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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에게 절교하는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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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4.
신채호
1
친구에게 절교하는 편지
 
 
2
평일에 눈을 부릅뜨며 팔뚝을 뽐내고 천하 일을 논란하던 노형으로 일진회(一進會)에 들었단 말인가. 항상 하늘을 부르짖으며 땅을 두드리고 나라를 위하여 한 번 죽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던 노형으로 일진회에 들었단 말인가. 온 세상 사람이 모두 일진회에 들더라도 노형은 홀로 들지 아니할 줄로 믿었던 노형으로서 일진회에 들었단 말인가.
 
3
노형이 향일(向日)에 우리나라는 4천 년 이래로 하루도 완전한 독립이 없음을 홀연히 탄식하기에 노형의 조국을 나삐 여기는 것을 의심하였으나 일진회에 들 줄은 알지 못하였으며, 노형이 향일에 우리나라 힘으로는 필경 자주독립하지 못하겠다 하기에, 노형의 동포를 업수이 여기는 것을 애석히 여겼으나 일진회에 들지는 알지 못하였으며, 노형이 향일에 민영환(閔泳煥)·최익현(崔益鉉)·이준(李儁)·김봉학(金奉學) 제씨는 다만 그 몸만 죽고 나라에 이익이 없는 줄로 평론하기에 노형의 언론이 돌연히 변하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일진회에 들 줄은 알지 못하였으며, 노형이 향일에 송병준(宋秉畯)·이완용(李完用)·박제순(朴齊純)·이지용(李址鎔)도 역시 한때 영웅이라 목전에 부귀가 자족하니 국가와 인민의 멸망하는 것을 누가 알리요 하기에, 노형의 사상이 홀연히 변하는 것을 민망히 여겼으나 일진회에 들 줄은 알지 못하였으니, 노형으로서 지금 일진회에 들었단 말인가.
 
4
오호라! 내가 이로 좇아 노형과 절교하노니, 노형이 지금 일진회에 든 바에야 내가 비록 아니 끊고자 한들 아니 끊을 수 없으며, 노형이 스스로 조국을 잊은 바에야 내가 비록 아니 끊고자 한들 아니 끊을 수 없으며, 노형이 스스로 동포를 잊은 바에야 내가 비록 아니 끊고자 한들 아니 끊을 수 없으니, 오호라! 내가 노형을 끊지 아니하면 조국이 장차 나를 끊을지며, 동포가 장차 나를 끊을지니 내가 노형은 끊을지언정 어찌 조국과 동포에게 끊치리요. 그러나 내가 지금 노형을 끊지 아니할 수 없는 경우를 당하여 또 참아 절교치 못하는 인정이 있으니, 슬프다! 노형이여, 우리가 지금 아니 끊지 못할 경우를 당하여 가히 끊지 아니할 도리를 연구하여 볼지니, 끊지아니 할 도리는 다름 아니라 노형이 스스로 조국과 동포를 배반치 않으면 내가 언감히 노형을 끊으리요.
 
5
그러나 노형인들 어찌 조국과 동포를 끊고자 하리요마는 다만 일시 오해를 인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의 이 혈루(血淚)를 씻고 권고하는 말을 청컨대 정신을 차려 들을지어다.
 
6
태백산 단목(檀木)하에 강림하사 동방에 처음으로 임군되신 것은 단군의 독립이요, 서로 중원을 쳐 이기어 만리의 토지를 넓히고 동으로 일본을 쳐서 신라와 백제를 구원한 것은 광개토왕의 독립이요, 평양성을 굳게 지켜 적병을 아이같이 희롱하고 청천강 큰 싸움에 중국의 십만 강병을 무찌르던 것은 을지문덕의 독립이요, 비밀히 당나라에 들어가 적국의 흔단을 타서 이웃 나라를 여러 번 쳐 이긴 것은 개소문(蓋蘇文)의 독립이요, 당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고구려 백제의 강토를 다 회복하고 대판(大阪)을 핍박하여 일본을 항복 받던 것은 문무왕의 독립이요, 오직 전조의 중세 이후로 미약하게 되었으나 이것은 다만 용렬한 임군과 혼암한 신하의 자취지화(自取之禍)요, 국민의 독립정신은 하루도 없어지지 않았거늘 지금 노형이 4천 년 이래로 하루도 완전한 독립이 없다 하며, 다른 사람의 힘을 빌어 독립을 하고자 하면 이것은 물에 들어가면서 빠지지 않기를 요구하는 것이니, 미국의 힘을 빌어 독립코자 하면 미국의 노예를 면치 못할지며, 프랑스의 힘을 빌어 독립코자 하면 프랑스의 노예를 면치 못할지어늘 지금 노형은 장차 일본인의 퇴물상을 빌어 충복지계(充腹之計)를 하고자 하니, 이것은 몇 백 세라도 걸인의 이름을 면치 못할지며, 민·최·리·김의 한 번 죽음이 외양으로 보면
 
