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 인심이 스스로 천주님 계신 줄을 아느리라
3
무릇,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그 위에 임자가 계신 줄을 알므로, 병들고 어려운 일을 겪으면, 하늘을 우러러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하며 빌고, 번개와 우레를 만나면, 자기 죄악을 생각하고 마음이 놀랍고 송구하니, 만일 천상에 임자가 아니 계신다면, 어찌 사람마다 마음이 이러 하리요?
5
천지 만물은 다 제 몸이 스스로 나는 일이 없다. 초목은 열매가 있기에 시를 전하고, 짐승은 어버이가 있어서 생겨나고, 사람도 부모가 있어서 생겨나니, 그 부모는 조 부모에게서 나는 지라, 차차 올라가면, 분명히 시작하여 난 사람이 있을 것이니 이 사람을 누가 낳으셨을까? 이 사람도 부모가 있어서 났다 하면, 그 부모는 누가 낳았을꼬? 처음으로 난 사람은 부모가 없이 났을 것이니, 그 사름은 제 몸을 스스로 낳았다 할 것이냐? 그렇다면, 이 사람만 제 스스로 나고, 뒷사람은 스스로 나지 못할까? 이로서 미루어 보건데, 처음에는 사람을 분명히 내신 이가 계실 것이니, 사람 하나를 가지고, 의논하면, 초목과 짐승도 다 그러하여, 처음 난 초목은 초목이 초목을 낳음이 아니고, 처음 난 짐승도 짐승이 짐승을 낳음이 아니라, 초목과 짐승과 사람을 모두 내신 이<창조주>가 계시니, 이 내신 이를 천주라고 일컫느니라.
7
여기에 큰 집이 있다. 아래엔 기둥을 세우고, 위에는 들보를 얹고, 옆에는 벽을 맞추고, 앞에는 문을 내어 비바람을 가리 워야 사람이 몸을 담아 평안히 살 수 있으니, 이 집을 보면 어찌 ‘저절로 되었다’고 하리요? 반드시 ‘목수가 있어서 만들었다’ 하리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집을 보고 말하기를 “기둥과 들보와 벽과 문창이 저절로 어울려 되었다”고 하면, 이 사람을 “지각이 없다”고 할 것이라.
8
천지도 또한 집과 같아서, 하늘로 덮고, 땅으로 싣고, 해와 달로 밝히고, 비와 이슬로 초목을 기르고, 물로 축이고, 불로 덥히고, 나는 새는 공중에 날고, 기는 짐승은 땅에 기어, 만물을 다 배포하고 마련하였기에, 사람이 그 중에서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만물을 쓰고, 평안히 살아, 마치 집을 짓고 평안히 있음과 같으니, 작은 집도 절로 되지 못하여, 반드시 건축한 목수들이 있어야 되거든, 이 천지 같은 큰 집이 어찌 절로 되었으리요?
9
분명히 지극히 신통하시고, 지극히 능하신 이가 계셔서 만들어야 될 것이니, 목수들을 보지 못해도 집을 보면 집 지은 목수들이 있는 줄을 알 것이요, 천주를 보지 못해도 천지를 보면, 천지를 만드신 임자가 계신 줄을 알 것이라.
10
4. 하늘이 움직여 돌아감을 보고 천주가 계신 줄을 알지니라
11
온갖 것이 지각과 손발이 있어야 능히 움직이고, 지각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니, 사람과 짐승은 지각이 있기에 움직이고, 흙과 돌은 지각이 없기에 움직이지 못하니, 그 중에 지각이 없고도 움직이는 것은 반드시 지각 있는 이가 잡고 흔들어야 움직이므로, 흙과 돌은 지각이 없어도, 지각 있는 사람이 굴리면 움직이고, 물레와 수레는 지각이 없어도, 지각 있는 사람이 잡고 돌리면 움직이니, 저 하늘과 해와 달과 모든 별이, 귀와 눈이 없고, 손과 발이 없고, 혼과 지각이 없는데, 능히 날마다 움직여 돌아가고, 또 돌아가되, 일정한 법이 있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차례로 돌아오고, 밤낮과 덥고 추움이 고르게 나누어져서, 천백 년이 되도록 그 돌아가는 도수가 털 끝 만큼도 틀리지 않으니, 지각없는 것이 어찌 스스로 돌아가며, 돌아간들 어찌 절로 도수에 맞으리요?
12
분명히 지극히 신명하고, 지극히 능한 이가 잡고 돌려야 돌아갈 것이니, 이 돌아가게 하시는 이는 곧 천주이시니, 그러므로, 물레와 수레가 돌아감을 보면, 저 하늘도 천주가 계셔서 돌리시는 주을 알 것이라.
13
5. 사람은 반드시 천주로 말미암아 생겼느니라
14
어떤 사람이 묻기를, “처음으로 난 사람은 천주로 말미암아 났거니와, 지금 사람은 부모의 속으로부터 나니, 천주가 아니 계신들 어찌 나지 못하리요?”
15
대답하기를, “처음 사람은 천주가 아니 내셨더라면, 지금 사람이 어디로부터 났으리요? 또 부모의 힘만으로는 자식을 낳지 못하니, 이를테면 장인(匠人)이 그릇을 제 재주로 만들기를 마음대로 새서, 만들고자 하면 만들고, 말려고 하면 말고, 크게 하려면 크게 하고, 작게 하려면 작게 하는데, 사람이 자식 낳기를 장인들이 그릇을 만들듯 제 재주로 할 것 같으면, 어찌하여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며, 아들을 낳고 싶어도 딸을 낳고, 잘 낳고 싶어도 못나게 낳는 일이 있느냐?"
16
이것을 보면 사람의 힘이 아니라, 천주의 조화(造化)로 하시는 것을 알 것이요, 또 장인은 그릇을 제 재주로 만들기 때문에 그릇 만드는 묘리(妙理)를 알거니와, 사람은 자식을 낳아도 그 되는 묘리를 누가 아는가? 만일에 알 양이면, 어찌하여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되며, 오장육부가 됨을 모르리요? 다 천주의 신령하신 슬기로 마련하심이니라.
18
한 집안에는 가장(家長)이 하나이고, 한 고을에는 관장(官長)이 하나이며, 한 도(道)에는 감사(監司)가 하나이며, 한 나라에는 임금이 하나이니, 만일 한 고을에 두 관장이 있으면, 고을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요, 한 도에 감사가 둘이 있으면, 도의 일이 잘 되지 않을 것이며, 한 나라에 두 임금이 있으면,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한 천지에도 임금이 하나이니, 만일 두 임금이 있다 하면 천지가 어지러워질 것이다. 이 임금은 해를 서쪽으로 돌리려 하면, 저 임금은 동쪽으로 돌리려 하고, 이 임금은 여름이 되게 하면 저 임금은 겨울이 되게 하며, 이 임금은 살리려 하면 저 임금은 죽이려 할 것이니, 어찌 세상 일이 제대로 되겠는가? 이제 해는 언제나 서쪽으로 가고, 여름이 될 때에는 여름이 되고, 겨울이 될 때에는 겨울이 되며, 불은 언제나 덥고, 물은 언제나 차며, 짐승은 짐승을 낳고, 사람은 사람을 낳아, 천지가 개벽한 뒤로 이 날까지 일정한 법이 있어, 만고(萬古)에 바뀌지 아니하니, 반드시 한 임금이 계시어서 마련하기 때문에 온갖 법이 다 한 곬으로 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을 살리려고 하면 다시 죽일 이가 업고, 저 사람을 벌주려 하면 다시 상줄 이가 없느니라.
19
7. 천주는 본디부터 계시고, 스스로 계시니라
20
어떤 사람이 묻기를, “만물이 절로 나지 못하고, 다 천주가 내신 것이라 하니, 그러면 이 천주는 누가 내었는가?”
