
46
「별녀석 다 보겠네.」
 
47
그는 마음으로 이렇게 부르짖고 있었다.
 
48
남편의 팔이 길게 순이의 허리로 돌아왔다. 순이는 그 팔을 놓치면 지옥에라도 떨어질 듯이 꼭 남편의 굳센 품에 안겼다.
 
49
—여보, 밖에 누가 왔소. 나를 나오라오.
 
50
그는 연하여 속으로 남편에게 호소하였다. 깊이 잠든 남편은 천하가 태평하다는 듯이 긴 숨을 쉬고 있었다.
 
51
얼마가 지났는지 한참 뒤에 순이는 머리를 이불 밖으로 내놓았다. 한참을 기다렸으나 이제는 밖의 사람의 기척이 없어졌다.
 
52
「후—」
 
53
순이는 안심의 숨을 기다랗게 내어쉬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실망과 기대가 꽤 많이 섞여 있었음을 스스로 부인할 수가 없었다.
 
54
「인전 갔다.」
 
55
하는 안심 가운데는,
 
56
「망할 녀석 벌써 갔다?」
 
57
하는 원한이 꽤 많이 섞여 있었다.
 
58
한참 뒤에 순이는 뒷간에 갔다. 특별히 뒤가 마려운 바는 아니었지만 뜰안에라도 한번 나가 보고 싶어서 간 것이었다.
 
59
뒷간에서 돌아오는 길에 순이는 복숭아나무 아래 섰다. 꽃 틈으로 부연 달이 보였다. 별빛조차 그윽하였다. 봄은 하늘에도 무르익었다.
 
60
「봄날도 좋기도 하다.」
 
61
순이는 복사나무 아래서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하였다.
 
62
누가 꽉 순이를 껴안았다. 순간적인 환희와 경악으로써 순이가 돌아보려 할 때에 사내의 불붙는 입이 순이의 뺨을 쓸었다. 사내의 입술이 순이의 입술을 찾노라고 뺨에서 헤매었다.
 
63
「웬 녀석이야.」
 
64
순이는 작은 소리로 부르짖었다.
 
65
「사람 하나 살리오.」
 
66
사내의 뜨거운 입김이 순이의 입 근처에서 헤매었다.
 
67
「가요!」
 
68
순이는 다시 작은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러나 이번 은 사내의 응답조차 없었다. 사내의 양손은 어느덧 순이의 양뺨을 옹켜쥐었다. 사내의 입술은 마침내 찾을 곳을 찾았다. 순이는 죽여라 하고 가만 있었다.
 
69
좀 뒤 먼지를 활활 털고 방 안으로 들어온 순이는 옷을 벗어 던진 뒤에 남편의 자리로 들어가서 자기의 입을 함부로 남편의 뺨에 문질렀다. 깊이 잠들었던 남편이 조금 기지개를 할 때에 순이는 자기의 온몸을 남편에게 실었다. 그리고 힘을 다하여 남편을 포옹하였다.
 
70
이튿날은 장날이었다.
 
71
시부모는 밭에 나갔다. 남편은 장을 보러가려 하였다. 장으로 가려는 남편을 순이는 한사코 말렸다.
 
72
「몸이 편찮으니 좀 곁에 있어 줘요.」
 
73
이렇게 애걸도 하여 보았다.
 
74
「장볼 건 건너집 아주버니한테 부탁하구 하루만 쉬어요. 그만 장을 보러 이십 리를 갈까?」
 
75
이렇게 이론도 캐어 보았다.
 
76
「내 당부를 한 번만들어 주구려. 지독히도 듣기가 싫소?」
 
77
이렇게 나무람도 하여 보았다.
 
78
이상한 공포감에 위협받은 순이는 오늘은 집에 혼자 있기가 싫었다. 시동생들이 있다하나 아직 어린애들—누구든 어른이 한 사람 있어 주지 않으면 그는 (무엇이 무서운지) 무서웠다. 그 집을 찾아오는 사람 이 있을 때마다 순이는 몸을 흠칫하며 놀랐다.
 
79
아내가 한사코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장으로 갔다. 자기가 가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다고 뿌리치고서…… 남편이 장에 간 뒤에 순이는 문을 꼭 닫고 시동생들이 밖에 못 나가도록 타이른 뒤에 아랫목궤 모퉁이에 배겨 앉아서 가슴을 떨고 있었다. 어린 시동생들이 큰 소리로 농들을 할 때에도 순이는 깜짝 놀라면서 아서라고 손을 젓고 하였다. 조그만 소리라도 밖에까지 새일세라 하였다.
 