7
비록 아무 이익도 없는 듯하나, 그 실상으로 볼진댄 지금 교육이니 실업이니 국권회복이니 하는 것이 모두 이 제공의 끼친 바람이거늘, 노형이 어찌 쓸데없이 그 몸만 죽음이라 하며, 저 오적(五賊) 칠적(七賊)의 잠시 득세가 비록 영광인 듯하나 대저 한 집과 한 사람만 망케 하더라도 반드시 현저한 앙화를 받거든, 하물며 우리 4천 년 국가기업을 전복하여 2천만 인민의 생명을 끊어 버리고 어찌 아무 일도 없으리요? 사람이 미워하고 귀신도 노여워하여 앙화 받을 날이 불원하였거늘, 노형이 지금 저것들도 또한 일시 영웅이라 하니, 노형이 오해가 어찌 그리 심하뇨?
 
8
오호라! 미주에는 원래 나라가 없다가도 워싱턴(華盛頓)이 일어나매, 국가가 성립되었거든 하물며 4천 년 혁혁한 독립국이며, 서양에는 인구가 60여 명에 지나지 못하는 독립국도 있거든 하물며 2천만 당당한 대국 인민이리요. 지금 노형이 비루하고 용렬한 성질로써 위로는 옛적 사람을 칭탁하며, 아래로는 세상 사람을 속여 구구한 생명을 외국인에게 의탁코자 하니 참 가히 애석한 일이며, 충의가 있는 자는 광망한 사람으로 돌리며, 역적을 신명같이 추앙하여 자기의 사정으로써 만세의 공론을 돌아보지 아니하니 참 가히 애통할 일이로다. 노형이 근일에 국민신보와 대한신문의 두 마귀의 신문을 구람하더니 홀연히 혼을 잃었는가, 노형이 근일에 개진교육회(開進敎育會)와 대동학회(大東學會)의 두 마귀 당파를 추축하더니 홀연히 지조를 변하였는가.
 
9
슬프다, 노형아! 저희들의 말을 나도 또한 들었노라. 저희들이 항상 하는 말이 일진회원이 날로 강성하고 의병의 당류가 날로 감쇠하여야 생령을 가히 보전하며 국권도 가히 회복하리라 하나니, 의병의 해가 없는 것은 아니로되 그 해는 다만 외면상으로 생명과 재산의 해뿐이거니와 일진회의 해는 곧 내면상으로 국민의 정신을 해롭게 하나니, 국민의 정신을 이미 잃은 후에야 어찌 국권을 회복하리요? 이것은 나의 허희 탄식하는 바이며, 저희들이 항상 말하되 참 일본을 친근히 하는 자라야 능히 일본을 배척한다 하니 대개 그 뜻인즉 겉으로는 일본을 친밀히 하여도 속으로는 일본을 배척한다함이나, 그러나 한 번 일본을 친하여 5조약이 성립되었고, 두 번 일본을 친하여 7협약이 성립되었고, 세 번 일본을 친하여 군대가 해산되었고, 네 번 일본을 친하여 한국 내에 식민하는 문제가 제출되었고, 전선·우편도 일본을 친하여 빼앗겼으며, 철도·광산도 일본을 친하여 빼앗겼으며, 삼림·어장도 또한 일본을 친하여 빼앗겼으니, 일본을 친하여 이러한 일은 있거니와 하루도 참 배일(排日)하는 것은 보지 못하였으며 듣지도 못하였으니 알지 못할 게라. 저희들이 장차 우리 4천 년 국가가 영망(永亡)하고, 2천만 동포가 몰사한 후에 새로이 총중(塚中) 고골(枯骨)을 일으키며, 천상(九天) 귀졸(鬼卒)을 몰아 저희 소위 배일이라는 것을 행하려는지? 이것은 나의 항상 통곡하는 바이며, 저희들이 또 말하되 지금 시대는 인종끼리 서로 전쟁하는 시대라. 황인종이 성한즉 백인종이 쇠하고 백인종이 흥한즉 황인종이 망하나니, 우리들이 일본과 한국은 같은 황인종이라 불가불 사소한 혐의를 잊어버리고 동양제국이 서로 단결이 되어 저 가장 강한 일본을 맹주로 추천하고, 한·청 양국이 차례로 진보하여야 가히 서로 보전하리라 하나니, 오호라! 저희들이 취중에 취담을 하는가, 몽중(夢中)에 섬어를 하는가.
 