21
대답하기를, 만일, 천주를 낸 이가 있다고 하면, 그 낸 이가 곧 천주가 될 것이니, 받아서 난 이는 천주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일컫는바 천주는 따라 난데가 없으며, 본디부터 스스로 계시는 분이다. 대개, 스스로 계신 이 하나가 먼저 있어야 만물이 다 이에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나무로 비유하면, 잎은 가지에서 나고, 가지는 줄기에서 나고 줄기는 뿌리에서 나니, 뿌리는 잎과 가지와 줄기의 근본이 된다. 근본의 또 근본이 어찌 있으리요? 또, 수(數)로써 말한다면 만은 천에서 나고, 천은 백에서 나고, 백은 열에서 나고, 열은 하나에서 나니, 하나는 만과 천과 백과 열의 시작이 되는지라, 시작의 또 시작이 어디에 있으리요? 천주는 나무의 뿌리 같으시어, 다시 뿌리가 없으며, 수의 하나와 같으시어, 다시 시작이 없느니라.
22
8. 천주는 시작이 없으시고, 마침이 없으시니라
23
온갖 만물이 다 그것을 내신 이가 있으므로, 아무 때에 내자 하면 나서 시작이 있고, 아무 때에 없애자 하면 없어져서 마침이 있지만, 오직 천주는 본디부터 계셔서 아무 때에 내자고 할 이가 없으므로 시작이 없고, 아무 때에 어떻게 하자고 할 이가 없으므로 마침이 없으시니라.
24
9. 천주는 지극히 신령하시어, 그 형상이 없으시니라
25
만물이 형태 있는 것은 천하고, 형태 없는 것은 귀하므로, 초목과 짐승은 형태가 있기에 천한 부류가 되고, 사람의 영혼과 하늘 위의 천신은 형태가 없기에 귀한 부류가 되는지라, 이제 천주는 높으시고 귀하시어 사람과 천신보다 한량없이 더하시므로, 더욱 지극히 순전하사 얼굴도 없으시고, 모양도 없으시며, 소리도 없으시고, 냄새도 없으시며, 오직 신령하실 따름이니라.
26
10. 천주께서는 안 계신 곳이 없으시니라
27
천주는 형상 없으시고, 신령하신 본체(本體)가 무한하시어 온전히 하늘에 계시고, 온전히 땅에 계시고, 온전히 만물에 계시고, 온전히 천지 밖의 무한한 데 계시니, 어찌하여 그런 줄을 알리요? 하늘을 만드실 제는 당신의 본체가 하늘에 계실 것이요, 땅을 만드실 제는 땅에 계실 것이요, 만물을 만드실 제는 만물에 계실 것이며, 본체가 한없이 크시매 천지 밖의 무궁한 데에도 계시니라.
29
무릇, 사람은 재능이 한이 있어, 가령 무슨 그릇을 만들려 하면, 반드시 감을 가지고 연장을 쓰고, 힘을 들이고, 때를 허비한 뒤에야 비로소 그릇이 되지만, 천주는 그 힘이 무궁하시어 천지 만물을 만드시되, 없는 가운데서 내시고, 연장 없이 만들어 내시며, 힘들 들이지 아니하시고, 때를 허비하지 아니하시고, 한 번 명하시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 내시니, 만일 이 천지에서 더 크고 기묘한 천지를 무수히 만들려 하셔도 한 번만 명하시면 될 것이요 또 이 천지 만물을 모두 없애려 하셔도 한 번만 명하시면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 힘이 무한하시다 하느니라.
31
천주는 이미 무궁히 능하신 즉, 반드시 온전히 아실 것이다. 대개, 천지 만물을 만드는 묘리를 무궁한 슬기로 먼저 아셔야 무궁한 힘으로 만드실 것이나, 만일 무궁히 알지 못하신다면, 무궁한 힘을 어찌 베푸시리요? 그러므로 만물의 크고 작음과 정하고 추함과 깊고 옅음과 무수한 귀신의 은밀한 마음과 억만 사람의 숨은 뜻을 다 꿰뚫어 훤히 아시어, 털끝만큼도 속일 수가 없다. 또 억만 년 이전의 일과 억만 년 이후의 일이 역력히 눈앞에 벌어져 있으므로, 그 아심이 무궁하시다 이르느리라.
32
13. 천주는 무궁히 아름다우시고, 좋으시니라
33
천주는 어찌하여 무궁히 아름다우시다 하는고? 대개, 천주가 만드신 만물을 보면 알 것이다. 하늘의 높고 넓음과 해와 달의 빛나고 밝음과 땅과 바다의 두껍고 깊음과 초목금수의 번화롭고 맑음과 온갖 기묘한 빛과 소리와 여러 가지 기이한 맛과 향내와 하늘 위에 수없이 많은 천신들의 신통함과 땅 위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슬기로움과 세상의 오만가지 영화와 즐거움이 천주로부터 났으니, 이런 만물의 만 가지 아름다움을 천지가 개벽한 후로부터 천지가 마칠 대까지, 날마다 내시고 해마다 내시어 무궁무진(無窮無盡)하니, 당신의 본체(本體) 안에 반드시 무궁무진한 아름다움이 있을지라. 비유하건대, 정승(政丞) 판서(判書)의 영화로운 복과 감사(監司) 병사(兵使)의 부귀한 즐거움이 다 임금의 손에서 나왔으므로, 정승 판서와 감사 병사의 영화 부귀함이 다 임금의 몸에 사였으니, 백관의 부귀함을 보면 임금의 지극한 부귀를 넉넉히 알 수 있음과 같이, 만물의 아름다움을 보면 천주의 무궁히 아름다우심을 알 것이니라.
34
14. 천주는 세 위(位)이시고, 한 체(體)이시니라
35
‘천주 삼위일체(天主三位一體)’의 도리(道理)는 사람의 슬기가 약하므로 완전히는 통달하지 못하나, 비유로써 조금은 증명할 수가 있다. 무릇, 사람이 밝은 거울에 비취면 거울 속에 그 얼굴이 나타나고, 또 사람이 마음에 한 가지 것을 사랑하면 마음속에 그 사랑하는 정이 생긴다. 그와 같이 천주도 이러하시어, 무시로 그 무한히 아름다운 본체, 무한히 밝은 마음 가운데 비치어, 무한히 아름다운 얼굴을 나태내시니, 그 얼굴이 곧 당신의 얼굴이시라. 또 무한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한히 아름다우신 정을 발하시니, 그 발하신 사랑이 또한 당신의 사랑이시니라. 그러나 사람이 거울에 비취어 나타나는 얼굴은 오직 거울을 의지한 그림일 뿐이요, 사람의 사랑하는 정은 마음에 의지한 빈 정일 뿐이다. 그 그림자와 빈 정은 다 잠깐 있는 것이요, 헛것이지만, 천주는 본디 무궁히 능하신 성(性)이시오, 그 밝으신 얼굴과 그 사랑하시는 마음이 곧 그 체(體)이시라. 그 밝으신 얼굴과 그 사랑하시는 정에, 또한 그 체와 함께 사시며 진실하시어, 그 본체가 하나이시고, 그 얼굴이 하나이시고, 그 사랑하시는 정이 하나이시므로, 세 위(三位)라 하는데, 세 위란 말은 천주의 체(體)가 셋이 아니라, 위(位)는 비록 셋이지만, 그 체(體)는 오직 하나이시라. 그 비치시는 얼굴이 곧 체(體)이시고, 그 사랑하시는 정이 곧 그 체(體)이시니, 세 위(三位)가 한 가지로 한 체(體)이시고, 한 성(性)이시기 때문에 세 위가 다 높고 낮음과 크고 작음이과 먼저와 나중의 분별이 없느니라. 또, 세 위가 먼지와 나중의 분별이 없으나, 차례의 선후를 말한다면, 그 본체는 아비라 이르고, 그 낳으신 얼굴은 아들이라 이르며, 그 아비와 아들이 서로 사랑하여 발하신 정은 성신(聖神)이라 이르니라. 사람은 아비의 마음이 아들의 마음에 통하지 못하고, 아들의 마음이 아비 마음에 통하지 못하는 것은 그 마음이 각각이고 형체(形體)에 걸리는 까닭이거니와 천주의 사랑하시는 마음은 그렇지 아니하시어, 아비와 아들이 한 체(體)이시고, 또 그 체(體)가 형태가 없으므로 아비의 사랑과 아들의 사라이 서로 형체에 걸리는 것이 없이 통하시어, 성신(聖神)을 발하시니, 성신이란 말은 지극히 착하시고, 형태가 없으신 사랑을 이름이니라.
