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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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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사 (中國正史)
중국 왕조의 역사적 기록으로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전(前)왕조의 역사서.
▣ 지식지도
◈ 요약정보
중국 정사 (中國正史) 중국 왕조의 역사적 기록으로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전(前)왕조의 역사서. 정사의 시작은 한(漢)나라의 사마 천 상고(上古)로부터 한나라 무제 때까지를 기록한 《사기》이다. 그 이후로는 5대와 당에 대한 역사서 이외에는 1 왕조마다 1부씩 단대사로서 사서가 만들어졌다. 5대와 당나라의 경우는 신·구의 2책이 있다. 《사기》 이후에 반고에 의하여 《전한서(前漢書)》가, 범엽에 의하여 《후한서(後漢書)》가 그리고 진수에 의하여 《삼국지》가 편찬되었는데, 《사기》와 이들을 합하여 특별히 '사사(四史)'라고 부른다.
◈ 지식지도
중국 정사 (中國正史) 주서 동위 북제 북위 남북조 시대 북주 후한 659년 636년 420년 남제 서위 반고 사마천 범엽 공영달 구양수 반소 반초 심약 유소 반표 안사고 삼국지 한서 후한서 신당서 구당서 송서 남제서 양서 위서 북제서 수서 남사 북사 신오대사 구오대사 사기 백호통의
▣ 원문/전문 (인기순, 1~10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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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카달로그
◈ 주요 언급 키워드
역사서 (9) 636년 (4) 백과 이연수 (3) 659년 (2) 백과 구양수 (2) 백과
◈ 참조 키워드
구당서 (14) 백과 양서 (14) 백과 한서 (14) 백과 후한서 (14) 백과 남제서 (13) 백과 삼국지 (13) 백과 송서 (13) 백과 신당서 (13) 백과 주서 (11) 백과 구오대사 (4) 백과 남북조 시대 (4) 백과 남제 (4) 백과 북제 (4) 백과 북주 (4) 백과 (4) 백과 신오대사 (4) 백과 (4) 백과 (4) 백과 후한 (4) 백과 남사 (3) 백과 (3) 백과 북사 (3) 백과 북위 (3) 백과 북제서 (3) 백과 (3) 백과 수서 (3) 백과 위서 (3) 백과 (3) 백과 636년 (2) 백과 구양수 (2) 백과 남송 (2) 백과 동위 (2) 백과 (2) 백과 반고 (2) 백과 반소 (2) 백과 범엽 (2) 사마천 (2) 백과 서위 (2) 백과 (2) 백과 송사 (2) 백과 요사 (2) 백과 한 무제 (2) 백과
▣ 백과사전
중국 왕조의 역사적 기록으로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전(前)왕조의 역사서.
 
'정사'라는 명칭은 《수서》의 경적지에서 유래하였는데, 연대에 따라 역사를 엮는 편년체 로 되어 있는 《사기》 이전에 쓰여진 역사서를 ' 고사(古史)'라고 한 데 반하여, 그 이후에 기전체로 쓰여진 역사서를 '정사'라고 한 것이다.
 
정사에서 본기와 열전으로 역사를 엮은 기전체를 사용한 것은 정사를 저술한 목적이 새로운 왕조가 세워진 과정을 미화하려는 데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목적은 전왕조가 세워지고 발전하다가 쇠퇴하고, 결국 몰락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고 더불어 당시에 만들어졌던 제도나 변화되었던 제도 등을 서술함으로써, 새로운 왕조가 통치하는 데 있어서 본보기로 삼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정사의 기본적인 구조는 천자(황제)가 중국을 다스린 것을 연대순으로 기술한 '본기'와 유명한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이루어 놓은 업적을 기록한 '열전'을 반드시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밖에 연표 라든지 계보 또는 제도를 기록한 지(志) 또는 서(書) 등이 수록되기도 하는데, 이것들은 반드시 포함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내용이 서로 겹치기도 하여, 책의 분량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정사를 기록하게 된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가장 적당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역사서에 따라서 조금씩은 체계에 변화를 보이기도 하지만 기본 구조는 변함 없이 유지되었다.
 
정사의 시작은 한(漢)나라의 사마 천이 상고(上古)로부터 한나라 무제 때까지를 기록한 《사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로는 5대와 당에 대한 역사서 이외에는 1 왕조마다 1부씩 단대사로서 사서가 만들어졌다. 5대와 당나라의 경우는 신·구의 2책이 있다.
 
《사기》 이후에 반고에 의하여 《전한서(前漢書)》가, 범엽에 의하여 《후한서(後漢書)》가 그리고 진수에 의하여 《삼국지》가 편찬되었는데, 이들은 한나라와 삼국 시대의 정사로 《사기》와 이들을 합하여 특별히 '사사(四史)'라고 부른다.
 
