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대서양 서부에 있는 영국령의 자치 식민지. 7개의 큰 섬과 150여 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섬은 약 20여 개에 불과하다. 전체 면적은 53.3㎢이며, 주도는 헤밀턴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해터러스곶에서 동쪽으로 약 900㎞ 떨어져 있다. 섬의 분포 상태는 낚시 바늘 형태로, 남서쪽으로 약 39㎞에 걸쳐 퍼져 있으며, 동서쪽으로는 1.6㎞를 넘지 않는다. 7개의 큰 섬들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지리학상으로는 하나의 섬으로 취급한다. 이것을 메인섬 또는 그레이트 버뮤다라고 부른다. 이것의 남북의 길이는 22.5㎞이며, 동서의 길이는 1.6㎞이다. 메인섬의 중앙에 해밀턴시가 있다. 섬의 주위에는 해안선을 따라 산호초가 펼쳐져 있다.
자연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기후가 온난 다습하다. 여름철의 평균 기온은 26℃이며, 겨울철에는 17℃이다. 또한, 가장 더운 8월의 낮 최고 기온은 30℃이며, 가장 추운 2월의 밤 평균 기온은 1℃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1,450㎜이다. 식수를 강수에만 의존하고 있어서 가끔 건조기에는 물이 부족하여 심각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일년 내내 고르게 내리는 강우량으로 상대 습도가 높다. 이에 따라 열대 식물이 무성하고, 아열대 식물인 부겐빌레아 ·버뮤다백합· 협죽도·히비스커스· 포인세티아 등 꽃피는 식물들도 잘 자란다. 이 밖에도 섬의 곳곳에는 야자나무 를 비롯하여 소나무·카수아리아· 맹그로브 등의 나무 가 분포하고 있다. 이 곳에 서식하는 동물은 주로 도마뱀 과 개구리 정도이며, 해마다 수많은 철새들이 버뮤다 제도 를 찾고 있다. 이 곳의 산호섬들은 바다 밑바닥에서 약 4,300m 이상의 높이로 솟아 올라 있다. 또한 섬들은 60m 정도 두께의 해양 석회암층으로 덮여 있다. 석회암의 표면은 비옥한 토양층이 얇게 덮여 있다. 이들 토양은 투과성이 좋아서 물이 고이는 일이 거의 없다. 따라서 지표면에 흐르는 하천이나 강이 거의 없으며, 호수 또한 없다.
주민
버뮤다 제도는 1503년에 에스파냐인인 후안 베르무데스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 후 1609년에 영국인인 G. 호머즈 일행이 이 곳에 정착하여 살 때까지 이 곳은 무인도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버뮤다 제도의 여러 섬 가운데 20개 섬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의 후손들로서, 1807년 노예의 매매가 불법화되기 이전에 백인의 노예 상인들이 데려다 놓은 것이다. 이 밖의 백인들은 영국계의 사람들과 19세기 중반에 이 곳으로 건너온 포르투갈 의 마데이라와 아조레스 출신 노동자의 후손들이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는 영어이지만 포르투갈어도 통용되고 있다. 종교는 영국 국교회 신자가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나머지 사람들도 대부분이 그리스도 교인들이다. 인구 증가율 이나 사망률은 낮은 편이다. 따라서 15세 이하의 어린이 들이 전체 인구의 4분의 1도 안 된다. 주민들의 건강 수준도 매우 높은 편으로 평균 수명이 여자가 76세이며, 남자는 69세이다. 또한, 문맹률이 거의 0%에 가깝다. 인구 밀도 는 섬 중에서 그레이트 버뮤다가 가장 높다. 그러나 그레이트 버뮤다 안에서는 주민들이 고르게 분산되어 살고 있다.