37
어떤 사람이 묻기를, “세상 사람이 매양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면 절로 공경하는 마음이 나니, 저 푸른 하늘이 천주가 아니시냐?”고.
38
대답하기를, 그렇지 아니하니, 하늘을 보고 공경하는 마음은 이 하늘을 공경함이 아니라, 하늘 위에 계신 임금을 공경함이라. 비유컨대, 백성이 대궐을 바라보면 절로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그것을 어찌 대궐을 두려워한다 하리요? 대궐 안에 계시는 임금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저 푸른 하늘은 대궐 같고, 하늘 위에 계시는 천주는 대궐 안에 계시는 임금 같으니, 만일 푸른 하늘을 천주라 하여 절하면, 이는 대궐을 보고 임금이라 하여 절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그르지 아니 하리요? 하늘은 천주의 전능(全能)으로 만드신 것이니, 비유컨대, 사람이 집을 지었다면 그 집을 가리켜 임자라 하겠는가? 집을 지은 사람이 임자임과 같이, 천주가 하늘을 지으셨으니 천주가 하늘의 임자이시니라.
39
또 하늘이 넓고 푸르러 큰 유리덩이 같은 것이, 귀와 눈이 없고 손과 발도 없으며, 지각도 없고 영신(靈神)도 없으니, 어찌 천지 만물의 임자가 되리요? 천지의 큰임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하늘을 임자라 하면, 저 하늘이 아홉 겹이 있으니, 어찌 천지의 임자가 아홉이 되리요?
40
16. 천지가 스스로 만물을 능히 내지 못하느니라
41
어떤 사람이 묻기를, “하늘과 땅에 있어 만물의 부모가 되는데, 어찌 천주께서 만물을 내시었다 하리요?”라고.
42
대답하기를, 온갖 것이 저와 같은 것을 낳고, 저보다 나은 것은 낳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 있는 초목이 초목을 낳되 지각 있는 짐승을 낳지 못하며, 지각 있는 짐승이 짐승을 낳되 영신(靈神)있는 사람을 낳지 못한다. 이 천지는 산 것이 아니니, 어찌 생기 있는 초목과 지각 있는 짐승과 영신 있는 사람을 낳으리요?
43
그러므로 비유컨대 화가가 그림을 그리려면 반드시 종이와 물감을 가지고 그리는데, 만일 종이와 물감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찌 한 낱 종이와 물감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겠는가! 반드시 화가가 있어야 그림이 된다. 이제 만물도 그러해서 땅은 종이 같고, 하늘은 물감 같고, 만물은 그림 같은 것이니, 화가가 아니면 종이와 물감이 어찌 절로 그림이 되며, 천주가 아니시면 하늘과 땅이 어찌 절로 만물을 만들 리요? 그러므로 사람이 천지와 일월성신(日月星辰)을 향하여 절하는 것은 매우 그릇된 일이다. 비유컨대,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집과 논밭을 장만해 주면, 자식이 집과 논밭으로 산다 하여 그 집과 논밭을 향하여 절하고, 집과 논밭을 주신 부모의 은혜를 생각지 아니한다면, 어찌 그릇된 일 아니리요? 마찬가지로 사람이 만일 천지와 일월(日月)을 내신 천주의 은혜를 모르고, 천지와 일월을 향하여 절한다면 이 집과 전답을 향하여 절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요?
45
한나라 때에 장의라 하는 사람이 있어<한대(漢代)의 장각(長角)을 전한시대(戰國時代) 장의(張儀)로 혼동한 듯하다>, 상없는 신선도술(神仙道術)을 하노라 하더니, 죽은 뒤에 그 제자들이 말하기를 스승이 신선이 되었다고 거짓말을 지어내었다. 그 후 송(宋)나라의 임금 휘종(徽宗)이 상없는 신선 도술을 좋아하여 장의를 위하고 높여서 옥황상제(玉皇上帝)라 이름 하여 봉하였으니, 천하에 어찌 이러한 흉측한 일이 다시 있으리요? 천지간에 천주 상제(上帝)는 오직 한 분이신데, 어찌 세상 사람을 상제라 부르리요? 한나라에는 임금이 오직 하나이거늘, 만일 보통사람을 가리켜 임금이라 한다면 그 죄악이 어찌 크지 아니 하리요? 장의는 한낱 사람에 불과한데, 그가 죽은 지 천여 년 후에 그를 옥황상제라 일컬으니, 이는 보통사람을 가리켜 임금이라 일컫는 죄보다도 만 배나 더하다. 그러므로 휘종이 생전에 천주께 벌을 받아, 그 나라를 망하게 하고, 그 몸이 비참하게 죽으니, 어찌 후세의 경계할 바가 아니리요? 세상 사람이 그러한 줄을 모르고 옥황상제라 부르는 것이 어찌 대단히 그르지 아니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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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부처와 보살이 다 천주가 내신 사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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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없이 본디부터 계신 이가 하나 있어야 만물이 다 그리로 부터 시작하여 나는 것이다. 온갖 물건이 스스로 나지 못하고, 저절로 있지 못하므로, 천지간의 무수한 만물과 귀신과 사람이 다 천주의 무궁하신 힘으로 생겨나고, 하나도 절로 생긴 것이 없으니, 저 부처와 보살도 또한 천주가 내신 사람이다. 그 부모의 속에서 나서 영혼이 있고 육신이 있어, 우리 일반 사람과 같은지라, 어떤 사람을 들어 말한다 하더라도, 그 중에서 조금 능하고 조금 더 착하다 할지라도, 사람의 능에 불과하고 사람의 착함에 불과하니, 어찌 사람이 사람 위에 높이 솟아나 천주의 무궁하신 능과 무한하신 착함의 만분의 일이나 미치리요? 하물며, 부처와 보살은 세상에 있을 제 천주의 도우심을 얻지 못하였으니, 무슨 착함이 있으리요?
48
19. 석가여래가 스스로 천지간에 홀로 높다 함이 지극히 요망하니라
49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한 천주가 계시어, 그 높으심이 한량없으시어, 다시 그 위가 없으며, 그 귀하심이 지극하여 다시 짝이 없다. 그러니 하늘 위의 천신같이 높은 이와 세상의 사람같이 귀한 이도 다 천주 앞에는 지극히 천하고 지극히 낮아, 종이 되고 백성이 되거늘, 석가여래는 불과 지천한 사람인데, 그 어미 뱃속에서 태어나자, 왼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오른 손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큰 소리로 말하기를,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만이 높다”하였으니, 슬프다! 그 부모도 그보다 높고, 그 임금도 그보다 높고, 또 부모와 임금 위에 무궁히 높으신 천주가 계시거늘, 이 같이 무엄한 말을 감히 입으로 내었으니, 천한 만고에 이런 대 죄인이 또 있겠느냐>? 마치, 한 마을에 미친 사람이 있어서, 소리 질러 말하기를, “세상에 나만이 홀로 높다!”고 하니, 그 마을의 어리석은 백성들이 그릇됨을 가리지 못하고, 이 미친 사람 앞에 엎드리어 황공(惶恐)히 여겨 임금으로 섬긴다면, 그 나라의 참 임금이 듣고, 그 죄를 어떻게 다스리겠는가? 반드시 그 미친 사람을 역적으로 다스려 베일 것이요, 그를 섬기던 백성들도 마찬가지로 죄벌을 받을 것이니, 슬프다! 이제 석가를 믿고 섬기던 사람들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천주 앞에 가서 반드시 역적 섬기던 죄를 이와 같이 당하게 될 것이니라.
