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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의 호랑나비 부탄니티스 ⑥ 머리는 양과 몸은 소의 모양 타킨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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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Bhutan) 호랑나비(-) # 부탄니티스 # 타킨
【문화】
(2023.11.03. 17:18) 
◈ 부탄의 호랑나비 부탄니티스 ⑥ 머리는 양과 몸은 소의 모양 타킨 인기
해발 2천미터 지역에서 환상의 호랑나비 부탄니스트 발견 / 팀푸에 아주 작은 보호소에 타킨이 있다. 타킨은 티베트산 영양의 일종으로 부탄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머리는 양을, 몸은 소의 모양을 하고 있다. 티베트에서 온 드럭파 쿤리Drukpa Kuenley(1455-1529)는 돌출적인 기행을 하는 괴승으로 유명하다.
해발 2천미터 지역에서 환상의 호랑나비 부탄니스트 발견
 
 
팀푸에 아주 작은 보호소에 타킨이 있다. 타킨은 티베트산 영양의 일종으로 부탄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머리는 양을, 몸은 소의 모양을 하고 있다. 티베트에서 온 드럭파 쿤리Drukpa Kuenley(1455-1529)는 돌출적인 기행을 하는 괴승으로 유명하다. 어느 날 추종자들이 그의 신통력을 보기 위하여 모여 어떤 기적을 보여 줄 것을 요청했다.
 
 
타킨(사진: 부탄여행사)
 
 
쿤리 승려는 신통력을 보여 주기 전에 소 한 마리와 양 한 마리를 갖다주면 다 먹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괴승의 신통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살아있는 큰 소 한 마리와 양 한 마리를 내주었다. 그런데 괴승은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가축을 뼈만 남기고 아주 게걸스럽게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소의 뼈에다 양의 머리를 갖다 붙였다. 괴승이 한창 주문을 외우자. 갑자기 뼈만 남아있던 동물이 살아나더니 숨을 쉬고 풀밭으로 달려가 풀을 뜯기 시작했다. 이런 놀랍고 해괴한 모습을 본 사람들은 깜짝 놀라 경이로움에 휩싸여 승려에게 계속 절하고 모두 제자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은 부탄에서 내려오는 오래된 이야기이다.
 
부탄에는 참으로 신기한 나비와 나방들이 많다. 호랑나비를 세계에서는 ‘히말라야의 귀부인’, ‘부탄의 영광’으로 부른다. 1868년 이 환상의 호랑나비 부탄니티스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영국인 곤충학자, 의사인 리데르달리이(Dr R. Lidderdale, 1835-1908)로 그는 인도에서 30년을 살았다. 그는 호랑나비 5마리를 채집하고 표본을 만들어 대영박물관에 기증했다. 호랑나비 크기는 어른 손바닥만큼 크고 날개 끝부분에 3개의 고리가 달린 것이 특징이다. 호랑나비 이 그룹의 나비로는 운남 호랑나비, 시난 호랑나비 4종이 있다. 이 호랑나비들은 부탄 왕국을 중심으로 2000m 이상의 높은 지역에 분포한다.
 
중국 윈난성 진핑먀오족 야오족 다이족 자치현 마안디 향의 홍하 나비 골은 최근 화살 고리 나비들의 집중 폭발 성장기를 맞아 수억 개의 알이 자라 벌레가 되고 번데기가 깨진 뒤 나비가 되어 그윽한 산림 사이로 나비 떼가 날아다니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생태적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곳에는 중국에서 가장 희귀한 황금점박이부리나비, 꼬리부리나비, 금상호랑나비, 작은 회색나비 등 가장 원시적인 나비 320여 종이 있다.
 