80
「너 어제 베장수 봤지?」
 
81
이런 말을 순이는 큰 시동생에게 물어보았다.
 
82
「응, 봤어.」
 
83
「사내라도 이쁘게 생겼지?」
 
84
「이쁘긴, 쥐코 같은 것.」
 
85
시동생은 이렇게 결론하여 버렸다. 순이는 그 시동생에게 눈을 흘겨보였다. 그러나 곧 자기 스스로 자기 말을 취소하여 버렸다.
 
86
「그렇지. 이쁘긴 뭣이 이뻐. 멍텅구리지. 너 너의 형님이나 어머님한테 내가 베장수가 이쁘더라던 말을 했다가는 처 내쫓으리라,」
 
87
그리고 눈이 둥그렇게 되는 시동생을 내 버리고 돌아앉아 버렸다.
 
88
또 밤이 이르렀다.
 
89
시부모와 시동생은 여전히 먼저 잠이 들었다. 그것을 기다려서 아내는 이불을 끌어당겨 남편과 자기의 머리까지 막 쓴 뒤에 입을 남편의 귀에 갖다 대고 소근거렸다.
 
90
「오늘은 하룻밤 자지 말고 이야기로 새웁시다.」
 
91
왜 그러느냐는 남편의 질문에 순이는 유난히 무서워서 누가 깨어 있어 주지 않으면 못 견디겠노라 대답하였다.
 
92
남편은 아내의 등을 쓸었다.
 
93
「어린애. 무섭긴 뭐이 무섭담.」
 
94
그러면서도 남편은 아내를 힘있게 안아 주었다. 아 내는 싱겁게 씩 웃으며 머리를 남편의 가슴에 묻었다.
 
95
한참 뒤에 아내의 허리에 걸려 있던 남편의 팔은 힘없이 미끄러졌다. 곤한 그는 어느덧 잠이 든 것이다.
 
96
아내는 남편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찔렀다. 남편은 펄떡 깨었다.
 
97
「응? 응?」
 
98
「오늘 하루만 새워 줘요.」
 
99
순이는 울다시피 이렇게 애원하였다.
 
100
「그래.」
 
101
그러나 노역에 피곤한 남편은 한 마디의 말을 겨우 낼 뿐 또다시 잠이 들었다.
 
102
차차 밤이 깊었다.
 
103
「딱!」
 
104
문 밖에서는 또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어젯밤에 순이를 놓아 줄 때의 약속에 의지하여 베장수가 또 온 것이었다. 순이는 뒤집어 썼던 이불을 더 엄중하게 썼다. 그러나 비록 더 엄중히 썼다 해도 순이는 밖에서 또 무슨 소리가 날까 하고 온 신경을 귀에 모으고 기다렸다.
 
105
「딱! 딱!」
 
106
밖에서 또 채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이는 흐늘흐늘 일어났다. 옷을 주워 입과 밖으로 나갔다. 밖—행길에는 베장수가 순이를 기다리노라고 이리저리 거닐고 있었다. 순이는 문 밖에 나서면서 벌써 베장수를 보았지만 〈나는 너를 보러 나온 것이 아니라〉는 듯이 베장수 앞을 지나서 저편으로 갔다.
 
107
「여보.」
 
108
베장수는 순이가 자기 앞을 지날 때에 주의를 잘기 위하여 이렇게 찾아보았지만 순이는 한 번 히끈 돌아다보고는 그냥 지나가 버렸다.
 
109
그러나 순이의 심리를 이미 알고 벌써 순이의 마음을 잡았다는 굳은 자신을 가지고 있는 베장수는 순이의 뒤를 따르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110
아니나다를까, 순이는 베장수의 앞을 그냥 지났지만 더 갈 곳은 없었다. 조금 더 가서 샛길로 들어가서 잠시 일없이 서 있다가 순이는 다시 제 집으로 향하였다.
 
111
순이는 제 집 앞에서 베장수를 만났다. 베장수는 양 팔을 벌려서 순이를 쓸어안았다. 그 품안에서 순이는 몸을 사시나무와 같이 떨고 있었다.
 