50
20. 불경의 말이 다 허망하여 믿을 것이 없느리라
51
무릇, 사람으로 더불어 말할 제, 열 마디에 아홉 마디가 미쁘다가도<믿음직하다가도> 한 마디의 거짓말을 들으면, 전에 한 아홉 마디를 다 의심하게 된다. 이제 불경(佛經)의 말은 열 마디에 어쩌다가 한 마디가 사리에 맞는 듯하나, 거짓말이 아홉이나 되는 것을 어찌하여 믿는고? 불경 안에 거짓말이 무수하되, 그것을 죄다 가려내어 논하지 못하고 아래애 대강만 논하기로 한다.
52
불경에 말하기를, “산과 물과 큰 땅이 다 부처의 마음 속으로 생겨났다”하니, 이 땅은 천지개벽할 때에 천주가 신통하신 힘으로 만들어내신 것이요, 부처는 개벽한 뒤 여러 천 년 만에 태어났으니, 천 년 후에 태어난 부처가 어찌 천 년 전부터 있는 땅을 내었다 하리요? 또, 사람의 힘으로는 모래 한 알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부처도 또한 사람이니, 어찌 마음 속으로 산과 물과 땅을 만들어 낼 힘이 있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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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사람에게 전생과 후생이 있어, 사람이 죽어 짐승이 되고, 짐승이 죽어 사람이 된다는 말이 허망하니라
54
천주가 이 세상에 사람을 내사, 한 번 죽은 후에 영혼의 착함과 약함을 판결하시어 혹 천당에 올리시고 혹 지옥에 내리시는 것이니, 한 번 정하신 뒤에는 천당에 있는 혼이 다시 세상에 내려오지 못하고, 지옥에 있는 혼도 또한 세상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 마치 하늘의 해와 별이 땅에 내리지 못하고, 땅의 흙과 돌이 하늘에 오르지 못함과 같다. 사람이 전생(前生)과 후생(後生)이 있을 양이 면, 천당, 지옥에 있던 영혼이 다시 이 세상에 와서 사람이 될 수 있어야 그렇다 할 것이거늘, 어찌 사람이 천주의 명을 거스르고 제 마음대로 다시 사람이 될 수 있으리요? 천주가 무한하신 위엄과 공이 있으므로 사람의 혼을 임의(任意)로 오고 가게 아니할 것이니, 부처의 몸이 전신(前身)과 후신(後身)이 있어, 석가여래(釋迦如來)의 몸이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되었다는 말이 천하에 허무맹랑하고, 또 다른 사람의 전생 후생이 있어 돌고 돌아 짐승이 된다는 말이 다 망녕되니라. 또 사람이 죽은 후에 육신은 석어 흙이 되는데, 환생(還生)하는 일이 있을 양이면 응당 영혼도 환생할 것이다. 한 영혼이 여러 세상을 지내고, 많은 일을 겪어 보았다면, 그 중에는 전생의 일을 생각하는 이가 있을 것인데, 천지개벽한 뒤로 어떤 사람이 능히 전생의 부모가 있던 줄을 생각하며, 전생의 성명이 무엇이었던 지를 아느냐? 사람이 아무리 잊기를 잘한다 하지만, 제 부모와 성명을 어찌 잊어 버릴 수 있으리요? 전생이란 것이 없기 때문에 전생 일을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또 사람이 짐승으로 태어난다는 말이 참으로 허망하다. 만일 짐승이 되어 개도되고 소도 된다면 몸은 개 몰골과 소 몰골을 하고 있었을지라도 혼은 사람의 혼이 박혔으니, 응당 사람같이 영(靈)한 개와 영한 소가 있으련만, 세상에 사람같이 영리한 개와 소를 본 사람이 그 누구인고? 비유컨대, 칼은 칼집에 꽂고 활은 활집에 박아야 서로 맞을 것이니, 이제 사람의 혼은 사람의 몸에 박아야 맞고 짐승의 혼은 짐승의 몸에 박아야 맞을 것이다. 만일 사람의 혼을 짐승의 몸에 박은 것 같으면, 이는 칼을 활집에 꽂고, 활을 칼집에 꽂는 것과 같으니, 어찌 서로 맞으리요? 또 이름 짓기도 어려울 것이니, 짐승이라고 하자 하니 사람의 혼이 있고, 사람이라 하자 하니 짐승의 몸이니, 무엇이라고 이름하리요? 세상의 형벌은 죄인을 다스려 그 죄를 다시 못 짓게 하는 것이거늘, 저 바꾸어 태어난다는 말은 그렇지가 않아서, 음행하던 사람은 죽어서 돼지가 되고, 살인한 사람은 죽어 호랑이가 된다 하니, 음행한 죄로 더러운 짐승이 되어 더욱 음행을 하게하고, 살인한 죄로 사나운 짐승이 되어 더욱 살생을 하게 하면, 이는 제 뜻을 채워 주는 것이요, 그 죄를 벌하는 것이 아니니, 천하에 어찌 이렇게 상없는 형벌이 있으리요?
55
어떤 사람이 묻기를, “이 말을 들으니, 과연 바꾸어 태어날 리는 없지마는, 혹시 사람으로서 짐승이 된 것을 본이가 있다 하니, 이것은 어찌된 일인고?”하니, 대답하기를, 눈으로 보았다는 것은 모두 믿을 길이 없고, 이치로 생각하는 일은 미쁜 것이니, 비유컨대 눈으로 해를 보면 쟁반만 하고, 이치로 생각하면 이 땅보다도 더 크니, 눈에 작아 보임을 믿어야 옳으냐, 이치로 생각하여 큼을 믿어야 옳으냐? 또 마귀가 사람을 속이려 하면, 사람의 눈을 어지럽히고 도섭을 부려서 없는 것을 보게 하고, 작은 것을 크게 하니, 어찌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눈으로만 보고 믿을 수가 있으리요? 설사 눈으로 환생(還生)하는 것을 보았다 하더라도 이체에 맞지 않는 것은 믿을 길이 없거늘, 하물며 참으로 본이도 없어 이 사람은 저 사람의 마을 듣고, 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차차 퍼져서 한 사람도 분명히 본 사람은 없으니, 이런 허황된 말을 어찌 믿을 수가 있으리요?
56
22. 불경에 천당과 지옥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논한 것이 다 모르고 한 말이다
57
사람이 죽은 뒤에 육신은 무덤에서 썩어버리고 영혼은 천당에 올라가 즐거움을 누리거나, 지옥에 떨어져 괴로움을 겪되, 영혼은 형상이 없어서 세상의 육신이 받는 고락과 다르거늘, 불경(佛經)에서는 말하기를, 죄인의 혼이 지옥에 떨어져 칼로 베고, 톱으로 켜고, 가마에 삶는다 하니, 형태 있는 몸이 있어야 칼과 톱으로 켜고 가마에 삶은 것인데, 몸은 무덤에 있고, 다만 형태 없는 영혼만 들어갔으니, 어디를 잡고 베어 아프게 하며, 무엇을 가마에 넣고 삶아 뜨겁게 하단 말인가. 혼이 이미 형태가 없으니, 오직 형태가 없는 벌이라야 마땅하느니라.