 
중국 윈난성 홍허나비골(사진: 중국 윈난성 나비골박물관)
 
 
우리나라에서 나비를 정말 사랑했던 석주명(石宙明, 1908년~1950년)은 1908년 평양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동물들을 좋아했다. 그리고 개성 송도고보를 졸업하고 곧바로 일본 가고시마고등농립학교에 수학했다. 이 학교에서 일본곤충학회 회장인 오카지마 긴지(岡島銀次, 1875-1955)로부터 총애를 받아 조선 곤충 연구의 계기가 된다. 학업을 마치고 일본에서 귀국한 석주명은 당시 명문이었던 함흥의 영생 학교 생물교사가 되어 밤잠을 자지 않고 나비 연구를 하였다. 영생학교는 나의 부친이 수학한 학교로 석주명은 2년간 재직하였다가 1931년 스승인 조류학자 원홍구를 따라서 개성 송도고보에 옮겨간다.
 
석주명은 학생들이 여름방학을 이용해 고향으로 돌아갈 때면 나비 채집 숙제를 내줬다. 이것이 한반도의 나비 분포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학생들은 정성을 다해 나비를 채집하여 학교에 제출했다. 채집하지 못한 지역의 나비는 직접 발로 돌아다니며 채집했다. 선생은 방학이 되면 이순신 장군이 여진족을 물리쳤던 녹둔도 앞에 있는 섬 알도(卵島)에서 나비를 채집하고, 마라도, 울릉도, 만주에서 나비를 채집했다.
 
1931년 어느 날 미국 앤드류스 공룡 탐사대의 일원인 모리스 박사가 몽골 지방의 탐사 여행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다가 그만 경성에 내린다는 것이 실수로 개성에서 열차를 내렸다. 모리스 박사는 다음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너무 많아 송도 고보에 들려 박물관을 구경하다 놀라운 것을 발견한다. 석주명의 나비 표본과 원홍구의 조류 표본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 일이 인연이 되어 모리스 박사는 석주명에게 미국의 박물관들에 나비 표본과 연구 자료를 보낸다는 조건으로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1932년부터 석주명은 미국의 박물관과 나비 표본의 교환을 시작한다. 석주명은 미국 하버드대학교 비교 동물 학과장의 도움을 받아 다른 서양학자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1936년에 미국자연사 박물관의 지원을 받아 한 달간 채집여행을 위해 제주에 발을 디딘 것이 제주와의 첫 인연이었다. 이런 일들이 서양에 알려지자 1939년 영국의 ‘왕립 아시아학회 한국지부’에서 석주명에게 한국산 나비에 대한 연구를 총정리 한 논문 집필 요청이 들어오게 된다.
 
특히 1940년대 그가 발견한 지리산팔랑나비(북한:가느날개희롱나비)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당시 일본의 나비 학자들은 한반도 나비를 모두 921종으로 분류했지만, 석주명은 일본 제국 대학교수들이 “나는 논문 한 줄을 쓰려고 나비 3만 마리를 만졌다.”라는 말을 듣고 아주 꼼꼼하게 나비들을 다시 분석하고, 개채변이를 확인해 한반도 나비를 248여 종으로 정정했다.
 
영국 왕립 아시아협회의 의뢰를 받아서 한국의 나비들의 동종이명 총 목록을 작성한 《조선산 나비 총 목록, A Synonymic List of Butterflies of Korea》을 1940년에 출간했다.
 
 
함경북도 관모연봉 나비채집[1940. 7. 22~30](사진 = 박규택 제공, 서귀포신문)
 
 
석주명 선생은 호가 호접선(蝴蝶仙)으로 불릴 정도로 평생을 나비에 헌신했다. 채집한 나비에게 우산을 씌어준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그는 악기 연주도 잘해 만돌린과 기타 연주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1942년에 60만 마리 나비 표본을 가졌으나 도저히 유지할 능력이 안 되어 송도고 교정에서 나비를 소각하며 나비위령재를 지냈다. 그때부터 석주명은 무분별한 나비 채집은 안 하기로 결심한다.
 
1943년 4월부터 1945년 5월까지 2년 1개월 동안 서귀포시 토평동에 있는 경성제국대학 생약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연구에 몰두해 제주산 나비 58종을 학계에 보고했다. 세계적인 논문들을 수없이 발표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선생이 발표한 논문은 128여 편, 17권의 저서가 있다. 《제주도생명조사보고서》, 《제주도문헌집》, 《제주도곤충상》, 《제주도방언집》 등을 발간해 제주도 서귀포시는 선생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토평사거리에 석주명 동상과 기념비를 건립했다.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2008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25번째로 헌정하였다.
 
