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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로초(不老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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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 6
계용묵
1
불로초(不老草)
 
2
- 묘예(苗裔)의 삽화 -
 
 
3
봄밤이 곤하단 말은 늙은이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다. 춘곤을 느낄 기력조차 인젠 다 빠졌는지 그렇게도 고소하던 새벽잠이 날마다 줄어드는 것 같다.
 
4
어제 저녁에도 며느리가 못자리에 오리를 보고 들어와 누운 다음에도 담배를 아마, 다섯 대는 나마 태우고 누웠으나, 눈을 붙이기까지에는 자정도 훨씬 넘었을 것인데, 한 잠도 달게 들어 보지 못하고 첫닭의 울음소리에 그만 눈이 띄어 가지고선 아무리 태수를 해야 다시는 잠이 들지 않는다.
 
5
닭도 이젠 두 홰나 울었으니 머지않아 동은 트겠으나 잠시라도 눈을 좀 붙여 볼까, 눈에 힘을 주고 누웠다 못해 할아버지는 이불을 제치고 일어나 담배를 또 한 대 재여 문다.
 
6
“어!”
 
7
벙긋 하고 성냥불이 방안을 비추자 어미의 품속에서 자는 줄만 알았던 손자가 언제 깨어 있었던지 물고 늘어졌던 젖꼭지를 놓고 녀석이 머리를 들며 히쭉 웃는다.
 
8
그러나 할아버지는 모르는 체 담배만을 붙이고 나서는 불을 죽인다. 그것이 또 일어나 설레이게 되면 진종일을 밭갈이에 시달리다가 곤히 든 에미 애비의 잠이 깨일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담배도 조심히 빨고 있었으나.
 
9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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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면 언제나 하던 버릇대로 손자는 또 놀자고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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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할아버지는 못 들은 체 담배만 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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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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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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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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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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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네도 건네도 수작을 받지 않으니 손자는 되어지게 소래기를 지른다.
 
18
하는 양을 보니 그대로 잠자코 있으면 그런 고래 소리가 필시 또 나오고야 말 것 같다. 대꾸를 아니 하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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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 깨갔다! 어서 자라. 조꼼 있으문 밝갔는데. 우리 이제 밝은 댐에 니러나서 놀자구나. 용티 내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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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다시피 얼린다.
 
21
그러나 손자는 제 청을 들어주지 않고 거역하는 것이 참을 수 없이 분한 듯이 말끝도 채 떨어지기 전에 ‘으아!’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22
“야! 야! 머시기 엉야! 데…….”
 
23
울음을 그칠까 할아버지는 얼렁뚱땅 달래며 하는 수 없이 성냥을 그어 등잔에 불을 밝힌다.
 
24
그러나 그것도 손자는 제 소원이 아니였던 듯이 에미의 팔고비에 파묻은 머리를 들 염도 않고 그냥 엉엉 응석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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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쌔기두 참! 고롬 일러루 오갔네”
 
26
불러 보아도 머리를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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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좀 씩씩 자기나 하람! 무슨 일이 바빠서 신새박부터 니러나서 놈두 못 자게 또 설레바릴 틸래네!”
 
28
하는 수 없이 할아버지는 손을 내밀어 손자의 손목을 잡아 끈다.
 
29
그래도 손자는 찌뿌둥한 채, 그러나 끄는 대로 어미 애비의 배를 되는대로 차부도 없이 타고 넘으며 끌리어 와선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 엉덩이를 둘러 대고 털썩 안긴다.
 
30
“다 죽어 가는 늙은이 물팍이 머이 그리 도와서 밤낮 안기갔다구만 서두네? 서둘길!”
 
31
그러면서도 할아버지는 새벽녘의 한기가 춥지는 않을까 안기는 손자를 이불귀로 감싼다.
 
32
그적에야 만족한 듯이 손자는 엉석 울음을 뚝 끊이고 할아버지를 돌아다 보며 히죽 웃는다.
 
33
밉고도 고운 것은 그것이었다.
 
34
자기의 품안이 그렇게도 좋아서 만족히 히쭉거리는 웃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할아버지는 모든 감정을 왼통 손자에게 빼앗기우는 듯이 야기에 역겹던 귀찮음도 봄눈처럼 금시 스러지며 못 견디게 귀여움을 참아낼 길이 없다.
 