58
또 서방에 극락세계가 있다 하는데, 이는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생장한 땅을 말하는 것으로, 그 나라는 서역(西域) 나라이니, 좋은 땅이 아니라 인심이 아주 사나 와서 불쌍하고 죽게 된 사람을 돌아보지 아니하여, 한줌의 곡식도 주지 않지만, 도리어 짐승의 늙은 것과 병든 것을 두루 찾아 먹이고 구원하여 병이 나으면 곱게 보내고, 죽으면 땅에 묻어 주거늘, 다른 나라 사람이 이상히 여겨서 묻기를, “짐승을 이렇게 소중히 여기는 까닭은 무엇인고?” 하니, 대답하기를, “전생(前生)에 혹시나 사람으로 환생하였던 것이 아닌가 하여 이렇게 하노라” 하거늘, 또 말하기를, “그렇다면, 사람으로 환생 하였던가 여겨, 이 짐승은 사랑하면서, 왜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사랑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그 사람이 대답을 못하고 부끄러워 물러갔다 한다. 이런 인심이 또 어디에 있으리요? 이뿐이랴, 가난한 사람이 자식을 낳아 얻어 먹이기 어렵고, 혼인에 돈이 많이 들음을 어렵게 여겨 짐짓 죽이며 말하기를, “네가 내 집에 태어나서 가난하니, 네가 지금 죽어서 부귀한 집에 다시 태어나면 네게 복이 된다”고 한다 하니, 이 환생한다는 말이 죽는 아이에게 도끼와 칼이 되니, 슬프다! 세상에 이런 악착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으리요? 불쌍한 사람을 박대하고, 제 자식을 죽이는 이런 흉악한 나라에 무슨 극락한 일이 있겠기에, 여기 사람들이 모르고 서방 극락세계에 나기를 원하니, 어찌 가련하지 아니하리요?
59
23. 불경의 말이 두 가지로 나니, 믿을 것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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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무슨 일이든지 한 곬으로 말하여야 믿을 것이어늘, 이제 불경(佛經)의 말은 두 가지로 흩어져 나오니, 한 불경에는 천당과 지옥이 있다 하고, 또 한 불경에는 천당과 지옥이 없다 하며, 한 불경에는 윤회육도(輪廻六道)가 있다 하고, 또 한 불경에는 윤회육도가 없다 하며, 한 불경에는 세계가 넷이라 하고, 또 한 불경에는 세계가 무수하다고 하니, 어느 말이 거짓말이고 어느 말이 참말인지.
61
또 석가여래가 죽을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평생에 한 말이 하나도 믿을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살았을 때에 한 말을 믿고 따라야 옳으냐, 죽을 때에 한, 믿지 말라고 한 말을 따라 행하여야 옳으냐? 또 세계가 많다고 한 말이 가장 허망하니, 천주의 무궁하신 힘으로 억만 세계를 만들려 하면 어렵지 않을 일이로되, 한 세계로서 족하므로, 이 세계 밖에는 또 세계가 없는 것이다. 비유컨대, 천주가 억만 개의 태양을 만들려 하시면 지극히 쉬운 일이지만, 한 태양으로 이미 충분하므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없느니라. 또 부처들이 이 세계의 일을 알지 못하여, 말이 이렇다고도 하고 저렇다고도 하니, 다른 세계가 있는지 없는지 그가 어찌 알리요?
62
24. 불도의 상벌 마련한 법이 상없느니라
63
불경에 이르기를, “세상 사람이 무수한 죄악을 짓고도 죽을 때에 ‘나무아미타불’ 한 마디를 하면, 억만 죄악이 없어져 극락세계로 간다”하니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에 무슨 기묘한 뜻이 있고, 그 소리 한 마디에 어떤 힘이 있어, 그 한 마디로 천만 가지 죄를 없애버리고, 극락세계로 가게 하는고? 그럴진대, 세상 사람이 몹쓸 노릇하기가 무엇이 어려우리요? 평소에 몹쓸 노릇을 실컷 하다가도 죽을 임시에 염불 한 마디만 하면, 좋은 세계로 갈 것이니, 무엇이 두려워 몹쓸 일을 못 하리요? 진실로 이러할 양이면, 착한 사람이 애써 공부할 필요가 없고, 몹쓸 놈이 한 없이 죄를 지어도 괜찮을 것이니, 이 말은 정녕 착한 사람으로 하여금 착한 공부에 게으르게 하고, 몹쓸 사람으로 하여금 몹쓸 일에 방자하게 함이니, 어찌 착한 일을 권하고, 몹쓸 놈을 징계하는 도리가 되리요?
64
25. 득도하여 부처가 되었다는 말이 허망하니라
65
어떤 사람이 묻기를, “석가도 비록 천주가 내신 사람이지만, 세상에서 착한 공부를 닦아 득도(得度)하여 부처가 되었으니, 어찌 허망하다 하리요?”
66
대답하기를, 천주는 천지의 큰 임금이 되시고, 큰 부모가 되시고, 만 가지 선의 근본이 되시니, 세상에서 그 누가 그 임금과 아비를 몰라보고 무슨 착한 일이 있으며 무슨 도라 하리요? 이제 부처는 임금과 아비를 섬기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무한히 높으신 천주의 자리를 무엄하게 빼앗아 천주가 만드신 천당 지옥의 권한을 제 손에 잡았노라고 하여, 천한 사람으로 하여금 저를 섬기고 저를 높이라 한즉, 무한히 아름다우시고 무한히 높으신 천주를 멸시하여 자기의 제자라 함이니, 그런 무엄한 죄와 방자하고 요사스러운 짓이 천지개벽 후에 어찌 또 있으리요?
67
천주께서 지옥을 만드신 것은 반드시 이런 잡류를 벌하려 하심이 아니냐?
68
저 부처는 반드시 마귀와 함께 지옥에 들어 무궁무진한 형벌을 받을 것이니, 이런 흉악한 죄인을 어찌 득도하였다 하리요?
69
26. 부처의 도라 하는 것이 천주의 도와 같지 아니하니라
70
어떤 사람이 묻기를, “부처의 죄악이 비록 중하다 하나, 부처의 사람 가르치는 법이 천주의 도와 같아서, 천당, 지옥이라는 말과 착한 일을 권함과 몹쓸 일을 징계함이 있으니, 그 도를 따르는 것이 또한 옳지 않느냐?”
71
대답하기를, 봉황도 날개가 있고, 박쥐도 날개가 있으니, 봉황과 박쥐가 같다고 할 것인가? 무슨 일이든 같은 가운데 크게 다름이 있는 것이니, 세상에 역적이 있어 임금의 옷을 입고 임금의 자리에 앉았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그 임금과 같은 모양을 보고 그 앞에 나아가 절하고 섬겨 충신 노릇을 한다면, 그 역적에게 충신이 될수록 참 임금에게는 더욱 역적이 되는 것이다. 이제 부처를 섬겨 공을 세울수록 천주께는 더욱 죄를 얻으며, 부처를 위하여 더욱 착할수록 천주께는 더욱 원수가 되는 것이니라.
72
부처를 위하는 사람이 평생토록 덕을 닦은들 어찌 천주의 지옥의 형벌을 면하며, 또 천주가 벌하시는 사람을 부처와 보살이 어찌 능히 구해 내겠느냐? 무릇, 사람이 재물을 얻으려 하면, 반드시 부자에게 구하여야만 얻을 것이다. 이제 부처를 향하여 복을 구한다 하여도, 저 부처가 도리어 화를 면치 못하니, 어찌 남에게 복을 줄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부처에게 복을 구하는 것은 마치 빌어먹는 사람에게 돈을 구하는 것과 같느니라.