부탄의 제5대 국왕이 2011년 10월 일본을 방문했다. 그때 국왕이 일본에 가지고 간 물품 중에는 부탄에서 만든 나비 표본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나비는 이가라시(五十嵐 邁, いがらし すぐる, 1924-2008, 일본 곤충학자, 사업가) 일본나비협회 초대회장이 부탄에서 찾아보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던 나비였다. 그러나 고인은 나비를 만나보지 못하고 타계했다. 이가라시 회장은 나가사키 현 사세보에서 1924년 태어나 어릴 때에 동식물에 관심이 무척 많았다. 1992년에 일본나비협회 발기인과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사업가로 작가로 활동하다가 공직에서 퇴직한 후에는 히말라야 기슭에 자리를 잡고 동식물을 연구했다. 그는 생전에 700종 이상의 나비 생태를 조사하여 발표했다. 아내 마사코는 남편이 유산으로 남긴 동남아산 나비 표본 10만 본을 동경대에 기증하였다. 이 표본 중에는 현재 알려지지 않은 표본이 많아 있어 학문적으로 아주 소중한 유산이다.
 
일본 나비학술조사단은 초대 이가라시 회장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2011년 여름에 6명의 조사단을 부탄에 파견하여, 부탄 정부의 승인 하에 부탄의 비경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2011년 9월에 부탄 북부 산악지대에서 80년 만에 희귀한 나비 부탄니티스(Bhutanitis lidderdalii)를 발견했다.
 
부탄 국왕은 나비 표본을 일본 측 조사단장에게 전달하면서 “일본과의 우호관계와 동일본 지진의 복구를 기원하면서 표본을 기증하기로 결정했다.”고 말을 전했다. 부탄 국왕은 표본 5마리 가운데 수컷 표본 2마리를 일본 조사단 단장에게 전달했다.
 
 
일본서적 호랑나비백지도 「アゲハ蝶の白地図」より표지 인용
 
 
조선 후기의 화가 중에 일호 남계우(南啓宇, 1811-1888)는 일평생 야인으로 살면서 나비를 그려 별명이 ‘남나비(南蝶)’였다, 그는 숙종 때의 문신인 남구만(1629-1711)의 5대손으로 정3품의 벼슬을 지냈다. 남구만은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라는 시조로 유명하다.
 
히말라야 산록의 부탄 호랑나비와 중국 운남성의 나비들을 비교했는데, 우리 선조들은 봄이 오면 자연의 걸작인 나비를 구경하러 들판으로 나갔다. 특히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나비가 길상을 의미해 선물에 나비그림을 많이 그렸다. 나비를 칭하는 한자 ‘蝶’은 80세 노인을 뜻하기에 선비들은 부귀와 장수를 염원하며 화가에서 그림을 부탁하여 집안에 나비 병풍그림을 세우고 귀하게 모셨다. 또한, 나비는 부부 금실을 상징하고 특히 두 마리의 나비는 사랑을 의미하므로 혼인하는 젊은 부부들이 나비 문양이 그려진 혼수품을 건네기도 하였다.
 
실제로 남계우 선생은 나비를 많이 그려 건강하게 80수를 누렸다고 한다. 부귀와 장수의 상징인 나비를 현대적인 가치에서도 매우 중요시 여긴다.
 
전남 함평군에서는 농촌 쇠퇴로 인구가 점차 줄어, 함평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위해 논의하다가 함평의 친환경적 이미지를 살려 나비를 주제로 한 테마 축제로 함평나비 대축제를 창안하여 올해로 25회를 맞이한다. 초기에 축제를 기획할 때는 함평천 정화 산업에 따라 조성된 33ha의 유채꽃을 주제로 진행되다가 다른 지자체와의 차별화를 두기 위해 친환경 지역임을 가장 어필할 수 있는 나비를 도입하였다. 함평나비축제에는 황금박쥐상이 있어 전국에서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내려와 고속도로가 하루 종일 붐비고 함평 도시 전체가 다시 살아났다.
 