35
“아이 아쌔기두!”
 
36
할아버지는 으스라지게 바싹 껴안으며 손자의 뺨에다 뺨을 대이고 비빈다.
 
37
“거저 너 까타나 내레 못 죽누나!”
 
 
38
오늘도 날씨는 좋을 것 같다. 새벽 안개가 마을 안에 자욱하다.
 
39
아직 해도 뜨기 전인데 소 잔등에다 연장을 싣고 떠나는 밭갈이꾼이 벌써 신작로로 연줄 닿는다.
 
 
40
“놈덜은 발쎄 밭갈일 다 나가누나”
 
41
바깥을 내다보던 할아버지는 마당을 쓸고 아들에게 우리는 떠나기가 늦어지지 않았나 재촉이다.
 
42
“소레 죽을 채 먹디 않아서 그래요. 이제 떠나디요.”
 
43
그동안에나 죽을 다 먹었나 아들은 빗자루를 든 채 소궁이로 가서 넘석이 들여다본다. 아직 소는 죽을 반도 못 먹었다. 콩이 떨어져 맨 여물만 익혀 주었더니 맛이 덜 나는 모양이다.
 
44
“식디 않안? 식어슴 더운 걸 좀 타 주람!”
 
45
“머 괜티않아요.”
 
46
“한참 밭갈이에 콩을 못 네 줘서 그르누나! 그게 절반은 더 농사를 제 주는 걸…….”
 
47
할아버지는 한숨과 같이 끙 하고 갑으며 길머리에 쉬쌀 바가지를 당기어 들고 닭을 부른다.
 
48
“쥐주우 - 쥐주 쥐주쥐주…….”
 
49
“나아 -나아 -.”
 
50
우끗 가마니틀에 붙어서 혼자 자질을 하며 놀기에 세상을 모르던 손자가 닭 부르는 소리를 듣더니 그만 또 제가 주겠다고 소래기를 지르며 달리어온다.
 
51
닭의 모이를 제 손으로 주는 걸 손자는 왜 그리 좋아하는지 모른다. 아침 저녁으로 모이 주는 기색만 보이면 한사코 쫓아와서 모이 그릇을 빼앗는다.
 
52
처음에는 모이를 함부로 쥐어 뿌릴까 염려스러워 맡기기가 자못 안심치 않았으나 지나 보니 인젠 그것도 셈속이 빤한 것 같았다. 이러이러하게 모이는 주어야 된다고 한 번 일러 주었더니 영락없이 이른 대로 꼭꼭 주는 것이 신통도 했다. 이미 준 모이가 한솟 없어져 닭들이 머리를 들고 다시 바랄 때가 아니면 더는 허투루 던져 주는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그게 재롱스러워서 몇 번 모이 바가지를 맡겨 보았더니 인젠 바로 닭의 모이는 제가 맡아서 주어야 할 책임이나 가진 것처럼 꼭 제 손으로 주려고 차부다.
 
53
닭들은 모두 토방 위로 올라서서 목들을 길게 빼고 꾸득거리며 모이를 기다린다.
 
54
“쥐 쥐 쥐…….”
 
55
열 마리가 넘으니 닭들은 모일 대로 다 모였는가 본데 손자는 쥐 소리를 부르면서야 닭의 모이는 주는 것인 것처럼 연방 쥐 쥐 불러 내며 쉬쌀을 집어 뿌린다.
 
56
모이가 떨어지는 대로 쫓아다니며 남보다 한 알이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눈이 뻘개서 덤비는 닭들, 그 경쟁판에서 한 다리로 깨금질하여 다니며 수고로이 모이를 줍는 한 마리의 땅뚱이 - 손자에게는 그것이 모이를 줄 때마다의 동정의 대상이 되는 듯싶었다. 모이를 거듭 던질 때마다 땅뚱이에게 주력을 하고 쥐어 뿌린다. 그러나 떨어지는 모이 좇아 우윽 하고 몰려다니는 성한 놈들의 분주통에 무더기로 떨어지는 모이는 한 번도 참예를 못하고 번마다 밖으로 밀리어 나와선 알주이밖에 더는 못 한다.
 
57
손자는 혼자 얻어먹지 못하는 그 땅뚱이가 가엾어 보였던지 모이를 주어 보다 주어 보다 못해 그만 바가지를 놓고 토방으로 나서더니 그중에서도 제일 미꿀스럽게 덤비며 어린것들을 무시하는 묵은 수탉을 통통거리며 쫓아낸다.
 