73
27. 잡귀신을 위하는 것은 큰 죄이니라
74
한 고을에는 관장(官長)이 하나요, 한 도(道)에는 감사(監司)가 하나이며, 한 나라에는 임금이 하나이다. 한 고을 사람이 두 관장을 섬기고, 한 도내(道內)의 백성이 두 감사를 섬기며, 한 나라의 신하가 두 임금을 섬긴다면, 그 죄가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으리라. 이제 천지간에 한 임자가 계신 줄을 이미 알면서, 또 한편으로 잡귀신을 이른바 군왕(君王)이니 말명萬明)이니 제장(諸將)이니 제석(帝釋)이니 성주이나 영등, 성황(서낭)따위를 섬겨, 굿도 하고 제사도 지내어 복을 빌고 화를 면하고자 하는 사람이 어찌 두 임금을 섬기는 죄에 뭇지 아니 하리요?
75
또, 인간의 생사와 화복이 다 천주께 매여 있는지라, 잡귀신은 도무지 화복(禍福)의 권을 잡지 못하였으니, 어찌 사람의 화복을 능히 임의로 할 수 있으리요?
76
28. 천주는 반드시 착한 이를 상주시고 악한 이를 벌주시니라
77
천주는 지극히 밝으시고, 지극히 능하시고, 지극히 어지시고, 지극히 엄하시고, 지극히 공번되시니, 반드시 사람의 착함을 상주시고, 악함을 벌하시느니라. 지극히 밝으시므로 사람의 착함과 악함을 밝히 아실 것이요, 지극히 능하시기 때문에 상벌을 뜻대로 하실 권한이 있을 것이며, 지극히 어지시므로 착한 이를 사랑하시어 상 주실 것이요, 지극히 엄하시기에 악한 이를 미워 하사 벌하실 것이며, 지극히 공번되시므로 상과 벌을 반드시 고르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배치하신 뒤로 착한 사람이 하나도 천주께 상을 받지 아니한 이가 없고, 몹쓸 사람이 하나도 천주께 벌을 받지 아니한 이가 없느니라.
78
어떤 사람이 묻기를, “그러하면, 어찌하여 이 세상에서 착한 사람도 가난한 이가 많고, 악한 자도 부귀한 이가 많으냐?”고
79
대답하기를, 세상의 화복으로서는 사람의 선악을 갚을 길이 없으니,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 데 있어서 처음에는 착하다가 나중에 그른 이도 있고, 처음은 그르다가 나중에 착한 이도 있다. 죽은 뒤에야 착한 이가 다시 그르지 못하고, 그른 이가 다시 착하지 못할지니라. 만일, 이 세상에서 사람의 선악을 갚으려 하면, 사람이 오늘 착한 일을 한다 하여 부귀를 주었다가 내일 그른 일을 한다 하여 부귀를 빼앗고, 그 후에 다시 착하거든 부귀를 다시 줄 양이면, 한 사람의 부귀를 천백 번이나 주었다가 천백 번이나 빼앗을 것이니, 천주의 상벌하시는 법이 어찌 이렇듯이 어지러우시리요? 또, 사람이 죄를 지었다가도 뒤에 다시 뉘우치고 고치는 일이 있으니, 만일 죄를 짓는다 하여 큰 벌을 주어 죽게 하면, 그 죄를 뉘우쳐 다시 고칠 길이 없을 것이니, 천주의 어지신 뜻이 어찌 그러하시리요?
80
사람의 선악은 생전에 결단이 나지 않으므로 천주께서 상벌을 정하지 아니하시고, 또 세상의 복은 그 수가 한정이 있으되, 착한 사람은 그 수가 정한 것이 없으니, 비유컨대, 한 나라의 정승의 수는 셋이요, 정승을 하염직한 사람의 수가 열이나 된다면, 어찌 정승 세 자리를 가지고 착한 열 사람을 다 같이 정승을 시킬 수가 있으리요? 한 고을에 재물이 만금이 있는데, 만금을 가짐직한 사람은 둘이나 셋이 된다면, 어찌 한 만금을 가지고 두 세 사람에게 만금씩 같이 나누어 줄 수가 있으리요?
81
그러므로 이 사람을 존귀하게 해 주면, 반드시 저 사람이 천할 것이요, 이 사람을 가멸게 하면 반드시 저 사람이 가난할 것이니, 세상의 부귀로서는 모든 착한 사람을 다 갚아 고르게 할 길이 없으며, 또 죄악의 크고 작음을 따라 형벌을 무겁게, 또는 가볍게 해야 할 것인데, 세상의 죄악은 무한하고 형벌은 유한하니, 한 사람을 죽인 죄는 제 몸 하나를 죽이면 된다 하더라도, 두 사람 죽인 죄와 백 사람 죽인 죄는 어찌 그 한 몸을 둘에 내고, 백에 내어 죽이리요? 그러므로, 세상의 상과 벌로써는 사람의 선악을 갚을 길이 없느니라.
82
무릇, 이 세상에서 착한 사람이 어찌 빈천(貧賤)과 고난을 받으며, 몹쓸 놈이 어찌 부귀와 복락을 누리는고? 착한 사람도 한 두 가지 그른 일이 있기 때문에 천주께서 지극히 공번되시어 한 가지의 그른 일일이지도 벌하지 아니하심이 없기에, 세상의 작은 괴로움으로 그 작은 죄를 벌하시었다가, 죽은 뒤에는 큰 복락으로 큰 공덕을 갚으시며, 몹쓸 놈도 한두 가지 착한 일이 있으므로 천주께서 지극히 어지시어 한 가지의 착한 일일지라도 갚지 아니하심이 없기에, 세상의 작은 복락으로 그 작은 공을 갚으시고, 죽은 뒤에 큰 형벌로 죄악을 다스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착한 이가 간혹 괴로움을 당하고, 몹쓸 놈도 간혼 즐거움을 얻는 것은 그 죽은 뒤를 기다려 상과 벌을 결단하시려 함이니라.
83
29. 사람은 죽은 뒤에 영혼이 있어 상과 벌을 받느니라
84
어떤 사람이 묻기를, “세상의 상벌로는 사람을 알 추어 갚을 길이 없기 때문에 천주께서 사람에게 상벌을 내리시지 않는 것이 아니냐?” “어찌 그러하리요? 세상의 임금도 반드시 선악을 보아 벼슬도 시키고 형벌도 주거늘, 하물며 천지의 지극히 높으시고 지극히 공번되신 임금이 어찌 상벌이 없으리요? 세상에서 상벌을 온전히 아니하심은 반드시 죽은 후를 기다려 알맞게 하심이니라”
85
또 묻기를, “세상 사람이 한 번 죽으면 몸이 썩어 없어지는데, 상벌을 어디에다 베푼단 말인가?”
86
대답하기를, 사람이 죽은 뒤에 몸은 석어도 영혼은 죽지 아니하느니, 짐승의 혼은 제 몸에서 생겼으므로 배고프고 배부르고, 춥고 더운 것이 제 몸에 붙은 일만 알기 때문에, 죽으면 그 몸에 붙었던 혼도 따라 없어지고, 사람의 혼은 제 몸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몸이 생길 제 천주께서 신령(神靈)한 혼을 붙여 주셨기 때문에 제 몸 밖의 일도 좋아하고 싫어함이 있으니, 이를테면 남이 나를 기리면 내 몸이 배부를 것이 없으되, 공연히 좋아하고 남이 나를 헐뜯으면 내 몸이 아플 것이 없는데도 공연히 싫어하니, 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그 몸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짐승과 달라 영혼이 따로 있기 때문에 몸이 죽어도 영혼은 따라 죽지 아니 하느리라.
