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5 ~ 1641] 조선의 제15대 왕(재위 1608~1623년). ( ->
인조)
선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중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뒤에
인목 왕후에게서 영창 대군 의가 태어나자, 그를 세자로 세우려는 소북과 자기를 세자로 지지하는 대북의 당쟁 가운데 휘말렸다.
1608년에 왕위에 오르자 대북의 득세 아래
임해군,
영창 대군 등 여러 왕자를 죽이고, 인목 대비를 서인으로 격을 내려 서궁에 가두었다.
1613년 광해군을 지지한 대북파의
이이첨,
김개 등은 영창대군과 그 주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박응서를 이용하여 역모를 조작하였다. (
계축옥사)
1623년에
이귀 등이 능양군 종을 받들어
인조 반정을 일으킴으로써 광해군은 강화에 귀양가게 되었다.
1637년, 제주도로 옮겨져 1641년(인조 19년)에 죽었다.
광해군은 왕위에 있을 때 많은 책을 펴내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사고를 정비하였고, 호패제를 실시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국경을 지키는 일과 외교에도 힘을 기울였다.
■ 즉위 이전
→ 1575 선조와 공빈 김씨 사이에서 둘째로 출생
- 선조와 의인왕후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었고, 후궁에게서 13명의 왕자를 두었지만 세자를 정하지 못함
→ 1592.4 임진왜란 발발 - 선조는 광해군을 세자 책봉하고 피난길에 오름
→ 조선 조정은 피난 중 분조를 실행하고, 이에 광해군은 한양 이북 지역에서 민심을 수습하고 의병을 모집
→ 평양 전투 이후, 명이 일본과 강화 협상을 진행하자 조선 조정은 이에 반대함
→ 1593 명이 왕위 교체론으로 선조를 압박하자, 선조는 광해군에게 15차례 양위를 권유.
→ 1606 정비 인목왕후가 첫 적자인 영창대군을 출산하자 신료들 사이에서 광해군 견제 세력 형성
→ 1608 선조 승하
■ 즉위 이후
→ 1608 즉위 - 정국은 대북파가 주도했지만, 당파와 상관없이 인재를 등용
→ 1608 경기도 지역 대동법을 실시로 농민 생활 안정과 국가 재정 확충을 도모
→ 1609 기유약조 - 일본과 국교 체결
→ 1610 회퇴변척이 발생하며 붕당 간 갈등 발생
→ 1612 순화군의 장인이 역모를 꾸민다는 진술로 인해 서인과 남인이 처벌을 받음
→ 1613 계축옥사로 서인과 남인이 실각하며 정국은 대북파가 주도 - 인목대비 유패, 영창대군 처형
→ 1613 동의보감을 목활자로 간행
→ 1618 후금의 공격으로, 명은 조선에 원병을 요구하지만 광해군은 거절 → 결국 강홍립과 1만 군사를 파견
- 쇠퇴하는 명과 강성해진 후금 사이에서 실리적 외교를 펼치지만, 서인은 반발
→ 1619 강홍립과 조선군은 심하전투에 참가하지만, 명군이 전멸하여 후금에 투항.
→ 1623 인조반정 - 서인이 폐모살제와 과도한 토목공사, 명을 배신한 군주라는 명분으로 반정을 주도
→ 1641 죄인이 된 광해군은 유배지를 옮겨 다니다 눈을 감음
3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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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경 (영의정),
허욱 (좌의정),
한응인 (우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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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 (영의정),
허욱 (좌의정),
한응인 (우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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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 (영의정),
기자헌 (좌의정),
심희수 (우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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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 (영의정),
이항복 (좌의정),
심희수 (우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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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형 (영의정),
이항복 (좌의정),
심희수 (우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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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 (영의정),
이덕형 (좌의정),
이항복 (우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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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형 (영의정),
이항복 (좌의정),
정인홍 (우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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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헌 (영의정),
정인홍 (좌의정),
정창연 (우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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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헌 (영의정),
정인홍 (좌의정),
한효순 (우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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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홍 (영의정),
정창연 (좌의정),
한효순 (우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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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홍 (영의정),
한효순 (좌의정),
민몽룡 (우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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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홍 (영의정),
민몽룡 (좌의정),
박승종 (우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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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홍 (영의정),
박승종 (좌의정),
박홍구 (우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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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종 (영의정),
박홍구 (좌의정),
조정 (우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