58
그러나 수탉은 쫓을 때마다 성큼성큼 피할 뿐, 돌아만 서면 여전히 덤비기에 조심도 않는다. 몇 번이고 쫓아 보아도 쫓을 수 없는 수탉임을 안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응원을 청하는 듯이 수탉을 가리키며 손목을 잡아 끈다.
 
59
할아버지는 손자의 그 착한 맘씨에 놀랐다. 아직 엄마 아빠 소리밖에 말도 할 줄 모르는 인제 겨우 두돌잡이에게 벌써 그런 착한 마음씨가 깃들었다니! 악할 줄 모르고 선을 위하여 정성을 베푸는 마음! 그것이 예로부터 농가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자기의 집에서도 대를 이어 내려왔음을 안다. 자기 아들도 그런 마음을 받았다. 이제 거기, 억센 힘, 굳은 의지가 배양만 된다면, 그리하여 천여 두레의 물을 단숨에 쾅쾅 퍼낼 수 있는 장정이 되어 주기만 한다면 자기는 게서는 더 손자에게 바랄 것이 없었다. 손자의 그 싹트는 귀여운 마음을 북돋아주는 의미에서라도 그가 원하는 대로 당장 그놈의 수탉을 몰아내어 주고는 싶었으나, 변소 출입도 자유롭지 못한 풍맞은 다리는 문턱 넘어 토방도 천릿길이었다. 지팡이를 들어 쉬쉬 내둘러 보았으나 그것은 손자의 쫓는 힘에도 및지 못했다. 닭들은 지팡이가 나올 때마다 머리를 한 번씩 들어 볼 뿐, 그저 그것이었다.
 
60
정말 인젠 죽은 목숨인가보다 할아버지는 느껴진다. 두돌잡이의 어린것만치도 마음의 자유를 행사할 수 없다니!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그걸 등에다 업고, 십 리나 넘는 들길에 젖을 먹이러 진날 마른날이 없이 다녔는데, 날로 치면 한 해도 못 흐른 그 짧은 세월에 앉아서 뭉개던 손자는 마음대로 척척 일어서 걸을 수가 있고 걸을 수 있던 자기의 다리는 걸음이 여물수록 무거워만 지고 - 젊어선 노새 다리라고 소문을 놓았던 그 다리의 힘도 인젠 자기의 것이 아니다. 아주 손자에게 물려나 주고 만 것 같다.
 
61
그러나 아직 마음만은 조금도 시들지 않은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장한 일 같다. 비록 몸은 건강이 허락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음만은 조금도 다름없이 물이나 한 천 두레, 밭이나 한 겻 갈이쯤은 쉬지 않고 단숨에 푸고, 매내일 것 같은 싱싱한 젊음이다.
 
62
몸뚱이는 썩어서 형체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미 다리의 힘이 손자에게 물리어졌을진댄 늙어도 늙지 않는 그 마음조차도 영원히 물리어져 두 마음의 힘이 서로 합하여 한 사람이 두 몸의 일을 능히 해낼 수 있는 그런 억센 힘이 길리어지는 도리는 없을까? 저놈이 일어설 때에 호미를 들고 일어섰거니 너도 농사 귀신이 될 것만은 염려없이 마음 놓고 죽겠으나, 앉아서나마 그 솜씨를 못 보고 죽게 될 것임이 길이 미련에 남는다.
 
63
솟구쳐 넘치는 늙지 않는 마음, 그 마음으로 정성껏 다루고 싶은 논밭 - 그 논, 밭의 푸근한 흙, 그 흙의 향기를 다시는 맡아 보지 못하고 죽다니! 하니 이미 살은 희수(稀壽)의 칠십 여생도 못내 짧아 보인다. 죽기 전에 마음에 남은 젊은 힘을 마음껏 흙 속에다 왼통 부어 넣어 보지 못할까 생각을 하면 남들이 새벽부터 메고 나서는 연장이 여간 부러워지는 것이 아니다, 한시가 새로운 이 파종기에 다리를 못 쓰고 앉아서 뭉개다니! 먹고 사는 인간이 봄이 두려운 것도 같아 아들의 밭갈이가 늦어지는 것도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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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이전 거 죽 다 먹디 않았네? 소레!”
 