87
또 신령한 혼은 형태가 없어 불에 탈 것도 없고, 칼에 상할 것도 없으며, 또 병들 것도 없으므로 죽을 길이 없느니라. 또, 천주는 위로 천신을 내시고, 아래로 짐승을 내시고, 그 중간에 사람을 내시니, 사람의 영혼은 위로는 천신과 같고 몸은 아래로 짐승과 같은지라, 그 영혼은 신령하고 영특하기 때문에 만사를 통달하여 천신과 같고, 그 몸은 귀와 눈과 발과 입이 있기로 음식을 먹고 운동하여 짐승과 같으니, 짐승과 같은 몸이 짐승같이 죽을 제는, 그 천신과 같은 영혼은 천신같이 길이 사는 것이니, 이제 사람마다 천신이 아니 죽는 줄은 알면서 천신과 같은 영혼이 죽는다고 한다면, 이는 천신이 죽는다는 말과 같느니라. 또, 짐승은 살아서 무섭던 짐승이라도 죽으면 무섭지 아니하고, 사람은 살아서 사랑하던 사람이라도 죽으면 무서워하느니, 그 무서워하는 마음이 어찌 공연히 나리요? 짐승은 죽으면 아주 죽는 줄로 알기에 무섭지 아니하고, 사람은 죽어도 영혼이 있어, 엄한 심판을 받아 천당과 지옥의 분별을 알기에 절로 무서워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의 영혼이 짐승과 같이 없어진다면 사람 죽은 것도 짐승 죽은 것과 같아서 무섭지가 아니할 것이다. 또, 세속에 사람이 죽으면 초혼(招魂)하는 법이 있으니, 만일 영혼이 그 몸과 같이 없어지는 줄로 알면 어찌 혼을 부르는 법이 있으리요? 비록, 그 혼을 불러도 그 혼이 이미 정한 곳이 있어 제 임의로 올 수는 없지만, 혼이 있기에 부르는 것이니라. 또, 영혼은 길이 삶으로 사람마다 길이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 백 살을 살아도 몸이 죽을 때에 서러워하는 마음이 어려서 죽는 마음과 같고, 천 세 만세를 살아도 죽을 때의 슬픈 마음은 다 같은 것이니, 만일 길이 사는 혼이 아니라면 어찌 길이 살고 싶은 마음이 나리요? 비유컨대, 음식을 먹는 입이 있기에 음식은 먹고 싶은 마음이 나고, 소리를 듣는 귀가 있기에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며, 길이 사는 혼이 있기에 길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영혼은 무궁히 살아 무궁한 상벌을 받느리라.
88
30. 영혼은 반드시 즐거움과 괴로움을 받느니라
89
어떤 사람이 묻기를, “사람이 세상에 있을 때는 몸이 있기에 즐거움과 괴로움을 알거니와, 몸이 없어진 후에 영혼이 나가서 무엇으로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알리요?”
90
대답하거늘, 온갖 것이 지각이 없으면 즐거움과 괴로움을 모르고, 지각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즐거움과 괴로움을 아는 것이니, 초목은 지각이 없으므로 꽃이 피어도 즐거운 줄을 모르며, 베어도 아픈 줄을 모르고, 짐승은 지각이 있으므로 먹으면 좋은 줄을 알며, 때리면 아픈 줄을 안다. 사람은 지각이 짐승보다 만 배나 더하고, 또 신령하기 때문에 그 즐거움이 그 지각의 분수대로 더하여 짐승보다 만 밴 더하다. 그러므로 지각이 없으면 즐거움이 없고, 지각이 조금 있으면 즐거움이 조금 있고, 지각이 많으면 즐거움이 또한 많다. 사람의 몸은 다만 피와 살이니, 지각 있는 영혼이 있지 아니하면 몸만으로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알지 못해서, 지각없는 초목과 같은 것이다. 이제 먹어서 맛을 알고, 때려서 아픈 줄을 아는 것은 전혀 지각이 있는 영혼 이 알게 함이니, 그러므로 사람이 죽어 영혼 이 한 번 나가면 입에 꿀을 넣어도 단지 쓴지 알지를 못하고, 살에 칼을 찔러도 아픈 줄을 모르니, 이것으로써 보면, 영혼이 전혀 즐거움과 괴로움을 받는 근본이 되는지라, 몸에 있으나 몸을 떠나나 영혼의 지각은 마찬가지이니, 어찌 즐거움과 괴로움이 없으리요?
91
31. 천주께서 천당과 지옥을 두사, 세상 사람의 선악을 시험하여 갚으시느니라
92
천주께서 세 세계를 배치하시니, 하나는 하늘 위에 있으니, 이름이 천당(天堂)이요, 하나는 땅 속에 있으니 이름이 지옥(地獄)이요, 또 하나는 하늘 아래와 땅 위에 있으니 이름이 세상이라.
93
천주가 이 세상에 사람을 내사, 착한 일을 하고 그른 일을 하지 말라고 분부하시었으니, 그 분부에 따라 착한 이의 영혼은 천당에 올리시고, 그 분부를 어긴 이의 영혼은 지옥에 내리시니, 천당의 복은 천주의 무궁히 좋으신 영광을 보고 누림에 있으니, 세상의 복으로 비유하면 , 정승판서(政丞判書)와 감사병사(監司兵使)와 수령(守令)들의 부귀하고 영화로움이 다 임금의 손에서 나왔기에, 백관의 부귀영화가 그 임금 한 몸이 갖추 쌓이었음을 알 것이니라.
94
이제 만물을 보면, 천지의 크고 넓음과 해와 달의 밝고 빛남과 초목과 금수의 번화 기묘함과, 천신과 사람의 신령 총명함고, 여러 가지 기이한 맛과 향내와 만 가지 좋은 소리와 빛과, 만국 임금의 영화 부귀를 다 천주의 전능으로 내신 것이니, 그 내신 힘을 생각하면, 보는 즐거움이 더욱 어떠할꼬? 백관의 영화를 보면 임금의 귀함을 알 것이요, 만물의 좋음을 보면 천주의 덕능(德能)을 알 것이다. 영혼이 천당에 오르면 천주께서 그 광명한 빛을 영혼에 비추어 주사, 당신의 무한하신 영광으로 비추시고, 무궁한 복락을 누리게 하시느니라. 비유컨대 겨울에 수은을 바르고 해에 비추면, 그 거울이 해와 같이 찬란 휘황하리니, 영혼도 천주의 밝은 빛을 받아 천주의 얼굴이 영혼에 비치기를 햇빛이 거울에 비침과 같느니라.