이후의 왕조에 대해서는 《진서(晉書)》 《송서》 《남제서》 《양서》 《진서(陳書)》 《위서》 《북제서》 《주서》 《수서》 《신당서(新唐書)》 《신오대사(新五代史)》가 만들어졌고, 남송 시대에 와서 《남사(南史)》 《북사(北史)》가 편찬되었다. 《사기》를 비롯하여 《남사》 《북사》에 이르기까지 역대 17종의 기전체 역사서는 총괄하여 '17사'로 불린다.
 
정사의 수는 세월이 흐르면서 계속 늘어나게 되었는데, 원나라 말기에 《송사》 《요사》 《금사》가 만들어졌고, 명나라 초기에는 《원사》가 저술되었다. 그래서 기존의 17사와 이들을 합하여 '21사'가 되었는데, 청나라 초기에 《명사》가 만들어져서 이를 추가함으로써, 다시 '22사'가 되었다.
 
청나라 왕명성의 《17사 상각》이라든지 조익의 《22사 차기》 등의 명칭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건륭제 이후에는 22사에 궁중의 무영전에서 간행된 《구당서(舊唐書)》와 《구오대사(舊五代史)》가 다시 더 하여짐으로써 '24사'가 되었고, 정사들은 모두 합하여 무려 3,243권에 달하게 되었다.
 
1922년에는 대총통 쉬 스창이 커 사오민의 《신원사(新元史)》를 정사로 추가하여, '25사'가 되었다.
 
청나라에 대해서는 아직 정사로서 인정될 만한 권위 있는 역사서가 나와 있지 않으나, 최근에는 민국 초기에 발행된 《청사고》를 정사에 준해서 다루고 있다.
 
이처럼 2000년에 걸친 방대한 역사적 사실들이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역사를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중국인들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기》 《한서》 등과 같은 4사가 만들어질 때까지는, 역사를 담당하는 관료인 사관의 위치에 있던 학자들이 평생을 바쳐서 직업적으로 역사서를 편찬하였기 때문에 정확하였고 사관도 휼륭하였다. 그 뒤로 나온 당나라와 송나라 이후의 정사들은 왕조에서 주관하는 일종의 문화 사업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제작하였기 때문에, 내용이 빠졌거나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나라 이후에는 국가가 공식적인 사관 제도를 만들어서 조정에 역사 편찬소가 설치되었다. 이 곳에서 역사 기록 을 총괄하였는데, 우선 황제의 말이나 행동을 기록한 《기거주》와 재상의 정치적 업무를 기록한 《시정기》를 중심으로 하여, 《일력》이나 《회요》 등과 같은 공적인 기록을 만들고, 황제가 죽으면 보관하고 있던 그와 같은 기록들을 모아서 한 황제에 대한 《실록》을 편년체로 만들었다.
 
그 뒤에 이와 같은 여러 대의 황제 실록이 완성되면 다시 종합해서 《국사》를 편찬하였고, 한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 새로운 왕조의 초기에 《국사》를 바탕으로 하여 전왕조에 대한 《정사》를 편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정사 편찬은 당나라 이후 거의 관례화하여 재상이 명목상의 편찬자가 되었기 때문에, 정사는 구양수가 저술한 《신오대사》를 제외하고는 관찬 사서와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관찬 사서로서의 정사는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정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이 너무 일정하게 규격화되고, 때로는 역사가 사실 그대로 기록되지 못하고 집권자의 뜻에 따라 고쳐질 수도 있다는 단점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사는 그 시대의 표준이 되는 역사 인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제도나 국가 운영에 대해서는 사찬 사서보다 더욱 많은 자료를 담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남북조 이전의 역사적 자료로는 정사가 유일한 것이었지만, 송나라 이후로는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정사 이외에도 많은 역사적 자료들이 전해 오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정사의 가치가 감소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옛 중국에 대하여 전문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사가 아직도 가장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4사에 대해서는 당나라의 안사고가 주석한 《한서주》를 비롯하여, 훌륭한 주석서가 많이 발간되었고, 청나라의 고증학자들의 철저한 본문 교정을 거친 《22사고이》 《17사상권》 등도 저술되었으며, 특히, 《25사보편》은 표나 지가 누락된 정사에 대해서 자세히 보충하여 편찬한 정사의 증보판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중화 인민 공화국에서 구두점이 있는 표점본 24사를 발행한 것으로 보아도, 예나 지금이나 정사는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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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정보
백과 참조
4사(四史)
사기
삼국지
 
17사
송서
남제서
양서
위서
북제서
수서
 
21사
송사
요사
금사
원사
 
22사
명사
 
24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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