 
65
한낮에 가까운 볕은 녹여나 낼 듯이 장글장글 또 방안으로 기어들이 시작한다.
 
66
아들을 재촉해서 밭으로 내어는 보냈다고 해도 제 몸이 밭으로 못나가게 되는 것이 아침 한겻의 한이었는데, 뉘가 밭을 가는지‘외나마 마라 꼬 꼬 -’ 하는 소 모는 소리가 연방 뒤꼍으로 들려와 그러지 않아도 봄뜻에 서둘던 할아버지의 마음은 더 한층 보깨인다.
 
67
김선달네 밭일까? 김선달네는 보리를 심는댔으니까 밭은 벌써 갈았을 것인데 송서방네 밭임직하다. 알면 뭣 하련만 밭갈이에로만 향하는 마음은 그저 앉아 있지를 못하게 한다. 지팡이를 당기어 뒷문을 민다.
 
68
그러나 산탁 아래 경사진 송서방네 밭에는 밭갈이꾼들이 아니라, 메를 캐는 마을 처녀들이 한 밭 둘러앉아 오구장단일 뿐이다. 어디서 가는 밭이었을꼬? 가만히 귀를 모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는 것이 없다. 분명히 소 모는 소리는 들렸는데…… 한참이나 주위의 소리에 귀담아 힘을 주고 더듬어 넣었으나 메 캐는 아이들의 재갈거리는 소리밖에는 역시 더 들려오는 소리가 없다.
 
69
“어!”
 
70
손자의 부르는 소리가 귓가에 어렴풋하다. 할아버지의 눈은 게슴츠레 떴다 감긴다.
 
71
“어어!”
 
72
좀더 큰 소리에 할아버지의 눈은 좀더 크게 뜨인다. 그적에야 할아버지는 볕이 간지러워 휘즈믓이 눈이 감겨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73
든 듯이 들리지도 않는 잠에조차 따라다니는 연연한 밭갈이 - 결코 꿈은 아니었는데, 없는 소리가 밭갈이로 다 들리고 - 이게 모두 몸이 허약해진 탓이 아닐까? 인제 정말 며칠 못 가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문득 든다.
 
74
잠을 실어오는 볕이 싫다. 눈이 시려 자리를 고쳐 앉으려는데,
 
75
“어!”
 
76
또 손자는 소리를 건넨다.
 
77
무슨 장난을 하면서 자꾸만 그리 보라고 소리를 연방 지를까, 할아버지는 눈을 비비며 머리를 든다.
 
78
자기에게 향하여 할아버지의 고개가 들리는 것을 본 손자는 웃음으로 히쭉 한 번 받더니 어느 틈에 가져갔는지 들고 섰던 할아버지의 담뱃대를 방바닥에 대고 쪼으며 겨석겨석 걸어 나간다.
 
79
담뱃대가 상하나 보아 눈이 둥그레지던 할아버지는 그것이 논을 쫍는 시늉인 것을 알자 그만 치뜨이던 눈이 커지다 말고 버썩 한 무르팍 걸음을 내놓는다. 손자의 마음에도 어느 새 봄은 온 것이다. 늙도록 매고 심고 할 영원한 봄의 마음, 그 마음은 이제 봄과 함께 손자에게도 깃들여 왔다. 자기는 아니 잊을 수 없는 봄을 손자는 이렇게 맞아들인다. 몸은 이미 반이나 죽은 목숨이래도 젊은 대로 시들지 않고 자꾸만 흙 속에 부어 넣고 싶은 마음, 그 마음조차 인젠 손자에게로 물러가는 것 같은 것이 마음껏 흡족하다.
 
80
“논을 가누나! 네레!”
 
81
대통이 지치러질 생각도 잊고 할아버지는 소리를 지른다.
 
82
손자는 더욱 신이 나서 그저 머리를 수굿한 채, 거불거불 쪼으며 나간다. 건너쪽 바람벽에 턱 하고 대통이 부딪친다. 마치 논두렁에 가래광이가 닿았을 때와도 같이 손자는 우뚝 걸음을 새우고 잠깐 허리를 펴 쉬는 시늉을 하더니 다시 돌아서 장한 듯이 힐긋힐긋 할아버지를 곁눈질하며 또 돌아 나온다.
 