95
또 사람이 신령한 혼이 있으므로 세상에 무슨 복을 얻어도 다시 그보다 더한 복을 구하고, 그 더한 복을 얻고도, 또 그보다 더 큰 복을 구하여 온 세상의 복을 죄다 얻더라고 그 한없는 욕망을 채우지 못하다가도, 천당에 한 번 올라 무궁한 복락을 얻은 후에야, 그 무궁한 욕망이 만족하여 다시 바랄 것이 없다. 또 세상의 즐거움은 온 몸에 골고루 받지를 못하여, 음식을 먹을 제는 입은 즐겁되 귀와 눈은 즐거움이 없고, 풍류를 들을 제는 귀에는 즐겁되, 눈과 입은 즐겁지 아니한 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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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천당의 즐거움은 그렇지가 않아서 영혼은 온전한 복락에 젖어서 안팎이 없이 즐겁고, 간 데마다 즐거우니, 세상 복은 복이 내 몸에 들어오지만 천당의 복은 내 몸이 복 속에 들어간다. 또 세상의 복은 오래 되면 시들해져서 좋은 소리도 늘 들으면 싫어지고, 맛있는 음식도 오랫동안 먹으면 물리지만, 천당의 복은 그렇지 아니하여, 오늘이 새로 즐겁고, 내일이 새로 즐거워, 날마다 해마다 새로이 즐겁고, 만 만 년 억만 년이라도 무궁무진하게 새로우니라. 또 세상의 복은 얻었다가 잃어버리는 것이지만, 천당의 복은 한번 얻으면 다시는 잃지 아니하고, 영원히 정하여 변함이 없느니라. 또 세상의 복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 년을 살지 못하고, 한 번 죽으면 만 가지 목이 다 헛것이 되어 버리지만, 오직 천당에 있는 영혼은 무한한 복을 얻어 만 만세를 살고, 무궁세를 살아, 일정한 세월이 없으며 마칠 기한이 없이 영원히 사는 중에 즐거운 마음이 세월을 잊어버리고, 천만 년을 지내는 동안에도 이 세상의 하루 같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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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지옥은 천당과 맞은 짝이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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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의 즐거움이 무궁무진한즉, 지옥의 괴로움도 그와 같이 무궁무진한지라, 지옥 가운데 이상히 뜨거운 불이 가득하여, 그 덥기가 세상 불에 비하면 만 배나 더 뜨겁다. ‘지옥의 불은 참 불이요, 세상의 불은 그림의 불과 같다.’ 하였으니, 그 모질고 끔직 함은 가히 알지니라. 악인(惡人)의 영혼이 한 번 그 불 속에 들면, 불이 영혼 전체에 온전히 배어서, 마치 쇠가 풀무 속에 들어가 안팎이 없이 죄다 불이 되는 것과 같아서, 천 년을 녹여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만 년을 태워도 사라지지 아니하여 영원히 괴롭다. 또 이보다도 더한 괴로움이 있으니, 세상에 있을 적에 옳은 말을 듣고 조금만 수고를 하였더라면, 천당에 올라가 무궁한 경사와 복락을 얻었을 것을, 내 탓으로 쉬운 일을 아니하고, 번개 같은 세상의 잠깐 동안의 즐거움을 위하다가, 이제 이러한 불 속에 들었도다. 한번 들 매 다시 나갈 기약이 없어, 아프고 쓰리고 슬픈 마음이 그 뜨거움보다도 만 배나 더하니, 세사의 만 가지 흉악한 형벌로, 만 가지 혹독한 괴로움을 죄다 모아 한 몸에 받아도, 이 지옥의 형벌에 비하면 만 분의 일도 되지 못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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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천주의 무궁하신 전능을 생각하면 알 것이니, 지극히 밝은 것을 내고자 하시어 해를 내시고, 무한히 큰 것을 내고자 하시어 하늘을 내시고, 지극히 즐겁게 하고자 하시어 천당을 두시고, 지극히 괴롭게 하고자 하시어 지옥을 두셨으니, 이제 지옥의 괴로움이 얼마나 끔찍 하리요? 또, 불을 가지고 말할지라도 천주의 신통하신 힘을 알 것이니, 장작불과 숯불은 몹시 뜨거워 아무 것이나 눈 깜짝할 사이에 태워버리고, 비위의 불은 뜨겁지 아니하되 음식을 삭히는 데는 장작불보다 낫고, 석류 황(石硫黃;유황)은 손으로 만져도 덥지 아니하되 다른 불에 닿으면 갑자기 일어나니, 다 같은 불이로되 그 형상이 각각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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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두신 불은 또 이 세 가지 불과 크게 달라서, 형상이 있으나 형상 없는 영혼을 능히 태워, 계속 태워도 꺼지지 아니하게 하시니, 가령 지옥에 있는 사람더러 천주가 이르시기를, “한 마리의 개미로 하여금 바다 물을 일 년에 한 모금씩 물어내게 하여, 그 바다 물이 다 마르거든 지옥의 괴로움을 그치니라” 하신다면, 오히려 바라는 마음이 아득하기는 하나, 그 바닷물은 언젠가는 마를 때가 있으려니와, 지옥의 괴로움은 영원히 그칠 때가 없는 것을 알므로 바랄 것이 아주 없으니, 그 쓰리고 아픔이 어찌 비할 데가 또 있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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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묻기를, “죽은 후에 화복이 비록 있다 하나, 세상의 아무도 가 본 이가 없고, 이 세상 복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받으니,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는 것이 좋다. 죽은 뒤의 일을 누가 알리요?”
102
대답하기를, 세상 일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써 다 믿을 길이 없으며, 이치로 생각하여야 참으로 미쁜 것이다. 달을 눈으로 보면 쟁반만 하지만, 이치로 생각하면 쟁반보다 억만 배나 더 크니, 눈으로 작아 보이는 것은 믿을 바가 못 되고, 이치로 생각해서 큰 것이 옳으니라. 또 손가락으로 높은 산을 가리키면서 눈으로 보면 손가락이 그 산보다 더 높으나, 이치로 생각하면 그 산이 손가락보다 억만 배나 높으니, 눈으로 보아 산이 낮아 보이는 것은 믿을 것이 못되고, 이치로 생각해서 산이 높은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이 눈으로 보지는 못하더라도, 이치로 생각하면 미더운 일이 많으니, 유복자(遺腹子)는 그 아비를 보지 못하였어도 제 몸이 생긴 것을 헤아려 보면 아비 있는 줄을 알고, 사람의 조상을 본 이가 없어도 그 자손을 보면 조상이 있는 줄을 믿을 수 있고, 시골 백성이 임금을 뵙지 못하였어도 나라가 있으며 정사(政事)가 있는 것을 보면 임금이 계신 것을 믿고, 또 외국 백성이 중원(中原)에 황제가 있어 사람을 상주고 벌주는 것을 보지는 못하였더라도, 제 나라 임금이 상주시고 벌주시는 것으로 미루어, 중원에도 황제가 있어 상 벌주는 것을 믿는다. 이 세상 사람이 비록 천주를 뵙지 못하고 천당에 가 보지 못하였으나, 세상 임금의 상과 벌을 보면 어찌 임금의 무궁하신 상벌이 없다 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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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는 천주께서 친히 만민(萬民)에게 이르시고, 만세 성인들이 한 결 같이 일러오는 바이다. 아! 천지가 없으면 천주가 계신 줄을 모르려니와, 천지가 이미 있으니 반드시 천주가 계실 것이요, 천주가 지극히 의롭고 지극히 공번되시니, 반드시 상주시는 천당과 벌하시는 지옥을 마련해 놓은 것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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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람마다 본성으로 말미암아 영화롭고 즐거운 사람을 보면 반드시 말하기를, “하늘 위의 사람이라” 하니, 이는 스스로 하늘 위에 즐거움이 있는 줄을 알고 하는 말이요, 천둥소리를 들으면 놀라고 두려워하여, 문득 자기 죄악을 생각하여, 혹시 천벌을 받을까 두려워하니, 이는 스스로 천주가 악한 이를 벌하시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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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천주의 상선벌악(賞善罰惡)하시는 도리를 듣고, 생전사후(生前死後)의 사정을 알면서도, 오히려 아득히 깨닫지 못하고, 번개 같은 세상의 잠깐 동안의 즐거움을 위하고 눈앞의 좋음을 잊지 못하여 헛것을 참 것으로 알고, 중한 일을 경한 일로 알았다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눈으로 보고, 몸으로 당하여 놀라고 슬퍼하여, 아무리 울고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이 세상에 있을 적에 믿고 선을 행하였으면 공이 되어 유익하려니와, 죽은 후에 비록 마음은 없어도 할 일 없이 믿으나, 이때에 믿는 것이 무슨 효험이 있으며, 어찌 때가 늦지 아니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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