10
가령 어느 사람이 자기의 의복은 남을 맡겨 다 열파(裂破)하며, 남전북답은 남에게 다 빼앗기고 기한이 막심하여 사생(死生)이 당도하였거늘, 산통을 흔들어 점을 쳐 가로되, 몇 해 후에는 우리 집에 장차 큰 환난이 있으리니 불가불 예방하여야 하겠다 하여 목전에 사생은 묻지도 아니하고, 후일에 환난만 생각하면 어찌 우매한 사람이 아니리요? 지금 저희들의 황인 백인의 전쟁을 걱정함이 또한 이와 다를 것이 없으니, 이것은 나의 기가 막혀 어떻다 말할 수가 없는 바이로다.
 
11
슬프다! 노형이 일진회에 든 것이 어찌 노형의 본심이리요? 잠시 오해로 인하여 저 지경에 이른 것이니, 그렇지 아니하면 노형의 고명강개(高明慷慨)한 지조로 어찌 일진회에 들었으리요.
 
12
이 내 한 몸이 아무리 작을지언정 잘 쓰고 보면 워싱턴·마치니가 될지며, 잘못 쓰고 보면 송병준·이용구(李容九)가 될지니, 노형이 워싱턴·마치니가 되고자 아니하고 기어코 송병준·이용구가 되고자 함은 웬 까닭이뇨?
 
13
노형이 이 말을 들으면 반드시 나같이 용렬한 사람에게 어찌 이러한 책망을 하느뇨 할지나 이것도 또한 오해이니 워싱턴·마치니가 되려 하면 비록 되지 못할지라도 가히 현인은 될지라.
 
14
부모·조상이 반드시 등을 두드리며 가로되,
 
15
‘나의 좋은 아들, 좋은 손자’이라 할지며
 
16
선왕조 신령께옵서도 반드시 손을 잡고 가로되,
 
17
‘나의 충신·의사라’할지며
 
18
행인·과객도 그 사던 곳을 가리켜 가로되,
 
19
‘이것은 조국을 위하여 피를 흘린 자의 촌이라’할지며
 
20
붓을 잡고 《사기》를 짓는 자가 반드시 가로되,
 
21
‘이것은 동포를 위하여 몸을 바친 자’라 하려니와
 
22
송병준·이용구가 되려 하면, 그 소원의 성불성(成不成)은 어떠하든지
 
23
부모·조상도 ‘나의 자손이 아니라’할지며
 
24
선왕·신령도 ‘나의 신민이 아니라’할지며
 
25
맥고모자의 그림자만 보아도 뭇 아이가 모이어 꾸짖으며
 
26
성명이 현로(現露)하는 곳에는 천만 인이 모두 침을 뱉어, 살아도 영광이 없고 죽어도 씻을 수가 없으리니
 
27
노형아, 노형아! 무엇이 괴로워서 그리하는가?
 
28
오호라! 노형이 참아 조국과 동포를 끊지 못하면, 나도 또한 노형을 차마 끊지 못하려니와 지금 노형이 스스로 조국과 동포를 끊으니 내가 어찌 노형을 끊지 않으리요?
 
 
29
⎯《대한매일신보》 국문판(1908. 4. 17~21).
【원문】친구에게 절교하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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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채호(申采浩) [저자]
 
 
  1908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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