83
사실 할아버지는 장하다고 안다. 그게 다 장래 제 구실을 말하는 징조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84
“소리를 허멘서 쫍자구나! 내 메기니께니”
 
85
정말 논을 쫍고나 있는 듯이 할아버지는 목청을 놓는다.
 
86
“에헤야 헤에 - 야 에야라 헤요 -.”
 
87
“헤야 헤야 헤요.”
 
88
손자도 받았다.
 
89
받는데 할아버지의 흥은 더욱 돋구인다.
 
90
“에헤야 헤헤 - 야 에랴라 헤요 -.”
 
91
“헤야 헤야 헤요.”
 
92
“에헤야 헤헤 - 야에야라 헤요 -.”
 
93
“헤야 헤야 헤요.”
 
94
“잘 쫍누나 참!”
 
95
흥에 실린 할아버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 부성스런 무르팍을 탁 친다.
 
96
“농사허는 집 티구 밥 굶는 집 없느니라. 농사허는 나라 티구 흥허디 않는 나라 없구 - .”
 
97
알아나 듣는 듯이 손자는 히쭉 웃는다.
 
98
할아버지는 이 재미에 산다.
 
99
“어응?”
 
100
손자는 또 소리를 먹이라는 재촉이다.
 
101
그것은 진종일을 하재도 싫지 않은 청이다.
 
102
“에헤야 헤에 - 요 에야라 헤요.”
 
103
“헤야 헤야 헤야.”
 
104
“뿌리는 씨 씨마다 싹이 트고 -.”
 
105
“…….”
 
106
“트는 싹마다 이삭이 맺혀 -.”
 
107
손자의 혀는 돌아가지 않으나 마나 할아버지는 혼자 흥에 겨웠는데, 마당에 신 끄는 소리가 들린다. 자구를 밟으러 갔던 에미가 낮밥을 지으러 돌아오는 참이다.
 
108
“엄마! 젖!”
 
109
에미의 빛이 보이기가 바쁘게 손자는 담뱃대를 집어던지고 달려나와 치맛귀를 붙들고 가슴으로 대고 추어오른다.
 
110
“젖! 으응? 젖!”
 
111
“야레 와 이리 뎀베네! 큰아버지 시당하시갔는데 진지 제 디리구 보자꾸나?”
 
112
“아니로다 메느라! 걸 어서 젖 메게라. 난 밥 안 먹구 이제 죽어두 맘이 든든하갔다. 오늘은 그 재석이 하는 지냥이 거저 농사 수엽이로구나! 농사 -.”
 
 
113
마치 자기의 마음을 개완이 물릴 데가 없어 세상을 못 떠났던 것처럼 손자가 논을 쫍던 흉내를 보고는 인젠 죽어도 마음이 든든하겠다고 그렇게도 만족해하더니 그날 밤 할아버지는 아랫도리로만 몰려다니던 풍이 윗도리에 까지 치밀어 오금을 쓸 수 없다.
 
114
자다가 깨니 두 손에 맥이 다 돌지 않는다. 머리맡에 요강도 임의로 당길 수가 없었다.
 
115
“야아!”
 
116
할아버지는 금방 죽는 것만 같아 아들을 부른다.
 
117
그러나 곤하게 든 잠이요, 게다가 첫잠이 든 아들의 잠귀는 십 리나 처럼 멀다.
 
118
“야아!”
 
119
“야아!”
 
120
할 이야기를 미처 하지 못하고 죽게 되지는 않을까 할아버지는 연방 아들을 부른다.
 
121
“야아! 큰아야!”
 
122
좀더 큰 소리가 나왔을 때에야 아들의 눈은 뜨인다.
 
123
“야 큰아야! 난 이전 죽갔는가 보다!”
 
124
희멀쑥이 풀어진 눈이 예기 없이 일어나는 아들을 바라본다.
 
125
뜻밖의 소리에 아들도 놀라 눈이 둥그레진다.
 
126
“난 이전 죽갔는가 보다.”
 
127
“즘으시다가 갑제기 그게 무슨 말씀이시우? 아바지!”
 
128
“풍은 자다가 죽는 병이래더라. 손두 쓸 수 없구나 이전. 다리 못 쓰구 손 못 쓰니 죽었디 별수 있네”
 
129
“아부님!”
 
130
“난 죽기 전에 너덜께 딱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 그른다.”
 