112
잠시 말없이 순이를 붙안고 있던 베장수는 역시 말 없이 발을 옮겼다. 순이는 마치 인형과 같이 순순히 그에게 끌리어 갔다.
 
113
「아까 보고도 왜 모른 체했소?」
 
114
베장수가 이렇게 물을 때도 순이는 죽여라하고 입을 봉하고 있었다.
 
115
이튿날 농터에 나갔던 시부모와 남편은 늦게 집에 돌아와서 순이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116
마을이라도 갔나 하고 기다렸으니 순이는 밤이 깊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좀 먼 곳에 갔나 하고 기다렸지만 이튿날도 돌아오지 않았다. 순이는 완전히 없어졌다.
 
117
집안은 이에 발끈 뒤집혔다. 그리고 감직한 곳을 죄 알아보았다. 그러나 순이의 종적은 알 수가 없었다.
 
118
그들은 마침내 주재소에 보고치 않을 수가 없었다.
 
119
닷새 뒤에 읍내 경찰서에 베장수와 함께 순이가 붙들렸다는 통지가 이르렀다.
 
120
남편은 부랴부랴 읍내로 들어갔다.
 
121
경찰서에서 남편과 아내는 대면하였다. 그때 아내는 왁하니 울면서 남편의 팔에 매어달렸다. 성과 결이 독 같이 난 남편이 경관의 제지도 듣지 않고 아내를 발길로 차고 함부로 때릴 때도 순이는 조그만 반항도 없이 남편의 팔에 매달려서 「 같이 살아만 줍시사」 고 애걸하였다.
 
122
「이 사람과 살기가 싫으냐?」
 
123
고 취조하던 경관이 남편을 가리키며 물을 때에 순이는 당찮은 소리라는 듯이 경관을 흘겼다.
 
124
「이 사람하고 못 산다면 차라리 죽겠소.」
 
125
이것은 순이의 대답이었다.
 
126
「이 사람이 너하고 안 살겠다면 어찌하겠느냐?」
 
127
이렇게 물을 때에 순이는 경관을 내어버리고 남편에게로 향하였다.
 
128
「여보. 무슨 짓이라도 하라는 대로 할께 함께 살아만 주어요.」
 
129
「그렇게 알뜰한 서방을 두고 왜 달아났느냐?」
 
130
경관이 이렇게 물을 때에 순이는 몸을 한 번 떨뿐 대답지 않았다.
 
131
부처의 새에 타협은 성립되었다. 경관의 중재와 효성의 정애로써 다시 살기로 된 것이었다. 그리고 부처는 의좋게 다시 경찰서를 나섰다.
 
132
경찰서를 나갈 때에 어떤 순사가 농담으로 순이에게 이런 말을 물었다.
 
133
「베장수놈은 고약한 놈이지? 밉지?」
 
134
그때 순이는 남편을 한순간 힐끗 쳐다보고 남편에게 보이지 않게 순사에게만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서 베장수 역시 밉지 않다는 뜻을 나타내었다.
 
135
경찰서 문 밖에서 남편에게서 왜 달아났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에 순이는 애원하는 듯이 그 말은 다시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뿐 대답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는 이런 말을 하였다.
 
136
「매일 밤 꿈에 당신을 봤어요.」
 
137
부처는 다시 본촌으로 돌아왔다. 전과 같이 안온하고 화락한 생활은 다시 계속되었다.
 
138
순이는 왜 베장수와 어울리어 달아났나? 먹을 것이 없었나? 입을 것이 없었나? 남편에게 대한 애정이 없었나? 시부모가 학대를 하였나? 시동생이 귀찮았나? 생활에 대한 불평이 있었나? 혹은 뒤뜰의 복사나무가 보기가 싫었나?
 
139
위에 기록한 가운데 아무것도 순이가 베장수와 어울리게 될 근거와 달아날 이유가 될 것이 없다. 그러면 그는 왜 베장수와 달아났나?
 
140
여인은 수수께끼다. 〈사랑〉이라는 것을 마치 배나 능금과 같이 절반으로 갈라서 좌우편으로 붙일 수가 있는〈여인〉은 우리의 도저히 풀 수 없는 커다란 수수께끼이며 또한 도저히 알 수 없는 무서운 괴물이다.
 
141
순이는 왜 달아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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