 
남계우 10면 병풍 일부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자료)
 
 
조선에서 남계우 전에는 조희룡 선생이 나비 그림을 많이 그렸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신명언, 이교익, 백은배, 김석희, 서병건, 송수면 등 수많은 이들이 나비 그림을 그렸으며, 최근 민화를 그리는 분들이 나비를 많이 그리고 있다.
 
 
부탄의 봄
 
부탄은 3월부터 5월이 되면 깊은 계곡에 꽃들이 만개한다. 전 세계 화가들은 부탄의 꽃들을 보고 싶지만 너무 여행 거리가 멀어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히말라야의 꽃들을 알게 된 것은 아주 오래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책을 구해 볼 수가 없어 아쉽게 생각했다, 히말라야를 7년간 7천 km이상 걸어 다닌 히말라야를 걷는 여자 거칠부는 가끔씩 SNS에 히말라야 꽃 사진을 올려주었다. 탐험가는 이전에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히말라야를 다녔으나 7월에 파키스탄 원정을 터나면서 삼성폰 S22 울트라로 바꿨다. 필자는 작년 6월 몽골 고비사막 탐방 시에 수많은 사진들을 폰으로 촬영하고 기록을 남겼다. 부탄의 깊은 계곡에는 만병초 꽃(Rhododendron)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부탄의 푸른 양귀비는 색상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푸른 양귀비는 부탄의 국화이다. 이 꽃은 정말 희귀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꽃을 일러 ‘부탄의 푸른 예티’라고 부른다. 해발 3,700m 이상 4,300m의 고도에서 자라는 푸른 양귀비는 정말 귀중한 꽃이다. 꽃을 보기 위해서는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할 것이다. 높은 곳은 무척 춥다. 푸른 양귀비는 추운 날씨와 같은 극한 조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꽃이다. 현재 부탄에는 13종의 푸른 양귀비가 있지만 밝은 파란색 종만이 부탄의 고유종으로 알려져 있다.
 
 
푸른 양귀비(The blue poppy)
 
 
부탄은 꽃의 나라인데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미선나무를 2014년에 가져가 왕실 정원에서 멋진 꽃을 피웠다. 부탄 왕실의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미선나무의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에 반했다. 미선나무를 수입하려고 노력하여 2014년에 괴산군 운천농원에서 인공증식으로 재배한 미선나무 묘목 40그루를 정식 수출허가를 통해 검역을 거쳐 부탄에 식재되었다.
 
 
부탄 왕실정원의 미선나무(사진: 운천농원)
 
 
미선나무는 1917년에 정태현 박사가 충북 괴산에서 처음으로 발견했다. 천연기념물인 미선나무는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자생하고 1종 1속밖에 없는 희귀종이다. 3월 말에서 4월 초에 흰색이나 연분홍색의 꽃을 피운 뒤 9월께 부채 모양의 열매를 맺는다. 미선나무에서 꽃에서 나오는 향은 일품이다. 열매는 마치 임금님 뒤에서 시녀들이 들고 있는 꼬리가 동그란 부채처럼 생겨 미선(尾扇)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꽃말은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이다, 미선나무는 땅이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번식도 아주 쉽다.
 
부탄은 지구촌의 기후변화로 산사태와 홍수가 자주 발생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7월 몬순이 시작되면서 부탄은 매일 30여 건의 도로 봉쇄 사건이 발생한다. 국립 수문학 기상센터(NCHM)는 7월 11일, 7월 12일과 13일에 폭우와 홍수가 예상된다는 기상주의보를 발표했다. 센터의 데이터에 따르면 앞으로 몇 주 동안 폭우, 강수, 홍수, 산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며, 7월 19일까지 남부와 중부 지역에 적당한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산사태 현장(사진: KEUNSEL)
부탄(Bhutan) 호랑나비(-) # 부탄니티스 # 타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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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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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