131
“에.”
 
132
정말 임종이나처럼 아들은 머리를 숙인다.
 
133
“나 죽은 댐에 내 몸둥이는 산에 가져다 묻디 말구 밭에 가져다 묻어 다우?”
 
134
“어머님과 합장으로 모시야디요.”
 
135
“건 너덜 인사구. 난 산에 가서 쓸데없이 썩어지기보다 밭으로 가 썩어제서 곡석을 키우는 걸금이 되구 싶구나.”
 
136
“…….”
 
137
“내 맘은 거저 죽어서두 농사를 하구만 싶어. 내가 밭으로 가믄 몬저 죽은 네 에민 산에서 좀 섭섭해할리라만…….”
 
138
“아부님!”
 
139
“와? 너덜은 그게 싫으니”
 
140
“풍이래는 건 더했다 낫다 하는 건데, 아직 그른 말씀은 마시우”
 
141
“닐흔다슷이믄 오래 살았디. 시들은 잎은 어서 떨어져야 새순이 오력을 페느니라.”
 
142
죽음이란 결코 저만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닌 것 같게 어떻게 하고 죽어야 죽는 보람이 있게 죽는 것일까 하는 것이 이 밤 따라 더욱이 간절한 할아버지다.
 
143
또 눈을 내려깐다.
 
144
닭이 운다. 베게 위에 받치운 할아버지의 귀에는 무슨 소린지 자세치 않게 어렴풋한가 보다. 눈을 떠 소리를 더듬는다.
 
145
“닭이 우나 봐요.”
 
146
“닭이 우러? 첫닭이로구나!
 
147
닭의 울음소리라는 게 할아버지는 자기의 죽음에 무슨 새날의 계시인 거나처럼 알 수 없이 반갑다.
 
148
“분명 닭이 우렀디”
 
149
“에 -.”
 
150
“그럼 머디 않아 동이 트갔구나.”
 
151
자기의 귀에도 개완이 듣고 싶은 닭의 울음소리다. 다시 들려올까 귀에 힘을 모았을 때 할아버지는 분명하게 닭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152
“우리 닭두 우느나! 야아! 큰아야!”
 
153
“에”
 
154
“네 에밀 산에 혼자 버려두기가 미안하믄 에미꺼지 파다 밭에 묻어 주람?”
 
155
아들은 어떻게 대답할 바를 몰라 망설이는데 손자가 씩씩하고 잠자리에서 눈을 비빈다.
 
156
“어!”
 
157
또 저도 깨었다는 알림이다.
 
158
할아버지의 눈은 번쩍 뜨인다. 무슨 빛이 부르는 소리인 것처럼 마음이 울리는 것이다.
 
159
“애놈아! 네가 깼구나 오나라!”
 
160
“어응!”
 
161
소리를 크게 내지르는 모양이 손을 안 내민다는 역정인가 보다.
 
162
그러나 쓸 수 없는 손이다. 내밀 수가 없다.
 
163
“난 이전 손두 못 쓴다. 이리로 네가 걸어오느라.”
 
164
“어응!”
 
165
그래도 듣지 않고 좀더 크게 소리를 지르더니 무슨 잊었던 것이 있는 것처럼 후더덕 이불을 제치고 빨간 덩이가 쭈루루 윗목으로 올라간다.
 
166
“어!”
 
167
가만히 자를 거꾸로 들고 다리를 쩍 벌려 디디며 할아버지를 쳐다본다.
 
168
시선이 마주치자 손자는 히쭉 웃고 자를 앞으로 떠받았다 당기었다한다. 물을 푸는 지냥인 것이다.
 
169
“데게 보배 아니가? 글쎄! 물을 또 푸누나!”
 
170
순간 할아버니는 잊을 수 없는 욕망이 끓어올라 돋구는 흥을 참아 낼 길이 없었다. 물 헤는 소리가 저절로 입 밖에 나온다.
 
171
“열이로오다! 열인적 스물에해 스으물헤 스으물 스으물 아 스으물 …….”
 
 
172
〔발표지〕《춘추》(1942. 6.)
173
〔수록단행본〕*『병풍에 그린 닭이』(조선출판사, 1944)
【원문】불로초(不老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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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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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 불로초 [제목]
 
  계용묵(桂鎔默) [저자]
 
  # 춘추(잡지) [출처]
 
  1942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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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