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 북도 경주시 인왕동(仁旺洞) 일대에 있는 신라 시대의 고분군. 사적 제42호. 황남동·노동동·노서동 일대에 분포된 대형 고분군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은 편이다.
민족 항일기까지는 10여 기의 고분이 봉분과 함께 남아 있었고, 그 밖에도 크고 작은 분묘가 밀집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도굴되거나 파괴되어 봉분이 남아 있는 것은 1기에 불과하다.
이 고분 중에서 1969년 제19·20 호분이 발굴되었고, 1973년에는 제149·156 호분을, 1977년에는 봉분이 없어진 20여 기를 발굴하였다. 제19 호분에서는 13개의 석곽이 드러나 5~6세기의 약 2세기에 걸친 가족 공동 묘지로 추정되었는데 신라 때의 일반적인 무덤 양식인 돌무지 덧널무덤〔積石木槨墳〕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형 지하 고분 중에는 돌덧널무덤〔石槨墓〕과 독무덤도 다수 발견되었다.
부장품으로는 토기· 장신구 ·마구류와 은제 환두대도·투겁창 등 무기류가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