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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구(銅雀區) # 용양봉저정
최근 3개월 조회수 : 3 (5 등급)
【여행】
(게재일: 2015.05.04. (최종: 2017.11.20. 09:21)) 
◈ 용양봉저정을 다녀와서 (2015.5.4)
5월2일 토요일 국립중앙 도서관에서 추진한 누정답사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노량진 한강대교 남단 우측의 용양봉저정, 마포구 망원동의 망원정, 행주산성, 강서구 가양동의 겸재 정선 미술관과 궁산을 갔습니다. 우선 용양봉저정부터 포스팅합니다.
5월2일 토요일 국립중앙 도서관에서 추진한 누정답사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노량진 한강대교 남단 우측의 용양봉저정, 마포구 망원동의 망원정, 행주산성, 강서구 가양동의 겸재 정선 미술관과 궁산을 갔습니다. 우선 용양봉저정부터 포스팅합니다.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 : 용 용, 머리들 양, 봉황 봉, 날아오를 저, 정자 정)>은 정조( 재위 1776 ~ 1800)가 "북쪽의 높은 산이 우뚝하고 동쪽에서 한강이 흘러내려 용이 마치 굼틀거리는 듯하고 봉황새가 훨훨 날아오른 형상이다"'라고 하고 용루(龍樓)와 봉궐(鳳闕)에 영광의 서기가 자욱하여 억만년 조선을 빛내줄 것이라는 뜻을 담아 용양봉저정이라고 이름지었고 그 때 정자(행궁)의 현판의 글씨는 채제공이 썼다고 합니다. 1795년 2월에 채제공(蔡濟恭,1720∼1799)은 화성공사의 총책임자로 정조의 명을 받들고 배다리(주교)에 먼저 가서 점검하였습니다.
 
●용양봉저정의 개요
 
▶위치 : 서울특별시 동작구 본동 10-30 (초록길 8-1)
▶건립 : 1791년 (정조15)
▶현 건물 규모 : 정면 6칸, 측면 2칸, 팔작지붕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호(1972.5.25 지정)
▶현 현판 글씨: 서예가 東石 이성준
▶이름의 유래 : 1793년 정조가 지은 <용양봉저정기(龍驤鳳翥亭記)>는 아래와 같이 적고 있습니다. 정자는 예전에 망해정이라 불렀다. 적힌 기문에는 발돋음을 하고 사쪽으로 바라보면 허명한 기운이 떠오르는데 그 곳이 우리나라의 서해이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었다. 내가 주교(배로 만든 다리)를 만들어진 이듬해 신해년(1791년) 이 정자에 올랐다. 마침 먼동이 트고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붉은 구름이 피어 오르고 하얀 비단같이 강물이 맑았다.
▶특징 : 장대석 외벌대의 나지막한 기단 위에 사각기둥으로 세워진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로 궁궐 건축의 격식을 갖춘 건물이며 가운데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단일실로 된 방입니다.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은 동작구 본동 10-30번지인 한강대교 남쪽 노량진 수원지 건너편 언덕에 북향하여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하철 9호선 3번출구에서 한강으로 직전하다 우측 언덕입니다.
 
 
1789년(정조 13)에 공사를 시작하여 2년 후에 완공한 건물로 정조가 수원 화산(華山)에 있는 아버지 장조(莊祖, 思悼世子)의 무덤인 현륭원(顯隆園)에 참배하러 갈 때, 지금 한강의 한 부분인 노들강에 배다리(舟橋)를 설치하고 건너가 잠시 쉬기 위하여 머물던 곳입니다.
 
이 정자는 일반 누정(樓亭) 건축과 마찬가지로 언덕 위에 북향하여 자리잡아 경관이 수려한 한강을 내려보도록 지은 점은 비슷하지만, 단순히 풍류를 즐기며 심신을 수양하려는 목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고 정조가 수원 화산에 자리잡은 현륭원에 참배를 가는 도중에 마음을 가다듬고 휴식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한강변의 다른 많은 정자들처럼 이 정자를 노래로 표현한 글이 없음도 이러한 사실을 반영합니다.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동석 이성준의 현판 글씨 (좌에서 우로 가로쓰기)
 
 
건물의 측, 후면
 
 
암막새와 수막새, 토수가 조선 궁궐 것과 같습니다.
 
 
 
없어진 건물들의 주춧돌이 아닐런지?
 
 
원래 사도세자의 무덤인 영우원(永祐園)은 지금 답십리 서울시립대학교 근처인 양주(楊洲) 배봉산(拜峰山)에 있었는데, 정조는 부왕의 무덤을 1789년(정조 13) 11월에 수원 화산으로 옮기고 현륭원이라 고쳐 불렀고 이곳 화산 아래에 있던 수원 관아와 민가를 지금의 수원 자리에 이주시키고 화성(華城)을 건설하고 행궁을 다시 크게 고쳐지었으며 정조가 화산에 행차하던 당시의 모습은 능행도에 그려져 남아있습니다.
 