정치
1609년에 영국인들이 들어온 이후 1684년에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다. 1968년에는 제정된 헌법에 따라서 자치권이 부여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의 수반은 영국의 왕이며, 총독이 그 권한을 대신 행한다. 영국과 같이 의회 정치 를 실시하고 있다. 의회의 구성은 선거로 뽑힌 하원 의원 40명과 상원 의원 2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원 의원은 임명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들 중 11명은 각계의 전문가들 중에서 뽑아 총독이 임명하고, 5명은 총리의 추천에 의해 임명된다. 또한, 3명은 야당의 당수에 의해 추천되어 임명되며, 나머지 3명은 총독의 권한으로 임명된다. 의원의 임기는 상원과 하원 모두 5년이다. 의회가 이루어진 이후에 '통일 버뮤다당'이 의회를 장악했으며, 야당으로는 '진보 노동당'과 ' 국민 자유당'이 있다. 총리는 하원에서 다수당 당수가 총독에 의해 임명된다. 국가 행정에 대한 권한은 총독이 외교와 국방, 국내 치안 등을 맡고, 이 밖의 문제는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내각의 의견에 따른다. 사법부의 최고 기관 은 대법원이다. 사회 보장 제도는 1965년에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여기에는 노인 문제나 장애자 문제, 유족 연금을 비롯하여, 전 주민을 대상으로 한 의무 입원 보험 제도 등이 포함되어 있다. 5~16세까지 무상 의무 교육을 받으며, 해외로 유학 을 갈 때는 정부의 장학금을 받는다. 버뮤다 제도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어 아일랜드섬에는 영국의 해군 기지가 있으며, 세인트 데이비드섬과 헤밀턴섬에는 미국의 해군 과 공군 기지가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부터 미국과 영국의 정상 회담이 이 곳에서 여러 차례 개최되었다.
경제
야채와 바나나, 감귤류 등의 농업과 어업이 주된 산업 이다. 그러나 섬의 경제는 관광업과 텍스 헤이븐 정책에 따른 해외 보험업으로부터의 수입, 미군들의 소비에 의존하고 있다. 1 인당 국민 소득이 인구 증가율에 앞선다. GNP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관광업은 실질적으로 버뮤다 내의 모든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관광객은 거의 미국인이며,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또한, 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전세계의 많은 보험 회사들이 이 곳에 세워지고 있다. 소득세 대신에 버뮤다 관세와 부동산에 부과되는 세금, 관광업에 부과되는 세금 으로 국가 경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주된 교역 상대국은 미국과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 등이다. 이들의 나라에서 수입의 반 이상을 얻는다. 농업은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낮아,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음료나 섬유 등을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등지에서 수입한다. 광물 자원도 모래와 석회암 이외에는 거의 없다. 그 양도 버뮤다 지역에서 필요한 정도만 생산될 뿐이다. 이 밖에도 페인트나 약품, 인쇄물 등의 경공업 등이 약간 있다.
역사
버뮤다 제도의 역사는 1515년 에스파냐의 항해가인 페르난데스 데 오비에도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비에도는 자신이 이 섬을 발견하기 전에 이미 1503~1511년에 같은 에스파냐 출신인 후안 베르무데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며, 그에게 공을 돌렸다.
그 후 1612년에 버지니아사가 이 곳을 식민지화하기 위하여 특허를 얻어 60명의 영국인들을 파견하였다. 이 곳에 파견된 영국인들은 1616년부터 아프리카와 인도의 노예들을 끌어들였다. 이 때부터 노예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여, 곧 영국인들보다 많아졌다.
1684년부터는 영국 왕실이 버지니아사와 공동으로 이 곳을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육군 기지와 해군 기지로 이용되었다.
또한 남북 전쟁이 한창이던 때는 남부의 항구로 가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으며, 금주법이 시행되던 1919~1933년에는 미국의 럼주가 밀반입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1941년에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이 곳을 99년 동안 해군 기지와 공군 기지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그 후 영국 수비대는 1957년에 철수했으나 해군의 경우에 약간만 남아 있다.
버뮤다 최초로 세워진 정당은 '진보 노동당'이다. 이 당은 1963년에 백인 외의 시민들의 권리를 대변한다는 이념을 표방하고 나서서, 영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지지하였다. 이 당은 1968년에 실시된 새로운 헌법에 따라 여당이 되었으며, 그 후 '통합 버뮤다당'으로 이름을 바꾸어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1973년에 리처드 샤플스 총독이 암살 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버뮤다 정국은 긴장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후부터 버뮤다 사회는 인종 차별 정책에 대한 불만을 품은 세력들에 의한 암살과 폭동이 이어졌다. 이로 인하여 행정부는 1977년부터 인종 차별 정책을 끝내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또한, 영국과 독립을 위한 협상도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그 후에 중단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다시 독립에 대한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