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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惡)의 성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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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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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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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날마다 다방에서 만나는 친구인데, 이 친구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몇 마디의 담화 끝에 뚝불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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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댁 주소가 어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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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어째 좀 이상한 것 같은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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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건 왜 묻느냐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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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찾아뵙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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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대답이 암만해도 좀 부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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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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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것은 내 집에서보다 이 다방에서 만나는 것이 더 쉬울 겁니다. 밤에 잘 때밖에는 집에 붙어 있지 않는 것을 알면서 그래요, 우선 코구멍만한 방이 누추까지해서 친구들한테 뵈기두 싫구 또 불도 못 넣어서 늘 냉돌입니다. 이런 방에 누굴 오라고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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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가정 방문을 은근히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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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의 부자연한 태도에 대한 방위이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또 사실이기도 했다. 피난 첫 해의 나의 숙소는 실로 그랬다. 그러한 숙소요, 그러한 생활인 줄을 이 친구도 또한 모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찾아오겠다는 친구에게 농담이 아닌 나의 대답은 물론 상대 측에게 불쾌한 감정을 주었을 것은 물론이다. 나도 그가 이러한 대답에 불쾌한 감정을 가지리란 것은 미리 짐작하고 한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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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기 때문에 나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앞으로의 나의 태도를 취하기 위해서 그의 태도를 예리하게 살피었다. 그러나 술에 취해 있는 태도 같은 그의 표정에서는 용이하게 그 무슨 별다른 표정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사람이 흥분이 되면 먼저 그 눈의 충혈로 그것을 살펴 알 수가 있는 것이나 이 친구는 본시가 눈 흰자위에 붉은 줄이 서리어 있는 것이어서 그것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래 언사에서 그 태도를 엿보려고 거듭 그에게 방문 거절의 뜻을 강조하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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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만나고 싶으면 이 다방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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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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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꼭 선생님을 찾아뵙고 할 말이 있습니다. 여하간 선생님이 계시는 시간을 알아서 찾아뵙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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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도 방문에 대한 초지를 굽히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불쑥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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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 처지요, 또 만나면 이 다방에서도 얼마든지 조용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구태여 집으로 찾겠다는 심사, 그 심사의 원인이 어디 있는 것일까, 나는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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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그와 나 사이에 무슨 감정이 있어서 또 둘이 마주앉아 담판을 지어야 할 그런 우려가 있을 것도 아니었다. 그도 피난민 나도 피난민 사고무친(四顧無親)한 이 절해고도(絶海孤島)에서 피난민끼리의 의분이란 서로가 모두 친족이나 매일반으로 두려웠다. 그런 데다가 그와 나는 글을 좋아하는 처지에서 누구보다도 좀더 각별한 사이였다. 글을 좋아하되, 그 좋아하는 분야가 다를 뿐으로 그는 시였고 나는 소설이었을 뿐이요, 문단적으로는 선배 후배의 관계에서 나에겐 그 지반이 있었고 그에겐 지반이 없었을 뿐이다. 그는 나에게 시를 가끔 제시하고 비평을 요청하였다. 나는 내가 알 수 있는 한에서 솔직히 평을 하고 하였다. 이런 관계에 혹 무슨 불평이 개재해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궁금한 대로 그 날의 해를 그 다방에서 전날이나 다름없이 보내고 저녁식사 후에 또 그 다방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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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아홉시가 되어서 이 친구가 또 나타났다. 그는 내 탁자에 와서 대좌를 하고 앉는다. 그리고 앉자마자 머리를 숙여도 아주 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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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잘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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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진정이 담기운 어조로 눈시울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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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 시간 전까지라도 선생님을 원망했습니다. 건방지다고 원망했습니다. 사람을 무시한다고, 실로 담판을 내리고 망신이라도 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 잘못인 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에게 이러한 불순한 생각을 품게 되었던 것을 사과합니다. 제가 아까 낮에 선생님 댁을 찾겠 다고 고집할 때 제 그 무지한 태도에 선생님은 응당 불쾌했을 것입니다, 아니 그 불쾌해하시는 기색도 저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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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다시 머리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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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 것인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사과 인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그의 하는 말을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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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제가 바로 요전 크리스마스 날 고아원에서 특별히 받은 선물이 있었는데 선생님 생각이 나서 양말, 털조끼, 넥타이를 갈라서 선생님에게 약소하나마 보내면서 선생님이 또 특별히 좋아하시는 우리 한국 인절미를 좀 사서 그걸 같이 봉해서 제가 있는 고아원의 고아를 시켜 바로 댁으로 보내드리었는데, 선물은 초라하지만 그래도 제딴에는 정성을 다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걸 받고도 저를 만나 이렇다 고맙다는 인사도 한마디 없는 것은 ‘자식이 사람을 어떻게 보고 누굴 거지로 알고 이런 걸 다 보내느냐’ 하는 자존심에서 저의 정성을 묵살하는 처사라고 실로 저는 분함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것은 전연 저의 오해였습니다. 그 망할 자식이 선생님에게 전하지 않고 다 팔아먹지 않았겠어요. 떡은 제가 처먹구요, 딴 친구에게도 역시 그렇게 분류를 해서 보낸 일이 있는데, 그 친구도 역시 만나서 인사가 없기에 그적에야 의심이 생겨서 그 친구와는 너나들이하고 노는 처지이기에 왜 인사도 없느냐고 따져 보지 않았겠어요. 여기서 비로소 알았어요. 이 자식이 하나도 전하지 않고 다 팔아먹지 않았겠습니까. 그래 너무도 약이 올라서 지금 막 그 자식을 두들겨 패 주고 선생님께 사과를 하려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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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장의 설화를 끝내고 차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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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무어라고 대답할 바를 몰랐다.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 고아가 딴 사람 것은 전하고 내 것만을 횡령했던들 나는 옴짝 못하고 그 친구의 오해에 봉변을 당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오해로 말미암아 그와 나와의 사이는 풀릴 길이 없이 영원히 멀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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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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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단행본〕*『노인과 닭』(범우사, 1976)
【원문】악(惡)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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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용묵(桂鎔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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