정자내 화성 반차도
 
 
 
용양봉저정은 정조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점심을 들었기(晝食) 때문에 주정소(晝停所)라고도 칭하였으며, 이 때에는 주교(舟橋) 가설을 담당하는 주교사(舟橋司)와 주교대장(舟橋大將)도 두었었고 주교사가 맡아보던 배다리는 관(官)의 것과 개인 소유의 배, 큰 것 80척과 작은 것 400∼500척을 징발하여 한강을 건너지르게 한 다음 그 위에 긴 널판 1천여장을 깔고, 양쪽 가에는 난간을 설치하여 만들었다. 난간에는 깃대를 쭉 꽂고 배다리 양쪽 끝에는 홍살문(紅箭門)을 세웠는데, 능행도의 그림을 보면 도강 행차는 장관을 이루는 성대한 행렬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배다리(주교:舟橋) 그림 - 지금의 한강대교 남단와 한강철교 북단의 사이가 아닐런지? 왜냐면 그림에 노들섬 표시가 없고 용산측이 노량진 쪽보다 더 남쪽으로 추정해봅니다.
 
 
당초 이 건물에는 정문과 누정(樓亭) 등 두 세 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고 이 건물은 순종 때 유길준(兪吉濬)에게 하사되었다가, 1936년 4월2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요정(용봉정)으로 팔렸다가, 광복과 함께 이 곳을 국유로 환원하여 요정을 철거하고 원래의 이름으로 고쳤습니다.
 
용양봉저정은 아래그림의 우측 상단에 있습니다.
 
 
용양봉저정 확대사진
 
 
정자는 장대석 외벌대의 나지막한 기단 위에 사각기둥으로 세워졌는데,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로 정면 6칸 규모의 정자건축은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형식으로, 궁궐 건축의 격식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는 건물입니다.
 
정면 6칸이라고 하지만, 건물 동·서쪽에 있는 양끝 한 칸은 다른 주간(柱間)보다 폭이 좁은 툇칸으로 형성되어 가운데 부분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단일실로 된 마루방이고, 마루방의 외벽을 이루는 곳 정면과 배면에는 사분합문(四分閤門,문짝이 넷으로 되어 열리고 닫히는 문)을, 양 측면에는 삼분합문 둘을 기둥 사이에 달았습니다.
 
전면 동쪽의 두 칸은 바닥까지 내려온 문이고, 정면 서쪽 2칸, 배면 4칸과 양 측면에는 모두 머름(방풍防風을 하기 위하여 문지방 아래나 벽 아래 중방에 대는 널조각)이 설치되었습니다.
 
마루방 바깥 동·서·북쪽 둘레에는 퇴칸을 두어 마루를 꾸며 외부에 트였고 정면 중앙 4칸은 디딤돌을 통해 마루로 올라가게 되었으며, 좌우 협칸 바닥은 한 단 높여 기둥 사이에는 아자난간(亞’ 자 모양으로 살을 짠 난간)을 돌렸습니다. 건물의 남쪽 중앙 4칸 밖에는 쪽마루를 달았지만 가운데 마루방 4칸은 본래부터 구들을 놓지 않고 마루방으로만 쓰인 지에 대해서는 미심쩍은 면이 있습니다.
 
용양봉저정에서 본 한강풍경으로 옛날을 상상해봅니다.
 
 
다산 정약용(1762.6.16~1836.2.22)이 젊은 시절 정조를 모시던 용양봉저정의 추억을 회상한 <여름날 흥을 풀다 : 하일유흥夏日遺興> 입니다.
 
노량나루의 방죽이 강을 따라 뻗어 있는데
임금님 가시던 길 화성까지 구불구불 이어졌지.
 
강가의 언덕 외로운 정자엔 구름 장막 펼쳐지고
바다 입구 정박한 배엔 고운다리가 놓였다네.
 
방울 울리면서 가마가 움직일 때 화살 셋이 날았고
큰 북이 교대로 울리면 두 군영이 진을 풀었지.
 
그리워라 병조에 있으면서 행차를 모셨을 때
조정의 의장 행렬이 붉은 기둥 앞에 늘어서 있었지.
 
 
★ 주변 볼거리로 사육신묘가 있습니다.
 
1456년(세조 2) 조선의 6대 임금인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바친 박팽년·성삼문·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김문기(추가) 신하, 즉 사육신(死六臣)을 모신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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